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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에너지 패권을 넘어서, 전북의 기후 공존 전략

미국의 경제·사회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The Third Industrial Revolution>(2011), <The Green New Deal>(2019) 등 저서에서“재생에너지 기반의 분산형 시스템”이 미래 경제질서의 핵심이 될 것이라 주장해 왔다. 그는 유럽연합(EU)과 중국의 탄소중립 전략에 자문하며,‘세 번째 산업혁명’이라는 비전을 정책으로 연결해온 대표적 실천 지성이다. 최근 리프킨은 캐나다 에너지 산업이 여전히 화석연료 의존에 머문다고 지적하며 이를 “대륙주의적 사고(Continentalism)”라 불렀다. 단기적 이익에 매몰되면 세계적 재생에너지 전환 흐름에서 뒤처진다는 경고다. 그는 기후위기 대응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며, 재생에너지와 기후기술이야말로 미래 패권 자산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후와 에너지 문제를 경제·안보 패권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최근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처럼 다룰 수 있다”고 비하하며 고율 관세와 에너지 무기화를 시사한 것은 국제 공조보다 힘의 논리를 앞세운 행보였다. 이에 비해 리프킨은 협력과 공존을 해법으로 제시하며, <The Green New Deal>에서 “화석연료 문명은 2028년까지 붕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U는 그의 전략을 정책에 반영했고, 중국은 장기 탄소중립 로드맵 수립에 그의 조언을 참고했다. 이는 오늘의 한국, 그리고 전북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전북은 새만금이라는 세계적 재생에너지 잠재지와 전국 최대 농업 기반, 풍부한 해양·바람 자원을 갖추고 있으나, 재생에너지 인프라와 기후기술 산업화 속도는 여전히 더디다. 산업구조 전환과 국제 협력 전략도 뚜렷하게 자리 잡았다고 보기 어렵다. 지금 전북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명확하다. 첫째, 국내적 전략으로는 재생에너지·수소·바이오에너지 등 특화 자원을 기반으로 한‘기후기술 산업 클러스터’구축이 필요하다. 새만금 태양광·풍력 프로젝트를 단순 발전사업에 머무르지 않고, 배터리·수소 저장·스마트그리드 등 연계 산업으로 확장해야 한다. 또한, 농업과 기후기술을 접목한 ‘탄소 저감형 농업’ 모델 개발은 기후정책과 식량안보 전략의 핵심 축이 될 수 있다. 둘째, 국제 전략으로는 아시아·아프리카 신흥국과의 재생에너지 협력 거점이 되어야 한다. 새만금의 재생에너지 기술·운영 경험을 해외에 수출하고, 국제 기후포럼이나 P4G 같은 다자협력 플랫폼에 전북 이름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외교 활동을 넘어, 전북형 기후외교·경제외교의 새 모델이 될 수 있다. 셋째, 기후위기를 대응하는 과정에서 ‘지역민 참여’를 정책 중심에 둬야 한다. 리프킨이 강조했듯, 에너지 전환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과 시민의식의 변화에서 완성된다. 지역 주민이 생산자이자 소비자로 참여하는 ‘에너지 자립 마을’과 같은 분산형 모델을 확대하면, 경제적 이익과 환경적 이익을 동시에 거둘 수 있다. 트럼프식 패권 에너지 전략은 단기적으로 힘을 줄 수 있지만, 리프킨식 기후 공존 전략은 장기적 번영을 보장한다. 전북이 지금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하다. 에너지를 힘의 도구로만 보는 과거의 사고를 넘어, 협력과 혁신, 지속가능성을 축으로 한 미래 전략을 실행하는 것이다. 오늘의 결정이 전북의 50년 뒤, 그리고 대한민국의 100년 뒤를 좌우할 것이다. 장대식 넷제로 2050 기후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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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2025.08.27 18:30

[오목대] 무진장과 BYC

전북을 연고로 한 BYC는 쌍방울과 더불어 오랫동안 내의류 제조 부문에서 경쟁사였다. 원래 백양(白羊)이었으나 BYC 브랜드를 출시한게 대박을 내면서 1996년 BYC로 회사 이름도 변경했다. 광복 직후인 1946년 정읍에서 한영대(1923~2022) 창업주가 백부의 양말공장을 인수해서 '한흥메리야스공장'을 세운 게 기원이다. 그런데 영남 지방에서 ‘BYC’라고 하면 속옷을 만드는 기업체가 아니라 특정지역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경북 북동부에 있는 봉화군(Bonghwa), 영양군(Yeongyang), 청송군(Cheongsong)의 앞글자를 따 BYC라고 부르는 것이다. 전북 무진장과 더불어 낙후지역의 대명사라고나 할까. 아닌게 아니라, 봉화, 영양, 청송군은 인구, 경제력, 인프라 등 여러 수치를 감안할때 가장 낙후된 곳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낙후됐다는 것과 주민의 삶의 질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기는 하다. 그런데 낙후의 대명사였던 무진장은 과거 접근성이 크게 떨어졌으나 경북의 BYC와는 크게 다르다. BYC는 철도, 고속도로 접근성이 무주에 비해서도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주는 통영대전고속도로가 남북으로 관통하고, 진안은 새만금포항고속도로가 군을 동서로 관통하며, 장수는 앞의 두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무진장이든 BYC든 대표적인 인구소멸지역의 한계를 뚜렷하게 안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지만, 교통 인프라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점에서 전북의 고속도로나 철도망, 국도‧국지도 건설은 향후 지역발전에 결정적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고속도로나 항공망이 얼마나 갖춰졌느냐가 지역사회의 발전을 좌우하게 됨은 물론이다. ˝성을 쌓는자는 망하고, 도로를 내는자는 흥한다˚는 칭기즈칸의 명언은 괜히 나온게 아니다. 성을 굳건히 쌓아놓고 적을 방비하는 것은 가장 안전한것 같아도 사실은 몰락을 향한 첫걸음이며, 반대로 길을 내 끊임없이 다른 문화나 세력과 교류하면 흥한다는 말은 너무나 명철하다. 길을 만든다는 것은 단지 물리적 연결이나 네트워크의 연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혀 다른 문화와 문명, 가치관과 이념의 차이를 넘어선다는 얘기다. 요즘 고속철도를 이용하면 전국 어디에서든 한두시간내에 수도권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사고의 차이, 생활문화의 차이는 수년, 아니 십수년의 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전북은 지금 그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변화를 꾀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무진장과 BYC의 사례에서 알 수있듯 성을 쌓지않고 도로를 내면 탈 낙후가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물리적인 도로뿐만 아니라 사고의 벽을 과감히 무너뜨려야 한다는 거다. 관행적 사고의 틀에 갇혀 외부 세계를 배타적으로만 보는 분위기가 계속되는 한 지역에 밝은 미래가 없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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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5.08.27 18:30

