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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려나간 버드나무와 시민참여 경험

지난 2월 29일 새벽, 전주천에 남아있던 버드나무가 모두 베어졌다. 작년에도 전주시는 전주천의 버드나무 260여 그루를 베어냈었다. 이젠 전주천의 풍경이었던 버드나무가 한그루도 없다. 평소 전주천에서 산책하기를 즐겼던 나로서는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리고 화가 났다. 화가 난 이유는 막연히 버드나무가 잘려나가서 만은 아니었다. 분명 작년에 버드나무가 잘려나갔을 때 시민들의 반발은 상당했고, 전주시는 앞으로 무차별 벌목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전주의 자산 하나를 잃은 느낌이다. 전주에서 살아가는 시민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다행히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시민들은 나 뿐만은 아니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관련된 정보들을 전하는 이들도 있었고, 함께 소통하고 고민하는 오픈채팅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잘려나간 버드나무를 기억하기 위한 기획들을 만들어 홍보하고 함께 진행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나도 이런 활동에 참여해 의견도 나누고 내가 가진 전주천이 버드나무와 함께 아름다웠었던 사진을 SNS에 공유하며 함께했다. 사람들이 모여 활동들을 함께하니 버드나무는 사라졌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는 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같은 것이 생겼다. 잘려나간 버드나무 이야기는 지역언론 뿐 아니라 중앙언론사 뉴스에도 방영되며 많은 이들에게 빠르게 전해졌다. 다양한 로컬매거진과 SNS정보 채널들에서도 버드나무 문제를 다루었다. 버드나무 벌목에 관해 관련 부서에 민원을 넣기도 하고 시의회에도 목소리를 내었다. 모든 것이 처음인 경험이었다. 이정도의 반응이면 전주시의 태도를 바꾸게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힘이 났다. 지금까지 전주에서 2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시에서 추진하는 사업에 대해 이렇게 까지 직접적인 의견을 내고 활동을 한건 처음이었다. 그동안 시에서 진행한 사업들이 다 마음에 들었던건 아니지만 그냥 욕하고 말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왜 나는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었을까? 이런 의문이 머리를 스쳤다. 왜 우리는 지방자치제도 안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시민참여에는 관심이 없을까? 왜라는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우선 든 생각은 시민참여 경험의 부재였다. 어려서부터 전주에서 살아왔고 전주에 애정이 있어 지역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들에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며 살아왔다. 하지만 나는 투표 이외에 시민참여를 경험한 적은 없었다. 더군다나 호남지역은 특정 당이 우세한 지역이라 그 당의 공천만 받으면 대부분 당선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지역의 문제들을 경험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혀를 차며 비판을 하는 일 뿐이었고, 이런 무기력의 경험이 내가 지역에서 목소리를 내고 시민참여를 하는 일에 무관심하게 만든 원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보면 버드나무는 잘려나가 이제는 다시 돌아올 수 없고, 버드나무 벌목 문제가 큰 이슈가 되었지만 이에 관한 전주시의 태도는 변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는 지역의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직접 참여해 뭔가를 해보았다는 경험이 남았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이 이런 시민참여의 경험을 많이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장년층의 경우 민주화운동 등 시민참여를 통해 얻어낸 효능감을 체감한 세대이지만 지금의 청년세대는 세대를 아우르는 시민참여의 경험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청년들이 시민참여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닐까? 더 많은 청년들이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참여하고 청년들을 위한 지역을 청년 스스로가 만들어 갈 수 있는 지역사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지역에서 다양한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청년들을 응원한다. /류영관 둥근숲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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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3.28 15:40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_로컬에서 살아남기

서울은 기회의 도시라고 말한다. 서울은 사람도 많고 인프라도 다양하다. 공모 지원 사업 모두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으며, 문화예술을 소비하는 인구도 수도권에 몰려 있다. 그래서인지 나와 함께 그림을 그리던 친구들은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서울로 떠난 이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너무나 사랑하는 전주에 남았다. 떠나는 친구들을 보며 불안했지만, 지역에도 문화예술 재단이 있고 공공기관이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2021년 전북에서 예술인으로 남아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처음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온라인으로 알아봤던 것 같다. 아르떼, 아르코, 재단, 지자체 등 매일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하였다. 하지만 아무런 경력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사업은 없었다. 정말 답답한 했다. 그리고 지역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청년 작가들을 찾아가 그들은 어떤 마음이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검색창에 ‘전북, 지역 커뮤니티, 전북 청년’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둥근숲’이라는 공간을 알게 되었다. 이 공간에선 다양한 주제로 커뮤니티 파티 및 행사를 만들었고 무작정 찾아갔다.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하고 싶고, 지역에선 어떻게 살아갈 건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이때 만나게 된 인연들과 함께 팀이 되어 사업을 해보기도 했다. 서로의 작업 이야기와 사업 이야기를 나누며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고받았으며 필요한 일이 있으면 서로를 찾기도 했다. 이때 내가 느낀 것은 "로컬에서 살아남으려면 사람이 모여야한다”였다. 이 즈음에 전북청년허브센터 공지사항에 ‘지역 공동체 활성화 사업’ 공모를 보게되었다. 이 사업을 보자마자 나를 위한 사업이고, 신이 나에게 주신 기회라 생각했다. 나는 바로 세무서를 찾아가 비영리 단체 ‘세이모비오’를 만들었다. 이 단체는 전북에서 활동하는 청년 신진 작가의 첫 시작을 도와주는 단체이다. 지역에서 첫 시작을 하는 청년 예술인들이 방황하지 않고 잘 닦인 길로 함께 걸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설립하였다. 우리 단체에 들어올 청년 작가들을 찾기 위해 나와 팀원들은 전북특별자치도에 위치한 예대가 있는 모든 대학에 방문하여 작가 모집 공고 포스터를 붙이고 작가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스무 명의 작가들과 함께하게 되었고, 이들과 정기 커뮤니티를 가졌다. 또한 로컬 예술 기업인과 선배 예술인들의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작가님들과 힘을 합쳐 구도심 웨딩의 거리 ‘박다옥 빌딩’에서 다 함께 아트페어를 한 달간 진행하였다. 이때 출품 작품이 대략 300점 정도 되었는데, 출품 작품의 80%가 판매되었다. 이 기쁨이 전북 청년 시각예술 분야에서 인정을 받아 36년 전통의 전북 문화 예술 전문지 <문화저널>에 실리기도 했다. 또한 우리의 성과를 보고 전주시의 지원을 받아 참여 작가의 개인전과 단체전, 시민대상 원데이 클래스를 개최하였다. 짧은 시간 동안 우리 단체가 지역에서 자리를 잡고, 예술인인 내가 로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이 모였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무언가를 시작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진실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 보길 바란다. /이소정 문화예술교육공간 오이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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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3.21 16:22

꽃 피는 겨울이 올까요

유럽연합(EU) 산하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C3S)에서 '올해 1월에 이어 2월에도 지구 평균 기온이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라 발표했다. 같은 날, 환경부에서는 2022년 4월 '제품의 포장 재질, 포장 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제품 포장규칙)'을 개정하고, 포장 횟수는 1회 이내로, 포장공간 비율은 50% 이하로 제한하는 기준을 수립하여 2년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24년 4월 30일부터 택배 과대포장 규제 시행을 앞두고 있었는데, 돌연 2년간 추가 계도 기간을 운영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23년 9월 일회용 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 철회를 시작으로 일회용품 규제 정책은 후퇴하고 있다. 기후 위기와 환경오염이 전 세계적인 문제로 대두된 건 불과 1~2년 전이 아니다. '북극곰이 살 곳이 없어졌어요.'는 20여 년 전 유, 초등 교육에서 자주 등장했던 이야기이다. 과거에는 문제 제시만 했다면, 원인 제시 더 나아가 해결 방안 제시로 확대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후 위기에 한층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3R', 즉, 줄이기(Reduce), 재사용(Reuse), 재활용(Recycle)은 부족한 자원을 절약하고 가능한 한 폐기물을 최소한으로 배출해 생태계에 끼치는 악영항을 감소하자는 목적으로 한 일종의 환경 지향적인 생활 실천을 제시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안이다. '3R' 기반으로 한 제로웨이스트샵, 즉 쓰레기를 제로로 만드는 가게를 직접 운영하다 보면 '환경'이라는 큰 꼭지 안에서 다양한 가치관으로 가지 쳐지는 그린 컨슈머 손님들을 만날 수 있다. 1. 탄소 발자국 - 로컬, 국내산 제품들을 선택하여 운송에 소요되는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소비 2. 노 플라스틱 - 플라스틱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은 제품 소비, 미세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가지 않는 제품 소비 3. 내 몸에 이로운 제품 - 천연 원료로 만들어진 제품 소비 4. 환경배출에 이로운 제품 사용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재사용이 가능한 제품 소비 내가 소비한 제품이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생산이 되었고, 사용 시 나의 몸이나 환경에 해가 되지 않는지, 또 버려질 땐 어떤 방식으로 재순환 하는지에 대한 건강한 가치를 담은 소비를 하러 온다. 사실, 샵을 운영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좋은 제로 웨이스트는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물건이긴 하다. 친환경 라이프 스타일, 제로 웨이스트 실천에 있어서 일부는 어렵고, 귀찮고, 비싸기 때문에 어렵다고들 한다. 그 이유는 기후 문제, 환경 문제에 대한 책임을 소비자에게만 부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페트병을 소비할 때, 애초에 라벨이 음각으로 대신한다면, 소비자들이 라벨을 뜯어 배출할 필요가 없을 문제이다. 라벨이 있는 페트병과 무라벨 페트병의 선택지를 준다면, 소비자들은 분명 환경에 더 이로운 선택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 최종 선택자는 소비자라고는 하지만, 생산자가 만든 쓰레기를 소비자가 감당하고,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 건 임계치가 있다. 궁극적으로 달라져야 하는 건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이고, 이를 묵인하는 정부이다. 기본 교과 과정에서 환경 교육의 기회가 늘어난 만큼 시민 의식은 높아졌으며, 소비자는 똑똑하다. 또한 윤리적으로 더 나은 기업이 되고자 ESG 경영을 실천한다. 기후 테크 산업의 성장으로 환경을 이용한 순환 경제를 만드는 스타트 업이 각광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지자체 등의 적극적인 정책이 뒷받침되고 있지 못하는 현실이 다소 씁쓸하다. /서늘 제로웨이스트숍 늘미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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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3.14 16:40

