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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2022년 한 해가 지나가고 2023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 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의 위험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으로 전 세계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 그리고 한참 꽃 피울 나이의 청년들이 희생 된 10.29 참사까지 정말 다사다난한 해였다. 그리고 청년들의 소비 트렌드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몇 년 전에는 “인생은 오직 한번 뿐”이라는 욜로(YOLO) 문화와 “플렉스 해 버렸지 뭐야”라는 유행어와 함께 플렉스(Flex) 문화가 크게 유행하며 현재를 중요시하고 지금의 “나”를 위해서 과감하게 소비하는 것이 청년들의 소비 문화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생활하는 무지출 챌린지와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활용 해 먹는 냉파(냉장고 파먹기) 챌린지가 유행하고 있다. 필자도 SNS에 올라온 챌린지를 보고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해보기도 했었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아 결국 며칠 가지 못하고 포기를 한 경험이 있다. 투자에 관해서도 주식과 코인 투자에 몰렸던 청년들이 점점 저축을 하며 “짠테크”를 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이처럼 짧은 사이에 청년들의 문화 트렌드가 정반대의 경향으로 변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우리나라의 경제적 상황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내 월급 빼고 다 오른다.”라는 말처럼 떨어질지 모르고 계속 올라만 가는 물가와 금리 그리고 찾기 힘든 일자리 문제로 인해 청년들이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앙정부와 많은 지자체에서 이런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청년 정책들을 내놓고는 있지만 아직은 눈에 띄게 효과를 나타내는 지역은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 필자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연말모임을 가졌다. 오랜만에 만나 함께하지 못한 친구들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많은 친구들이 직장을 찾아 고향을 떠나서 살고 있었다. 주변의 알고 지내는 청년들만 봐도 많은 수가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경제적, 사회적 상황을 전망하는 기사들을 보면 올해보다 작년이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감 보다는 불안감이 큰 것이 사실이다. 필자 또한 청년이기에 “아프니까 청춘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와 같은 무책임하고 어설픈 위로의 말을 청년들에게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런 현실 앞에서 청년들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통해 많이 회자 되었던 이 문구는 필자에게도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축구 국가대표 선수단은 끈질긴 노력으로 강호 포르투갈을 이기고 우루과이와의 골득실에서 앞서 16강이라는 기적을 일궜다. 필자는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포르투갈을 이기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16강 진출을 보며 미리 짐작해서 포기를 했던 지난 내 과거의 모습을 반성을 하게 됐다. 올 한해도 우리는 현실이라는 커다란 벽 앞에 좌절하고 쓰러지고 넘어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 미리 포기하지는 말자. 영화 '베테랑'에서 형사 서도철(황정민 扮)의 대사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처럼 내 자신이 한심해 보이고, 세상이 우리의 형편과 모습을 보고 비웃을지라도 우리 함께 서로 응원하며 그 뜨거운 마음만은 꺾이지 말자! /최준호 원광대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연구원 △최준호 연구원은 (사)새벽이슬 정책실장을 겸하고 있으며, 익산시 일자리정책과 청년정책계에서 공직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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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05 14:20

기술과 예술의 경계에서

2016년도 바둑판 위에 ‘인간과 AI의 대결’이라는 주제가 던져졌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 최정상급 프로기사인 이세돌의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가 총 5번이 이루어졌다. 3월 13일 5번기 4국에서 이세돌은 묘수를 통해 승승장구하던 인공지능을 꺾었고, 알파고가 스크린에 띄운 ‘기권’의 메시지는 기계 앞에서 무력감을 느낄 뻔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그래도 인공지능은 인간을 뛰어넘을 수 없다. 라는 안도감까지 주었다. 알파고를 통해 인공지능의 엄청난 성장 속도를 봤기 때문일까? 그해에는 유독 ‘2030년이면 30% 직업 인공지능이 대체해…’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직업군’과 같은 타이틀의 기사가 유독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예술가의 직군은 이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끝난 후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인공지능 대체 불가 직무에서 화가, 조각가, 작가, 연주자 등 대부분이 예술가로 나타났다. 고도의 창의력이 필요하며 인간의 감성에 기초한 직업들이기 때문에 결국 인간만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대국이 끝난 후 벌써 6년. 이세돌은 19년도 은퇴 사유 중 하나를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은 인공지능에 느낀 허무와 좌절감으로 밝혔다. 실제로 알파고는 벌써 3년 전에 ‘알파고 제로’라는 이름으로 발전했다. 스스로 바둑을 학습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고 72시간 만에 기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100전 100승을 거두고, 새로운 바둑의 정석을 만들어냈다. 절대 인공지능이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 여겨졌던 문화예술계는 어떨까? 실제로 지난 9월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1위를 수상한 작품이 사실은 텍스트를 이미지화해주는 AI 프로그램 ‘미드저니’ 의 생산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미술뿐만이 아니다. 카카오브레인과 미디어 아트 그룹 슬릿스코프가 개발한 인공지능 시인 ‘시아(SIA)는 지난 8월 첫 시집을 출간했고, 아직은 학습 능력에 따라 미약한 부분이 있지만 인간 창작자의 고유한 스킬이라고 생각되었던 감수성을 전달한다는 호평을 받았다. 화가, 작가, 작곡가까지 단순히 창작물을 모방하던 인공지능들이 비약적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스스로 사고하고 창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AI 작가’들의 등장으로 이제 문화예술은 ‘인공지능의 결과물은 창작물로 봐야 할 것인가 생산품으로 봐야 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질문에 직면했다. 아직 인공지능을 작동시키고 이를 평가하는 주체가 결국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창작의 주체보다는 도구로 보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대다수지만, 예술과의 공존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결국 이 새로운 기술의 등장 이후 짧은 몇 년 간 많은 예술가들이 장르적 도약을 이루어 낸 것만 보아도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지능을 통해서 예술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거 모방론, 표현론, 형식론 등 예술을 정의했던 수많은 이론은 새로운 형식의 예술가와 작품에 의해 뒤집히고 또 다른 이론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공지능 예술가의 등장은 너무나 인간 같은 모습에 섬찟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기술과 예술의 융합 과정에서 문화와 삶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늘 그랬듯이 우리는 과거를 송두리째 뒤집을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갈 것이고, 그것이 예술이니까. /이수진 전주문화재단 팔복기획운영팀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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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25 13:51

지구력

금세 겨울이 오더니 2022년도 막바지다. 봄에는 춥다가도 따뜻해지더니만, 여름엔 무진장 더웠다. 또 가을은 덥다가도 추워지더니 겨울은 무진장 춥다. 날씨는 시기가 되면 변화무쌍하게 휙휙 변하는데, 나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12월 다가오는 생일에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다 여전히 제자리인 내 모습에 조금 서글퍼졌다. 2022년이 2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한 해를 돌이켜보니 도전하면 실패했고,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었던 것 같다. 가장 크게 얻은 건 깨달음이다. ‘두 마리 토끼는 숙련된 사냥꾼만이 잡을 수 있구나’ 이러한 깨달음은 내 자신을 토끼 한 마리도 제대로 잡지 못한 무능력한 사냥꾼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가장 크게 잃은 건 지구력이다. ‘욕심은 앞서는데 행동은 망설이니 토끼가 도망가기 딱 좋겠지. 아 나는 무능한 사냥꾼. ‘이러한 자책을 반복적으로 계속 일삼다 보니 무능도 모자라 무기력한 사냥꾼으로까지 전락시켰다. 생일 전날. 무기력으로 밋밋한 일상은 생일이 코앞에 다가와도 아무런 기대가 되지 않았다. 졸업한 같은 과 친구들의 등쌀에 저녁 약속이 잡혔다. 우리는 겨울에 모이기만 하면 눈이 왔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눈이 펑펑 내렸다. 다들 퇴근 후라 지친 몸을 이끌고 거친 눈바람을 해치며 삼례에서 전주, 익산까지 갔다. 애들이 준비해온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으로 만든 케이크를 보고 한참을 웃다가 거창하게 밥을 먹었다. 오랜만에 서로의 얘기를 주고받느라 누구 한 명의 눈이 반쯤 감긴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삼례로 돌아오니 11시였다. 친구가 같이 있다가 자정이 지나면 초를 불자는 제안했다. 그렇게 친구의 집에서 자정을 기다리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미간에 초를 꽂고 소원을 빌었다. 노력 없이 이루고 싶은 게 많아 구구절절 빌다 보니 좋아하는 연예인 얼굴에 빨간 촛농이 떨어져 있었다. 섬뜩했지만 이 섬뜩함도 즐거웠다. 아침에는 멀리 떨어진 친구들의 연락에, 학과 친구들의 정성 어린 축하에 즐거운 생일날을 보냈다. 그날은 자기 전 침대에서 한참을 혼자 피식거리다 잠이 들었다. 참나 기념일이라는게 뭐라고 이렇게나 사람을 들뜨게 하나. 이상하게도 들뜬 마음은 밋밋하던 일상을 조금씩 채웠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상보단 나를 채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았고, 마음속에 계산기가 나오기도 전에 베풀었다. 아무래도 실패에 집중하다 보니 고독에 빠졌던 것 같다. 그래서 반복된 일상에 지루하고 지쳐도 다시 지속 할 수 있게 도와준 것들을 잊고 있던 게 아니었나. 나는 올해 번듯한 성공은 없었지만, 과정 중에 사소한 즐거움과 변화가 있었다. 그렇기에 목표를 이루고 싶은 욕심과 의지까지 버리지 못했다. 그렇다 나는 아직 포기하긴 이른 사냥꾼. 거창한 생일을 보냈다고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단지 올해 지구력이 되어준 모든 것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다. 주말에 보는 영화, 계속 들어도 좋은 노래, 친구들, 학교 사람들, 가족들, 오래된 인형들 전부 여전히 제자리에 있어 줘서 고맙다. 이 마음을 올해가 가기 전 깨달은 사실이 이번 생일에 받은 최고의 선물이지 않을까 하며 실패를 좋은 경험으로 생각하고 싶다. 새해가 다가온다. 항상 연말은 끝이라서 아쉽고, 연초는 시작이라서 두렵다. 실패하면 말고, 성공하면 좋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숙련된 사냥꾼. /백지은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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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18 14:19

