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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통합의 지혜’로 여는 지속가능한 미래, 넷제로 2050 국제기후포럼

인류는 지금 문명의 미래를 결정할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기록적 이상기후는 ‘기후위기’가 더 이상 미래의 경고 아닌, 오늘 우리 눈앞 현실임을 생생히 보여준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넷제로 2050 기후재단은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 해법 모색을 위해 2022년부터 꾸준히 국제기후포럼을 개최, 지혜를 모았다. 재단은 2022년 아프리카 기후 불평등을 다루었고, 2023년 유럽 선진국의 탄소중립 전략, 2024년 기후테크 기반 대응 방안을 논의하며 전문성·신뢰를 쌓았다. 매년 포럼을 지탱한 큰 동력은 발표자·토론자의 진정성 있는 참여, 뜨거운 질의응답과 활발한 토론으로 좌석을 메운 참석자들, 그리고 전북 도민의 깊은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였다. 이는 필자의 큰 소회이자 보람이었다. 이들의 열의 없이는 재단의 국제기후포럼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넷제로 2050 기후재단은 그간 노력을 집대성하여 재단 창립 5주년을 맞아 제4회 국제기후포럼을 개최한다. 「전환의 기로에서: 글로벌 기술, 협력, 정책 이행으로 여는 지속가능한 미래」라는 부제 아래, 우리는 기존 포럼 한계를 넘어 기후기술(Tech), 정책(Policy), 국제협력(Cooperation), 기업 대응 전략(Corporate Strategy)을 총괄하는 ‘통합형 종합 국제포럼’을 준비했다. 기후위기는 한 분야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복합 과제이기에, 모든 요소의 유기적 연동이 필수라는 신념에서 기획됐다. 전 세계 유례없는 다층적·종합적 접근 방식을 시도한다. 오늘 포럼에는 인류 지속가능성 비전을 제시해 온 반기문 제8대 유엔 사무총장이 기조연설로 자리를 빛낼 예정이다. 주한 독일·덴마크 대사, 각국의 외교사절, 국내외 정부 관계자, 학계·선도 기업 최고 전문가들을 비롯해 약 800여 명의 참석자가 모인다. 특히 전북 지역을 대표하는 한병도 국회의원과 정헌율 익산시장 등 주요 인사들도 대거 참여하여 포럼의 깊이를 더하고 의견을 리드할 것이다.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 선도국 덴마크와 독일의 그린에너지 비전, 한국의 기후테크 활성화 정책, 글로벌 기후 거버넌스 대응, 국내외 기업 실질적 탄소중립 전략 및 경쟁력 강화 방안 등 심층적 논의가 활발히 펼쳐질 것이다. 존경하는 전북 도민 여러분, 기후위기 대응은 더 이상 특정 전문가 몫이 아니다. 삶의 터전이자 미래 세대 자산인 전북의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고 지속가능한 지역 경제를 만드는 중요한 문제다. 탄소중립 사회 전환은 지역 경제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창출할 잠재력을 갖는다. 오늘 국제포럼에서 논의될 세계 각국의 지혜와 전략은 많은 전북 도민의 깊은 관심과 참여 속에서 전북이 기후변화 대응을 선도,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넷제로 2050 기후재단은 앞으로도 인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통합 해법을 모색하고, 실질적 기후행동 촉진에 앞장설 것이다. 이 길에 적극적으로 함께해 주는 여러분과 전북 도민들의 지속적 관심과 참여는 우리 모두가 '전환의 기로'를 성공적으로 헤쳐 '지속가능한 미래'로 나아가는 큰 힘이 될 것이다. 부디 이 포럼이 지구를 살리고, 우리 모두의 내일을 밝히는 이정표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장대식 넷제로 2050 기후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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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0.29 17:41

[타향에서] 왜 여론조사 결과는 내 생각과 다를까?

신문이나 방송을 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의문을 품는다. 대통령 국정운영 평가나 정당 지지도, 계엄이나 탄핵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를 접할 때 특히 그렇다. 전북처럼 진보 성향이 강한 지역에서는 그 간극이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다. “우리 주변 사람들은 다 이재명 대통령을 잘한다고 하던데 왜 긍정평가가 60%밖에 안 되지?”, “윤석열 전 대통령이 30% 넘는 긍정평가라니, 너무 높지 않나?” 하는 반응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여론조사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생각만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전국의 다양한 연령, 지역, 성별 등을 대표하도록 설계된 표본을 대상으로 한다. 즉, 전북만이 아니라 전국의 민심을 비율에 맞게 반영한 결과라는 점을 잊기 쉽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를 기준으로 보면, 호남은 약 10%, 대구·경북도 10%, 부산·울산·경남이 16%, 충청 10%, 수도권이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따라서 전북을 포함한 호남 사람들의 의견이 전국 여론조사에서 10명 중 1명꼴로 반영된다고 보면 된다. 이념 성향으로도 진보 25%, 보수 25%, 중도 50% 안팎으로 분포한다. 이런 전국적인 구성비를 고려해 조사하기 때문에, 특정지역이나 성향의 여론만으로는 전체 결과를 가늠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전북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가 80%를 넘을 수 있지만, 영남 지역에서는 과반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전국 평균 60%라는 수치는 이런 상반된 지역별 결과를 종합한 ‘대표값’인 셈이다. 결국 여론조사는 ‘내 생각’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평균적인 생각’을 비율대로 담아낸 사회의 거울이다. 나와 내 주변의 의견과 다르다고 해서 조사가 틀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차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점은, 여론조사 결과가 ‘사실’이나 ‘진실’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여론조사에는 항상 오차가 존재한다. 조사 대상이 전체 국민이 아니라 무작위로 뽑힌 일부 표본이라는 특성 때문에 표본오차가 발생한다.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3%p의 오차범위라면, 50%라는 결과는 실제로 47~53% 사이일 개연성이 높다는 뜻이다. 비표본오차는 질문 문항이 분명하지 않거나, 자료처리를 잘 못했을 때 발생한다. 사람이 수행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오차로, 표본오차보다 더 클 때도 있다. 따라서 여론조사 결과는 표본오차와 비표본오차를 감안한 추정치로 이해해야 한다. 조사방법의 차이도 결과를 달리 만든다. 숙련된 면접원이 직접 응답자와 대화하며 수행하는 전화면접조사는 대표성이 높고 응답률도 상대적으로 높다. 반면 기계음에 의한 자동응답(ARS) 방식은 응답률이 낮고 정치 관심도가 높은 사람들의 응답이 몰릴 가능성이 커 왜곡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과학적인 표본 설계와 절차를 거친 조사인지, 아니면 특정 대상자 중심으로 여론을 단순히 집적하여 보여주는 비과학적 조사인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여론조사를 이해하고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런 여러 요소를 함께 살펴보는 수고로움이 요청된다. 그러나 그 수고만큼 우리는 더 실재에 가깝게 민심을 읽을 수 있다. 여론조사는 내 주변의 세상보다 훨씬 넓은 세상을 비춰주는 창이다. 그 창을 통해 보이는 모습이 낯설다 해도,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온전한 모습에 가까울 수 있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여론조사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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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0.22 18:19