[기고] ‘잼버리 유령’과 마이클 잭슨, 그리고 벌통

“이봐, 해보긴 했어?” 현대그룹 故 정주영 회장이 던진 이 짧은 한마디는 19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서울이 ‘88년 하계 올림픽 유치’에 도전장을 냈을 때 세계는 물론이고 국내 여론도 싸늘했다. 낙후된 경제와 불안한 시국 속에 가당키나 하겠냐는... 그때 정 회장은 “왜 안됩니까? 우리가 못할 이유가 뭡니까?”라면서 기업의 자원을 총 동원해 IOC 위원들을 만나 설득한 끝에 일본의 나고야를 꺾었다. 이쯤이면 필자가 무슨 소릴 하고 싶어 자판을 두드리는지 대충 짐작하실게다. 그렇다. 2036년 하계 올림픽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전북특별자치도의 ‘꿈’ 얘기다. 내친김에 전북은 북한과 공동 개최 방안도 추진하면서 유치전에 쐐기를 박는다는 전략까지 세워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처럼 거대한 꿈과 담대한 도전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째 좀 싸늘하다. 특히 ‘잼버리 폭망’ 운운하며 이제 막 출발선에 선 전북을 향한 손가락질은 생채기에 소금을 문질러 대는 듯 쓰라리다. 그런데 외부야 그렇다 치더라도 내부까지, 특히 도내 ‘오피니언 리더’들 조차 냉소로 가득 찼다는 건 문제다. “인구 15억의 인도, 오일머니를 앞세운 카타르, 인도네시아 등등 쟁쟁한 나라들이 줄을 섰는데 전북이 무슨 힘으로?”라면서 제초제를 뿌려대며 담대한 도전의 ‘싹’을 죽이고 있다. ‘잼버리의 유령’에 다름 아니다. 올림픽 개최지 선정 기준을 놓고 보더라도 기상 여건과 교통망, 치안 상태 등에서 결코 뒤처짐이 없이 해볼만 한데도 말이다. 더욱 뼈아픈 대목은 이 대열에 지역 언론도 동참하거나 방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북이 서울을 상대로 유치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이미 대다수 언론들은 ‘패배’에 방점을 찍은 것도 모자라 상당수 언론은 서울이 아닌 전북 전주로 결정된 날 ‘전북의 무리수’를 타이틀로 여러 꼭지의 보도 시리즈를 준비해 놓았다는 후문이다. 꼭 그렇게 했어야 했나? 이 대목에서 필자의 뇌리 속엔 흘러간 팝송 한 곡이 흐른다. 바로 마이클 잭슨이 생전에 마지막 빌보드 챠트 1위에 올린 ‘You are not alone’이다. 지금 발딛고 서 있는 이 땅, 전북특별자치도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동안 쌓여 있던 우리 안의 열패감을 걷어내고서 당당하게 우뚝 서는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 지역 언론이 들어야 할 소리는 무엇일까? 아무런 대안이나 해법없이‘냉소 프레임’에 갇힌 ‘you are not 言論’일까, 아니면 “왜 안됩니까? 우리가 못할 이유가 뭡니까?”라며 도민들과 함께 떼창하는 ‘You are not alone(너는 혼자가 아니야)’일까? 데일 카네기는 ‘인간 관계론’ 첫 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꿀을 얻으려면 벌통을 걷어차지 마라”. 분명 ‘2036 하계 올림픽’은 우리 전북 도민 모두에게 경제적, 정신적 ‘꿀’을 선사할텐데, 왜들 그리 벌통을 걷어차는 것일까? 요즘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헌터스’의 ost ‘골든’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오징어 게임’ 기록을 갈아치울 태세라고 한다. 이참에 우리도 한번 따라 불러보면 안될까? “우리는 분명히 황금처럼 빛날 존재야”라고. 옛말에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지, 스스로 꺾는 자를 돕는다고는 나와 있지 않다. 이균형 전북 CB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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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8.27 11:09

[사설] 전북경찰 피의자 잇단 사망 충분한 해명을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이 고통받으면 안 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법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각종 범죄와 관련된 주요 피의자들을 다룰 경우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수사 과정에서 무리한 일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오죽하면 ‘자백은 증거의 여왕’이라는 말이 있었겠는가.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한 검찰 개혁이 요즘 한창 정국의 화두로 등장한 가운데 공교롭게도 경찰청의 수사 과정에서 관련 피의자가 사망하는 일이 너무 자주 발생하고 있다. 특히 전북경찰청에서 수사 중인 피의자가 최근 한달 동안에 무려 3명이나 사망하면서 일부에서는 강압수사 논란까지 발생, 법조계 안팎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법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열정을 가지고 철저한 수사를 하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결과적으로 관련 피의자가 연이어 극단 선택을 했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수사 과정에서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지 않을까 충분히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 3건의 피의자 사망과 관련, 전북경찰청은 시민들이 충분히 납득할만한 설명을 해야 할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한다면 현재 진행중인 검찰권 제약, 경찰권 강화라고 하는 큰 틀을 변경하는데 있어 동의를 구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난 9일 오전 3시쯤 충남 서천군 장항읍 동백대교 인근에서 A(30대)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만난 여성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성폭력처벌법 위반)로 입건된 상태였으며, 경찰은 지난 6일 A씨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했다. 앞서 지난 4일 재개발 조합 비리와 관련해 금품 수수 혐의를 받던 피의자가 압수수색 도중 대전 자택에서 투신해 숨졌다. 그런가하면 지난 7일에는 익산시 간판 정비 사업 비리 의혹으로 압수수색과 함께 경찰 조사를 받은 40대 업체 대표가 완주군 봉동읍 한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대표는 숨지기 전 주변 지인에게 수사 압박감을 호소한 사실이 알려졌다. 의문의 3가지 사건에 대해 철저한 감찰 등을 통해 전북경찰청은 분명하게 시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그게 일정 부분 납득할만해야 전북 경찰은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 전북 경찰은 수사를 받는 피해자가 더 이상 사망하는 일이 없게끔 철저한 시스템을 구축해서 가동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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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5.08.26 18:51

[사설] 지자체장들 벌써 지방선거에 올인하나

내년 6월 3일 제9회 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자체장들이 선거운동에 올인하고 있다. 행정력을 동원해 치적 알리기에 분주하고 민생안정지원금 등 돈풀기도 서슴치 않아 우려가 크다. 평상시 활동이 곧 선거운동인 지자체장들은 재정 여건이 넉넉지 않은 상황 등을 고려해 정도를 걸었으면 한다. 전북지역 정치권에 따르면 9개월 앞으로 다가온 내년 지방선거에 도지사를 비롯해 14개 시군 단체장 대부분이 출마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선 연임 제한에 걸린 정헌율 익산시장과 심민 임실군수를 제외하고 모두 선거준비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정 시장도 체급을 올려 도전할 의사를 비쳤다. 또 현직 도의원과 고위공무원 일부도 지역활동을 강화하는 등 이에 가세하고 있다. 지자체장들은 현직이라는 유리한 고지를 활용해 취임 초 내걸었던 선거공약 이행을 확인하면서 다음 선거에 다시 한번 심판받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김관영 지사는 전북특별자치도 출범, 대광법 개정,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정, 올림픽 국내 후보도시 선정 등을 내세우고 있다. 완주·전주 통합을 위해 주소를 완주로 옮기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범기 시장도 전주종합경기장과 옛 대한방직 부지개발 등 해묵은 난제를 해결했고 올림픽 국내 후보도시 선정, 대광법 개정을 통한 전주권 신설 등 도시 발전의 기틀도 마련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재정 건전성 악화에 대해서는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처럼 시장군수들은 일선 동과 면을 돌며 간담회 등을 이용해 치적 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도내 절반에 이르는 7개 시군에서는 정부에서 지급하는 소비쿠폰과 달리 민생안정지원금을 지급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이미 상반기 중 1인당 김제 50만원, 정읍·남원·완주 30만원, 진안 20만원씩 지급했고 부안과 고창이 추석 전에 각각 30만원과 20만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이들 시군의 재정자립도는 10%대며 진안군은 6.69%로 전국 꼴지다. 자체 수입으로 공무원 월급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지역경제 부양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나 속내는 내년 지방선거용 냄새가 난다. 현직 단체장들의 현금성 돈풀기는 자제되어야 마땅하다. 당장은 달콤할지 몰라도 결국은 주민 부담과 인플레이션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조기에 과열되고 있는 지방선거 열기가 걱정이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5.08.26 18:49