영화 다시 보기, 되풀이하며 새롭게 바라보기

몇 년 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볼 때면 ‘이런 장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새롭고, 어떤 장면은 볼 때마다 매번 나를 설레게 한다. 이렇듯 같은 사람이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보는 시점에 따라 그 영화가 다르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지난 시간 동안 내가 겪은 경험과 감정들로 인해 시각이 달라지고 초점이 바뀌는 것 같다. 말 그대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 다르게 본 영화 2016년 나의 대학생 4학년 시절, 당시 나의 최대 관심사는 ‘페미니즘’이었다. 어느덧 졸업반이 된 나는 그제서야 학과 수업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던 터였다. 당시 전북대학교 교수이자 여성학자인 김혜경 교수의 ‘젠더와 역사’, ‘여성과 일’ 등의 여성학 수업을 들었다. 또 우연한 기회로 전주여성의전화에서 주관하는 ‘가정폭력 전문상담원 양성교육’을 수료하게 되었다. 여러 회차의 교육 중 한번은 지역에서 활동 중인 영화감독과 함께 영화의 몇 장면들을 다시 보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본 영화는 이미 봤던 영화인 ‘건축학개론’이었다. 이 영화는 대학생들의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로 각인되어있었는데 이를 젠더 관점(성인지적 관점)으로 다시 보니 이야기의 전개가 달리 보였다. 이전에는 승민 역할을 맡은 이제훈이 그저 짝사랑에 실패한 어수룩한 청년으로 보였지만 이날은 찌질하고 이기적인 남자로 보였다. 영화 속 남자 주인공 승민이 짝사랑하던 서연의 등을 돌리는 순간은 다름 아닌 본인의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영화 속에서 승민은 밤늦게 학과 선배인 재욱이 술에 취한 서연을 집으로 이끌고 가는 모습을 목격하곤 다음 날 “이제 좀 꺼져줄래”라며 차갑게 돌아선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가는 서연을 방관한 그는 이를 배신으로 정당화시키고 서연을 ‘쌍년’이라고 기억한다. 첫눈에 반한 첫사랑의 상대가 ‘쌍년’이 되는 과정은 너무나도 남성(승민) 중심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콜미바이유어네임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한번 영화를 볼 때면 금세 몰입하는 편이다. 새로운 영화를 보는 것도 좋지만 봤던 영화를 다시 보는 것 또한 좋아한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은 최소 세 번 이상 봤는데 볼 때마다 새로운 지점이 발견됐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1980년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둔 청량하고 아름다운 영화 속 분위기와 영상미에 빠져들었고, 두 번째 봤을 때는 열일곱 소년의 뜨거운 여름날과도 같은 첫사랑 이야기와 퀴어 로맨스에 집중했다. 영화를 세 번째 봤을 땐 다름 아닌 주인공 엘리오의 아버지가 보였다. 그는 성소수자의 부모로서,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태도로 엘리오를 대한다. 그는 엘리오가 사랑한 ‘여름 손님’ 올리버가 떠나고 상심한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와 나누고 싶지 않은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네가 가졌던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어. 보통 부모들이면 없던 일로 하고 아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길 빌겠지만 난 그런 부모가 아니야.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려고 마음을 잔뜩 떼어내다간 서른쯤 되었을 땐 남는 게 없단다. … (중략) 지금의 그 슬픔, 그 괴로움, 모두 간직하렴. 네가 느꼈던 기쁨과 함께.” 그렇게 영화를 세 번 보고 나서 곧바로 원작인 책을 주문했고 이 대목을 노트에 필사했다.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매력을 제대로 느꼈던 순간이었다. 비슷한 이유로 요즘엔 다른 이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영화를 찾아보는 취미가 생겼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책 『혼자서 본 영화』, 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범죄심리학자 박지선이 영화를 리뷰하는 ‘지선씨네마인드’,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유튜브 ‘B tv 파이아키아’를 시간내어 보는 것을 추천해본다. /강소은 미디어공동체완두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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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11 14:01

연결된 세상, 단절된 우리

‘멕시칸치킨 금암점’. 초등학생 시절 단골이었던 동네 치킨집이다. 당시 내가 혼자 치킨 한 마리를 시켜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있었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 한 마리주세요! 주소는... 아, 아니다. 주소 먼저 말해야 되나.. 여기 전주시 덕진구...” 그렇게 두세 차례 전화 주문 연습을 끝낸 뒤에야 가까스로 수화기를 들 수 있었다. 떨리는 맘으로 주문을 마치고 나면, 아주 가끔은 가게에서 메뉴나 주소를 다시 불러달라는 전화가 오기도 했다. 2~30분 후 대문 앞에 도착한 사장님께 현금을 건네면, 사장님은 맛있게 먹으라며 치킨 봉투를 쥐어주셨다. ‘굽네치킨 녹번점’. 현재 한 달에 한 번꼴로 돈을 쓰는 동네 치킨집이다. 내가 혼자 치킨 한 마리를 시켜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있다. 핸드폰 잠금 화면을 풀고, 배달앱을 켠 뒤, ‘주문내역’ 창에서 ‘재주문’ 버튼을 누르기. 그렇게 서너 차례 손가락을 놀리고 나면 치킨 주문은 끝이 난다. 주문 정보가 상세히 기록된 앱 덕분에 가게에서 내게 메뉴나 주소를 다시 물을 일은 없다. 3~40분 후 핸드폰에 ‘배달 완료’ 알람이 뜨면, 뛰쳐나가 현관 밖에 덩그러니 놓인 치킨 봉투를 가져온다.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으로 표상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 오늘날 우리는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로 무제한적 소통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구든 스마트폰 하나만 손에 쥐면 이메일, SNS, 유튜브, 블로그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타인과 교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음식을 주문하고, 옷을 사며, 미용실을 예약하고, 강의를 듣는다. 또 길을 찾고, 의사의 진료를 받으며, 택배를 부치고, 영화를 본다. 즉, 일상의 거의 모든 부분이 ‘스마트폰’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매듭지어 지고 있다. 그저 똑똑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잽싸고 힘세며 야무지기까지 한 스마트폰은 그렇게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산소가 되었다. 하루 종일 입 밖으로 꺼내는 말보다 카카오톡 채팅창에 입력하는 단어 수가 더 많다. 친구들에게 맛집을 수소문하기보다 네이버의 리뷰와 별점을 신뢰한다. 부모님의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보다 스마트폰 스크린타임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길다. 얼굴 표정으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이를 대변할 이모티콘을 골라내는 데 열을 올린다. 지금껏 우리는 스마트폰으로부터 편리성, 안전성, 정확성, 효율성을 얻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인간성을 잃었다. 서로 간 눈과 눈이 마주치고, 손과 손이 맞닿으며, 말과 말이 교차했던 숱한 순간들이 이제는 ‘데이터화’, ‘디지털화’라는 미명 하에 점차 흐려지고 있다. 맺고 끊음이 쉽고 빨라진 인간관계는 그 무게가 한없이 가벼워지고 있다. 우리 일상을 채웠던 미지근한 온기와 색채가 그렇게 한 줌씩 사그라지고 있다. 가끔은 내 삶이 손바닥 위의 자그마한 스마트폰에 갇힌 듯한 기분이 든다. 네모반듯하고, 뭉툭하고, 새까맣고, 차갑고, 딱딱하고, 피로한. 그토록 못나고 재미없는 모양이 과연 내 인생의 생김새인가-하는 생각에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처량해진다. ‘등잔’과 바로 그 밑의 ‘그림자’처럼, 오늘날 온 세상에 만연한 ‘연결’의 뒤편에는 그보다 몸집이 큰 ‘단절’이 도사리고 있다. 2022년 현재는 과연 ‘연결의 시대’인가, ‘단절의 시대’인가? /이민주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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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04 17:51

