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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담화 계승의 속내

1993년 8월, 일본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담화를 발표했다. 일본군 위안부가 존재했으며 일본군이 관여해 강제 동원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고노 장관은 일본군의 요청으로 위안소가 설치되었으며 관리와 위안부 이송에도 일본군이 관여했음을 시인하면서 역사 연구와 교육을 통해 이러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강제성을 처음 인정한 공식적인 발표, ‘고노담화’였다. 실제 고노담화가 있고 난 뒤 일본 교과서에는 위안부 관련 기술이 늘어났다. 1995년에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담아 ‘전후 50년 담화’를 발표했으며 1998년에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라고도 명명하는 한일공동선언이 이루어졌다. 한일 양국 간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은 고노담화가 이어낸 결정판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고노담화의 의미와 효력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일본 우익세력의 반발과 공격으로 담화를 파기하려는 시도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국제적 관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속내와는 달리 담화 계승을 내세워왔던 일본 정부가 속내를 드러내며 공식적으로 입장을 바꾼것은 아베 정권이다. 아베는 결국 ‘고노담화 검증’을 정부 차원의 과제로 만들었다. 지난 2014년 일본 정부가 발표한 ‘고노담화 검증 보고서’가 그 결과물이다. 이 보고서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의 의미를 부정하며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고 폄훼했다. 곧바로 이어진 반향은 중고등학교 교과서 수정부터 시작됐다. 고노담화는 물론이고 교과서의 위안부 기술은 줄어들 대로 줄어들었다. 급기야 2021년에는 스가 내각이 나서 ‘종군 위안부’ 란 표현을 ’위안부‘로 바꿀 것을 결정했다. 이듬해에는 이러한 결정이 검정교과서에 반영되면서 교과서 대부분이 수정됐다. 알려지기로는 일본의 중학교 교과서 중 고노담화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교과서는 1종뿐이다. 고노담화 발표 30년을 맞은 지난 3일,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이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이번에도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기본적 방침‘은 ’1993년 8월 4일 내각 관방장관 담화를 계승한다는 것‘이다. 기본적 방침은 그렇지만 방향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다는 의미일까. 담화의 의미를 사실상 부정하거나 깎아내리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계승의 진정성을 찾기 어렵다. 교활한 정치적 속셈 뒤에 감추어진 일본 정부의 민낯이 강조될 뿐. 그래서인가. 한일관계가 회복되고 있다는 지금, 고노담화의 의미가 더 새롭다. / 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3.08.08 14:10

태풍 북상, ‘농작물 피해 최소화’ 총력 대응을

제6호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향해 북상하고 있다. 전북지역은 10일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일 전망이다. 엎친데 덮친격이다. 농민들은 지난달 집중호우로 발생한 농경지 침수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재해를 걱정해야 한다. 특히 폭우에 이어 강풍으로 또다시 낙과 피해가 예상되는 과수농가의 걱정이 크다. 태풍 ‘카눈’은 앞서 일본 오키나와현과 가고시마현을 지나면서 엄청난 피해를 냈다. 한반도에 어느 정도의 생채기를 남길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태풍의 강도가 ‘강’급으로 분류된 만큼 피해가 적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무엇보다 인명피해가 없도록 위험물 관리에 신경써야 할 것이다. 더불어 농작물 피해 최소화를 위해 총력 대응해야 한다. 정부의 농업정책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폭우와 태풍 등 자연재해로 농사를 망치는 일이 더 빈번해지면 머지 않아 농촌에 남아 있는 농민을 찾아볼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농식품부를 비롯한 정부기관과 지자체가 태풍 종료 때까지 비상대비 태세를 유지하고 배수장·저수지 등 농업시설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아울러 농가에서도 비닐하우스와 배수로 등 시설물 안전점검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전북도에서도 8일 오전 관계기관 회의를 열고 태풍 대책을 논의했다. 형식적인 탁상 위 대책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농업 현장을 돌아보고, 농업인 스스로 재해에 대비할 수 있는 조기경보체계도 이번 기회에 재정비해야 한다. 철저한 대비를 했는데도, 불가피하게 태풍 피해가 발생한다면 즉각 응급복구에 나설 수 있도록 대비태세를 갖춰놓아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관련기관이 협력해 피해 상황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인력과 장비·재원 등 가용자원을 총동원해야 할 것이다. 이상기후가 일상이 되고 있는 시대다. 사후 복구대책보다는 사전 예방대책에 더 집중해야 한다. 여름철 돌변하는 기상상태를 예측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농업재해 상시 대비체계 마련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태풍과 폭우, 폭염 등의 자연재해가 주로 여름철에 집중되는 만큼 지자체 차원에서 ‘여름철 농업재해 종합대책’을 세워 기상 상황 및 재해 취약지역을 사전 점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3.08.08 12:58