[오목대] '케데헌'의 성공비결, 독창성과 보편성

돌풍이 따로 없다. 아니 파죽지세란 표현이 옳겠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야기다. K-POP 아이돌을 소재로 한 해외제작 애니메이션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줄임말)이 이제 북미 극장가까지 점령했다. 공식 개봉도 아니고 넷플릭스가 ‘싱어롱 이벤트’로 마련한 상영회만으로 이어진 결과라니 더 놀랍다. 케데헌은 지난 6월 20일 공개되자마자 넷플릭스 시청 순위 1위에 올라섰고, 음원 순위에서도 빌보드 200차트에 8위로 처음 진입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주요곡 모두 10위권에 올랐다. 스트리밍 1억 회를 넘어선 것도 오래다. 8월 들어서는 OST <골든(GOLDEN)>이 영국 오피셜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오피셜싱글 차트에 케이팝아티스트가 정상에 오른 것은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새역사(?)를 만든 2012년 이후 13년 만이다. 케데헌은 가상 걸그룹과 K팝을 결합한 독특한 콘셉트에 한국적 세계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애니메이션이다. 무당, 도깨비, 저승사자와 같은 한국의 전통 설화를 소재로 끌어들이면서 서울의 지하철, 잠실 주경기장을 비롯한 실제 공간을 배경으로 삼았다. 여기에 탁월한 기술력과 창의성, 사회적 트렌드까지 더해 글로벌 팬덤을 움직였다. 전통 무속 신앙과 현대의 K팝·아이돌 문화가 융합한 독창적 세계관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케데헌의 독창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케데헌을 가장 빛낸 것은 역시 완성도 높은 음악이다. <골든>을 비롯한 영화 속 모든 곡이 동시에 빌보드에 진입한 결과가 그것을 증명한다. 가상 콘텐츠가 실제 음악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케데헌의 사례는 흥미롭다. 사실 애니메이션이 음악시장을 정복한 사례는 디즈니가 먼저다. 겨울왕국의 ’Let It Go‘나 라이온 킹의 사운드트랙이 선례다. 그러나 디즈니가 음악으로 세계를 정복했다면 케데헌은 음악에만 그치지 않고 가상세계에 현장감과 현실감을 더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폭이 다르다. 한국적 신화에 K팝의 현장감을 더한 케데헌이 이끈 변화는 또 있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K팝 문화의 확장성이 가져온 파급력이다. 케데헌에 등장한 ’한국적인 것‘이 새삼 주목을 끌면서 문화와 관광, 산업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환경은 그 결실이다. 이쯤 되니 케데헌의 진짜(?) 성공 비결이 궁금해진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의 분석이 있다. "영화 속 정교하게 배치된 한국 문화의 다양한 요소와 완성도 있는 음악이 문화적 특이성 속에서도 보편성에 대한 신뢰를 높였다.“ 들여다보니 독창성을 빛내는 힘이 보편성에 있음을 알겠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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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5.08.26 18:48

[새벽메아리] 돌봄과 연대, 우리는 ‘함께’ 살고 있는가?

얼마 전에 어린 두 아이들과 함께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 『와일드 로봇(The Wild Robot)』은 자연과 로봇, 그리고 인간의 관계를 그려내고 있다. 인간의 최첨단 AI기술로 만들어진 로봇 ‘로즈’가 외딴섬 무인도에 불시착하면서 시작되는 대자연 속에서의 모험이다. 인간을 위해 프로그래밍 되어진 로봇이 거친 야생 속에서 동물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어느 날, 로즈는 사고로 홀로 남겨진 아기 거위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돌봄’이라는 개념을 체득한다. 명령도 없고 보상도 없는 행위, 그저 누군가를 위해 기다려주고, 지켜보며, 손을 내미는 일이다. 그런 로즈의 변화는 ‘인간성’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인간보다 더 인간다웠던 로봇, 생존보다 공존을 택한 로봇이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지금 서로를 얼마나 돌보고 있을까? 현대 사회는 ‘함께’보다 ‘혼자’가 자연스러운 시대다. 이웃은 얼굴을 몰라도 불편하지 않다. ‘관계’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지역사회의 공동체는 기억과 경험, 그리고 관계의 집합이다. 우리가 마을을 고향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그곳에 나를 기억해주는 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삶터는 여전히 ‘공동체’인가?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로즈가 동물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서로 다름’을 이해하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동물들은 처음에 로봇을 경계했지만, 로즈가 먼저 동물들에게 다가갔고, 반복되는 기다림 속에 신뢰가 점차 쌓여갔다. 지역사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르지만 함께 산다. 생각, 세대, 문화, 환경이 다른 이들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는 돌봄을 책임이라고 여기는가? 부담이라고 여기는가? 『와일드 로봇』에서 로즈는 새끼 거위를 키우는 과정에서 단순히 보호자가 아니라, 진정한 관계의 주체가 된다.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자기 시간을 포기하고, 불편을 감수하며, 위험을 감당해야 했다. 이는 마치 지역사회에서 서로를 돌보는 일이 그렇듯이, 선택이 아닌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 돌봄은 가정 안의 문제로, 혹은 행정과 복지기관의 책임으로 떠넘겨진다. 고립된 노인, 홀로 남겨진 아이들, 타지에서 이주해 온 주민들이 그렇다. 우리는 정말로 ‘함께 살고자 하는가’? 결국 공동체 회복은 제도나 정책 이전에 질문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나는 정말 이곳에서 함께 살고 싶은가?”라는 물음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언가를 더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누어야 한다. 관심, 시간, 말, 표정 등 아주 작은 것들이 모여 관계가 되고, 관계는 곧 공동체의 뿌리가 된다. 『와일드 로봇』은 결코 거창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서 가장 단단하고 오래가는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돌봄은 효율적이지 않지만, 인간적이고 지속 가능하다. 연대는 느리고 복잡하지만, 무너지지 않는다. 기술과 속도의 시대 속에서 우리는 이 단순한 진실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역사회는 다시 관계를 중심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를 중심으로 하는 제도도 너무 중요하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나는 이 마을에서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이 물음에 진심으로 대답할 수 있다면, 이미 공동체 회복은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양병준 전북희망나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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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8.26 18:47

