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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세밑 단상(斷想)

때에 따라 떠오르는 단편적 생각이나 그 생각을 적은 글을 좀 멋스럽게 표현해서 단상(斷想)이라고 한다. 추일단상, 세밑단상 하는 식이다. 2023 계묘년 토끼띠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2024년은 갑진년 용띠해인데 곧 동터오틀 태세다. 올 한해를 보내는 전북인들은 지역에서 생활하든, 타지에서 활동하든 ‘새만금’이라는 세 글자가 가장 강하게 각인돼 있을 것이다. 새만금 잼버리에서 시작해서 새만금 예산삭감, 새만금 기업유치 등등 평소 새만금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이들조차 일희하고 일비했던 나날이었다. 친구가 직장을 잃으면 불황이고, 내가 일자리를 잃으면 공황이라는 말처럼 사실 각 개인들에게는 자신의 소소한 일상 하나하나가 지역공동체의 일 보다 훨씬 더 강하고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올해처럼 지역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전북인들이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일찌감치 없었다. ‘징게 맹갱 외에밋들’은 ‘김제 만경 너른 들’을 뜻하는 옛말이다. 사슴이 아름다운 뿔 때문에 소중한 목숨을 잃듯, 금만 평야는 그 풍요로움 때문에 봉건시대에 탐관오리에 시달렸고, 일제강점기에는 더욱 가혹한 수탈의 대상이 됐다. 김제 죽산면에 있는 하시모토 농장은 일제시대 죽산면 농토의 절반 이상을 소유했던 일제 지주 하시모토가 수백명의 소작인들을 관리하던 곳이다. 익산 춘포면 대장촌 일대 역시 대대로 구마모토의 영주 가문이었던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일본 총리의 친조부가 이 마을을 개척한 대농장 소유주였다. 일제때 일본에서 아무런 주소도 없이 '조선 대장촌'이라고만 적고 편지를 보내도 제대로 배달됐다는 믿지못할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을 보면 대장촌 역시 얼마나 큰 농장이었는지를 가늠케한다. 예전 금만평야의 또다른 외연이 오늘날 새만금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난과 낙후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었던 새만금이 중앙정부로부터 외면받는 현실을 목도해야만 하는 도민들의 심정은 가히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새만금 세밑 단상은 그래서 더 우울하거나 처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을 약 옆에 살 약도 있는 법. 어제 여의도 콘래드 서울에서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새만금 민간투자 10조원 달성을 축하하는 기념행사가 열렸다. 지금부터 꼭 10년 전 새만금개발청이 문을 연 이래 9년동안 1조 5천억원의 유치를 한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성과임에 틀림없다. 일제가 패망한 뒤 광복 직후 국내 굴지의 기업인은 김연수 경성방직 회장과 박흥식 화신백화점 회장 정도였다. 6∙25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본금 기준(1955년) 대한민국 재계 순위는 1위 삼양사, 2위 대한석탄공사, 3위 한국산업은행, 4위 락희화학공업사, 5위 금성방직 등이었다. 삼성그룹, 삼호그룹, 개풍그룹 등은 1950년대말에 이르러서야 재계 최상위권에 등극하게 된다. 며칠전 하림그룹이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 HMM(옛 현대상선)을 인수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일약 재계 순위 13위에 랭크될 전망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새만금이 살아나면 전북에서 굴지의 기업이 활동하게 될 것이다. 새만금 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던 도민들이 갑진년 청룡의 해에는 기쁨과 희망을 찾았으면 한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3.12.27 15:10

늘어나는 폐교, 효율적 활용방안 찾아야

인구절벽 시대,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문을 닫는 학교가 해마다 늘고 있다. 농어촌의 비중이 높은 전북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 실제 내년 초 폐교가 예정된 전북지역 학교는 모두 9곳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농어촌 공동체가 속속 무너지면서 앞으로도 학생이 없어 문을 닫는 폐교는 급속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속속 발생하게 될 폐교 공간을 생각 없이 민간에 매각하거나 방치해서는 안 된다. 지역사회 활성화에 보탬을 줄 수 있는 효율적 활용방안을 찾아야 한다. 사실 전북교육청에서는 지금껏 수없이 생겨난 폐교 공간에 대해 매각이나 임대에 무게를 뒀다. 이로 인해 주변 경관이 좋은 폐교를 중심으로 상당수가 민간에 매각됐다. 하지만 팔리지 않은 곳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폐허로 변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또 매각 대신 자체 활용 계획을 세워놓은 폐교도 마땅한 활용방안을 찾지 못해 방치된 곳이 많다. 그러다 보니 잡목이 우거진 채 지역사회에 흉물로 남아 있는 폐교건물이 적지 않다. 1999년 제정된 ‘폐교재산의 활용촉진을 위한 특별법’은 시·도교육감이 지방자치단체의 의견을 들어 폐교재산의 활용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지역소멸 위기를 막고 농어촌 정주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해서 폐교 건물의 효율적 활용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매각보다는 해당 지역의 여건을 감안해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해 폐교를 지역사회 활력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방안이 최선이다. 학교의 소멸은 지역 공동체의 침체로 이어지는 만큼, 폐교가 학교를 대신해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청과 해당 지자체의 긴밀한 협업이 요구된다. 학교 통폐합으로 용도를 잃은 폐교 건물을 리모델링한 완주군의 지역경제순환센터와 완주 소셜굿즈혁신파크 등이 좋은 사례로 꼽힌다. 학교 통폐합 및 신설 대체 이전에 따른 교육부의 인센티브 교부금을 활용해 폐교 공간에 지역주민이 희망하는 교육·문화시설, 주민편의 시설 등을 조성해 학교를 대신할 수 있는 지역사회 거점 공간으로 조성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3.12.27 12:10