불행 뿌시기 : 자기효능감

친구들은 종종 물었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야?” 어릴 적부터 ‘자기효능감’이 높은 아이였다. ‘이거 왠지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결국은 잘될 거야’라는 믿음이 마음 가득히 채워져 있었다. 스스로를 믿어줄 수 있었던 영향 중 하나는, 나의 가치와 가능성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힘든 소아암 투병도 굳건히 잘 견뎌온 삶이기에, 그 긍지라면 앞으로도 무엇이든 잘 해낼 거라 말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 나 또한 스스로에게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의 자기효능감에 오류가 생기기 시작했다. 바로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직면했을 때이다. 성장기를 보냈던 동네는 장애인분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장애인은 특별한 존재야. 그러니까 차별하지 않아야 해’,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이야’라는 인식 교육을 귀를 쫑긋하며 들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장애인도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야 다르지 않아.’를 입력했다. 하지만 막상 스스로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오니,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왜 장애인이지?’였다. 장애인도 똑같은 사람이라며 편견이 없다고 지내온 시간이 무색할 만큼 상실감이 주는 타격에 꿈꾸었던 희망들이 와르르 무너졌고, 더 이상 소망은 의미가 없었다. 마치 방금 전까지도 요동치던 심전도 기계가 ‘삐이이’ 소리를 내며 한 줄이 되는 느낌이랄까? 당사자가 되어보니 그제야 ‘장애’라는 단어가 주는 현실이 ‘공감’으로 마음에 닿았다. ‘불가능’이라는 강박이 스스로를 더 이상 믿음이 아닌 의심으로 몰아세웠다. ‘할 수 있을까?’,‘해도 될까?’라는 불안감이 자기효능감마저 빼앗아 불행하게 만들었다. 장애는 나의 전부가 아닌, 나의 일부일 뿐. 시간이 흘러 공동체 동료들을 만났고, 인식개선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과 프로그램을 기획 및 참여하며 장애가 있는 ‘나’와 ‘타인’,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넓혔다. 이제는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한탄보다 ‘바꿀 수 있는 것’에 대한 실천의 중요성을 배워가는 중이다. 그리고 깊게 숨어버렸던 자존감을 끌어올려 다시 한번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어보기로 했다. 장애는 나의 전부가 아닌 일부에 불과하다는 믿음으로 말이다. 어릴 적 인식개선 교육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나의 생각을 조금 덧붙이자면, 장애인도 똑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장애가 특별하거나 특수하거나 특이하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살아가면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꿈과 생계를 위해 진로를 고민하고, 때론 소소한 즐거움을 위해 이쁜 카페와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가고, 쇼핑과 문화생활도 즐기고, 일상적으로 바라는 것과 필요한 것이 그리 다르지 않다. 그저 일상적인 환경이라도 여느 사람들과 같이 평범해지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장애’는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 사물, 현상 그 어디라도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을 경험하는 순간은 짧기도 하고 때론 길기도 하며, 극복할 수도 있으며 때론 묵묵히 감내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경험할 때 우리는 시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시련에만 머물러 있기보단 ‘스스로 잘 이겨나갈 수 있다는 믿음’ 곧 자기효능감을 먼저 기억하자. 끝으로 누군가 “지금도 불행한가요?”라고 묻는다면, “더 이상 불행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끝맺음 하겠다. /윤해아 (사)사회적 협동조합 해시담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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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3.07 15:22

보조금 지원은 왜 독이될까?

지역에서 활동하다 보면 수많은 보조사업을 접하게 된다. 우린 이런 보조사업을 통해 활동을 시작하기도 하고 동력을 얻고 다양한 활동을 하기도 한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커뮤니티 팀들을 도와주는 보조사업 예산은 참 고마운 돈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보조사업 예산을 몇 번 지원 받아본 나도 그렇고, 지역에서 좀 활동을 해온 커뮤니티 팀들을 보면 다들 보조사업을 하고 싶지 않다고들 말한다. 우리를 도와주기 위한 보조금 지원은 왜 우리를 힘들게 할까? 우선 보조사업 예산의 장점부터 살펴보자. 지자체나 여러 중간지원조직을 통해 지원되는 보조금은 청년, 문화예술, 공동체, 로컬, 성평등, 환경, 장애 등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지역 단체에 교부되어 활용된다. 지역 단체들은 이 예산을 통해 지역에 필요한 일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부족한 것들을 채우는 데 쓰인다. 보조금 예산을 통해 새로운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성장하는 데 활용되기도 한다. 이렇게 보조사업 예산은 잘 쓰면 더없이 좋은 지원이다. 그런데 뭐가 문제길래 지역에서 활동깨나 했다는 팀들은 보조사업을 멀리하려 할까? 가장 먼저 어려움을 겪는 건 정산이다. 나라의 예산을 지원받는 일이니 당연히 정산은 잘해야 한다. 하지만 정산은 생각보다 큰 품이 든다. 세상이 변하고 물가도 올랐지만, 보조금 예산 지출기준은 수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고, 지출에 있어 생각보다 제약도 많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최근에는 적은 금액이긴 하지만 무정산 지원사업도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정산은 익숙해지면 수월해지는 법, 진짜 중요한 문제는 정산이 아니다. 2년 차 이상 지역에서 활동한 커뮤니티 및 단체에 해당하는 문제일 것이다. 초기 보조금을 통해 활동도 이어오고 규모나 활동의 깊이도 깊어질 시기의 팀들 말이다. 이런 팀들은 이제 좀 규모 있는 보조사업에 지원하고 활동을 이어나가게 된다. 하지만 그 규모에 비해 보조사업은 사업을 운영하는 주체의 인건비, 기획비 등은 여전히 지원이 불가하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보조사업을 맡아 운영하는 주체는 점점 지쳐간다. 그렇게 보조사업을 받지 않겠다는 팀들이 하나둘 늘어간다. 그럼에도 보조사업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역에서 활동의 비용을 마련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보조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은 보조사업의 쳇바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비단 보조사업 구조의 문제일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단 지원을 받은 우리들의 시선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활동에 필요한 예산을 만드는 일이 아닌 해당 보조사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득과 그에 따른 비용을 계산해 적절히 보조사업을 활용해야 한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어떤 방향으로 활동을 지속할 것인지 말이다. 이런 고민이 없는 보조사업 수행은 예산을 쓰는 활동에 그칠 수밖에 없다. 또 보조사업에만 의지하지 않고도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필요한 자원과 예산을 마련하는 방법을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제 막 초기 단계를 벗어난 단체들이 뚝딱 해결책을 마련할 리 만무하다. 더군다나 지역에서는 다양한 단체의 성장사례를 접하기도 어렵다. 지역 활동단체의 로드맵이 없는 것이다. 결국은 지역에 남은 커뮤니티 팀들이 경쟁하기보다 서로 연대하고 소통하며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 답이 아닐까 싶다. /류영관 둥근숲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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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2.21 16:38