[타향에서] 나이 들수록 그리운 이름, 고향

젊을 때는 고향이 그저 '떠나온 곳'이었다. 서울의 빠른 공기 속에서 살다 보면, 정읍의 느린 걸음과 흙냄새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상하게도 그 느림이 그리워지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고향은 어느새 내 마음의 쉼표가 되어 있었다. 몇 년 전, 서울의 한 모임에서 우연히 정읍 출신 선배님 한 분을 만났다. 첫인상은 아주 세련되고 도시적인 분이었다. 어딘가 거리를 두는 듯한 차분한 눈빛. 옷차림도 깔끔하고 말투도 또렷했다. 그래서일까, 처음에는 조금 까다로울지도, 아니 솔직히 말하면 좀 도도해 보이기까지 했다.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내 이름 앞에 '정읍 후배'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그분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이고, 우리 정읍 후배야?" 그 한마디와 함께 도도해 보이던 얼굴이 환하게 펴지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날 이후로 그분은 나를 챙겨주셨다. 행사장에서 멀리서라도 나를 보면 환한 미소로 다가와 "잘 지냈지, 난 항상 우리 후배 응원하고 있네" 하고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처음 만났을 때의 도회적인 말투는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나를 만나면 같은 고향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억양과 어투로 말을 하셨다. 표준어 같지만 표준어가 아닌, 그 미묘한 억양 속에는 서울에서 오랜 세월 감춰왔던 고향의 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돌아보면, 고향이란 그런 것 같다. 특별한 이유 없이도 서로 마음이 닿는 사람들, 그리고 말 한마디에 마음이 풀어지는 공간 말이다. 서울에서 살아온 세월이 길어질수록, 나는 점점 고향 사람들에게 마음이 끌린다. 그들이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꾸밈없는 정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 선배님처럼, 고향 사람 앞에서는 오랫동안 숨겨왔던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고향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가끔 주말 아침, 유난히 푸르고 맑았던 고향 하늘이 떠오르는 날이면 그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고향 사람은 만나면 그냥 반가운 거야. 이유가 없어." 그 말 속에는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정과 믿음이 담겨 있었다. 학벌도, 직장도, 지위도 중요하지 않았다. 같은 땅을 밟고 자랐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삶이 점점 복잡해질수록,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우리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곳에는 계산 없는 정이 있고, 서툴지만 진심이 있으며, 말보다 눈빛으로 마음을 전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오직 같은 고향 사람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미묘한 억양과 어투로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편안함이 있다. 요즘처럼 각박한 시대에, 고향은 우리에게 여전히 필요한 마음의 안식처다. 나이가 들어가며 깨닫는다. 고향은 단지 내가 태어난 장소가 아니라, 여전히 나를 품어주는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은 세월이 흘러도, 내가 어디에 있든, 변함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 앞에서는 서울에서 쌓아온 겉모습을 벗어던지고, 편안하게 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오늘도 나는 마음속으로 그 이름을 조용히 불러본다. 정읍, 그리고 나의 고향 사람들. 왕미양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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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0.15 18:22

[타향에서] AI 시대의 일자리, 이재명 정부의 과제

인공지능(AI) 시대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니다. 제조업의 공장라인, 금융기관의 단순 사무, 유통매장의 계산대처럼 익숙한 풍경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대신 데이터 분석가, 앱 개발자, AI 윤리전문가처럼 몇 년 전만 해도 낯설던 직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기술이 일자리를 빼앗는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AI 시대는 단순한 기술혁신을 넘어 경제·사회·문화 전반에서 인공지능이 핵심 동력으로 작동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의미한다. 최근 한국 정치·경제의 중심 화두 역시 ‘AI 대전환’이다. 이재명 정부는 AI를 국가 성장의 엔진으로 삼고, 제조·금융·복지·교육 등 전 산업에 AI를 확산시키며 고용서비스와 평생교육 체계를 개편하고 AI 융합산업에 대한 세제·금융 지원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일자리의 양과 질 모두를 혁신하겠다는 포부다. 그러나 방향이 옳다고 해서 성과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정책의 성패는 계획 속 구호가 아니라 노동자·중소기업·지방 등과 같은 경제적 약자가 현장에서 실제로 체감하는 변화에 달려있다. AI 시대의 핵심 과제는 단순히 일자리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새로운 기술환경 속에서 안정된 생계와 의미있는 일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데 있다. 실제로 19세기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은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자 일자리를 지키려던 노동자들의 저항으로 촉발됐다. 그러나 역사는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산업을 재편하고 새로운 직종을 만들어왔음을 보여준다. AI 역시 단순·반복 업무는 빠르게 줄이겠지만, 창의성·판단력, 윤리성과 공감능력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오히려 더 많은 기회가 열릴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러한 전환이 결코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육·훈련 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많은 노동자들이 변화의 파고 속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는 세 가지다. 첫째, 교육혁신이다. 단순 지식의 주입이 아니라 문제해결능력, 데이터 활용역량, 인간적 소통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교육이 시급히 바뀌어야 한다. 특히 평생교육 체계를 강화해 노동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일자리를 옮길 수 있는 사다리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포용적 성장이다. AI가 만들어내는 부와 기회가 대기업과 수도권에만 집중되지 않도록 중소기업·지방·취약계층을 위한 지원 장치를 확대해야 한다. 기술 대체로 인한 실업과 소득격차를 완화할 사회안전망의 보강이 절실하다. 셋째, 윤리와 규범 확립이다. AI가 의사결정을 대신하는 영역이 확대될수록 투명성과 책임성,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할 때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성취와 창의성, 공동체적 연대를 담는 새로운 노동의 가치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 디지털 혁명이 전통 산업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효율적이고 편리한 방향으로 진화시켰듯이, AI 시대 역시 일자리의 종말이 아닌 진화의 길을 향해 갈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사회가 그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어떻게 조율하느냐다. 이재명 정부가 그 길을 올바르게 열어줄 때 비로소 AI는 두려움이 아닌 희망의 동력이 될 것이다. 김명준 전 서울지방국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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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0.01 17:16

[타향에서] 인생의 행운 ‘로또’는 단 한명, ‘탄소중립’은 전 인류의 당첨!

생각이 복잡할 땐 그냥 걷는다. 걷다 보면 묘하게 마음이 정리되곤 한다. 어느 날도 그랬다. 천천히 걷던 길, 문득 복권 판매점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을 보게 됐다. 그들의 얼굴엔 기대, 희망, 그리고 왠지 모를 설렘이 가득했다. ‘오늘은 내가 1등?’ 그 표정에서 인생 한 방을 향한 간절함이 묻어났다.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 ‘우리 인류에게도 저렇게 간절히 바라는 꿈이 하나 있다면?’ 바로 탄소중립이다. 누군가는 로또로 인생 역전을 꿈꾸고, 누군가는 탄소중립으로 미래의 전환을 꿈꾼다. 로또는 운에 맡겨야 하는 일이지만, 탄소중립은 우리가 함께 만들 수 있는 확실한 당첨이다. 그것은 특정 개인이 아닌, 모든 세대를 위한 진짜 ‘대박’이다. 기후위기의 속도는 이미 예측을 앞서고 있다. 한 해가 다르게 반복되는 폭염, 이상기후, 산불, 가뭄. 자연은 분명히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 무엇인가 바꿔야 한다는 것을. 기후위기는 경고를 끝냈고, 이제는 행동만이 답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탄소중립은 단지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기술적 접근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삶을 선택하고, 어떤 세상을 후손에게 물려줄 것인지에 대한 가치의 선언이다. 더 나아가 탄소중립은 우리 사회의 구조를 공정하게 재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에너지 소비와 생산의 전환 과정에서 에너지 복지의 사각지대를 살필 수 있고,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부가가치도 함께 기대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닌, 정의로운 전환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국가 차원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기업에는 탈탄소 혁신을 유도하고, 금융에는 ESG 기준을 뿌리내리게 하며, 시민에는 행동 실천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 설계가 중요하다. 지자체, 중앙정부, 산업계, 시민사회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기후 거버넌스’ 구축이 탄소중립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단순한 캠페인을 넘어서 시스템 차원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탄소중립은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가 손에 쥘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희망이다. 물론 과정은 쉽지 않다. 탄소를 줄이는 일은 에너지 시스템을 바꾸고, 생활 방식을 조정하고,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길의 끝에 있는 보상은 상상 이상이다. 로또처럼 운에 맡길 게 아니라, 함께 계획하고 실천해야 얻을 수 있는 ‘확실한 당첨’이다. 우리 넷제로 2050 기후재단은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좋은 에너지, 좋은 기후환경, 더 좋은 세상’을 기치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민교육, 기업 연계 프로그램, 지자체와의 협력사업, 탄소중립 실천 캠페인까지. 탄소중립은 더 이상 먼 이야기나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의 선택으로 스며들어야 할 실천이다. 생각해 보면, 로또는 단 한 명의 삶을 바꿀 수 있지만, 탄소중립은 모든 인류의 미래를 바꾼다. 그 가능성과 파급력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우리는 이제 기다릴 수 없다. 기후위기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있다. 탄소중립은 누군가의 몫이 아니라, 모두의 책임이다. 우리가 함께 결단하고 함께 실천할 때, 그 어떤 복권보다 값진 행운은 반드시 찾아온다. 그것이 바로 인류의 최애이자 최선의 길, 탄소중립이다. 장대식 넷제로 2050 기후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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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9.24 18:41

