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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피성 찾아내 백제 부흥운동 흔적 밝힌다

국비 8000만원 들여 성산공원서 발굴조사

▲ 12일 성산공원에서 김제피성의 본격적인 발굴조사에 앞서 이건식 시장 등 참석자들이 첫 삽을 뜨고 있다.

백제 패망 후 나라를 되찾고자 백제 왕자 부여풍을 중심으로 부흥운동을 벌였던 김제피성(김제 성산공원)의 발굴조사를 통해 백제 부흥운동의 흔적이 밝혀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제 성산공원 주변은 성산을 중심으로 국가사적지인 김제 관아와 향교, 용암서원, 벽성서원, 김제시청, 김제문화예술회관 등이 위치,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김제시민들로 부터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어 오고 있다.

 

또한 김제의 주성(主城)으로서 백제시대로부터 중요한 성곽이었다는 문헌자료와 백제 패망 후 왜국에 가 있던 백제 왕자 부여풍을 중심으로 나라를 되찾고자 벌였던 백제부흥운동 당시 임시수도로서 기능 했다는 추정이 있으나 그동안 이를 증명할 수 있는 발굴조사가 단 한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국가공모사업에 선정돼 국비 8000만원을 확보, 오는 9월까지 전라문화유산 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특히 그간 백제 부흥운동 근거지인 주류성과 피성의 위치가 충남 일부지역 및 김제, 부안 등이다는 설이 많았으나 증명이 되지 않았었으나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주류성과 피성 위치가 명확하게 밝혀질 것으로 학계는 기대하고 있다.

 

백제 부흥운동 당시 백제 왕자 부여풍이 주류성에서 피성(성산공원)으로 천도 하게 된 이유를 “주류성(부안 우금산상)은 오직 전쟁을 막아낼 장소이나 김제 피성은 삼한중에 가장 풍요로운 곳으로, 의식의 근원이라”고 높이 평가하며 항쟁의 근거지를 옮겼다고 전해진다.

 

백덕규 김제시청 학예연구사는 “백제 부흥운동이 백제 왕조를 이어갔다는 점에서 백제사의 종점을 백제 부흥운동이 막을 내린 시점으로 보아야 하며, 그간 이설이 많았던 주류성과 피성의 위치가 부안과 김제에 힘이 실리고 있다”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백제 문화권의 여러 유적지와 함께 김제의 백제시대 유적 또한 추가 등재하는 방안도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김제시와 전라문화유산 연구원은 12일 성산공원에서 본격적인 발굴조사에 앞서 이건식 시장을 비롯 김선유 김제문화원장, 김제향교 유림 등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산에 깃든 토지신에게 제를 올리는 개토제(開土祭)를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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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우 dwchoi@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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