지역에 문화예술 기획자가 필요한 이유

독자는 문화예술 기획자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IT, 시스템, 광고, 게임 등 다양한 분야의 기획자가 있다. 기획자가 하는 일은 광범위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의 단어나 문장으로 명확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문화예술 기획자는 문화예술과 관련된 행사, 공연, 프로젝트 등을 기획하는 사람이며 실제 예를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 전주세계소리축제, 전주문화재야행, 전주독서대전, 재즈페스티벌 전북은 올해로 특별자치도가 되었다. 각종 환경규제를 정부 승인 없이 직권으로 해제하고, 레포츠와 휴양 인프라를 확대해 관광사업을 키운다는 이야기를 출범식에서 발표했다. 관광 사업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문화 예술 행사가 많아지고, 이 행사들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기획자들이 많아야 한다. 그중에서도 필자는 청년 기획자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북의 인구문제를 살펴보면, 고령화 사회의 문제도 있지만 청년들의 탈 지역화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청년 예술인을 대상으로 “지역을 떠나는 이유”를 조사하였다. 가장 큰 이유는 ‘지역에서 먹고 살 일이 없어서’였고, 다음으로는 ‘다양한 인프라(문화 인프라)가 없어서’이었다. 나는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청년 기획자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년 기획자가 지역 내에서 다양한 문화예술 기획을 하며 실행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인적 자원은 ‘예술인’이다. ‘전주세계소리축제’를 예로 들어보겠다. 기획자가 이 축제를 기획할 때 공연을 프로젝트 내에 배치하면 공연을 실행할 수 있는 ‘무용수’, 노래를 할 수 있는 ’소리꾼’, 반주를 진행하는 ‘밴드’, 그림 공모전을 진행하며 선정하는 ‘미술인’ 등 다양한 예술인이 필요하다. 이는 전북에서 문화예술 축제(행사)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예술인들이 예술로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이는 예술인들의 탈전북화를 막고, 타지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의 유입을 늘릴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필자가 기획했던 ‘3만 원 아트페어 <다음번엔 오릅니다.>’에서는 참여 작가 19명 중 3명의 수도권 지역 작가들이 참여하였다. 예술인들은 어느 지역에서나 일자리가 많지 않기 때문에, 타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인들이 자연스럽게 전북으로 유입이 될 것이다. 또한 문화행사가 많아지면 다양한 산업 분야도 함께 성장하기 마련이다. 그 예로, 한옥마을에서 문화 축제를 하게 되면 주변으로 숙박업이나 식음료 사업들이 함께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탈 지역화의 이유 중 ’다양한 인프라가 없어서’를 살펴보자. 과거의 인프라는 ‘철도, 도로, 병원, 학교’등 교통과 밀접한 자원을 말했지만, 현시대에선 ‘영화관, 미술관, 학교, 공원, 도서관, 쇼핑센터 등’ 문화시설도 중요한 인프라로 구축되어 있다. 지역 내 기획자가 많아져 관할 부처와 힘을 합쳐 문화 예술 기관이나 센터를 만들고 관리한다면, 문화 인프라가 확대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전북 특별자치 도민들의 삶의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다. 2024년 역사관광 문화도시 전북 특별자치도에서 절대 없어서 안될 청년 문화 기획자들, 이들을 양성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인큐베이팅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동시에, 기획자들이 활동 반경을 넓히고 기획한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만 한다. 그래야 진정한 역사관광 문화도시 특별 자치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소정 문화예술교육공간 오이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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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2.15 17:30

예민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2020년도 어느 날 한 손님이 고민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비닐봉지는 접어서 버려야 할까요? 펼쳐서 버려야 할까요?' 살림 프로그램에서 종량제 봉투의 부피를 줄이기 위해 봉투를 고이 접어 버리는 장면이 스쳤고, '접어서 버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라 모호하게 답했었다. 몇 주 후 그 손님이 다시 방문했는데, '제가 환경부한테 비닐봉지를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에 대한 질의를 했는데, 펼쳐서 버려야 한다.라는 응답이 왔어요. 공유해 드리려고 방문했어요!' 라 전달해 줬다. 그 손님이 가고 나서는 세 가지 부분에서 놀랐다. 첫째는 비닐봉지는 펼쳐서 버려야 한다는 것, 둘째는 단순한 호기심에 민원을 넣은 것, 셋째는 그 답을 나에게 피드백을 해 준 것. 생활 속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중 하나인 비닐 쓰레기. 일단 비닐 쓰레기의 재활용 표시의 여부를 잘 살펴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생산자에게 재활용 책임을 부과하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이기 때문에 재활용 표시가 있다면, 분리배출을 하는 게 원칙이다. 우리가 라면을 구매했다고 가정했을 때, 기업은 소비자로부터 받은 비용 안에 재활용에 필요한 비용을 댄 것이다. 소비자들은 제품을 소비했을 때는 이미 라면과 더불어 버려지는 비닐봉지의 재활용 비용을 낸 것이므로 분리배출을 해야만 한다. 예컨대 재활용 표시가 있는 쓰레기를 일반 쓰레기로 버린다면, 우리는 재활용품 비용과 종량제 봉투 비용까지 이중 납부한 셈이다. 비닐은 플라스틱의 일종으로 '필름류 플라스틱'인데, 이 비닐은 폐기물 고형연료(SRF), 플라스틱 재활용 제품, 플라스틱 분해 기름 등 3가지 용도로 재활용된다. 그러나 우리가 비닐을 접은 상태에서 배출했다면, 재활용 선별장에서는 일반 쓰레기로 버려진다. 그 이유는 비교적 깨끗한 상태에서 재활용이 제대로 이루어지는데 비닐이 접혀있다면 내부를 확인하기 힘들기 때문에 비닐은 펼쳐서 버려야 한다. 무심코 던진 손님의 질문은 나를 환경 활동가로 성장할 수 있게 해준 분명한 원동력이었다. 이전의 나는 식당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면 조용히 냅킨에 싸서 버린 후 그 식당엔 두 번 다시 가지 않을류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식당이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문제점을 언급을 하고 수면 위로 올려야지만 위생에 신경 쓰는 가게가 될 것이다. 비록 예민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은 생기겠지만. 그 이후로는 불편함을 지각할 때,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 그리고 대안은 없는지 등의 과정들을 단순히 웹 검색이 아닌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정부기관과 지자체를 활용하여 찾아간다는 점, 그리고 또 그 올바른 결과를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알려서 좀 더 나은 사회가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하였다. 환경 활동가의 눈으로 접근하여 풀어보면 사용을 다한 화장품 용기, 즉석밥 용기 등을 버릴 때, 시민들은 재활용 표시를 보고 열심히 분리배출하지만 사실상 복합재질이기 때문에 결국 선별장에서는 일반 쓰레기로 버려진다는 거에 화가 나야 하고, 종이팩과 멸균팩 배출함이 우리 집 앞에는 없다는 거에 분노해야 하고 또 이러한 문제들을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알리고 전파해야 화장품은 재활용 등급제를 표기하기 시작했고, 시민들은 즉석밥 용기가 더 이상 재활용되지 않는 것을 인식하는 등 하나씩 바뀌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좀 예민한 것 같은데, 편하게 살면 안 돼?' "응 안 돼." 내가 편하면 세상은 바뀌지 않아. 그래서 그런지 언제부턴가는 예민하다는 말이 나에겐 열심히 살고 있다는 칭찬과 같이 들린다. 나의 예민함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작은 어벤저스다. /서늘 제로웨이스트숍 늘미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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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2.01 17:00