[데스크창] 도내 항만의 주인은 누구인가

항만은 바다와 육지를 연결, 세계 무대로 나아가는 물류 지원시설이다. 항만이 잘 갖춰져 있고 관리되면 기업 유치가 활발해지고 고용 창출이 이뤄짐으로써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 그러나 작금 군산항은 토사 매몰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새만금항 신항은 제대로 준비가 안된 어설픈 개항을 앞두고 있다. 군산항의 경우 미봉책의 땜질식 준설 반복으로 수심이 악화되고 있다. 선저가 뻘에 닿고 선박이 미끌어지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대형선의 기항 기피나 취소가 빈번해지고 있다. 선박의 대형화 추세로 갈수록 깊은 수심이 요구되고 있지만 군산항은 거꾸로 가고 있다. 군산항이 인근에 있는데도 도내 수출화물의 90%, 수입화물의 45%가 다른 항만에서 취급되고 있고 5% 미만의 도내 수출입업체만이 군산항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수심악화로 군산항 물동량은 전국 1.4%, 입항 선박수는 2.2%에 그치고 있는 등 항만경쟁력이 갈수록 추락하고 있는 가운데 새만금 국가산단 입주 2차전지 업체들의 폐수조차 항내 방류 움직임이 추진되고 있다. 이차전지의 폐수방류로 중금속이 누적되면 준설토의 오염으로 준설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게 된다. 그야말로 폐항까지 거론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새만금항 신항은 어떠한가. 강한 남서풍에 대비한 방파호안 건설은 커녕 서측 방파제 250m 연장공사도 착공조자 되지 않았다. 항만에서 가장 중요한 정온수역 확보가 불안하다. 총 연장 2.3km 항만진입도로마저 2027년말이나 준공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개장과 함께 운영될 5만톤급 2개 선석의 배후부지는 조성조차 돼 있지 않다. 내년말 개항후 2027년 상반기부터 운영될 계획이지만 "제대로 준비 안된 상태에서 무슨 개항이냐", "새만금 항의 이미지를 국제적으로 망치게 할 계획이냐"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군산항과 새만금항 신항이 가진 문제의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군산항은 수시로 토사가 매립되는 특성상 급한 곳의 불을 끄는 땜질식 준설이 아닌 수시로 준설이 가능한 준설공사 설립 등 상시준설체계의 구축과 함께 2차 전지 폐수 방류구의 노선 변경만이 해결책이다. 새만금항 신항은 남서풍에 대비한 방파호안 건설과 배후부지의 정부 재정 조성 등이 수정 기본계획에 우선 반영돼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해답의 실천적 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도내 자치단체는 '항만 업무가 국가 사무'라는 이유와 함께 중앙부처에 예산 등 아쉬운 요구를 해야 하는 입장을 고려, 해답 실천에 적극적이지 않다. 군산해수청은 지방청으로서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항만 문제 해결에 키맨(keyman)으로서 앞장서야 할 도내 국회의원들과 지방의원들마저 상시준설체계의 요구 등 항만인들의 절규에 뒷짐을 지고 있다. 군산항과 새만금항 신항의 주인은 바로 전북이다. 단지 정부에 항만의 개발과 관리및 운영을 위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주인이 실종돼 있다. 도내 자치단체와 정치권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철저한 주인 의식으로 항만의 활성화를 위해 문제 해결의 주인 역할을 해야 할 것 아닌가.

  • 오피니언
  • 안봉호
  • 2025.08.26 18:47

[조상진의 열린 생각] 김윤덕·정동영·안규백·조현 장관을 응원함

전북이 조금씩 일어서고 있다. 완주·전주 통합 등 불협화음도 없지 않으나, 이재명 정부 들어 약간의 활력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시절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파행으로 ‘의붓자식’ 취급을 받다가 숨을 쉴 공간이 생긴 덕분이 아닐까 싶다. 정권이 바뀌면서 인사와 예산 등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우선 이제 막 출범했으니 인사만 보자. 이재명 정부 들어 첫 장관급 내각 인선에서 19개 부처 중 호남 출신이 7명이다. 대통령실 수석비서관급 이상 또한 11명 중 3명이다. 초기 고위직 30명 중 33.3%인 10명이 호남 출신인 셈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 28%, 노무현 정부 17%를 압도한다. 반면 보수 성향인 박근혜 정부에서는 21%, 이명박 정부 8%, 윤석열 정부 7.7%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영남 출신은 문재인·노무현 정부 모두 37.9%로 역대 최고를 보였다. 항상 30%대를 넘었다가 이번에 20%대로 내려 앉았다. 이번 정부 초기 인사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전북 출신의 약진이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부안)을 비롯해 정동영 통일부 장관(순창), 안규백 국방부 장관(고창), 조현 외교부 장관(김제) 등 4명이 입각했다. 그리고 대통령실 경제성장 수석에 하준경 한양대 교수(전주)가 임명되었다. 여기에 국회에서도 3선의 한병도 의원(익산 을)이 전반기 예결위원장을 맡았다. 이들의 임명은 항상 변방에 머물며 행정부와 집권여당의 심기를 살펴야 했던 과거 전북정치권의 위상과 크게 달라졌다. 이제 책임있는 자리에서 국정을 주도하는 한 축을 맡게 된 것이다. 이들은 그동안 설움받던 어려운 시절을 반추하며 진짜 실력을 보여 주었으면 한다. 특히 김윤덕 장관과 정동영 장관에 대한 기대는 크다. 김 장관은 국제 망신을 당한 잼버리 공동조직위원장으로서 받았던 비판을 이번 기회에 보기좋게 만회했으면 한다. 모든 국민의 관심사인 부동산 문제의 주무 장관으로서 집값 안정 등에 좋은 성과를 내야 할 것이다. 또 20년 만에 컴백한 정 장관은 5선 중진이자 여당 대선후보를 지낸 관록을 보여줬으면 한다. 이처럼 국정에 전념하면서 지역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한다. 전북은 그동안 지역불균형 성장론과 수도권 일극체제, 정권 차원의 홀대, 3중 차별로 인해 인구가 급격히 줄고 산업이 피폐해지는 천형(天刑)의 땅이 되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정동영 의원을 중심으로 피지컬 AI 예산을 확보하는 등 지역발전의 호기가 마련되었다. 다만 경계할 게 있다. 국회 법사위원장의 중책을 맡았던 4선의 이춘석 의원(익산 갑)처럼 가벼운 처신을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지난해 7월, 이 의원의 국회 활동에 크게 공감해 전북 정치권에 희망이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국토교통위 전체회의에서 박상우 건설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전북 예산 홀대를 꼼꼼히 따지고 호통치는 모습을 본 후였다.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갈 정도로 후련했다. 그러나 지난 5일 국회 본회의 중, 차명주식 거래는 참으로 잘못했다. 이러한 사진이 인터넷 언론에 보도된 후 지역에서는 과거 여성 편력까지 퍼졌다.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갓 출범한 이재명 정부에 타격을 주고 그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전북 도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공직자의 패가망신은 한 순간이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으면서 출중한 성과를 거뒀으면 한다. 전북출신 4명의 장관을 힘차게 응원한다.