전라북도를 떠나는 청년들

전라북도의회는 최근 행정사무감사를 마쳤다. 행정사무감사는 의회 일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이자 핵심이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전라북도의 정책에 대한 성과가 제대로 이행됐는지 점검하고 도민의 혈세가 헛되이 사용되는 일이 없도록 감시하는 기능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도민을 대표하는 도의원으로서 행정사무감사를 하면서 전라북도 일자리정책에 대해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2023년 3분기 전라북도 청년실업률은 8.3%로 전국 17개 시도 중 16위로 전국 평균인 5.2%를 훌쩍 넘었다. 심각한 청년실업률을 반영하듯 전라북도 일자리 성적은 참담한 수준이었다. 2022년 상용 일자리는 145,558명, 임시 일자리는 28,573명이었지만, 2023년에는 상용 일자리 138,276명, 임시 일자리는 78,830으로 상용 일자리는 줄고 임시 일자리는 대폭 증가하였다. 청년들은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더 나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전라북도를 떠나고 있다. 특히 지역 경제의 근간인 청년층 이탈이 심각한 수준이다. 전라북도에 따르면 지난 2020년에는 10만 8천여 명이, 2021년엔 9만 9천여 명이, 2022년에는 9만여 명의 청년들이 전북을 떠났다. 청년들은 월급과 성과금 등 보상체계와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금전적인 보상뿐 아니라 문화생활이나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인프라가 있는 곳으로 가고 있다. 요즘 세대의 청년은 많은 짐을 짊어지고 살고 있다. 코로나19로 바뀐 사회 시스템, 실업률, 고금리, 경기침체, 높은 물가 상승률, 소득 대비 높은 주택가격으로 스스로의 삶을 비관적으로 표현하는 속어들도 생겨났다. 처음에는 연애,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한 삼포세대라고 부르더니 집과 경력을 포기한 오포세대, 여기에 취미와 인간관계를 포기한 칠포세대, 건강과 외모를 포기한 구포세대까지 생겨났다. 이러한 신조어는 청년들이 겪고 있는 삶을 말해주고 있다. 2022년 출산율은 0.78로 OECD 세계 최저 수준이지만, 청년들에게 왜 결혼을 하지 않냐고, 왜 아이를 낳지 않냐고 말하는 것은 이러한 상황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말도 안 되게 치솟는 집값으로 전세 대출 이자와 생활비만 내기 벅찬 상황에서 청년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둘씩 늘어난 N포 세대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힘든 청년의 삶 속에서 앞으로 전라북도가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는 청년을 전라북도에 머물게 하고 다시금 돌아올 수 있는 현실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청년 정책은 단순히 한 분야에만 특정해서 지원하는 것보단 일자리, 주거, 교육, 문화 등 삶의 전 영역에서의 개선과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청년 정책뿐 아니라 전라북도 상황에 맞는 청년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전북에 청년이 없으면 인구 고령화 가속과 지역 활력 감소뿐만 아니라 지역경제가 침체되고 기업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청년들의 문제는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풀어야 숙제이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청년이 떠나면 도시는 소멸하고 전북의 미래는 없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3.12.26 18:37

장수가야 고분군, 세계유산 확장 등재하자

장수가야 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확장 등재하자는 주장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지난 9월 가야 7개 고분군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나오고 있는 주장이다. 7개 고분군은 전북 남원의 유곡리·두락리를 비롯해 경남 김해, 함안, 합천, 고성, 창녕과 경북 고령 등이다. 여기에 안타깝게도 장수가야 고분군은 들어가지 못했다. 이유는 발굴조사가 늦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전북연구원은 유네스코 발표 직후, 장수가야 고분군의 확장 등재를 주장한 바 있다. 이번에는 22일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열린 '호남문화콘텐츠연구원 출범식 및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기념식'에서 제기되었다. 이날 곽장근 군산대 교수는 ‘장수 가야고분군 현황과 확장 등재’라는 발제를 통해 “유네스코는 등재 당시 조사가 충분하지 않아 포함되지 않았지만 그 이후에라도 등재 유산의 완전성과 진정성을 충족시키면 확장등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장수가야 고분군은 탁월성과 완전성, 진정성, 보존 및 관리상태를 대부분 충족시킨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과 전북도, 장수군은 지혜를 모아 확장등재를 추진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가야고분군은 한반도 남부에서 연맹이라는 독특한 정치체계를 유지하면서 주변의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와 병존했던 가야문명을 실증하는 독보적인 증거다. 동아시아 고대문명의 한 유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꼽힌다. 시기는 1∼6세기에 걸쳐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한반도에 가야관련 고분군은 780개 남짓 분포하고 이 고분군들이 들어선 무덤은 수십만기를 헤어린다고 한다. 이 가운데 남원 운봉고분군은 가야가 백두대간을 넘어 호남에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중요한 물증이다. 그동안 가야 연구는 영남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다 곽 교수 등의 피땀어린 발굴 노력으로 유물이 쏟아지면서 전북동부에도 가야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특히 장수에는 동촌리, 삼봉리, 삼고리 등에 240여기의 고총과 120여 개소의 가야봉화망, 200여개소의 제철유적들이 산재한다. 학계의 검증을 더 받아야 하겠지만 이들 유적은 남원 고분군 못지 않다. 전북도가 기업유치에 매진하는 것도 중요하나 보물같은 역사문화관광 자원의 활용에도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3.12.26 18:35

견훤, 이성계, 김일성

오래 전에 전주가 세 왕조를 탄생시킨 곳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 솔깃했으나 곧 잊어 버렸다. 그러다 최근 몇 년간 역사에 관심을 갖고 답사를 다니다보니 잊어버린 기억이 되살아났다. 전주와 전북이 역사에 있어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세 왕조는 견훤왕이 세운 후백제(당시 국호는 백제)와 태조 이성계가 세운 조선, 그리고 북한의 김일성을 일컫는다. 현재 진행형인 북한을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럽긴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들에게서 성공과 실패의 리더십을 배울 수 있다. 또 풍성한 역사문화콘텐츠로 활용할 수도 있다. 먼저 견훤왕부터 보자. 경북 문경출신인 견훤왕은 900년 전주에서 후백제를 건국했다. 전주는 936년까지 37년간 왕도(王都)였다. 견훤왕은 남원 실상사 편운화상 승탑(국보)에서 보여주듯 정개(正開)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당시 통일신라는 부정부패가 만연했고 농민반란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이들 민초들과 더불어 나라를 바르게 열기 위해 둔전(屯田)과 관개시설 확충, 승려선발 과거제에 해당하는 선불장(選佛場)을 실시하는 등 혁신적인 제도를 도입했다. 또 오월, 후당, 거란, 왜 등과 다변화된 외교를 펼쳤다. 다음으로 태조 이성계는 1392년 조선을 건국해 500년을 잇도록 했다. 알다시피 전주는 그의 6대조 이전까지 대대로 살던 곳이다. 조선왕조의 탯자리인 셈이다. 따라서 그와 관련된 유물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전주에는 태조 어진을 모신 경기전을 비롯해 조경묘, 조경단, 오목대, 이목대 등이 몰려 있다. 또 왜구를 물리쳐 조선 건국의 발판이 되었던 남원 황산대첩, 새 왕조 개창의 천명을 받은 임실 성수산 상이암, 금척을 받은 진안 마이산, 고추장 설화가 어린 순창 만일사 등도 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북한 김일성은 1945년 해방이후 80년 가까이 3대째 북한을 지배하고 있다. 민주공화국의 시각에서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전주 모악산에는 그의 시조인 김태서 묘가 자리한다. 김태서는 고려 때인 1254년 경주 일대가 왜군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자 일족을 이끌고 전주군에 정착해 전주김씨의 시조가 된 인물이다. 김일성은 그의 32대 후손이다. 후세의 역사가들은 이를 어찌 볼지 모르겠으나 남북국시대로 부를 수도 있다. 어쨌든 한 지역이 왕도이고 왕조의 뿌리인 곳은 전주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후백제의 경우 그동안 철저히 외면하던 광주시가 자난 1일 ‘후백제 왕도 재조명’ 학술대회를 가졌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광주가 후백제의 첫수도(始都)라고 주장한 점이다. 고무적인 일이다. 광주뿐 아니라 견훤왕의 초기 활동지인 여수 순천 광양 나주 등도 함께 조명했으면 한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37년간 왕도였던 전주시는 이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어 답답하다. 또 지난 7일에는 ‘태조 이성계, 전북역사문화자산 어떻게 꽃피울 것인가’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전북에 널려있는 이성계 관련 유산을 활용하자는 취지이다. 진작 나섰어야 할 일이다. 여기서 유념할 게 있다. 조선왕조의 중심은 서울이라는 점이다. 비록 이성계의 관향(貫鄕)이 전주지만 거의 대부분의 유물유적이 서울에 집중돼 있다. 흔히 왕조의 성립을 애기할 때 왕도와 왕릉을 본다. 고대국가에선 왕찰까지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후백제에 대한 관심을 한번 더 상기하고자 한다. 전북이 비록 산업발전에는 뒤졌으나 뛰어난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하면 수천억 원짜리 기업 유치보다 낫기 때문이다.

