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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의 미술이야기] 윤철규 작가의 ‘노랑 다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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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규 작가 작품/사진=이승우 작가 제공

전주시 서학동에 소재한 서학예술마을 도서관 전시실에서는 지금 윤철규 전이 열리고 있다.

그 건물의 입구가 따로 있을 텐데도 나는 그 조그만 전시실을 찾을 때마다 옆에 있는 교대부속초등학교의 주차장에 차를 놓고 들어갔기 때문에 정식 입구는 아직 모르고 있다.

주차장에서 아담한 전시실을 바라보며 걸어가자니 열어진 문 사이로 반가운 동료 여류화가들의 미소 띈 얼굴들이 보이고 그 뒤로는 작가의 반가운 그림들이 보였다.

우리나라 화가들 대부분이 생계형 화가이겠지만 윤철규 작가도 그중 하나이다.

따지고 보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미술품 유통이 잘되지 않는 지역작가로서 그래도 붓을 놓지 않고 그림에 매진한다는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며, 어떻게 보면 대단한 자신감의 표출이다.

그림의 유통과는 관계없이 그림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답게 문명인의 삶을 영위해 가고 있는 것이어서 고도의 인문학 지대를 살아가는 사람임을 자각하고 있다.

유철규 작가는 좋은 소재를 찾아 명승지를 찾아다닌다거나, 고급스러운 소재를 다시 발견하려고 하지 않고, 억지스러운 소재를 찾아 억지로 뽐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주위에 흔히 있는 것들을 남보다 세련된 애정을 갖고 그려내는 것이다. 짜장면을 그리고 호빵과 라면을 그린다. 동네 강아지를 그리고 옆에 사는 꼬맹이를 그린다. 이제는 훌쩍 커버린 혼자 키우는 아들과 이제 연로해진 아버지를 그린다. 소줏잔을 털어 넣는 자신의 헝클어진 모습을 그린다.

언제든지 애정 그윽한 마음만 있으면 다가갈 수 있는 온갖 것들을 그린다. 동식물도 말이 없고 천진한 꼬맹이는 표현이 서툴다. 눈여겨보고 있자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윤 작가의 그림이다.

내 마음을 투영시키는데 상대가 너무 자아를 뽐내면 잘되지 않는다. 상대의 주관을 바라보기보다는 이미 객관화되어 아무 감흥도 일어나지 못할 대상을 즐겨 그린다.

그는 진정한 "만남"이 무엇인가를 깨우친 것이다. 서로의 주체가 각자 주체를 고집하면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체가 주체의 주체를 버리고, 객체도 객체의 주체를 버렸을 때 비로소 진정한 만남은 가능하다. 윤철규 작가, 그는 만남마다 진정성을 원하는 것이다.

내가 전시장을 좀 늦게 찾은 탓에 각종 매체에 소개된 그의 그림들을 먼저 보며 왜 이렇게 그림들이 누르스름한가 하고 생각했다. 평소에 잘 쓰지 않았던 색들이 조금 생소했다.

그러나 직접 본 그의 그림에서의 노란색은 훨씬 변화에 의한 움직임이 많아서 지루하지 않았고 한마디로 델리케이트(delicate)했다.

그는 노랑을 희망이라 해석했다. 희망이 노랑이든 초록이든 간에 시빗거리는 되지 않았다. 그가 의도한 것이 희망이었으니까.

잠깐 웃는 일도 생겼다. 나보다 조금 먼저 와있던 여류화가 둘이 호빵 그림을 보며, "요것은 팥이 들어간 앙꼬 빵이고, 저것은 야채가 들어간 호빵이라며, 세상에서 제일 비싼 호빵일 것이라며 깔깔거렸다. 과연 다시 보니 그들 말이 맞았다.

그 미세한 표현까지를 담아냈던 것을 보며, 초현실주의 작가 마그리트가 그린 파이프란 그림이 생각났다.

누가 봐도 파이프를 그려 넣고, 그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고 써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빵을 그린 사람은 마그리트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윤철규다. 윤철규의 그림이다. 다만 마그리트가 초현실이라는 예술론을 내세웠듯이 윤철규는 먹을 것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을 내세웠다.

그리고 가장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철학이나 예술론은 소박한 기본 명제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리라.

윤철규 그는 어려운 철학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페스탈로치처럼 또는 자연주의 화가였던 토로처럼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한 애정으로 오늘도 붓을 드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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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동 #윤철규 #노랑 #봄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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