[타향에서] 경청(傾聽)으로 모두가 평안한 한가위를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다가온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리서치는 추석을 앞두고 국민들의 행동과 생각을 매년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2024년 8월 말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9%는 추석에 따로 사는 가족을 만난다. 추석의 의미를 묻자 50%가 ‘가족·친지와의 화합’을 꼽아 1위를 차지했고, 36%는 ‘휴식과 재충전’을 선택하여 2위에 올랐다. 추석은 여전히 일가와 친척이 모여 공동체의 온기를 느끼면서, 살아갈 힘을 또 다시 얻는 시간임을 알 수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사람들을 구분해 보니, 추석을 가족과 정을 나누는 명절로 여기는 ‘가족 중심 전통주의자’가 23%, 가족은 물론 지인과의 관계를 다지는 ‘인간관계 중시자’는 13%를 차지했다. 합이 36%이다. 그리고, 휴식과 재충전에 무게를 두는 ‘휴식 추구자’는 32%로 그 다음을 차지했다. 그런데, 명절을 경제적·정신적 부담으로 느끼는 ‘명절 부담자’도 16%에 이르렀다. 5천1백만 인구의 16%면 816만명이다. 적지 않은 사람이다. 정신적 부담에 명절 대화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언론과 정치권은 흔히 명절을 ‘민심의 변곡점’이라 말한다. 가족 친지가 모이면 정치 이야기가 활발하게 오갈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정치보다는 생활 이야기를 나누거나 휴식을 즐기려 한다. 정치나 정치인에 대한 대화는 으레 얼굴을 붉히거나 감정의 골이 패이기 십상이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는 가족의 안부와 일상사를 나누며 서로의 정(情)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것이다. 그렇지만, 애정을 앞세운 말이 부지불식 간에 상처를 남길 수 있다. 나의 생각과 마음에 갇혀 마주하는 사람의 표정과 말을 세심하게 살피지 않는 일방적 대화는 부담과 불편을 야기할 수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경청(傾聽)’이다. 경청은 귀뿐만 아니라 몸까지 기울여 상대의 말을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경청을 잘 하기 위해서는 ‘개시개비(皆是皆非)’의 정신이 필요하다. ‘개시(皆是)’는 모두가 옳다는 의미이다. 자신보다 이야기 상대에 방점이 있다. 누구의 어떤 이야기에도 진실이 있음을 믿고 존중한다는 자세이다. 장님 한 사람이 코끼리를 만진 후의 표현은 기둥, 벽, 동아줄, 부채 등으로 불완전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코끼리 형상의 일부에 해당한다는 이치와 맞닿아 있다. 이와 달리 ‘개비(皆非)’는 모두가 그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상대보다는 나에 대해 저어하는 마음이다. 나의 생각과 주장에 잘못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상대를 향해 나를 열어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과학적 절차를 거쳐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보편적인 생각을 확인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해석할 때도 늘 오차를 전제하듯, 제한되고 제한된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염두에 두라는 경고이다. 개시와 개비 두 마음이 함께할 때 비로소 귀와 몸이 온전히 상대방을 향할 수 있다. 경청은 소극적으로 듣는 행태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존중과 자신에 대한 겸허를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소통 행위이다. 그러기에 경청은 가족과 이웃, 더 넓게는 사회의 화합을 가능케 하는 출발점이다. 다가오는 추석, 가족과 친지의 목소리에 귀와 몸을 기울이면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 안에 담긴 진실을 발견하고자 노력해 보자. 나의 욕구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잠시 유보해 보자. 그러면 함께하는 가족과 친지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내가 평안해짐으로써 모두가 풍성한 한가위가 될 수 있으리라. 김춘석 한국리서치 여론조사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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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9.17 18:13

[타향에서] 출간의 기쁨, 고향의 품에서 다짐으로

지난 8월, 필자의 책 『두 번째 기회를 위한 변론』 출간기념회를 가졌다. 오랜 고민 끝에 세상에 내놓은 첫 책이었기에 필자에게는 벅찬 날이었지만, 정작 가장 큰 감동은 책이 아니라 사람들의 존재에서 왔다. 고향 친구들, 고등학교 은사님들, 그리고 수많은 지인이 자리를 함께해 주었다. 수백 명이 모여 보내주신 응원은 책 출간이라는 개인적 사건을 넘어선 공동의 축제가 되었다. 사실 출간기념회는 필자에게는 처음 일이었다. 다행히 후배 여성 변호사들이 발 벗고 나서서 준비를 도와주었지만, 그래도 부족한 게 너무 많았다. "사람들이 과연 올까?" "준비가 미흡해서 실망하게 하는 건 아닐까?" 온갖 걱정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행사 당일, 철저한 준비를 위해 3시간 일찍 행사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행사 시작 1시간 전부터 지인들이 한두 분씩 오시기 시작하더니, "사인 좀 해주세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점점 늘어났다. 예상치 못하게 긴 줄이 형성되었고, 계획했던 마지막 준비는 물 건너가고 말았다. 그날 행사장은 고향에서 열차를 타고 올라오신 고등학교 은사님들부터 고등학교 동창들, 고향 친구들과 선배님들까지 수백 명이 빼곡히 자리를 메워주셨다. 필자를 키워준 고향의 모든 분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었다. 서울에서 오랜 세월 변호사로 살아오며 고향을 자주 찾지 못했다. 마음속에 늘 미안함이 남아 있었는데, 이번 자리에서 보여주신 따뜻한 마음은 필자에게 큰 울림이 되었다. 오랜만에 뵌 은사님의 눈빛은 학창 시절의 기억을 되살렸고, 친구들의 격려는 고향의 정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그날 필자는 자신이 어디에서 출발했고 무엇으로 성장했는지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필자가 13년간 파산관재인으로 활동하면서 얻은 경험과 성찰의 산물이다. 2400여 명이 넘는 채무자들을 만나며, 빚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의 절망과 희망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실직과 병환, 사업 실패, 돌이킬 수 없는 선택들…. 사연은 제각각이었지만, 모두에게는 절망의 끝자락에서도 다시 서고자 하는 간절한 의지가 있었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한 '파산=인생의 끝'이라는 편견을 바꾸고 싶었다. 파산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두 번째 기회'라는 제도의 참된 가치를 알리고 싶었다. 그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집필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과연 이런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아도 될까?" 수없이 망설이고 주저했다. 그런 필자에게 고향은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은사님들의 따뜻한 가르침이 책을 출간하는 힘이 되어주었다. 이번 출간기념회에서 고향의 은사님들과 친구들, 선배님들이 보여주신 환대와 격려는 이 책이 단순한 개인의 기록을 넘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사회적 희망의 메시지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준비했던 첫 출간기념회가 이렇게 성황리에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바쁜 중에도 시간내어 도와준 후배 여성 변호사들과 참석해 주신 고향의 모든 분들 덕분이었다. 특히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켜주신 은사님들과 친구들, 선배님들의 정성과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출간의 기쁨은 언젠가 옅어지겠지만, 그날 고향에서 받은 뜨거운 응원과 격려는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이다. 필자는 다짐한다. 앞으로도 인생의 벼랑 끝에 선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언제나 고향과 고향 분들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고 말이다. 왕미양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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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9.10 18:45

[타향에서] 상장주식 과세, 성장과 공정을 함께 보는 시선

최근 정부가 상장주식의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을 종목당 50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낮추고, 증권거래세율을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뜨겁다. 이재명 정부의 ‘코스피 5천 시대’ 공약과 시장활성화 기조에 역행한다는 비판과 윤석열 정부의 감세조치를 복원하고 조세형평성을 되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옹호론이 맞서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조치가 자본시장 정상화와 조세형평성 및 세입기반 강화라는 두 목표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이다. 현재 한국경제는 안팎으로 복합위기 상황이다. 안으로는 고령화, 저출산, 가계부채, 자산양극화가 경제의 기초체력을 저하시키고, 밖으로는 글로벌공급망 불안과 통상환경 악화가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민간의 소비·투자·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정부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정책은 적시에 투입된 ‘긴급수혈’이지만, 일시적 부양책만으로는 경제 체질을 개선할 수 없다. 저성장이 구조화된 상황에서는 경기가 살아나도 세입이 자동으로 늘지 않는다. 플랫폼 경제, 경제의 서비스화, 제조업 기반의 해외 이전을 특징으로 하는 글로벌·디지털 경제시대에서는 세입구조의 개혁이 없을 경우 세입기반은 약화되기 쉽다. 세입기반을 튼튼히 하려면 새로운 세원 발굴을 통한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세원 확보가 긴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조세형평성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 조세구조의 가장 큰 문제는 수평적 형평성의 부재다. 근로소득자는 유리지갑이지만, 자영업자는 소득파악에 한계가 많고, 주식·파생상품·가상자산 등 자산소득에는 광범위한 비과세·감면이 적용된다. 지난해 말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로 상장주식 양도차익 과세는 사실상 고액 대주주로 국한되었고, 증권거래세는 거래단계에서만 부과돼 장기 보유에 따른 대규모 차익에는 세부담이 매우 낮다. 배당소득 과세 역시 분리과세와 종합과세 기준이 뒤섞여 있어 금융자산 보유자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세구조다. 금융자산 보유자는 근로·사업소득자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불균형이 발생하고, 이런 구조가 지속되면 조세의 수평적 형평성이 무너지고 세입기반 역시 취약해진다. 물론,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과세 완화가 단기적으로 거래량을 늘리고 투자 심리를 회복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세원잠식을 심화시키고, 근로소득자와 자산소득자 간 불공정 과세를 고착화시킬 위험이 크다. 따라서 자본시장 세제개혁은 성장과 공정의 균형 위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금융투자소득세를 단계적으로 재도입해야 한다. 혁신기업 투자에 대해서는 일정 한도 비과세를 유지하되, 고액·단기 차익에는 정상과세를 적용해 과세 공백을 줄여야 한다. 둘째, 증권거래세율은 점진적으로 인하하되, 양도소득 과세강화와 병행해 장기투자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 셋째, 배당소득 과세체계는 분리·종합과세 기준을 명확히 해 금융소득 과세의 일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세금은 단순한 재정수단이 아니다. 경제주체들의 행동을 유도하고, 사회의 공정성을 유지하는 핵심 장치다. 주식소득 과세를 둘러싼 이번 논쟁은 자본시장의 활력을 높이면서도 조세형평성과 세입기반을 함께 강화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성장과 공정,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세제개편이야말로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여는 열쇠다. 김명준 전 서울지방국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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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9.03 17:30

