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전주박물관 역사실에는 64×40×42cm 크기의 검은색 나무 상자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투박하게 보이는 검은색 상자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정성껏 단단하게 만든 상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상자가 바닥에 바로 닿지 않도록 상자의 발인 족대足臺를 달아두었고, 상자를 구성하는 나무판들이 사이가 벌어지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각 면마다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의 감잡이를 3개씩 부착해 두었습니다. 한아름이 넘는 상자의 크기만큼이나 큰 물건을 보관하기 위한 상자였던지, 뚜껑과 몸체를 일반 경첩이 아닌 고리 모양의 경첩을 달려있으며, 뚜껑을 열었을 때 뚜껑을 안정적으로 받치기 위한 받침대가 있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상자의 양쪽 측면에는 활모양의 들쇠가 달려 있어, 상자를 종종 들어 올려 이동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상자 앞부분에는 ‘宣祖實□’, ‘第□櫃’라고 적힌 종이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종이 메모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상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상자입니다. 상자 크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왕조실록은 책 크기가 약 52×33cm 정도로 일반 서적보다 크기가 컸으며,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 최고급 종이를 사용했습니다. 최고급 종이로 만든 나라의 보물인 실록은 어떻게 상자 안에 담겨 있었을까요? 그 과정은 실록을 편찬하고 봉안하는 전 과정을 기록한 <실록청의궤> 에 잘 남아 있습니다. 그 과정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실록청의궤>
실록 상자는 천궁과 창포 가루 주머니를 상자의 바닥에 넣고 저주지楮注紙(닥나무로 만든 종이)로 덮는다. 실록은 홍정주紅鼎紬 4폭 보자기에 부록부터 권 번호 역순으로 넣어서 싼 후 저주지와 천궁, 창포 주머니를 넣고 상자를 닫는다. 상자에 담은 후 총재관總裁官이 자물쇠를 잠그고 이 자물쇠를 저주지로 봉하고 봉안한 날짜를 적는다. 자물쇠 열쇠도 저주지로 두르고 총재관이 착함하여 자물쇠 중간에 매단다.
<승정원일기> 의 “습기를 막는 데는 창포가루 만한 것이 없으니 실록이 지금까지 무탈한 것은 전적으로 창포가루 때문이다.”라는 기록처럼, 천궁과 창포는 방충, 방습 효과를 위한 것이고, 자물쇠와 열쇠를 종이로 봉안하는 것은 실록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역사를 공명정대하고 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해 왕조차도 보지 못하게 했을 정도로 보안에 철저했습니다. 승정원일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철종까지 472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인류 역사상 단일왕조 역사서로서 가장 규모가 큰 책입니다. 국립전주박물관 상설전시실 역사실에서 조선왕조실록을 품고 있었던 투박하게 보이지만 단단한 상자를 감상하며, 역사를 기록하여 후손에게 전하려 한 우리 선조들의 마음을 떠올려 보기 바랍니다.
/이기현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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