  • 오피니언
  • 조상진
  • 2025.08.26 18:46

[사설] 공공기관 이전부지 계속 방치할건가

전북혁신도시에 있는 농촌진흥청은 제1차 공공기관 이전 당시 수원에 있었다. 그 빈터 일부에 2022년말 농업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64000㎡에 달하는 부지에는 전시동, 식물원, 교육동, 체험동을 갖추고 있다. 야외에는 정원은 물론, 다랑이 논·밭, 과수원 등이 있다. 농업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은 2023년 51만1187명, 2024년 56만5917명에 달한다. 올들어서도 지난 5월까지 28만4898명이 방문, 누적 관람객이 140만명을 넘었다. 공공기관이 떠나고 난 뒤 유휴지를 잘만 활용하면 얼마든지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실증적 사례다. 그런데 전주에서 진행중인 공공기관 이전부지 활용 시책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말만 떠들썩할뿐 아무런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차일피일 시간만 낭비하면서 희망고문을 하고 있다. 전주지방법원과 전주지방검찰청 이전, 기무부대 해체로 생겨난 국유지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무관심 속에 장기간 방치되고 있다. 이미 오래전 부지를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청사진은 제시됐는데 구체적 실행방안이 없다. 결과적으로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어도 부족할 공공기관 이전부지가 도심 속 흉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하나의 사례이긴 하지만 전주의 실태를 잘 보야주는 적나라한 모습이다. 중앙정부의 미적지근한 태도는 비판 받아 마땅하지만 확실하게 움켜쥐고 성과를 내야만 할 전주시의 기획력 부재, 실행력 부족 또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지난 2019년말 만성동으로 청사를 이전한 뒤 덕진동 옛 전주지법·지검 부지는 지금까지 방치상태다. 기획재정부는 2021년 말 국유재산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옛 전주지법·지검 부지 위탁개발 사업계획'을 승인했으나 지금까지 진행된게 하나도 없다. 위탁개발을 맡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2만 8000㎡ 부지에 총사업비 423억 원을 투자해 토지를 조성한 뒤 법 체험시설인 로파크와 공공주택(100호), 창업지원시설 등을 조성 예정이었으나 사업비 증액 문제를 둘러싸고 기재부, 법무부, 전주시는 핑퐁만 치고있다. 에코시티에 있는기무부대 부지(8324평) 역시 7년째 방치상태다. 전주시는 무상제공을 요청했으나 국방부는 매각 방침을 고수중인데 그 사이 땅값만 계속 올라 감정가 기준 400억 원에 달하고 있다. 이전 예정인 전주교도소 부지도 전북도와 전주시는 국립중앙도서관 분관과 국립모두예술콤플렉스를 건립 예정이나 구체적으로 진행되는게 없어 답답할 뿐이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5.08.25 18:43

[사설] 송전선로만 떠안고 투자기회 없는 전북

전북이 재생에너지 송전을 위한 변전소와 송전선로 건설을 집중적으로 떠안고 있는 반면, 그 과실은 전혀 맛도 보지 못하고 있다. 속된말로 “꿀도 못 먹고 벌만 잔뜩 쏘이는 형국”이다. 오는 2036년까지 34만5000V급 변전소 4개와 송전선로 10여 개가 전북에 추가로 건설 예정이다.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는 핵심 역할을 전북이 맡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하나의 사례를 살펴보자. 경기도 용인에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조성이 본격화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무려 502조 원을 투자하는 반도체 국가첨단 전략산업특화단지가 건설중인데 그곳에서 써야 할 막대한 전력을 지역에서 끌어다 쓰기 위해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을 추진중이다.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전북, 전남,충남 주민들이 “우리는 에너지 식민지냐”며 강하게 반발하면서 송전탑 건설 백지화를 요구하는게 무리가 아니다. 반도체클러스트가 있는 '용인'을 위해 지방을 희생시켜 가면서 송전탑 건설을 강요할 게 아니라 반도체산업 자체를 전기가 풍부한 지방으로 옮기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것이다. 견강부회의 논리같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꼭 안될 것도 없다. 전력 공급의 한계를 드러낸 수도권을 살리기 위해 지방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지 말고 앞으로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관련 공장을 재생에너지 생산지역으로 이전시키라는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최근 전력거래소가 진행한 ‘2025년 1차 ESS 중앙계약시장’ 공모 결과 전국 5개 시·도 중 제주를 제외한 7곳의 사업지가 모두 전남업체로 돌아갔다. 총 사업비는 1조5000억 원 이나 되는데 전북이 떨어진 것은 결정적으로 평가항목 중 ‘출력제어 수준’ 점수다. 전남은 만점(12점)을 받은 반면, 전북은 2.2점에 그쳤으니 결과가 어떨것인지는 불문가지다. 전력거래소는 '출력제어가 많은 지역일수록 ESS 설치 필요성이 높다'는 이유로 전남에 많은 점수를 부여했으나 전북은 재생에너지 송전을 위한 변전소와 송전선로 건설을 집중적으로 떠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억울할 수밖에 없다. 전북은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는 핵심 역할을 맡으면서도, ESS 같은 고부가가치 사업에서는 제외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일은 그렇거니와 지금이라도 제2차 ESS 사업 입찰 전에 평가 기준의 불합리성을 개선키 위해 나서라. 그게 바로 보편타당성 있는 공정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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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5.08.25 18:43

