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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을 인물 열전] 23. 진안군 동향면 - 구용담 3대 명당 중 능길마을 으뜸…정계 큰 인물 자랑

동향면(銅鄕面)은 진안군 11개 읍면 중 가장 동단에 위치한다. 국사봉과 문필봉 등 해발 500m 전후의 산들이 고을 중심 평야부를 둘러싸고 있는 형국의 산골이다. 동향면 동편에 덕유산 자락이 남북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데, 동향의 동쪽에 인접한 고을이 무주군 안성면이고, 남쪽으로 접한 곳이 장수군 계북면이다. 동향면 북단에 안천면, 남단에 상전면과 용담호가 소재한다. 산골마을이지만 교통이 사통팔달, 인접한 대전~통영고속도로를 통해 2시간 남짓이면 수도권과 남해안권에 진입한다. 동향면의 생명수는 동에서 서로 흐르는 구량천과 양악천 두 개의 하천에서 공급된다. 구량천은 무주군 안성면의 동쪽 덕유산 자락에서 발원, 안성면소재지를 관통해 동향면 북단에 자리잡고 있는 봉화산과 국사봉에서 흘러내리는 계곡 지류들을 모아 동향면 능금리, 대량리, 성산리를 거쳐 용담호로 흘러든다. 성산리를 빠져나간 구량천은 상전면 수동리에 이르러 장수군 수분재에서 발원해 뻗어내려온 금강과 합류한다. 양악천은 장수군 계북면 양악리 덕유산 토옥동계곡에서부터 흘러 나온 하천이다. 지방도 635호선과 나란히 길동무하며 대량리에서 구량천에 합수한다. 면적 52.83㎢, 인구 1873명인 동향면은 과거에 용담군 일동면과 이동면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될 때 진안군 동향면이란 행정명이 정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 동향면이란 이름이 붙게 된 것은 (銅鄕所)란 명칭 때문이라고 알려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전라도 용담현 고적(古跡)조에 따르면 동향면은 고려시대 구리(銅)라는 특정 공납품을 생산했던 특수행정구역인 동향소(銅鄕所)가 있던 고장이다. 이와 관련 학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기울여 왔는데, 동향면 대량리 창촌마을 지역에 다량 노출돼 있는 구리 유적 발굴 조사가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진행됐다. 창촌마을에 노출돼 있는 구리 제련 부산물인 슬래그에 대한 시굴조사 결과가 나오면 고려시대는 물론 고대사회 구리 생산과 관련된 유적의 존재가 개략적으로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용담향교 성수태 전교(전 진안군의원)에 따르면 창촌 일대에 구리 제련 흔적인 쇠똥(슬러그)이 많았다고 한다. 문필봉에 구리 광산이 있었는데 20년 전 사고로 1명이 사망하면서 폐광됐다. 구리 광산이 있었다고 해서 구릿골이라는 얘기가 있는 반면 동향면 일대의 명승지 9곳을 이르러 구량(九良)이라고 불렀는데, 이게 구리향, 구릿골로 불리게 된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구량은 문필봉, 명경대, 사미대, 주옥봉 등을 일컫는다고 한다. 동향에는 보물 제746호 성석린좌명공신왕지(成石璘佐命功臣王旨), 지선당, 용담향교 등 문화재가 있다. 동향면 대량리 창녕성씨 종중이 소장하고 있는 성석린좌명공신왕지는 조선 태종 2년(1402)에 방간의 난을 평정하고 태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로로 익대좌명삼등공신(翊戴佐明三等功臣)이 된 창녕부원군(昌寧府院君) 성석린(13381423)에게 내려진 태종의 왕지다. 창녕성씨가 동향에 정착하게 된 것은 단종에 충성을 다한 사육신 성삼문과 관계 있다고 한다. 단종을 폐하고 왕권을 차지한 세조에 의해 희생된 성삼문의 후손들이 참화를 피해 이곳에 둥지를 튼 것이다. 용담향교는 1391년(공양왕 3)경에 현령 최자비가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지만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 이후 1664년(현종 5) 현령 홍석(洪錫)이 자리를 용담현으로 옮겨 중건했는데, 1998년 용담향교 일대가 용담댐 수몰지역이 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돌아왔다고 한다. 지선당은 동향면 능금리에 있는 서당이다. 조선 중기 왜란을 피해 금산에서 이주 정착한 덕은당 박지영이 문중 자제와 지방 후학들을 위해 세웠다. 영조 48년(1772)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서당은 교육을 중시한 선인의 지혜를 오롯이 보여준다. 동향 사람들은 2009년부터 매년 8월 초 동향 한여름밤수박축제를 열어 당도 높은 동향수박맛을 자랑한다. 이 지역에서는 수박과 자두, 고추농사가 많고, 한우도 유명한데 24농가가 동향한우 작목반에 참여하고 있다. 진안 용담 일대에서는 풍수지리적으로 최고의 명당이 있다는 말이 전해진다. 성태조 진안군노인회 부회장(84)은 구용담 3대 명당 중 으뜸이 우리 동향면 능길이고, 두 번째가 주천면 주지내, 세 번째가 안천면 보안이다. 보안은 용담댐이 만들어지면서 수몰됐다고 말했다. 성태조 부회장은 실제로 능길에서는 정세균 국회의장 등 인물이 많이 났다. 터가 좋다.고 말했다. △정계 동향 토박이로서 동향면장을 14년이나 역임한 성태조 부회장은 정세균 의장은 장수 명덕리에서 태어났지만 강보에 싸인 채 아버지 품에 안겨 능금리로 이사왔다. 어려서부터 똑똑했는데, 동향국민학교 6학년 때 웅변대회에서 열변을 토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크게 될 아이라고 입을 모았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능금리는 정세균 국회의장 외에 변호사 출신인 국회의원 안호영(52, 완주진무장)도 배출했다, 능금리 출신 사시합격자는 안호영 외에 대표적 노동변호사로 알려진 김선수 변호사(57, 법무법인 시민)도 있다. 김선수 변호사는 동향초등학교, 서울 우신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제27회 사법시험에 수석합격한 그는 1988년부터 노동자를 위한 변론의 길을 걸었다. 지난해 대법관 후보에도 올랐던 그는 국회 헌법개정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진웅씨(52)는 경기도의원 재선을 했고, 박수우(38) 진안청년귀농귀촌센터장은 진안군수 선거전에 출사표를 냈다. △관계 대량리 출신의 이기선씨는 전북도 자치행정국장(63)을 역임했고, 이명노씨는 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 성균호씨(88)는 정주부시장을 지냈다. 이선노씨는 남원경찰서장과 진안경찰서장 등을 지냈다. △경제계 경기도 안양 김형근예병원의 김형근 이사장, 위더스제약 성대영 대표, 원광대 부속 장흥 통합의료한방병원 성강경 원장, CK전자 성이경 대표, 농협진안군지부 김형만 지부장 등도 동향면이 고향이다. △교육문화예술계 전주국제사진제 총감독을 지낸 성남훈(55) 사진작가는 대량리가 고향이다. 성남훈 작가는 제52회 세계보도사진(WPP) 인물사진 싱글부문 3위, 월드프레스포토상 등을 수상했다. 최근 제8회 일우사진상 올해의 특별한 작가 다큐멘터리 부문을 수상한 성 작가는 지난달 22일부터 오는 25일까지 서울 중구 일우스페이스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 기획
  • 김재호
  • 2018.04.16 19:41

[우리고을 인물 열전 22. 고창군 성내면] 일제 강점기 수많은 독립운동가 배출한 충효의 고장

성내면(星內面)은 고창군의 동북 끝에 위치한 고을이다. 성내면을 둘러싸고 있는 고을은 동쪽 정읍시 소성면, 서쪽 고창군 흥덕면, 남쪽 고창군 신림면, 북쪽 정읍시 고부면이다. 백제시대에는 상칠현(上漆縣,) 고려시대에는 흥덕현(興德縣)에 속했다. 조선시대에 흥덕현 이동면(二東面)이었던 것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고창군 성내면이 되었다. 성내면 면적은 고창군 전체의 5.1%인 30.84㎢이다. 이 중 논이 8.7㎢, 밭이 6.14㎢이다. 이는 성내면 전체 면적의 28.25%, 19.9%인데, 고창군 전체 논과 밭 면적 비율인 23.5%, 15%보다 높다. 성내면 바깥으로는 선운산, 두승산, 방장산 등 유명산이 솟아 있지만 정작 성내면 관할에는 높고 큰 산이 없어 임야는 전체 면적의 29.2%인 9.01㎢에 불과하다. 이처럼 논밭이 많고, 임야가 적은 것은 구릉성 산지를 따라 생긴 소하천(소성천, 용교천) 주변으로 범람에 따른 퇴적지형 발달했고, 이를 대대손손 논밭으로 개간했기 때문이다. 조상들이 물려준 비옥한 옥토에서 주민들은 요즘 복분자와 스테비아수박을 생산하며 농촌의 풍요로움을 지켜가고 있다. 인구는 1,206세대에 2,278명이다. 법정리는 덕산리, 부덕리, 신성리, 조동리, 동산리, 월성리, 옥제리, 월산리, 양계리, 대흥리, 산림리, 신대리, 용교리 등 13개이고, 30개의 행정리가 있다. 옛 한양 사람들이 어린아이를 달랠 때 불렀다는 동요 이 발로 구름산을 밟아서 영광군수로 가려느냐 안악군수로 가려느냐가 전하는 데 동요에 등장하는 구름산은 성내면 소재지가 위치하는 양계리의 운등산(雲嶝山, 해발 48.2m)이다. 지금은 4차선으로 넓게 개설된 국도 22호선이 옛날에는 운등산 중심을 지났다. 이 운등산 길을 지나야 전남 영광으로 갈 수 있었다. 운등산처럼 성내면의 산은 높지 않다. 덕산리 도덕마을 뒷산인 백갑산은 62m, 신성리와 조동리의 분수령을 이루는 고암산은 75.3m다. 성내면 동산리와 흥덕면 석우리가 경계하는 지점에 있는 동림저수지는 1935년에 준공됐다. 면적은 3.82㎢이다. 동남쪽이 높고 서북쪽이 낮은 성내면의 지형 때문에 하천 물이 북쪽이나 서북쪽으로 흐른다. 이 일대에서 가장 큰 동림저수지가 성내면의 서쪽에 위치하는 이유다. 겨울철이면 동림저수지의 풍부한 먹잇감을 찾아 진객 가창오리가 떼지어 찾는다. 성내면에서 풍수적 명당 이야기가 전하는 대표적인 곳은 신성리 칠성마을이다. 조선 태조 육대손 정략장군 이현이 1506년 중종반정에 따른 불안정국을 피해 흥덕현 사포에서 살았는데, 1556년 무렵에 현의 손자 뇌(천문지리에 능통)가 풍수지리를 따져 칠성동에 터를 잡아 영구 안착했다고 한다. 칠성마을은 배산임수(背山臨水)형, 전착후광(前窄後廣)형, 보검출갑(寶劍出匣)형이다. 보검이 한 번 갑 속에서 나오면 간사함을 진압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듯, 이 터는 천하를 재단하는 위대한 인물이 탄생하는 명당이라고 한다. 실제로 칠성을 비롯, 성내면에서는 걸출한 인물들이 배출됐다. 성내면에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적지 않다. 조선 후기 호남을 대표하는 유학자 이재 황윤석(黃胤錫, 17291791) 선생이 10세 때부터 쓴 6000여 장 분량의 일기 이재난고((?齋亂藁)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1호이고, 그의 생가는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25호다.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정치인 백관수 고택(전라북도 기념물 제90호), 백관수 선생이 지인들과 함께 항일독립투쟁을 위해 만든 흥동장학당(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40호) 등이 있다. △독립운동가 100년 전 나라를 잃었을 때 성내면 사람들은 독립을 위해 음으로 양으로 뛰었다. 월산리 출신 고제만(1860~1942) 이종주(1901~1921), 대흥리 출신 노병희(1850~1918) 노진룡(1894~1950), 덕산리 출신 백인수(1856~1910), 백관수(1889~?) 비롯해 유판술, 이석열, 이종택, 황종관, 고치범 등 다수의 독립운동가들이 활약했다. 대부분 그 공적이 인정돼 건국훈장 애국장 등을 서훈받았다. △정계 덕산리 도덕마을 출신인 근촌 백관수 전 국회의원은 5세 때부터 간재 전우(田愚) 문하에서 한학을, 15세(1905년) 때 군산 금호학교에서 신학문을 수학했다. 김성수 송진우와 막역했고, 월남 이상재 선생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동경 유학시절 2.8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등 민족의식과 리더십이 뛰어났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 언론인으로 일할 때는 일제의 언론탄압에 맞섰고, 1948년 5월10일 제헌국회의원(고창)에 당선됐다. 61세 때인 1950년 인민군에 납북됐다. 이호종 전 고창군수(1929~2014)는 신성리에서 태어났다. 경기중고, 고려대를 졸업했다. 6.25전쟁 때 전공을 세워 충무무공훈장 등을 받았다. 제10대 국회의원, 대한체육회 사무총장과 부회장을 역임했다. 민선군수(1995~2002)로 일하며 고창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동산리 출신 김주섭씨(78)는 국무총리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냈고, 대흥리 노용수(54)씨는 제6대 경기도의회 의원을 지냈다. △관계 이연택(1936~ ) 전 장관은 산림리 출신이다. 전주고와 단국대를 졸업했다. 총무처장관(90년)과 노동부장관(92년),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대한체육회장, 재경 전북도민회장 등을 지냈다. 새만금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2017년 10월 국무총리실 출신 전현직 공직자 모임인 국총회 회장에 선출됐다. 산림리 출신 이길연씨(86)는 전북부지사, 이윤갑씨(86)는 고창군수를 지냈다. 역시 산림리 출신 박문재씨는 서울시 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대흥리 출신 노병일씨는 남원시장을 역임했고, 정읍시청 미래전략사업단 노영일 단장은 신대리 출신이다. 광주전주 세무서장을 지낸 이명희씨(69)와 원주세무서장 이준희씨(53)는 옥제리가 고향이다. 성내면장을 지낸 인물은 이맹근(양계리), 이권수(월산리), 고양규오병용씨(용교리) 등이다. △교육계 조동리에서 태어나 살았던 이재 황윤석 선생은 조선 후기 호남을 대표하는 학자였다. 목천현감 등을 지냈다. 양계리 이승영씨는 민선 교육감을 지냈고, 동산리 출신 김규태씨는 교육부 정책담당관을 지냈다. 국방대학원 교수를 지낸 정치학박사 황병무씨(79),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을 지낸 정치학박사 황병덕씨(65), 고려대 교수를 지낸 농학박사 황병국씨(71) 등은 조동리 출신이다. 부덕리 백원철(공주대), 동산리 윤희중(목원대), 박근원(신학대 총장) 등도 교수를 지냈다. 전북대 작물생물학과 윤성중 교수도 동산리 출신이다. △경제계 (주)잔디로 노진구 대표는 대흥리가 고향이고, 현대건설 김종택 상무이사는 동산리 출신이다.옥제리 출신 이종숙씨(60)는 전국마을버스연합회장을 지낸 운수사업가이고, 한국농어촌공사 고창지사 황철구지사장은 신대리 출신이다. △문화예술계 중요무형문화재 제110호 윤도장 보유자 김종대의 고향은 산림리 낙산이고, 왼손 악필로 유명한 서예가 석전 황욱의 고향은 조동리다. 석전의 아들 황병근(84)은 초대 전북국악원장, 도의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성균관 유도회 전북본부 회장이다. 한문학자인 죽강 남대희(89)의 고향은 월산리다. 조선후기 판소리 명창으로 활동한 김수영의 고향이 옥제리이고,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은 여류 명창 김여란도 성내가 고향이다. △군경 및 법조계 육사 출신 김재옥 대령은 산림리, 김영훈 대령은 동산리가 고향이다. 경찰청 이용석 총경은 덕산리 출신이다. 법무법인 정 소속 이현웅 변호사(48)는 옥제리다.