그럴싸한 취미를 만드는 법

대학교 입학 직후 교수님 연구실에서 면담했을 당시“자네는 취미가 뭔가?”라는 질문에 나는 전공과 순발력을 살려 최대한 그럴싸한 취미인 ‘독서’를 만들어냈다. 전공이었기 때문에 책은 오히려 과제처럼 느껴져 더 담을 쌓고 살았는데도 말이다. 취미의 사전적 의미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다. 이력서에 무난한 한 줄을 위해 만들어져 무려 9년간 이어졌던 거짓 취미는 최근 진짜로 즐거운 일을 찾고 나서야 끝이 났다. 코로나로 인해 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나’의 시간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나와 인생의 가치를 어떻게 하면 상승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곧 취미생활이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원데이 클래스가 유행하고, 하비슈머(hobby+consumer의 합성어로 취미생활을 위해 소비활동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취미 부자 등 취미에 대한 다양한 신조어만큼 내 삶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다양한 취미생활이 등장했다. 등산, 골프, 테니스와 같은 운동부터 수초로 어항을 꾸미고 물고기를 키우는 아쿠아 스케이핑, 작은 어항 속에 나만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비바리움(Vivarium)까지 매일같이 이색적이고 새로운 배움을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이다.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무색하게도 취미를 검색하면 자동 완성으로 가장 먼저 뜨는 단어는 ‘취미생활추천’, ‘취미생활 순위’이다. 이제 막 나의 취향을 고민해보려는 사람들에게 이런 단어들은 취미가 어쩐지 성공해야 할 것 같은 또 다른 사회적 과제처럼 느껴져 새로운 압박으로 다가온다. 분명 취미와 성공은 동일선상에 놓일 수 있는 단어이다. 그러나 성공은 그저 즐거운 취미생활의 부산물 중 하나일 뿐이다. 마에자와 유사쿠는 친구들과 밴드부를 했었고, 미국으로 가서 공연까지 보러 갈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었다. 일본으로 돌아와 밴드를 계속하며 미국에서 가져온 앨범을 판매하다 사업가가 되었고, 판매 상품은 앨범에서 의류가 되었다. 그 회사는 지금 일본에서 가장 큰 온라인 의류 쇼핑몰인 조조타운이 되었다. 김성완 작가는 카이스트를 졸업해 삼성전자를 입사했다. 동호회 운영진 활동을 했을 정도로 즐겁게 했었던 레고와 야근의 길에서 레고를 선택해 세계에서 21명밖에 없는 레고 공인작가이자, 하비앤토이 대표가 되었다. 이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했기 때문에 모든 선택에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이다. 음반 수집 취미로 유명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앨범 재킷이 멋있거나 가격이 싸다는 둥 다양한 이유로 사 모았다. 따라서 중구난방이고 결과적으로 모여버린 레코드.’라고 말한다. 슬기롭게 취미생활을 해야 한다는 틀에 갇혀 성공한 사례,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 남들과는 다른 사회적 의미를 가진 취미 모델을 밤새 추천받아 검증해보는 것은 결국 9년간 내가 취미는 독서라고 대답했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취미라는 단어에는‘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이라는 또 다른 정의가 있다. 취미는 개발해야 하는 새로운 스펙이 아니다. 유행하는, 성공한 취미를 쫓아가야 한다는 압박감은 내려놓고 인생에서 마주칠 아름다운 순간들을 떠나보내지 않기 위하여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정말 그럴싸한 취미 하나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이수진 (재)전주문화재단 팔복기획운영팀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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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27 18:41

디지털 다이어트

한 달 전 카카오 중단 사태가 일어났다. 트위터에서 본 500여 개의 하트를 받은 트윗의 내용은 “기왕이면 평일 회사에 있을 때 불나지”라는 뉘앙스로 쓰인 글이었다. 나도 평일이 되면 일자리에 나가는 직장인이라 하트로 슬쩍 공감을 실었다. 내용은 근무 시간에 카카오톡이 중단되면 업무도 마비가 된다는 뜻으로 생활 전반에 디지털이 많이 관여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일상에 결제 연락, 예약 등 디지털이 깊게 관여하고 있었고 카카오 중단 사태는 많은 사람은 불편함을 호소했다. 그때 나는 우리가 디지털에 과의존하고 있는 건 아닌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디지털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종일 컴퓨터 앞에 눈을 두고 어딜 가든 손에 핸드폰을 쥐고 다니다 보니 집에 있어도 오는 연락에 일일이 대응하다 보면 집에 있어도 밖에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핸드폰과 컴퓨터를 안 만지면 되겠지 하고 가볍게 생각했지만, 손에 놓은 지 5분 만에 핸드폰을 찾았다. 다짐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핸드폰만 있으면 모든 것이 쉬웠다. 이미 맛본 편리함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자율적으로 제한할 수 없다면 강제성을 부여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방법을 찾기 위해 애플리케이션도 깔아보고 다양한 시도를 해봤는데 마땅한 방법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제일 무식하고도 돈이 많이 드는 해결법을 택해야 했다. ‘핸드폰 감옥’ 편리하지만 복잡한 디지털과는 정반대의 조치였다. 핸드폰 감옥이 무엇이냐면 감옥이라 칭하는 상자 안에 핸드폰을 넣고 시간을 지정하면 지정 시간이 다소요 될 때까지 상자가 열리지 않아 핸드폰을 하고 싶어도 강제로 하지 못하게 하는 단순한 조치였다. 그래서 핸드폰 몸통만 멀리 두고 계속 할지 말지 고민을 하는 것보단 상자에 넣어버리면 갈등의 여지 없이 핸드폰을 할 수 없다. 그렇게 이주를 보내니 어느 순간 핸드폰이 감옥에 들어가는 일은 일과가 되었고 그 시간 동안 다른 활동으로 시간을 채웠다. 디지털을 대체하기 위해 보내는 시간은 꽤 만족스러웠다. 책도 읽고 밀린 집안일도 하고 효율적이게 시간을 보내는 날이 늘었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핸드폰을 감옥에 보내기가 쉽지 않았기에 시간을 높게 잡았다. 그래서 자기 직전에야 핸드폰을 할 수 있었다. 또한 핸드폰이 필요 할 때 쓸 수 없어 곤란한 일도 많았다. 언제 한번은 새벽에 책을 읽다 속이 허해져 간식거리를 사러 편의점에 가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타이머를 보니 감옥이 열리려면 두 시간이 지나야 했다. 당시엔 핸드폰 없이 야심한 밤에 혼자 편의점을 다녀오기가 나로서는 쉽지 않았기에 사람 일은 혹시 모른다는 마음으로 핸드폰 감옥을 통째로 들고 편의점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냥 깨부술까 하는 마음도 수백 번을 겪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핸드폰을 감옥에 가두기가 쉬워졌다. 어느 날은 핸드폰이 직접 제 발로 감옥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 날도 있었다. 매일 핸드폰을 감옥에 가두다 보니 적절하게 시간도 설정할 수 있게 되었고 할 일이 없으면 당연하게 핸드폰을 드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때울 방법을 자연스레 찾게 되었다. 온전하게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되찾은 것 같아 어느 정도는 디지털 사용을 제한할 수 있다. 디지털이 만연한 시대다. 핸드폰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누군가는 휴식이라 할 수 있지만 자기 직전까지 타인과 교류한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휴식이라 할 수 없지 않은가. 주말내내 집에 있어도 쉬어도 쉬는 거 같지 않다면 디지털 다이어트를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백지은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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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20 13:56

너는 나다

올해 3월 28일부터 5월 19일까지 53일간 단식투쟁을 하며 기업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목소리를 낸 노동자가 있었다. 체중이 20㎏ 줄어들고 혈압·혈당도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던 그는 “살아서 끝까지 싸우겠다”며 입장문을 내놓으며 투쟁을 중단했다. 이를 지켜본 일부 시민들은 해당 기업 제품 불매운동과 1인 시위 등으로 연대했지만 한편에선 그 기업에서 만든 ‘포켓몬 빵’의 열풍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거대 기업 앞에서 개개인의 연대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후 10월 15일 새벽 20대 여성 노동자가 소스배합 기계에 빨려 들어가는 사고가 발생했고, 사망사고 이틀 뒤인 10월 17일 40대 노동자의 오른손 검지가 절단되었다. 올해 초부터 바로 며칠 전까지 같은 기업에 소속된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끊이질 않고 있다. △ 노동현장에서 배운 연대 나는 연대를 노동운동 현장에서 배웠다. 당시 ‘연대’라는 단어를 들으면 연세대학교가 먼저 떠올랐던 고등학교 3학년 때(2012년)였다. 그때 우연히 읽은 기사에서 외국인노동자가 기본적인 권리를 너무도 허무하게, 합법적으로 빼앗기고 있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약자의 약점을 악용하는 악덕 기업과 고용주들의 존재를 이때 처음 발견했던 것 같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차올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일단 더 많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면서 전북 대안언론 ‘참소리’를 발견했고 타 언론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전북권 노동운동 사태에 대해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약자들의 처절한 절규와 연대, 저항과 투쟁에 대해서 말이다. 당시 전북권에서는 ‘전북고속 총파업’이 가장 큰 이슈였고 기사를 읽고 나니 조금이나마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전주시외버스터미널 옆에 설치되었던 천막을 찾았다. 교복을 입고 쭈뼛쭈뼛 천막 안으로 들어가 방명록에 응원글과 이름을 적는 것으로 나의 연대는 시작되었다. 이후로도 몇 차례 찾아가서 버스노동자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전북지역 버스노동자들은 하루 15~16시간 이상의 장시간의 운전 노동과 월 120~160만 원의 저임금에 오랜 기간 시달려왔었다. 휴식, 식사시간이 보장되지 않아 위장병을 달고 살고 방광염에 걸린 노동자가 대다수였다. 이들이 사측에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근로기준법에 맞게 주 40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과 식사시간, 안전운행시간 보장 등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였다. 학생 신분이었던 내가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오직 연대뿐이었다. 이후 거리 피켓시위, 삼보일배 시위 등을 함께 했는데 다행히 교복을 입은 내가 아저씨들과 함께 피켓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의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같은 학교에 다니던 몇 친구들도 시위에 동참했고 버스노동자 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뜻을 모으는 모습을 보며 연대를 배웠다. 연대의 사전적 의미는 ‘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거나 함께 책임을 지는 것’ 또는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 너는 나다 1970년 11월 13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며 근로기준법 책과 함께 젊은 육신은 함께 불탔다. 2020년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이하고도 2년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는 그동안 얼마나 바뀌었을까. 쌍용자동차 노동자 복직투쟁(2009~2019),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투쟁(2007~2022)처럼 길고 험난했던 투쟁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외침은 지금도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강소은 미디어공동체완두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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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13 13:56

