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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드니 철들다

나, 이제 십대야! 맞벌이 하는 오빠 부부를 대신해 고모가 조카를 돌봐주는데 열 살 되던 해, 아기 취급하지 말라는 경고로 조카가 내뱉은 말이었다.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녀석이. 하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니 고모는 부모와는 달리 모모와 같은 친구인 줄 알았을 텐데, 엄마와 다름없이 걱정이라는 이름의 간섭과 사랑이란 이름의 잔소리꾼으로 되어버린 자신을 뒤돌아보는 이야기가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에 소개된다.어른들은 미래를 강조하지만, 십대들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이 전부다. 이들에게 대통령이나 장관을 지낸 사람들처럼 내가 해봐서 다 아는데! 운운하는 조언이나 충고 따위는 큰 의미가 없다. 이보다 더 심각한 십대의 속내를 행동으로 표출된 허구도 있다.불량소년, 스미스는 감화원으로 송치되자 장거리 선수로 발탁된다. 그가 멋지게 우승하여 명예로운 상을 획득할 것을 기대하면서 원장은 열심히 지도한다. 소년은 원장의 눈치를 보면서 연습에 열중한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는 날, 소년은 상대 선수에게 보기 좋게 져줌으로써 원장의 콧대를 꺾어 놓는다. 이 1인칭 소설, <장거리 주자의 고독>은 1928년 실리토우(A. Sillitoe.영)의 작품이다. 유년시절 하층 노동자들의 가난했던 생활을 체험한 이 소년에게는 원장의 고상한 교훈은 공허한 메아리요, 단순한 잔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소년은 원장의 희망을 점잖게 행동으로 거절한 것이다.중학교 현직에 있을 때의 일이다. 2학년 학생이 전학 왔다.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엄마 말을 잘 듣던 애가 2학년이 되자, 엄마! 나에게 말 걸면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다시는 나한테 잔소리 하지 마. 긴장된 엄마의 얼굴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1남 1녀를 기르면서 지금까지 잘 지내왔는데 갑자기 폭탄선언을 들으니 딸의 얼굴 보기마저 두렵다는 것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여유가 없다. 딸의 덧정이 없는 행동을 엄마가 고치겠다고 다그친다면 이미 중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으로 훌쩍 성장, 엄마와의 앙금만 기억될 것이다. 자녀교육은 가정에서부터 부모가 당연히 책임져야겠지만 옛날과 달리 요즈음은 만만찮다. 존 F 케네디는 최연소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그의 어머님의 가르침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어머니 로즈는 규칙을 정해 놓고 아이들이 그것을 어겼을 때는 어김없이 회초리를 들었다. 우리들의 할아버지, 아버지 시대에도 그랬다. 그런데 지금의 회초리 교육은 탈선을 재촉하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체벌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신경숙의 장편 <엄마를 부탁해>는 내 고향, 정읍이 배경인지라 아주 관심 있게 읽어보았다. 엄마를 잃어버린 일주일째다로부터 시작하여 지난날 우리 엄마와 너무도 평범한 이야기를 회상체 형식으로 화자를 바꿔가면서 엮었는데 감명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세상 엄마들이 신경숙의 엄마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십대의 딸들도 언젠가는 신경숙의 엄마처럼 자식들에게 희생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오늘의 십대를 지나가는 구름의 변화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앞장서지 말고 도와주는 역할에만 힘써달라고 엄마들에게 주문한다면, 생각처럼 쉽지 않다고 헤갈스러워 할까. 거시기지만, 나 역시 젊었을 때 교단에서 제자들을 곁에서 도와주지 못하고 왜 그리 앞에서 냅뜨며 이끌기를 좋아했던가, 나이드니 철든다고 이제야 후회한들 이를 어찌 다시 담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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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1.18 23:02