  • 오피니언
  • 조상진
  • 2023.12.26 18:34

한지발과 명장 유배근

한지발은 한지를 만들 때 쓰이는 도구다. 한지가 세계에서도 우수한 종이로 평가받는 바탕에는 이 한지발이 있다. 한지발은 한지를 뜰 때 쓰는 대나무로 만든 발이다. 못을 쓰지 않고 만든 발틀 위에 올려놓고 물질을 하여 종이를 뜬다. 좋은 한지는 우선 재료가 좋아야 하지만 한지를 뜨는 과정에서 이 한지발의 면이 고와야 매끄러운 종이를 얻을 수 있다. 질 좋은 한지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인 셈인데, 안타깝게도 그 쓰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제작 과정이 어떤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지난 2005년 국가무형문화재 종목이 된 한지장과는 달리 한지발장은 종목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지발을 만드는 과정은 까다롭다. 재료의 특성을 잘 알고 단계마다 그에 맞는 도구를 잘 다루면서 숙련된 기술이 더해져야 원하는 한지발을 만들 수 있다. 그만큼 만드는 사람의 지혜와 슬기, 끈기가 있어야만 가능한 고단하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인지 한지발을 만드는 사람은 예전부터 많지 않았다. 그조차도 점점 줄어들어 한지발을 만드는 사람은 전국에서도 단 한 명. 전주에서 활동했던 도 문화재 기능보유자 유배근 명장이 유일했다. 한지발 없이는 한지를 뜰 수 없고 제대로 된 한지발은 유배근 명장이 없이는 만들 수 없으니 그의 존재 자체가 한지의 맥을 잇는 상징이었던 셈이다. 1940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유배근 명장은 어린 시절, 가업이 된 한지와 한지발 만드는 일을 익혔다. 한지발은 그의 어머니가 먹고살기 위해 배웠던 기술이다. 그가 살던 동네에서 한지발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그의 어머니뿐이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한지발 기술을 이어받았다. 결혼 후에는 아내와 함께 한지 공장을 운영하면서 한지발 제작을 이어갔다. 한지가 잘 팔리던 시절에는 자연히 한지발 수요도 늘었다. 덕분에 80년대 초반에 문을 연 한지 공장은 직원이 30명이나 될 정도로 성업을 누렸다. 그가 직접 만든 한지발로 떠낸 질 좋은 한지가 유배지란 이름으로 팔려나가면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그가 한지발 제작에만 매달린 것은 한지 폐수 문제가 불거지면서다. 그 뒤 온전히 전통 한지발 제작에만 일상을 바쳐온 그는 한지발을 만드는데 필요한 도구들마저 중단될 정도로 환경이 어려워진 환경에서도 직접 도구를 만들어 그 길을 지켜왔다. 그는 2005년 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50년 가깝게 한지발을 만들어온 그의 시간이 비로소 빛을 얻게 된 지 열 여덟 해. 갑작스러운 부음이다. 유배근 명장이 23일 세상을 떠났다. 섬세하고 미려한 한지발이 그의 이름으로 남은 자리, 이제 길을 함께 걸어온 아내와 아들이 이어갈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 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3.12.26 17:54

군산형 일자리 실패 반면교사 삼아야

각종 정책 결정은 항상 성공과 실패 가능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결정 당시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상황이 발생해 뜻하지 않은 실패를 경험하는 경우도 수없이 많다. 뭔가를 해보려고 하다가 실패했다고 해서 그 정책 자체가 잘못됐다고 할 수 없고 특히 의사결정을 한 사람을 무조건 비판만 할 수도 없다. 하지만 누가 보기에도 정책의 합리성이 결여돼 있다면 이에대한 절차와 과정을 철저히 복기해서 다시는 유사한 잘못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해야만 한다. 대표적인게 군산형 일자리다. 전북을 포함해 전국 6개 자치단체가 상생형 일자리 사업을 추진했는데 군산은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어려운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도입한 정책이 결과적으로는 지역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차량 생산도 중국에서 생산한 모델을 조립하는 저급한 단계에 머물렀다. 대량 조립 생산라인도 갖춰지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군산형 일자리 연구개발지원이 2600억 원 규모이고 참여기업도 연간 수십억 원씩 지원을 받는데도 사업 계획과 실적 사이엔 엄청난 괴리가 발생했다. 물론 그럴만한 이유는 차고 넘친다. 가뜩이나 글로벌 경기 악화로 인해 명신의 위탁생산 지연, 에디스모터스의 법정관리 등으로 당초 계획은 종이쪽지에 불과했다. 얼마전 전북·군산형 일자리 핵심 기업 (주)명신이 정부와 전북도‧군산시가 지원한 투자유치촉진지원금을 반납했다. (주)명신은 군산공장 확장을 위한 집중 투자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는데 결과적으로 군산형일자리에 악영향을 미칠 것은 불을보듯 뻔하다. 2019년 (주)명신은 한국GM 군산공장을 인수, 2021년 전북·군산형일자리에 참여해 1호 전기차 다니고 밴을 출시하면서 도내 자동차산업을 재도약시킬 것으로 기대를 모았고, 전북도와 군산시는 총 125억 원(국·도·시비)의 지투보조금을 지원키로 했다. 도내 경제계에서는 ㈜명신이 상대적으로 소규모인 사업계획(지투보조금 사업)을 이행하지 못했는데, 3배 이상 투자가 요구되는 전북·군산형 일자리 사업 이행이 가능하겠느냐고 묻고있다. 아산공장을 축소하고 군산공장에 집중투자 한다는 계획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10월말 기준 투자 금액은 2539억 원(토지매입비 포함), 고용인원은 300여 명에 불과한데 이것마저 아산공장 전환자가 포함된 수치다. 이젠 전북·군산형일자리 사업 전반에 대해 철저히 점검하고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현 상황에서 최선책을 찾아야 한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3.12.26 15:39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의 제정을 위하여