‘그럴 수도 있지’

2018년 봄. 갓 대학에 입학해 정신없이 노닐던 새내기 때였다. 몇 주 동안 제집처럼 드나들던 과방 출입문이 어느 날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짤막한 글귀가 적힌 종이 한 장이 문 앞에 떡하니 걸려있는 것이다. 누렇게 변색된 에이포 용지 위에 붓펜으로 어설프게 써 내려간 ‘그럴 수도 있지’. 오른쪽 귀퉁이엔 이름을 알 수 없는 조그만 연분홍 꽃이 두세 송이 그려져 있었다. 이전까지 한 번도 눈에 띈 적 없었지만, 모양새를 보아하니 꽤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듯했다. 알고 보니 역사가 일 년도 더 된 그 캘리그래피는 당시 꽤 친했던 한 학년 위 선배의 작품이었다. 선배는 뿌듯함과 민망함이 반씩 섞인 표정으로 “이게 바로 내 삶의 신조이자 우리 과의 급훈”이라 설명했다. 냉정히 말해 글씨도 그림도 하나같이 엉성하기 짝이 없었지만, 공중화장실 칸막이에서 뜻밖에 명언을 발견했을 때처럼 나는 한참을 제자리에 머물렀다. ‘그럴 수도 있지’의 영어 번역문은 ‘I understand’다. 목적어는 없다. 이해의 대상이 남이 될 수도, 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남과 나의 숱한 허물을 너그럽게 용서하고 포용하는 ‘관용’의 자세가 모진 고행도 경건한 기도도 아닌, 그저 그 간결한 말 한마디에서 비롯됨을 그때 깨달았다. 이에 그 소박한 글귀가 내 맘속 깊이 뿌리 내리도록 몇 번이고 곱씹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2학년이 되었다. 새내기들의 전유물이었던 과방은 더 이상 찾을 일이 없었고, 하루에 한두 번씩 주문처럼 되새겼던 여섯 글자는 자연스레 차츰 흐려져 갔다. 이후 뿌리 얕은 나무가 쉽사리 흔들리듯 살랑이는 바람에도 난 한없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차가 막혀 약속 시간에 늦을 때면 한껏 짜증이 났다. 주문한 음식의 조리 시간이 길어질 때면 곧잘 불쾌감을 느꼈다. 길거리에서 흡연자를 마주칠 때면 마구 화가 솟구쳤다. 그렇게 별거 아닌 일에도 나는 쉽게 분노했다. 다이어트 도중에 떡볶이를 시킬 때면 나 자신을 혐오했다. 시험에서 아는 문제를 틀릴 때면 몇 날 며칠을 후회했다. 아침잠을 못 이겨 오전 수업에 지각할 때면 스스로를 원망했다. 그렇게 사소한 실수에도 나는 크게 자책했다. 가게 점원의 말투가 불친절할 때면 속이 상했다. 대학 동기가 짓궂은 농담을 건넬 때면 혹여 진심일까 마음졸였다. 부모님에게 꾸중을 들을 때면 날 향한 애정의 진위를 의심했다. 그렇게 하찮은 비난에도 나는 깊게 상처 입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얘기를 나누던 친구의 입에서 한참 동안 잊고 살았던 내 빛바랜 주문이 무심코 흘러나왔다. “그럴 수도 있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멍해졌다. 이내 나도 모르는 새 줄곧 너덜너덜해진 내 마음을 자각했다. 내겐 남을 이해할 의지도, 나를 위로할 여유도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 금세 달아오르고 금세 식어버리는 가벼운 양은 냄비처럼, 텅 빈 내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바싹 메마른 삭막한 마음은 고작 그 여섯 글자에 다시금 슬며시 촉촉해졌다. 그날 이후 사소한 일로 습관처럼 분노가 치솟거나 마음을 다칠 때면, 가만히 눈을 감고 4년 전 봄날을 떠올린다. 여닫을 때마다 희미한 쇳소리를 내던 육중한 진회색 철문을 떠올린다. 스카치테이프 한 장에 매달려 힘없이 달싹이던 누런 에이포 용지를 떠올린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서른 번쯤 되뇌며 스스로를 다독이던 앳된 나를 떠올린다. 그렇게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 조금씩 하자 있는 서로를 너그러이 감싸 안으며 살겠다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이민주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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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06 13:45

완생 만드는 매개자들을 위하여

2014년도 tvN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던 드라마 <미생>에서 수많은 사람은 살짝은 모자란 신입사원인 주인공 장그래를 보며 감정이입을 했었다. 나 역시 입사 초 드라마 속 사고뭉치 신입사원에게서 내 모습을 찾으며 매일 눈물 콧물을 뽑았었던 기억이 있다. 주말에 우연히 OTT 서비스를 뒤지다가 다시 찾아본 드라마에서 새로운 인물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성공보다는 일에 매진하는 상사와 천둥벌거숭이 인턴 사이에서 은근한 균형을 유지하며 보이지 않는 교각의 역할을 하는 영업 3팀 김대리다. 크지 않은 분량과 실제로 회사에서 마주쳐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것 같은 평범한 외모.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생의 김대리가 드라마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지방 국립대 출신이지만 공모전 입상과 대외활동을 통해 입사한 성실함. 실적을 안겨주지 못하는 상사지만 끝까지 믿고 따르는 우직함. 낙하산이라고 손가락질받는 팀원의 성장을 누구보다 진심으로 응원하는 인간성. 그리고 이처럼 완벽하지 못한 관계 속에서 소통을 통해 더 끈끈한 관계와 의미를 만들어나갔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계에서도 기관과 예술가, 예술가와 향유자 사이에서 따뜻한 김대리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문화매개자’이다.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문화 매개의 개념은 1980년대의 프랑스 문화부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문화정책 담론 중 하나로 다루어졌던 이 개념이 등장한 이후로 이런 매개 활동을 전문적으로 진행하는 ‘문화매개자’가 전국에서 양성되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런 문화예술계의 김대리들은 단순히 떨어진 둘을 이어 나가기보다는 새로운 실천과 발전이 지속해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계의 개념을 구체화하는 데 집중한다. 국내에서는 2007년도에 확대 개편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서 인력 양성을 진행하고 있으며, 전국의 문화재단에서도 하나의 과업처럼 문화매개자 양성과정이 근 몇 년 사이에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최근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화예술후원 매개 전문가 양성사업>과 같이 다양한 분야에 매개자의 개념을 입혀 생산-소비의 관점에서 제공-향유라는 더 넓은 문화예술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활동은 예술계에서 지속된 움직임이며, 이를 문화 매개와 아닌 개념으로 구분 짓고 있다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뉴미디어 시대가 도래하며, 문화예술이 좀 더 깊고 영향력 있게 향유자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더 전문적이고 많은 문화매개자가 양성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특히 최근 들어 유튜브, 틱톡 등 다양한 플랫폼의 등장과 SNS 네트워크의 확대로 향유자가 곧 생산자가 되는 구조적 변화를 겪었고, 변화된 문화예술 구조 속에서 연계된 장르를 분명하게 이해며 네트워킹을 구축할 수 있는 효율적인 매개자만이 전반적인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문화매개자들은 여러 방면에서 문화예술의 가치를 알리고 향유자가 스스로 예술에 대한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한 매개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성공이 아니라 문을 하나 연 것 같은 느낌이더라고. 어쩌면 우린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다가오는 문을 열어가면서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 성공은 순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달린 문제라는 김대리의 대사를 옮기며, 다가오는 문을 힘차게 열어젖힐 모든 매개자들에게 글을 통해 짧은 응원을 보낸다. /이수진 전주문화재단 팔복기획운영팀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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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30 18:12

밥 먹었어?

