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을 끌어내리고 왕위를 찬탈한 사건. 그 시나리오는 한명회가 앞장서서 짰고, 김종서 대감은 목숨을 걸고 저지했다고 알려져 있다. 영화는 야박하기 짝이 없던 난(亂)을 그리면서 수양대군이 과연 왕이 될 관상이었던가 하고 묻는다. 여기에 당대 최고의 관상가 ‘내경(송광호 분)’이 등장한다. 그는 김종서 대감(백윤식 분) 밑에서 일을 본다. 어느 날 수양대군(이정재 분)이 불러놓고 묻는다. “내가 왕이 될 관상이냐?” 내경은 입을 열지 않는다. 입은 수양이 왕이 된 후에야 열린다. “왕이 될 상입니다.” 그러자 세조는 “이제 왕이 된 판국에 내가 왕이 될 관상이라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며 비웃는다.
노심초사하던 김종서 대감은 수양대군의 관상이 맞기를 바랐던 것 같다. 힘으로 저지할 수 없으니 수양의 역모를 막는 초인적 작용이 있어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 사항이었다. 수양은 보란 듯이 등극한다. “관상이 어쩌고 어째…?” 라는 듯. 왕이 되었다는 성취도 컸겠지만, 어쩌면 그는 숙명을 바꿨다는데 대하여 더 흥분하고 기고만장해 하지 않았나 싶다. 김종서 대감의 관상은 어떠했을까? 호랑이상이라며 내경은 감탄해 마지않았었다. 관상이 맞았다면 대감은 수양의 칼로 인해 비명횡사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내경은 훗날 야인으로 돌아와 변명처럼 말한다. “바다에서 일어나는 파도만 보았지 파도를 일으키는 시대의 바람을 보지 못했다.”라고. 여기서 말하는 바람의 정체는 무엇인가. 지금도 저잣거리에는 바람이 하염없이 불어대고 있는데….
영화는 한 가지 방어 장치를 만들었다. 한명회의 관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이 그것이다. 내경은 한명회의 목이 달아날 상이라고 말한바 있다. 때문에 그는 죽는 날까지 칼을 끼고 살았다. 죽기 직전에 말한다. “내경의 관상은 틀렸어.” 한명회는 17년이 지난 후에 부관참시당한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러시안 소설’이란 영화가 있다. 한 무명소설가가 27년간 식물인간인 채로 살다 깨어 보니 최고의 소설가가 되어 있더라는 이야기다.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껍질 빌려 쓰고 강물 따라 흘러가는 게 인생이다. 어떻게 떠다녔는지는 바다에 도착해서야 알게 된다.’ 모든 일은 끝나봐야 안다는 뜻일 터. 우리 삶은 정녕 과정인가, 결과인가. 그것을 말하는 화자의 시점은 어디인가…?
심리적 차원에서 말하자면 영화 보는 것 자체가 관상 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남이 봐주는 관상 말고 나 스스로 나를 보는 것 말이다. 영화 심리에서는 이를 자기직면(自己 直面)이라고 한다. 영화에 동일시되다 보면 오만 가지 생각으로 부스럭거리게 되고, 급기야 무의식 세계를 유영(遊泳)하게 되는데, 거기서 잊고 있던 또 다른 자기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어디까지 왔냐고.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고…?
앞뒤 가리지 않는 수양대군, 앞만 보는 한명회, 장승처럼 서 있는 김종서 대감, 그들 앞에 부는 바람, 그것을 보지 못한 내경. 그들은 모두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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