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을미년 새 아침에-김병기 전북대 교수
〈교수신문〉은 수 년 전부터 매년 그 해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한 마디로 요약, 표현할 수 있는 사자성어를 가려 뽑아 발표하곤 한다. 지난해에 뽑은 사자성어는 ‘지록위마(指鹿爲馬)’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뜻이다. ‘지록위마’라는 말이 생겨난 내력이 떠올라 가슴이 섬뜩함을 느꼈다.
폭군의 대명사인 진시황이 죽자 간신 조고는 거짓 조서를 꾸며 총명한 태자 부소를 죽이고 어리고 우둔한 왕자 호해를 2세 황제로 삼았다. 어린 호해라야 제 맘대로 다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고는 어리석은 호해를 교묘히 조종하여 승상 이사를 비롯한 여러 현명한 신하들을 다 죽이고 스스로 승상이 되어 조정의 실권을 장악했다. 조고는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을 가려낼 요량으로 어느 날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馬)을 바치오니 받아 주시옵소서.”라고 했다. 이에, 호해가 말했다. “승상은 농담도 잘 하시오. 사슴을 말이라고 하다니(指鹿爲馬). 그대들 눈에도 말로 보이오?” 이때, 호해는 좌우의 신하들을 유심히 살펴 말이 아니라고 말하는 신하를 기억해 두었다가 죄를 씌워 죽여 버렸다. 그 후 궁중에는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게 되었고 결국 진나라는 망했으며 조고는 부소의 아들 자영에게 주살 당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지록위마’라는 말이 2014년의 대한민국을 대변하는 말이라니 어찌 섬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015년 새해가 밝았다. 2014년의 ‘지록위마’적 상황을 청산하고 새로운 희망을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진실을 회복해야 한다. 진실을 스승으로 삼아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행하는 세상이 되게 해야 한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기고, 또 그렇게 우기는 사람들을 어쩔 수없이 추종하는 세상은 파국으로 치닫는 세상이다. 그런 파국을 타개할 수 있는 길은 ‘이진위사(以眞爲師)’, 즉 ‘진실로써 스승을 삼는’ 길밖에 없다. 대한민국 내에서도 인심이 좋고 정의감이 강한 고을로 유명한 전북. 우리 전북인이 먼저 나서 진실을 스승으로 삼는 생활을 한다면 세상은 차츰 밝고 맑아질 것이다. 그리하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는’ 억지는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게 될 것이다.
● 을미년, 양에 대한 모든 것
하필이면 그날따라 몹시도 추웠다.
주중인데다 한파까지 겹쳐, 지난 12월 19일 찾은 전주동물원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양의 복슬복슬한 털이 그렇게 부러운 적이 없었다.
전주동물원의 양은 모두 7마리로, 가장 크고 위엄 넘치는 8살 할아버지 양부터 3살 어린 양까지 저들끼리 모여서는 메에 메에 하고 있었다.
그 중 한 마리가 혹여 간식이라도 있는지 잠깐 다가왔다가, 기자의 손이 비어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무리 가운데로 돌아가 버렸다.
△양과 염소
이상하게도 양 무리 사이에 털이 없는 것이 두 마리 끼어 있었다. 2013년에 태어난 염소였다.
전주동물원 사육사 정완순 씨(48)는 “자꾸 울타리 사이를 빠져나와서 저기서 논다”고 말했다. 사육사들이 염소들이 있는 곳에 데려다 놓아도 금세 빠져나와서 양 무리에 낀단다.
양은 솟과 양속에 속하는 동물이다. 전주동물원에는 양속 동물로는 면양과 함께 무플론, 바바리양, 염소 등 4종이 있다.
우리가 흔히 ‘양’이라고 부르는, 털이 복슬복슬한 동물은 가축화된 양인 ‘면양’이다.
면양은 지금으로부터 1만여년 전에 지중해 및 서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먼저 길들여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시대에 금나라에서 처음 들여와 키웠다는 기록이 있다.