추석 연휴가 지나니 삼례의 저녁 공기는 선선해졌다. 여름엔 일과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보이는 해는 지친 기색 없이 밝을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가을이 왔는지 한껏 붉다. 어떤 날은 오늘도 무사히 서로의 몫을 다 했다는 메시지 같아 잠시 멈춰서 바라보는 날도 있다. 이번 9월은 조금 특별했다.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학교 승인이 떨어져 학과 MT에 다녀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3년 만의 학과 MT에 대절 버스 기다리는 도중에도 학년 별로 옹기종기 모인 학생들의 들뜬 에너지가 내게도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에너지에 압도된 나는 괜히 혼자 어설퍼졌다. 신나게 숙소를 향해 달리는 버스 안에 있어도 어설픈 마음은 가시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있다가 모두 별 탈 없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돕자는 결론을 끝으로 생각을 끝낼 수밖에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도착 후 각각 학년별로 조를 짜고, 너나 할 거 없이 재밌어 하는 학생들을 보며 ‘젊어서 좋겠다.’ 싶은 마음을 안고 숙소에 올라와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잠시 숙소에 들어온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그 순간 내가 대학생이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녁쯤 되니 배도 부르고 마음도 편했다. 여전히 들떠 있는 표정으로 레크리에이션을 준비하는 저학년생들, MT의 기억을 좋게 남겨주고 싶어 분주히 움직이던 고학년생들을 보며 시간이 지나고 인물이 변해도 큰 상황은 똑같구나 싶은 생각에 괜히 웃음이 났다. 학년을 불문하고 좋은 건 배우고 아닌 건 고쳐가며, 모든 학년이 다같이 MT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계획된 모든 일정을 마치고, 전체 인원 모두 무탈하게 돌아오는 버스 안 창밖으로 학교 간판이 보였다. 간판을 보니 안도감과 함께 학생이었던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이 생각났다. 한때는 같은 환경에서 공부했지만, 현재는 모두 다른 환경에서 일하고, 도전하는 친구들. 아직도 나는 주말이 지나면 여전히 학교로 걸음을 재촉하고 전공 수업을 듣던 강의실 복도를 지나온다. 매일 같이 강의실에 앉아 떠들고, 점심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치열하게 머리를 맞대다 하루를 꼬박 보내던 우리가 있던 비워진 공간에 우리와 같은 친구들이 채운 모습을 볼 때면 한 번씩 신기할 때도 있다. 현재 전부 각자의 위치에서 잘 지내고 있지만, 뜸해진 만남은 달라진 환경 때문인지 어느 한 명이 털어 놓는 고민의 깊이가 깊어질 때마다 대화의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현재는 각자 놓인 처지를 전부 알 수 없으므로 저울이 다시 수평을 찾을 때까지 우리 사이엔 적막이 흘렀다. 그럴 때마다 이제는 고민을 모두 이해할 수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어 거리감을 느끼지만 모든 고민에 지고 싶지 않았던 시절을 같이 지나온 우리는 고민해도 해결되지 않는 고민도 있고, 고민은 계속 생긴다는 것을 이젠 알기에 그저 서로가 무사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서로의 고민을 대한다. 어쩌면 우리 사이의 적막은 시절을 같이 보낸 서로에 대한 고마움과 애틋함 같다. 달라진 해를 마주할 때면 한 계절을 지나왔다는 생각에 속절없이 흘러버린 시간의 냉정함을 몸소 느낀다. 더불어 우리가 같은 시절을 보냈던 순간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져 조금 더 낯설고 아련해 진다 . 결국 아련함은 남겨진 나만 느끼는 미련 같아서 그리움으로 바꾸고, 이마저도 청승 같아서 우리에게 침묵이 될까 봐. 끝내 밥 먹었어? 라는 말로 포장해 무심하게 전한다. 백지은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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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23 18:44

불안의 시대와 불안 세대

어느 날, 불안장애 환자가 의사에게 물었다. 언제쯤 다시 예전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냐고. 그랬더니 의사는 “불안장애는 무조건 낫는 병이에요. 지금의 불안과 증상들이 앞으로 더 나아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 환자는 불치병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으나 ‘무조건’ 나아질 수 있다는 완고한 그의 말에 적어도 이 불안에는 끝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 나의 불안 어느 날 테이블 위에 놓인 메모장에 무심코 한 문장을 끄적였다. ‘불안한 내일이 없는 오늘을 살고 싶다’라는 말이었다. 다음 날 그 종잇장을 다시 보니 왠지 손발이 오그라들었지만 곧 자신이 측은해졌다. 그 글자를 적을 때는 낮이었다. 흔히 말하는 감성이 충만해지는 새벽 시간도 아니었던 것이다. 생각을 육성으로 말을 내뱉는 것보다 텍스트로 떠올리거나 필기하는 게 더 익숙한 나는 누구에게 말 못 할 속마음을 메모장에 적어내는 습관이 있다. 이때 내 안에 불안이 존재하다는 걸 느꼈다. 한번 시작된 불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거대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불안에 의해 잠식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점점 나의 일상을 침범하기 시작했고 나의 세계를 지배했다.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곧 공황발작(panic attack) 증상이 나타났고 병원을 찾았다. 이를테면 비행기를 타는 것도, 단 10분 거리의 운전도,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는 것도, 치과 진료도 불가능해졌다. 9월에 예정되었던 비행기 표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당연하게 할 수 있었던 일들이 공포로 다가오고 결국 해낼 수 없게 된 순간 회복에 대한 갈망이 높아졌다. 어느덧 두 달째 약을 처방받으면서 “무조건 지금보다 점점 나아질 것”이라는 의사의 말처럼 서서히 일상 생활이 가능해졌고 나만의 속도로 회복 중이다. △ 사회적 불안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전체 자살사망률이 감소한 것에 비해 청년들의 자살률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21년 기준 5년간 정신질환으로 의료기관을 찾는 청년들이 15.2%가량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불안과 우울은 개인이 느끼는 감정이지만 이는 곧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물론 단순한 ‘불안감정’과 공황발작 증상을 동반하는 ‘불안장애’는 서로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충분한 여유와 성찰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채 바쁘게 살아가는 청년들. 불안한 미래이지만 누구보다 더 빨리 달려가야만 인정받는 상황 속에서 정작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현재 청년들은 무엇에 가장 불안을 느끼는지 궁금했다. 이에 흥미로운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를 찾았다. 2002년 20대 초반 청년들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가 무엇인지’ 물었는데 당시 외모와 건강이 31.9%, 공부가 30.8%를 차지했다. 10여 년이 흐른 2020년도에는 직업이 40.3%로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2002년에는 8.6%를 차지했던 것과 비교했을 때 청년 불안의 현주소를 증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년 세대의 불안을 단순화시키고 단편적으로 결론짓고 싶진 않다. 그저 우리 세대가 겪고 있는 불안한 상황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 싶을 뿐이다. 덴마크의 심리학자 피아 칼리슨의 저서 『생각이 많아 우울한 걸까, 우울해서 생각이 많은 걸까?』에서는 “생각의 방향이 나를 향할수록 통제력을 잃는다. 우리들의 생각은 기차가 아니라 기차역이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기분, 우울감과 불안으로 인해 본인에게 의문을 갖는 사람들에게 이 글귀를 전하고 싶다. /강소은 미디어공동체 완두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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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16 17:18

당신이 잊어버린 것과 내가 잃어버린 것

네 살 무렵인가. 그쯤이 아마 외할머니가 내 기억 속에 처음 자리 잡은 시기일 것이다. 부모 님이 맞벌이를 했던 터라, 어릴 적 나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외할머니와 함께 지냈다. 늦은 아침 눈을 뜨면 할머니 무릎에 앉아 애니메이션 ‘파워레인저’를 보고, 점심시간이 되면 전자레 인지에 갓 돌려 봉긋하게 부푼 계란찜에 밥을 비벼 먹었다. 간식은 주로 얇게 썰어 갈색 설탕을 친 토마토였고, 서너 시쯤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십오 분 정도 떨어진 동네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다녀와서는 저녁을 준비하는 할머니의 눈을 피해 화분이 널린 베란다를 넘어 다니다, 자칫 선인장 가시가 손에 박혀 혼이 나기도 했다. 그 시절 외할머니는 내게 엄마이자 아빠, 친구이자 선생님 같은 존재였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보물이었다. 일곱 살이 되던 해, 우리 가족은 부모님의 직장 문제로 할머니를 홀로 남겨둔 채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후 내 삶에서 할머니의 비중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매일 보던 할머니를 주말에만, 그러다 한 달에 한두 번, 나중에는 명절에나 겨우 찾아가는 수준에 이르렀다. 파워레인저 대신 드라마를, 계란찜 대신 라면을, 토마토 대신 과자를 찾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내게 할머니는 그 전만큼 애틋하거나 소중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건 초등학교 삼 학년 때였다. 어느 가을날 저녁, 엄마와 함께 택시를 타고 급히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어린 내게 치매라는 병은 무척이나 생소하고 아득했다. 단지 할머니가 나를 잊을까 문득 겁이 날 뿐이었다. “엄마, 그럼 이제 할머니가 나 못 알아보는 거야?” 적막이 깃든 택시 안에서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 그럴 리가. 그냥 조금 더 자주 깜박하실 뿐이야.” 엄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 덤덤히 대답하며 내 머리칼을 쓸어주었지만, 두 눈엔 미세한 불안과 절망이 서려 있었다. 그날 밤 마주한 할머니는 내 걱정과 달리 평소처럼 인자하고 따듯했다. 이후 시간은 무심하게 흘렀지만, 삼촌 댁으로 이사한 할머니는 한동안 그 모습 그대로였다. 담당 의사의 말에 따르면, 할머니는 다른 치매 환자들보다 비교적 질병의 경과 속도가 더디고 상태도 양호했다. 날이 갈수록 같은 말, 같은 행동을 더 많이 반복하곤 했지만 그게 다였다. 때문에 내 마음 한편에는 ‘할머니의 병이 기적처럼 흔적도 없이 낫지 않을까-’ 하는 허황된 기대가 일기도 했다. 그로부터 칠팔 년 뒤, 이런 내 철없는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할머니의 병세는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날짜를 잊고, 계절을 잊고, 집에 가는 길을 잊고, 젓가락질하는 법을 잊었다. 말을 잊고, 감정을 잊고, 나의 이름과 얼굴을 잊고, 끝내는 당신마저 새하얗게 잊어버렸다. 공허한 두 눈동자에는 더 이상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담겨 있지 않다. 엊그제 꿈에 외할머니가 나왔다. 고등학생 때부터 종종 있는 일이다. 꿈속에서 할머니는 항상 정신이 온전한 예전 모습을 하고 있다. 나를 ‘우리 강아지’라 부르는 애정 어린 목소리, 푸근하고 개구진 미소, 주름진 손의 온기까지 하나하나 선명하게 느껴진다. 꿈에서 깨면 한동안 죄책감에 젖는다. 치매는 외로워서 앓는 병이라던데, 그때 나는 왜 그리도 쉽게 할머니를 등한시했을까. 오래전 멈춰버린 자기만의 세상에 갇힌 할머니는 혼자 얼마나 고독하고 두려울까. 한때 나의 엄마이자 아빠, 친구이자 선생님이었던 보물은, 이제 까마득한 심해에 가라앉아 더는 닿을 수 없다. /이민주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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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25 13:41