연필 타령

아끼던 볼펜이 갑자기 사라졌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아닐수없다.방송중 큐시트에 곡목을 적어 나가던 중이었다. 분명히 나 혼자 책상에서 일하고 있었고 누가 다녀간 적도없는데 갑자기 볼펜이 사라진 것이다. 의자 옆, 책상 아래 모퉁이, 근처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어디에도 볼펜은 없다. 손에서 힘이 빠진다. 제갈공명의 백우선이나 관우의 청룡언월도에 비유할 바는 아니지만 손오공이 여의봉을 잃은 것처럼 맥이 풀리면서 급기야 의욕상실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필통을 뒤적여본다. 다른 종류의 볼펜이 있다. 하지만 나는, 방금 전까지 내 손가락 사이에서 뇌와 혼연일체가 되어,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볼펜에 대한 미련을 거둘 수 없다. 몇 주 전부터 두어 건의 기획 작업을 그 친구와 함께 하던 터라 내 영혼의 일부가 그 볼펜에 배어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나의 생각을 읽고 있었을 것이다.컴퓨터가 중요한 일을 처리해주고 키보드 자판이 생각을 더 빨리 정리해주긴 하지만, 여전히 글을 쓰고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게, 펜은 신체의 일부와 같다. 종이에 부드럽게 말려드는 접촉감, 머리와 손과 종이와 펜이 서로 애무하다 급기야 혼연일체 되어 전개해 나가는 추진력. 그리고 지우고 다시 써가며 결국 마침표를 찍을 때의 쾌감이란! 키보드로 화면을 채워가는 그것과 확연히 다를 것이다. 서랍을 뒤적여본다. 다 쓴 펜이 한 움큼 잡힌다. 그때그때 중요한 일거리들을 훌륭하게 수행한 충실한 벗들이다. 내면의 내장을 토해 혈서를 남기고 장렬히 순직한 펜의 주검 앞에 잠시 생각에 잠긴다.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있다.지난해까지 자주 사용하던 펜은 1.0㎜ 수성펜이었다. 투명 케이스 안으로 검정 심이 팍팍 줄어드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대단한 업무가 진전되는 양 위안을 삼았다. 종이에 앵기는 감촉도 보드라웠다. 생각이 술술 잘 풀려서 좋았다. 방송관련 상을 받은 어느 해, 대학교 근처에서 우연히 마주친 은사님은 수상 기념으로 근사한 선물을 사주시겠다고 기어이 문방구로 이끄셨다. 이 문방구에 있는 것 중 가장 좋고 비싼 것을 내어 놓으라고 주문하시는데 내가 선택한 펜은 역시 1200원짜리 1.0㎜ 수성 펜. 큰맘 먹고 좋은 펜을 사주시려는 은사님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손에 익은 펜이 내 생각을 먼저 알았다. 비싼 것과 1200원짜리 사이에서 승강이를 벌이고 있을 때, 문구점 주인은 자기 이익은 생각지도 않고 슬며시 내 편을 거드는 것이었다. 교수님, 김 피디님은 이 펜을 좋아하세요. 제가 잘 알아요. 문구점 주인까지 가세하여 1200원짜리 펜으로 낙점. 교수님은 매우 아쉬워하시며 대신 펜을 20여개나 사주셨다. 서랍 속에서 다 쓴 1200원짜리 1.0㎜ 수성펜 십여 개를 보니 은사님의 깊은 사랑이 전해진다. 중간 중간 해외여행을 다녀온 지인 들이 유명 메이커의 펜을 선물해주었는데 딱히 필 꽂히는 펜은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조용히 필통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가 펜이 막히거나 잉크가 말라비틀어져 그대로 장식품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요즘은 다시 1.0㎜ 볼펜을 쓰고 있다. 가격은 다소 올라 1500원쯤 하려나? 떼굴떼굴 볼펜심이 잘도 굴러간다. 생각도 떼굴떼굴 잘 굴러가는 것 같다. 이 친구와 찰떡궁합을 이루며 벌써 십여 개째 속도를 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한창 가속이 붙을 무렵, 그만 이 친구가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수십만 원에서 백여만 원에 이르는 명품 펜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1500원짜리 볼펜 하나 잃어버리고 이렇게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는데, 명품 펜이 사라지기라도 한다면? 아니다. 친구를 어찌 가격에 비유한단 말인가. 내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친구가 사라져서 일손이 잡히지 않을 따름. 마음이 허전하다. 그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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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1.1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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