[타향에서] 에너지 패권을 넘어서, 전북의 기후 공존 전략

미국의 경제·사회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The Third Industrial Revolution>(2011), <The Green New Deal>(2019) 등 저서에서“재생에너지 기반의 분산형 시스템”이 미래 경제질서의 핵심이 될 것이라 주장해 왔다. 그는 유럽연합(EU)과 중국의 탄소중립 전략에 자문하며,‘세 번째 산업혁명’이라는 비전을 정책으로 연결해온 대표적 실천 지성이다. 최근 리프킨은 캐나다 에너지 산업이 여전히 화석연료 의존에 머문다고 지적하며 이를 “대륙주의적 사고(Continentalism)”라 불렀다. 단기적 이익에 매몰되면 세계적 재생에너지 전환 흐름에서 뒤처진다는 경고다. 그는 기후위기 대응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며, 재생에너지와 기후기술이야말로 미래 패권 자산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후와 에너지 문제를 경제·안보 패권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최근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처럼 다룰 수 있다”고 비하하며 고율 관세와 에너지 무기화를 시사한 것은 국제 공조보다 힘의 논리를 앞세운 행보였다. 이에 비해 리프킨은 협력과 공존을 해법으로 제시하며, <The Green New Deal>에서 “화석연료 문명은 2028년까지 붕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U는 그의 전략을 정책에 반영했고, 중국은 장기 탄소중립 로드맵 수립에 그의 조언을 참고했다. 이는 오늘의 한국, 그리고 전북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전북은 새만금이라는 세계적 재생에너지 잠재지와 전국 최대 농업 기반, 풍부한 해양·바람 자원을 갖추고 있으나, 재생에너지 인프라와 기후기술 산업화 속도는 여전히 더디다. 산업구조 전환과 국제 협력 전략도 뚜렷하게 자리 잡았다고 보기 어렵다. 지금 전북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명확하다. 첫째, 국내적 전략으로는 재생에너지·수소·바이오에너지 등 특화 자원을 기반으로 한‘기후기술 산업 클러스터’구축이 필요하다. 새만금 태양광·풍력 프로젝트를 단순 발전사업에 머무르지 않고, 배터리·수소 저장·스마트그리드 등 연계 산업으로 확장해야 한다. 또한, 농업과 기후기술을 접목한 ‘탄소 저감형 농업’ 모델 개발은 기후정책과 식량안보 전략의 핵심 축이 될 수 있다. 둘째, 국제 전략으로는 아시아·아프리카 신흥국과의 재생에너지 협력 거점이 되어야 한다. 새만금의 재생에너지 기술·운영 경험을 해외에 수출하고, 국제 기후포럼이나 P4G 같은 다자협력 플랫폼에 전북 이름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외교 활동을 넘어, 전북형 기후외교·경제외교의 새 모델이 될 수 있다. 셋째, 기후위기를 대응하는 과정에서 ‘지역민 참여’를 정책 중심에 둬야 한다. 리프킨이 강조했듯, 에너지 전환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과 시민의식의 변화에서 완성된다. 지역 주민이 생산자이자 소비자로 참여하는 ‘에너지 자립 마을’과 같은 분산형 모델을 확대하면, 경제적 이익과 환경적 이익을 동시에 거둘 수 있다. 트럼프식 패권 에너지 전략은 단기적으로 힘을 줄 수 있지만, 리프킨식 기후 공존 전략은 장기적 번영을 보장한다. 전북이 지금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하다. 에너지를 힘의 도구로만 보는 과거의 사고를 넘어, 협력과 혁신, 지속가능성을 축으로 한 미래 전략을 실행하는 것이다. 오늘의 결정이 전북의 50년 뒤, 그리고 대한민국의 100년 뒤를 좌우할 것이다. 장대식 넷제로 2050 기후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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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8.27 18:30

[타향에서] 공론화를 통해 전주·완주 통합의 길을 찾자

타지에서 살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지만, 고향 전북에 대한 애정은 되려 깊어가고 있다. 자연스레 숱한 뉴스 중에서도 전북 관련 소식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요즘은 전주와 완주의 행정통합 논란에 눈길이 자주 간다. 그런데, 관련 소식을 접하면서 기대감보다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지역 발전을 위한 논의가 정작 지역민의 피로와 분열을 키우고, 또 다시 좌절을 안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감출 수 없다. 행정통합은 단순히 행정구역 재조정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의 정체성과 재정 구조, 주민들 일상의 삶, 공직자의 일자리, 나아가 공동체의 미래에 영향을 주는 중대한 변화다. 이러한 사안을 결정함에 있어 주민의 생각과 입장을 정확히 확인하고 충실히 반영해야 하는 일은 민주적 자치 행정의 필수 요건이다. 완주와 전주가 통합을 하든 하지 않든, 시민과 군민이 행정통합과 관련한 다양한 쟁점을 이해하고, 논의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과정의 정당성이 확보되고, 결과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진다. 지금까지 행정통합 관련 민심을 파악하는 방식은 주로 여론조사였고, 현재도 여론조사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최근에 완주군에서는 복수의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통합 반대 여론을 형성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여론조사는 단순 쟁점에 대한 다수의 의견을 빠르게 파악하는 데 유용하지만, 깊이 있는 판단을 담기에는 한계가 있다. 정보가 부족하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즉흥적으로 답하는 경우가 있고, 왜곡된 정보나 유도성 설문에 기반한 응답 결과도 적지 않다. 여론조사는 순간의 반응을 수치로 보여주는 것이지, 사실관계와 그의 여파에 대한 진지한 숙고를 반영하는 방법은 아니다. 1997년 첫 시도 이후 벌써 네 번째 추진되는 전주·완주 행정통합처럼 갈등이 누적되고 쟁점이 다양한 난제일수록 단순 여론이 아닌 ‘공론’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공론은 전문가가 제공하는 정보를 일반 시민이 충분히 학습하고, 서로 입장이 다른 사람들과 질서정연하게 토의하고 숙고하며, 스스로 입장을 정돈하는 숙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정제된 여론이다. 공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공론화라 하는 바, 공론화를 통해 생각의 변화와 공감의 확장까지 결합된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하다. 우리는 공론화의 모범적인 사례를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완주와 전주 행정통합 공론화를 시행할 경우, 공론화의 목적은 통합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지 않고 정제된 여론인 공론을 확인하는데 있다. 행정절차상 통합 여부는 주민투표나 의회 의결을 통해 최종 결정한다. 하지만, 행정통합 문제에 대한 주민투표나 의회 의결 여부 판단 및 해당 결과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숙고한 시민의 목소리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칠 필요가 있다. 이는 자치 단체장이나 의회 의원이 중심인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숙의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전주와 완주의 행정통합은 지역 공동체의 미래를 다시 그리는 일이다. 시민과 군민이 그 의미와 영향을 충분히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통합 여부와 상관없이 논의 과정 자체가 완주와 전주를 넘어 전북 공동체를 더 성숙하게 할 것이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여론조사 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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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8.20 18:32

