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운동을 하고 평소대로 손자들 데리고 와서 달래가며 서둘러 밥을 먹게 한다. 이어서 등교 시간 늦지 않게 학교 보내는 게 군대 생활 점호같이 되어 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평소와 달리 1학년 4학년인 손자들이 꼬막 손으로 분홍색 봉투를 내민다. 1학년 손자는 작은 지폐 두 장을 동봉하고서 초보 글씨로 ‘할아버지 축하드립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썼다. 글씨 아래엔 어른과 아이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크게 그려두었다. 그리고 어른 그림 아래에는 ‘할아버지’, 꼬마 그림 아래엔 ‘나’라고 썼다.
아침 없는 날 없고 생각 없이 하루를 보내는 날도 드물다. 잠자리에서 깨어나는 시간, 나는 허리 아픔에서 탈출해 일어날 수 있음을 하나님에게 먼저 감사드린다. 이어서 책상으로 가서 아침 시간 깨어나는 정신으로 가족들을 생각하며 힘든 일 없이 살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기도한다. 다음 온수 한 잔을 몸속으로 공급한다. 이어서 산길에 나선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이 하루의 내 인생을 끌고 간다. 그동안 나는 고향에서 객지에서 비틀거리고 넘어지면서 생명으로서 몸살을 많이 앓았다. 그래도 용케 살아남아 부모님과 한아파트에서 지내다 부모님 먼저 허무의 본질 속으로 떠나시게 되었다. 그런데 나보다 더 힘들게 살아오셨던 그분들에게 존경을 표함에 인색했다. 자본주의 시대의 꽃인 경제 쪽으로 둔하고 무능한 사람들 속에 가족도 있었고 나도 갇혀 있었다. 그러면서 나 혼자 열심히 사는 양 아는 체를 했다. 생각해 보면 참 싸가지 없는 소행이었다.
산길을 거닐다 보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겸손해지는 시간이 찾아온다. 자유롭게 걷지 못해 불편해하는 분을 볼 때는 아니 볼 상황을 훔쳐보는 것 같이 미안해진다. 내 의지대로 내 육신을 운행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점점 커 보인다. 그러한 가운데 자동차 주행가능 거리를 보면서 내 삶의 주행거리와 남은 에너지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오늘은 내게 있어 의미 있는 날이다. 그러나 누구에게 자랑할 만큼 특별한 것은 아니다. 누구 같이 아들딸이 박사 학위 받는 날도, 검사 판사에 임명되는 날도 아니다. 주식이 튀거나 복권 당첨은 더욱더 아니다. 그저 혼자서 작은 의미를 안고 ‘내가 이 땅에 온 뜻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강물에 내 얼굴 비춰보듯 해야 할 날이다. 이어서 이 땅에 올 때의 예의가 있었다면 갈 때의 도리도 소중하겠다는 점을 곱씹어 볼 날인 것이다.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르는 동안 커트 보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검은 머리에 흰 머리털이 꽤 섞였다. 그래, 때 되면 모두 잘려나가고 떠나는 거겠지 싶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저 머리털도 내 부실한 치아로 더디 씹어 삼킨 음식의 영양분으로 자랐을 텐데…하는 생각으로 마음속 한 곳이 묵직해졌다. 그 순간 “다 되었습니다.” 하는 주인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수고했다는 말을 남기고 출입문을 밀고 오후의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어디선가 ‘아름다운 젊음은 자연 현상이지만 아름다운 노년은 예술작품’이라는 들어봄 직한 문장의 언어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김경희 수필가는 〈월간문학〉으로 등단했으며 ‘국제펜클럽전북위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전북문학관아카데미’에서 수필을 지도하고 있다. 수필집 〈사람과 수필 이야기〉 외 몇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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