  • 기획
  • 김재호
  • 2018.03.20 20:10

[우리고을 인물 열전 21. 완주군 구이면] 명산 둘러싸인 넉넉한 자연 자양분…문화예술 분야 탁월

등산과 저수지 주변 산책을 편리하게 할 수 있는 곳. 새처럼 하늘을 날아보고 싶다면 실제로 활공의 짜릿함을 즐길 수 있는 곳. 나룻배를 타고 가족과 친구, 연인이 호수의 낭만을 느낄 수 있는 곳. 바로 완주군 구이면이다.전주시 남쪽 평화동에서 남방 6㎞ 거리에 위치한 완주군 구이면은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산골이다. 구이면 원기리 면사무소(구이로 1482번지)를 중심으로 볼 때 그 동북쪽에 해발 604m 높이의 고덕산이 위치하고, 동쪽에는 경각산(659m) 우뚝 솟아 있다. 서쪽에는 해발 794m의 모악산이 병풍처럼 기다랗게 둘러쳐 있고, 그 아래 서남쪽에는 국사봉, 남쪽에는 513m 높이의 오봉산이 자리한다. 하나같이 오래 전부터 뭇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유명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구이면은 남북이 유난히 길다. 길게 늘어뜨린 수제비 형상이다. 북쪽의 전주에서 뻗어나와 임실 운암과 강진을 거쳐 순창으로 이어지는 국도 27호선이 시원하게 뚫려 있다. 구이면의 중심 생명선인 이 도로를 중심으로 두현리, 원기리, 항가리, 계곡리, 백여리 마을이 몰려 있다.지리적 형세가 이렇다보니 전체 면적 89.8㎢ 중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답(5.77㎢)과 전(4.59㎢)보다 임야(68.84㎢)가 훨씬 많다. 과거 농사가 산업의 중심이던 시절에는 주민들의 삶이 힘들었을 것이다.하지만 최근 국민소득 3만달러에 진입했다고 할 만큼 국민 삶이 나아지면서 구이면의 면모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귀농귀촌인이 늘어나면서 완주군 전체 13개 읍면 중 구이면 인구가 봉동, 이서, 삼례, 용진, 소양 다음으로 많을 정도가 됐다.구이면이 전원생활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전주에 인접한데다 호남고속도로와 완주순천 고속도로로 이어지는 자동차전용도로가 사통팔달 뻗어 있는 편리한 교통, 그리고 모악산과 경각산, 오봉산 등에 둘러싸여 경치 좋고 공기 청정하기 때문이다. 최근엔 상관 편백숲에 뒤질세라 광곡리 너브실 편백숲을 개발했다.이런 연유 등으로 20년 전부터 모악산 아래 예술인마을이 조성되더니, 5년 전 완주군이 분양한 구이저수지 변 전원주택단지 모악호수마을이 인기리에 조성됐다. 구이가 젊어지면서 오카리나, 서각, 풍물 등을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생활문화센터도 인기라고 한다. 이 때문에 땅값이 상승한 것은 문제지만, 완주군의 투자도 그만큼 더해지고 있다.김동준 구이면장은 면소재지에서 두현리, 덕천리, 술테마박물관을 거쳐 항가리 망산마을까지 이어지는 8.8㎞(4시간 거리)의 구이저수지 둘레길과 무동력 수상레포츠공원이 내년 완공 예정이라며 모악산 한 해 등산객 130만 명이 구이에서 충분히 쉬면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관광지 조성 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고 소개했다.항가리평촌리광곡리덕천리두현리원기리계곡리백여리안덕리 등 9개 법정리가 있고, 대원사 용각부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 남계정(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4호), 경복사지(전라북도 기념물 제108호) 등의 유물유적이 있다.△정관계임방현(88) 전 국회의원은 덕천리 칠암이 고향이다. 그는 조선일보 기자,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지낸 언론인 출신으로 청와대 대변인을 거쳐 제1112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으로 활동했다. 대륙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인 황태청씨(82)는 덕천리 지등 출신이다. 공직 시절에는 특허청 국장을 지냈다,임정엽 전 완주군수는 덕천리 청명이 고향이다. 임씨는 전북도의원, 유종근도지사 비서실장, 김대중 정부 청와대 행정관 등을 거쳐 완주군수를 두 번 지냈다.이돈승 전 청와대 행정관은 항가리 원항가 출신이다. 그는 총선과 단체장 선거에 잇따라 출마하기도 했다. 정성모 완주군의회 의장과 김영석 전 완주군의회 의장은 모두 백여리 출신이다.△군경경찰청장 출신의 이수일 전 국정원 3차장은 항가리가 고향이다. 전북지방경찰청장을 지낸 이용상씨는 평촌리 원평촌, 전주덕진경찰서장을 지낸 이상선 변호사는 안덕리 출신이다.△법조계이임생 전 광주고법 부장판사는 평촌리 원평촌이 고향이고, 강성대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판사는 백여리 상용, 이혜미 법무부 검사는 안덕리 장파, 이혜진 서울 북부지검 검사는 항가리 원항가가 고향이다.△경제계유기정 전 삼화출판사 회장은 광곡리 신원이 고향으로 알려진다. 제8910대 국회의원(민주공화당)을 지냈고, 중소기업중앙회장과 세계중소기업연맹 총재를 역임했다. 구이면 광곡리 천수답 주민들의 평생 숙원이던 광곡제를 건립했다. 이에 주민들이 공적비를 세워 고마움을 표했다.이창승 전주 르윈호텔 회장은 항가리가 고향이다. 코아백화점과 코아호텔, 우성종합건설, 전북중앙신문 등을 경영했다. 지방자치가 본격 시작된 1995년 전주시장에 출마해 당선, 한 때 시정을 이끌기도 했다.△교육문화예술언론대한민국 시조창 정가 전통을 이끌고 있는 지봉 임산본씨(86)의 고향이 항가리 신기다. 임씨는 1952년 전주시우회에서 김병익에게 시조창을 사사했으며, 석암 정경태에게 완제시조창의 본령을 배웠다. 부산시조경창대회와 대한시우회 명창부 1등, 전주대사습놀이 시조부 장원, 백제문화제 시조경창대회 대통령상 등을 수상했으며, 지난 1996년 전북도지정 무형문화재 제14-1호로 지정받았다. 현재 (사)정가보존회 이사장을 맡아 지난해 제10회 전국정가경창대회를 개최했다.2014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9호 소목장(목가구)으로 지정된 천철석씨(59)는 두현리가 고향이다. 천씨는 완주 용진 출신의 당대 최고 소목장 조석진씨로부터 전통 짜맞춤 가구의 정수를 전수받았다. 판소리판의 고수 명인 오태근씨(70)는 평촌리 상하보가 고향이다.최근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서예가 백종희씨는 안덕리 출신이고, 전북도민일보 임환 사장은 항가리 신기, 전북일보 권순택 국장은 덕천리 지등, KBS 전주방송총국 함윤호 아나운서는 추동마을이 고향이다. 구이면에 둥지를 틀고 활동하는 대표적 문화예술인 및 장인은 서양화가 유휴열, 판소리 조소녀, 송화백일주 제조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조영귀 등이 있다.

  • 기획
  • 김재호
  • 2018.02.21 23:02

[우리고을 인물 열전 20. 임실군 오수면] - 조선시대 교통·상업 중심지, 실력·인품 겸비한 인물 많이 나

오수면(獒樹面)은 임실의 남쪽 끝, 남원과의 경계에 위치한다. 주변으로 멀리 팔공산 등이 둘러싸고 있는 해발 130m의 장방형 분지이며, 남북의 길이는 12㎞ 정도이다.소설가 최명희는 혼불에서 오수에 대한 소개를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남원도호부로부터 서울까지의 거리는 655리인데 걸어서 이레하고 반 날이 걸리느니라고 하였다. 그래서 철도가 생기기 전, 멀리 한양길을 떠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괴나리봇짐을 등에 메고, 몇 켤레의 짚신을 갈아 신으며,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여 걷고 걸었던 것이다. (중략) 전라도 길은 섬진강의 유역을 따라 남원을 거쳐서 전주를 지나고 공주로 접어들어 서울로 가는데, 비교적 순탄한 길이라, 한양에서 뻗은 팔도 길을 통틀어 말할 때, 남원을 통하는 전라도 길이 가장 부드러운 길이라고 일컬어 말했다. (중략) 예전에는 이런 길목의 요소마다 찰방(察訪)이 있었고, 찰방이 있는 곳을 역(驛)이라 하였다. 찰방은 조선시대 각 도의 역참을 관리하던 종6품의 외관직으로(중략) 이들은 역승의 잘잘못을 규찰하거나 주군수령의 탐학과 민간의 고통을 살펴서 엄히 다스리는 것이 주임무였다. (중략) 찰방이 있는 곳은 한양으로부터 그 고을에 들어가는 첫 머리 초입에 위치하고 있었으니, 세상 돌아가는 일과 시정의 소식에 빨랐다. 그래서 장사하는 시정아치들이 사방에서 모여들고, 물산의 교류가 저절로 이루어져 큰 장이 서게 되었다. (중략) 조선시대 남원진도호부의 찰방은 오수역에 주둔하고 있었다. 한양에서 남쪽으로 내려올 때 남원진의 입구는 오수였던 것이다. 이 오수역에는 역사와 찰방의 관사, 그리고 역의 소유인 둔전이 있고, 역마 스물일곱 필이 역졸과 함께 항상 대비되어 있었다. (중략) 오수 찰방이 관할하는 곳은 11역, 15원이었다. 오수역 찰방은 모두 스물여섯 군데나 맡아 관장하였던 것이다. 매안에서 오수역까지는 시오리 길이요, 남원 읍내까지는 삼십 리 길이었다.남원의 입구 오수역은 관리들이 역졸을 부려 관물을 운송하고, 공문서를 전달하는 통로였다. 관리와 일반 길손들이 역과 원 등에 머물고 숙박했다. 장이 서는 등 사람들이 항상 붐비는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 핫 플레이스였다. 지금도 오수 지역은 전주~남원간 자동차전용도로, 익산~순천 고속도로, 전라선 철도가 통과한다.오수지역은 동쪽과 서쪽이 높은 산이고, 남과 북은 터진 형세를 하고 있다. 장수군 산서지역에서 발원하는 오수천은 지사면 들판을 거쳐 오수를 통과하면서 율천의 물을 합수하고, 순창군 동계면에 이르러서 섬진강에 합류, 전남 곡성과 구례, 경남 하동을 거쳐 남해로 빠져 나간다.오수면 지역은 고려시대 남원부(南原府) 둔남방(屯南坊)에 속했다. 조선시대에는 둔덕방(屯德坊)과 남면으로 분리되었고,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개편 때 다시 통합되면서 둔남면(屯南面)으로 개칭됐다. 이때 남원군 덕과면 오수리와 대명리 일부가 둔남면으로 편입되었다. 또 1983년 2월 16일 조정 때에는 남원군 덕과면 금암리가 편입됐다. 14개 법정리, 32개 행정리가 있다.고려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둔남이란 지역 명칭은 아쉽게도 주인을 살린 의로운 개(義犬) 캐릭터를 내세우자는 지역 여론 속에서 1992년 8월 10일 오수면(獒樹面)으로 변경됐다. 임실군은 오수에 의견공원을 만들어 지역발전을 모색하고 있다.오수면 금암리 오수의견공원 일대에 건설 중인전라북도 양궁 전용경기장이 오는 6월 완공 예정이다. 98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전북도 양궁장은 오수 의견관광지 부지 9만2천400㎡에 세워지는데, 전북도는 1단계로 45억 원을 들여 전용 훈련장을 건설하고 2단계로 53억 원을 추가해 전용 양궁장으로 확대할 계획이다.오수면은 인근 삼계면과 지사면, 장수군 산서면과 함께 인물의 고장으로 이름이 높다. 500년 종가 이웅재 고가가 소재하는 둔덕리 일대(일명 둔데기 마을)에 남원 5현이라고 불린 폄재 최온(영의정 최항의 후손, 인조의 아들 인평대군 강학을 맡은 인물) 선생을 비롯해 이대윤, 최상중, 이상형, 하만리 등 실력과 인품, 의를 겸비한 인물이 많이 났다. 옛날에는 남원 인물의 반은 둔데기에서 난다고 할 정도였다.오수 사람들은 임진왜란, 정유재란, 일제강점기 등 국란 때 나라를 위해 앞장 섰다. 오수초등학교 학생 400여 명이 이광수 선생의 지휘 하에 3월10일 독립만세를 불렀고, 이기송 선생 등은 3월23일과 24일 양일간 오수장터 등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오수의 전주이씨 독립애국지사는 이송의 등 16명에 이른다.△관계금암리 출신 김능태(82)씨는 총무처 예산과장 등을 역임했다. 오수리 출신 김용태(68)씨는 전북도 건설물류국장을 지냈다. 전북도 자치행정국장을 지냈던 용정리 출신 이강오(61)씨는 현재 전북도 대외협력국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이강안(68) 씨는 완산구청장, 전주문화재단 상임이사를 거쳐 광복회 전북지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둔덕리 출신 김태수(68)씨는 완산구청장을 지냈고, 이강칠씨(57)는 국민연금관리공단 전주완주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전북도청 노흥래(57) 체육정책과장은 한암리 출신, 곽승기(57) 전북도 예산과장은 주천리 출신, 전북선관위 홍보과장을 지낸 이규정(62)씨는 금암리 출신이다.△정계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만주에서 태어나 장수 산서면과 오수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진다. 또 제5~7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한상준 의원은 인근 삼계면 출신이나 오수초등학교를 다녔다. 제5대 도의회 의장을 지낸 이강국(80)씨는 오수리가 고향이다.△군경오산리 출신 김보영씨는 육사 26기로 육군헌병감(준장)을 지냈고, 봉천리 출신 박창희(65)씨는 육사 32기로 62사단장을 지낸 예비역 육군준장이다. 용정리 출신 이강수(66)씨는 전북지방경찰청 정보과장, 임실경찰서장 등을 역임했다.△법조용정리가 고향인 이강국(73) 서울대 석좌교수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8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법조인이다. 대법관, 법원행정처장, 제4대 헌법재판소장 등을 지냈다. 주천리 출신 곽종훈 변호사는 의정부지법원장을 지냈고, 안춘식, 김길수, 곽세일 변호사도 오수가 고향이다.△교육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의 동생 정대현 서울시립대 환경조각과 교수, 정명희 고려대 불어과 교수는 오수리 출신이다. 또 김무영 전북대 스포츠학과 교수도 오수리가 고향이다. 전북대 화학공학과 김춘영교수는 오산리다.△경제휴대폰 부품 등 무선통신기기 관련 제조업체인 (주)인탑스 김재경 회장(72)의 고향이 오수리다. 전주제일고(옛 전주상고), 한양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김 회장은 중견기업 신화공업 근무 경험을 토대로 1981년 (주)인탑스 전신인 신영화학공업사를 설립, 각고의 노력 끝에 인탑스를 국내 손꼽히는 강소 기업으로 일궈냈다.또 김만두 전 한전산업개발 사장도 오수 출신이고, (사)코스닥협회 제1대 상근부회장을 역임한 정강현씨도 오수리가 고향이다.△문화예술언론한제욱 전 전북일보 이사(62)는 봉천리 출신, 이강덕 KBS 대외협력실장은 군평리 출신이다. 대한민국 서예박람회 심사위원, 운영위원 등을 지낸 서예가 장암 허민수(65)씨는 오수리 출신이다.

  • 기획
  • 김재호
  • 2018.01.31 23:02

[우리고을 인물 열전 19. 남원시 주생면] 서쪽 문덕봉 동남쪽 비옥한 평야…물 맑고 공기 좋은 천혜의 땅

주생면은 조선시대 이언방(伊彦坊), 주포방(周浦坊), 자성방(者省坊,南生坊) 등 3개 방이 있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주포와 남생의 이름을 따서 주생면(周生面)이라 칭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원시에서 남서쪽으로 8㎞ 가량 떨어진 주생면은 서북쪽이 구릉성 야산, 동남쪽이 평야지대로 형성돼 있다. 동쪽으로 남원시와 송동면에 접하고, 북쪽으로 대산면, 서쪽으로 대강면, 남쪽으로 금지면에 마주하고 있다. 남원 시내에서 길게 흐르는 요천이 주생면 너른들 중심을 관통하며 생명수를 공급, 농사짓기 알맞은 고장이다. 방동주 주생면장은 “주생면은 쌀과 배, 복숭아, 포도, 멜론 등 고품질 농작물을 생산하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면서 교통 여건이 좋아 남원 시내는 물론이고 전주와 광주, 여수 등 도심 접근성이 탁월하다. 부족함이 없는 살기 좋은 고장”이라고 소개했다. 남원시 주변 전체 읍면 중에서 시내권 접근성이 가장 좋다고 할 수 있다. 주생면 일대에는 KTX철도와 완주~순천간 고속도로, 광주~대구간 88고속도로 등 주요 교통망이 십자로 통과, 주민들은 일찍부터 전국 1일 생활권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전체 면적은 26.33㎢이고, 경지 면적은 밭이 1.878㎢, 논이 7.626㎢이고, 임야는 10.637㎢이다. 사람이 살기 좋은 고장이지만, 다른 농촌지역과 마찬가지로 인구는 감소세여서 9월 현재 1,957명이다. 9개의 법정리와 17개 행정리는 상동리(상동, 부동), 중동리, 낙동리, 내동리(내동, 광촌), 도산리(도산, 상도), 지당리(대지, 소지, 효동), 정송리(정충, 반송), 영천리(영촌,유매), 제천리(제천, 서만)이다. 이에 딸린 자연마을은 30개이고, 주생면사무소는 주생면 요천로 821(제천리 9-4)에 자리잡고 있다. 유매마을은 남양방씨 집성촌이다. 주생면의 명산은 서쪽의 문덕봉(598.1m)이다. 위로 대강면, 아래로 금지면에 걸친 문덕봉은 대둔산, 구봉산 등과 함께 전북의 5대 바위명산으로 꼽힌다. 문덕봉에 올라서서 남으로 장쾌하게 뻗어나간 산줄기를 따라 솟아오른 삿갓봉(629m)과 고리봉(708.9m)을 바라볼라치면 마치 천군만마를 거느린 대장군의 위세를 실감할 지경이다. 문화재급 유물로는 지당리 석불입상, 낙동리 석조여래입상, 상동리 용장서원, 중동리 윤영채 가옥, 영천리 사계정사와 유천서원, 제천리 구천사, 내동리 비홍산성 등이 소재한다. 북서쪽이 막히고 동남쪽이 훤히 터진 비옥한 평야지대, 그 중심부를 요천이 가로지르는 곳 주생면.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남원 48방의 명당을 손꼽을 때 첫째가 이언, 둘째가 지당이었다고 하니, 예로부터 물 맑고 공기 좋고 물자가 풍요로웠던 주생면은 인물 나기 좋은 고장이었다. △정계상동리 출신인 양창식(梁昶植, 1930년 3월 15일 ~ )씨는 3선(11, 12, 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육군사관학교 제10기 출신의 양 전 의원은 1981년 제11대 총선 때 민주정의당 후보로 남원순창임실 선거구에서 민주한국당 이형배 후보와 동반 당선하며 국회에 진출했다. 내동리 출신인 조찬형(趙贊衡, 1938년 7월 25일 ~ )씨는 정치인, 법조인이다. 고등고시 사법과 제13회 합격, 광주고검 부장검사 등을 지냈다. 1988년 제13대 총선 때 평화민주당 후보로 남원순창임실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했다. 제14대 때 양창식 의원에 패했다가, 15대 때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해 양 후보를 꺾고 당선하는 등 재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상동리 출신인 하대식(941년 3월1일~ )씨는 육군사관학교, 건국대행정대학원을 나왔다. 전라북도의회 제7·8·9대 도의원을 지냈다. 유매마을이 고향인 방규태씨는 1991년 출발한 남원군의회 초대의원을 지냈다. 내동의 조성구, 서만의 김길호, 대지의 장복수씨도 기초의원으로 활동했다. △관계지당리 대지마을이 고향인 윤영관(65) 서울대명예교수는 김대중 정부 햇볕정책의 대표적 지지자였고, 노무현정부 때인 2003~2004년에 제32대 외교통상부장관을 지냈다. 청와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전주에서 태어난 그의 친동생이다. 정송리가 고향인 양병구씨는 완주군수를 거쳐 1994년 1월3일자로 남원군수로 부임, 그해 10월까지 근무했다. 흥부문화권 개발 추진, 농촌도로 158㎞ 군도로 승격 등 고향발전에 노력했다. 대지마을 출신인 윤기호씨는 남원부시장을 지냈다. 김상호 도청 사무관, 박경윤 남원시청 과장, 박정옥·박용재 전 면장 등도 주생이 고향이다. △법조계도산리 출신으로 원광대 법학과를 졸업한 방기호(66) 전 법제처장은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역임했다. 지당리 소지마을이 고향인 방극성(62) 전 광주고법원장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법무법인 동인 대표변호사 김진권(67·대지) 전 서울고법원장, 부장판사 출신의 오진환(내동) 변호사, 윤영환(대지) 변호사 등도 주생면 출신 법조인이다.△군경도산리 상도가 고향으로 남생초, 금지중 출신인 방향혁(57)씨는 학사장교 제5기 출신으로 2013년 육군 준장에 진급, 탄약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1981년 출범한 학사사관제도 아래에서 장성 승진을 한 사람은 10명도 채 안된다. 영천리 유매가 고향인 방춘원(62)씨는 익산, 김제, 남원경찰서장, 전북경찰청 보안과장 등을 역임했다. △교육계도산리의 이강엽(66)씨는 도교육청 장학관, 전주서천초교 교장을 거쳐 2009년 임실교육장을 지냈고, 김학권(65) 전 원광대 철학과교수는 원광대 인문대학장, 한국주역학회 회장, 대한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김평기 원광대 경영학부 교수, 양기환(효동) 초등교장, 방극성 변호사의 부친 방계원(소지) 중등교장 등이 교육자로 활동했다. △경제계주생면 출신으로 지역에 큰 족적을 남긴 경제계 인사는 남원에서 니트 제품 생산업체인 화림공업을 경영한 심재명 사장(2015년 사망, 정송리 반송)이다. 재일동포 실업가 심 사장의 고향사랑에 대해 주민들은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모아 주생면사무소 앞에 ‘심재명 선생 공적비’를 건립했다. 공적비에 따르면, 1926년생인 심재명 사장은 일제에 징용 당한 부친의 생사를 광복 후에도 확인할 길이 없자 23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부친을 찾았다. 하지만 귀국할 돈이 없어 현지에서 막노동하며 돈을 벌었고, 1967년 일본 야마구찌현에서 여성용 란제리 기업 히로세, 세화 등 4개사 7개 공장(임직원 1200명)을 세워 경영했다. 그는 고향을 잊지 않았고, 결국 귀국했다. 1988년 남원시 노암동에 내의생산업체 화림공업(주)를 설립, “진정한 번영은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공영에 있다”는 신념을 적극 실천했다. 그는 고향인 반송노인회관, 파출소, 자율방범대, 남원여상 강당신축, 남원고 냉난방기와 음향시설 등 각종 기관단체의 시설과 장비, 차량구입에 거금을 쾌척하면서 항상 부족함을 미안해 했다고 한다. 그는 남원시민 2,179명의 일본 선진지 견학 및 남원 출신 도공 심수관 가문과의 교류 등에 심혈을 기울였다. 1992년 수출 500만불탑 수상, 상공부 장관상, 국세청장상 등 정부 표창도 그의 삶을 말해준다. 이밖에 제천리 출신인 박한근 한성신소재 대표는 재경주생향우회장을 맡아 서울과 지역의 가교역을 하고 있다. 중동리의 박철규씨는 남원새마을금고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화언론체육계김종량(76)씨는 건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전북일보·전라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언론인으로, 언론중재위원회 전북지역 중재위원 등을 역임했다. 김동수씨(70) 백제예술대 문화콘텐츠학과 명예교수는 시인이자 미당문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태주(64)씨는 1979년 단편소설 화려한 마을로 문단에 데뷔한 소설가, 아동문학가다. 제천리가 고향인 박정선(55)씨는 2010년 6월 열린 제36회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명창부에 출전, 장원(대통령상)을 하며 명창 반열에 올랐다. 강도근, 오정숙, 한해자 선생 등에게 사사했으며, 전남 구례에서 섬진강판소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 기획
  • 김재호
  • 2018.01.03 23:02

