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좌군, 무슨 일이오?”
덕조가 긴장된 얼굴로 묻는다. 백제군이 대야성을 함락시켰고 대야주 42개 성을 공취해간다는 소문은 들었다. 승전보가 오가는 전령의 몇 마디 말로 전해지는 상황이다. 이곳 칠봉성은 전장(戰場)에서 멀 뿐만 아니라 사비도성과 대야성 사이에 위치해 있지도 않다. 그래서 소식이 늦는 편이다. 그때 아한이 소리쳐 말했다.“성주께서 대야성을 함락시킨 1등 공을 세우셨소. 그래서 대왕께서 한솔로 관등을 올려주셨소!”
“만세!”
그 순간 두 손을 번쩍 쳐든 덕조가 소리쳤다.
“천세! 내가 그렇게 되실 줄 알았어!”
와락 다가선 덕조가 어깨를 부풀리면서 물었다.
“다들 무사하시오? 저기, 우리 아씨의…”
그때 호흡을 고른 아한의 시선이 고화에게로 옮겨졌다.
“대아찬 나리는 전사하셨소.”
덕조는 입만 딱 벌렸고 고화는 아한에게 시선을 준 채로 굳어졌다.”
“아이구머니!”
비명을 지르면서 주저앉은 것은 우덕이다. 땅바닥에 두 다리를 뻗은 채 주저앉아버린 우덕이 울부짖었다.
“우리 아씨는 어쩌라고 가셨단 말인가!”
마당이 숙연해졌고 우덕의 외침이 이어졌다.
“아씨를 살리시려고 나리께서 가셨구나!”
“……”
“아이고, 불쌍한 우리 나리!”
덕조도 숨을 멈춘 채 굳어졌고 아한은 물론이고 군사들도 석상처럼 말이 없다. 우덕의 외침이 마당을 다시 울린다.
“아이고, 나리! 아씨께 말 한마디 못해주시고 저 먼 곳에서 가셨구나!”
그때 정신을 차린 아한이 품에서 기름종이에 싼 편지를 꺼내 고화에게 두 손으로 내밀었다.
“아씨, 한솔께서 아씨께 드리는 편지올시다.”
방으로 돌아온 고화가 편지를 꺼내 펼쳤다. 밖에서는 우덕의 울음소리만 울릴 뿐 조용하다. 주인 계백이 대공(大功)을 세워 한솔로 승급이 되었지만 부인의 부친이 전사를 한 상황이다. 고화가 편지를 읽는다.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내가 안고 있었소.”
편지를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버님이 날 올려다보시면서 힘껏 싸우다가 죽는다고 하시며 웃었소.”
고화의 눈동자가 흐려졌다.
“내가 대아찬이라고 불렀더니 다르게 불러달라고 하셔서 장인어른이라고 불렀소.”
고화의 눈에서 처음으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러더니 나솔, 내 딸을 부탁하네, 하셔서 염려하지 마시고 떠나시라고 했소.”
고화가 짧게 흐느껴 울었다.
“그랬더니 사위, 자네를 믿는다고 하시길래 내가 아버님이라고 부르면서 끌어안았소.”
“아버지.”
고화가 편지를 쥐고 흐느꼈다.
“아버님께 극락으로 가시라고 했더니 내가 안심하고 가겠다고 하십디다. 그래서 내가 고화를 아끼고 살겠다고 했고 그 말을 들으신 아버님이 고맙다고 하시며 웃으셨소.”
고화가 머리를 들었다. 편지는 그것으로 끝났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