#바른 도전 챌린지

코로나 확진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답답한 격리 생활. 2020년도 5월에 문화예술계에서 이런 지루함을 타파하는 특별한 홈메이드 아트 챌린지가 진행됐다. 먼저, 내가 좋아하는 예술작품을 고르고, 집에 있는 물건 3가지를 골라 나만의 스타일로 작품을 패러디한다. 그 후 사진을 찍어 ‘#미술과 격리 사이에서’를 태그해 SNS에 업로드하는 것이다. 네덜란드 인스타그램에서 시작된 이 챌린지는 무려 24.5만 명의 사람들이 참여해 머리에 때수건을 두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나, 수건으로 아슬아슬하게 하반신을 가리고 거실 바닥에 누워 재현한 <아담의 창조>와 같은 유쾌한 패러디 작품을 만들어냈다. 도전을 뜻하는 챌린지(Challenge)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사례는 2014년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아닐까 싶다. 루게릭병(ALS) 환자를 위해 100달러를 기부하거나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다음 도전자 세 명을 지목하는 이 챌린지에 연예인, 기업인 등 유명 인사부터 일반 시민들까지 참여하며 총 1025억 원의 모금액이 달성됐다고 한다. 이후에도 코로나19 의료진을 위해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덕분에 챌린지’, 생활 속 운동을 습관화하는 ‘오하운(오늘하루운동)’, 나의 일상과 성장을 기록하는 ‘주간일기 챌린지’ 등 MZ세대들 사이에서 다양한 챌린지들이 생산되었다. 이런 챌린지들은 나와 사회를 변화시키는 긍정적인 캠페인이라는 인식 속에서 끊임없이 퍼져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확산 속도만큼 챌린지라는 이름을 오남용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기절할 때까지 목을 조르는 블랙아웃 챌린지나 우유 박스를 높이 쌓아 올라가는 우유 상자 챌린지는 알고리즘을 통해 전 세계 10대들에게 노출되어 위험을 초래하기도 했으며, 최근 현대·기아는 차량 절도를 독려하는 챌린지 때문에 미국 전역에서 도난 사고로 고역을 겪었다. 잘못된 놀이와 범죄가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 꼴이다. 단순히 플랫폼만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누구나 생산자가 될 수 있는 환경에서 플랫폼들의 콘텐츠 모더레이션(부적절한 콘텐츠 감시)이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하며 자칫 사적인 검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챌린지들을 만들어내는 생산자와 결과적으로 유행의 반열에 올릴 키를 쥐고 있는 소비자의 올바른 의식과 태도가 중요하다. 한때 게으른 사회운동이라는 ‘슬랙비티즘(Slack+Activism)’이라는 이름으로 비판받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신약 개발을 위한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게 해주었다. 미술과 격리사이 챌린지 역시 이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폴 게티 미술관 등 전 세계 미술관들이 함께 참여해 관객 참여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문화예술을 통해 코로나를 극복한 사례로 평가받게 되었다. 챌린지는 이제 일시적인 사회 현상이나 유행을 넘어 어엿한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쉽지 않지만, 의미 있는 일에 도전하며 긍정적인 사회적 변화를 끌어내는 챌린지. 그러나 한편으로 SNS라는 높은 파급력의 플랫폼을 통해 위험하고 부정적인 놀이나 의미 없는 마케팅들이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둔갑해서 쏟아지고 있다. 챌린지의 홍수 속에서 오염된 챌린지를 걸러내고, 소비하지 않는 정확한 인식과 문화적 담론이 필요한, ‘#바른 도전 챌린지’가 필요한 시기임이 분명하다. /이수진 전주문화재단 팔복기획운영팀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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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18 14:08

어른이

어릴 적 치과라는 곳은 기계 소리가 들리면 비명이 겹쳐 들리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 탓에 충치가 생기면 치료받을 때 아플까 봐 고통의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치아가 온통 까매지고 아파야만 치과에 겨우 갈 수 있었는데 높은 확률로 의사 선생님께서는 하루라도 빨리 충치를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럴 때면 나를 치과에 데려온 엄마마저도 매정해졌다. 모두가 나를 위하는 것은 알지만 차갑고 쓰고 날카로운 것들이 내 입안을 한 바탕 헤집고 나면 볼이 퉁퉁 부은 채로 울면서 치과를 나와야 했다. 하지만 현재 충치가 생기면 치료의 고통보단 비용의 걱정이 앞선다. 치료의 고통은 잠깐이고 비용의 고통은 쓰고 오래 갔다. 그래서 입안에 조그마한 검은 점이 보이면 비용과 고통이 두려운 마음을 갖고 얼른 치과에 간다, 그래서 대부분 미미한 충치는 충치가 늦게 진행되기 때문에 양치를 평소보다 더 신경 써서 해보고 조금 더 경과를 지켜보자는 소견을 내려주신다. 그럴 때마다 느껴지는 안도감과 동반되는 불안함은 양치를 하기 전 귀찮음, 졸음과 매일 싸우지만, 결국엔 치과에서 이가 썩을 대로 썩어 신경치료를 할 때 안내받은 치료 비용이 무거운 내 엉덩이를 일으키게 한다. 그런데도 칫솔만으로는 내 불안함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치실부터, 어금니 칫솔, 치간칫솔, 워터픽까지 하나둘 양치 도구들이 늘어갔다. 시한폭탄 같은 치료되지 않은 미미한 충치들은 내 신경을 더 곤두서게 하고 충치가 있는 자리는 더욱 힘껏 칫솔질하게 했다. 어느 날은 양치하면서 문득 생각했다. 어릴 땐 충치가 생겨서 아플까 봐 양치했는데, 이제는 하나라도 더 많은 치아를 지키기 위해 양치를 한다니. 그런 의미로 태어나면서 한 자리에 치아가 3개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릴 땐 영구치를 빼면서 성장을 하는 거라고 알려줬으면서, 그다음엔 바로 하나하나가 소중하다고 하냐고 말이다. 그러나 세상 이치는 항상 두 번은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가 그렇다면 받아들이고 최대한 빨리 적응해서 개선하는 수밖에 없다. 살다 보니 모든 이치가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실수한다. 그런 맥락에서 인간관계도 충치가 생기고 뽑는 과정과 비슷하다. 처음엔 나의 세상이 가족에서부터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할 땐 친구로 세상을 서서히 넓힌다. 어릴 땐 나와 동등한 위치가 아니면 나의 감정을 모두 받아주는 사람밖에 없었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나의 감정을 받아주는 사람은 적어지고 남의 감정을 나누거나 받아주는 입장이 된다. 일정 나이를 먹었을 때 관계에 까만 점이 보이면 양치를 최대한 꼼꼼하게 해서 더 이상 썩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런데도 모든 관계에는 끝이 있다. 무던히 노력해도 끝내 뽑아내야 하는 관계. 충치와 달리 희망적인 것은 새로운 관계가 자랄 자리를 남겨두다 보면 어떤 관계로든 빈 곳이 채워진다는 것이다. 미련으로 공간을 그대로 내버려 둔 채 결국엔 또 다른 아픔을 낳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실수를 온전하게 용서해줄 존재인 자신을 믿고, 미련이 남는 공간을 내버려 두는 게 아니라 충치가 생기면 치과에 가는 것처럼 똑바로 직면해서 깨끗하게 치웠으면 좋겠다. 결국엔 모든 관계를 맺고 끊는 과정을 겪어야 하는 사람은 온전히 자신밖에 없다. 모든 관계를 대체 할 수 있는 존재 또한 나 자신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나고 자라고 뽑아내는 과정을 겪으면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백지은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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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04 14:32