수명은 10~15년이며, 대체로 몸길이 약 1m까지 자란다. 이 때의 몸무게는 약 100㎏ 내외가 된다.
지금이야 양과 염소를 철저하게 구분하지만, 염소를 가리켜 ‘양’이라 부르던 역사가 꽤 길다.
흔히 ‘띠’라고 일컫는 것은 중국 상나라 때에 해를 세기 위해 만들어진 ‘천간’과 ‘지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90년대에 어린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꾸러기 수비대’라는 애니메이션이 바로 이 간지를 모티브로 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역법이 등장할 당시에는 아직 동아시아에는 면양이 없었다. 당시 ‘양(羊)’이라고 하면 염소를 가리키는 것이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오랫동안 그렇게 불러왔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면양이 일제 강점기는 돼서야 가축으로서 대대적으로 길러지기 시작했고 그 전까지는 면양을 보기 힘들었으니, ‘양’이라는 표현이 면양만을 가리키는 현상은 그 역사가 짧은 것이다.
간혹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양띠’ 대신 ‘염소띠’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적어도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어린 염소 두 마리가 양 무리 사이에서 노는 것이 우연은 아닌 셈이다.
△순하고 사람 잘 따르는 가축
흔히 ‘온순한 사람’을 가리켜 ‘양 같은 성격’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양띠 사람의 성격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온순함’이다.
양 우리를 맡고 있는 정 씨는 이 같은 속설이 사실이냐는 질문에 “사실이다”면서 “양은 순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동물”이라고 말했다.
개 다음으로 가축화됐다고 할 만큼 가축으로서의 역사가 긴 동물이니 당연한 이치다.
다만 정 씨는 “번식기에는 돌출행동을 하기도 한다”면서 “서열싸움도 심한 편”이라고 귀띔했다. 특히 스트레스를 받을 때, 짜증을 내며 울타리를 들이받곤 한다고. 과연, 군데군데 휘어 있는 울타리 봉이 ‘작은 양을 화나게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복슬복슬한 털은 ‘주기적으로 깎아줘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 씨는 이를 부인했다.
면양도 자연적으로 털갈이를 하기 때문에, 굳이 주기적으로 깎아줘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주동물원에서는 다만 초여름에 지나치게 더워하는 개체는 털을 깎아준단다.
△과자는 주지 마세요
초식동물의 대명사답게 양은 풀만 먹는다. 뉴질랜드 현지에서는 겨울이 아닌 이상 푸른 풀을 그대로 먹이지만, 전주동물원에서는 그럴 여건이 되지 않아 건초를 먹인다.
간식도 종종 먹는다. 양은 관람객이 과일이나 과자를 가지고 유인하면 100이면 100, 울타리에 달라붙은 채 입을 내밀곤 한다.
하지만 정 씨는 바로 이 때문에 양들이 시름시름 앓곤 한다고 말했다.
“관람객들이 주는 걸 받아먹고 배탈이 나는 경우도 있고, 설사를 하거나 쓰러지는 경우도 있어요. 그걸 ‘월요병’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간식이 적은 양이면 큰 문제는 없지만 주말에 관람객이 몰리면 그렇지가 않으니까….”
관람객들이 양, 염소 등의 동물에게 뻥튀기를 먹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같은 간식들을 먹다간 당뇨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이 정 씨의 설명이다.
동물마다 정해진 식단이 있는데, 간식 때문에 건강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멸종위기에 놓인 희귀한 동물들은 이 같은 문제 때문에 반입에 제재를 받는 경우도 생긴다고.
그래서 전주동물원은 조만간 관람객들이 먹이를 직접 주는 것을 금지할 계획이라고 정 씨는 말했다.