[타향에서] 부서진 사람들을 다시 세우는 일

변호사 26년, 파산관재인 13년. 그동안 만난 채무자가 2,400여명이다.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서 바로 고깃집으로 직행하는 사람들, 기초생활수급자면서도 카드 돌려막기에 빠진 사람들을 보며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파산 뒤에는 단순한 무책임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가난, 제대로 된 교육 기회의 부재, 홀로 감당해야 할 양육의 짐, 그리고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실직. 이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결국 파산이라는 절벽으로 내몰린 것이었다. 최근 정부가 장기 연체자 채무조정 방안을 내놓자 “성실한 사람들만 바보 되는 세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충분히 이해한다. 열심히 빚을 갚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하나의 대가족이라 생각해보면 어떨까. 열 형제 중 몇은 똑똑하고 성실해서 잘살고, 몇은 실수도 많고 판단력도 부족해 늘 곤경에 빠진다. 그렇다고 잘사는 형제가 못사는 형제를 집에서 내쫓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많은 파산 신청자들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어려서부터 가난했고, 가정의 울타리를 경험하지 못했다. 이혼과 별거로 홀로 아이를 키우다 지쳐 쓰러진 경우도 많다. 근본적인 생활 패턴과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들을 포기할 수는 없다. 누구나 한순간에 추락할 수 있다. 성실하게 살던 사람도 갑작스러운 사고나 경제 위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 될 수 있다. 평생 모범적으로 살다 사업 실패나 보증 문제로 파산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파산관재인 13년간, 수많은 사람들의 절망과 좌절을 지켜보며 깨달은 것이 있다. 개인의 파산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구조의 문제이고, 때로는 운의 문제다. 그래서 국가의 안전망은 필수다. 채무조정과 파산 제도는 실패한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최소한의 ‘사다리’다. 그렇기에 이 제도는 단기적 시혜가 아니라 장기적 투자다. 채무자의 재기를 돕는 일은 단순히 한 개인을 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가족과 이웃, 더 나아가 지역사회 전체를 회복시키는 힘을 지닌다. 회생한 사람은 다시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세금을 내며, 소비를 통해 시장을 살린다. 이는 사회 안전망이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경제 활성화의 기초임을 보여준다. 또한 채무조정은 과거의 잘못을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설계할 기회를 주는 제도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재정 교육과 생활 습관의 변화이며, 정부와 사회가 함께 감시하고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같은 이유로 무너지는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 물론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이 아닐까. 결국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한 사람의 실패는 사회 전체의 아픔이고, 한 사람의 회복은 사회 전체의 희망이다. 그렇기에 정부의 채무조정 정책을 지지한다. 이는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 통합을 이루는 현명한 선택이다. 더 나은 공동체로 가는 길에서 우리는 누구도 뒤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왕미양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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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8.13 19:16

[타향에서] 출산율 반등의 실마리, 프랑스 가족수당에서 배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5명에 머물렀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50년 후 인구 3천만 명의 대한민국을 상상하기도 싫다. 정책당국이 수년째 저출산 해법을 놓고 씨름 중이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이재명 정부는 아동수당 확대 등 가족친화적 과세제도 도입을 추진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가 보여주는 경험은 값진 참고서가 될 수 있다. 프랑스는 한때 출산율이 1.6명까지 떨어졌지만, 2000년대 이후 2.0명 전후로 회복시킨 대표적 국가다. 그 중심에는 다자녀 가정을 실질적으로 우대하는 가족수당 제도가 있다. 프랑스 가족수당 제도는 소득과 관계없이 자녀 수에 따라 매월 현금급여를 지급한다. 두 자녀 가정엔 약 140유로(약 22만원), 세 자녀 이상부터는 금액이 급격히 증가하는데, 세 자녀 가정은 약 320유로(약 51만원) 이상을 받는다. 네 자녀 이상 가정에는 추가 보너스와 주거수당, 교통비 감면 등 다양한 부수혜택도 제공된다. 또한 소득세 과세표준 산정시 자녀 수를 고려하는 ‘가족단위 소득분할제도(Quotient familial)’를 병행하여 세부담이 줄어드는 효과도 크다. 자녀를 많이 낳을수록 현금지원과 세금감면이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다. 프랑스의 가족수당은 단순한 출산장려금이 아니다. 육아와 생활 전반의 비용을 장기적으로 보전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지속적이고 예측가능한 혜택을 원하는 젊은 부부들의 신뢰를 얻었고, 결과적으로 출산율 반등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특히 소득이 높으면 일부 감액되긴 하지만, 중산층 이상의 가정이 혜택을 체감할 수 있어 제도의 수용성과 실효성이 높다. 우리나라도 아동수당과 출산장려금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자녀 수 증가에 따른 차등 우대가 약하거나 단기 일회성 지원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다자녀일수록 양육비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현실을 감안하면, 현행 제도는 충분한 유인책이 되지 못한다. 프랑스처럼 현금급여와 세제가 함께 작동하고 자녀 수에 따라 혜택이 크게 증가하는 구조, 모든 계층이 혜택을 체감할 수 있는 보편적 설계는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출산율 반등은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가족친화적 사회시스템으로의 전환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부는 프랑스식 가족수당 제도의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간 수십조 원의 소요예산 확보를 위한 대대적인 세출구조의 조정과 조세지출의 재설계가 요구된다. 둘째, 현금지원과 세제혜택의 연동 설계가 필요하다. 소득수준에 따른 차등 지원은 불가피하겠지만, 일정 소득이상 중산층이 혜택을 누리지 못하면 제도의 효과성과 수용성이 낮아질 수 있다. 셋째, 다자녀 가정에 실질적 편익이 돌아가는 구조가 핵심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처럼 자녀 수에 따른 정액의 세액공제보다는 프랑스처럼 과세표준 자체를 자녀 수에 따라 나누는 방식이 실질 세부담을 낮추는데 더 효과적이다.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국가가 함께 키워준다”는 믿음을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출산율은 반등할 수 있다. 프랑스는 출생부터 육아, 교육, 주거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했다. 우리도 이제는 사회보장제도와 세제의 정교한 재설계를 통해 ‘함께 키우는 사회’로 나아갈 때다. 김명준 전 서울지방국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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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8.06 18:12

[타향에서] 온실가스의 생로병사, 우리는 그 끝을 바꿀 수 있다

어느 날 문득, 인간의 인생을 따라가는 듯한 존재가 떠올랐다. 바로 온실가스다. 태어날 때는 필요했고, 성장하면서 세상을 바꾸었으며, 지금은 병의 원인이 되어버린 존재. 그 여정을 바라보니 KBS <생로병사의 비밀> 프로그램의 흐름과 꼭 닮아 있다. 지금 우리가 문제 삼는 온실가스는 처음부터 나쁜 존재가 아니었다.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등은 원래 지구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보온 덮개 역할을 해왔다. 이들 때문에 지구는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인류는 그 품에서 진화하고 번성할 수 있었다. 화석연료도 마찬가지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는 산업혁명으로 인류에게 에너지 혁신의 문을 열어주었고, 문명의 기초를 세운 자양분이었다. 경제의 성장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두 축을 지탱한 자원이 바로 화석연료였다. 그러나 문제는 과잉이었다. 자동차, 발전소, 공장에서 쏟아지는 막대한 온실가스는 지구라는 몸에 열을 축적하게 했고, 그 결과 기후위기라는 병적 상태가 시작되었다. 만약 지금의 지구가 사람의 몸이라면, 의사는 이렇게 진단할 것이다. "체온이 2도 이상 오르면 장기 손상이 시작되며, 즉시 치료가 필요합니다." 지구도 다르지 않다. 온도가 1.5도를 넘어서면 북극의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며, 생태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유럽의 폭염, 동남아의 가뭄, 한국의 이상기후 등은 모두 지구가 보내는 경고음이다. 그렇다면, 처방은 무엇인가. 첫째, 원인을 줄여야 한다. 화석연료 의존을 낮추고,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전기차, 고효율 건물, 친환경 산업으로의 이행이 시급하다. 이는 단지 기술이나 경제적 논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환이기도 하다. 둘째, 생활 습관의 변화가 요구된다. 환자가 식습관과 생활 패턴을 점검하듯이, 우리도 일상의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에너지 절약, 저탄소 소비, 기후 감수성 교육 등을 통해 시민의식이 높아져야 한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실천이 아닌, 사회 전체의 문화적 전환으로 이어져야 한다. 셋째, 회복을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숲을 늘리고, 탄소를 흡수하는 기술을 개발하며, 국제적 연대를 통해 대응 속도를 높여야 한다. 개발도상국과의 기술 협력, 기후금융 확대, 기후난민 보호 등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 국경을 넘는 문제이기에, 국가 간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온실가스는 병이 아니라, 조절되지 않은 증상일 뿐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통제하지 못했고, 방치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마치 당뇨나 고혈압처럼, 제대로 관리하고 조절하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병. 지금의 지구가 그런 상태다. 이제 우리는 온실가스의 생로병사에서 마지막 장을 새로 써야 할 때를 맞고 있다. 온실가스를 줄이고, 기술과 정책, 시민의식이 함께 작동할 때 지구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고, 미래세대에게 건강한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이 시대에 살아가는 책임이자 다음 세대를 향한 최소한의 도리다. 언젠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온실가스는 위기였지만, 결국 인류는 그것을 현명하게 극복했다." 온실가스의 생로병사, 우리는 그 결말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장대식 넷제로 2050 기후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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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7.30 19:21