[우리고을 인물 열전 18. 익산시 여산면] 국도 1호·고속도로 지나는 호남 관문…가람 이병기선생 고향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여산에 있는 호산(壺山현재는 천호산)은 여산지역의 진산(鎭山)이다. 진산은 도읍의 북쪽에 있으면서 도읍을 보호하는 주산을 말한다. 실제로 여산은 호리병의 작은 입구 형상을 보인다. 동쪽 천호산과 서쪽 미륵산용화산 사이에 위치한 탓이다. 북쪽으로 충남 연무읍, 남쪽으로 익산시 왕궁면이 소재한고, 남북을 잇는 국도 1호선과 호남고속도로가 통과한다. 호남, 전북의 관문이다.여산(礪山)지역에는 삼한시대 이전에 여래비리국(如來卑離國)이라는 부족국가가 있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했고, 마한이 백제에 흡수된 후에는 지량초현(只良肖縣)으로 불렸다. 신라와 고려 때는 여량현(礪良縣)으로 불리었다. 현재의 여산이란 명칭이 생긴 것은 조선 태종 2년(1402년)에 이웃 낭산현과 여량현이 합쳐지면서부터다. 여량현은 세종 18년(1436년)에 태종의 비 원경왕후의 외향이라는 사실 때문에 군으로 승격됐다. 원경왕후 민씨의 외조부는 여산송씨 송선이다. 또 숙종 26년(1699년)에는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정읍 칠보에서 출생, 송헌수의 딸)의 성향(姓鄕)이란 이유로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기도 했다.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여산군에 속했던 11개 면 158개 리가 분할될 때 낭산면, 망성면, 황화면이 여산에서 떨어져 나갔다. 여산면은 천동면과 천서면, 부내면만으로 축소돼 여산리, 두여리, 호산리, 태성리, 제남리, 원수리 등 6개리 체제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여산에는 숯고개, 진터, 갑옷터, 닭작골 등 옛 지명들이 전하는데 전주성으로 진출하는 골목에 위치한 여산 일대가 후백제와 고려의 주요 격전지 였음을 짐작케 한다.면소재지인 여산리의 동헌 건물과 노거수가 옛 여산의 위상을 짐작케 한다. 참상의 역사 현장도 남아 있다. 동헌 아래에 위치한 백지사터(白紙死)가 그것이다. 대원군 집정 때인 1866년 병인년, 조선 정부는 천주교 신자들의 얼굴에 물을 뿌리고 백지를 덮어 질식사 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위에 위치한 동헌 뜰에는 대원군의 척화비가 세워져 있다. 광복 이후 여산 출신으로 가장 빛나는 인물은 국문학자요, 시조시인 가람 이병기다. 지난 달 14일 원수리 진사마을 이병기 생가 옆에 가람문학관이 문을 열었다. 가람문학관이 개관에 이르기까지는 익산시 등 주변의 관심과 함께 평소 생가 관리에 힘써온 김장환씨(69여산리여산면지추진위원장) 등 지역민들의 여망이 크게 컸다. 김장환씨는 여산면지 발행에 앞장서고 있다.△여산송씨의 본향여산의 인물을 거론하자면 여산을 본관으로 하는 여산송씨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칠 수 없다. 고려와 조선에서 출세 가도를 달린 인물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우리나라 모든 송씨는 당나라에서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지내다 귀화한 송주은(宋柱殷)의 후손들이다. 그의 후손 자영의 세아들 중 맏이 계통이 유익, 천익, 문익 삼형제인데, 유익은 여산송씨, 천익은 은진송씨, 문익은 서산송씨의 시조가 되었다.송유익(宋惟翼)은 훗날 은청광록대부 추밀원부사(銀靑光錄大夫 樞密院副使)로 追贈 되었다.현재 송유익의 4세손인 송송례(宋松禮, 고려 충렬왕 때 중찬)를 중시조 1세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으며, 송송례가 여산군(礪山君)에 봉해졌기 때문에 본관을 여산으로 하게 됐다. 여산송씨는 송송례의 아들 염과 분 형제의 아들 대에서 원윤공파, 밀직공파, 소윤공파(이상 염의 아들), 지신공파, 정가공파(이상 분의 아들)의 5파로 갈라졌다.여산송씨는 영의정 1명, 좌의정 1명, 왕비 1명, 판서 다수 등 수많은 인물을 배출했다.여산송씨의 중시조가 된 송송례는 1270년 직문하성사(直門下省事)로서 권신 임연의 아들 임유무를 죽이고 왕정을 바로세웠다. 송거신(宋巨信)은 태종의 비 원경왕후 민씨의 당질로서 태종의 신임을 받았다.동래부사 송상현은 임진왜란 때 동래성이 함락될 때 장렬하게 전사한 절신으로 유명하다. 송질은 중종반정 때 정국공신으로서 영의정에 올랐고, 송익필은 선조 때 대학자로서 8문장의 한사람으로 꼽혔다.△정관법조계두여리 출신인 박선규(56두여리)는 언론인 출신으로 정계와 관계에서 활동했다. KBS 기자였던 그는 1999년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후 2008년 대통령실 언론2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 청와대 대변인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을 지냈다.제남리 출신의 송삼섭씨(70)는 여산초중학교, 전주고를 거쳐 서울법대에 졸업한 인재였지만, 연좌제에 막혀 제대로 뜻을 펴지 못했다고 알려진다. 쌍용그룹, 일진그룹 법률고문을 역임했다.△교육계원수리 출신의 국문학자이자 시조시인 이병기(1891년~1968년)는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와 전북대 교수를 역임했다. 일제 강점기부터 한글운동을 벌인 국문학자요, 독립운동가다. 첫 국어사전 편찬에 열정을 다했고, 현대 시조문학을 개척해 세운 시조시인이다.두여리 출신인 유인종 전 서울시 교육감(85)는 노스캐롤아이나대학원 철학박사이고, 고려대 교수를 거쳐 1996~2004년 서울시교육감을 지냈다. 그는 교육감 재임시절 일제고사 폐지, 고액과외 폐지, 자립형사립고 반대 등 학교교육 살리기에 열정을 쏟았다. 여산리 출신의 김양수씨(77)는 성신대 총장을 역임했고, 여산리 출신의 하중호씨(82)는 여산초, 전주고, 연세대 상대를 졸업한 후 금융계에서 일했다. 퇴직 후 예절 교육 활동에 열정을 쏟았으며, 목포대와 세종대에서도 일했다. 제남리 출신의 배경식씨(69)는 한일장신대 교수를 역임했다.△군경이남신 예비역 대장(73육사23기제남리)은 육군 7사단장, 육군본부 감찰감, 8군단장, 국군기무사령관, 3군사령관을 역임한 뒤 김대중 정부에서 함참의장을 지냈다. 퇴임 후 육사 총동창회장을 역임했다. 유해근 예비역 중장(72육사 26기원수리)은 35사단장, 특전사령관에 이어 교육사령관을 지냈다. 송승석 예비역 준장(64육사 32기두여리 수운마을)은 76보병사단장, 수도포병여단장, 수도방위사령부 부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대한민국성우회 안보전문위원, 한국위기관리연구소(KICA)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임하고 있다.△경제계여산리 출신인 이연(1915년~2003년) 전 대한석탄협회 회장은 신흥고를 졸업하고, 1994년 원광대에서 명예경제학박사를 받았다. 1963~1992년 동원탄좌 회장,1986~1997년 대한석탄협회 회장 지낸 그는 강원도 사북에서 석탄을 채취하는 동원탄좌를 운영하며 큰 돈을 벌었으며, 동원전자 등 10여 개 방계기업을 세워 운영했다. 서울 강남의 특급호텔 리츠칼튼서울의 이전배 사장(60)은 그의 아들이다.두여리 출신의 송관용(1932~2014) 전 부림흥산(주) 회장은 여산보통학교, 고려대 최고경영자과정을 거쳤다. 삼우토건, 삼강통상(주), 부림흥산(주) 대표이사 회장을 지냈으며, 여산에 두여장학회를 설립, 고향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여산리 진성섭씨는 쌍용그룹 사장을 지냈고, 호산리 최창규씨는 대구, 두여리 출신 이정수씨는 대전에서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원수리 내동마을이 고향인 이경수씨(49)는 떡볶이 프랜차이즈 아딸을 창업, 크게 성공했다. 지역 출신 이정원 목사의 아들 이경수 대표는 2017년 들어 아딸 브랜드를 탈피하고, 감탄 브랜드를 새롭게 내세웠다.재경익산향우회 부회장 이지희 사장은 원수리 출신으로 서울 경희대를 졸업한 후 토너 등 전자제품의 부품을 만드는 클린톤전자 대표다.△문화체육언론계원수리 출신의 이만희씨(81)는 대전광역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10호 각색편 보유자다. 각색편은 연안이씨가(延安李氏家)의 고유 음식으로 그 제조법이 지난 2000년에 대전광역시로부터 무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됐다.여산리 교동 출신으로 이리농림과 고려대를 나온 배성환씨(84)는 한국일보 부사장을 역임하고 재경익산향우회를 이끌었다. 역시 여산리가 고향인 이정근씨(71)는 매일경제 동경특파원을 지냈다. 이봉원씨는 KBS제작국장을 지냈다. 스포츠전문기자인 스포츠조선 이상주 부장은 제남리가 고향이다.

  • 기획
  • 김재호
  • 2017.11.14 23:02

[우리고을 인물 열전 17. 임실군 삼계면] 조선시대 선비들 묵향 그윽…200명 박사 배출한 '박사골'

‘산자수명한 우리 고장 인심좋고 성실한 조상들의 덕망을 이어 받아 명석한 두뇌를 갈고 닦아 국가의 동량이 된 박사촌을 이루었으니 그 높은 뜻을 기리고 후대에 전수코자...’임실 오수에서 삼계면 소재지로 이어지는 길 옆에 지난 2000년 3월 이 지역 중견 인사들의 모임 삼정회가 세운 ‘博士의 고장 三溪面’ 비문에 새겨진 내용이다. 이 길을 따라 안으로 쑥 들어가면 면소재지를 지나 세심리에 ‘박사골 체험관’이 있고, 그 마당에 우뚝 세워진 박사모를 쓴 석상이 박사고을임을 더욱 실감나게 한다. 삼계면은 ‘박사골’로 불리는 인재의 고장이다. 예로부터 한양에서 낙향해 터를 잡은 선비들이 많았고, 근래 삼계면에서 배출된 ‘박사’가 2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세심리에 ‘박사골체험관’을 지어 운영하며 큰 자랑으로 삼고 있다. 최근 ‘임실사람 임실이야기’란 저서를 낸 임실군청 문화관광치즈과 김철배 학예사는 “계유정란과 무오사화 등을 피해 내려온 선비들이 씨족을 이뤄 학문을 갈고 닦으며 터전을 이룬 곳”이라고 소개한다. 500년 전부터 중앙정치의 화를 피해 자리잡고 살아온 선비들은 후학을 육성하고 또 조정과 연을 맺기도 했다. 어은리의 청주한씨 고택과 육우정은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광주 김씨)의 외가였다. 인경왕후가 10세라는 어린 나이에 세자비로 간택 돼 외로운 궁궐 생활을 하면서 입궐 전에 지냈던 외가 생활을 그리워 했다는 이야기가 이 마을에서 전해진다. 인경왕후가 외가에서 지낼 때 먹었던 콩잎장아찌를 진상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후천리에 많이 사는 풍천노씨 집안의 노익원 공은 정조의 스승을 지냈을 만큼 인품과 학식이 뛰어난 선비로 알려져 있다. 240여년 된 그의 집 대문에 쓰여진 ‘馬四客’(말 네 마리가 끄는 마차를 타고 예의를 알고 용모단정한 사람이 사는 곳)이란 글씨가 말해 준다. 지금도 임실군 삼계면은 발길 닿는 곳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묵향이 흠뻑 배어 있는 고을이다. 노동환 가옥, 한상준 고택, 육우당 등 200년 전후에 건축된 선비들의 한옥이 즐비하다. 고을 곳곳에 만취정, 광제정, 오괴정 등 정자가 많아 산골 마을 사람들이 예로부터 글과 풍류를 사랑했고, 시인묵객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음직 하다. 선비들의 고결한 인품과 학문을 존중해 세운 서원, 각 성씨들이 조성한 사당과 묘동도 수두룩 하다. 어은리에서 살았던 종호(從好) 최광범씨는 근래의 뛰어난 한학자로 알려진다. 삼계면에서 인물이 많이 배출되는 것은 향학열과 교육열이 남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근대적 개념의 삼계면 1호 박사는 고 심길순 박사다. 1918년생인 심박사는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약학대 교수, 학장 등을 지냈다. 2호 박사는 고 허세욱 박사다. 1934년생인 허 박사는 한국외국어대와 타이완사범대 대학원을 나온 중국어문학자로 외대와 고려대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시인이자 수필가이다. 중앙교육진흥연구소 회장을 지낸 허필수 박사도 삼계가 고향이다. 임실의 박사들은 주변과 가족 영향을 많이 받아 직계, 친인척 박사 그룹도 상당하다. 예를 들어 전북대 교수를 지낸 노상순씨의 아들이 노덕환 노도환 노승환 노방환 박사이고, 손자 노시훈씨도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명 8박사 집안이다. 노환성·노영진은 부자지간이고 노상균·노상우는 형제이다. 나로호 연구소에 근무하는 한민홍 박사는 한상엽박사 아들이다. 화천수력발전소장 박병근씨와 박배근박사는 사촌, 김봉철·김주현·김진엽은 삼남매, 김대현·김인희는 형제, 심석무·심유경은 부녀, 김흥주·김효수는 남매, 정남옥·정석균은 남매, 오세원·오세홍은 형제, 김학준·김택현은 삼촌조카, 김진원·김문수는 사촌이다. 세심리에 ‘박사골체험관’을 짓고 인재의 고장 삼계면의 위상을 높이고자 심혈을 기울이는 오흥섭씨(59)는 “인재가 많이 나는 것은 우리 고장의 경사요, 큰 자랑입니다. 박사 테마파크를 조성, 삼계면을 더욱 알리고 싶다”고 말한다. 삼계면은 면적 56㎢에 삼계리, 후천리, 어은리, 삼은리, 산수리, 세심리, 죽계리, 홍곡리, 학정리, 홍현리, 오지리, 덕계리, 두월리, 뇌천리 등 14개 법정리로 구성돼 있다. 인구는 1612명이고, 최근 전통쌀엿을 비롯해 부추와 한우 농사가 많다. 인재의 상징으로 ‘뇌’ 모양을 한 호두 작목반도 출범했다. 연안김씨 고 김시영씨를 중심으로 한 주민들이 살려 낸 ‘말천방 들노래’는 ‘임실군 무형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돼 있다. △정계한상준 5·6·7대 국회의원(어은리), 김진억 전 임실군수(후천리), 오현모 군의원(삼은리), 노두상(삼계리), 김신기 군의원(홍곡리), 김학관 군의원(덕계리), 환경운동 등 시민단체 활동가이자 정치인 최형재 노무현재단 전북지역위원회 공동대표(어은리)△관계내년 익산에서 열리는 제99회 전국체전 화합문화체전 추진 총괄본부장 이지영 전 익산부시장(덕계리), 전북경찰청 차장과 전주완산경찰서장을 지낸 김학역(삼계리), 정보통신부 정석균(오지리), 기획재정부 허점옥(덕계리), 총무처 이재흥(덕계리), 농업기술원 국장을 지낸 유정(삼은리), 경남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김종영(삼계리), 새만금추진지원단장 오정호(삼은리), 김학엽 4대 전주지방환경창장(세심리), 김정호 11대 전주지방환경청장(홍곡리), 오경섭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삼은리)△교육계 심길순 전 서울대 약학대학장(뇌천리), 노상순 전 전북대 명예교수(후천리),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어은리), 허필수 전 중앙교육진흥연구소 회장(덕계리), 김효순 김제교육지원청 교육장(두월리), 김학산 전북교육연수원 원장(삼계리), 노덕환 군산대명예교수(후천리), 노도환 전북대교수(후천리), 노방환(전북대교수), 노상우 전북대교수(후천리), 박배근 충남대 수의학교 교수(세심리), 박은숙 완주 봉성초교 교장(세심리), 오동순(우석대 교수(세심리), 한광수 우석대교수(어은리), 김근주 전북대교수(두월리), 이동호 전북대교수(세심리), 신동수 한양대교수(학정리), 이미재 수원대교수(세심리), 수능출제위원장을 지낸 정병헌 숙명여대교수(봉현리), 이용현 군산대 명예교수(봉현리)△경제·사회계2003년 12월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 수사’ 특별검사를 맡아 유명해진 김진흥 변호사(홍곡리), 김제경찰서장을 역임한 박달근 인천 도로교통공단 전 인천시지부장, 노상흡 캠틱종합기술원 본부장(후천리), 노보환 전 광명기업사장(후천리), (사)한국안전보건협회 회장 오병섭(삼은리), 화천수력발전소 소장 박병근(세심리), 한국농약과학회 회장, 한국잡초학회장 등을 지낸 한성수 전 원광대 대학원장(오지리), 한평호 한국생산성본부 근무 (봉현리), 류강열 전주생물벤처연구소(삼은리)△문화예술언론계삼계 말천방 들노래를 세상에 알리고 전승, 임실군 무형향토문화유산 제1호 지정을 이끌어 낸 김시영(두월리), 고려대·외국어대 중문과 교수를 역임하고 시인이자 수필가로 활동한 허세욱(덕계리), 전주정보영상진흥원장을 지낸 이흥재 추계예술대학교수(삼계리), 박임근 한겨례신문 전북담당지역기자(세심리), 한국국학진흥원 김민옥(두월리)△의료계 ‘간’ 분야 전문의로 명성을 얻고 있는 김인희 전북대의대 교수(삼계리), 박승근 전남 순천 아이미코병원 피부과원장(세심리), 모윤희 치과원장(삼계리),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성수 의학박사(어은리), 허균 국립암센터 연구소 (후천리)·김재호 수석논설위원