청춘: ‘나’다움을 만들어 가는 순간

‘청춘예찬’,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처럼 인생의 젊은 나이와 시절을 아름다워 노래 부르다. 청춘(靑春)’이라는 단어가 어리숙함과 노련함 사이 그 어딘가에서 헤엄치고 있는 나와 닮아 있는 듯하여 친근하면서도, ‘예찬(禮饌)’이 나의 청춘이 아름다워 노래를 부른다는 말처럼 느껴져 마음이 간질간질 해지는 표현이다. 우리는 ‘새로운 시작’, 혹은 ‘긍정적인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진 무언가를 비유할 때 ‘봄’과 ‘새싹’으로 표현하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각자만의 청춘은 어떤 키워드들이 있을까? 나의 청춘을 나타내는 키워드는 #거센 바람 #장애 #용기 #공동체 #도전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그중에서도 나의 청춘을 가장 실감하게 하는 것은 ‘거센 바람’이라는 표현이다. 우리는 각각 살아가는 속도도 다르고 경험하는 청춘도 다르다. 하지만 자연 속 겨울 끝에는 봄이 오는 순리처럼 우리의 겨울 끝에도 봄이 온다는 순리는 모두의 공통점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봄이 오기 위해 거쳐가야 하는 겨울을 우리는 어떤 모습과 마음으로 마주하고 있는가? 나에게 있어 겨울은 마치 거센 바람과 같아서 때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추위의 고통을 경험하게 되고, 고통이 잠잠해질 때쯤 어느새 패딩을 입고 있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마치 나를 보호하기 위해 입는 갑옷처럼 말이다. 그렇게 겨울에서 봄을 향해 걸어가며 나를 보호하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간다. “결국은 지나갈 거야”라는 주문을 걸면서 말이다. 어쩌면 ‘청춘’은 나를 자극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가장 나를 잘 지켜낼 수 있는 과정을 나타내는 표현이지 않을까? 또한, 나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기에 ‘아름답다’ 말할 수 있는 순간일 것이다. 가끔 나의 겨울을 잘 모르는 누군가는 말한다. “너는 아직 어려서 진짜 고통을 몰라.” #소아암 4기 투병 #열악한 환경 속 다사다난한 성장기 #갑작스런 장애판정… 단 몇 문장만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나의 고통과 그럼에도 잘 살아가기 위한 도전을 누군가에게 다 알아주고 이해해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비록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스스로의 수고로움을 알기에 아껴주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나의 첫 칼럼은 ‘청춘예찬’이 주는 첫인상을 기록하고 싶었다. 나는 생각이나 마음을 글로 끄적이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글에서 느껴지는 힘과 따뜻함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귀감이 될 만큼 출중한 글쓰기 실력은 아니기에 그저 소소한 나만의 즐거움으로 만족하기 충분하다. 그렇기에 칼럼 제의를 받았을 때, 한편으로는 “나에게 칼럼은 너무 과분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팝콘처럼 수북한 나의 고민들이 때론 새로운 관점이 된다면, 이는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명쾌하고도 고소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걱정은 잠시 뒤로하고, 나는 설레는 가슴으로 칼럼을 채워가고 싶다. 말과 글에는 힘이 있어서 말 몇 마디로도 누군가는 희노애락을 경험하고, 때로는 갇혀있던 틀을 깨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만든다. 부디 앞으로 나의 칼럼을 스쳐가는 사람들에게 그 힘이 닿았으면 한다. 그렇게 그 순간만큼은 편견을 내려놓고, 따뜻한 기운을 더불어 조금은 더 넓은 사고와 가치있는 고민을 나눌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윤해아 (사회적협동조합 해시담 이사) △윤해아 이사는 청년장애인자조모임단체 어쩌다청년 대표, 환경단체 프리데고 인권분과 자문위원, 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환경분과 자문위원, 장애인인식개선 교육 강사, 지속가능발전목표 SDG’s 교육 강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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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1.25 15:43

로컬에서 연결이 주는 의미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앞서 둥근숲과 나에 대한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겠다. 둥근숲은 전주원도심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생긴 거점공간이다. 2019년 말 공간을 오픈하고, 2021년까지 도시재생사업의 지원을 받아 지역 청년들과 ‘기회를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공간’을 주제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그리고 도시재생사업이 끝난 2022년부터 재생사업 참여 주체들이 함께 설립한 둥근숲사회적협동조합이 자립적으로 공간을 운영해 나가고 있다. 벌써 4년째 운영 중인 공간이다. 나는 거점공간 둥근숲을 담당했던 도시재생센터의 직원으로 둥근숲 공간을 운영했으며, 재생사업 종료 이후 지금까지 조합원으로 둥근숲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 커뮤니티공간 둥근숲을 운영하는 건 다 이 고민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전주원도심 도시재생센터 직원으로 일하면서 항상 해오던 고민이었는데. 어떻게 하면 함께 일하던 청년들을 떠나보내지 않고 지역에서 함께 일하며 살 수 있을까였다. 하지만 그때는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느끼기에도 지역에는 그 청년들에게 줄 일거리도, 어떤 비전도 마땅치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동료를 떠나보낸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고민을 안고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면서 많은 청년을 만나고 지역에서 사는 삶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2~3년을 일하다 보니 알게 된 한가지가 있다. 바로 청년들, 특히 기획자들이 지역에서의 삶을 고민할 때 실질적으로 정보를 얻을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어떤 활동들이 일어나는지, 어떤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는지, 어떻게 지역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지 물어보고 함께 고민할 사람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분명 지역에는 그렇게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이다. 그런 청년들은 본인의 네트워크에서 연결점을 찾지 못하면 포기하거나, 지역을 떠난다. 연결에 대한 필요는 지역에서의 삶을 고민을 막 시작하는 청년들뿐만 아니라 이미 지역에서 2-3년 이상 활동해 온 청년들에게도 절실하다. 2022년 전주사회혁신센터의 리빙랩 사업을 통해 2년 이상 활동한 전주의 로컬커뮤니티 8팀을 만나 로컬커뮤니티에 대한 워크숍을 몇 차례 진행했었다. 이때도 주요하게 논의된 주제는 연결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연결, 지속가능함을 위한 연결이 이들에게는 중요했다. 돈으로 필요한 것들을 다 마련하기 어려운 영세한 청년들이 연결을 통해 서로 필요한 역할들을 채워나가는 형태의 연결 말이다. 지역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지역에 남아있게 하려면 결국 지역 내에서의 다양한 정보의 연결, 네트워크의 연결이 필요하다. 사람이 지역에 남을 수 있도록 하는 건 그 사람과 연결된 관계들이고, 그 관계를 만드는 건 연결이니까. 그렇게 쌓인 연결의 인프라가 우리 지역의 경쟁력이 되고, 지역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안전망이 되는 것이다. 이 지역 청년이건, 타지역 청년이건 연결의 공간이 꾸준히 관계를 만들고 로컬의 삶과 일상을 계속해서 보여준다면 지역에서의 지속 가능한 삶은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연결이 지역소멸의 시대에 새로운 대안은 아닐까? 하지만 연결은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청년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을까? 지속가능한 연결은 앞으로 지역사회가 고민해야 할 또 하나의 의제가 아닐까? /류영관 둥근숲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류영관 이사장은 전북대 도시공학과를 졸업하고 주한건설기술단과 전주원도심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에서 근무했으며 커뮤니티공간 둥근숲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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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1.18 17:08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

2023년 연말, 전주 시청에선 새해맞이 제야의 북 행사를 했다. 다함께 카운트다운을 외치며 신년 소망을 마음속으로 외쳤다. “신이시여! 24년 조금 일하고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 내가 처음으로 ‘돈’에 대한 생각을 했던 건 대학을 졸업할 때쯤이었다. 나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교사가 되기 위해 교육대학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웬걸, 대학원을 다녀보니 ‘교사’가 하기 싫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흥미가 있었지만, 매년 비슷한 일을 하며 9 to 6 루틴으로 사는 삶이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뭘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즈음에 가르치던 학생이 나에게 “선생님은 왜 미술 선생님을 하게 되었어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너무나 당연한 질문인데, 나는 당황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냥’ 해왔다. 한 번도 “왜?”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학생의 가벼운 질문에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고, 진지하게 나라는 사람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성격일까?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나? 어떤 스타일을 좋아할까?’ 그렇게 고민을 시작하다 보니 더 많은 물음표가 남았다. 하지만 명확히 알게 된 사실이 딱 하나 있었다. “자유로운 사람”.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구속이나 억압을 싫어하고, 내가 한번 꽂힌 건 끝을 볼 정도로 파고들지만, 하기 싫은 건 쳐다도 보지 않는다. 일과 관련해 생각해보니, 시간과 장소에 묶여있는 일은 정말 싫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회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회사가 아닌 자유로운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내렸다. 한편으로 나는 성실하지 않고 끈기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주춤하기도 했다. 하지만 꼭 세상이 정한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의 규정을 따를 이유가 없고, 내 방식대로 반증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은 작업실 겸, 화실을 운영하였다. 그리고 나를 찾는 공공기관, 기업, 학교 등에 강의를 나갔다. 또한 예술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다양한 공모사업에 참여하였고, 문화예술 기획자로 활동하며 전북 청년 예술인 단체인 ‘세이모비오’를 만들었다. 그리고 소속 작가님들을 모시고 아트페어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전북일보에서 제안받은 ‘청춘 예찬’ 칼럼을 감사한 마음으로 쓰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하고 새로운 일들이 들어왔다. 물론, 모든 순간이 쉽진 않았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열심히 극복했다. 이런 나를 사람들은 성실하고 일을 잘한다며 다시 찾아주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이런 나를 어른들은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진심으로 걱정한다. 하지만 ‘안정’을 쫓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사는 것은 너무나 슬플 일이다.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해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을 하는 이가 있다면, 나는 자신 있게 “Of course!”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아도 괜찮더라. 누군가는 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한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 일을 작게라도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내 인생에 큰일이 생기지도 않는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모두, 2024년엔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내가 해보고 싶은 걸 해보자. Just do it! /이소정 문화예술교육공간 오이아 대표 △이소정 대표는 전북대 교육대학원 미술교육전공 석사과정을 졸업했으며, 전북 시각예술분야 청년예술인단체 세이모비오 대표이며 씨아트와 전북여성미술협회 정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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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1.11 15:22