[타향에서] 나날이 가꾸어야 하는 민주주의

서울 도심 사무실에서 창밖을 가만히 내다 본다. 7월 아침 해가 벌써부터 예열을 하는 듯하고, 출근길 직장인들 발걸음이 분주하다. 커피숍에는 헤드셋을 착용한 학생이 노트북을 살피고 있다. 신문을 통해 야당이 새 정부의 장관 후보 청문회를 벼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정부와 대통령을 향한 날선 말이 오가지만 아무도 제재되지 않는다. 참 평범한 아침 일상이다. 그런데 이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얼마 전까지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그런 존재였다. 공기처럼 늘 곁에 있고, 의식적으로 고마움을 느낄 필요가 없는. 누구든 자유로이 말할 수 있고, 다투어야 할 때 폭력이나 총 대신 대화와 투표용지로 시비를 가릴 수 있는. 우리는 그러한 일상을 살면서 민주주의가 당연한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해 12월3일, 그 믿음은 흔들렸다. 윤석열 전대통령의 전격적인 비상 계엄령 선포는 헌정질서를 훼손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때까지 우리의 상식을 뒤흔든 충격 그 자체였다. 총과 군화가 정치의 도구로 다시 등장할 뻔한 순간, 민주주의가 얼마나 위태로울 수 있는지를 수십년 전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내야 했다. 그 동안 묻혀있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혼돈스럽고 위태로운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서울의 응원봉만이 아니었다. 전주·부산·광주·대구·대전·춘천·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거리에 나선 남녀노소 시민들이 손팻말을 흔들며 광장과 거리를 메웠다. 국회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가결했고,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일치로 피고인 윤석열을 파면했다. 그리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이재명 정부는 바로 그 민주주의와 헌정 회복의 열망 위에서 탄생한 것이다. 이제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하는 이재명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백하다. 민주주의를 다시 튼실하게 재건하고, 국정에 더 많은 시민이 더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이 기자들과 격의 없는 타운홀 미팅을 하고, 국회에서 시정 연설을 하고, 저잣거리에서 삼겹살을 굽는 것을 보면서 기대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국회, 헌법재판소, 정부나 대통령의 노력만으로 온전해지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일상적인 실천과 행동으로부터 만들어진다. 선거 때 투표를 하는 일, 여론조사에 참여하는 일, 마을 토론회에 가서 한마디 보태는 일. 하나 하나가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답게 만들어 가는 작지만 큰 실천이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전 세계 167개국을 대상으로 매년 민주주의 성숙도를 진단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작년에 32위를 차지하여 ‘결함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구분되었다. 22위였던 2023년에 비해 10위나 하락한 결과다. 그렇지만, 조만간에 2024년 이전의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라는 최상위 단계로 재진입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우리 국민이 민주 시민으로서의 권한과 책무를 전 세계 어느 나라 국민보다 잘 행사하리라는 것을 고스라니 체험했기 때문이다. 계엄과 탄핵과 대통령 선거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오늘은 누구의 하사품도, 저절로 주어진 것도 아닌, 나와 주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투표로, 말 한마디로, 참여로 인해 나날이 가꾸어진 결과이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우리의 눈길과 손발을 필요로 한다. △김춘석 부문장은 전주 상산고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조사협회 대변인, 한국조사연구학회 이사, 한국갈등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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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7.23 18:13

[타향에서] 고향을 품은 마음, 서울에서 꽃피우다

청출어람(靑出於藍). 쪽에서 나왔지만 쪽보다 더 푸르다는 이 말이, 내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고향에서 받은 사랑과 가르침이 서울이라는 낯선 땅에서 더 깊고 푸르게 빛을 발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1991년 봄, 전북대학교 졸업식장에서 학사모를 던지며 나는 다짐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작지만 단단한 꿈. 그 마음 하나로 스물네 살의 내가 고향을 떠나 서울행 버스에 올랐을 때, 창밖 풍경은 낯설었고 마음엔 설렘과 막막함이 함께했다. 서울에서의 첫 보금자리는 신림동 고시원이었다. 창문 하나로 들어오는 햇살도 고마웠던 그 좁은 방에서 책과 씨름하며 보낸 시간이 어느덧 6년. 밤늦게 공부하다가 문득 고향 생각이 나면 눈물이 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가장 큰 위로는 어머니의 전화였다. "언제까지 공부만 할 거냐", "그만하고 취직해라"는 말을 할만도 했지만, 어머니는 한 번도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몸은 괜찮니?",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니?" 언제나 안부를 물으시고 "네가 원하는 길이니 괜찮다"며 묵묵히 응원해주셨다. 그 따뜻한 말씀이 힘든 순간마다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며 만난 수험생들과의 우정도 큰 힘이 되었다. 서로 다른 고향에서 왔지만, 같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 동행이었다. 함께 밤을 새워가며 공부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버텨낸 그 시간들이 지금 생각해도 소중하다. 1997년 초겨울, 서른 살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고향에 소식을 전하자 어머니는 말없이 눈물만 흘리셨다. 그 눈물 속에 담긴 자랑스러움과 안도감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사법연수원 2년을 거쳐, 2000년 서른셋에 변호사가 되었다. 처음 맡은 사건, 처음 마주한 의뢰인, 처음 선 법정.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고향에서 배운 정성과 진심만은 잊지 않으려 애썼다. 특히 여성 의뢰인을 만나면 더 다정히 손을 내밀고 싶었다. 그들의 아픔과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려 노력했다. 26년간의 법조 생활 속엔 아픔도, 감사도 있었다. 그 모든 순간이 나를 조금씩 더 따뜻한 법조인으로 만들었다. 이제는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이라는 큰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어릴 적 고향에서 품었던 꿈보다 훨씬 더 큰 자리를 마주하며 깨닫는다. 고향에서 받은 순한 마음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을. 사실 한 번도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던 내가 책 출간을 앞두고 있다. 2010년부터 13년간 법원 파산관재인으로 활동하며 2,400여 명의 채무자를 만난 사연이 모티브가 되었다. 제목은 '두 번째 기회를 위한 변론'이다. 사법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만큼이나 설레고 두렵다. 이 책에서 나는 내가 걸어온 길과 더불어, 고향에서 받은 순한 마음이 서울에서 어떻게 꽃을 피웠는지 담아내려 노력했다.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싶었다. 고향을 떠나는 것이 두렵더라도, 그곳에서 받은 사랑과 가르침을 마음에 품고 있다면 어디서든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고. 나는 여전히 전북의 딸이다. 스물네 살에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아온 지 33년이 되었지만, 마음속 중심은 늘 고향을 향해 있다. 고향의 마음을 품고 서울에서 피워낸 꽃 한 송이. 그 향기가 누군가의 삶에 닿기를 바라며 오늘도 새로운 도전을 이어간다. △왕미양 회장은 제29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대한변호사협회 제49대 사무총장,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을 맡았으며, 법무법인 시니어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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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7.16 19:11