큰 충격을 받은 사건이 있었던 날은 시간이 지나도 그날 내가 무엇을 했는지 선명하게 기억하고는 한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에는 일 때문에 군부대에 갈일이 있었고, 근처에서 혼자 밥을 먹으며 식당에서 틀어놓은 뉴스를 보고 있었다. 당시 전원 구조라는 거짓 뉴스가 계속 보도되고 있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 다행이다는 생각을 했던 것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당일에는 변호사회에서 1박2일 경주 야유회를 갔고, 숙소에 돌아와 티비를 켰는데 정말 이게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맞는 건가 싶은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이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고 하니 그렇게까지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지는 않겠지라는 그나마 희망적인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날 사망 159명, 부상 196명이라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대형참사가 대한민국 그것도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이미 사고 전날부터 이태원 뒷골목엔 움직이기 힘들 정도의 인파가 모였고, 위험한 상황이 목격되기도 해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상황임이 인지되었다. 사고 당일 오후 6시 34분에는 압사를 언급하는 최초 신고가 접수되었고, 112신고가 경찰이 공개한 것만 11건이었다. 심지어 사고 직전인 오후 8시 33분에도 사람이 쓰러지고 있는데 현장 통제가 안된다 심각하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 시민들이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는데 누구하나 이를 해결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미 위험 징후가 여러 차례 있었고, 사전에 6호선 이태원역 지하철 무정차, 이태원로 일대 도로 통제와 같은 조치만 했어도 막을 수 있는 참사였다고 말한다.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고, 유가족들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제공도 없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만 보이다 유가족들은 어느새 2차 가해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이태원에 간 것이 불법인가그 시간에 그 곳에 있었을 뿐인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국가는 헌법 제34조 제6항에 따라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의무를 게을리하였고, 국가의 보호 아래 안전해야 할 국민들이 국가의 재난 컨트롤 시스템의 미비로 인하여 막을 수 있는 인재로 희생당한 것이다. 유가족이 바라는 것은 이태원 참사의 발생원인과 책임소재 등에 관한 진상 규명이다. 이를 위해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이 이루어져야만 하고, 특별법의 주요 내용 역시 특별조사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 진상규명 조사, 청문회 및 특별검사 임명, 피해자 지원, 공동체 회복 지원이다. 이 당연한 내용이 참사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이 참담하고, 이태원참사 특별법이 어떠한 이유로 정쟁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서 답답한 노릇이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 난지 1년이 훌쩍 지났다. 유족들의 요구는 지극히 당연해서 이것이 왜 이렇게 아직도 이루어질 수 없는지 조차 이해하기 어렵다. 여야의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둘러싼 협의가 진척이 없자 12월 21일 국회의장이 중재안을 제안하면서 회기 내 처리를 다짐했지만 끝내 상정이 연기되었다. 유가족들은 추운 겨울날 이태원참사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해 국회 둘레 오채투지 행진을 하고 있다. 이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도록 12월 28일 본회의에서는 부디 안건으로 상정하여 통과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우아롬 변호사∙민변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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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26 15:38

새만금 SOC 적정성 검토 백지화하라

대폭 삭감된 새만금 관련 예산이 겨우 절반 복원됐다. 도민 입장에서 보면 기가막힐 일인데 민심을 읽지 못하는 일부 정객들은 절반의 성공 운운하면서 생색을 내기에 바쁘다. 예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새만금 예산 총액은 전북이 지금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정작 심각한 것은 단순히 내년 예산이 아니다. 새만금 SOC 적정성 검토 여부가 핵심이다. 자칫 차일피일 시간만 끌다가 죽도밥도 안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새만금 인입철도나 지역 간 연결도로 건설 등 정부로부터 이미 타당성과 필요성을 인정받은 사업들도 적정성 재검토 대상이다. 국토교통부는 내년 6월까지 진행할 연구 용역 기관도 선정했는데 행정절차를 정상적으로 마친 사업의 적정성을 재검토한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전국을 동일한 잣대에 올려놓고 적정성 검토를 하는 것도 아니고 새만금만 콕 집어서 한다는게 영 개운치가 않다. 적정성 재검토 기간에는 모든 행정절차가 중단돼 새만금 예산이 절반 복원됐다고 하더라도 현장에서 실제 사업은 추진이 어렵다는 얘기다. 결론은 국토부의 적정성 재검토를 백지화 해야한다. 며칠전 전북도의회는 입장문을 통해 "새만금을 정치적인 도구로 흔드는 일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지역위원장을 맡고있는 현역 국회의원들이 예산을 나름대로 선방했다고 자화자찬 하는 가운데 지방의원들이 냉철한 자세로 현실을 직시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이들은 특히 "최종 확보된 새만금 예산은 우리가 만족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며 "그동안 전북인들이 느꼈던 소외감과 좌절감, 새만금의 속도감 있는 개발을 염원하는 국민의 상처에 비하면 납득할 수 없는 결과"라고 평가절하했다. 대폭 삭감됐던 새만금 SOC 예산이 일부 복원된만큼 지금부터는 예산 집행의 걸림돌인 ‘새만금 SOC 사업 적정성 검토 연구용역’을 당장 백지화시키는데 화력을 집중해야 한다. 국제공항 등 새만금 SOC 사업에 별도의 적정성 검토가 필요하다면 가덕도 신공항, 대구경북 신공항, 서산공항은 왜 별도의 용역을 하지 않는가. 지난 2019년 기재부의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은 새만금 국제공항을 콕 집어 적정성 검토를 지시한 것은 명백한 이중잣대다. 지금은 자화자찬을 할 때가 아니다. 더 겸허한 자세로 도민의 명령을 받들어 새만금 SOC 백지화에 주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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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3.12.25 17:31

교육발전특구 공모에 철저히 준비하라

정부가 지역을 대상으로 교육발전특구 공모를 실시하고 있다. 전북교육청과 전북도는 여기에 철저히 준비해 시범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면 한다. 교육발전특구 지정이 경제가 피폐하고 인구가 줄어 들어 잔뜩 위축된 전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 등은 지난주 전북대를 방문해 '찾아가는 교육발전특구 설명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지역인재들이 수도권에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고 있어 지역소멸 문제가 더 가속화되고 있다"며 "이를 되돌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교육을 다시 한 번 지역차원에서 발전시키고 격차를 좁히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교육발전특구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교육발전특구는 지역 유아부터 초·중등, 대학까지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자체, 교육청, 대학, 지역기업, 지역 공공기관 등이 협력 지원하는 체제다. 특구에 선정되면 향후 3년간 30억∼100억 원을 지원 받는다. 1차 공모는 현재 진행 중이며 2차 공모는 내년 7월에 결정된다. 지방은 지금 호영남을 가릴 것 없이 소멸위기에 처해 있다. 모든 게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전국 국토의 10%밖에 되지 않는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며 100대 기업 본사의 86%가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다. 50년 전만해도 수도권 인구는 전국의 20% 선이었다. 더구나 전북은 2001년 이후 20년 간 청년(20∼34세) 순유출 규모는 22만6000명으로 전체 순유출의 92.1%를 차지했다. 이유는 일자리와 명문대 진학이다. 이번에 교육부가 들고 나온 교육발전특구는 교육을 발전시켜 지역소멸을 막겠다는 구상이다. 교육발전특구에 선정된 지역은 늘봄학교, 자율형 공립고, 디지털 교육혁신, 학교복합시설, 해외인재양성형 교육국제화특구 등 다양한 발전 모델을 만들어 가게 된다. 전북은 내년 1월 출범하는 특별자치도 특례에 케이팝(K-pop)국제학교 설립이 들어 있어 이와 연계를 검토했으면 한다. 그러나 문제는 결국 일자리로 귀착된다. 지역에서 특화된 중고교와 대학을 나왔다 해도 관련 일자리가 없으면 떠날 수 밖에 없어서다. 따라서 교육발전특구에 교육청과 행정은 물론 반드시 기업과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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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3.12.25 17:31

우리는 신흥계곡에 가면 기적을 만난다.