청춘의 봄

관광명소가 되어버린 한옥마을. 옹기종기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보다 보면, 가사 없는 감미로운 음악이 배경음악처럼 깔리면서 시선은 멍해지고 담장 밖 칼국수 냄새가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있다. 뒤에선 웃음 한껏 머금은 목소리로 희미하게 나를 부르는 애칭이 들린다. 알고 있다. 지금은 사랑하는 남편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겨우 2살짜리에게 좋은 추억이 되리라 굳건히 믿고 한옥마을을 구경 온 관광객임을. “왜 멍때려. 어디 보고 있어?”라는 물음에 모든 오감이 그 시절 나에게 가 있는 것을 눈치라도 챌세라 ”추억 여행 중이었지- 와 애들 참 청춘이다. 나도 저랬을 때가 있었는데.“라 횡설수설한다. 나는 제로웨이스트숍을 운영 중임과 동시에 환경 활동가로서 지역 내에서 환경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제로웨이스트숍이란,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환경에 이롭게 하기 위한 물건을 구입하기도 하며, 또 버리면 쓰레기지만 모이면 자원임을 직접 실천하기 위해 생활 속에 나오는 자원들을 모아 자원 순환을 실천하러 오는 그런 곳이다. 그렇기에 주 손님은 환경 실천가, 환경 활동가, 환경 운동가들이다. 이 불모지 같은 환경 활동지에서 함께하는 동료들이지만, 곧 그 동료들이 고객님이 된다. 그 동료들을 조금 더 소개하자면, 그들은 현재의 나에게 가장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들을 먼발치에서 보면, 지역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많은 활동들을 기획하고 실천에 옮겨 행동한다. 함께 시작했던 그들은 이제 뿌리내리라기 시작해서, 깊은 뿌리들과 얽혀 설켜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 번영되고자 한다.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자신의 시간 안에서 혼자 그리고 또 여럿이 함께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준비를 함께 도모한다. 그들을 보면 '청춘'이라는 단어는 그들을 가장 잘 묘사한 적절한 단어가 아닐까 한다. 그들과는 조금 다른 '서늘'을 보자면, 멀티 페르소나 그 자체다. 온전하게 혼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8시간. 그 8시간은 환경활동가로서 활동한다. 오후 6시가 되면 "어린이집 재미있었어?", "오늘은 어떤 게 행복하게 했어?", "선생님 말씀 잘 들었어요?" 재잘재잘 일방적인 독백을 늘어놓는 수다쟁이 엄마로 변신한다. 커뮤니티 활동은 나름 잘 한다. 그들과는 다르긴 하나 살고 있는 아파트의 감사와 동대표를 하고 있으며, 22년생 호랑이띠 아기 엄마들 모임에서 2년째 리더를 맡고 있다. 아줌마로 구성된 볼링 모임도 수년째 함께하고 있으며, 또 어린이집 엄마들과 함께 공동 육아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청춘예찬' 칼럼의 제의가 왔을 때, 0.1초 정도 망설였다. ‘36살도 청춘일까?’ 짧은 시간이지만 곱씹은 질문에 ‘서늘은 청춘이지.’라는 답으로 “좋은 기회를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라 응했다.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청춘’이라는 단어, 사실 나는 언제나 봄이다. 벚꽃을 보면 설레고, 피어나는 아지랑이에 마음도 간지럼 타곤 한다. 또 힘든 고민이 있을 땐 겨울이 지나면 봄이 와. 라는 문장은 10대부터 지금까지 용기 나게 한다. 가끔 한 해 한해 변하는 숫자가 나를 기성세대로 끌고 가듯 가로막기도 하고, 또 ‘엄마’라는 단어가 나를 잡아당기지만, 그래도 봄이 좋은 청춘이다. 빛나는 나의 청춘을 함께 하고 있는 환경 이야기를 상반기 동안 소개할 예정이다. /서늘 제로웨이스트숍 늘미곡 대표 ] △서늘 대표는 전주시 자원순환정책포럼 부위원장, 환경기술인, 전주 SDGs 강사, 전주시 청년희망단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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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1.04 18:32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의 위협 사이에서

연말이 되면, 나는 매년 나만의 의례처럼 한 해의 키워드를 뽑아본다. 매해 그해가 가장 다사다난하고 심란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라도 한해를 정리하면서 내년에 대한 한 가닥 희망을 잡아보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올 한해 내가 가장 많이 접한 키워드는 무엇일까. 폭염과 산불, 장마와 한파로 이제 피부로 와 닿은 기후위기, 챗GPT와 인공지능의 눈부신 활약상도 익히 겪었다. 하지만 내가 일상과 일터에서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키워드를 꼽아보라고 하자면 아무래도 인구감소로 인한 ‘지역소멸’인 것 같다. 사업 현장을 가면 갈수록,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얼마 전에는 뉴욕타임스에 ‘한국은 소멸하는가’라는 칼럼이 실렸다는 소리도 들렸다. 해당 칼럼에서는 14세기 흑사병이 창궐했던 유럽보다 한국의 인구가 더 빨리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쯤 되면 정말 궁금하다. 정말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최악의 상황일까? 하지만 한편으로 설혹 그것이 최악의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피할 수 없는 미래라는 생각이 든다. 필연적으로 인구는 감소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얘기다. 물론, 이게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겠지만 정부는 매해 인구감소에 대한 대책을 내놓는다. 지역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어떤 지자체장들은 해당 시군의 인구가 한 주마다, 한 달마다, 일 년마다 얼마나 줄고 늘었는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뾰족한 수가 없는 상태로 담당 공무원들만 머리가 아프고 애가 타들어간다. 그렇게 ‘인구’는 시시각각 떨어지는 숫자이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재앙의 시작처럼 여겨진다. 게다가 고령화까지 진행되는 시점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도 없을 것 같다. 실무자로서도 어쩔 수 없이 ‘관계인구’, ‘생활인구’라는 측정이 모호한 개념들을 만들어내면서라도 인구감소의 낙인만큼은 피해가고 싶다. 그렇다면 정말 지역에는, 한국에는 희망이 없는 걸까?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사회의 활력이 떨어진다. 이것이 우리가 ‘인구감소’에 대해 알고 있는 사회적 통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관점을 좀 달리해서 이런 질문도 해보고 싶다. 우리는 대체 얼마만큼 우리 경제가 성장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GDP가 매년 몇 퍼센트씩 상승해야만 하나? 사회가 가진 활력은 대체 어떤 기준으로 바라봐야 할까? 사업화시대의 부흥기? 아니면 IMF 이후의 재도약기? 성장에만 맞춰진 프레임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어쩌면 그동안 성장을 위해, 대의라는 명분으로 등한시 해왔던 노동환경 개선, 노동에 대한 차별과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수도 있다. 학령인구는 감소할 수 있지만 오히려 공교육 서비스의 질을 높일수도 있고, 너무 많은 인구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가진 그 동안의 성장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탈성장 시대, 고령화시대, 인구감소의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맞게 사회적 구조와 정책을 재편해야 한다. 확실하게 인구는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꼭 재앙은 아닐 수 있다. 준비만 한다면 말이다. /오민정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 공생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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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28 16:59

1년에 한 번 세금 내는 날

필자에겐 1년에 한 번 내는 세금이 있다. 종합소득세도 아니요, 자동차세도 아니다. 바로 지구에 내는 ‘지구세’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1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생일날, 나를 지금까지 있게 한 모든 것들에게 다시 돌려주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세금을 덜 낼 수 있을지 묘수를 찾는 시대에서, 이름도 없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세금을 자발적으로 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2019년 생일날, 선물로 배송되어 키만큼 높게 쌓인 택배들을 풀어 테이프와 운송장을 하나씩 떼고 있는데 순간 허망함이 찾아왔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왜 이런 가내수공업을 하는 것인가? 거실에 쌓인 물건들은 나에게 필요한 물건이 아니었으며, 심지어 똑같은 물건을 선물 받아 이걸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줘야 할지, 당근마켓에 내다 팔아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였다. 택배의 테이프를 떼는 일은 굉장히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다만, 그것들에 귀찮음을 느낄 때 ‘테이프를 떼지 않고 그대로 버린다’가 아닌 ‘테이프를 뗄 일이 없게 만든다’로 생각이 귀결됐을 뿐이다. 그래서 이런 무의미한 짓을 멈추기로 했다. 더 이상 쓰레기가 될 물질적인 선물을 받지 않고, 주변의 감사한 마음을 내가 아닌 다른 곳에 쓰이도록 결심을 한 것이다.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라는 말이 있듯, 생일이라는 이유로 지인들의 소비를 부추기고 싶지 않다. 내가 지금껏 자라는 데까지 온 마을과 온 세상이 도왔으며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희생과 착취가 있었을 터이니 그들에게 다시 돌려주는 마음이 필요했다. 그다음 연도 생일날 프로필 사진에 선물보단 기부에 동참해달라고 적었다. 의아해하는 반응, 속상해하는 반응도 있었으나 이내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연락, 내 이름으로 기부했다는 메시지가 하나, 둘 도착한다. 이 세금을 내게 된 지는 4년째. 어떤 방식으로든 잊지 않고 착실히 납부하고 있다. 세금을 납부한 지 2년째에 금액이 70만 원으로 늘어났고, 그다음 연도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뇌사 시 장기기증과 인체조직기증을 신청하였다. 올해에는 100만 원을 유기견 보호소에 납부했다. 사실 1년에 한 번 내는 세금치고 큰돈은 아니다. 그렇지만 기부에 마음이 없다면 만 원도 아까운 것을 알고 있기에 적은 돈이라도 거르지 않고 내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지구세 납부’ 프로젝트를 하고 난 후로의 필자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첫째로 쓰레기를 양산하지 않게 되어 무척 마음이 편안하다. 소비는 쓰레기를 남기고 더 많은 생산을 종용한다. 따라서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삶에 지장이 없는 것들을 소비하지 않게 되어 무해함을 느낀다. 둘째, 주위의 사람들이 덩달아 기부를 하게 된다. 나의 세금 프로젝트는 생일날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껏 받은 사랑을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주위에 돌려주는 방법도 있다고 하나의 선택지를 더 알려준 셈이다. 그래서인지 본인의 생일날 기부를 하고 장기기증을 신청하는 사람도 생기기 시작했다. 마음속 깊이 감사한 일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선물을 받고 싶지는 않냐고? 주위에서 선물을 주지 못 해 서운해하는 사람이 있길래 카카오톡 위시리스트에 물건을 담아둔 적이 있다. 환경문제와 동물권에 관련된 책이었다. 나의 솔직한 심정은 광활한 우주에서 먼지처럼 작은 내가 바람과 같이 지구를 스치듯 살다 가면서 쓰레기를 남기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나의 생은 이걸로 충분하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 당신의 생일날엔 지금껏 받은 것을 어떻게 돌려주고 싶은가? 그리고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깊이 생각해 봄 직 하다. /모아름드리 환경단체 프리데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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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21 17:14

