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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 은희진

김은정 선임기자

고향을 떠난 지 오래, 나이 쉰이 넘어 고향에 다시 돌아온 판소리꾼이 있었다. 전통판소리의 맥을 지키면서도 판소리가 바탕이 되는 창극 발전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었던 그는 남은 생애를 고향의 국악발전에 기꺼이 바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를 부른 것은 전북도립국악원이었다. 예술감독 겸 창극단장이 그에게 주어진 자리. 도립국악원 창극단은 변화의 물길을 열기 시작했다. 전통창극무대는 물론, 지역의 인물을 조명하는 창작창극을 만들어 관객들을 불러들였다. <비가비 명창 권삼득> <그리운 논개> 는 대표적인 무대였다. 그 스스로 작창을 맡은 이 무대들을 통해 관객들은 역사속 인물을 만나고 판소리의 시대적 변용에 더 새롭게 눈을 떴다.

“나 자신 스스로가 얼마나 치열하게 소리를 대하고 그 과정을 익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후진들에게 가장 큰 가르침”이라고 생각해온 그의 활약은 무대 위, 창극배우로서도 빛났다. 크고 작은 무대에 서는 것은 그가 후진들에게 주는 가장 좋은 가르침이었다.

깊고 중후한 저음과 탄탄한 수리성의 상청을 동시에 구사하는 소리색과 내면 묘사의 극적 표현력이 빼어난 소리꾼으로 평가 받았던 소리꾼. 지난 2000년에 세상을 떠난 은희진 명창(1947~2000)이다.

그는 정읍에서 태어났다. 열여섯 살, 그의 소리길을 열어준 스승은 박봉술 명창이었다. 남들보다 늦게 들어선 소리판에서 노력과 인내로 득음에의 공력을 치열하게 쏟아온 그는 77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한 이후 창극배우로 이름을 알렸다. <흥보전> <춘향전> <녹두장군> <명창 임방울> 등 전통창극과 창작창극 가릴 것 없이 주역으로 선 무대만도 수십 편. 연기력이 빼어났던 그는 창극을 통해 수많은 인물로 다시 태어나 관객들을 만나고 감동시켰다. 손꼽히는 창극배우로 주목 받으면서도 그는 득음을 위한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오정숙 명창으로부터 동초제 소리를 받아 여자명창 일색이던 동초제 맥의 한편을 엮어낸 그는 끝내 전주대사습놀이를 통해 전통판소리를 지켜가는 명창의 반열에도 올랐다.

갈래 많은 국악계에서 원만함과 따뜻한 성품으로 선후배간의 관계를 돋우어 내는데도 남달랐던 그는 갑작스럽게 신장암을 얻어 투병생활에 들어간 지 몇 개월 만에 쉰 세해 길지 않은 생애를 마감했다.

전주세계소리축제가 2일 개막했다. 6일까지 열리는 축제의 잔칫상이 풍성하다. 문득 그리운 소리꾼들이 적지 않다. 오늘의 소리축제를 있게 한 그들의 궤적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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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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