  • 기획
  • 김재호
  • 2017.10.24 23:02

[우리고을 인물 열전 16. 부안군 백산면] 동학농민군 봉기의 성지이자 너른 들판 닮은 인심 후한 고장

백산면은 그 소재지가 부안군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5㎞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동진강과 고부천이 큰 젖줄을 이룬 비옥한 평야지대이다.거룡리, 대수리, 하청리 등 마을 이름이나 세가호뜸, 요강배미 등 물과 관련된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백제시대 이 일대에는 바닷물이 들어왔다. 동진강 하구 서해바다를 통해 중국과 일본 배가 드나들었다. 주민들이 갯펄에 둑을 쌓아가며 조금씩 간척, 큰 들녘을 일구었다.가장 높은 주산인 백산의 높이는 해발 47.7m에 불과할 만큼 낮지만 광활한 평야지대에 우뚝 솟았기 때문에 백산 정상에 오르면 사방의 평야가 한 눈에 들어온다. 소위 감제고지다. 그런 연유로 보인다. 660년 무렵에 성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백산성터가 남아 있다. 백산성(전라북도 사적 409호)은 일대 주요 군사 요충지였을 것이다.백산성 인근 동진강에서 갈라지는 고부천을 타고 남쪽으로 가면 백제 5중방의 하나로 알려지는 고사부리가 나온다.상서면 감교리에 위치하는 울금산성 등과 연결되는 역사 속에서 백산 일대는 백제 유민들이 백제부흥운동을 일으켜 나당연합군과 최후의 일전을 벌인 백강전투 현장 중 한 곳이라는 추정이 있다.또 하나의 굵직한 역사 현장이 백산이다. 1894년의 동학혁명이다. 당시 고부 쪽에서 조병갑 등 관군을 친 농민군들은 흰 옷을 입고 죽창을 무기 삼아 전주를 향해 진격했다.고부와 이평, 영원 일대에서 전주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하청리와 거룡리를 거쳐 백산나루~화호나루를 통해 김제 죽산부량, 정읍 화호태인 쪽으로 진출해야 했는데, 이 때 백산에 모여든 수많은 농민군이 일어서면 백산, 앉으면 죽산 형상을 이뤘다는 것이다. 이 곳에는 1989년에 동학혁명 백산 창의비가 세워졌다. 과거 동학농민혁명군의 백산봉기대회는 뚜렷한 역사적 자료가 부족했다.그러던 중 동학농민혁명 당시 주산면의 한 선비가 쓴 홍재일기에서 백산봉기대회일이 1894년 음력 3월26일(양력 5월1일이라는 기록이 발견됐다. 이에 백산은 물론 부안군 차원에서 동학군은 1만여명이 참여하는 백산봉기대회를 열어 외세의 침략을 막고, 봉건주의를 타파하고자 하는 행정개혁 격문과 4대 명의, 12대조 기율을 발표했다.백산은 동학군이 진정한 혁명군으로 거듭 탄생한 곳이라며 백산봉기대회일의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이런 동학농민혁명의 영향으로 거룡리 태어나 활동했던 호산 오문술과 덕암 오기술은 수운 최제우, 해월 최시형, 의암 손병희, 춘암 박인호, 학산 정갑수를 잇는 동학의 계보로 알려진다.백산면은 대부분 지역이 고부군에 속했다. 1914년에 고부군의 덕림면 일부와 거마면이 고부군의 백산면에 통폐합 됐고, 백산면이라는 행정구역 명칭으로 부안군에 편입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동진강이 범람, 농사를 망치기 일쑤였지만 수리시설과 경지정리가 이뤄지면서 비옥한 토지에서 고품질 쌀이 생산되고 있다. 이지역 쌀 브랜드는 천년의 숨결이다.주민들이 순박하고 들판이 커 인심이 후하다. 먹을 것이 부족해 생활하기 어렵던 시절, 타지역 사람들의 유입이 많았다. 그래서 이 지역사람들 사이에서는 잡초처럼 일어섰다거나 개천에서 용 났다는 등의 말이 오간다.유적으로는 용계리 백산성(사적 제409호), 죽림리 석장승(전북 민속문화재 20호)이 있다.면적은 36.48㎢이고, 인구는 2,882명 이다. 행정구역은 거룡리, 금판리, 대수리, 대죽리, 덕신리, 신평리, 오곡리, 용계리, 원천리, 죽림리, 평교리, 하청리 등 12개 리가 있다.△정계: 백산중고 들머리에 추모비가 세워진 독립운동가 지운 김철수(원천리), 최규환 전 부안군수(오곡리 계동), 박천호 부안군의원(평교리 망산), 권익현 전 전북도의원(오곡리 대산), 조병서 전북도의원(평교리)△관계: 한병인 전 장수부군수(금판리 신금), 임경종 전 농수산부서기관(용계리), 임철종 전 전북도민방위과장(용계리), 김정호 전 부안군기획정책실장(용계리), 이길수 전 전북도 건설국장(평교리 초장), 우범기 기획재정부 국회 예결위 파견(용계리 시기), 박용덕 전주세관장(대죽리), 강종천 전 전주우체국장(죽림리 상기)△교육계: 김수곤 전 전북대총장(오곡리 대산), 이낙근 전 백산학원 이사장(평교리 외거), 정진석 전 백산학원 이사장 및 교육위원(오곡리), 이상만 전북대 상대 교수(하청리 신흥), 김종인 원광대행정과교수(용계리), 김응곤 순천대공대교수(오곡리 대산), 오문균 전 경찰대교수(거룡리), 배호순 서울여대교수(국성리), 주영승 우석대 한의과 교수(용계리 시기), 한경식 우석대 사무처장(거룡리 산전), 이왕로 전북대교수(평교리 외거), 오제운 신태인고 교장(하청리 수성), 김창환 전 무주교육장(대죽리)△법조계: 경수근 법무법인 인앤인 대표 변호사(금판리), 최동배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대수리), 검사 출신의 조찬만 법무법인 율정 대표 변호사(금판리), 조찬형 전 판사(금판리)△경제계: 이강봉 전 금호아시아나 인재개발원장(대수리), 이기동 신라건설 회장(평교리), 최규환 신평종합건설 대표(대죽리), 김재기 삼성특수목재 대표(평교리 망산), 이용훈 한성공업사 대표(원천리), 김재규 시그마종합건설 대표(신평리 광덕)△의약계: 권창영 예수병원장(평교리 망산), 김잉곤 서울 필성형외과원장(오곡리 대산), 한식 한일약국 대표(금판리)△문화 예술 언론 체육계: 근대 전라도 쪽 동학의 거두 호산 오문술 선생(거룡리), 73년 시문학에 시 울안에서 등으로 추천돼 등단한 오남구 시인(본명 진현, 하청리 수성), 노을 속에 당신을 묻고로 유명한 강민숙 시인(덕신리), 이선열(시인), 부안의 절경을 화폭에 담고 있는 홍성모 한국화가(신평리), 김두녀 시인 겸 서양화가(신평리 광덕), 김효순 수필가(하청리 신흥), 숭례문 현판 감정에 참여했던 변요인 서예가(죽림리 신관), 대나무 묵화에 능한 이가범 한국화가(평교리 외거), 학고재갤러리와 도서출판 학고재 우찬규 대표(오곡리), 니콜라 마르티루치 콩쿠르 입상 등으로 세계적 실력을 인정받은 테너가수 김남두(용계리), 김정주(전 경향신문기자) 정인석 KBS기자(평교리 외거), 김재호 전북일보 수석논설위원(거룡리), 김경섭 전북도민일보 사회부장(대죽리), 공종식 동아일보기자(대수리), 한정엽 대한역도연맹 위원(금판리)△군경: 주남연 전 육군준장(대수리), 육군 최낙중 육군준장(평교리 망산). 김선도 전 육군대령(대죽리 쌍교) 등 40여명의 영관 장교. 김중곤 전 경찰서장(거룡리 용출)김재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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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 2017.09.19 23:02

[우리고을 인물 열전 15. 군산시 회현면] 비옥한 토지에 농업 발전…반기문 전 UN총장 선대의 터전

군산시 회현면은 옛 지명 회미(澮尾)에서 읽혀지듯 남쪽으로 큰 강인 만경강 하류에 접한다. 군산시 대야면옥산면개정면 등과 경계를 이루며 전체적으로 평탄한 지세다. 면적은 39.91㎢이다. 9월 현재 회현면의 토지 이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밭 84.1㏊, 논 1526.7㏊, 임야 338㏊, 대지 1885.1㏊다. 대정리, 학당리 등 8개 리에 속한 37개 마을에는 1595세대 375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북쪽의 청암산(해발 115m)과 남쪽 만경강 사이의 비옥한 토지에서 생산되는 쌀이 옥토진미라는 브랜드로 시중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전통적으로 농업이 주된 산업이며, 쌀과 흰찰쌀보리 등 미맥이 중심이다. 최근 새만금사업이 진행되면서 회현면 일대도 새만금배후지역으로서 향후 발전 가능성이 높아졌다.역사에서 회현면에 대한 기록을 종합해 볼 때 회현면은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땅이었다. 백제때는 부부리현(夫夫里縣)이었는데 신라 때 회미(澮尾, 임피현 소속)라는 명칭이 됐다. 고려 예종 때 회미현(澮尾縣)이 됐는데, 조선 태종3년 1403년에 옥구로 내속되면서 폐현됐다.회미현의 읍성지는 대정리에 있는 계령산(鷄嶺山, 해발 90m)에 위치했다. 지금도 척동(尺洞), 구성리(九城) 등 성터를 뜻하는 지명이 남아 있고, 내기마을 북쪽에는 동헌자리를 추측케 하는 주춧돌이 있다. 월연리 월하산마을에서는 패총이 발견됐다. 회현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 풍수지리상 금반형옥배안(金盤形玉盃案)이라는 명당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고사리에는 양씨와 문씨, 신씨, 두씨, 전씨, 김씨, 심씨, 홍씨 등이 오랫동안 살고 있다. 이 곳에는 이들 성씨의 선산과 제각이 있는데, 척동마을에 있는 평산신씨 제각은 1876년에 건축됐고, 학당리에 소재한 진주강씨 건물은 1681년 건물로 알려진다. 회미현에는 풍면과 장면이 속했다. 풍면에는 학당원우증석옥석리가, 장면에는 월연금광대정세정고사금성리가 있었다. 일제시대 때인 1914년 풍면과 장면이 통합되어 옥구군 회현면이 되면서 금성리는 인근 옥산면으로, 옥석리는 개정면으로 편입되었다. 1995년 도농통합으로 군산시 회현면이 되었다.△인물 이야기회현면에는 특정 성씨가 유난히 많다. 경주 김씨, 광산 김씨, 평산 신씨, 진주 강씨, 두릉 두씨, 제주 고씨, 남평 문씨 등이다.현재는 거주자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지만, 회현의 인물 소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눈길 끄는 성씨가 있다. 바로 광주반씨다.유엔사무총장을 지낸 반기문씨의 조상이자 조선 중종 때 8도감사, 5도병사 등으로 고위관직에 오른 반석평의 부친 반서린과 모친 회미 장씨의 무덤이 회현면 고사리에서 충북 음성으로 이장됐는데, 이는 반기문 전 총장의 선대가 회현면 일대에서 상당기간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신증동국여지승람 옥구현 인물조에는 회현면의 소문난 효자 이야기가 나온다.조선 중종 때 회현면 금광리 금당마을에 두세준이란 효자가 살았는데, 모친이 병들자 대변의 상태를 맛보아가며 병세를 살필 정도로 극진히 간호했다. 모친이 돌아가시니 무덤 곁에 여막을 짓고 3년상을 치렀다고 한다.이야기를 전해들은 중종 임금이 두세준의 효성에 감복, 1529년 정려를 짓고 세인의 귀감이 되도록 명했다.두세준효열비는 현재 금당마을에 있으며, 군산시향토문화유산 제10호로 지정돼 있다.원우리 출신 고이곤 악기장(1913~2007)은 단소, 가야금, 시조에 능했던 부친(고영지)의 영향으로 김제 황산의 유동초 선생, 추산 전용선 선생 등으로부터 단소와 가야금, 시조, 정악 등을 사사하고, 옥구 시우회 회장을 지냈다. 1995년 전북도지정무형문화재 제12호 악기장으로 지정됐다.옥구향교 전교를 지낸 김조현(83) 군산문화원 상임위원에 따르면, 원우리 문중구씨는 천석꾼이었고, 용화초등학교 설립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금광리의 두희철 씨는 일제 때 면장을 했는데, 홍수 때마다 만경강물이 범람해 농사를 망치는 일이 잦아지자 도지사를 만나 만경강둑을 높였다고 한다.대정리의 강정태, 학당리의 신명철씨 등은 농민들이 힘들게 지은 수확물을 일제에 공출로 빼앗겨 힘들어 할 때 구휼미를 내놓아 칭송 받았다고 한다.근래에는 한 마을 앞에 장원탑(壯元塔)이 세워져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군산시가 유난히 고시합격자 등 인물이 대거 배출되는 학당리 풍촌마을에 장원탑을 세워 풍촌마을 주민들의 기를 한껏 세워준 것이다.최근 회현면 출신으로 활동이 가장 활발한 인물은 단연 학당리 출신인 김관영 국회의원이다.그는 공인회계사(88년), 행시(92년) 합격에 이어 1999년에는 동생 형완씨와 나란히 고시에 합격한 고시3관왕으로 유명하다.국회 1920대 재선인 김관영 의원은 초선 시절부터 중앙정치권에서 광폭 행보를 보이며 국민 눈도장을 찍었고, 최근에는 국민의당 사무총장이란 중책을 맡았다.△정계강대권 전 옥구군의회 의장(금광리), 두상균 전 군산시의회 의원(고사리), 고석원 군산시의회 의원(금광리), 강태창 전 군산시의회 의장, 강금식 13대 국회의원, 강철선 14대 국회의원(이하 대정리), 문기영 전 군산시의회 의원(원우리), 김관영 19대, 20대 국회의원, 김난영 군산시의원(이하 학당리)△관계김정훈 군산시 신풍동장, 두양수 대야면장(이하 금광리), 강희업 국토교통부 부이사관, 강희은 서울시청 과장(이하 대정리), 문명수 전 전주시부시장, 오귀일 전 국산시국장(이하 원우리), 김충렬 나포면장(증석리), 고석동 전 회현면장, 김건주 전 회현면장, 김원주 전 옥구군부군수, 김치주 전 군산시국장, 김옥주 전 군산시국장, 김왕제 전 군산시국장, 김종환 전 정보통신부 국장(이하 학당리)△법조계신문식 변호사(고사리), 강문희 서울 남부지법 판사, 강용구 변호사(금광리), 두완수 변호사(이하 금광리), 문철기 변호사(대정리), 김소영 변호사, 김귀동 변호사(이하 증석리), 강인영 변호사, 고석문 전 전주지검 군산지청 사무국장, 김동주 변호사, 김형완 변호사, 신영한 변호사, 김성환 변호사, 김병석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이하 학당리)△군경김연환 예비역 공군 준장, 김정웅 예비역 육군소장(이하 학당리)△교육계곽병선 군산대 법학과 교수(금광리), 고길곤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월연리), 김영수 전 옥구향교 전교, 김조현 전 초등교장 및 옥구향교 전교, 김제열 연세대국문과 교수, 김형섭 군산대해양학과 교수(이하 학당리)△경제계강윤구 전 회현농협장, 두성국 아시아나항공 이사, 송주성 전 회현농협장(이하 금광리), 강수선 전 회현농협장(세장리), 문영의 전 군산축협장(원우리), 두 철 공인회계사, 강창환 공인회계사(이하 원우리), 유창수 회현농협장(월연리), 김진풍 전 회현농협장, 김효제 전 회현농협장, 김재주 전 현대제철 부사장, 김병석 공인회계사 겸 변호사, 이현호 전 군산상공회의소 회장(이하 학당리)△기타강동구 전 KBS노조위원장(대정리), 강철승 군산개인택시조합장(금광리), 김문영 김문영치과의원 원장, 김한규 전주푸른안과 원장, 김영동 (전)군산중고총동창회장(이하 학당리)김재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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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 2017.09.05 23:02