△겁 많지만 간혹 돌출행동도
양은 겁이 많은 편이다. 처음에 인류가 양을 가축화할 수 있었던 것도, 양이 개를 매우 무서워해서 쉽게 몰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 씨는 동물원에 있는 양들도 사육사가 빈손으로 다가오면 겁을 먹는다고 말했다. 먹이를 손에 들고 있어야 안심한다는 것.
이날도 양 무리는 사육사를 피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또 카메라의 셔터 소리를 겁내 도망치곤 해서 그 얼굴을 가까이서 보기가 쉽지 않았다.
겁이 많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소심하게 가만히만 있는 동물은 또 아니다.
전주동물원에서는 종종 양이나 염소가 우리 바깥에 나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울타리 봉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경우다. 염소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양 우리에는 이 같은 내용을 안내하는 팻말이 붙어있다.
가끔 이처럼 돌출행동을 하거나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을 즐기는 습성 때문에 양띠 사람을 부정적으로 이를 때 ‘경망스럽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야생의 양이 고원지대에 주로 서식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것이야말로 본능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글 사진=권혁일 기자
● 양띠 사람들, 새해에 바란다
- 1967년생 박병관씨 "희망의 빛줄기·소망의 씨앗 주어지길"
양의 해 중에서는 1979년이 기억에 남네요.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6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동네 사람들이 TV가 있던 우리 집에 와서 삼삼오오 자리를 잡더니 울었고, 우리 형제자매도 영문도 모르고 덩달아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거죠. 이후 시간이 지나 적지 않은 사실들을 접했고, 지금은 만감이 교차합니다.
을미년은 청(靑)양띠라고 합니다. 새해에는 온순하고도 진취적인 청양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줄기와 소망의 씨앗이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우리 집 큰 아이와 작은 아이가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되는데, 학업에 따른 스트레스를 멀리하고, 주변의 소외되고 상대적으로 약자인 사람들 편에 서서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차곡차곡 실천해 갔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봅니다.
- 1979년생 최효정 씨 "좋은 책으로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어"
양의 해는 항상 양처럼 순하다고 들었어요. 제 생각에도 조금 그런 기질이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건 장점이지만, 앞장서고 나서는 성격은 못 된다는 건 단점인 것 같아요.
새해에는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해보려는 일이 있습니다. 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 아이들이 책과 가깝게 지낼 수 있도록, 좋은 인문학 책들을 함께 볼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인데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책과 친해질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바라는 일들이 잘 풀리면 좋겠습니다.
- 1991년생 이정화 씨 "대학원 진학, 임상심리사 되는 게 꿈"
태어난 해를 제외하고 겪어본 양의 해라면 2003년 밖에 없는데 굉장히 신나게 놀았던 기억뿐이네요. 초등학교 6학년 때였고 반장이었는데 ‘반장이 제일 신나게 논다’고 면박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생각해보면 그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 또래 사람들 소망은 취업이겠죠? 취업한 사람이 주변에 많지 않은데, 저는 임상심리사가 되는 게 꿈이라서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입니다. 어렸을 적에는 이 무렵에는 멋있는 어른이 돼 있을 거라고 상상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아직 갈 길이 한참 멉니다. 하지만 동시에 갈 길이 남아있으니 오히려 그래서 희망이 있는 것 아닌가, 아직 젊으니까, 이런 생각도 해요.
- 2003년생 유다영 양 "책도 많이 읽고 가족과 여행 가고 싶어"
양띠는 순한 것 같은데,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열정적으로 하는 그런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새해에는 세계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싶어요. 또 다른 나라에 직접 가보고 싶어요. 뉴질랜드에 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직접 가보니까 새롭기도 하고 좋았어요. 다음에 가보고 싶은 곳은 캐나다인데, 유명한 것도 보고, 음식도 먹어보고, 또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도 해보고 싶어요. 또 새해에는 가족과 여행을 많이 가보고 싶어요. 바다 아니면 섬 같은 곳으로요. 배를 타보고 싶기도 하고, 텐트 치고 캠프를 해보고도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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