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 혁명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역정을 볼 때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동학농민혁명이라고 할 수 있으며, 프랑스 대혁명, 멕시코 혁명, 쿠바 혁명, 러시아 혁명 등 세계 유수의 혁명 역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민중혁명이다. 동학농민혁명은 항일 전쟁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밑거름이 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이 땅의 민주화운동과 민족 통일운동의 정신적 토대가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이 추구하는 반봉건·반침략 사상의 현대적 의미는 민주·자주·평화로 상징되며 그 내면에는 천부인권을 담고 있으며, 세계평화를 지향하는 인류의 위대한 자산이라 할 수 있다. 올해는 3·1운동 104주년이며 동학혁명 129주년이다. 3·1운동 당시 한반도 전역에서 남녀노소와 빈부귀천, 지역과 직업 여하, 국내·국외를 망라한 전체 한민족이 궐기하였던 그 경험과 그 마음이 시민의식으로 싹터서 발화한 것이다. 그리고 그 씨앗이 뿌려진 것이 갑오년의 동학혁명이었다. 1893년 11월 사발통문 작성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던 “동학농민혁명”은 조선의 봉건사회와 부정·부패 척결 및 반외세의 기치를 내걸었던 대규모 민중혁명이었다. 개화파가 주도했던 갑신정변이나 독립협회, 유생이 주도했던 의병 항쟁 등은 위로부터의 개혁이었으나, 동학농민혁명은 일반 민중을 중심으로 한 아래로부터 진행된 민중혁명이었다. 또한, 군·현 단위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졌던 혁명을 전국 차원의 항쟁으로, 일시적 투쟁에서 장기 지속적 혁명으로 발전해 나갔으며, 조선 후기 빈발했던 농민 봉기 단계에서 나타난 민중의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 의지를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대규모 농민 대중에 의한 혁명이기도 하였다. 일본의 침략 야욕과 부패하고 무능한 조선왕조 봉건 지배층의 외세 의존 및 유생의 체제 수호의 벽에 막혀 동학농민혁명은 좌절되었으나, 1894년 이후 전개된 병오창의 등의 의병 항쟁과 3·1운동과 6·10 만세운동, 항일무장 독립 투쟁으로 이어지며 한국의 근대화와 민족 민중 운동의 근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19세기 후반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를 변화시키고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3·1운동, 4·19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촛불 시민혁명의 모태로서 오늘날 평등사상과 자유민주화의 지평을 연 근대 민족사의 대사건이었다. 현재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보면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로 시작한다. 동학농민운동이 있었기에 의병 활동이 있었고, 항일 독립운동과, 3·1운동,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촛불 시민혁명까지 이어졌다. 동학농민혁명을 헌법 전문에 담는 것은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다시 명확하게 정리하고 규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 민족의 역사적 혁명 사건을 헌법 개헌 시에 헌법 전문에 포함하는 일은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역사적 사실과 의의만 보더라도 헌법 전문 개정의 당위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만일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이 헌법 전문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국가와 민족, 그리고 순국 영령 앞에 부끄러운 후손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잘사는 인내천을 구현하기 위한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계승하도록 반드시 헌법 전문이 개정되어야 한다. /고경윤 정읍시의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