[타향에서] 세금 안 걷히는 이유, 경기 탓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세입예산 대비 걷지 못한 세금은 2023년과 2024년 두 해 동안 무려 87조 원에 달했다. 최근 10조 3천억 원의 세입을 감액하는 2차 추경예산이 편성되는 등 금년에도 세수 결손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세금이 걷히지 않는 이유로 흔히 경기침체 등 경기순환 요인을 지목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경기 사이클의 하강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경제구조의 변화가 세입기반 약화의 주된 원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첫째는 인구구조의 변화다. 우리나라는 2018년부터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본격적으로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반면, 고령인구는 빠르게 증가하여 올해부터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인구 축소는 소득세 기반의 약화로 이어지며, 소비 감소를 초래해 부가가치세 세입에도 악영향을 준다. 둘째는 노동시장 구조의 변화다. 디지털 플랫폼 산업이 확대되며 전통적인 정규직 중심의 고용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1인 창작자, 프리랜서, 플랫폼 종사자 등이 늘어나면서, 원천징수를 통한 안정적 조세징수가 어렵다. 이들은 과세인프라 밖에 놓여 있어 과세누락 가능성도 크다. 셋째는 산업구조의 전환이다. 글로벌 경쟁하에서 국내 제조기업이 생산시설과 수익창출 거점을 해외로 이전하여 국내 세입기반이 약화된 반면, 세원 이동성이 낮은 서비스산업의 세수 기여도는 높지 않다. 또한, 기업 가치창출의 원천이 점차 생산설비 등 유형자산에서 데이터, 소프트웨어, 브랜드 등 무형자산으로 이동하고 있어 전통적 과세체계로는 과세에 어려움이 많다. 특히, 구글 등 해외플랫폼 기업들의 경우 국내에서 막대한 매출을 올리면서도 국내사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실질적인 법인세 납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넷째로 부동산 세원의 약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은 그간 주요 세원으로 기능해 왔지만, 최근 거래량 감소와 보유세 완화 정책 등으로 세수 기여도가 크게 줄었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경제사회구조 변화의 반영이다. 경기가 회복되면 조세수입도 자연스럽게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는 디지털 경제시대의 변화된 현실에 맞도록 세입구조 개혁을 통한 중장기적 세입확충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AI 등 전략산업 육성, 아동수당 확대 등 대통령 공약의 충실한 이행 못지않게, 지출구조 조정과 세입구조 개혁을 통한 재정건전성 유지도 긴요하다. 경제사회구조 변화에 따른 사회복지 지출의 증가는 현재 세대에서 부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혜택이 집중된 윤석열 정부의 감세정책을 시급히 원상복구해야 한다. 또한, 금융투자소득세, 가상자산 과세 등 자산소득 과세의 정상화를 통해 소득유형별 과세형평성을 제고해야 한다. 그리고 디지털/AI 기반 포괄적 소득파악시스템 구축 및 국가간 조세협력을 강화하고, 중장기적으로 OECD 등 국제기구의 권고대로 부가가치세 세수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간접세의 역진성은 저소득층 환급 또는 근로장려금 강화 등을 통해 완화할 수 있다. 국가재정은 국민 삶의 기반이며, 조세 기반이 흔들린다는 것은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다는 의미다. 이제는 조세정책의 중심축을 ‘순환대응’에서 ‘구조대응’으로 옮겨야 할 때다. △김명준 전 청장은 국세청 조사국장과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서울시립대 겸임교수, 세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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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7.09 19:38

[타향에서] 탄소중립의 판을 새로 짜자: 기후에너지부 출범을 기대하며

새 정부가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공식화 했다. 2050 탄소중립을 국가 비전으로 선포한 지 채 5년도 되지 않아 조직 개편 카드를 꺼낸 것은, 기후정책이 더 이상 환경부의 ‘부속 과제’가 아니라 국정 운영의 근간이라는 방증이다. 우리는 마침내 ‘기후=경제’라는 등식을 제도에 새기려 한다. 그동안 탄소 감축 권한은 환경부, 배출의 진원지인 산업·에너지 정책은 산업통상자원부, 예산은 기획재정부로 흩어져 있었다. 부처 간 조각난 KPI는 ‘누구도 최종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를 낳았고, 탄소중립 커브는 완만히 눕기만 했다. 각 부처가 각자의 자리에서 ‘좋은 의도’로 열심히 일하고는 있지만, 전체적인 탄소중립 목표에는 효과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는 ‘분절적 선의’로는 글로벌 탄소 국경 조정(CBAM) 시계를 멈출 수 없다. 사실 기후에너지부 논의는 노무현·이명박·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번번이 좌초됐다. 산업규제와 성장전략을 한 몸에 담는 ‘두 얼굴의 부처’가 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탄소 감축은 선택이 아니라 해외 시장 진입권이며, 에너지 안보는 국가 생존 전략이 되었다. 규제·진흥·안보를 한 테이블에서 조율하지 않으면 ‘넷제로 적자국’이 될 뿐이다. 첫 단추는 “감축 목표를 넘어, 감축 시장을 만든다”는 발상 전환이다. 정부가 배출권 가격과 산업 전환 속도를 예측 가능하게 설계하면 탄소는 비용이 아니라 자본이 된다. 배출권 대비 혁신 효율을 기준으로 세액 공제와 조기 감면을 설계해 ‘탄소 절약이 생산성’이 되는 생태계를 열어야 한다. 탄소감축 실적을 담보로 녹색국채를 발행해 시장이 성과를 선제적으로 보상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에너지 안보와 공급망을 ‘탄소중립 레버’로 활용하자. 국내 신재생 확대만으로는 부족하다. 수소·암모니아·SMR 같은 차세대 클린에너지 투자에 전략적 공적자본을 먼저 집행하고, 이를 ODA·수출금융과 연계해 ‘탄소 저감형 P4G’ 모델로 수출 산업화 해야 한다. 새만금 RE100 클러스터처럼 지역 기반 프로젝트를 글로벌 밸류체인과 직결하면 지방도 기후 혁신의 주역이 된다. 셋째, 산업부문 규제·진흥 이원화를 끝내야 한다. 환경부는 규제의 신뢰성을 유지하되, 기후에너지부가 ‘감축 컨트롤타워’를 맡아야 한다. 규제는 유지하되 목표·인센티브·패널티와 예산을 단일 부처가 책임지면 기업은 예측 가능성을, 정부는 실행력을 얻는다. 넷째, ‘탄소 데이터 라거’를 구축하자. AI·블록체인으로 실시간 배출·감축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투자자는 녹색 프리미엄을, 시민은 생활 감축 포인트를, 지방정부는 맞춤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국민 1인당 탄소배당(Citizen Climate Dividend)을 연결해 감축 성과를 국민 소득으로 환원하면 ‘기후정책은 세금’이라는 인식을 바꿀 수 있다. 문제 진단은 충분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속도와 일관성이다. 기후에너지부가 분절된 권한을 묶고 감축 시장·클린에너지 경제·데이터 거버넌스를 축으로 삼아 출범한다면, 탄소중립은 규제가 아닌 기회, 비용이 아닌 성장 엔진이 될 것이다. 전북 경제 또한 이 대전환에서 새 성장축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장대식 이사장은 재경익산향우회 회장, 대한적십자사 기후환경분과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2020년 설립된 넷제로 2050 기후재단을 이끌며 205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에너지·환경·기후 관련 실천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등 탄소중립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장대식 넷제로 2050 기후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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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7.02 18:29

[타향에서] 대통령님께 고합니다

'분노하는 자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 없이는 지도력의 힘이 없다는 얘기다. 대통령께서는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변호사로 출발 성남시장을 지냈으며 경기 도지사를 거쳐 더불어 민주당 대표까지 역임하고 훌륭한 리더십으로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동안(20대)은 정권창출 때마다 희망의 메시지를 쏟아 내고 공약을 해 왔지만 많은 정권에서 초심은 사라지고 권리나 권한을 본래의 목적이 아닌 범위를 벗어나 남용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21대 대통령께서는 인본을 중심에 두고 권력은 국민들에게 이롭게 하는 헌법 최상위법으로 국정을 운영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아름다운 세상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인본을 꿰뚫는 진실만이 가능하다. 이는 역사가 보여주었고 근본을 성찰한 인문학에서도 증명한다. 조직의 지도자나 성직자는 단순한 직함이 아니다. 수없는 고난 속에서도 사랑으로 품고, 용서와 이타심과 인고의 성숙함을 갖는 게 리더의 자격이라 할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선악의 저편』에서 '미움을 통해 인간은 가장 추악해 진다'라고 말했다. 지도자의 마음에 미움이 싹트고 있으면 공동체는 서서히 시들고 시름하다 갈등을 안고서 파괴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지도자는 큰 사랑으로 공동체를 위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생산을 도출하고, 현실을 점검하면서 대안과 변화를 진단 처방하여 미래 비전을 제시하면서도 인본을 우선시 하는 정책만이 진정한 승리가 되어 영원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의 삶이 누구나 행복할 수 있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사랑은 능동적이고 고통'이라고 했다. 즉 타인의 죄를 자신의 죄처럼 끓어 안아야 되고, 누구도 단죄하지 않으며, 악인을 미워하지 않는 거룩한 사랑으로 인도하는 영혼의 중보자의 역할을 능히 실천하는 자가 진실한 종이라 했다. 대통령께서 진실한 종이 되어 사회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국민을 통합하는 정책을 우선순위에 넣어 주기를 간곡히 바란다. 통합 정치가 원만해지면 정권은 쾌속 순항하리라 확신한다. 통합의 출발은 야권에서도 인정하는 인물을 삼고초려 하여 인재를 발탁 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통령께서 결단해 주기를 바란다. 신정부는 기후변화에 대응키 위해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적극 환영한다. 필자는 새만금 사업 프로젝트를 정부주관 주도로 새만금개발공사가 적극 사업추진 할 것을 권장 한다. 그동안 정부 예산, 전라북도 예산과 민간자본을 활용 사업을 추진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신정부는 새만금을 신재생에너지 전초기지로 검토를 바란다. 신에너지와 재생에너지 생산 기지화 하여 세계일류공영에 기여하는 메카로 거듭나기 위해 새만금개발공사에서 추진하는 ESG (기업의 환경, 사회, 지배 구조) 경영체계를 체계화 하고 실질적인 성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개선 방향을 적극 추진해 주기를 바라며. 신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새만금 사업은 우리들의 숙원사업이고, 반드시 백년대계를 위한 사업이므로 속도를 내어주기 바란다. 오동근 재경남원문인협회 기획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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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6.25 18:50

