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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를 거둬들이고

▲ 정석곤

재작년은 흉년에다 이슬비를 맞고 벼를 베어 수분함량이 제법 높아 부아가 치밀었다. 작년엔 오히려 너무 건조해서 손해를 봤다. 엊그제 비를 걱정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쾌청해 이슬이 잠에서 깨면 괜찮을 것 같았다. 콤바인이 몇 분이라도 늦게 오길 바랐는데 사돈네 논을 베고 곧바로 11시가 못되어 들어왔다.

 

예년처럼 콤바인은 뒤 논두렁 쪽에서 시작해 논을 오른쪽으로 한 바퀴 삥 돌았다. 누런 벼는 베어지면서 콤바인 안으로 들어가 낟알이 훑어지고 볏짚을 뒤로 가지런히 놓았다. 뒤 논두렁 끝에 갈 때야 들은 게 생각나는지 볏짚을 잘라서 내놓았다. 논바닥은 거무스레한 속살을 들어 내놓다가 곧바로 볏짚으로 가렸다. 콤바인은 논바닥이 질컥질컥해 힘들어 했다.

 

콤바인이 부지런히 한 바퀴를 돌고 있는데, 또 한 대가 불청객으로 들어온 게 아닌가? 아마 둘은 우리 논도 함께 하자고 약속을 했을 성싶었다. 나중에 온 콤바인도 눈썰미가 빨라 앞 콤바인을 따라 돌면서 꼼꼼하게 일을 했다. 논에 콤바인 두 대가 빠른 걸음으로 다니니까 한 대일 때보다 직사각형의 황금물결이 금방금방 줄어들어, 서운하기도 했다.

 

콤바인은 벼를 훑은 낟알을 풍구질 해 모았다가 도로가의 트럭에 있는 큰 포대에다 담아주었다. 콤바인 도우미 아주머니와 포대를 쫙 펴서 잡고 많이 담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포대 밖으로 튀어나와 차와 길바닥에 떨어진 낟알 하나하나가 아까웠다. 낟알 한 알을 여물게 하려고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가? 길바닥에 떨어진 낟알들은 아내가 손바닥으로 모아 담았지만, 마음이 아렸다. 포대가 조금 작아서 그런지 작년보다 하나를 더해 네 개에 가득가득 담았다. 난 싱글벙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산물 벼로 팔려 트럭을 앞세우고 농협이 운영한 DSC(벼 건조저장실)로 갔다. ‘적정수분 함량이 되어야 할 텐데.’하는 바람뿐이었다. 저장실 앞 수매시설 위 전광판에 ‘정석곤 벼 수매’ 라고 녹색불이 켜졌다. 수매원이 벼의 품질을 검사한 뒤 부었다. 내 이름 밑에 무게(kg)와 수분함량(%)의 수치가 자주 바뀌기 시작했다. 두 번째 포대를 부었다. 무게와 수분함량의 수치는 24와 25 사이를 오가느라 바빴다. 무게보다는 수분 함량에 더 눈독을 들였다. 세 번째 포대를 비웠다. 옆에서 팔고 있는 농가의 수분함량 수치를 곁눈질 하며 비교해 보았다. 마지막 포대를 비웠다. 수분함량 수치가 25가 거의 가까울 때는 25를 넘으면 어쩌나 하고 마음을 졸였다. 드디어 수치가 멈추었다. 2,803kg에다 24.2%였다. 1등급에다 적정수분 함량 24%에 가까워 정상이라고 했다.

 

모내기는 적기에 해야 한다. 그에 못지않게 벼 수확도 그렇다. 그건 수분함량 때문이다. 작년보다 사흘 앞서고 이웃보다 빨라 적기라 여겼는데 지난 이틀간 비를 맞아 걱정을 많이 했다. 다 쓸데없는 염려였다. 올해는 대풍년이라 할 수 있을까? 수분함량도 정상인데다가 생산량도 600여 kg이 더 늘었으니까….

 

올 같은 가뭄에도 지하수를 뿜어 오렸다. 볏짚을 깔고 모내기를 했다. 비료와 농약도 뿌렸다. 잡초인 올갱이와 전쟁도 네댓 번에 끝냈다. 논두렁 풀을 벴다. 작년에 내 맘을 까맣게 태웠던 벼 깜부기가 올해도 까맣게 꽃을 피워 따보기도 했다. 사돈의 논농사 도움과 조언을 받아가며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벼농사의 시절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어 도움을 바랄 뿐이었다. 여름에 태풍이 몇 차례 한반도에서 멀리 스쳐 지나가, 벼가 꽃을 피우고 꽃가루받이가 잘 돼 낟알이 튼실하게 여물었다. 기쁨을 안겨 주신 하나님께 고마운 마음을 드리고 싶다.

 

△정석곤씨는 2009년 〈대한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풋밤송이의 기지개〉를 출간했다. 행촌수필문학회와 안골은빛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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