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당신의 얼굴을 알고 있습니다
 김은강 변호사 2018년 서지현 검사 사건, 안희정 전 지사와 김지은씨 사건으로 인하여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변화되었다. 수 많은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는 미투 운동이 있었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법원의 입장도 달라졌다. 대법원은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양성평등기본법 제5조 제1항 참조)라고 판결하였다(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성인지 감수성은 성별영향평가제도, 성인지 예산제도 등으로 정책과 입안에서 이미 사용되어온 개념인데, 대법원 판결에서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말이 사용된 것은 위 판결이 처음이었다. 그동안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통념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던 법원의 반성적인 고려에서 나온 판결이다. 법원에서는 피해자가 성폭력 상황에서 강력하게 저항하지 않았거나, 피해 즉시 신고하지 않았거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연인 사이인 경우 등에는 피해자 답지 않다는 이유로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위 대법원 판결 이후 각 법원은 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가 처한 상황, 권력의 불균형, 사건의 전반적인 경위 등을 구체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게 되었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의 수위 또한 높아진 편이다.
디지털 기기 보급률이 매우 높아짐에 따라 최근 디지털 성폭력이 특히 많이 문제 되는데, 2020. 4. 29. 카메라 등을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의 벌금(이전 법률의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것으로 관련 법률(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 제1항)이 개정되는 등 처벌의 수위가 높아졌고, 사회적인 경각심 또한 커지고 있다.
필자는 최근 수행한 위 범죄의 사건에서 달라진 성인식, 피해자의 태도를 체감했다. 일면식도 없던 가해자가 피해자의 신체를 촬영한 사건이었는데, 가해자는 자신의 범죄 사실을 자백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며 합의를 하고자 했다. 그런데 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피해자 입장에서 가해자를 만나는 것이 괜찮을지, 만나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고 피해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피해자를 말릴 특별한 사정은 없었기에 약속을 잡아 필자의 사무실에서 함께 만나게 되었다.
나도 당신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아셨으면 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혹시 사진을 어딘가에 저장해 두었다 하더라도 절대 유포하지 마세요. 피해자는 가해자를 대면한 자리에서 2차 가해를 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로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피해자의 말은, 가해자를 대면하려 하는 피해자에 대해 잠시피해자 답지 못하다고 생각한 필자를 반성하게 하였다. 피해자마다 생각, 성향이 다르고 자신을 드러내는지 여부에 대해 무엇이 옳다 할 수는 없으며 그 어떤 선택도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제3자의 입장에서 기존의 통념에 따라 피해자를 대하는 일, 피해자 다움을 강요하는 무언의 압박이 더 이상 없어야 함은 분명하다. /김은강 변호사
* 김은강 변호사는 법무법인 연, 법률사무소 해민에서 활동했다. 현재는 법무법인(유한) 랜드마크에 몸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