[경제칼럼] ‘서울대 10개 만들기’ 모방이 아닌 개척의 길로

지방소멸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대한민국은 수도권과 지방 간 불균형이라는 구조적 과제 앞에 서 있다. 교육·인구·산업의 수도권 집중은 지역 활력을 저해하고, 국가 경쟁력까지 잠식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을 제시했다. 서울대의 교육·연구 역량을 전국으로 분산시켜, 지역에서도 최고 수준의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 정책이 지역 대학 생태계에 미칠 파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서울대라는 압도적 상징을 지역거점국립대학에 그대로 이식한다면, 지역 대학이 수십 년간 축적해온 학문적 정체성과 자율적 운영 체제가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거점국립대학들은 지역사회와 호흡하며 지역에 특화된 연구와 인재 양성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대 분교 형태나 유사 교육기관으로 전락한다면 지역 대학들은 학문의 신뢰도와 우수 인재 유출 등에서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나아가 정부의 재정과 정책 지원이 서울대 중심으로 재편되면, 지역 고등교육의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은 구조적 불균형으로 기울게 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의 개혁 의지는 평가할 지점이 있다. 그러나 고등교육의 균형은 간판이 아니라 내실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지역 대학은 분산의 수혜자가 아니라, 자율성과 특성화 전략을 바탕으로 지역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주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전북대학교는 이미 교육, 연구, 지역사회 기여 등에서 입증된 역량을 갖춘 핵심 거점국립대학이다. 서울대식 모델 유치에 의존하기보다, 전북대 고유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바탕으로 ‘전북형 특화국립대학’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 안정적인 교육재정 확보와 교수 1인당 학생 수 개선은 물론, AI·농생명·바이오·신소재·기후·에너지·전통문화 등 특화 분야에 대한 전략적 투자가 요구된다. 아울러 기초과학과 인문사회 분야의 내실화를 통해 학문적 토대를 강화하고, 공유형 및 거주형 캠퍼스(RC), 융합전공 확대, AI·STEM 기반 교양교육 강화를 통해 지역특성에 특화된 대학으로 도약해야 한다. 수도권 중심의 관성과 획일적 사고가 반영된다면, 이 정책은 지역 고등교육 체제의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대학을 일률적 기준으로 서열화하거나 줄 세우는 접근은 학문 다양성과 자율성을 저해하는 구태의연한 발상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모든 분야를 잘하는 대학이 아니라, 지역 특성과 수요에 기반해 고유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대학이다. 기업유치와 산학협력으로 지역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청년이 지역에 뿌리내리는 선순환을 완성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전북대는 국내외 인재가 스스로 찾아오는 진정한 ‘글로컬 대학’의 중심지가 된다. 이것이야말로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지향해야 할 본질이다. 전북특별자치도는 이 정책을 단순한 교육 개편이 아니라, 지역 혁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고도의 자치권을 바탕으로 정책적·재정적 인프라를 확보하고, 고교–대학–산업 간 연계를 통해 전북형 취업 생태계를 설계해 나가야 한다. 서울을 모방하기보다, 전북의 길을 개척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전북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지속가능한 교육 모델로, 수도권 중심 체제에서 벗어난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백승우 전북대학교 농경제유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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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8.25 18:42

[문화마주보기] 무대예술전문인, 어둠 속에서 빛을 설계하는 사람들

객석 위에서 거대한 샹들리에가 순식간에 미끄러지듯 내려온다. 황금빛 조명 사이로 금속 체인이 팽팽히 당겨지며 나오는 미세한 진동과 효과음, 그리고 관객석 앞에 멈춰 선 샹들리에를 보는 관객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젖히며 유령의 존재를 암시하는 복선[伏線]을 경험하게 된다 뮤지컬‘오페라의 유령’의 첫 시작이다. 이런 극적 긴장감을 만들고자 어둠속에서 조명 각도를 0.1도까지 조절하고, 음향 레벨을 실시간으로 미세 조정하며, 수 톤짜리 장치의 움직임을 밀리미터 단위로 제어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무대예술전문인이다. 공연법 제16조 2항은 객석 500석 이상 공연장은 조명, 음향, 무대기계 파트에 전문인을 의무배치 하도록 명시되어있다. 미 배치로 인한 과태료 부과기준이 150만원에서 300만원까지 횟수에 따라 부과되지만, 현실은 다르다. 대부분의 공연장이 지자체에서 직접 운영하거나 위탁 운영 방식이다 보니 사실상‘셀프 단속’이 이뤄지는 셈이다. 실제 과태료가 부과된 사례를 찾기가 쉽지않다. 2018년 9월 6일 지방의 한 문예회관에서는 리허설 도중 무대 리프트 개구부에 안전난간이 없어 조연출이 7미터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법원은 무대감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인정하면서도 ‘공연장을 소유한 지자체 역시 근로자 안전 확보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수도권의 한 공연장에서는 철제 무대장치에 부딪히는 사고로 출연자가 중상을 입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후 실시 된 감사에서 무대 상부 기계장치 결함과 안전 점검 소홀이 동시에 발견되면서, 대다수 출연자들이 불안해 하면서 작품을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더 심각한 건 이런 일들이 우리 전북지역에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일부 지자체 공연장의 경우 무대예술전문인 배치 의무를 알면서도 ‘인건비 부담과, 큰 사고는 없었으니 괜찮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채용을 미루고 있다. 무대는 겉보기와 달리 극도로 위험한 작업 현장이다. 몇 톤짜리 장치들이 수시로 이동하면서 추락의 위험이 있고, 고압 전기 설비와 높은 곳에서의 작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대부분 어두운 환경속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크고 작은 사고들이 발생되고 있다. 자격을 갖춘 전문인력의 부재는 단순한 인력난과 예산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다. 그동안 여러 연구에서도 이런 문제점들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박영정(2009), 안경석(2012)의 논문을 보면, 전문인력 부족 문제와 제도 실효성 부재를 지적하며 배치 의무 강화 방안을 제시하며, 기존의 공연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안전관리비와 무대예술전문인의 배치 기준인 500석에서 300석이하로 축소시키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광역자치단체는 기초지자체 공연장에 대한 상급기관 교차점검을 의무화하여 과태료 수준을 현실적으로 높여야 한다. 반복 위반 시에는 운영 중단 같은 강력한 제재도 검토해볼만한 사항이다. 동시에 무대예술전문인이 현장에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별도로 안전관리자 의무 배치와 함께 전폭적인 예산 지원도 뒷받침돼야 한다. 관객이 무대 위 샹들리에에 감탄하는 순간, 그 아래서는 누군가 목숨을 걸고 일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빛을 설계하는 이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빛은 결국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허상에 불과할 것이다. 제도의 빈틈을 메우고 전문인력을 제대로 배치하는 것은 단순한 법 준수가 아니라, 예술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이고, 문화주권(Culture Sovereignty)시대를 열어가는 초석이 될 것이다. 김수일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공연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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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8.25 18:42