그 많던 개는 어디로 갔을까

얼마 전 여름휴가로 베트남을 다녀왔다. 여섯 시간 비행 끝에 도착한 이국 땅에 다소 어색한 풍경이 펼쳐졌다. 어딜 가든지 길거리에 크고 작은 개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이를 낯설게 여기는 건 나뿐이었다. 현지 사람들도 개들도 언제나 그랬듯 각자의 일상을 보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살던 동네에서도 매일 같이 거리에서 개들을 마주치곤 했었다. 당시 동네마다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키던 개들은 언제부턴가 길거리에서나 마을에서나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그 많던 개는 어디로 간 걸까. △비인간 동물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는 2022년 5월 기준 지구상에 있는 생명 중 인간과 인간이 키우는 가축의 비율이 96~99%까지 치솟은 사례를 들면서 ‘생물다양성의 불균형’을 이야기했다. 농경을 하기 전인 만여 년 전에는 지구에서 인간의 비율이 1%를 차지했던 것과 비교했을 때 현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다. 거리에서 사라진 개들도 대부분 인간에게 관리되거나 함께 살고 있을 확률이 높다. 남종영 저자의 책 「안녕하세요, 비인간동물님들!」에서는 “오늘날의 비인간동물은 반려동물, 야생동물, 실험동물, 농장동물로 각각의 용도에 맞는 다른 대우를 받으며 인간에게 분할 통치된다”고 말한다. 비인간동물은 인간에 기준에 따라 그들의 가치가 매겨지고 각자의 ‘쓸모’를 빼앗긴 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다. 명품 커피의 대명사로 불리는 ‘루왁(luwak) 커피’를 생산하기 위해 동남아 국가에서 약 10만 마리의 사향고향이가 붙잡히고 있다. 이들은 커피 열매만 먹고 배설하는 일이 전부인 삶을 살게 된다. 상어의 경우에는 어부들에 의해 지느러미만 잘린 채 바다로 던져진다. 이는 지느러미에 비해 상어고기의 수요가 적기 때문이다. 지느러미가 잘린 상어는 헤엄을 치지 못해 바다 속에 가라앉고 몸부림을 치다 며칠 사이에 죽게 된다. 태어나자마자 죽음으로 내몰리는 생명도 있다. 영화 「미나리」에서도 보여주듯 알을 낳을 수 없어 ‘쓸모’가 없는 수컷 병아리는 불구덩이로 들어가 까만 재가 된다. 이처럼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거나 탄생과 동시에 죽음을 맞이하는 비인간동물은 이 땅 위에 무수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 커다란 문제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가끔 무기력한 기분에 휩싸이곤 하지만 다행히 우리 곁엔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엔 우리나라에서 40년간 이어져 온 ‘웅담 채취’의 역사를 끝내려는 이들이 있다. 평생을 좁은 뜬장에 갇혀 쓸개즙을 빼내는 관을 꽂은 채 살아야만 했던 사육곰을 구출하려는 것이다. 올해 5월 동물자유연대(대표 조희경)와 미국 야생동물보호단체 TWAS((The Wild Animal Sanctuary)가 협심하여 사육농장에서 반달가슴곰 22마리를 구출해 미국 콜로라도 생츄어리(동물 등을 구조하여 평생 보호하는 시설)로 옮겼다. 이어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에서는 사육곰을 구조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생츄어리 건립을 위해 모금을 진행 중이다. 아직 국내에는 300마리가 넘는 사육곰이 남아있다. 이 사육곰의 남은 삶을 결정짓는 것도 결국엔 인간의 몫이기에 우린 동참해야 한다. 이밖에 반려동물은 사지 말고 입양하고, 돌고래를 사랑한다면 수족관에 가지 않고, 관광 상품으로 소비되는 꽃마차를 타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생각보다 많다. /강소은 미디어공동체완두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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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28 13:57

보통의 존재

올여름, 난생처음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었다. 제목은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짤막한 에피소드 쉰두 편을 모아놓은 에세이다. 경악을 금치 못할 충격적인 일화가 이어지거나, 감탄을 자아내는 수려한 문장력이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무심한 듯하면서 섬세하고, 한없이 진지하다가도 어느 순간 하찮게 웃겼다. 아홉 살 소년 같은 순수함과 아흔 살 노인 같은 원숙함이 자연스레 어울렸다. 애써 화려하게 꾸며 쓰지 않아 깔끔하고 담백했다. 이러한 그의 문체를 나는 친구에게 “미지근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루키의 대표작인 소설 《노르웨이의 숲》을 완독했다. 그러나 내겐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가 그것보다 훨씬 오랜 시간, 마음 한편에 뭉근히 자리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일주일 뒤, 동아리 활동을 하며 친해진 동생을 만났다. 그 속은 알 수 없으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처럼 항상 밝고 맑았다. 애정을 표현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어 시도 때도 없이 상대방을 ‘칭찬감옥’에 가두는 재주가 있었다. 함께 길을 걸으며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던 중 동생이 문득 고개를 돌려 물었다. “언니, 평소에 따듯하다는 말 많이 듣지?”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언니는 너무 차갑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뜨겁지도 않아서 좋아. ‘미지근한 사람’인 거 같아. 나는 너무 뜨겁기만 해서 나도 내가 감당이 안 될 때가 있거든. 근데 언니는 나랑 다르게 딱 중간쯤으로 적당해서 항상 편안해 보여.” ‘미지근하다’라는 비유가 이렇게나 흔한 표현이었던가. 이전까지 입 밖으로 잘 꺼내지도 귀에 잘 들리지도 않던 그 밋밋한 단어가, 며칠 새 숱한 낱말들 사이에서 명징하게 도드라졌다. ‘미지근하다’, ‘미적지근하다’, ‘무난하다’, ‘평범하다’, ‘그저 그렇다’, ‘보통이다’, ‘어중간하다’, ‘어정쩡하다’, ‘애매하다’, ‘모호하다’, ‘희미하다’, ‘흐릿하다’, ‘흐리터분하다’, ‘불명확하다’, ‘불분명하다’, ‘두루뭉술하다’, ‘두리뭉실하다’. 하나같이 이도 저도 아닌 매력 없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런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려 남모르게 애썼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아닌, 특별하고 개성 있는 존재라고 나 자신을 세뇌했다. 그런데 일본의 천재 일류 소설가와 두 살 어린 칭찬감옥 교도소장 덕에 미지근한 것도 꽤나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더할 나위 없이 듣기 좋은 찬사처럼 느껴졌다. 몸에 힘을 좀 빼고 그냥저냥 무던하게 살아도 나름대로 그럴싸하다는 것을 그예 깨달았다. 상온 보관한 치즈케이크는 폭신하니 먹기 편하고, 식어버린 김치찌개는 입천장을 델 걱정이 없다. 치열한 축구 경기 끝의 무승부는 구장의 날 선 경계심을 풀어 해치고 묘한 평화를 선사한다. 날씬하지도 비만하지도 않은 보통의 체형은 어느 매장에서나 원하는 옷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빗물을 쏟을랑 말랑한 먹구름은 숨 가쁜 일상에서 틈틈이 하늘을 올려다볼 핑계가 된다. 당첨금 오천 원짜리 5등 로또는 언젠간 1등도 될 수 있을 거란 희망에 불을 지펴 다시금 일주일을 버티게 한다. 눈웃음 없이 입꼬리만 올려 짓는 어색한 미소는 최소한의 에너지로 불편한 상황을 유연하게 넘길 묘책이다. 삼대를 멸할 지독한 악당도, 바보처럼 착해빠진 비련의 주인공도 없는 힐링 드라마는 시청자의 지친 마음을 잔잔히 달랜다. 적당히 미지근한 나는 너무 차갑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은 편안한 사람이다. /이민주(고려대 미디어학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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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21 19:29

예술 훔쳐보기

2003년도 영화 실미도를 시작으로 시작된 대한민국 영화계 ‘천만 관객’ 시대. 친구들의 SNS에는 주말에 다녀온 전시회 인증샷이 쏟아진다. 통계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문화예술 관람률은 코로나 충격 이전까지 2004년부터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왜 예술을 사랑할까? 감히 추측해보자면, 그 이유는 훔쳐보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100분 내외의 러닝타임 동안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영화, 캔버스 속에 숨어있는 시대와 작가의 생애를 훔쳐보는 미술. 예술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를 몰래 보여준다. 파리를 훔쳐본 화가, <에드가 드가>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의 마지막 보석으로 불리는 에드가 드가는 당대 인상파 화가들과는 달리 프랑스와 인체의 현실적인 움직임을 화폭에 담아냈다. 그중에서도 1,500여 점을 차지하는 소재가 바로 ‘발레’이다. 드가의 그림 속 발레리나는 아름다운 선을 뽐내면서도 묘하게 사실적인 피곤함이 느껴지고, 그 피곤함 끝엔 무대장치에 교묘히 가려져 발레리나를 감상하는 검은 실루엣의 남성이 주머니에 손을 꽂고 서 있다. 당시 파리의 발레단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신분 상승을 위해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어린 소녀들과 이들을 감상 거리로 취급하고 간택하기 위한 부르주아 남성 후원자들이 가득했던 어두운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드가는 <무대 위의 무용수>, <분홍과 초록 튀튀를 입은 무희들>과 같은 대표작에서 어김없이 뭉개진 실루엣의 남성을 등장시키며 파리와 예술의 뒷면을 가감 없이 훔쳐본 화가였다. 훔쳐보면 안 되는 숭고함, <고다이바 부인> 벌거벗은 여인이 말을 타고 도시의 빈 거리를 돌아다니는 그림을 교과서나 뉴스 속에서 한 번쯤 만나본 적 있을 것이다. 존 콜리어의 <레이디 고다이바(Godiva)> 속에는 훔쳐보면 안 되는 숭고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11세기 중세 영국 코번트리에는 탐관오리인 영주가 농민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하며 고혈을 짜내고 있었고, 농민들을 괴롭히지 말라는 영주의 부인 ‘레이디 고다이바’의 간곡한 청에 알몸으로 말을 타고 거리를 지나가면 이를 들어주겠다는 허무맹랑한 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부인은 알몸으로 거리에 나섰고, 마을 사람들 역시 이 마음에 회답하기 위해 절대 부인을 내다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바탕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녹아있는 <레이디 고다이바> 그림 속 텅 빈 거리가 만들어졌다. 여담으로, 부인의 이타심과 관용의 정신으로부터 벨기에의 품격있는 초콜렛 고디바의 브랜드명이 탄생하고, 단순한 호기심으로 유일하게 약속을 깨뜨리고 이를 훔쳐본 마을의 재단사 톰은 결국 눈이 멀었을 뿐만 아니라 관음증 환자를 뜻하는 ‘Peeping Tom’이라는 수치스러운 단어의 유래가 됐다고 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활동, 그렇기 때문에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는 예술. 다가오는 10월부터 진행 예정인 팔복예술대학에서도 <예술의 사생활>이라는 이름으로 무겁고 엄숙하게만 느껴졌던 예술을 좀 더 쉽게 탐닉하는 시간을 갖고자 준비하고 있다. 나의 하루가 어쩐지 단조롭게 흘러가는 것만 같다면, 오늘은 음악, 미술, 영화 등 수많은 예술 속에서 작가가 숨겨놓은 세계를 몰래 훔쳐보고 풍성한 삶을 완성해보자. /이수진 전주문화재단 팔복기획운영팀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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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07 14:12