[우리고을 인물 열전 14. 정읍시 영원면] 남다른 애향심·투철한 애국심…독립운동 뿌리 깊어

정읍시 영원면은 시청 북서쪽 15㎞ 지점에 위치한다. 정읍시 이평면과 덕천면, 고부면, 그리고 부안군 백산면과 주산면에 빙둘러싸여 있다. 이웃 이평면과 경계를 이루는 천태산은 영원면의 주산이고, 부안군 동진면 동진강 하구 쪽에서 고부면까지 이어지는 고부천이 영원평야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젖줄이다.역사를 거슬러 가보면, 영원면은 마한시대에는 구소국이었고, 백제시대에는 고사부리군이었다. 백제 고사부리군의 중심지는 은선리 토성이었지만, 백제 멸망 후 그 정치적 중심지가 현재 고부면 고부 소재지로 옮겨졌다고 한다.고사부리군은 정치 군사적으로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 사비시대 오방성의 하나인 중방성이 이 곳에 설치됐다고 보는 것이다. 백제시대 최대 지방거점이었던 것이다.조선시대 행정구역에서 이곳은 고부군 북부면이었다. 1914년 4월 행정구역 개편 때 현재의 영원면 구역이 획정됐다. 영원면의 행정구역은 장재리, 앵성리, 운학리, 은선리, 풍월리, 신영리, 후지리, 청량리 등 7개리 32개 마을이다.영원면 지역에서는 2002년 구석기시대 유물인 유문암제 석기가 발견됐고, 청동기시대의 유물인 고인돌(운학리 2기, 은선리 11기)도 다수 발견됐다.2017년 현재 영원면 인구는 2,000명 정도로 줄어든 상태지만 2005년 영원면의 역사와 현황, 인물 등을 집대성한 영원면지를 발간했을 만큼 지역민들의 애향심이 남다르다.△독립운동영원면 후지리 출신인 은세룡(1872~1964)은 조선 독립을 계획하고 동포들이 민족의식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뜻있는 주변 선비들과 함께 1926년 황극교(黃極敎)를 창교, 이끌었다. 그의 독립활동을 못마땅하게 여긴 일제에 체포돼 1938년 전주재판소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출옥해서도 한복착용, 일본말 사용금지, 창씨개명 반대 등 배일활동을 계속했다.은선리 출신의 양재 권순명(1891~1974)은 유학자이자 항일운동가였다. 18세에 간재 전우의 제자가 되어 왕등도와 계화도에서 공부했다. 일제에 붙잡혀 삭발을 강요당하자 장도로 자신의 목을 찌르며 항거했고, 창씨개명을 끝까지 반대했다. 영원 태산사에 배향되었다.운학리 라홍균(1886~1984)은 8000석 큰 부자였고 군자금 지원 등 평생 독립운동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았다. 그의 동생 백봉 라용균(1895~1984)은 임시정부 전북대의원 등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고 광복 후에는 제헌국회의원에 이어 456대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보건사회부장관을 역임했다. 국회는 합리적인 정치활동가였던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99년 모범적인 정치인을 격려하는 백봉 신사상을 제정, 매년 시상하고 있다.독립운동가 구파 백정기(1896~1934)는 영원면 은선리 갈선마을에서 성장했다. 1919년 3.1운동을 목격, 고향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며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33년 이강훈, 이원훈 등과 함께 홍구공원에서 유기찌 주중일본대사 등에 대한 암살계획에 참여했다가 체포, 이듬해 옥사했다. 해방 후 윤봉길, 이봉창 의사와 함께 효창공원에 안장됐으며, 1963년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됐다. 그를 기리는 의열사 성역화 사업이 2004년 영원 현지에서 완공됐다.△정관계후지리 출신 김형래(1940~2010)는 서울 서초구에서 111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배문환은 풍월리 출신으로 정읍시의회 234대 의원(4대 의장)을 지냈다. 후지리 출신 김형욱은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을 하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비서실 시민사회비서관을 역임했다. 앵성리 박옥은 국립보건원에서, 후지리 김형원은 제41회 사시에 합격, 기획재정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운학리 정학용은 정주읍장, 수성동장을 역임했고, 최근 익산시 부시장으로 간 김철모씨는 지사, 부안부군수를 지낸 권재민씨는 금곡 출신이다.△학계장재리 오덕렬은 교육부 기획예산담당관, 국립교육평가원장, 제주 탐라대 총장 등을 지냈다. 운학리 라종일은 독립운동가 라용균의 아들이다. 경희대 교수, 일본대사, 우석대 총장 등을 지냈다.후지리 출신의 김인숙은 원광대 가정대학장을 지냈다. 대한가정학회 전북지회장, 한국영양학회 호남지부장 등을 역임했고, 건강과 식생활 등 다수의 저서를 냈다.풍월리 출신 신일균은 신경외과전문의, 청량리 출신 송옥렬(서울대 법대)은 사법행정외무고시 3과에 모두 합격한 수재다. 금곡 출신 정재철 전 백산고 교장은 향토사학자로 활동하고 있다.△법조계은선리 김지웅은 사시 39기 출신으로 서울 중앙지검검사,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 등으로 일하다 2007년 변호사 개업했다. 후지리 출신 신형철은 사시 40기로 부산지법 부장판사다.△군인경찰후지리에서 살았던 조재미는 영원 출신 최초의 장군이다. 육사 2기인 그는 419 후 서울지역 계엄사령관을 지냈고, 63년 준장으로 예편했다. 앵성리 김명환은 육사 5기로 1군 포병사령관 등을 지냈다. 운학리 정동조는 해사 28기이고, 해군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정동조의 동생 정승조(육사 32기)는 이라크 자이툰부대장을 비롯해 특전사와 야전부대장을 두루 거친 후 함참의장을 지냈다. 신영리 출신 이정욱은 부안경찰서장을 역임했다.△경제계이상균(1925~)은 신영리 출신으로 1944년 19세 때 강제 징용으로 일본 북해도로 끌려가 혹독한 탄광 노동에 시달렸다. 현지 사업에 성공한 그는 1986년 형 상영과 함께 고향을 방문, 마을회관 건립, 마을 진입로 포장, 논 5000평 희사, 부안 개암사 입구 벚나무 꽃길 조성, 이웃돕기 성금 등에 재산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고향은 1995년 전북대상 봉사상, 애향운동본부 애향대상 등으로 고마움을 표했다.후지리 출신의 양석규는 입학금이 없어 중학교를 포기해야 했다. 간난신고 끝에 대학을 졸업, 미국으로 이민한 사업가다. 1991년 영원초등학교 장학사업을 시작, 지금까지 정읍지역 수백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운학리 송현만(호남주류 대표)은 민주평통 전북 부의장을 역임했다. 하림그룹 상무 문경민씨는 백양리가 고향이다.△문화예술체육계장고의 명인 이명식(본명 이이동, 1912~ 1986)는 장재마을 출신이고, 상쇠 놀음의 최고수로 평가받는 전사종(1918~1991)은 부안군 백산면 거룡리에서 태어나, 결혼 후 영원면 앵성리 미전마을에서 살았다. 17세에 전통 쇠가락을 이어온 김광래에게 사사, 1943년 대표적인 우도풍물인 정읍농악단에 들어가서 활동했다. 서울 국악예술고의 전신인 국악예술학교에서 전사섭 등과 함께 풍물을 지도했다. 1965년 창단된 서울시국악관현악단에서 농악부 지도를 맡았고, 76년부터 84년까지 국악예고에서 민족예술전문인 양성에 힘썼다.한국 최고의 소리꾼 은희진(1947~ 2000)도 영원면 출신이다. 후지리 출신 은희진은 9살 때 광주에서 정정렬의 수제자 오천수에게서 판소리를 배웠고, 동편제의 거장 박봉술에게 적벽가를 배웠다. 정읍국악원에서 활동하다 국립창극단에 입단, 현대 판소리 명창의 중심에 섰다. 판소리 다섯바탕 완창, 남원춘향제와 전주대사습놀이 대통령상 수상 등 명실상부한 명창 반열에 올랐다. 1997년부터 2000년 작고할 때까지 전북도립국악원 예술감독으로 고향을 위해 일했다. 효문마을 출신 정읍신문 이준화 편집국장은 20여년간 지역언론 창달을 위해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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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 2017.08.22 23:02

[우리고을 인물 열전 13. 완주군 봉동읍] 완주지역 최다 인구…'배산임수' 지형 뛰어난 인재 많아

완주군 봉동읍(鳳東邑은 2년 전 배우 문근영이 출연한 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이 촬영된 곳으로도 알려져 있는 데, 고산천 제방 곁에 위치한 둥구나무집 식당 앞에는 드라마 촬영 때 만든 아치아라 마을 버스정류장이 있다.완주군의 북단에 위치하는 봉동읍의 북동에는 비봉면과 고산면, 남쪽에는 용진읍, 서쪽에는 삼례읍이 소재한다. 봉동읍의 서북쪽에는 익산시 왕궁면이 위치한다.북쪽 봉실산((鳳實山:373.5m)과 남쪽 고산천(高山川)일대에 형성된 봉동읍은 삼례읍과 함께 완주군의 주력 고을로서 1973년 읍으로 승격됐다. 북쪽으로는 봉동 뒷산 봉실산이 우뚝 섰고, 남쪽으로는 만경강 상류의 큰 지류인 고산천이 마치 승천하려는 용처럼 고을을 걸쳐 있는 지세이니, 풍수적으로 보면 영락없이 배산임수형이다. 해발 373.5m 봉실산 아래 드리워진 봉동읍의 토지는 논 14.64㎢, 밭 5.24㎢, 대지 2.64㎢ 등 모두 46㎢이고, 쌀과 보리는 물론 생강과 양파, 포도 등이 많이 생산된다.봉동읍 경계선상에서 호남고속도로와 완주~장수 고속도로, 완주~순천고속도로 등이 지나가는 등 교통 여건이 좋고, 전주에서 북쪽으로 10㎞ 거리에 위치, 도심 접근성도 좋다. 완주 일반산업단지에 이어 완주테크노밸리가 장구리와 구암리 일대에 걸쳐 조성됐으며, 2021년까지 테크노밸리 2단계사업이 완료되면 봉동읍은 모두 140개 업체가 가동되는 산업 중심지로 우뚝서게 된다.이런 살기 좋은 여건 때문에 봉동읍은 완주군 13개 읍면 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고을 위상을 지키고 있다. 봉동읍 인구는 2만6,677명(2016년말 기준)으로 이서와 삼례를 1만 명 이상 앞선다.봉동읍 14개 마을에는 문화재도 많다.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된 추수경장군묘역을 비롯해 둔산리와 은하리 고분군, 봉강서원, 제내리 지석묘 등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정관계은하리 출신 윤건중씨는 1921년 독일 뮌헨대 정경과를 졸업한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참사를 지낸 독립운동가다. 1930년 최초의 민족자본 산업조합인 봉상산업조합을 설립했으며, 광복 후인 1954년 농림부장관을 지냈다. 낙평리 출신의 이정원씨는 4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최충일씨는 행정고시에 합격해 관직에 나가 김제시장과 완주군수를 지냈다. 성덕리 출신 이정주씨는 서울 서대문구청장을, 구만리 출신의 최찬욱씨는 6선의 전주시의원으로 활동하며 전주시의회 의장도 지냈다. 낙평리 출신 서제일씨도 완주군의회 의장을 지냈다. 구미리 출신인 송주인씨는 농림부 국장을 지낸 뒤 전북은행장을 역임했으며, 전북도민일보 창간 주역이다. 장기리가 고향인 김병량씨는 전북대 법대를 졸업한 뒤 공무원이 됐으며, 이리시장과 군산시장, 민선 2기 성남시장 등을 두루 지냈다. 율소리 출신의 노학기씨는 전북도청 문화유산과장으로 재직 중이다.봉동읍 출신 전북도의원은 박항서 박재완, 완주군의원은 이광식, 서제일, 안성근, 박재완, 이향자 류영렬 이인숙 의원이다.△군경, 법조육사 출신의 김보선씨(고천리)가 육군 소장으로 예편했으며, 율소리 출신 노학주씨는 육사를 나와 육군준장으로, 은하리 최봉열씨는 해사를 거쳐 해군대령으로, 낙평리 출신 최병운씨는 공사를 나와 공군대령으로 각각 예편했다. 낙평리 출신 장교로는 육사 출신의 김성식(대령 예편), 이진욱(대령) 등이 있다.구만리 봉강이 고향인 이동선씨(64)는 1981년 경찰에 입문한 뒤 2008년 치안감으로 승진, 2009년 전북경찰청장으로 부임해 근무했다.법조계에서는 성덕리 출신 이우식씨는 법원 부이사관을 지냈고, 변호사로는 이희열(구만리), 오치도(율소리), 김영(낙평리), 두세훈(장기리) 등이 있다.△교육계둔산리가 고향이고 교육학 박사인 유광찬씨는 전주교육대학교 교수, 총장을 지냈다. 구만리가 고향인 이선구씨는 예원예술대총장, 서울실용음악대학 학장, 티브로드 전주방송 사장 등을 역임했다.△문화예술체육계성덕리 출신으로 완주중학교를 졸업한 유길촌씨(77)는 MBC문화방송 PD, 공연기획가,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극단 유씨어터 대표 등을 지내는 등 방송과 연극영화계에서 두루 활동했다. 길촌씨의 동생 인촌씨(66)도 출생지가 봉동이다. 1974년 MBC 공채 6기로 탤런트가 된 인촌씨는 전원일기, 야망의 세월 등 드라마와 연극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극단 유씨어터 대표, 서울문화재단 대표를 지냈고, 이명박정부때는 문화관광부장관을 지냈다.국악계의 싸이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남상일(39)씨도 봉동이 고향이다. 2013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2012년 KBS 국악대상 판소리상, 2012년 제39회 한국방송대상 문화예술인상 등을 수상했다.구만리 이봉주 이장 동생인 이의춘씨(56)는 봉동중학교, 서울대를 졸업하고 한국일보 논설위원, 아시아투데이 편집국장, 미디어펜 대표이사,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보 등을 지냈다.낙평리 서세일씨는 전북체육회 부회장을 지냈고, 전북수영연맹회장을 지낸 서정일씨는 전북체육회 상임고문, 대한체육회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구미리 출신 박천규씨가 전북생활체육회 회장, 은하리 출신 고환승씨가 전북체육회 사무처장을 지냈다. 언론계에서는 장기리 출신의 송호성씨가 전주MBC 국장을 지냈고, 낙평리 출신의 이성원 전북일보 부국장이 청와대 출입기자로 활동하고 있다.△종교계지난 2010년 5월31일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강토가 무참히 파헤쳐지는 현실에 분개, 4대강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분연히 소신공양한 스님이 있었다. 바로 봉동 출신의 문수스님(경북 군위군 지보사)이었다.문수스님의 본명은 윤국환이다. 1963년 구미리 출신으로 봉동초와 완주중,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한 뒤 1984년 출가했다. 백양사, 해인사, 희방사 등에서 수도 정진한 문수스님은 경북 청도 대산사에서 주지를 지내기도 했다.△경제계낙평리 출신의 이용대씨는 국내 분무기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주)아폴로산업 회장이다. 성덕리 출신 이상준씨는 농협전북본부장, 전북신용재단이사장 등을 역임했고, 역시 성덕리 출신의 이일우씨는 (사)꿈드래장애인협회 회장 겸 꿈드래장애인작업장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은하리 출신의 윤재호씨는 삼부건설 대표이며 전북건설협회 회장을 지냈다. 신성리 이종준씨는 호경레미콘 회장이다.-다음 회에는 정읍시 영원면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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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 2017.07.25 23:02

[우리고을 인물 열전 12. 장수군 산서면] 학문 중시하고 문학 사랑한 '충효예의 고장'

장수군 산서면은 장수군청 소재지에서 20㎞, 전주에서 40㎞ 거리에 위치한다. 장수군 7개 읍면 중 장수읍 등 6개가 해발 500미터 고지대에 위치해 있는 반면 산서면은 유일하게 팔공산 서사면 아래 해발 200미터 평활한 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이 때문에 팔공산 북동쪽에 위치한 장수읍 등을 왕래하기 위해서는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비행기재를 넘어야 한다. 이 도로가 개설되기 전에는 20㎞ 떨어진 남원을 거쳐 번암면 쪽으로 빙 돌아가야 했다.고인돌과 돌도끼 등 구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됐고,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했다. 삼국시대 백제 때는 거사물현이라는 독립된 현의 위상을 가졌고, 신라 때는 임실지역이 주가 되는 청웅현에 속했다. 고려 때는 거령현이 됐고, 남원부에 예속됐다. 조선 때 신서방, 진전방이 됐는데 고종 때 수서방으로 개칭됐고, 1914년에 산서면이란 명칭이 생겼다. 이는 장수의 서쪽에 있기 때문에 붙여졌다. 북동쪽으로 영대산과 팔공산 등이 든든하게 지켜섰고, 서남쪽으로 낮은 야산 지대가 형성돼 있지만, 남으로 탁트인 지세다. 전체면적 47.75㎢ 중 밭이 270여㏊, 논 1100여㏊, 임야 2,900여㏊ 등으로 구성돼 있다.산내면에 들어서면 충효예의 고장이라는 표석이 눈에 띈다. 31운동기념비, 호룡보루와 향토수복기념비, 그리고 수많은 서원, 정자 등에서 충효예를 중시하며 삶을 이어온 주민들의 올곧은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전해 내려오는 수많은 유고집에서는 산서면 사람들이 예로부터 학문을 중시했고, 문학을 사랑했음을 알 수 있다. 선비들은 진실했고, 훌륭한 선인들의 뜻을 받들어 충효예를 근간 삼는 삶을 소홀히 하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선대의 뜻을 이어 지난 1997년에는 산서면지를 발간하기도 했다.문향이자 양반고을 산서면의 인물들을 권희상 노인회장, 권승근 문화원장, 육동수 전 산서면장, 정익수 전 산서새마을금고 이사장, 배형근 산서면장, 박경애 부면장 등의 도움을 받아 소개한다.△정관계산서면 출신으로 중앙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인물은 하월리 출신의 정재석, 봉서리 출신의 정세현씨다.정재석(丁渽錫)씨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으며, 1979년 상공부장관, 1992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을 역임했다. 봉서리 태생인 정세현(丁世鉉72)씨는 서울대 출신의 정치학 박사다. 1977년 통일원에 들어가 대북정책업무를 담당했고,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통일부 차관을 거쳐 2002년부터 통일부장관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2010~2014년까지 원광대 총장을 지내며 학계에도 몸을 담았다.정재석 전 장관의 동생인 정장현씨(丁璋鉉78)는 서울대법대를 졸업한 후 아산사회복지재단 사무총장, 현대백화점 사장 등을 거쳐 제14대 국회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오산리 출신의 권정주(權正周)씨는 감사원 감사관을 역임했고, 마하리 출신으로 전북대를 나온 김광영(57金廣泳)씨는 감사원 공공감사운영단장으로 일하고 있다.산서면 출신 중에서 장수군수는 아직 배출되지 않았다. 다만 전북도공무원교육원장을 지낸 권건주(權鍵周)씨(63)가 내년 단체장 선거를 겨냥해 뛰고 있어 지역민들 사이에 관심이 되고 있다.△학계건지리 출신의 류재신(柳在新)씨는 전라북도교육청 7대와 8대 교육감을 지냈으며, 교육계에 지여한 공을 인정받아 군민훈장 기린장(1983)과 국민훈장 모란장(1984)을 수상했다. 또 한대희(韓大熙)씨는 임실순창장수 교육장을 역임하고 1979년 애향대상을 수상했다. 사창리 출신의 양환승(梁桓承)씨는 농학박사로서 전북대 농과대학장을 지냈다. 1997년 전북도민의장 산업장을 수상했다. 정기수(丁奇洙)씨는 서울대 불어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문학박사를 취득했다. 공주대에 재직하며 불어교육학과장을 지냈으며 한불 문화교류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교육훈장을 수훈했다. 오산리 출신의 권이종씨(權彛鍾77)는 독일에서 교육학박사를 받고 서울시립대교수, 교원대 교수를 역임한 아동교육전문가다. 신창리 출신의 이달형(李達珩)씨도 교육학박사로서 명지대 교수를 지냈다. 월곡리 출신 정필수(丁必洙)씨는 미국 텍사스대에서 경제학박사를 취득,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선임연구위원, 항만유통연구실장 등을 역임했다. 백운리 출신인 오병무씨는 순천대 교수이고, 오성리 출신인 송기재(宋基在)씨는 프랑스 파리대학에서 경제학박사를 취득하고 산업경제계획원 연구원으로 있다.△법조계이룡리 출신의 방봉혁(房峯爀)씨는 제20회 사법시험에 합격,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로 재직하고 있다. 또 신창리 출신의 이영기(李永基)씨는 사시 35회에 합격, 부산지검에서 검사로 일하고 있다. 사계리 왕곡 출신의 김순곤(金順坤83)씨는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 사무국장으로 퇴임, 1980년 옥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업무와 관련해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그는 등기부와 대장의 일원화 문제에 관한 연구 등 다수의 저술도 남겼다.△군인과 경찰신창리 출신의 이재훈(李載薰)씨는 진안경찰서장을 역임했고, 역시 신창리가 고향인 이석형(李碩珩)씨는 육군 중령으로 전북방첩대장, 전주농조장 등을 지냈다.△경제계월곡리 출신의 정동섭(丁東燮)씨는 경희대를 졸업, 현재 태림포장공업(주) 대표다. 경제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대통령국무총리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역시 월곡리 출신인 정영섭(丁榮燮)씨는 서울대를 나와 동일제지 이사로 있다. 재무장관 표창 등을 수상했다.하월리 출신의 정석현(丁石鉉66)씨는 전주공고를 졸업하고 현대건설에 입사해 주경야독으로 한양대를 졸업했다. 작은 공구상으로 시작, 지금의 수산중공업을 일궜다. 금탑산업훈장, 노사문화대상대통령상 등을 수상했으며, 무역협회 부회장 등으로도 활동했다.△문화예술체육계음악과 미술 등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한 인물은 찾기 힘들지만, 유학자들이 남긴 문집이 다수 전해오고 있다. 정유헌의 유헌집, 방만오의 만오유고, 김명은의 명은집, 이경석의 경석시집 등 유고집이 50개가 넘는다. 이런 영향으로 서예에서 출중한 인물들이 나왔다. 1869년에 출생한 이수형은 호남 명필로 유명했는데 남원 양사재(養士齋) 현판 등 다수의 글씨를 남겼다.오룡리 출신의 이규진씨는 전북대의대 교수를 역임한 현대 서예가로 유명하다. 국전에서 여섯 번 특선할 만큼 실력을 갖춘 국전추천작가, 국립현대미술관초대작가,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의 작품이 중국국립서법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산서면 옆에 위치한 임실군 지사면 관곡서원에 있는 경행문(景行門) 편액, 무주 적상산 안국사 청하루(淸霞樓) 편액 등이 소남의 글씨다.마하리 출신의 육종진씨는 제1회 동아미술대전에서 특선, 제5회 동남아현대대전 입선 등 실력을 발휘했다.체육계에서는 마하리 원흥마을 출신인 홍성진(53)씨가 현대건설 배구감독에 이어 현재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뛰고 있다.광해군 9년 내진전방 대창부락에서 출생한 장옥경의 불고정별곡(不孤亭別曲)을 보면 산서인들의 예술적 기질이 엿보인다. 불고정별곡의 첫 구절을 소개한다. 靑山은 에워들고 綠水는 도라가고 夕陽이 거들 때에 新月이 소사난다. 一樽酒 가지고 시름프자 하노라-다음 회에는 완주군 봉동읍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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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 2017.06.27 23:02