대체 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운전을 잘못하는데, 이렇게 눈이 많이 오면 사람들이 토요걷기에 오지 못할 것 같아서 조심조심 왔어요”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토요일 아침, 수줍게 웃으며 걷는 그녀. 비가 오는 토요일이면 함께 걷는 이가 있다. 그는 건축일을 한다. 그러고 보니 몇 번밖에 함께하지 못했다. 토요일에 비 오는 날은 드물었다. 명절 연휴 중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오는 그녀들. 사람들이 명절이라 못 올까 봐 이럴 때라도 함께 하고 싶다고 한다. 일주일의 시작을 ‘토요걷기’로 두고 이를 삶의 양식으로 삼아 ‘진지화’하는 동무들. 대체 이들은 왜 토요일이면 계곡을 걷는 걸까! 이들은 숱한 장소상실의 고통을 겪으며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는 성장하느라 시골을 먹어 치운 도시 자본주의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자연을 대하는 모습에서 품위나 수치를 모르는 이들을 향해서는 단호하다. 그들의 제도와 관행이라는 테두리에 순응하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속에 지키고 싶은 장소와 기억을 공유하며 연대할 수 있는 동무들을 찾아 신흥계곡을 걷는다. 자연을 사유화하려는 자들을 향해 맞서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근대화가 제거한 흙과 바람을 찾아 걷는다. “상처 입은 자는 걷는다”(김영민)라고 하지 않던가! 얼마 전 때아닌 높은 기온이 며칠 계속되었다. 최악의 기후위기로 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두려움마저 드는 토요걷기 중에 아주 불길한 경험을 했다. 마짐바위 근처의 계곡에서 악취가 공기와 섞여 콧속으로 훅 들어왔다. 깜짝 놀랐다. 마짐바위는 바위가 휘돌아가는 형국이어서 계곡물이 비교적 깊게 고여 있는 곳인데, 이처럼 심한 악취는 처음이었다. 이젠 영영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일까! “풍경은 기원을 은폐한다.”(가라타니 고진)라는 말처럼 이 순간, 이 장소가 풍경이 되어버린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무의 뿌리에서 샘솟아 상긋한 바람에 실려 지줄거리며 흘렀던 저 맑은 물은 우리 생명의 근원이었다. 그 긴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생명과 사람의 목숨 속에 파고들었는지 그 기원은 은폐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조 잔디밭처럼 깔린 해캄 위로 악취를 풍기며 흘러내리는 계곡물을 보며 차마 신흥계곡이라 말할 수 없다. 세찬 바람 탓에 흩어지며 내리는 진눈깨비가 계곡 위로 떨어진다. 신흥계곡의 불확실성을 걷기와 접맥시키려 여러 동무와 느리고 숙지게 버티며 걸어왔다. 남이 나서주길 기다리는 희망은 욕심일 뿐임을 아프게 배웠다. 보석처럼 투명하고 맑았던 계곡에 대한 그리움의 병을 앓고 있는 동무들은 2024년 계획을 세우고 있다. EM 진흙 공을 수백 개 만들어 신흥계곡에 던져보자고. 흐르는 물이라 효과가 미흡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유익한 미생물이 만경강에 이르러서는 제구실을 하지 않겠냐고. 아, 그러고 보니 강을 나무에 비유한 이가 있었다. 만경강의 최상류에 있는 신흥계곡은 나무의 뿌리란다. 이 뿌리로부터 우뚝 서서 바람과 비를 맞으며 울창한 가지를 뻗어내어 마침내 건강한 만경강이라는 나무가 완성되는 것이라고 한다. “진리는 시간의 딸”이라 하지 않던가. 자본의 욕망이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시간의 두께에 기대어 시민사회 운동이라 할만한 움직임을 발효시킨 것! 우리는 이를 기적이라 말한다. 신흥계곡에 가면 우리는 기적을 만난다. “제 상처를 이루어 꿈이 되는 길”(권경인) /이선애 농부∙완주자연지킴이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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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25 16:10

고교 졸업 50주년 단상- 교육 백년대계를 꿈꾸며

최근 전라고 제3회 졸업 50주년 행사가 전주 한옥마을 일원에서 개최되었는데 모교 천민영 교장과 최병선 총동창회장을 비롯해 80여 명의 졸업생이 전국에서 모여 환담, 연주회, 장기자랑 등이 어우러진 화합의 한마당을 펼쳤다. 식전 행사로 고려말 왜구 토벌의 승전을 자축한 이성계 장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오목대와 조선 태조의 어진과 전주사고가 있는 경기전을 관람하며 역사·문화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또한 한옥체험관에 모여 50년 동안 숨겨진 옛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며 우정의 밤을 보냈다. 이날 행사에서는 당시 가정형편과 징집으로 인해 학업을 마치지 못한 이봉준 동문에게 50년 만에 명예졸업장이 수여되는 가슴 뭉클한 장면도 연출됐다. 행사추진위원장(비젼중개법인 대표)는 “반세기만에 만난 친구들이 사연을 나누고 모교 사랑의 시간을 갖게 되어 기쁘다.”고 밝혔다. 천 교장은 미래지향적 교육의 서광이라 할 수 있는 에코시티 내로 이전을 추진하는 담대한 계획을 밝혔고, 최병선 총동창회장은 모교의 에코시티 이전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동문의 깊은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매년 연말이면 학교마다 동창회를 중심으로 졸업 20, 30, 40, 50, 60주년 기념행사를 갖게 된다. 전북특별자치도와 시·군 뿐 아니라 전북교육청과 연계하여 졸업생(출향민)들이 고향을 찾을 때 따뜻하게 탐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이들 출향민들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활동하면서 고향의 따뜻함과 발전상을 직접 보고 느끼며 고향 발전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에너지를 모아 모아 발전을 위하여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을 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 하기위하여 각급학교에 적극적으로 홍보도 해야 한다. 최근 학교폭력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어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때이다. 특히 고등학교의 경우 대학입학에 올인하는 분위기 때문에 청소년 인성 및 미래교육이 소홀히 되는 경향이 있다. 아직 전북 도내에서는 시행학교가 없지만 적극 도입할 필요성이 있어 다음과 같이 제언해 본다. 2015년부터 경기도 한민고, 인천 송도고, 서울 건국대부속고를 비롯하여 전국에서 20여 개 학교가 방과후 교육활동으로 주니어ROTC(J-ROTC) 도입·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원래 미국에서 150여 년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현재 3,000여 고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미국인들에게는 꽤 익숙한 교육과정이다. 오늘날 정치·경제·사회·문화·체육 등 미국 사회를 이끄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대부분 J-ROTC 출신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대학 ROTC처럼 장교로 이어지는 코스는 아니지만 군인, 경찰, 소방공무원 등 직업 진로을 염두에 둔 탐색 활동의 장이 된다. 고교 1,2학년 때 국가와 민족에 대한 자긍심, 리더십, 토론, 응급처치, 제식, 구난·구조, 봉사활동과 각군 사관학교, 경찰대학, 학생군사학교 탐방을 통해 군생활 안내와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우리 사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관계 기관은 관심을 갖을 필요가 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 했다. 50년 100년은 내다보며 현재의 학교 및 사회의 문제점 직시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여 향후 우리 사회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청소년에게 올바른 인성과 국가관을 길러줘야 할 것이다. /강성문(비젼중개법인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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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25 16:10