벽 너머의 노래

누구나 좋아하는 가수가 한 명쯤은 있듯 나도 역시 좋아하는 가수가 있다. 좋아하는 가수가 많아 다양한 장르를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수의 개성이 뚜렷한 록을 좋아한다. 내가 록을 좋아하게 된 계기에는 데이비드 보위가 있다. 그의 아이덴티티가 담긴 노래들은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아직도 여전히 그의 노래를 들으며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런 탓에 특히 인생에 예기치 못한 순간에 우연히 그의 노래가 나올 때마다 그 순간들이 한 장면처럼 또렷하다. 그중에서도 내게 특별하게 남아 또렷한 순간들을 말해보자면 먼저 남이 들려준 space oddity를 들었을 때다. 나는 2020년 여름에 영화제 서포터즈로 활동했었다. 서울에서 열리는 영화제라 잘 곳이 필요했던 터라 숙박 애플리케이션을 둘러보다 여자 호스트가 혼자 사는 투룸에 남는 방에 묵는 조건으로 일주일간 지내게 되었다. 서울 상경 첫날 사람들의 속도에 정신없이 발맞추며 숙소에 도착했을 땐 어안이 벙벙해 멍하게 낯선 침대에 앉아있었다. 나의 상황을 눈치챈 호스트분이 맛집, 교통 가이드를 해주시다 서로 마주 앉아 몇 시간가량 얘기하게 되었다. 그날을 시작으로 나는 그 집에 머물며 그분과 밤마다 부엌 식탁에 앉아 부엌 등만 켜둔 채 작게 음악을 틀어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 밤에도 어김없이 얘기하던 도중, 그 분께서 내게 영상 하나를 틀어주셨다. 영상은 우주비행사가 우주선 안에서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를 부르는 커버 영상이었다. 10인치가량 되는 태블릿기기 화면에서 보이고 들려지는 비행사의 노래는 새벽 감성인 건지, 작은 부엌 조명등 하나 켜둔 탓인 건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엔 현실 스위치를 잠시 끈 듯한 새로운 느낌이었다. 두 번째 순간은 영화에서 데이비드 보위 노래를 만났을 때다. 고등학교 때는 데이비드 보위를 알고는 있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데이비드 보위를 유독 좋아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내가 스무 살 때 모든 대학도, 취업도 하지 않아 인생이 정체되어있다고 느끼던 시절 <월플라워>에서 엠마 왓슨이 달리는 차 안에서 캐비닛을 열고 두 팔을 벌려 자신에게 오는 바람을 그대로 맞는 장면에서 흘러나온 HEROES, 레오 카락스라는 감독이 궁금해서 본 <나쁜 다니어라 방이 길거리를 달릴 때 나온 MODERN LOVE는 순간에 매료되어 한동안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를 주야장천 돌려 들었다. 이후에도 나는 영화로 <조조 래빗>,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잇츠 퍼니스토리> 등 좋은 영화들에서 그의 노래들을 만났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던 시절 호스트의 집에서 들었던 순간, 무기력에 빠져 월플라워, 나쁜 피에서 만났던 순간이 기억에 새겨진 이유는 그의 노래는 내게 이유 모를 해방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영원히 허물지 않을 것 같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처럼 보위의 노래엔 그런 힘이 있다. 누구나 살다 보면 걸음을 막는 벽과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벽 앞에 서서 허물고 뛰어넘을 것인지, 뒤돌아갈 것인지 미련을 두고 고민한다. 나도 가로막는 벽 앞에 뒤돌아 가고 싶을 때마다 앞에 놓인 벽 너머에 있는 그의 노래를 듣는다. 비록 그는 우주로 떠났지만, 음원으로, 영화로 남은 그의 노래는 나를 막는 벽 너머에 항상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그 너머를 꿈꿀 때마다 벽 너머에 가까워질수록 자유로워진다. 단 하루뿐인 자유일지라도! /백지은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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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31 14:07

블로그, 기록하는 습관이 빛을 발하다

수많은 소셜미디어가 쏟아져 나오고 하루가 다르게 트렌드가 바뀌는 시대다. 다양한 매체 안에서 사람들은 사진과 영상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일상을 공유하고 타인과 소통한다. 현재 소셜미디어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페이스북, 트위터 등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데 이 와중에도 제 자리를 지키는 ‘블로그’에 주목하고 싶었다. 블로그는 어쩌면 모바일세대보다는 PC세대에게 더 익숙한 매체이며 짧은 호흡을 추구하는 요즘 트렌드와는 동떨어져 있다고도 볼 수 있다. MZ세대가 열광하는 틱톡에서는 15초 안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야 하고 트위터는 한글 기준 140자 내로 문장을 완성해야 한다. 그에 비해 블로그는 상대적으로 사진, 글, 영상 길이에 제한이 없고 호흡이 긴 편이다. 이번 글을 통해 블로그의 인기 비결이나 마케팅 전략과 같은 거창한 주제가 아닌 개인의 경험에 빗댄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나의 블로그 일지. 블로그(Blog)는 웹(Web)과 로그(log)의 줄임말로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자유롭게 칼럼, 일기, 취재 기사 등을 올리는 개인 웹사이트다. 블로그를 통해 사람들은 본인만의 사이트를 개설하고 구성할 수 있게 됐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네이버 블로그, 티스토리 블로그가 대표적이다. 이중 네이버블로그는 국내 최대의 서비스형 블로그다. 이는 2003년 6월 ‘페이퍼’라는 서비스를 오픈한 뒤 같은 해 10월 12일에 ‘블로그’라는 이름으로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2020년 12월 기준 2800만 개의 블로그가 개설되어 있다. 지난 2월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지하철 택배원 조용문(82) 어르신도 블로그 운영자이다. 그는 사업 실패 후 과거의 기억을 잃은 뒤 블로그를 시작했다. 기억을 잃은 경험이 오늘을 기록하는 습관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처럼 블로그는 누군가에게 하루를 기록하는 일기장이 되기도 한다. 필자 또한 비슷한 이유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며 대문 문구도 ‘기억을 위한 기록’으로 게재되어 있다. 필자의 블로그는 어느덧 10년 넘게 유지되고 있고 요즘 들어 수익도 얻으면서 과거에 비해 한 단계 성장하고 있다. 이제는 소셜미디어가 단순한 소통 창구가 아닌 수익 창출의 역할도 겸하고 있단 걸 체감하게 됐다. 블로그 활용법. 약 10여 년간 블로그를 관리하다 보니 활용할 수 있는 방법 등 약간의 노하우가 생겼다. 소위 말하는 ‘상위 콘텐츠’를 생산하는 방법이나 포스팅 한 게시물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경로들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네이버블로그에서는 ‘애드포스트(AdPost)’ 정책을 통해 블로그 운영자들의 콘텐츠 등을 광고 소재로 활용하여 수익을 배분하는 창작 보상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게시물 조회 수가 아닌 광고 클릭 수에 비례하여 수익이 지급된다. 필자는 한 달에 5~10만원가량 소정의 금액을 지급받고 있지만 다른 사례를 보면 몇 백만 원에 달하는 금액을 받는 이들도 있다. 이밖에 맛집이나 제품을 체험하고 후기를 작성하는 ‘체험단 활동’, 제휴 마케팅 ‘쿠팡 파트너스’ 등을 활용할 수도 있다. 필자도 블로그를 통해 반려묘 제품이나 뷰티 제품을 협찬받아 글을 쓰고 종종 거주 지역의 맛집을 체험한다. 블로그가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잠시 쉬면 된다.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주변 친구들에게 블로그 활동을 진득하게 권하는 사람으로서, 이 글에서도 말 하고 싶다. “지금, 블로그를 시작해보세요!” /강소은 미디어공동체완두콩 기자 △강소은 기자는 전북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아름다운가게 전주모래내점 매니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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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2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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