[임실군 지사면] 농사 발달하고 서원 많았던 영천 이씨의 관향

임실군 지사면은 삼국시대 백제지역의 거사물현(居斯勿縣)에 속했다가 통일신라시대에는 청웅현(靑雄縣), 고려시대에는 거령현(居寧縣)으로 바뀌었다. 조선시대에 들어 지사방(只沙坊)으로 격하되고, 관할도 지금의 지사면으로 줄어들었다. 남원부에서 관할하다가 1914년에 임실군으로 소속이 바뀌었다.그러나 일찍부터 농사가 발달한 농향(農鄕), 유교 교육기관인 서원이 많았던 유향(儒鄕), 그리고 영천 이씨의 관향(貫鄕) 등 3향의 본고장이다.먼저 농향(農鄕)으로서는 장수 산서면과 남원 덕과면 임실 성수면, 오수면에 둘러싸인 고산 분지로 농경지가 넓어서 일찍부터 농사가 발달하고 살기 좋은 곳이었다. 또 고을은 작았으나 선조 40년(1607)에서 영조 12년(1736)까지 덕암서원, 영천서원, 주암서원, 현주서원, 관곡서원 등 전국에서 유일하게 5개의 서원이 설립 운영되었다. 이들 중 영천서원과 주암서원은 전북도문화재자료 20호와 21호로 각각 지정돼 있으며, 관곡서원에 소장돼 있는 일괄문서들은 전북도 유형문화재 제198호이다.지사면에는 또 영천 이씨의 시조인 이능간을 모시는 이능간 신도비와 이능간묘가 있다. 이능간은 영천리 사촌마을에서 태어나 일찍이 충숙왕의 상왕인 충선왕이 원나라로 끌려갈 때 수행했다가 유배지인 티베트까지 따라가 충성을 다해 모셨다. 또 원나라가 고려국을 일개 성(省)으로 격하시키려 하자 원제 앞에 나가 대의로써 이를 철회케 하여 면좌장이라는 별호를 얻기도 했다. 면좌당이란 왼쪽으로 옷깃을 여미는 것을 면하게 해줬다는 뜻으로 원나라의 속국이 되는 것을 막았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와 달리 원나라는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는 풍습이 있기 때문이다. 이능간은 그 뒤 숙왕 8년에는 반란을 토벌하는 등 많은 국가에 많은 공을 세워 그 벼슬이 문하시중(지금의 국무총리)에 이르렀으며, 영천부원군 작위를 3번이나 받아 조그마한 마을 지사면의 영천리가 영천 이씨(고려시대 지명이 거령현이었기에 거령 이씨라고도 함)의 관향이 되었다. 현주서원에도 면좌당이라는 판액이 남아있다.△정치인최낙철씨(고인)는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소령으로 예편하고 재계에 투신한 뒤 계성제지 사장과 회장, 한국제지공연입협회장, 뉴코리아골프장 회장을 지냈다. 또 민정당 전국구(지금의 비례대표)로 11대 국회의원을 했다.최용안씨(고인)는 국민당 후보로 남원임실순창 지역구에서 12대 국회에 진출했으며, 통일민주당 전북도지부장과 (주)아이스원(해태) 사장, 산림조합중앙회 회장 등을 지냈다.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익산갑지역에서 17대 국회에 진출했다가 문재인 정부에 정무비서관으로 발탁된 한병도 전 의원(50)도 이 고을 방계마을에서 출생했다.△경제계최주호씨(고인)는 수원농림고(현 서울대 농대)를 나와 계성제지 회장과 우성건설 회장, 서울대 동창회장 등을 지냈으며 지사중학교 설립에 크게 공헌했다. 아들이 최낙철 전 국회의원이다.안성호씨(고인)는 동아여객 대표와 남양석유 대표, 전주상공회의소 회장 등을 지냈으며 전주한일고교 설립자이다.조윤현씨(95)는 전주 전일여객 대표 회장을 맡고 있으며, 그의 아들 조정권씨(65)가 사장이다. 김철진씨(고인)는 서울에서 시내버스 회사인 신촌운수 회장과 신길운수 대표, 권투협회장 등을 지냈고, 최낙인씨(85)는 신길운수 회장을 맡고 있다.최낙현씨(82)는 계성제지 대표와 동양건설 부회장을 지냈고, 최윤신씨(72)는 계성제지 대표와 동양고속건설, 성부건설 및 해운대개발 사장을 지냈으며, 최주호씨의 생질인 최용선씨(63)는 우성건설 이사와 시민일보사 대표이사, 코암시앤시 대표이사를 거쳐 한신공영(주) 회장을 맡고 있다. 또 태기전씨(69)는 한신공영(주) 대표이사다. 이석법씨(65)는 제일제당 인도네시아 공장장과 본부 공장장을 지냈고, 최규재씨(54)는 대성식품 사장이며, 김용식씨(62)는 범우공영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김병이씨(55)는 임실치즈피자체인본부장으로 전주시 우아2동 주민자치위원장을 맡고 있고, 이용기씨(64)는 (주)성우스카니아 대표이며, 강석진씨(74)는 (주)과학축산 대표와 우진 B&G 사장이다.△학계이용숙씨(71)는 시인이자 문학박사로 전주교대 총장을 지냈으며, 최선영씨(75)는 전북대 농대 교수와 농대학장을 역임했다.이종섭씨(63)는 서울대 교수로 자연대학장과 입학관리본부장을 지냈고, 전 서울대 교수인 최덕근씨(68)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이다.송영무씨(63)는 순천대 교무처장과 영재교육원장을 지냈고, 최규재씨(54)는 군산대 교수이자, 자동차부품 연구실장이다. 강용구(53)씨는 동국대 생물과학부 교수이고, 최낙관씨(55)는 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이며, 회계사인 최창규씨(46)는 웅지세무대학 교수로 교무처장을 맡고 있다. 전북대에서 인문대학장을 지낸 양병호 교수(59)도 지사면에서 출생했다. 또 행정고시 출신으로 농학박사인 장현규씨(고인)는 전북대 농대 교수와 대학원장을 지냈다.△군인경찰방계마을에서 출생한 이형근씨(고인)는 대한민국 군번 1번으로 육군사관학교 초대 교장과 육군참모총장. 영국과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주재 대사를 지냈다. 양해찬씨(78)는 여단장을 지내고 육군준장으로 예편했으며, 안명선씨(70)는 서울강남경찰서장을 지냈다.△문화예술진도에서 원을 지낸 중산 박이규(고인)는 그의 형 송암 박창규와 함께 조선 낙화를 사실상 창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낙화는 종이나 나무, 가죽 등의 표면을 인두로 지져서 그림이나 문양 등을 표현하는 전통 예술이다.송재영씨(56)는 2003년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 판소리 부문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국악인으로 현재 (사)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이사장 권한대행을 맡고 있다.강석준씨(77)는 교장 출신으로 서예 초대작가였으며, 최정균씨(고인)는 서예국전 최고 장관상을 받은 인물로 원광대 서예학과를 창설해 교수를 지냈다.△기타 분야김한태씨(고인)는 평생을 나무에 헌신하며 성수산 자연휴양림을 조성한 인물로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나무 할아버지로 소개됐다. 대한목재 사장을 지냈다. 이용욱씨(49)는 국토부 민자도로과장을 거쳐 현재는 영국에서 연수중이며, 이종선씨(61)는 국제협력단(koica)에서 태국필리핀 사무소장과 본부 총괄기획부장을 지냈다. 이장섭씨(85)는 80년대 농산물검사소 충북과 전북, 전남지역 소장을 지냈고, 최정근씨(73)는 무역협회 상무이사와 상임고문을 거쳤다. 이용기씨(72)는 대통령 자문위원과 서울보증보험 고문, 열린정책연구원 위원 등을 지냈다.- 다음회에는 장수군 산서면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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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원
  • 2017.06.13 23:02

[군산시 임피면] '탁류' 작가 채만식 고향…고건 전 총리의 '뿌리'

임피면은 1000년이 넘는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백제 때 시산군의 일부였다가 신라에 와서 임피군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고려 때는 현이 되었다가 조선말에 다시 군으로 부르게 됐다.일제 강점기에 만경강 제방을 쌓기 전까지는 포구를 낀 너른 강변지역으로 땅이 비옥해서 살기 좋은 곳이었다. 일찍부터 임피향교가 세워져 교육이 활발하게 이뤄졌는데, 전국 360여개 향교가 세워지던 조선태종 3년에 설치됐다. 군산지역에서는 옥구향교와 함께 유이한 향교였다.오늘날에는 국도 27호선, 지방도 711, 718호선이 교차하는 지역으로 충청, 익산 등 사통팔달 교통의 분기점이며, 군산시 동부권의 축을 이루는 전주 생활 경제권의 중심지이다. 탁류의 저자인 채만식 선생의 고향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축산리 계남마을에는 채만식 선생의 생가와 집필장소, 묘가 위치해 있다.△정관계고건씨(79)는 본적이 임피로 강원지사와 전남지사, 교통부장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거쳐 85년 민정당 후보로 군산옥구지역에서 12대 국회의원이 됐다. 이후 내무부 장관(87년)과 서울시장 2차례, 명지대 총장(94년),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등을 거쳐 2003년에 35대 국무총리에 올랐다.그의 아버지 고형곤씨(고인)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연세대학교와 서울대 철학과 교수, 전북대학교 총장(59년)을 거쳐 63년에 군산옥구지역에서 당시 야당인 민정당 소속으로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으며, 이후 통합야당인 민중당의 정책위의장과 사무총장을 지냈다.전주이씨 집안인 이요한씨와 이용택씨, 이을식씨는 비슷한 시기에 지사를 지냈다. 이요한씨(고인)는 45년 해방 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에서 활동했으며, 52년 자유당 전북도당 위원장을 하다가 전북지사로 발령받아 55년까지 재임했다.또 이용택씨는(고인) 수원고등농림 동기인 장면 선생과 함께 야당에 소속되어 민주화 투쟁을 하다가 60년 4.19이후에 전북지사로 취임했으며, 농업협동조합 중앙회장을 지냈다.이을식씨는(고인) 1951년부터 53년까지 제3대 전남지사를 지내면서 오늘날의 전남대학교를 설립한 주인공이다. 당시 이 지사는 전남도립대 설립을 추진했으나 전남도의회에서는 정부의 예산지원이 없다며 사흘 동안이나 반대했다. 그러나 이 지사는 2세 교육의 필요성을 도의회에 간곡히 호소해 의원 만장일치로 전남대 설립안을 가결시켰다.또 13, 14, 15대 국회의원을 지낸 채영석씨(고인)는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출신으로 민추협 대변인과 평민당 수석부총무,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등을 지냈다. 권형신씨(71)는 군산시장과 남원군수, 내무부 재경국장, 한국소방검정공사 사장 등을 지냈다.△문화예술탁류의 작가 백릉 채만식(고인)은 일본 와세다 대학교 부속 제일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했으나 중도에 학업을 그만뒀다. 24년 춘원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에 단편 세길로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해 탁류(37), 천하태평춘(38), 레디메이드 인생(34), 패배자의 무덤(39), 제향날(37) 등 장편과 단편소설, 희곡, 평론, 수필 등 290여 편을 썼다. 식민지 농민의 궁핍상과 지식인의 고뇌, 도시 하층민의 문제 등을 실감나게 그렸지만, 친일부역작가라는 오명도 받고 있다.이근영씨(고인)는 백릉보다 8년 뒤인 1910년에 태어나 1935년 신가정에 금송아지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그의 작품은 주로 농촌을 배경으로 근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들을 통해 현실의 모순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으나 월북작가라는 이유로 그동안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최근 군산시가 신흥동 일대에 낡은 주택 두 채를 리모델링해서 백릉을 주인공으로 하는 탁류문학관과 이근영을 포함한 향토작가 문학관을 조성한다는 계획이어서 새로게 관심을 받고 있다.문인화가이자 서예가인 남천 정연교씨(73)는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상(87년) 등 수많은 수상 경력이 있으며, 한일친선 교류전, 한국현대미술초대전 등 다수의 전시회도 열었다. 원광대 미대 교수를 지냈다.석향 정의주씨(54)는 남천의 조카이면서 문하생이기도 하다. 원광대 미대와 원광대 대학원을 다녔으며, 문인화 부문 우수상을 두 차례 받고 2003년 국전 초대작가를 지냈다. 또 대한민국서도대전 심사위원,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 부문 심사위원 등을 지냈다.△기타 부문이인식 선생(고인)은 1901년 만석꾼의 아들로 태어나 3.1만세 운동 때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다가 체포돼 옥살이를 했으며, 일본 동양대학에서 수학 중 항일운동으로 퇴학당했다. 이후 전답을 팔아 상해 임시정부에 당시 8000원의 독립자금을 전달했으며, 독립 후에는 임피중학교 교장으로 후학 양성에 힘썼다. 군산공원에 동상이 있다.김종량씨(고인)는 동산학원 이사장 출신으로 군산신문사를 창설해 초대 사장을 지냈으며, 서울 한성신문사 사장을 겸임했다. 이문희씨(고인)는 일본 유학파 출신으로 중앙일보사 편집국장을 지냈다.배일헌씨(61)는 해사 34기 출신으로 준장 예편했으며, 작전사작전참모처장 잠수함 전단장과 해군 기초군사교육단 단장을 지냈다.정종관씨(54)는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와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대전고법과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을 거쳐 현재 의정부지법 법원장을 지내고 있다. 한상원씨(43)는 사시 47회 출신의 변호사다.유병현씨(54)는 고려대에서 법학 박사를 받은 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학교 기획예산처 처장과 대외협력처 처장, 기금기획본부 본부장을 맡았다.이종영씨(64)는 1대 옥구군의회 의원과 2,3대 군산시의회 의원으로 3대 군산시의회 전후반기 의장을 지냈다. 또 진희완씨(53)는 4, 5, 6, 7대 군산시의회 의원으로 7대 군산시의회 의장을 지냈다.이진원씨(83)는 학교 교장 출신으로 군산시문화원장을 맡고 있으며, 군산시청 수도사업소장 출신의 김인생 국장은 현재 교육 중이다.이규철씨(79)는 기술고시 4회 출신으로 한국정수공업주식회사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다.양삼영씨(고인)는 37년부터 동아일보 문선부에서 견습사원으로 일했으며, 당시 사회부에서 근무했던 이근영씨 등의 도움으로 39년 일본 유학길에 오른 뒤 사업가로 변신해 재일거류민단 의장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펼쳤다.- 다음회에는 임실군 지사면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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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원
  • 2017.05.30 23:02

[부안군 보안면] 유형원 '반계수록' 완성한 곳…군인 출신 많아

부안군 보안면은 뿌리 깊은 역사를 지닌 곳이다. 우선 보안(保安)이라는 이름 자체가 1077년이나 됐다.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보안현이 생겼고, 보안현은 이후 조선 태종 16년(1416년)에 부령현과 합쳐지며 부안진이 됐다. 1895년 부안진이 군(郡)으로 승격하면서 보안현의 옛 이름을 그대로 살린 오늘날의 보안면을 뒀다.보안면은 조선 중기의 실학자 반계 유형원이 반계수록을 완성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서울 사람인 반계가 이곳에 들어온 곳은 9대조인 유관의 사패지(왕이 큰 공을 세운 신하에게 내린 땅)가 부안현 우반동(오늘날에는 우동리라고 불림)에 있었기 때문이다. 반계라는 아호도 마을을 가로지르는 시냇물의 이름에서 따왔다. 반계는 32세 때 이곳에 들어온 뒤 우반동 산자락에 반계서당을 짓고 학문 활동과 제자 양성에 몰두했다. 반계는 이곳에서 벼슬에 나가지 않고 평생을 살면서 이상향을 건설하고자 학문연구에 전념했다. 우리나라 실학사에 길이 남을 반계수록 26권은 근 20년에 걸쳐 집필된 것으로 영조 46년(1770년) 왕의 특명에 의해 간행되어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농촌을 부하게 하고 민생을 넉넉하게 할 그의 여러 가지 주장과 사상은 이익, 안정복, 정양용 등에게 이어져 훗날 실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으로 발전했다.보안면은 또 고려 중기의 가마터인 유천리(현 외포리) 청자도요지가 있는 곳이다. 넓은 벌판의 구릉 주위로 40여개의 가마터가 널려 있는데, 11~14세기의 뛰어난 순청자와 상감청자는 물론 고려백자, 상감백자, 진사백자, 1m 이상의 매병 등이 출토되었다. 유천리는 전남 강진 지방과 함께 우리나라 청자의 대표적인 제작지로 알려져 있다. 국가사적 제69호인 유천리 도요지의 복원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011년에 부안청자박물관이 문을 열었다.이 밖의 역사문화 자원도 풍부하다. 부안김씨 종중의 400~500년 된 문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연구에 필요한 문서들로 6종 80점이 보물 900호로 지정돼 있다. 또 월천리 석장승은 환웅과 단군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만들어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희귀한 유형이어서 전북도 민속자료 30호로 지정돼 있다.△군정계보안이라는 이름의 영향인지 군 출신이 많다. 고명승씨(82)는 육사 15기 출신으로 전두환 정권 시절에 수경사령관, 보안사령관, 3야전군사령관 등을 지내고 대장으로 예편했다. 이후 14대와 15대 총선 때 부안에서 여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동생인 고진석씨(80)는 육사 출신으로 한미연합부사령관을 지냈으며 소장으로 예편한 뒤 비어콤광고 대표이사를 거쳐 BYC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육사 30기인 임원택씨(63)는 준장으로 예편했다.하석교 출신의 심재옥씨(57)는 해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해군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국방대학원 정규과정을 수료했으며, 제6항공전단장을 끝으로 준장으로 예편했다.△관계이명수씨(66)는 행정고시 출신으로 농림부 차관을 거쳐 주 덴마크 대사관 대사, 농협중앙회 사외이사 등을 지냈다.허동일씨(고인)는 정읍과 부안, 진안 군수를 지냈으며, 전북도의회 허남주 의원(55)이 그의 여식이다.신진하씨(83)는 전북도정책보좌관, 김제군수, 전주 완산구청장 등을 지냈고, 윤태섭씨(72)는 전주 덕진구청장과 전북도립국악원장을 지냈다. 또 청와대에는 김남철 행정관(53)이 근무하고 있으며, 전북도 임노욱 탄소산업과장과 한동일 새만금국제협력과장도 보안면 출신이다. 이현근씨는 부안보건소장을 지냈다.△문화예술체육김오성씨(71)는 중졸 학력이지만 독학으로 석조(石彫)를 익혀 미술계에 큰 파문을 일으킨 인물이다. 73년 제23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남자 좌상인 변산반도로 특선한 데 이어 83년에는 국전 초대작가가 되었다. 금구원은 농민교육운동을 했던 선친이 농민학교로 조성하려던 변산에 있으며 그 곁에는 국내 첫 개인천문대도 갖추고 있다.김기찬씨(56)는 1994년 〈자유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전북시인상을 받았다. 전주를 무대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효주씨는(21) 2015년 포항스틸러스에 입단한 공격수이다.△봉사경기도 용인에서 서전농원을 운영한 김병호씨(75)는 집에 먹을 것이 없어서 열여섯 살에 무작정 상경한 뒤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2006년 부안군에 나누미 근농장학금 10억 원을 종잣돈으로 출연해 오늘날 부안군이 전국에서 최초로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는데 기초를 놓았다. 또 2009년에는 평생 동안 모은 300억원을 카이스트에 기부했으며, 뒤이어 그의 부인 김삼열씨도 카이스트에 50억 원을 추가로 기부했다.김가선씨(고인)는 일제때 우동제를 막는데 앞장섰던 분으로 알려졌으며, 70년대 초반 민주공화당 이병옥 국회의원의 심복으로 보안중을 설립하는데도 기여한 인물이다.△학계전북도골프협회장을 맡고 있는 전북대 강종구 교수(61)와 전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를 지낸 전주대 김종국 교수(65), 그리고 전북대 농학과 교수를 지낸 구자경씨 등이 있다.△기타분야재계 인물로는 JTV 전주방송의 대주주인 일진그룹 허진규 회장(77)이 있다. 허 회장은 68년 일진금속공업, 82년 일진경금속을 설립했으며, 2010년에는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조직위원장을 지냈다.김태철씨(56)는 공안통의 부장검사 출신으로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종훈씨(57)는 전라북도 근대5종연맹 회장과 한나라당 전북도당 대변인을 거쳐 한국농어촌공사 상임감사를 지냈다.보안과 줄포, 진서농협이 통합해 탄생한 남부안 농협에서는 최우식씨와 고석진씨가 조합장을 지냈다.- 다음 회에는 군산시 대야면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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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원
  • 2017.05.16 23:02