[기고] 백정기 의사의 생가터에 무궁화가 만발하게 하자!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국민주권의 빛이 꺼지지 않는 나라를 만들자”고 역설했다. 그런데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광복절 축사에서 우리 민족의 피와 희생으로 일군 독립 역사를 부정하고 ‘광복은 연합군 선물’이란 발언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얼토당토 않은 망언을 일삼고 있는가? 여당에서는 “역사 왜곡이자 헌법 정신 부정”이라며 김 관장에 대한 즉각적인 파면을 촉구하고 나섰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부안읍 신운리 149에 위치한 독립운동가 구파 백정기 의사의 생가터를 찾았다. 잡초만 무성한 터에 빛바랜 조그마한 안내 간판만 덩그러니 무안한 낯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백정기 의사는 윤봉길·이봉창 의사와 함께 ‘3의사’로 불리며, 항일 투쟁의 상징으로 기록돼 있다. 1933년 상해 ‘육삼정 의거’는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 의열단 김익상의 황포탄 의거와 함께 ‘중국 상해 3대 의거’로 꼽힌다. 당시 주중 일본 대사를 저격하려다 현장에서 체포된 의사는 1934년 39세 나이에 나가사키 우가미 구치소에 무기수로 복역 중 순국하여 형무소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가 1946년 국내에 운구되어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옥중에서 순국하기 전 의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조국의 자주 독립이 오거든 나의 유골을 동지들의 손으로 가져다가 해방된 조국 땅 어디라도 좋으니 묻어주고, 무궁화 꽃 한 송이를 무덤 위에 놓아주기 바라오.” 역사는 기록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다. 후손들이 기억하고, 그 뜻을 기리는 작은 노력에서 살아 숨 쉰다. 잡초만 무성한 생가 터 앞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한 그의 뜨거운 희생과 정신을 영원히 기억하고 계승하는데 우리 후손들이 지금 이 순간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속죄하는 심정으로 자문해 본다. 구파 백정기 의사 기념관은 정읍시에 위치해 있다. 1908년 정읍시 영원면으로 이사하여 어린 시절을 보낸 연유에서 일 것이다. 정읍에서는 백정기 의사의 면면을 살필 수 있는 시설은 물론, 숭국비와 추모비를 세워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백 의사가 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부안에서는 생가터에 무성한 잡초와 세월의 흔적을 뒤집어쓴 자그마한 안내판이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구파 백정기 의사를 포함한 우리 선열들의 뜨겁고 고귀한 희생정신과 목숨으로 일궈낸 대한의 독립을 폄훼하고 찬연한 독립운동의 역사를 부정하는 망언을 일삼는 무리들과 잡초만 무성한 채 방치된 백 의사의 생가터를 관리하고 있는 우리는 후손들에게 무슨 낯으로 역사의식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의사의 낯선 땅 나가사키 우가미 구치소에서의 마지막 모습과 유언인 ‘무덤 위 무궁화 한 송이’를 생각하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 문득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있다. 생가터에 우리의 꽃 무궁화가 만발한 무궁화 동산을 조성하여 백 의사의 생가가 우리 부안에 자리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후손들이 굳이 3.1절이나 광복절에 참배가 아니더라도 시나브로 무궁화가 활짝 핀 동산을 찾아서 그 분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정신을 기리는 것은 어떨까? 우리 부안은 백정기 의사 외에도 김철수 선생, 김낙선 선생, 신일용 선생 등 50여 명의 독립유공자들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들의 항일 희생정신은 조용히 잊혀지고 있다. 올해 3.1절에도 독립유공자를 추모하는 관계자들의 발길은 이어졌지만, 부안군이 나서서 3.1절을 기념하는 행사는 마련되지 않았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김양원 민주당 부안·김제·군산 乙지역위원회 민생특별위원장∙부안발전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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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8.25 18:42

​[오목대] 민생지원금, 누구를 위한 ‘공돈’인가

‘또 준다고?’ 어디 ‘공돈’ 싫어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데 꺼림칙하다. 정말 이래도 괜찮을까? 이렇게 막 퍼줄 돈은 있을까? 그리고 나중에는? 추석을 앞두고 지자체들이 다시 ‘돈 풀기’ 경쟁에 나섰다. 국가에서 전 국민에게 나눠준 1차 민생지원금(소비쿠폰)의 사용기한이 한참이나 남았고, 예고된 2차 지급일도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지자체들이 정부 지원금과는 별개로 돈 보따리를 풀겠다고 호들갑이다. 연초 설 명절에도 상당수의 지자체가 민생지원금을 풀었으니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 전북에서는 부안군과 고창군이 추석 전에 주민 1인당 20~30만원씩의 민생안정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제와 남원·정읍·완주·진안은 올초 설 명절을 전후해서 이미 20~50만원 씩의 민생지원금을 나눠줬다. 그렇다면 지금껏 계속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난 호소는 괜한 엄살이었을까? 정부가 아주 떠들썩하게 돈을 풀었는데도 부족하다며, 굳이 또 지방의 곳간까지 열겠다고 하니 말이다. 그렇지 않다. 부안·고창군의 재정자립도는 10%에도 못 미쳐 전국 최하위권이다. 전북지역 다른 시·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자체의 현금성 복지비용 지출 비율이 높으면 행정안전부 차원의 페널티까지 있다. 그런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왜일까? 주민 반응을 보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현금성 지원은 다른 정책과 달리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누가 뭘 했는지’ 강한 메시지도 줄 수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매력적일 것이다. 게다가 내년엔 지방선거가 있지 않은가. 제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정치적 타이밍에 맞춰 선심을 쓸 수 있는 기회다. 지금 연임이 최대 관심사인 지자체장들이 심각한 재정난 속에서도 포퓰리즘에 몰두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공교롭게도 전북에서 ‘지방자치단체장 3선 연임 제한’에 걸리는 익산과 임실은 지난 설에도, 이번 추석에도 민생지원금 경쟁에 전혀 관심이 없다. 단순한 우연일까? 걱정이다. 장기적인 비전 없이 계속되는 정부와 지자체의 퍼주기 정책에 국민이 무의식적으로 길들여지면서 조금만 힘들어도 공돈을 기대하고 요구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실제 공돈을 퍼주는 이웃 자치단체를 부러워하면서 ‘우리는 왜 안 주냐, 이사 가겠다’며 주민들이 지자체장을 압박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나랏빚이 무섭게 불어나더니 올해 1200조원을 넘어섰다. 국가 재정이 악화일로다. 계속되는 돈 풀기가 과연 침체된 국가경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근본 해법인지, 아니면 유권자들의 민심을 겨냥한 얄팍한 정치행위인지 돌아봐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지자체장들이 그렇고, 중앙정부도 다를 게 없다. 과연 누구를 위한 공돈일까? 어차피 지속가능성이 없는 단발성 정책이라는 것은 모두가 안다. 주는 돈은 받더라도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계속되는 공돈 자극에 중독돼 아무 생각 없이 침을 줄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가 되기 전에 말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5.08.25 17:40

[사설] 공공기관 이탈 막을 제도적 장치 강구하라

이재명 대통령은 “지역균형발전이 이번 정부의 핵심”이라고 밝히곤 했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피폐 현상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 첫 신호탄이 해양수산부 부산이전과 대통령 직속의 지방시대위원장에 김경수 전 경남지사 임명이다. 이런 마당에 전북혁신도시에 소재한 농촌진흥청이 조직개편 과정서 일부 조직을 과거 소재지였던 수원 이전계획을 추진해 아연 실색케 하고 있다. 핵심은 농진청의 소속기관인 농업과학원 인력 43명을 다른 소속기관인 수원의 식량과학원 중부작물부로 이전, 통합 운영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30여명이 수원으로 이동, 수도권 조직이 대거 보강되고 식량과학원 본원은 전북혁신도시에 있지만 핵심 비중은 사실상 수도권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과거에도 공공기관들의 탈 전북 시도는 여러번 있었다. 국민연금공단이 기금운용본부 서울 이전을 집요하게 시도했고, 한국농수산대학교는 2019년 영남캠퍼스를 만들어 전북혁신도시에 있는 본교의 기능을 분산하려 했다. 한국국토정보공사(LX)는 2019년 8월 ‘국토 공간정보 데이터센터’를 ‘경북도청 신도시’에 설립하기로 하고 ‘지적(국토정비) 기반 스마트공간정보 산업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드론교육센터를 전북이 아닌 타 시도에 설립하려 한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같은 탈 전북 또는 기능분산 시도는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혁신도시 조성 취지에 맞지 않고 지역주민과 정치권의 반발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지금 지방은 인구감소와 청년인구 이탈,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조성한 혁신도시와 공공기관 이전이 그나마 지방을 떠받치고 있는 국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지방을 떠나는 획책은 없어져야 마땅하다. 효율성을 명분으로 수도권 이전을 시도하지만 동의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농진청은 반발이 커지자 입장문을 내고 ‘수원 이전 계획’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검토’만으론 안된다. ‘이전계획 철회’ 입장을 내놔야 맞다. 이 기회에 ‘지역균형발전이 이번 정부의 핵심’이라고 밝힌 이재명 정부는 아예 공공기관들의 ‘수도권 이전’ 시도를 근본적으로 막을 제도적 장치를 강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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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5.08.24 17:16

