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시대를 이종(異種)의 결합, 하이브리드, 또는 융복합의 시대라고 표현한다. 어찌 보면 ‘전통’과는 정반대에 있는 개념처럼 여겨진다.
전통은 경계를 고수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고유성, 역사성을 본질로 하는 ‘전통’은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편견과 고정관념의 저항을 받게 된다. 그래서 전통을 두고 이종(異種)의 결합, 융복합의 행위를 대입하는 순간, 매우 까다로운 전문성과 완성도, 그리고 논리적인 해석을 요구받는 것이 아닌가 싶다. 거꾸로 얘기하면 그만큼 전통은 엄격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전통은 시대와 역사가 검증하고 인증한 결론이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전통을 소재로 하는 축제가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험과 도전을 좋아하는 젊은 전통 예술가들의 고민도 비슷하다.
전주세계소리축제가 바로 이 고민의 선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용감하게도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하고, 그것을 하나의 프로파간다(propaganda, 주장 등을 남에서 설명하여 동의를 구하는 것)로 삼는 것처럼 보인다.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전통의 속성 상, 소리축제는 하나의 모험이기도 하고, 반대로 새로운 전통을 세워가는 ‘미래의 표상’으로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도 한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전통은 도전했던 자들이 만든 역사이기도 하다. 한 예로 판소리다섯바탕을 정리한 신재효선생 역시 힘겨운 도전을 통해 다섯바탕의 전통을 세웠던 것이 아닌가 싶다. 전통은 흘러가는 것이지,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술은, 또는 예술가들은 모험가이자 탐험가의 본질을 타고난 존재라고 생각한다. 상대의 완결성에 도전하고 물음을 던지며 끊임없이 회의한다. 그리고 질투하고 시기하면서 새롭고도 보편적인 ‘자신의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예술의 역사는 그렇게 흘러왔고, 전통은 거기에서 파생된 하나의 ‘정형’이었다는 사실이다.
지금 소리축제의 실험과 도전은 한국 전통vs월드뮤직, 장르vs장르, 음악가vs음악가의 만남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완결성과 완성도를 놓고 논쟁이 일기도 하지만, 이 모험은 매우 귀하고 드문 과정이다.
올해 소리축제는 또 한 번 이종(異種)의 결합, 융합의 미학을 보여준다. ‘바람, 소리(wish on the winds)‘를 주제로 세계적인 관악기 명인들과 소리, 가곡, 춤이 어우러진다. 그리고 한국, 일본, 아르헨티나 연주자들이 각자의 전통을 들고 이색적인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미주, 유럽을 강타하며 젊은이들을 열광케 한 가장 서구적인 음악 ‘록’과 한국의 가장 전통적인 기악합주 ‘시나위’가 결합해 소리축제 표 ‘록&시나위’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인다.
소리축제 특유의 국내외 네트워크와 아티스트 풀을 총 동원해 올해도 눈에 띄는 기대작들을 선보일 계획이다.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그러나 최근 소리축제가 보여준 레거시(과거의 유산)를 통해 우리는 그 속에서 아티스트들의 흥분과 설렘, 영감을 얻는 과정이 매우 소중한 가치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결국 전통은 창작과 동떨어져 있을 수 없고, 어쩌면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수많은 무형의 가치와 의미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소리축제는 시사하고 있다.
이제 연속성과 지속성, 인내심이 남았다. 소리축제는 연속성과 지속성, 그 속에서 가치와 의미를 계속해서 프로파간다 하길 바란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소리축제가 걷는 이 길이 문화예술과 예술인들을 지원하는 훌륭한 동력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았으면 한다.
올해도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여정이 ‘미래의 새로운 전통’을 탐색하고 실험하는 장이었으면 한다. 고정관념과 편견의 저항을 달게 받고, 그것을 즐기는 축제이길 바란다.
/황철호 전북도 문화체육관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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