대출사기

의뢰인은 10억에 토지를 매도하려 한다. 그런데 매수인은 해당 토지 감정가가 15억 정도까지 나올 수 있다며, 자신이 10억을 주고 살 테니 금융기관에 대출 용도로 제출할 15억짜리 계약서를 작성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의뢰인은 2개의 계약서를 작성해 대출을 받아도 되는지 물어왔다. 법률상담을 하며, 형사 사건 중 누구나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고 저지를 수 있고, 실수로 범죄를 저지르지만, 벌금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지만 아주 크게 처벌받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 무접촉 뺑소니 사고, 마지막으로 대출 사기이다.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은 알바라 생각했지만, 범죄집단의 보이스피싱 사건에 연루되는 것이고, 무접촉 뺑소니 사고는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뺑소니범이 되는 것으로 모두 범죄인지조차 잘 알지 못했고, 적발되더라도 크게 벌금 정도에 그치겠지, 하지만 모두 구속까지 될 수 있는 큰 범죄이다. 대출사기는 금융기관이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대출액을 정하기 때문에 매수인 입장에서는 대출을 많이 받을 목적으로 이중계약서(업계약서) 작성을 매도인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토지 거래를 많이 해 봤거나, 금융기관 관계자라면 오히려 업계약서가 크게 문제가 안 된다는 식으로 얘기하기도 한다. 감정가가 15억 정도라 담보가치도 충분하고, 실제 이자와 원금을 성실히 갚았더라도 대출받을 목적으로 이중계약서를 작성해 금융기관을 속인 것이라면 10억 넘는 사기 범죄가 된다. 위 사례에서 매도인은 본인의 이익이 없고, 매수인을 도운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수사기관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사기의 공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고, 법정형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다. 의뢰인들은 대출 사기에 대해 상담하며 벌금은 얼마 나오냐 묻곤 한다. 실제 본인의 죄의식보다 처벌이 심한 경우가 있다. 보이스피싱 인출 알바, 무접촉 뺑소니 사고, 업계약서 대출 사기. 모두 평범한 사람이 별문제 없을 거라고 하며 저지를 수 있지만, 법정형은 아주 높은 범죄이다. 반드시 기억하길 바란다. /최영호 법무법인 모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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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25 16:10

5000원의 경제학, 언어로서의 화폐 저 너머 성스러운 노고와 빚짐

누군가 지갑에 5000원 지폐 몇 장을 넣어두면 꼭 필요할 때가 있다고 귀뜸해 줬다. 어느 날 길을 나서는데 허리가 굽고 남루한 할머니가 리어카에 종이박스를 위태롭게 묶어서 느릿느릿 밀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슬그머니 가서 5000원을 쥐어드리며 행여 부담이 갈세라 말을 붙인다. “사탕 사 잡수세요!” 다음 날 사거리에서 어떤 영감님이 박스를 정리하고 있었다. 요즘 폐지 값이 얼마냐고 말을 걸으면서 빨간 조끼 주머니에 슬그머니 5000원을 넣는다. 파란불 신호등이 켜져서 황급히 길을 건널 때까지 뒤에서 뭔가 아득한 시선이 떨어지지 않고 있음을 느낀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 5000원짜리를 만지작 거려본다. 지폐 앞면은 이율곡선생의 초상이 그려져 있고 뒷면은 꽃그림과 5000원의 숫자가 강조된다. 세계 어떤 지폐든 앞면은 성스러운 특성을 보인다. 만인이 떠받들고 화폐에 복종할 수 있는 믿음과 신뢰, 국가와 권위의 상징이 인물로 그려진다. 뒷면은 세속적인 시장거래에서 5000원어치의 상품과 서비스를 교환할 수 있는 속된 차원의 가격이 표시되어 있다. 화폐의 성스러움은 사람과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묶어주고 커뮤니케이션의 징표로서 작용하는 사회통합의 가치가 담겨있다. 화폐는 언어다. 예를 들어 내 경우 밥 한 끼 먹거나 큰 금액이 아닐 때는 항상 현금을 지불한다. 그럴 때 마다 항상 고맙다는 인사말이 되돌아오고 서로 감사해한다. 화폐의 성스러움은 비인격화된 화폐에 휴머니즘의 숨결을 불어넣는데서 나온다. “화폐는 사람과 분리된 영혼 없는 사물로 묘사되곤 하지만 우리는 사회에 따뜻함을 불어넣기 위해 끊임없이 화폐를 인간화하고자 시도한다.” 화폐의 기원은 무엇일까? 물물교환의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화폐가 시장에서 발명되었다는 교과서 내용은 잘못되었다. 화폐는 국가가 처음으로 발명했다. 옛날 마케도니아의 어느 장군은 정복지에 주둔했는데 금세 금고가 바닥을 드러냈다. 병사들에게 빚진 급료와 종군상인에게 빚진 채무도 많았다. 별 수 없이 주석쪼가리에 금액을 적고 왕실의 인장을 찍은 화폐로 빚을 갚았다. 뒤이어 화폐 통용을 강제하는 장군의 포고령이 나붙었다. 주석쪼가리 화폐로 제때 세금으로 내지 않으면 원주민들을 처벌한다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원주민들은 주석쪼가리를 화폐로 받아들여 병사들에게 각종 물자를 팔고 그것으로 조세도 납부하였다. 이렇게 채무를 해소하는 증서로서 화폐가 발행되었다는 것이 국정화폐설이다. 화폐의 지불은 빚을 갚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시장에서 소비자는 상품을 구입할 때 발생하는 채무를 해소하는 행위자이다. ‘내돈내산’처럼 당당하고 오만하게 화폐로 모든 권력을 행사하는 채권자가 아니다. 내 지인은 음식을 배달시켰을 때 ‘음식 빚을 지고 갚아야 하는 채무자’ 입장에서 항상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가 기다린다. 학생들에게도 말한다. “여러분이 입고 있는 신발이나 옷, 책상도 자신들이 만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강의실의 전기 불빛에도 누군가 발전소에서 희생하거나 죽기도 하는 슬픔이 서려있습니다.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다는 속된 차원에서 벗어나 우리는 화폐 저 너머의 노고와 희생에 빚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나라가 어수선하지만 서로 누군가의 도움과 희생으로 한해를 무탈하게 보낼 수 있었음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이 곳 지역에 빚진 사람으로서 우리들 삶을 인간답고 성스럽게 만들어야 하는 책무가 화폐의 경제학에도 깊이 담겨있음을 깨닫는다. 오늘따라 지갑 속의 5000원이 5만원짜리 보다 더 정겹다. / 원용찬 전북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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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25 16:09