[사설] 노인시설 위주 ‘무더위쉼터’, 접근성 확대를

절기상 선선한 가을을 맞이한다는 ‘처서(處暑)’가 지났는데도 찜통더위는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이런 무더위가 9월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도 나왔다. 지난해에는 추석 연휴에 폭염특보가 내려질 정도로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으니 올해도 극한의 무더위가 쉽게 물러날 것 같지는 않다. 견디기 힘든 무더위를 그나마 식힐 수 있는 곳이 바로 공공 ‘무더위쉼터’다. 폭염에 취약한 어르신들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주로 경로당이나 사회복지시설, 동 주민센터 등을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무더위쉼터는 폭염으로 고통받는 모든 시민들에게 시원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시설이다. 무엇보다 접근성이 좋아야 하고, 이용에 불편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시민들의 폭염 피난처 역할을 해야 할 무더위쉼터가 접근성과 실효성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무더위쉼터가 대부분 경로당과 노인복지관 등 노인시설 위주로 지정되면서 고령자 이외에는 사실상 이용이 제한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전북지역에서 운영되는 무더위쉼터 6000여곳 중 4000여곳이 경로당이나 노인복지관인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경로당은 대부분 회원제로 운영돼 외부인들은 접근이 어렵다. 물론 노인들이 상대적으로 무더위에 더 취약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상기후로 여름철이면 40도에 육박하는 살인적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 고령자뿐만 아니라 야외노동자와 실외활동이 많은 청년들도 온열질환에 노출돼 있다. 실제 전북특별자치도에 따르면 최근 3년(2023년~2025년 8월)간 도내에서 발생한 온열질환자 429명 중 227명은 60대 이하였다. 폭염은 이제 폭우·태풍처럼 모두에게 위험한 여름철 자연재난이다. 당연히 무더위쉼터도 모든 연령층에게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극한 폭염’의 시대다. 노인뿐 아니라 야외 노동자와 아동·청소년 등 시민 모두가 마음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유형의 시설을 무더위쉼터로 추가 지정해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각 지자체에서는 각계각층 시민의 접근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무더위쉼터를 추가로 확보하고, 시설 운영의 효율성과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더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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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5.08.24 17:16

[전북칼럼] 남성은 행방불명

지난겨울, 광화문 앞 시민들은 대통령 탄핵을 외치며 차가운 아스팔트를 달궜다. 박근혜 정부 때와 달리 촛불이 아닌 형광봉을 들고 있었다. 우리 대중가요가 세계를 제패할 때 가수들 뒤에서 열렬히 응원하던 소녀 팬들의 그 응원봉. 자칫 과격과 폭력으로 얼룩질 수 있는 민주주의 투쟁을 아름다움과 응원의 힘으로 승화시킨 이 어처구니없는 순정과 창발성이라니. 빛의 혁명은 바로 그 여성들 몫이었다. 계엄 사태로 국가가 위기에 처하자 전국농민회총연맹 산하 전봉준투쟁단 단원들이 다시 트랙터를 몰고 서울로 진군했다. 남태령에 도착한 농민들이 경찰병력에 막혔다는 소식에 서울 시민들은 이들을 지원하려고 속속 지하철역에 집결했다. 서울 사는 친구가 지하철역 플랫폼 사진을 단톡방에 올렸을 때 각양각색 차림의 여성 청년들이 눈에 띄었다. 남태령에 몰려간 이들은 밤새 농민과 연대했고, 마침내 전봉준투쟁단은 무사히 서울에 입성했다. 대중가수의 공연장은 여성 팬들의 열기로 장내가 뜨겁다. 조용필 콘서트에는 ‘기도하는-’으로 시작하는 <비련>의 첫 소절 뒤에서 괴성을 지르던 그 옛날 소녀 팬들(지금은 중장년이 된)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트로트 가수의 공연장에는 할머니 부대들이 형광봉을 들고 청년들처럼 열기를 뿜는다. 외국 유명 가수가 아무리 최신곡을 들고 와도 객석의 소녀 팬들과 여성 청년들은 들썩들썩 떼창신공을 과시한다. 야구장을 가도 축구장을 가도 여성들이 대세다. 중학교 교사 친구에 따르면 학교에서 말썽을 일으키거나 가출하는 청소년도 요즘엔 대부분 여자애들이라 한다. 체제에 순화된 남자애들이 얌전히 책상을 지킬 때 여자애들은 저 바깥으로 호시탐탐 시선을 돌린다는 것이다. 술집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며 열변을 토하는 축들도 요즘엔 어쩐지 여성 청년들 숫자가 많아 보인다. 그뿐이 아니다. 독서 시장의 남성 독자는 오래전에 떠나버렸다. 독서인구 대부분이 여성이다 보니 글쓴이들도 그들의 시선에 눈높이를 맞춘다. 문학계도 마찬가지여서 그 많던 남성 작가가 언제부턴가 눈에 띄지 않는다. 남성 작가들은 거대 서사와 역사적 사건들을 주로 다루는데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개인 서사가 선호되는 시장의 취향 때문에 버틸 재간이 없다. 대체 이 세상 남성들은 어디로 가버렸나. 조도 낮은 술집에서 신세 한탄이나 하고 있는가. 잡히지도 않는 물질과 부를 좇아 부나방처럼 세상을 떠도는가. 아니면 곰팡내 나는 PC방에서 게임에 넋을 잃는가. 삶에 대한 통찰을 멈춘 채 더이상 독서를 하지 않는 남성들은 민주주의 같은 난해한 주제를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순간적 광기를 분출하는 극우의 선동에 동화돼 고집쟁이 사고뭉치로 전락할 뿐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어서가 아니라 한쪽 날개가 고장난 탓이다. 그런 의미로 남성들은 크게 반성해야 한다. 책임감과 용기도 없고 소극적이며 위축돼 있다. 소멸하는 권위에 기대보지만 영향력도 없다. 물론 남성뿐 아니라 사회도 책임을 져야 한다. 제발 양변기에 앉아 오줌 싸라고 아들에게 강요하지 말라. 옷 더럽혔다고 나무라지 좀 말라. 친구와 주먹다짐했다고 호들갑도 떨지 마시라. 혹시 남성 청년에게 사과할 일이 있다면 국가나 가정은 즉각 그것을 해야만 한다. 남성을 편들자는 말이 아니다. 제발 균형 좀 잡자는 얘기다. 그래야 나 같은 남성 작가도 붓을 꺾지 않는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추락하지 않는다. 이광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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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8.2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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