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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규모 작지만 문화예술 꽃피는 사랑방 됐으면"

전북 첫 추진 개인 공립미술관 주인공 김병종 서울대 교수

▲ 지난 24일 김병종 서울대 교수가 전북의 문화예술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 교수는 문화예술이 자갈처럼 널려 있는 전북에 문화특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추성수기자 chss78@

한국화가 김병종 교수(60·서울대 미술대)에게 고향은 어머니와 동격이다. 버선발로 뛰어나오던 어머니가 20년 전 작고하신 후 고향 남원을 찾는 일이 좀 뜸해졌지만, 불쑥 차에 몸을 싣고 고향을 찾을 때면 항상 소년 같은 마음이 든단다. 미당 서정주 시인이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는 것처럼, 김 교수도 자신의 예술세계의 6~7할은 '고향의 정서'라고 했다. 어린 시절 지리산의 푸르고 억센 야생에서 받아들인 부성적인 강인함과, 산자락을 휘도는 섬진강이 준 모성적 푸근함이 자연스레 그의 작품세계에 투영된 것을 두고서다. 그는 학교를 마친 후 쏘다녔던 끝없이 펼쳐진 지리산 자락의 자운영 밭이 그의 원초적 색채체험의 인자가 됐다고 했다.

 

그런 그이기에 고향의 문화예술에 쏟는 애정은 유별나다. 최근에는 그의 작품과 동양예술학 관련 진귀한 자료 등 소장품들을 남원시에 기탁해 미술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전주 MBC 창사특집 대담에 초청을 받아 지난 24일 전주를 찾은 김 교수를 만나 전북의 문화예술의 나아갈 길을 찾는 자리를 마련했다.

 

-전북에서는 처음으로 화가의 개인 이름을 딴 공립미술관 건립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남원뿐 아니라 전국의 몇몇 자치단체에서도 화백님의 작품으로 미술관 건립을 희망한 것으로 알고 있는 데, 어떻게 이루어지게 됐는지요.

 

"남원에서 미술관 건립 이야기가 나온 것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서울대 미술대학장 재직할 때였는데, 대영박물관 등 국내외 저명 미술관에 소장된 대작을 많이 보유한 것을 알고 여러 자치단체들이 욕심을 냈습니다. 마침 친분 관계에 있던 강동원 국회의원이 작품 기증을 권유했고, 이환주 남원시장이 도예촌을 중심으로 한 아트밸리를 추진한 것이 맞아 떨어졌습니다."

 

-지역 문화예술발전과 미술관의 관계를 어떻게 보시는지.

 

"독일 베를린 도시에만 1200개의 미술관이 있고, 일본에는 1만1000개의 미술관이 있어 '미술관 학습', '박물관 예절'이 생길 정도입니다. 취학 이전부터 자연스럽게 미술관을 드나들면서 미술품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하며 '관계 학습'을 하게 됩니다. 모델학습의 공간이 없을 경우 예술의 내적 동력이 발생하기 어렵습니다. 현장에서 부딪히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러닝 바이' 학습모델이 제2의 피카소, 베토벤을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농촌지역의 경우 자연체험과 감성적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은 데 예술체험을 할 기회가 없지 않습니까. 어렸을 때 제가 겪었던 그런 아픈 기억(예술체험을 할 수 없었던)을 생각하며 '귀거래사' 심정으로 남원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미술관이 어떻게 건립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개인적인 욕심과 현실과는 괴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개인 공립미술관 규모로 보면 아마 전국에서 가장 작은 미술관이 될 것입니다. 크기가 문제겠습니까. 작은 미술관을 통해서라도 내실 있는 교육과 전시가 이루어지면 감사할 일이죠. 작지만 독특한 스타일의 미술관을 통해 지역의 문화콘텐츠가 살찌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와 함께 제 작품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예술이 꽃피는 문화사랑방 역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화제를 돌려보겠습니다. 전북의 문화적 자산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전북의 문화적 자산은 전 분야에 걸쳐 아주 풍부합니다. 문학, 음악, 미술, 무용, 연극 등에서 많은 훌륭한 인물들이 배출됐습니다. 여기에 조성왕조의 본향이라는 아우라까지 있습니다. 문제는 이를 꿰어 내는 일입니다. 문화적 자원이 들불처럼 무성하지만, 훌륭하게 꽃을 피울 만한 자본과 기획력이 아쉽습니다. 나무 한 그루를 키우는 데도 햇빛과 물, 바람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런 풍부한 문화적 자산들이 어떻게 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공장시대는 지났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목마르게 찾는 것이 문화와 예술입니다. 문화와 예술이 강가에 자갈처럼 널려있는 전북에 절호의 기회입니다. 문제는 자본입니다. 자치단체 재정에 한계가 있는 만큼 중앙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를 위한 문화특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재정문제와 함께 기획력문제도 말씀하셨는데.

 

"지금 전국이 문화전쟁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전쟁은 상상력의 싸움입니다. 전통에 안주해서는 한계가 있어요. 전통에 제2, 제3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발굴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춘향만 하더라도 쇠퇴한 느낌을 줍니다. 세계적인 오페라로, 대중적인 사물놀이로 만들 경우 춘향의 원재료에 역동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 이탈리아 베로나와 교류를 통해 춘향의 세계화를 꾀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문화예술에서 이미지와 스토리텔링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전국적으로 자부할 만한 전북의 문화 콘텐츠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전주 한옥마을은 전국적으로 알아줍니다. 한옥마을이 전주에만 있는 게 아니며, 전주보다 더 잘 조성된 한옥지구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주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행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왕가의 아우라가 있어서입니다. 우리만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경쟁력을 갖습니다. 그러나 전주 한옥마을이 더 경쟁력을 가지려면 전통과 현대가 살아 쉬어야 합니다. 시화지구에 들어가기로 한 후 현재 표류하고 있는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유치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핵폭탄급 효과를 가질 것이며, 교토에 버금가는 전통도시로 떠오를 것입니다. 재창조되지 않는 전통은 녹이 슬어 결국 쇠퇴할 수밖에 없기에 전북만의 특징과 아우라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 김병종 교수는

 

문학적 상상력도 뛰어난 미술가

 

김병종 교수는 40대에 서울대 미술대 학장을 지낸 국내 간판급 화가다. 남원 용성중을 졸업한 후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후 성균관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시절 시와 산문, 소설 등으로 서울대문학상을 휩쓸었으며, 희곡 10여편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1980년과 81년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미술평론과 희곡으로 당선됐으며, 대한민국 문학상·삼성문화재단 저작상 등을 받았다.

 

예술의 도시 파리 등 유럽과 미국 등 세계 여러나라에서 100여 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20여회의 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2004년 광주비엔날레 그의 작품은 대영박물관 등 국내외 저명 미술관에 소장돼 있으며 미술기자상, 선미술상, 한국미술작가상, 기독문화대상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서울대 미술대학장과 미술관장, 조형연구소장 등을 지냈다. '중국회화연구''화혼을 불사르고''김병종의 화첩기행 1-4권''바보예수''생명의 노래''라틴화첩기행'등 10여권의 저서를 냈다.

 

회갑을 맞아 올 하반기 전북에서 '회향의 의미'를 담은 첫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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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 kimwy@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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