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 두근두근 수국수국
 쏟아붓던 비가 그치고 폭염이 시작되었다. 유치원의 짧은 여름방학은 한 학기를 마무리한 나에겐 그저 최고의 보상이다. 해마다 호기롭게 세웠던 여름방학의 계획은 첫날 대부분 몸살로 어그러지지만, 올해는 결혼한 딸아이가 몇 년 만에 아기를 가졌고 두어 달 후에는 출산을 앞두고 있어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서울로 가리라! 계획을 세우고 반찬, 미숫가루, 땅콩까지 차곡차곡 챙긴다. 그러나 딸아이 집에 가는 일도 만만치는 않다. 좁은 집에, 아직도 어려운 사위까지, 모두 부담이다. 그래서 우린 서울에 갈 때마다 늘 숙소를 따로 정해두고 잠시 만나곤 한다. 이번에도 남편이 그 상황을 놓치지 않고 주문을 한다. “애 퇴근해서 저녁 되어야 만날 텐데 빨리 가면 뭐해, 가는 길이니 화담숲이나 들렀다 갑시다.” 유난히 꽃과 식물을 좋아하는 남편은 여러 차례 화담숲을 구경하고 싶어 했지만 번번히 틀어졌었다. “예매를 해야 해, 무더우니 제일 이른 시간으로” “거긴 아무것도 못 가져가니까 생수도 준비하고, 걸으면서 요기할 수 있는 바나나도 두 개 챙기고” 부하직원에게 시키던 고약한 버릇이 아직 남아있는 남편은 주문이 많다. 나는 마음 속으로 투덜투덜 하면서도 1년 내내 유치원의 작은 언덕과 마당에 피고 지는 꽃과 나무, 학습용 텃밭까지 관리하면서, 잡초 제거에 가지치기, 친환경 농약 치기로 매일 땀 범벅으로 중노동을 하는 남편에게 이 정도는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순순히 주문대로 따른다. 서둘러 차를 달렸지만, 입장 시간보다 30분이 지나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부부는 주차하면서부터 벌써 찌그랑 째그랑 하고 있다. 딸아이 반찬이 녹을까 걱정이 되어 좀 멀더라도 그늘에 주차하자고 해도 남편은 들은 체도 않는다. “이 사람아, 아이스박스가 달리 아이스박스인가, 괜찮아, 괜찮아.” 사랑하는 숲에 와서 너무나 설레는지 마냥 더 앞쪽, 앞쪽으로만 간다. ‘그래, 당신이 운전대 잡았으니 마음대로 하쇼’하고 또 맘속으로만 중얼거려본다.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모노레일에 줄을 서 있는데, 남편은 “여긴 걸으면서 다니라고 있는 숲이야! 여기 이렇게 써 있구만! ‘뭐가 그리 바쁘신가요. 소곤소곤 이야기 나누면서 걸으세요’ 2승차장에서 타면 되니 일단 갑시다!” 남편은 부리나케 숲속 길로 먼저 들어간다. “봐, 사람들 모두 모노레일을 타고 가니 이 숲이 온전히 우리 두 사람 거잖아,” 얼핏 낭만적일 것 같지만, 손 잡고 찬찬히 숲길을 걷는 TV 속 노부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커피 담은 텀블러는 점점 무거워져 내 던지고 싶은데, 그러거나 말거나 남편은 한층 신이 나서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탄성을 지른다. 나는 50미터씩 앞서가서 번번히 기다린다. “와, 나는 수국 몇 송이 보려고 매일 두세 시간씩 물을 주는데 여긴 수국 천지야 천지! 난 여길 10년 전부터 오고 싶었었어, 아 드디어 왔구나!” 해맑은 얼굴도 잠시, “입구에서 사 온 옥수수 수염차 좀 주세요” 내 요청에 화들짝 놀란 남편은 여기저기 사진 찍느라 어디 두었는지 알 수도 없으면서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갔다가 땀을 뻘뻘 흘리며 빈손으로 온다. “따지도 않은 시원한 물이니 어디 숲 가꾸는 분이 드셨나봐. 잘 되었지 뭐, 우리 엄청 좋은 일 한 거야!”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숲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온다. “우리도 저기 끼여서 듣자” 했더니 남편은 “내가 퇴직 후 숲 해설사 자격을 땄잖아, 당신 기억 안 나? 나한테 들으면 돼!”하며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더니 이때다 싶었는지 “이건 산수국인데 자세히 봐 봐, 잎이 돌아가 있지. 산수국은 암수 수정을 하고 나면 잎이 돌아간다. 신기하지 않니?” 정말, 그러고 보니 동전 크기보다 작은 산수국 잎들이 가느다란 줄기를 다 틀어서 잎이 돌아가 있었다. 내가 관심있게 들으니 남편은 또 신이 나서 불당화, 백당나무, 이 수국, 저 수국, 소근소근 화담을 수국수국으로 대신한다. 그렇게 우리는 2승차장에서도 모노레일을 타지 못한 채 그 숲길을 끝까지 다 걸어 나왔다. 운수휴당에 들러 파전과 열무국수, 막걸리로 늦은 점심을 해결하며 연못에 한가롭게 노는 원앙을 본다. 아이스박스 음식이 상하거나 말거나, 급하게 올라가느라 운전대 위에 올려두고 깜박 잊고 내렸던 비싼 블루투스가 없어졌을까 안절부절하던 마음이 이내 없어지고, 그저 이 뜨거운 여름 내내 고생한 남편에게 마음 속으로 조용히 수국의 꽃말을 전한다. “당신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한결같이 사랑합니다” △안장자 수필가는 영남대학교 교육학박사와 영남이공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대한문학 동시부분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군산하랑유치원 원장으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