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콧물 훌쩍이는 손자와 택시를 탔다. 소아과 건너편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택시는 우리를 건널목에 떨어뜨리고 신호가 바뀌자 쏜살같이 달아났다. 파란 불이 켜진 뒤, 두 돌 지난 녀석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런데 녀석이 다른 손을 번쩍 들고 건너는 것 아닌가. 신기하고 기특하여 길을 다 건넌 뒤 물었다. ‘길 건널 때 손들고 가라고 어린이집에서 배웠어요.’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겨우 말귀 알아듣고 몇 마디 하는 아이가 이런 교육을 받았다니 어린이집 보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이맘때였던가. 친구들과 여행 약속이 있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횡단보도에 닿기 전 신호가 바뀌며 차들이 멈췄기에 건너편 버스 정류장으로 달렸다. 겨우 버스정류장에 와서 거친 숨을 고르는데 누가 “아줌마! 아줌마!” 하며 부른다. 돌아보니 경찰관이 수첩 같은 것을 꺼내 들고 주민등록증을 내놓으란다. “왜요?” “아줌마 무단 횡단했잖아요. 어서 주민등록증 주세요.” 이런, 이렇게 난감할 수가….
“아저씨, 급해서 그랬어요. 한번 봐주세요.” “아니 아줌마만 봐주면 저 아줌마는 어떡해요?” 경찰관의 손짓을 따라가니 몇 걸음 안 가 순찰차 앞에서 또 다른 경찰관에게 죄인처럼 서 있는 여인이 서 있었다. “아줌마가 달리니까 저 아줌마도 뒤따라 달렸어요.” 허허. 경찰관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나는 속으로 ‘퍽 우습기도 하겠다.’라고 쏘아주고 싶었다.
그 날 나는 내 인생에 하나의 역사를 기록했다. 말로만 듣던 딱지를 뗀 것이다. 거금 이만 원짜리를 기어이 끊기고 만 것이었다. 친구들과 여행길에 오르며 나는 한마디 했다. ”나 오늘 딱지 뗐어. 액땜했으니까 잘 지내고 오자.” 모두 환호했고 이틀간의 여행은 내 덕(?)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 날의 딱지 한 장은 내가 아끼는 상자 안에서 다른 귀한 것들과 함께 잘 지내고 있다. 가끔 희고 길쭉한 딱지를 본다. 그리고 내 삶에 있어서나 주변 생활에 있어서 또 다른 무단횡단은 없었는지 또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무작정 달려가진 않았는지, 기다려야 하는데 성급한 적은 없었는지 되짚어보며 정도를 지키는 삶이었기를 다짐해본다. 그리고 건강을 지켜가는 일에서도 너무 무리하지는 않았는지! 의사에게 딱지 끊길 일은 하지 않았는지를 생각하게도 된다. 또한 가족을 대하는 데도 무단횡단 같은 무례한 사례는 없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이만 원짜리 딱지 한 장이 반면교사가 되어준 셈이다.
그날 이후 나는 어떤 경우에도 무단횡단은 하지 않는다. 지난날의 그 기억이 부끄러워서다. 조금 늦어지고 귀찮아도 그 날의 교훈을 떠올리며 횡단보도 앞에서 파란 불을 기다린다. 내 마지막 삶의 길에 있어서도 그럴 것이다.
△김정희 수필가는 〈표현문학〉으로 등단했다. 현재 〈덕진문학〉에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자작나무〉와 〈마음에·하나 찍듯〉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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