오히려 좋아!

’오히려 좋아‘라는 말. 개인적으로 나는 이 문구를 좋아하여 자주 사용한다. 이 문장을 어떻게 알게 되었냐면 침착맨(웹툰 작가 이말년의 인터넷 방송 닉네임)의 방송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게 무슨 말이지?’라는 생각이 컸는데 문구를 자주 접하고 거듭 생각하다 보니 어떤 시련이나 문제들도 이 말을 사용하면 다시 시도해 볼 수 있는 의지가 생기고 새로운 도전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어 내가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청춘예찬 칼럼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고등학교 친구가 권유를 해주어 처음에는 “내가 과연 신문에 게재될 만한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사람일까?”라는 걱정과 함께 대답을 망설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문에 자신의 글을 기고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과 함께 ’오히려 좋다, 특별한 경험이 되겠다‘라고 여기며 도전해 보게 되었다. 처음 글을 시작했을 때가 7월이었는데 어느덧 12월이 되어 마지막 원고를 작성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때 고민하던 내가 웃겨 보일 정도로 도전해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의 글을 작성해 보며 생각을 정리해 보는 연습을 기르고, 지난날에 추억들을 정리해 보는 뜻깊은 시간들도 가졌기 때문이다. 사소하더라도 나에게 시련과 걱정이 있을 때면 ‘오히려 좋아’라고 생각하며 실행했던 일들은 나에게 결코 후회나 자책을 야기한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작년은 나에게 굉장히 힘들고도 외로웠지만 찬란한 해였다. 마지막 학년을 다니고 있었고 간호학과는 보통 마지막 학년에 공고가 뜨는 병원들에 입사를 지원한다. 졸업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점관리, 실습, 교수님들과의 컨퍼런스 등을 취업을 준비하며 행해야 했기 때문에 전 학년 중에 불철주야로 가장 고생했던 한 해였다. 때는 병원 입사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하필이면 내가 가장 지원하고 싶어 했던 두 병원들의 필기시험의 날짜가 겹쳐버려 두 개의 병원들 중 한 개의 병원만을 선택하여 지원을 해야 했던 머리 아픈 상황이 되었다. 두 병원들 중 하나를 선택하기까지의 남았던 시간은 단 3일. 그 3일은 나의 미간에 내천(川) 이 박히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그 순간부터 잠에 들기 직전까지 한숨으로 시작하여 한숨으로 끝날 만큼 나에게는 너무도 희망했던 두 병원들이라, 그들만의 장단점이 확실하여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한 곳은 내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많은 것을 경험하고 도전해 볼 수 있을 병원이었고, 다른 한곳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과 멀지 않아 출퇴근이 편하다는 등 두 곳 모두 매력적인 장점들 때문에 택일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선택을 해야 할 때만 해도 ‘왜 하필 내가 원하는 곳 두 곳을 선택해야 할까’라고 생각하며 원망도 하고 머리가 지끈 지끈했다. 하지만 ‘오히려 좋아!’라고 생각하니 양쪽에 집중해서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한쪽에 집중하여 원하는 결과를 내야겠다’는 다짐으로 긍정적인 마음을 안고 오롯이 한곳을 바라보며 열정적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결과는 비록 아쉬웠지만, 나는 나의 선택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오히려 아쉬운 결과임에도 ‘오히려 좋아’의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한 내가 자랑스러울 뿐이었다. 모든 일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은 아닐 수 있을지라도, 가장 힘들었던 순간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준 문구이기에 이 글을 읽는 힘든 일을 겪고 있는 독자들도 ‘오히려 좋아!‘라고 생각하며 걱정을 덜었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보며 마지막 칼럼에 마침표를 찍는다. /유세현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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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14 15:08

두려움을 자기합리화로 포장하여, 무기 삼지 마라

20대 후반과 30대에 접어들면서 사람들 간의 교류는 대학생 때보다는 확실하게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는 많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줄어든 교류를 그래도 활발하게 해주는 것이 지인들의 경조사다. 특히 30대에 접어들면서 후배들까지 결혼한다는 소식에 1~2주에 한 번씩은 결혼식을 다닌다. 결혼식 사회나, 피로연 사회를 부탁받는 일도 많아지니, 봉투만 하는 일보다는 자연스럽게 식과 피로연까지 참여하는 일이 잦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결혼식 주인공들의 지인이지만, 나의 지인이기도 한 사람들을 만난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다 보면, 종종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통해서 사회생활을 하는 나를 보며, 신기해하거나, 걱정하기도 한다. 어쩌면 회사에 다니는 정규직 직장인이 아니기에, 보편적이지 않은 나를 보는 주변의 시선들이 보통은 이러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안정적이지 않음에 대한 걱정이 주를 이루지 않을까 싶다. 경제생활은 안정적인 것이 가장 안전한 것이라는 말을 듣곤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당연히 안정적인 소득이 계속해서 발생하면 큰 위기 없는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의심치 않는다. 때문에 인정하는 부분이다. 더군다나 고액의 연봉으로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다면 그 또한 더할 나위 없는 안전한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만 나이 20대, 기존 한국 나이 30대를 시작했다. 그렇기에 내 주변은 아직 그들이 다니는 20년 차 직장 선배의 연봉에는 한참 못 미친다. 따라서 초반에는 엄청난 투자를 성공시키거나, 물려받을 수 있는 재산이 있는 게 아니라면, 이제 직장생활 5년 안팎으로 한 초년생들의 연봉에는 허리띠를 졸라매곤 한다. 단지 나는 그들보다 조금 더 많이 일하고, 스스로 할 일을 만들어 내고, 완수하여 젊어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성장하여 더 많은 소득을 얻어내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직장 내에서 정말 인정받고 승진도 빨리하여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은 회사를 나와 본인 사업을 하더라도, 절반 이상은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많은 변수는 존재하겠지만.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실패하면 어떡하지?’, ‘사업이 망해서 일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등의 비슷한 식의 생각으로 가득하여,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시도하지 않으면서 돈은 많이 벌고 싶은 속내를 ‘안정적인 게 최고야’라는 자기 합리화로 포장하면서 도전하고자 용기를 내는 사람의 마음을 짓밟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나 역시 약 3~4년 전에 취업이 아닌 다른 길로 돈벌이를 택했을 때 많은 이들의 우려와 걱정이 나를 뒤덮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 나의 안정적인 삶과 자유로운 삶을 보면서 걱정과 우려는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나와 같이 도전하려는 주변 지인들은 내가 도전 초기에 지인들을 통해 겪었던 상황들을 겪으면서 정신력이 흔들려, 고민을 털어놓는 경우가 꽤 발생한다. 따라서 힘이 되어주진 못할망정, 괜한 오지랖으로 누군가의 용기 있는 도전을 당신들의 두려움으로 포장된 자기합리화로 꺾지 않기를 바란다. 도전하는 그들도 절대 짧게 생각하고, 쉽게 생각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려울 것을 알고도 헤쳐 나가려는 젊은 청년들의 도전과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해 주고 빛내 줬으면 한다. /박지석 온라인 창업전문 하보HaBo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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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07 15:17