[진안군 안천면] 일부 마을 용담호 수몰 아픔…한승헌 전 감사원장 고향

대덕산과 국사봉 지장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안천면은 본래 용담현의 북면이었는데, 북면은 이후 일북면과 이북면으로 나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이북면 전부에 일북면 삼락리, 무주군 부남면 교동 일부를 흡수해 안천면이 됐다.예로부터 하양 허씨와 청주 한씨, 의성 정씨, 낙안 김씨, 장수 황씨 등 5대 문중이 각 마을에 정착해 살아왔으며, 집성촌 마을마다 서당이 있어 경쟁적으로 교육에 힘썼다.면적이나 인구수로 보면 전국에서도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진안읍과 무주읍, 금산읍, 장수읍과 각각 20km씩의 거리에 있어 교통도시 역할을 했다. 한 때는 5일장이 서기도 했다. 또 전국에서 유일하게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통합 운영하는 안천초중고교가 이 지역에 있다.2001년 전북과 충남에 맑은 식수원을 공급하는 용담댐이 건설되면서 삼락리 대부분과 노성리신괴리 일부분이 수몰되었으며, 안자천(顔子川)이 흐른다고 해서 안천면(顔川面)이라고 했다.안자천은 진안천, 주자천, 정자천 등 용담댐으로 흘러드는 물줄기 중에서 가장 길이가 짧으며, 세수나 할 만큼 작은 물줄기라는 뜻으로 얼굴 안(顔)자를 쓴다. 물이 금방 말라서 항상 가뭄이 심한 지역이었으나 용담댐이 생긴 뒤로는 안자천의 물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항상 마을 앞에 넘쳐난다. 어렵기만 하던 안천의 살림이 이때부터 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용담댐관리사업소가 위치해 있다.△관계관계 인사로는 우선 전북대 법대를 졸업한 한승헌 전 감사원장(83)이 꼽힌다. 한때 검찰에 근무하기도 했으며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에 양심수들을 변론하는 등 인권변호사로써 이름을 날렸다. 72년 여성동아에 쓴 〈어떤 조사(弔辭)〉로 필화를 겪으며 구속됐으며, 이 때 129명의 변호인단이 변론에 나서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17대 감사원장과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 전북대 및 가천대 석좌교수 등을 지냈다.허재영씨(83)는 국토개발원장과 서경대 총장, 하버드대학원 객원교수를 거쳐 건설부장관을 지냈으며, 한때 안천면 서울향우회장을 맡기도 했다. 완주군수와 정읍군수를 지낸 허석철씨(고인)가 부친이다.또 허홍석씨(고인)는 무주고창옥구남원김제군수를 지냈고, 허재송씨(고인)는 전북도청 민방위국장이었으며, 성점수씨(61)는 전주세무서장과 서울 동작세무서장을 지냈다.△교육계한연종씨(83)는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군산대 자연과학대 수학과 교수로 부임한 뒤 91년 3월부터 95년 2월까지 군산대 초대 직선제 총장을 지냈다. 허영민씨(84)는 전북대 법대학장 및 행정대학원장,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헌정제도연구위원, 전북도교육위원회 교육위원을 지냈으며, 초대부터 3대까지 진안교육청 교육감(당시에는 시군교육청의 장을 교육장이 아닌 교육감으로 불렀다)을 지낸 허정석씨(고인)가 부친이다. 한 전 총장과 허 전 학장은 한승헌 전 감사원장의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전북대 영문과 정석권 교수(62)와 한양대학교 의대 교수 출신으로 광명 새움병원 영상의학과 원장을 맡고 있는 허정남씨(48)도 안천 출신이다.교육계 관료로는 도교육청 부교육감과 문교부 체육국장을 지낸 허영묵씨(고인)가 있으며, 진안교육장을 지낸 허영기씨(83)와 전주에서 제5대 도의원을 지낸 허영창씨(79)가 그의 동생이다.현재 서울에 살고 있는 황병수씨(74)는 전북도교육청 부교육감 출신이며, 허완규씨(80)는 전북교육청 교육위원회 부의장을 지냈다.황민주씨(76)는 전교조 출신으로 전북도교육위원회 위원과 전북교육연구소 이사장, 동학혁명기념사업회 이사 등을 지냈다. 한영선씨(70)는 전북장애인학부모회 회장과 전북도초등교장단협의회 회장 등의 경력이 있다.△공공기관 등황의영씨(66)는 농협중앙회 진안군 지부장과 전북농협 본부장, 농협 상호금융총본부장(상무)을 거쳐 현재는 (주)NH무역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전북발전연구원 초대 원장을 맡았던 한영주씨(67)는 뒤에 대통령자문 지속발전위원회 위원을 지내기도 했으며 현재는 도시 및 지역계획연구원 원장이다. 한영선 전북장애인부모회 전 회장의 동생이다. 성기현씨(60)는 담배인삼공사(KT&G) 전북과 경기지역 본부장을 지냈다.△재계길영우씨(73)는 전북도청과 남원, 군산, 완주, 장수 등에서 공직생활을 하다가 서울로 상경해 사업가로 변신했으며, 미래로정보통신 회장과 고려대학교 이사, 리치몬드 재산운용 회장을 맡고 있다.성흥수씨(69)는 신동아고속관광 대표로 재경진안군민회 회장을 지냈으며, 안천초중고 학생들을 위해 수학여행비 부담하는 등의 도움을 주기도 했다.△사법계임시규씨(57)는 서울과 부산 고등법원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 등을 걸쳐 현재는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길영인씨(56)는 아세아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이며, 박문우씨(56)는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박문우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황종호씨(84)는 전북대 법대를 졸업하고 전주지방법원에서 부이사관으로 근무했었다.△기타 분야허진호씨(54)는 8월의 크리스마스로 데뷔한 영화감독으로 98년 19회 청룡영화상 대상과 2001년 22회 청룡영화상 최우수감독상 등을 수상했다.허재안씨(65)는 경기도의회 의장과 시도의회의장협의회 의장을 지냈다.정남균씨(39)는 세계 동아마라톤 우승자이며, 국가대표로 시드니올림픽 마라톤 종목에 참가했다.김환식씨(고인)는 시조시인이자 아동문학가로 충남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으며, 한종률씨(84)는 세종시노인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다음 회에는 부안군 보안면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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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원
  • 2017.05.02 23:02

[고창군 흥덕면] 독립운동 투신한 고씨 집안…명창 김소희 등 배출

흥덕면은 고창의 북동부에 위치해 있으며, 고창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교통도시이다. 동쪽으로는 성내면, 남쪽으로는 신림면, 남서쪽으로는 부안면, 북쪽으로는 부안군 줄포면이 있고, 서쪽 일부는 황해의 곰소만과 접해 있다.비산비야라고 할 만큼 해발고도 50m 미만의 구릉지가 많으며, 대보화강암이 풍화되어 형성된 적황색토가 널리 분포한다. 고부천 주변에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으며, 성내면과 경계에 있는 동림저수지가 관개용수를 공급한다.백제시대에는 흥성현, 고려시대에는 흥성현/장덕현, 조선 태조 때 흥덕현에 속했다. 조선 말기에 현내면이 되었다가, 1914년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북면과 일동면, 부안군 건선면, 고부군 일부를 병합하여 흥덕면이 되고 고창군에 편입되었다.△의병과 파리장서1592년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9월 18일 채홍국을 비롯한 92명의 선비들이 흥덕고을에서 삽혈동맹으로 의병소를 설치하고 활동에 나섰다. 이후 정읍과 장성, 담양, 곡성, 순천, 남원, 순창 등에서 전과를 올렸다.1919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 평화회의를 통해 일제의 악랄한 무단통치를 전 세계에 알리고 조선의 독립의지를 호소하는 사건이 있었다. 파리장서로 불리는 이 청원서에는 전국의 유림대표 137명이 서명했는데, 흥덕지역 한 집안 출신인 고석진, 고예진, 고순진, 고제마 등 네 분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정계1901년 사천리에서 태어난 신용욱씨(고인)는 일본 오꾸리 비행학교와 미국 실라 헬리콥터학교 조종과를 졸업하고 45년에 대한국민항공사(KNA)를 설립한 민항의 선구자이다. 2~3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고수 조산저수지, 성내 중앙저수지, 신림 계내저수지 등을 준공했으나, 비행기를 일본에 자진 헌납한 행위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 있다.같은 마을에서 1917년에 때어난 신용남씨(고인)는 일본 동경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군정청 사법부 형사과장과 법무부 용도과장을 거쳐 제7대 국회의원이 됐다. 57년 골프에 입문해 1, 2, 7, 8, 12회 한국 아마추어 골프 챔피언을 지내기도 했다.지방정치인으로는 전북대 수의학과 출신으로 4대와 5대 전북도의회 의원을 지낸 흥덕리 출신의 김용원씨(고인)가 있다.△법조계이홍훈 전 대법관(71)은 신송리에서 태어나 서울 고등법원 부장판사와 제주지방법원 법원장, 대법원 대법관 등을 지냈다. 4대 법조윤리협의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장과 서울대학교 법인이사장을 맡고 있다.남준희 변호사(52)는 석교리에서 태어나 부산과 전주지방법원 판사, 전북대학교 고문변호사,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법무법인 온고을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다.박태기 변호사(53)는 흥동에서 태어나 서울중앙지검과 동부지검 특수부, 전주지검, 대구지검 등을 두루 거친 형사전문 변호사로 현재 법무법인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원성윤 변호사(41)는 신송리 출신으로 신아법무법인에서 활동하고 있고, 흥덕리 출신의 성춘일 변호사(39)는 기자를 하다가 법조인이 되어 남양유업 사태를 시작으로 공익사건에 적극 나서고 있다.제하리 출신의 고광노 변호사(53)는 검사 출신으로 현재 법무법인 양헌 변호사로 일하고 있으며, 흥덕리 출신의 박영기씨(49)는 세무사이자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신송리 출신 이창현씨와 흥덕리 출신의 최정용씨는 군 법무관 판사이다.△관계흥덕리 출신의 진동수씨(68)는 조달청 청장과 재정경제부 제2차관, 한국수출입은행 행장을 거쳐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장관급인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신송리 출신의 김영근씨(63)는 국세청 근로소득지원국장과 대전국세청장을 거쳐 2010년 대한주정판매(주) 대표이사에 취임했다.흥덕리 진정수씨(65)는 국토연구원 감사실장, 선임연구위원, 한진해운 상무 등을 지냈고, 진갑종씨(74)는 강원지방병무청 징집관과 창원지방병무사무소장, 경남지방병무청장을 지냈다.신송리 출신의 원영희씨(고인)는 66년 농림부 기획관리실장을 지낸 뒤 70년 농협대학 학장을 맡았다.흥덕리 박주홍씨(82)는 전주 덕진구청장을 지냈고, 오호리 국종철씨는 95년에 고창부군수였다.신송리 김희철씨와 원종찬씨는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교관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흥덕리 고재춘씨는 태권도 진흥재단 마케팅부장을 맡고 있다.흥덕리 출신의 박용기씨(66)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과 부원장 등을 지냈다.△문화예술체육1917년 사포리에서 출생한 만정 김소희(고인)는 광주에서 이화중선의 공연을 보고 소리의 세계에 푹 빠졌다. 48년 여성국악 동호회를 설립해 최초의 여성국극 〈햇님 달님〉을 무대에 올렸고 64년 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기/예능 보유자가 되었다. 93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지냈으며, 안향련, 한농선, 박초선, 박송희, 김동애, 오정숙, 안숙선, 성창순, 남해성, 이일주, 신영희, 박양덕, 오정해 등을 가르쳤다.오태마을 출신 국악인 김완수씨(72)는 무형문화재 제22호인 마들농요보존회 회장이자 예능 보유자다. 마들농요는 서울 노원구가 아파트촌으로 변하기 전 노원지역의 옛 모습인 마들평야 지대에서 농사지을 때 농부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부르던 노래다.사포리 출신의 소설가 김장천씨(83)는 고창예총 이사를 지내고 제6회 고창문학상을 수상했다. 또 신송리 출신의 시인 원용수씨(고인)는 서라벌예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시집 갈대골과 자서전 가지 많은 나무 등을 남겼다.체조선수 서연희씨(48)는 치룡리에서 태어나 86년 아시안게임 이단평행봉에서 금메달을 따냈으며, 오호리 출신의 신승찬씨(23)는 2015년 세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여자복식과 혼합복식, 혼합단체전 등 배드민턴 3관왕에 올랐다.△교육계흥덕리 박주황씨는 84년 전주대 초대 총장을 지냈고, 박만기씨(79)는 서울대 약학대학장을 지낸 명예교수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출신의 박용기씨는 박만기 명예교수의 동생이며, 또 다른 동생 박흥기씨는 김천대 교수로 있다. 박복기씨(71)는 호원대 교수를 지냈다.신송리 원윤희씨(60)는 서울시립대 교수와 서울시립대 총장, 조세연구원 원장 등을 지냈고, 원찬희씨(60)는 전북대 교수, 원재강씨는 경기대 교수, 원택희씨는 강원대 교수, 이상범씨는 아주대 교수, 조숙희씨(58)는 중앙대 교수로 있다.이선동씨(57)는 상지대 한의학과 교수, 이창훈씨는 조선대 교수이며, 사천리 신재철씨는 아주대 교수, 용반리 채규현씨(47)는 세종대 교수로 있으며, 오호리 출신 김덕수씨(69)는 군산대 교수를 지냈다.사천리 출신의 신국중씨(73)는 전주교육장과 전북도교육위원회 의장, 전북체육회 고문 등을 지냈다.△재계변재용씨(61)는 한솔교육 대표이사 회장으로 2007년 한국의 경영대상 고객가치혁신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고삼상씨는 1998년에 민간주택을 건설하는 양우건설을 설립한 창업주로 현재 양우건설 회장을 맡고 있다.신송리 이영훈씨(72)는 대우그룹 이사와 광양제철 및 옥포조선소 건설 현장소장을 지냈으며, 94년에 산업포장을 받았다.-다음 회에는 진안군 안천면 편이 이어집니다