[타향에서] 한국의 수니온곶 변산반도 적벽강

내 고향 김제에서 가까운 전라북도 변산에는 ‘채석강’과 ‘적벽강’이라는 관광 명소가 있다. 아마 많은 사람이 적벽강은 몰라도 채석강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두 곳은 ‘강’이라는 이름만 붙어 있을 뿐 사실 흐르는 강은 아니다. ‘채석강彩石江’은 주변 경관이 중국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은 강을 닮아 그 이름을 딴 지명이고, ‘적벽강赤壁江’은 주변 경관이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노닐었다는 강을 닮아 그 이름을 딴 지명이다. 채석강과 적벽강은 ‘죽막마을’을 사이에 두고 서로 인접해 있다. 채석강에서 싸드락싸드락 걸어서 출발하면 격포해수욕장 해변을 거쳐 죽막마을을 지나 20여 분 만에 적벽강에 도착할 수 있다. 나는 두 곳 중 적벽강을 더 좋아한다. 그곳이 그리스의 수니온곶을 빼닮았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면 수니온곶이, 그리고 수니온곶에 가면 적벽강이 생각날 정도다. 우선 수니온곶이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가 있는 아티카반도 끝자락에 놓여있는 것처럼 적벽강도 변산반도 서쪽 끝자락에 놓여있다. 또한 수니온곶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신전이 있다면 적벽강에도 수성당이라는 당집이 있다. 수니온곶은 앞쪽으로 에게해의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어 바다의 신의 성소가 자리 잡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곳에 포세이돈의 강한 기운이 서려 있다고 생각하고 일찍부터 제단을 쌓고 그에게 제물을 바치며 선원들의 무사 귀환을 빌었다. BC 8세기경의 호메로스가 쓴 『오디세이아』에 따르면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는 트로이 전쟁 후 스파르타로 돌아가다가 수니온곶에 상륙하여 포세이돈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무사 귀환을 빌었다. 적벽강도 칠산 앞바다, 위도, 상왕등도, 하왕등도, 고군산 군도 등이 아주 잘 보이는, 낮아도 그곳에서는 가장 높은 용두산 정상이라서 그 지역을 항해하는 배들과 어선들을 돌보는 당집이 들어서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수성당은 상량 기록에 따르면 조선 시대 순조 때 지어졌다. 하지만 발굴된 유물에 따르면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앞선 삼국시대부터 고기잡이를 떠나기 전 그곳에서 바다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며 무사 귀환을 빌었다. 수성당에 모신 신은 거인巨人 ‘개양할미(혹은 계양할미)’와 그녀의 여덟 명의 딸이다. 구전에 따르면 개양할미는 수성당 근처 여울굴에서 나와 여덟 명의 딸을 낳아 일곱 명은 각각 전국의 도로 보내고 남은 한 명과 함께 서해 바다를 다스렸다. 개양할미는 특히 조기가 많이 나던 칠산 앞바다를 성큼성큼 걸어 다니면서 어부들을 위해 위험한 곳은 알려주고 거센 파도는 잠재워 주었다. 언젠가 개양할미는 곰소 앞바다의 깊은 곳 ‘계란여’를 지나다가 치마가 조금 물에 젖자 화가 나서 얼른 육지로 건너가서는 치마에 흙과 돌을 가득 담아 와 단숨에 그곳을 메우기도 했다. 끝으로 수니온곶과 적벽강은 똑같이 석양으로 유명하다. 수니온곶이 석양에 비친 포세이돈 신전으로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는다면, 적벽강은 석양에 비친 진홍색 바위와 바닷물이 서로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적벽강처럼 전라북도에는 전 세계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또 다른 명소가 있다. 바로 9개 코스 총 240km에 달하는 ‘아름다운 순례길’이다. 그중 ‘수류성당’에서 ‘금산사’까지 이어지는 제7코스는 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 등 우리나라 4대 종교의 화합을 염원하면서 조성한 길이라 뜻깊어 더욱더 ‘아름다운’ 길이다. 김원익 홍익대 교수·세계신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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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6.18 17:29

[타향에서] 서울에서 만난 전북- 헨리 아펜젤러

우암 송시열, 해공 신익희,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이 분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우암은 서인이자 노론의 영수로서 사후에 종묘에 배향되었습니다. 그는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한양으로 상경하다 정읍에서 사약을 받았습니다. 해공은 초대와 2대 국회의장을 지내고 1956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습니다. 유세를 위해 호남선 열차를 타고 내려가다가 익산에서 급서하셨지요. 아펜젤러는 미국 감리회 선교사로 1885년 조선에 입국하여 배재학당과 정동교회 등을 세웠습니다. 1902년 배를 타고 목포로 향하던 중 군산 앞바다에서 배끼리 충돌하면서 물에 빠진 여학생을 구하려다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셨지요. 2007년 군산에 아펜젤러노블기념관과 순교기념교회가 건립된 이유입니다. 이쯤 되면 정답을 아시겠지요. 전북에서 태어나거나 활동한 것은 아닌데, 전북에서 삶을 마치신 분들입니다. 그중 아펜젤러는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데 이역만리 머나먼 곳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이했습니다.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가면 그의 묘비를 발견할 수 있지만, 사실은 유해를 찾지도 못했습니다. ‘덕수궁의 돌담길 옛날의 돌담길...... 정동교회 종소리 은은하게 들리면’, ‘덕수궁 정동길에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힌 조그만 교회당’ 혜은이의 ‘옛사랑의 돌담길’과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중 일부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정동교회와 조그만 교회당이 바로 아펜젤러가 세운 그 교회입니다. 그러고 보면 그는 1885년부터 지금까지 140여년 동안 여전히 우리의 마음에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아펜젤러는 1858년 펜실베니아주에서 태어나 1885년 목사 안수를 받고 부인과 함께 제물포항을 통해 입국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11월 서울에서 딸 앨리스를 낳았는데,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최초의 서양 아기라고 합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가다 보면 갈림길에 정동교회가 보입니다. 그곳에서 왼쪽 언덕길로 오르다 러시아대사관을 지나면 빨간 벽돌로 된 오래된 건물이 서있습니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이라는 현판과 함께. 그곳에서 우리나라 근대 교육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지요. 최초에는 두 명의 학생으로 시작했는데, 빠르게 늘어 1886년에는 스무 명을 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고종이 ‘배재학당(培材學堂)’이라는 현판을 직접 써서 하사했습니다. ‘인재를 양성하는 배움터’라는 뜻이지요. 이승만, 주시경, 김소월, 지청천, 여운형 선생 같은 분들이 그곳에서 배운 분들입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책을 읽고 있는 아펜젤러의 모습을 볼 수 있지요. 그가 세운 정동제일교회는 독립운동가들이 모이거나 독립운동가들을 후원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종교시설인 데다가 외국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보니 일제의 감시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3·1 운동 당시에는 담임목사 이필주와 전도사 박동완이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또 유관순 열사도 정동제일교회 신자였지요. 그의 사후에도 부인과 아들, 딸은 여전히 조선에 남아 교육과 선교활동을 펼쳤습니다. 현재는 양화진 묘역에 함께 묻혀 있지요. 그는 조선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누구보다 조선을 사랑했습니다. 국적을 불문하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한 것이지요. 호국보훈의 달 6월입니다. 헨리 아펜젤러라는 이름을 한번 기억해보면 어떨까요.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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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6.1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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