세계박람회와 K문화

“또 싸이야? 그런데 저 노래랑 엑스포가 대체 왜…?” 늦은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밤, TV를 켰더니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를 위한 최종 발표가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첫 타자로 나선 우리나라를 비롯해 흥미진진한 발표들이 이어지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이게 웬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사들의 발언에 이어 마무리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영상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시작으로 K-pop 스타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들이 차례로 나와 슬로건을 외쳤고 말미에는 싸이와 이정재가 나오며 마무리됐다. 영상을 보고 난 첫 감상은 당혹스러움이었다. 한국과 부산의 매력, 특히 우리나라의 문화를 어필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대체 왜 연예인들이 나와 별다른 내용도 없는 구호를 외치고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어야 했을까. 오늘(11월 29일) 아침,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들려온 뉴스는 세계박람회 뉴스였다. 어젯밤에 짐작했던 대로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에 실패했던 것이다. 언론에서는 부산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에 ‘석패’를 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결국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인가’ 하는 생각에 기사를 읽던 나는 또 한번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득표수가 4배 이상 차이가 나는데 이 결과가 ‘석패’라고? 헛웃음이 나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누구도 이 사태를 책임지고 싶지 않는구나’하는 생각에 입맛이 썼다. 그리고 몹시 유감스럽게도 이런 모습이 너무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안의 크기와 규모만 다를 뿐, 이미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 쉽게 보는 행태였던 것이다. 특히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크고 작은 사업이며, 행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모습들을 종종 보곤 했다. 그런데 곧이어 또 다른 보도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일머니’에 이미 많은 국가들이 사전에 포섭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다시 한 번 긴 한숨이 나왔다. ‘오일머니’를 운운하기에 앞서 어제 프레젠테이션만 놓고 봤을 때, 우리나라의 발표와 어필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해 많이 모자랐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물론 이번 세계박람회 유치 실패는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박람회 실패에 대한 언급이 부산시와 각 부처, 부산 시민들의 세계박람회 유치에 들인 노력을 무시하거나 비웃으려 하는 의도가 아니다. 또한 유명인, 연예인을 활용한 마케팅 전략을 덮어놓고 비난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세계박람회를 유치할 수 있는 역량과 매력을 보여줘야 하는 부분에서 그러한 전략이 보이지 않고 몇몇 연예인들의 유명세에만 기대려 했다는 것, 그리고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문화’가 너무 피상적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점은 꼭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인지도 높은 연예인들을 기용하는 것도 좋지만 그게 과연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꼭 필요한 전략이었을까, 그리고 인지도와 매력은 엄연히 다른 영역인데 이를 혼동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의문이 든다. 10년 전 강남스타일을 왜 꼭 지금에서 틀었어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강남스타일이 세계인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는지는 분석해 보았을까? 단지 강남스타일이 메가 히트곡이기 때문에? 인기가 있었던 것은 맞지만, 지금의 트렌드도 아니다. 모쪼록 이번 박람회를 계기로 어쩌면 그동안 우리 문화의 다양한 매력을 살리기보다는 너무 이미 검증된 인지도에만 목을 매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오민정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 공생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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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30 15:01

옷과 이별하는 중입니다

어릴 적 필자는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색깔별, 길이별, 소재별로 다른 옷을 사들이곤 했다. 하늘 아래 같은 옷은 없다고 비슷한 옷을 사 왔고, 나에게 어울릴지 고민하기보다 눈에 예쁘면 샀다. 계절이 지났으니까 또 사고, 유행을 따라가야 한다는 이유로 또 샀다. 그렇게 일 년, 이 년이 지나니 옷방은 옷으로 가득 차게 되었고 저절로 안 입는 옷도 늘어갔다. 그러다 끝없을 것 같던 구매 행진을 멈췄다.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하면서부터이다. 별생각 없이 구매하는 옷을 만들기 위해 환경이 심각하게 파괴된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 온 죄책감 때문이다. 옷 한 벌을 만들기 위해 욕조 약 11통 정도의 물이 사용된다. 대량의 물이 들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섬유를 염색하면서 화학 물질도 배출된다. 염색과 처리 과정에서 지하수와 하천의 수질이 악화된다. 세계 공업용수 오염 원인의 20%가 의류 때문일 정도다. 옷을 만들며 원료를 조달하고, 방적, 염색, 봉제, 유통 과정에서 수많은 화석연료를 필요로 하는데, 이 과정에서 생기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10%를 차지한다. 우리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옷을 생산하고 염료 처리하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까 잘 안 와닿을지도 모르겠다. 옷을 다 입고 버릴 때도 마찬가지이다. 옷이 해져서, 늘어져서, 유행이 지나서, 작아져서 와 같은 이유로 의류 수거함에 넣을 때 다른 나라의 옷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서 누군가 유용하게 입어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뿌듯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게 웬걸. 버려지는 옷의 95%는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이렇게 버려지는 양은 연간 약 48만 톤.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옷이 도착한 가나에서는 강 대신 버려진 옷이 가득 차 있고 소가 풀이 아닌 옷들을 뜯어먹는다. 경악스럽다. 내가 생각 없이 샀던 옷들을 처리하기 위해 누가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나에게 옷 구매 빈도를 확연히 줄이게 만들었다. 옷을 오래 입어야 하니 자연히 싸고 유행에 맞춰진 옷을 고르는 것 대신 지구에 부담이 덜 가는 직물과 오래 입을 수 있는 것, 유행을 타지 않는 것에 손이 간다. 매년 생산되는 옷은 1,000억 개에 달한다. 그중 330억 개가 그 해, 그대로 다시 버려진다. 이처럼 빠른 주기로 생산되고 유행을 타다 버려지는 패스트패션(Fast-fashion)이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는 미디어로 접하는 트렌드와 유행에 더욱 민감해지며, 새로운 유행을 금방 소비하고 금방 질려 한다. 옷을 쉽게 사고 쉽게 버리게 된다. 우리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무엇보다 옷 구매를 지양하고, 이미 산 옷은 오래 입으려고 한다. 벌써 10년 가까이 입고 있는 옷도 있고, 해졌지만 빈티지한 멋으로 입는 옷도 있다. 이제는 주위에서 옷 좀 사라고 잔소리도 하고, 해진 옷을 입고 있는 게 안 되어 보인다며 옷을 사줄 때도 있다. 사실 학생 때의 옷이 대부분이어서, 옷을 사고 싶은 충동이 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이제 나에게 옷은 꾸밈이나 미용적 목적보다는 보온 등 기능의 목적을 착실히 수행하기만 하면 돼서 나름의 방법을 찾아 즐겨찾기에 있던 쇼핑몰 목록을 없애고, 구독도 취소하였다. 우리는 이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고, 유행과 옷과 서서히 이별할 때이다. /모아름드리 환경단체 프리데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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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23 18:04

Latte is horse

"나 때는 말이야...~" 모두가 한 번씩은 들어봤을 법한 문구이다. 나는 이 말을 누구로부터 듣는 것, 무엇보다도 내가 직접 내뱉는 것은 더더욱 지양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부득이하게 "나 때" 일어났었던 일을 풀어야 할 것 같아 양해를 구하며 시작해 본다. 때는 2017년 11월 14일, 혹은 15일. 이제는 가물가물해진 기억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선명한 기억들로 얼룩져있다. 내가 재학 중이던 전주 여자고등학교에서는 내려오는 전통들 중에 하나로, 수능 하루 혹은 이틀 전에 3학년을 제외한 1학년과 2학년 학생회와 선도부 학생들이 3학년 건물 입구에서 학교를 나가는 출구까지 열렬한 환호와 응원을 해주며 배웅을 해주는 관습이 있다. 주로 해당 연도에 유행하는 인터넷 밈(인터넷 커뮤니티나 SNS 등지에서 퍼져나가는 여러 문화의 유행과 파생·모방의 경향, 또는 그러한 창작물이나 작품의 요소를 총칭하는 용어)을 활용하여 글귀를 작성하기도 하고, 잘생기고 예쁜 인기 많은 배우들이나 아이돌들로 변장하여 학교를 나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든든한 응원이 될 수 있었다. 나 또한 내가 좋아했었던 연예인, '블락비'의 '피오'의 모습을 한 학생회 후배와 함께 즐겁게 사진을 찍고 기운 넘치는 응원을 받으며 학교를 나섰던 것 같다. 수능을 치르기 몇 주 전부터 찾아두었던 정보들 (수능 전날 준비할 것, 해야 할 것, 공부할 것)을 복기하며 수능 전 날에는 일찍 자야 한다는 주변의 뭇 조언들에 따라 독서실에서 일찍 집에 돌아와 잘 준비를 하고 있었던 나였다. 떨리는 마음을 어떻게든 붙잡고 가방에 짐을 넣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방에 들어오셨다. 빅뉴스와 함께. "세현아, 수능 연기됐단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엄마, 무슨 소리야." 하고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뉴스 속보로 수능이 연기가 됐다는 소식과 함께 우리 반의 카카오톡 단체방은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였다. 사실 2018 수학 능력 시험이 예정되어 있던 전 날인 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경에 경상북도 포항에서 추정 규모 5.5의 지진이 발생했다. 당시 나는 독서실에 있었고, 일찍 자려고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로 심각했던 문제였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뉴스를 내 눈으로 확인해서야 나는 털썩 주저앉으며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내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두 가지였다. 책이나 문구에서 긴장이 탁 풀리며 주저앉는다는 말을 보았을 때 '이런 감정이 어떻게 들겠어 그냥 하는 소리겠지'라고 생각했던 내가 무색해질 만큼 내 안에 무언가가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고 다리가 풀리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나도 모르게 긴장을 많이 하고 있었던 것이었는지 마음속에 응어리가 풀리며 눈물을 쏟게 한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 이유로는 내일만 지나면 자유를 얻을 것이었는데 다시 일주일을 수험생 생활을 하는 것이 너무도 억울하고 슬펐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여진 및 고사장 붕괴 우려 등의 문제로 당연히 했었어야 했을 결정이었고, 현명했던 정부의 판단이다. 하지만 당시 수험생이었던 나는 머릿속으로는 상황을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펑펑 울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원래대로 수능을 봤으면 나는 긴장과 압박감을 크게 느꼈을 테지만 긴장감을 앞서 경험하여 수능이 일주일 연기된 진짜 수능날에는 긴장되는 마음 하나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수능을 치를 수 있었다. 이 글이 게재될 때에는 이미 2024학년도 수능이 마무리되었을 때겠지만, 나는 이 글을 수능을 앞두고 쓰기에 문득 내가 치렀던 수능을 생각하게 되었다. 인생은 내 마음처럼 참 안되지만 또 그게 어떻게 전화위복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모든 수험생들이 힘든 일에 좌절하지 않고 만에 하나 겪을지라도 충분히 극복해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유세현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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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16 17:56