  • 기획
  • 이성원
  • 2017.04.18 23:02

[순창군 동계면] 과실 많이 생산되는 농촌…황숙주 군수 등 배출

순창군 동계면은 동쪽으로는 남원시 사매면과 대산면, 북쪽으로는 임실군 덕치면과 삼계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동부에는 섬진강의 지류인 오수천, 서부에는 섬진강이 흐르는 섬진강 상류 지역이며, 용궐산과 풍악산, 남산이 고을을 감싸고 있다. 예로부터 밤과 감, 매실 등 과실이 많이 생산되는 부촌이었다.원래는 남원 소경(小京)에 속하는 영계방이었으며, 조선시대에도 아동방과 영계방, 성남방으로 나뉘어 남원부에 속했다.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아동면과 영계면을 통합해 동계면이 되면서 순창군에 귀속됐으며, 성남면은 남원군 대산면에 통합됐다. 또 1935년 남원군 대산면 일부를 동계면에 편입했다.△정관계지난 2011년 재선거를 통해 정치인으로 변신한 황숙주 군수(70)는 감사원 출신으로 감찰국장과 특별조사국장, 감사교육원 교육위원 등을 지냈다.황군수의 동계초 동창인 강대민씨와 이종기씨는 1년 후배인 황금주씨와 함께 노무현 정부시절에국정원 국장으로 3명이 동시에 근무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인수위에도 참여했던 강씨는 기획총무국장, 이씨는 국내수사 담당국장, 그리고 LA 부총영사와 베트남 공사를 지낸 황금주씨는 해외담당국장을 했다.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 나쁜 사람들이라고 말해 경질된 문체부 진재수 전 체육정책 과장도 동계 출신이다.정계 인물로는 2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정두씨(고인)가 있다. 11.3 광주학생독립운동에 가담하고 상해임시정부에 자금을 전달했다가 전주지검에 구속돼 3년간 옥고를 치른 인물이다. 워낙 조리 있게 말을 잘해 말 잘한다 김정두로 알려졌다.지역내 정치인으로는 순창 농지개량조합 전무 출신으로 23대 순창군의회 의원과 3대 전후반기 의장을 지낸 김주곤씨(82), 4/5대 순창군의회 의원과 5대 순창군의회 하반기 의장을 지낸 양승종씨(56)가 있다.△학계교육계양복규씨(79)는 동아당약방 대표로 대한 한약협회 중앙회 대의원 의장을 지냈으며, 동암고와 사회복지법인 동암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지난 2009년에 전북도민의장을 받았다.안준태씨(80)는 문교부 사회교육과장과 법무담당관, 전북대 사무국장을 거쳐 전북교육청 부교육감을 지냈으며, 그의 형 안준영씨(85)는 제1회 기술고등고시에 합격해 조달청 시설국 설비과장을 지낸 뒤 대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순창군교육위원회 의장을 지낸 안종선씨(고인)가 이들의 아버지이다.양진욱씨(66)는 전북교육연수원 총무부장과 교육위원회 의사과장, 군산교육문화회관 관장을 지냈다.우석대 김두규 교수(58)는 독일 뮌스터대학교대학원에서 독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과 신행정수도 건설추진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냈다. 풍수에 대한 관심이 많아 여러 저서와 풍수학 사전을 편찬하기도 했다. 우석대에는 또 김경애 패션디자인학과 교수가 재직하고 있다.군산대 최동현 교수(63국문학)는 30여 년 간 판소리 연구에 매진하면서 판소리와 관련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고 판소리 다섯 바탕의 바디별 전집을 한영 대역으로 완간하기도 했다. 제5회 동초대상을 받았고 군산대 인문대학장과 한국미술인총연합회 전북지회장을 지냈다.전주대 박병도 교수(59)는 전북도립국악원예술단 예술감독을 지냈으며, 광주비엔날레와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 연출을 맡기도 했다. 현재는 전주대 문화융합대학장을이다.양창호씨(70)는 호원대 경영학부 학과장, 행정부처장, 관광대학 학장을 지냈고, 김병곤씨(47)는 강릉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황의열씨(63)는 경상대 인문대학 교수회장과 도서관장을 지내고 한문학과 학과장을 맡고 있다. 서원대 중어중문과 황선주 교수(59)는 국정원 국장을 지낸 황금주씨의 동생이다.△사법계황면주 변호사(고인)는 남원지방법원 판사, 전주지방법원 부장판사 등을 지냈으며, 전북도립박물관 설립추진위원장, 갑오농학혁명 기념탑 건립추진위원장, 전북농학보존회 이사장 등을 맡아 고향발전에 이바지했다. 황의열 경상대 교수가 아들이다. 김종세(82) 변호사는 인천지방변호사회 회장과 2005년 인천 항공사 법률고문 등을 거쳤으며 재경순창군민회 789대 회장과 재경도민회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전주지검에도 근무했던 한동영 검사(57)는 서울고등검찰청 검사로 있고, 전주지검 형사1부장을 지낸 정인균씨(59)는 부산고등검찰청 검사를 끝으로 변호사를 개업했다.홍은숙 판사(39)는 서울북부지방법원에 근무하고 있다.△문화예술동계면 수장리 가작마을에서 태어난 김세종(고인)은 어려서부터 동편제를 익힌 명창이자 판소리 이론의 선구자다. 조선 창극사(朝鮮唱劇史)에는 그를 헌종철종고종 3대에 걸친 동편제 인물로 송우룡박만순과 함께 소개되고 있다. 판소리 이론은 신재효에게서 지도받았다고 한다.정우현씨(61)는 2000년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특선의 예예(특선 5회)를 획득했으며 2003년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서예가다. 황갑주씨(87)는 국문학 박사이자 시인이다. 미국으로 이주했으나 현재도 고향에 시집 등을 보내오고 있다.△재계김재호씨(고인)는 72년 호남자동차공업사 회장, 76년 제일여객 대표이사, 77년 신진교통 회장, 86년 호남고속 사장 등을 지냈으며 89년에 전북도민일보사 회장이 됐다. 전북도민일보는 현재 아들인 김택수 회장(68)이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 김씨는 또 전북도택시운송조합 이사장 등을 맡고 있으며 전주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냈다.김학선씨(고인)는 현대산업개발 사장을 지냈고, (사)옥천향토문화연구소 이사장을 지낸 이중환씨(82)는 제일냉풍 주식회사 회장을 맡고 있다.(주)나라감정평가법인 대표를 지낸 정균씨(69)는 풍수와 관상에 조예가 깊었으며 정주영 전 현대그룹회장이 생전에 곁에 두고 챙겼다고 전해진다.황호연씨는 한국도자기(주) 회장과 전국 도자기협회장을 지낸 월간도예 발행인이며, 이용윤 삼보상사 대표는 순창군 향우회장을 지내며 동계장학회에 10억 원을 기증했다.정정현씨(77)는 (유)한국주류상사 대표이고, 김중민씨(61)는 (주)참존식품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진재철씨(72)는 광동한샘 대표이사 사장과 (주)동한마케팅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지난 2006년 전북중소기업청장을 지낸 양평식씨(67)도 이곳 출신이다.△종교계원팔연씨(69)는 전주 바울교회 담임목사이며, 기독교 대한성결교회 총회장과 전북도 기독교연합회 회장,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중앙이사 등을 지냈다.황의태씨(66)는 원불교 중앙총부 교정원 기획실장과, 원음방송 사장. 원불교신문사 사장 등을 거쳤으며, 황면주 변호사의 아들이다.△기타황의옥씨(76)는 전주시 약사회장과 중앙신용협동조합 이사장, 88올림픽범민족추진협의회 부의장, 대한약사회 회장,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전북지부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전주시자원봉사센터 이사장을 맡고 있다.임귀래씨(72)는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장을 지냈으며, 최형원씨(56)는 체육학 박사로 전북도체육회 훈련과장과 총무과장 등을 거쳐 현재는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정승균씨(49)는 국비로 미국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해군준장이며, 우리나라 최초로 전투함을 해외에 파병한 청해부대 작전을 계획했다. 뛰어난 작전지휘로 7차례에 걸쳐 각국의 선박들을 해적의 피랍 위협에서 구출했다.- 다음 회에는 고창군 흥덕면 편이 이어집니다.

  • 기획
  • 이성원
  • 2017.04.04 23:02

[김제시 백산면] 조선시대 전북 문필 한 축 이룬 곳…서예 대가 많아

김제시 백산면은 예로부터 흰 돌이 많아 백석면(白石面)으로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백석면과 연산면 등 일부지역이 합쳐지면서 백석면의 백과 연산면의 산자를 따서 백산면이 되었다.위치상으로는 동쪽에 용지면, 서쪽에 만경읍과 성덕면, 북쪽에 청하면과 공덕면, 남쪽에 김제시가 있으며, 김제-익산을 잇는 도로가 남북으로 지난다. 해발 58m의 조종산이 가장 높다고 할 만큼 전 지역이 해발고도 50m 내외의 구릉으로 되어 있으며, 동부의 부용천(芙蓉川) 주변과 남서부의 신평천(新坪川) 주변에 충적평야가 전개된다.예로부터 효부와 열녀가 많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으며, 문화재로는 이석정 선생 생가(전북기념물 21호), 안위장군 묘, 백산서원, 학당서원 등이 있다.1966년부터 호남 야산개발사업이 시작돼 69년에 백산저수지가 완공됨에 따라 농사짓기가 좋아져 친환경 농특산물 생산지가 되었다. 가축사육도 비교적 많은 편이다.새만금 배후 거점으로 서해안고속도로 및 호남고속도로와 인접한 부거리 일원에 2994억 원을 투자해 지난 2015년 298만㎡(90만평) 규모의 지평선산단을 완공해 서해안시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유학서예전라도의 서화를 말할 때 흔히 전남은 그림이고, 전북은 글씨라고 한다. 그리고 조선시대 전북 문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곳이 바로 백산지역이다. 송재(松齋) 송일중(1632-1717)과 석정(石亭) 이정직(1841-1910), 유재(裕齋) 송기면(1882-1956), 그리고 유재의 아들인 강암(剛菴) 송성용(19131999)과 손자인 아산(我山) 송하영(19271992) 등이 모두 백산 출신이다.송재는 초서와 예서, 대자에 능했으며, 그의 글씨는 중국 강희제도 찬사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제 벽골제가 무너져 전답이 침수되자 사재를 털고 수령 방백의 도움을 받아 보수하기도 했다.석정은 서화와 실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간재(艮齋) 전우(1841-1922)와 함께 호남 유학을 이끌었다. 실용학문을 중시해 농기구 등을 제작하고 한의학에도 관심이 깊어 많은 환자를 치료했다. 연석산방으로 일컬어지는 그의 생가는 1974년에 전북도기념물 제21호로 지정됐다.유재는 금재 최병심(1867-1957), 고재(顧齋) 이병은(1877-1960)과 함께 조선의 마지막 선비인 간재의 3제자 중 한 명으로 꼽힐 만큼 학문에 탁월했다. 또 같은 동네에 살던 석정에게서 학문과 사군자 등을 배웠으며, 서예에도 뛰어나 묘비문을 청하는 사람이 줄을 이었다. 평생 노소귀천의 구별 없이 사람을 대하고 후학들을 가르쳤으며 창씨개명을 거부했다.서예의 대가 강암은 유재의 삼남으로 아버지에게서 한학과 서예를 익혔으며, 간재의 3제자 중 한 명인 고재 이병은(1877-1960)이 장인이다.아산(我山) 송하영(1927~1992)은 유재의 장손으로 한학과 서예, 문장에 능하며 초대 김제미술협회 회장을 지냈다. 우산(友山) 송하경(76)은 강암의 둘째로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와 대학원장, 박물관장,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1~3회 조직위원장, 그리고 예총회장을 지냈다.△정관계6선 국회의원으로 국회 부의장을 지낸 운재(芸齋) 윤제술(19041986)이 대표적인 정치가이다. 운재는 유재의 조카사위이자 강암의 사촌 처남으로 유재와 간재의 문하에서 공부하다가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으며, 남성고 교장으로 퇴직한 뒤 김제에서 3선, 서울 서대문구에서 3선을 지냈다. 서예에도 능해 한국예총 창립에 참여했으며, 아산이 71년에 개최한 한국미술협회 김제시지부 초대 미술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운재의 장남 윤상옥씨는 도로공사 부사장을 지냈다.행정관료 출신으로 전주시장을 2번 지낸 송하진 전북지사는 강암의 4남으로 서예에도 능하다. 또 송하철 전 전북도행정부지사(80)는 강암의 장남이다.강철기씨는 전주시 완산덕진 구청장과 복지환경국장, 전북도 대외협력과장, 김제시 부시장 등을 지냈으며, 안자옥씨(62)는 재경부 생활안전과장, 안성국씨(62)는 문체부 감사실장을 지냈다. 속초, 전주, 익산 소방서장을 지낸 정인영씨도 백산 출신이다.강원구씨(53)는 현재 보건복지부 사회보장위원회 사무국장이고, 박지훈씨(59)는 농업기술실용화재단 종자사업본부장이다. 김제시청에는 이석 회계과장과 안홍순 시립도서관장이 있다.지역내 정치인으로는 456대 시의원을 지낸 오만수씨(75)와 백산면장 출신으로 현재 시의원을 하고 있는 박두기 의원(62) 등이 있다.△사법계강완구 변호사(72)는 전주지방법원장과 광주지방법원장, 대구고법원장, 서울고등법원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등을 거쳐 현재 법무법인 로고스 상임고문변호사를 맡고 있다.유대희 변호사(62)는 전주시 3선거구에서 5대 도의원을 지냈으며, 현재는 전주시 통합체육회 부회장과 대한적십자사 상임위원 등을 맡고 있다.고영준 변호사(75)는 강원도지청에서 근무한 뒤 제일종합법무법인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고, 강신섭 변호사(60)는 중앙행정심판위원과 대법원 재판연구관, 전주지방법원 형사 12부 등을 지냈으며 현재 법무법인 세종의 대표변호사이다.△학계교육계석정의 손자인 이종석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난(蘭) 박사로 실용 한국의 蘭을 펴내기도 했으며, 제주대학교를 거쳐 현재는 서울여대 원예생명조경학과 명예교수이다.강암의 3남인 송하춘씨(74)는 7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소설가로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와 문과대학장을 지냈다.이복렬씨(73)는 호원대 식품환경화공학부 교수와 공과대학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호원대 명예교수이다.교육계에는 지난 2009년 김제 교육장을 지낸 박공우씨와 유지득 현 익산교육장(61), 그리고 도교육청 초등교육과 장학관을 거쳐 김제 중앙초 교장을 지닌 문홍근씨 등이 있다.△군경찰임국선씨(62)는 원광대 학군단 출신으로 육군 제7기동군단 군단장과 육군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 육군본부 정책관 등을 지낸 뒤 중장으로 예편하고 현재는 원광대학교 군사학과 석좌교수로 있다.조연식씨(70)는 육군본부 인사처장과 28사단장을 거쳐 소장으로 예편했고, 공사 19기인 이기택씨(70)는 공군 준장으로 예편했다.장수경찰서장을 지낸 라화종씨(64)는 현재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금융명창기타박승씨(81)는 중앙대 명예교수와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건설부장관, 한국경제학회 회장, 한국은행 총재, 금융통화위원회 의장 등을 지냈다.시조창을 완제한 채규남씨(고인)는 86년 전주대사습놀이 시조부에서 대상을 받고 98년에 전북도 지방문화재 14호로 됐으며, 이후 2007년에 대한민국 인간문화재로 지정받았다.언론계에는 정대섭 전북일보 전략기획국장(이사)와 익산신문 홍동기 편집국장, 강찬구 전북포스트 사장 등이 있다. 또 지역에서 (주)오렌지타운이라는 주택건설사업을 하고 있는 강진수씨도 백산 출신이다.

  • 기획
  • 이성원
  • 2017.03.07 23:02

[익산시 왕궁면] 한센인정착촌 아픔 딛고 각계 인물 줄줄이 배출

왕궁은 삼한시대 백제 마한의 왕궁이 있던 곳이다. 왕들의 궁터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지역의 이름으로 쓰고 있는 매우 이례적인 곳이며, 호남고속국도와 1번 국도가 남북 방향으로 관통하는 호남의 관문이기도 하다. 완주군(삼례, 봉동)과 지리적으로 인접해 통일신라시대까지도 완산주 관하의 금마군 우주현이었다.자랑만큼이나 아픈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한센인 정착촌이다. 1948년 국립병원 소생원이 이 곳에 건립된 뒤 격리 치료받은 사람들과 전남 고흥의 소록도에서 1차 치료된 뒤 강제 이주된 사람들이 살았다. 61년 정착지가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해서부터 병이 유전되지 않는다고 판명돼 정부가 격리조치를 해제한 1990년대 중반까지 외부로 나가지 못한 채 갇혀 살아야 했다.이들 중에는 치료약을 중단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고, 치료약의 독성이 워낙 강해서 약을 먹기 위해서는 단백질 섭취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일찍부터 발달한 것이 닭, 돼지, 염소 등 축산업이다.축산업의 발달은 많은 부작용을 초래했다. 심한 악취는 고속도로 통행인들을 사시사철 밤낮으로 괴롭혔고, 엄청나게 쏟아져 나온 축산폐수는 새만금 수질오염의 난제가 됐다. 그동안의 정비사업으로 많은 부분이 개선됐지만, 정착촌 조성의 당사자인 정부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적지 않다.이런 가운데 왕궁면은 지금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맞고 있다. 익산IC에서 불과 5분, 완주공단과 10분 이내 거리에 있는 지리적 이점으로 자동차 부품 등 관련 기업들의 입주가 심심치 않게 이뤄지고 있다. 더 나아가 전북도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국가식품클러스터의 중심지가 바로 왕궁면이다.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15만평에 이르는 왕궁저수지 수리시설과 끝없이 펼쳐진 비옥한 황토흙 토질이다. 한센인 한 하운 시인이 읊었듯이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이 국가식품클러스터의 성공을 약속하는 듯하다.△정계정계 인물로는 60년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도내 최고득표로 당선된 뒤(4선) 초대 참의원(지금의 국회) 부의장을 지낸 소선규씨(1903~68)가 대표적이다. 일본 후쿠시마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부시장을 지낸 뒤 야당으로 4선에 성공한 경제통이었으며, 날카로운 직관과 독설로 유명했다.지역내에서는 원광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제 4대와 5대 전북도의회 의원이자 4대 의회 부의장을 지낸 소병기씨(71)가 있으며 그의 딸은 서울에서 국선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345대 익산시의회 의원이자 4대 의회 후반기와 5대 의회 전반기 의장을 맡았던 김정기 전 의원(72)도 왕궁 출신이며, 현직으로는 경기도의회 송순택 의원(67)이 있다.△관계전주여고 교장을 지낸 뒤 92년부터 98년까지 전북도교육감을 맡았던 홍태표씨(89)는 고향 인근 금마면에 전북과학고를 세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92년부터 7대 익산시교육장을 역임한 뒤 교육위원회 의원을 지낸 송병윤씨(82)도 왕궁 출신이다.송병순씨(88.고인)는 재경부(지금의 기획경제부) 관세국장과 국민은행장, 은행감독원장 등을 지낸 인물로 직위에 맞지 않을 만큼 청빈한 삶을 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송병순씨는 명나라 주지번의 스승으로 청빈한 삶을 살았던 표옹 송영구(1556~1620)의 12대손이며, 전주 객사의 풍패지관은 스승을 찾아 조선을 방문했던 주지번이 쓴 글로 알려져 있다. 또 표옹 송영구의 신도비는 전북도 무형문화재 제232호로 지정돼 있다. 전북도청 공보관과 무주군수, 공무원교육원장, 체육회 사무처장 등을 지낸 송억규씨(75)도 송영구의 후손이다.왕궁 출신으로 한학과 서예에 능했던 이동구씨(84)는 전북도청 민방위 국장과 무주군수, 완주군수를 지냈다.소재민씨(73)는 전북도청에서 총무과 인사담당과 법무담당관, 감사관을 지냈고, 비상대책관을 지낸 소은영씨의 아들 소병준씨는 현재 원광대병원 흉부외과 과장을 맡고 있다. 전북도청 수산시험연구소장과 수산과장을 지낸 우병남씨(65), 김용학 전 공무원교육원 교육운영과장(69)도 왕궁면 출신이다.익산시청에는 이춘희 전 기획행정국장(81)과 현 유희완 미래농정국장이 있다.외교통상부 소속으로 브라질 대사를 지낸 김경용씨(62)와 감사원 과장을 지낸 곽경제씨(72), 청와대 행정관(경비과장) 송호종씨(53)도 고향이 왕궁이다.△소방경찰군소방공무원으로는 소방간부 2기 출신으로 전북소방본부 구조구급과장과 광주시소방안전본부장, 인천시소방방재본부장을 거쳐 대한소방방제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서정식씨(65)가 있다.경찰 출신으로는 전북경찰청 과장과 순창경찰서장, 전주북부경찰서장, 군산경찰서장을 거쳐 익산경찰서장을 지낸 송완식씨(72), 임실과 장수, 김제 경찰서장을 지낸 김운회씨(62)가 있다.군 출신으로는 의무감 출신으로 육군 준장으로 예편한 소병조씨(65)와 현역대령인 맹영호 포대장이 있다. 육사 34기인 홍성근씨(63)는 84년 예편한 뒤 국세청 사무관으로 특채돼 익산세무서장과 고양세무서장 등을 지냈다.△기타도내 태권도 1세대로 63년 일본 동경에서 열린 일본권법회와의 한일전에 참가할 국가대표팀에 뽑히기도 했던 황대진씨(75)는 이후 핀란드와 리투아니나, 라트비아 등에서 태권도를 보급하다가 핀란드에 정착해 핀란드 헬싱키시 국회의원과 시의원에 출마하기도 했다. 현재는 핀란드 재한인회장을 맡고 있다.홍대표씨(87)는 원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교수로 재직하며 양귀자, 윤흥길, 박범신 등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키워낸 인물로 그의 아들이 현재 익산에서 홍내과 의원을 운영하고 있다.대한변호사협회 법제이사를 지낸 법무법인 동서파트너스의 김갑제 변호사(65)는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과 국가청렴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또 금호타이어 부사장을 지낸 임년희씨(77)와 익산제일산부인과 홍성각 원장도 왕궁면 출신이다.- 다음 회에는 김제시 백산면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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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원
  • 2017.02.2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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