철쭉과 눈꽃⋯ 지리산 바래봉의 위기

연말연시 다시 축제의 계절이다. 설국을 기다려온 겨울축제들이 전국 곳곳에서 줄지어 열리고 있다. 올겨울 전북은 유난히 시리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 희망을 얘기해야 하는 때인데도 분위기가 냉랭하다. 그래도 철따라 열리는 잔치는 거를 수 없다. 지난 주말 전북 곳곳에서 겨울축제가 일제히 개막해 2~3일간의 짧은 일정을 마무리했다. 임실 산타축제와 진안 마이산 겨울동화축제, 무주 꽁꽁놀이축제 등이다. 그런데 정작 그곳에서는 소식이 없다. 2012년 시작돼 겨울철 대표축제로 자리잡은 남원 ‘지리산 바래봉 눈꽃축제’다. 매년 12월 하순부터 이듬해 2월 중순까지 약 50일 동안 바래봉 자락 설원에서 열리는 눈꽃축제에는 전국에서 수만명의 방문객들이 몰려 추억을 쌓았다. 지리산 바래봉 자락에서는 1년 내내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린다. 특히 봄철 철쭉제와 겨울 눈꽃축제는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두 축제 모두 민간단체인 운봉애향회가 주최‧주관하고 남원시가 후원한다. 남원시가 직접 행사를 주최하는 춘향제‧흥부제와 달리 지역민과 행정이 긴밀하게 협업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눈꽃축제가 올해 심상치 않다. 발표를 미루고 있지만 사실상 올겨울엔 축제를 열 수 없게 됐다. 아직껏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어 지연 개최도 쉽지 않다. 이대로면 다음해에도 축제 정상 개최를 장담할 수 없다. 기후 탓이 아니다. 주관단체인 운봉애향회와 매해 2000만 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후원기관 남원시의 갈등이 이유다. 여기에 남원시의회가 축제 회계 내역 비공개 등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실타래가 복잡하게 꼬였다. 행사가 열리는 시유지(지리산허브밸리)에 설치된 컨테이너박스와 대형 비닐하우스 등 가건물 처리 문제가 발단이 됐다. 이들 가건물은 안내소와 먹거리장터‧특산물 판매장 등으로 쓰이고 있다. 축제 기간에 한정해 부지 점용허가를 내주고 있는 만큼 일단 이를 철거해 허가 조건을 이행한 후 다시 점용허가를 신청해야 한다는 게 시의 주장이다. 지난해 겨울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축제를 재개해 큰 성황을 이뤘지만 1년 만에 다시 중단사태를 맞게 됐다. 여기에 전국 제일의 철쭉 군락지로 오랫동안 명성을 이어온 ‘바래봉 철쭉제’도 최근 들어 ‘꽃 빛깔이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과 함께 방문객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관광자원 관리 부실과 방만한 행사 운영이 도마에 올랐다. 천혜의 자연자원으로 관광객을 끌어 모았던 지리산 바래봉 자락 축제들이 급속히 퇴색하고 있다. 물론 바로잡아야 할 게 있다면 행사를 한 해 거르더라도 제대로 짚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행사 주최‧주관 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한 발짝 물러나서는 안 된다. 전국에 널리 알려진 바래봉 철쭉제와 눈꽃축제는 관광 남원의 이미지와 직결된다. 시린 계절을 보내고 바래봉의 눈꽃과 철쭉이 더 활짝 피어나기를 기대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3.12.25 10:50

도민의 자존심 무너뜨린 새만금 3000억 복원

내년도 새만금 SOC 예산 일부가 복원되었으나 도민들의 자존심이 무너졌다. 여야는 2024년 예산안 처리를 위한 최종 합의과정에서 삭감된 새만금 예산 3000억원을 늘리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같은 합의는 당초 원상회복을 약속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나 4개월 동안 궐기대회 등을 벌이며 항거했던 도민들의 기대에 크게 못미치는 결과다. 특히 2024년 착공키로 했던 새만금국제공항은 1년 이상 늦어질 전망이어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새만금 예산은 지난 8월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파행 이후 뒤틀리기 시작했다. 기획재정부가 부처 반영액 6626억원 중 5147억원을 삭감하고, 1479억원만 국회에 넘겼다. 잼버리 책임 소재를 두고 정부여당과 각을 세운 전북도에 대한 보복성 칼질을 한 것이다. 이 같은 78% 예산 학살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에 대해 도내 국회의원과 도의원들이 삭발과 릴레이 단식을 벌였고 전북애향본부 등 사회단체는 국회 앞까지 올라가 대규모 궐기대회를 가졌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지도부는 100% 원상회복을 약속했고 도민들은 이를 철썩같이 믿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여야간 체면치레였다. 서로 주고 받기 끝에 국민의힘은 긴축재정이라는 체면을 살리고 민주당은 연구개발(R&D) 예산과 새만금 예산 일부를 증액하는 선에서 합의했다. 최종적으로 새만금 예산은 4479억원으로, 부처 예산안의 67%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그동안의 새만금 예산을 살펴보면 이 같은 결과가 얼마나 미흡한가를 알 수 있다. 새만금 예산은 2022년 1조4136억원, 2023년 1조874억원으로 최근 몇 년간 1조원대를 넘었다. 부처 예산에 국회에서 +α를 한 결과였다. 이에 비하면 2024년 예산은 문재인 정부 예산의 4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도내 정치권은 그나마 선방했다거나 절반의 성공이라고 위안을 삼고 있다. 도내 정치권이 그동안 애쓰고 고생한 점은 인정한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무능은 내년 총선에서 심판받아야 마땅하다. 도민들의 뜨거운 목소리가 무시 당하고 자존심이 여지없이 무너진 것은 정치력 부재(不在)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번 새만금 예산 파동은 전북의 정치 현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강한 전북으로 살아 남을 수 있는지를 도민 모두가 성찰했으면 한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3.12.21 18:49

