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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마을의 오래전 풍경

김은정 선임기자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은 관광객들이 가장 즐겨 찾는 명소다. 철길이 마을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철길 양옆으로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위치에 낡은 집들이 이어지는 기묘한 풍경 덕분이다. 철길마을은 경암동 페이퍼 코리아 공장과 군산역을 연결하는 총 연장 2.5km의 철로 주변에 형성되어 있는 마을을 이른다.

철길은 1944년 페이퍼 코리아의 전신인 북선제지 공장의 신문 용지 재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들어졌다. 1950년대 중반까지는 ‘ <북선 제지 철도> 로, 1970년대 초까지는 <고려 제지 철도> 로, 이후에는 <세대 제지선> 이나 <세풍 철도> 로 불리다가 세풍 그룹 부도로 새로운 업체가 인수한 후에는 <페이퍼 코리아선> 으로 불리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마을 또한 철길이 놓여진 1944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됐다고 하니 마을의 역사와 철길의 역사가 같다.

경암동 철길마을을 처음 가본 것은 15년 전이다. 지금은 사라진지 오래지만 그때는 오전과 오후, 입환열차라 하여 철길을 오가는 열차가 있었다. 입환열차는 화물을 수송하는 열차를 이른다. 철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집과 집 사이 거리는 불과 3.5미터. 기차는 이 사이에 끼어 겨우 통과했는데 그 풍경이 놀라웠다.

건물을 비집고 나온 구조물이 놓여 있을라치면 기차는 속도를 한껏 더 줄이고서야 그 구역을 통과했다. 그동안 기차 앞에 매달려 탄 안전요원들은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철길 양옆에 놓인 집기들을 치우고, 중간 중간에 트인 통로를 통제하느라 분주했다. 안전요원들이 깃발을 흔들거나 호각을 부는 것은 주민들의 주의를 일깨우기 위한 의례(?)였다. 총 연장 2.5km 중 사람의 걸음걸이와 거의 같은 속도로 운행해야만 하는 구간은 길게 잡아 500미터. 기차가 통과할 수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이 철길은 수십 년 동안 입환열차의 통로가 되었으니 철길을 지척에 두고 살아온 주민들에게 기차의 존재는 위험했으나 익숙한 일상이 된지 오래였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철길 옆 주택들은 철길이 만들어진 이후에 자리 잡은 손님(?)이었다. 합법적인 절차로도, 현실적인 여건으로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하는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오래전의 경암동 철길 마을 풍경이 가르쳐준 것이 있다.

서로에게 짐이 되지만 또한 서로가 양보하여 함께 존재한다는 것.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가능했을 그때의 풍경이 새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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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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