요즘 대학생은 안 궁금할 줄 알았다

2022년 11월 내가 졸업한 학과의 당시 학생회장을 하고 있던 후배가 연락이 왔다. 코로나로 인해서 진행하지 못했던 졸업생 초청 강연을 다시 진행하려 하는데, 졸업생을 대표해서 강연을 부탁했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5명의 졸업생이 강연자로 참석하는데 2명은 공기업, 2명은 대기업, 남은 1명인 나는 정규직 근로자가 아닌 프리랜서 및 창업자의 삶에 대한 주제로 요청해왔다. 요즘의 대학생들은 리스크를 짊어지는 프리랜서, 사업 및 창업을 도전하는 삶과는 달리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취업 쪽으로 진로를 많이 결정한다고 익히 들었다. 따라서 어느 정도 의지와 열정이 있다면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장점을 토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전해주고자 했다. 한 번뿐인 인생에 너무 기계적이고, 남들이 다 걷고 있는 길만 그대로 따라가기엔 아직 20대 초중반의 나이대를 형성한 후배들의 청춘이 아깝다고 느꼈다. 강연자 중 가장 고학번이기도 하면서 취업과는 다른 방향에 대한 강연 내용이기에 맨 마지막 순서에 배치가 되었다. 마지막 강연 타임이면 충분히 지루하고, 지쳤을 법도 하지만 너무나 감사하게도 귀 기울여 들어주고, 적지 않은 Q&A 시간까지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나서 2023년 11월 현재 올해 내가 졸업한 학과의 회장, 부회장을 맡은 후배들이 연락이 왔다. 작년과 같이 새롭게 들어온 후배들에게 졸업생으로써 강연을 요청해왔다. 취업에 혈안이 되어있는 대학생들에게 딱히 관련 없는 주제의 나의 얘기가 과연 도움이 될까 싶었다. 그러나, 이번 요청 사항은 작년과는 달랐다. 아직 취업에 전념하기까지는 시간적인 여유가 어느 정도 있는 저학년 후배들이 대학 생활을 하면서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들에 대해서 궁금해한다는 말을 시작으로, 이번에는 내가 졸업하고 난 뒤의 생활이 아니라, 졸업하기 전에 겪었던 경험들을 전해주기를 바랐다. 후배들은 나의 저학년 시절의 1학년 학과 대표부터 군대 전역 후에 수없이 많은 대외 활동과 교내 활동, 그리고 학과 학생회장, 공과대학 학생회장, 총학생회장에 임하면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겪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모든 것을 다 겪은 것은 아니지만, 대학생 시절에 겪었던 모든 활동들이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어떤 도움이 되었으며, 나와 함께 활동했던 지인들은 취업에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설명해 주길 바랐던 것이다. 그저 관심이 없어서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관심 있고, 궁금한 사항들이 많지만, 들을 기회가 없어서 듣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랑스러운 선배는 아닐지라도, 도움이 되는 선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설레는 감정까지 피어났다. 타인의 과거에는 관심 없고, 자신이 되고자 하는 타인의 삶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갈 줄 알았던 후배들이 기회가 생기니 그 사람의 과거에 궁금함을 가지는 모습을 보며, 내 안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고정관념을 깨어주었고 후배들의 궁금증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몇몇의 얘기만 듣고 일반화했던 나의 생각을 반성하게 되었고, 적어도 후배들이 “선배가 조언해 줬어”라고 말을 할 때, 그 선배가 되어줌과 동시에 훗날에 그 후배들이 다시 그 선배가 되는 선한 대물림의 촉진제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의미 있는 강연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박지석 온라인 창업전문 하보HaBo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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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09 15:17

하반기 공채를 바라보며

주차장으로 가다가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했다. 어쩐지 아는 사람일 것 같아서 이름을 불렀더니 그 사람이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졸업 후 오랫동안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던 후배였다. “여기서 뭐 해?”라고 물었더니 쑥스럽게 웃으면서 맞은편을 가리키며 작은 사무실을 오픈했다고 했다. 나는 축하한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간의 사정을 모르는 터라 자세한 내용은 차마 묻지 못했다. 지난달부터 본격적으로 하반기 공채가 진행되고 있다. 주변에서 준비하는 분의 말을 들어보니 채용규모가 예년에 비해 줄어들었다고 한다. 해마다 취업문턱은 높아진다. 채용방식도 대규모 공채보다는 수시채용이나 경력직 채용, 헤드헌팅 방법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제 막 구직을 시작한 청년의 입장에서는 막막할 수밖에 없다. 공채 문턱은 매년 높아져 오버 스펙을 쌓아도 겨우 응시자격이 주어질까 말까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력직 채용은 늘고 신규채용 은 점점 줄어든다. 청년들에게서는 첫 직장이 있어야 경력직으로 도전할 텐데 아예 경력을 쌓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푸념이 나온다. 그리고 이런 순환이 반복될수록 청년들의 취업시기는 점점 더 지연된다. 반면 중소기업은 계속해서 구인난에 허덕인다. 공채를 준비하는 청년들이 경력을 쌓는 기회로 중소기업을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지켜보며 윗세대들은 청년들의 눈이 높아졌다고 혀를 끌끌 찬다. 청년들은 취업하지 않는 것일까, 취업하지 못하는 것일까? 첫 직장은 중요하다. 첫 직장은 마치 한국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과도 같다. 첫 직장이 어디냐에 따라 다음 이직기회, 정규직 및 비정규직 여부, 연봉 등 많은 조건과 기회들이 달라진다. 청년들은 그래서 구직기간이 길어지더라도 대기업 공채 같은 선택에 몰린다. 어른들의 말처럼 중소기업에 가서 스펙을 쌓고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은 어른들이 생각하기에 합리적인 방법 같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청년들은 그런 발언에 대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현재의 치열한 취업의 생리를 모르는 발언처럼 느낀다. 그리고 이상적인 이러한 일자리가 적은 지역은 청년인구 감소, 지역소멸 등 많은 소도시가 직면한 위기와도 이어진다. 좋은 일자리의 기준이 대기업 공채에 머물러 있는 한,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특정 공채에 사람이 몰리면 몰릴수록 운영되는 방식은 ‘선택’이 아니라 ‘배제’의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는 어쩌면 대졸신입공채보다 직무 중심의 수시채용방식으로의 변화는 긍정적인 출발점일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할 조건이 있다. 바로 중소기업이 청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거쳐 가는 일자리가 아니라 충분히 괜찮은 일자리, 확장 가능성이 있는 일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최근 ‘기업별 직무급’을 넘어 ‘사회적 직무급’이 제안되기도 한다. 임금의 결정권이 사회가 합의로 결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리 독일에서 운영되는 제도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상황은 다르며, 산업별 교섭까지 이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취업의 문제가 더 이상 개인의 선택과 문제가 아닌 사회적 비용을 함께 감당해야 하는 문제라는 점을 상기해 보면 일자리와 임금제도에 대한 좀 더 다양한 상상력과 제안에 대한 논의를 이제부터라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오민정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 공생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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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0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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