두 얼굴의 공직사회

무려 78% 예산이 깎인 새만금에 불똥이 튀면서 사실은 잼버리 파행의 원인 규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조만간 발표되겠지만 그 당시 잼버리 준비 상황을 되돌아 보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다. 언론도 연일 이 점을 지적하며 대회 차질을 우려하는 보도가 쏟아졌다. 하지만 코앞에 다가온 개회식을 앞두고 공동위원장을 비롯한 조직위 핵심들은 성공 개최를 띄우며 악화된 여론 잠재우기에 급급했다. 민심 달래기용 그들의 퍼포먼스는 불과 며칠 만에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 뒤 국민 감정을 더욱 자극한 건 그들의 책임 회피성 발언과 함께 폭탄 돌리기식 떠넘기기, 유체 이탈 화법의 문제 접근 방식이었다. 도의회가 지적한대로 총체적 부실은 기초공사가 잘못된 데서 비롯됐다. 공무원의 고질적 무사안일을 겨낭한 것이다. 전체적 개선 분위기와 달리 직원 개개인이 공직사회 물을 흐리게 하는 미꾸라지 행태는 여전했다. 잼버리 기간 수의계약 과정에서 터무니없는 업체에 일감을 주고 허위 실적증명서가 악용되는가 하면 쪼개기 발주를 통해 수의계약 비율이 전국 평균 2배에 달할 정도로 특정 업체 밀어주기 의혹이 판을 쳤다. 다른 대회나 행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태마스터스 경우 113건 중 78건이 수의계약을 한 데다 심지어는 상한선 2000만원 초과한 계약도 33건에 달해 검은 고리의 유착관계가 얼마나 심각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 같이 편중된 수의계약과는 대조적으로 장애인 생산품 구매 실적은 법으로 강제 규정을 했음에도 목표치를 밑돌아 입방아에 오른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1% 구매를 의무화 했는데도 공무원들이 외면함으로써 법의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이런 기조에 따라 판촉 행사 등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해도 최근 3년새 실적이 고작 0.22~0.59%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처럼 두 얼굴의 공직사회는 그들의 자정 노력에만 맡기기엔 한계를 드러낸 지 오래다. 본인이 겪은 직장 상사 갑질과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선 득달같이 달려드는 반면 민원인이 당한 공무원의 갑질과 괘씸죄 행정은 아예 본체만체 하고 있다. 새만금 예산이 일부 복원되긴 했지만 그래도 빌미를 제공한 잼버리 파행에 대한 책임 문제는 불가피하다. 역대 대회를 통해 사전에 어느 정도 예상된 문제인 데다 준비 기간도 충분했는데 화를 자초한 건 조직위 무사안일에 귀책 사유가 있다. 앞서 지적한대로 기초공사를 튼튼히 하는 것은 공무원의 몫이다. 이게 부실하면 뿌리째 흔들리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주 내년 출범하는 전북 특별자치도와 관련해 도시브랜드가 표절 논란에 휩싸여 하루 만에 변경되는 홍역을 치렀다. 4억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고 내로라하는 전문가 그룹이 참여해 숙의를 거듭한 결과라니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이와 비슷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란 사실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김영곤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3.12.21 18:39

처음 되어본 사람

한해를 돌아보니 늘 그러하듯이 2023년에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섞여 있었다. 여러가지 일들 중 하나는 1972년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일어나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한번도 일어나본 적이 없는 일이 일어난 해로서 2023년은 분명 의미 있는 한 해가 되었다. 나는 2023년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체육시간이 끝난 이후로 나는 자발적인 달리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깜빡이는 신호등의 파란 불에 쫓겨 조금 발걸음을 빠르게 하기만해도 얼굴이 빨개져서 헉헉거리는 대단한 운동치였다. 그런데 나와 비슷한 처지인 것처럼 보이던 이웃 언니가 어느날 살을 예쁘게 빼고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달리기를 해보라고 권했다. 달리기 같은건 하지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자 직접 휴대폰에 앱을 깔아주기까지 했다. 자기 같은 사람도 할 수 있을만큼 정말 쉬우며, 두 달이 흐르면 쉬지 않고 30분을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쉬지 않고 30분을 달릴 수 있는 사람.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멋지게 들린 말은 다시 없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은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겨우 휴대폰 무료 앱과 2개월의 시간이면 그런 유니콘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니? 그것은 더없이 매혹적인 유혹이었고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나의 욕망을 자극했다. 폭염이 어느 정도 지나서 해진 뒤에는 숨쉴만하다 싶던 늦여름 저녁에 나는 처음으로 휴대폰 앱이 시키는 대로 달리기의 첫발을 내디뎌보았다. 나와 같은 서툰 초심자에게 최적화된 달리기 앱은 한가지 중요한 팁을 알려주었는데, 숨이 차지 않도록 천천히 달리라는 거였다. 옆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를 유지하라고 했다. 시키는대로 했더니 거의 달리기라고 할 수 없는 속도가 되었다. 발걸음이 빠른 사람이라면 나를 휙휙 지나쳐갈 수 있을 만큼 나는 느릿느릿 천천히 달렸다. 어쨌거나 걷기가 아니라 분명히 달리기였고, 앱이 시키는대로 중간중간 쉬어가며 달리니 그다지 힘들지 않다는 기분으로 해볼만했다. 처음에는 1분 달리고 2분 걷는 식으로, 달리는 시간보다 걷는 시간이 길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달리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졌지만 어쨌거나 할 수 있었다. 달리는 동안 내 귓가에는 작은 속삭임이 들렸다. 내가 달리다니! 내가 달리다니! 달리는 사람들에 대해 가졌던 비대한 선망과 존경심만큼 나는 달리는 나 자신에 대해 드높은 찬탄과 고양감을 느꼈다. 날씨가 꽤 쌀쌀해진 11월의 어느날, 나는 마침내 24회의 달리기 프로그램을 마치고 꿈속에나 나올 것 같았던 ‘30분간 쉬지않고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30분을 넘게 달려 5킬로미터를 돌파하던 순간에 나는 인생 최대라 할 만큼 거대한 환희를 느꼈다. 그런데, 달리기를 했는데도 내 인생이 생각보다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30분을 돌파하는 순간 이마에 뿔이 튀어나와 유니콘이 되는게 아니었다. 실은, 너무 아무런 차이가 없어서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흔히들 말하는 달리기의 좋은점, 살이 빠지고 활력이 솟고 긍정적이고 강인한 정신력이 생긴다는 식의 변화가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내 귓가에는 다른 속삭임이 들리기 시작했다. 힘들어, 다리아파, 이런다고 살이 빠지지도 않아, 아직도 한참 남았네. 달리기는 청소나 글쓰기처럼 그냥 힘들고 시간이 걸리는 많은 일들 중의 하나가 되어갔다. 그걸 깨달은 것이 아마 2023년 달리기의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영원히 매 순간순간 행복하고 보람찬 일은 없다. 들인 노력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작게 느껴질 지라도 그저 꾸준히 하다보면 그래도 내가 무언가 나아지고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어떤 일들이 있고 나는 그 일들을 묵묵히 해나가야 할 뿐이다. 그리고 확실히, 청소나 달리기나 글쓰기의 공통점이 있다면, 끝낼 때 잠시, 무척 행복하다. 건널목 하나를 건너고도 헐떡거리던 지난 여름의 나와 30분을 달릴 수 있게 된 나 사이에 그리 큰 차이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커다란 차이이기도 하다. 나는 이전까지 아니었던 어떤 사람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분명 의미있는 2023년이었다. /심윤경(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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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2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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