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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오은숙 소설가 - 백가흠 소설집 '힌트는 도련님'

백가흠 작가의 2011년 소설집 <힌트는 도련님> 을 읽은 것은 특정 상황이나 일상을 재현한 최근의 단편소설 몇 편을 읽은 후였다. 재현(再現)에 그쳤으나 틈 없이 치밀한 구성으로 사유를 끌어낸 것이 대단치 않은가, 하며 낯설게 하기와는 거리를 둔 작품들에 아쉬운 마음을 누르던 때였다. 그런 까닭에 백가흠 작가의 단편집에 실린 소설이 지닌 낯선 풍경이 새로웠다. 각각의 이야기 자체는 익숙한 것이었으나 인물과 공간이 조화를 이루면서 소설적 분위기를 낯설게 만들었다고 해야 할까.

‘한 달 전, 림혜숙이 어린 딸과 함께 감쪽같이 사라졌다.’로 시작하는 <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 가 대표적일 수 있겠다. 실종 신고를 하고 림혜숙을 찾아다니던 농장주 김 씨의 애타는 마음과 달리 마을 안에 퍼진 또 다른 소문. p.20 ‘약국 문을 닫는 것은 완고했던 자존심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황 약사는 생각했다. 흘깃 약국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많았지만, 누구 하나 선뜻 약국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했다.’에서 나타나듯 확인되지 않은 소문은 부풀려지고 당사자를 고립시키면서 끝까지 살아남는다. 알음알음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 누구도 소문의 진실 여부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얼마나 익숙한 이야기인가.

<그런, 근원> 은 5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로 인해 가족 해체를 겪게 되는 형제의 이야기를 다뤘다. 80년대 5월, 전라도가 배경인 작품이어서 그런지 p.40 ‘누구도 아버지가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까닭이었다.’는 문장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법부터 배운 동생 근본과 숙명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근원의 서로 다른 삶은 개인을 넘어 특정 시대의 아픔으로 다가왔다. 어린 근본과 근원을 찾은 친척들. p.41 ‘그들은 집에 쌀을 놓고 갈 때마다 개가한 어머니를 욕하느라 아이들의 안부나 필요한 것들을 물을 새가 없었다.’ 시대가 어떻든 아이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어른들이다. 장소와 인물, 묘사와 행간의 조화로 인한 것일까. 후일담으로 그칠 수 있는 이야기가 한의 정서로 남아 아프고 또 아팠다.

작가를 연상시키는 ‘백’이라는 인물이 나오는 <그래서> , <힌트는 도련님> ,

에서는 문학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소설 쓰는 과정과 고통 등을 담아냈다.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풀었다는 생각이다. p.123 <힌트는 도련님> ‘모던하고자 하는 나는, 현실의 나와 가장 가까운 백 도령과 손을 잡고 자꾸 서사를 꿈꾸는 나를 몰아낸다.’고 작가는 썼지만 나는 그가 구성에 있어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서사의 힘으로 작품을 썼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고 나면 이야기보다 이미지가 주로 남아 독서 방법에 문제가 있나 생각했던 내게 잠시나마 이야기를 기억하는 기쁨을 주었다.

<그때 낙타가 돌아왔다> , <통(痛)> , <쁘이거나 쯔이거나> 를 읽으면서는 인간이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결핍과 욕망,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더불어, 작가가 나고 자란 곳에 대한 애정이 상당했고 단편집을 출간할 당시 그런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책을 처음 잡았을 때 하드커버의 딱딱함과 그것을 싸고 있는 겉표지의 부드러움을 먼저 느꼈다. 그렇게 집어 든 책은 무거운 것 같으면서도 가벼웠다. 소설집 안에 실린 소설처럼 엉성하지도 촘촘하지도 않은 적당한 구성과 문장이 준 무게감을 닮았다. 너무 낯설지도 너무 익숙하지도 않은 인물과 공간 또한 그와 같은 무게감이었다. 책에서 받은 지극히 주관적인 무게감은 그러나 문학을 향유하기에 충분했다. 백가흠 작가의 단편소설집 <힌트는 도련님> 은 무겁거나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지만 어쨌든 기분 좋게 돌아오는 휴가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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