신항건설,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무엇인가

새만금 신항 건설은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를 던져 놓고 있다. 어떻게 하면 전북이 명실공히 군산항과 함께 2개의 항만을 갖는 효과를 거머쥘 것인가가 그것이다. 이 과제를 등한시할 경우 전국에 무역항이 포화된 상태에서 신항은 군산항의 보조항으로 전락하는 등 전북은 항만물류의 오지로 여전히 남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오는 2030년까지 6개 선석이 건설될 신항은 2026년 5만톤급 2개 선석이 개장된다고 해도 과연 신항을 뒷받침할 물동량이 충분히 확보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현재 기본계획상 6개 선석중 5개 선석은 잡화, 1개 선석은 컨테이너를 취급토록 돼 있지만 이런 화물들은 이미 군산항과 중복이 된다. 이 상태를 유지한다면 군산항의 물동량은 수심이 비교적 양호한 신항으로 이전돼 군산항의 위상은 쪼그라들게 된다. 지난 2010년 새만금 신항기본계획 재검토 당시 신항의 물동량 중 56%가 군산항의 이전 물동량으로 산정돼 있다는 점이 더욱 우려를 자아낸다. 특히 전국적으로 31개의 무역항이 운영되고 무역항을 지닌 지자체마다 물동량 유치경쟁이 치열한 점을 감안할 때 타지역 물량의 신항유치는 사실상 기대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새만금 개발계획상 신항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인근 배후 산업단지가 없다. 군산항과 가까운 새만금 산업단지는 신항과는 거리가 20여km떨어져 있고 새만금 개발은 계획상 2050년에야 완료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신항은 상당기간 물동량 기근에 시달려야 한다. 결국 신항 개발은 동력을 잃어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군산항과 기능이 중복되지 않으면서 국내 다른 항만에서 취급되지 않는 특화된 화물을 취급토록 하는 기능이 신항만에 설정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LNG 수요 창출을 통해 LNG냉열을 이용한 스마트식품 콜드항만, 수소 전용 항만, 농식품 전용 항만 조성 등이 고려 대상이다. 이를 위해 미국의 농업회사로 직원만도 15만여명에 달하는 다국적 기업인 카길을 비롯, 국내외 농수산 식품 업체들을 대상으로 민자 유치 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때만이 새만금 농생명 용지와 익산식품 클러스터, 식량 비축기지 조성 등에 대한 물류지원과 함께 충남, 전남 등 다른 지역으로부터 물동량을 유인해 신항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동시에 도내 수출 물량의 80%이상, 수입 물량의 약 40%가 다른 항만에서 취급되고 있는 등 수출입 물동량의 역외 유출현상 해소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군산항의 현안이 준설인 만큼 근본적인 준설대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하지 않으면 물류의 생리상 군산항의 물동량은 신항으로 방향을 틀 수 밖에 없다. 신항이 특화되지 않고 군산항의 낮은 수심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신항의 건설에도 전북은 한개의 항만만 보유하는 초라한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높다. 기업의 사활을 건 물류비용절감을 위한 전쟁은 치열하다. 해상 물류의 핵심 인프라인 항만 발전없이는 전북 발전은 요원하다. 새만금 신항의 특화와 군산항의 근본적인 준설대책 추진! 전북이 국내 항만 물류의 거점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이 2개의 과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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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봉호
  • 2023.08.07 18:49

새만금 잼버리 철수, 전화위복 계기로 삼자

새만금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가 중단되고 각국 참가자 전원이 조기 철수키로 했다. 정부는 새만금지역이 태풍 ‘카눈’의 영향권에 들어감에 따라 이같이 결정했다. 초반에 혼란을 빚었던 잼버리 대회가 반환점을 돌면서 안정세에 들어서는 듯 하더니 이러한 결정을 하게 돼 아쉽다. 156개국 3만6000여명의 참가 대원들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으로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은 스카우트 대원들의 안전 확보를 위해 관계 장관들과 플랜B를 논의했다”면서 “스카우트 대원들의 숙소와 남은 일정을 서울 등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컨틴전시 플랜(긴급 대체 플랜)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잼버리 대회가 아니라 ‘생존 게임’이라는 비아냥을 받으면서 온열환자와 코로나 환자가 초반부터 속출했다. 이미 영국과 미국 등 일부 참가국이 조기철수하면서 상처가 났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업친데 덮친 격으로 태풍까지 도와주지 않고 있다. 사실 이번 잼버리 대회는 폭염 탓만 할수 없는 총체적 부실이었다. 올림픽과 월드컵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폭염대책은 물론 화장실·샤워실 등 위생 문제와 부실한 식사, 미흡한 의료시설 문제 등 비난 받아 마땅환 수준이었다. 새만금을 세계에 알리고 국제공항과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으려던 전북도의 당초 계획도 수포로 돌아가고 망신살만 뻗치게 되었다. 6년 동안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들이고도 욕만 먹는 대회로 추락한 것이다. 여기에 여야 정치권은 서로 질세라 ‘네 탓’ 공방만 벌이는 꼴불견을 보여줬다. 어쨌든 이번 대회는 많은 문제점을 남겼다. 준비 부족에서부터 미숙한 진행, 누가 책임자인지도 모르는 컨트롤 타워, 중앙과 지방의 역할 혼선 등 지적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대회가 끝난 뒤 이에 대한 엄정한 평가와 철저한 조사 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서라도 안전에 유의하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남은 참가자들이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전북도민과 국민들이 도와줬으면 한다. 그래서 전북과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길 기대한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3.08.07 18:49

가깝고도 먼 섬 연도, 이제 하루에 다녀오자!

서해의 맑고 푸른 섬, 연도(煙島)! 전라북도 군산에서 불과 24km 떨어진 고군산군도에 딸린 섬이다. 중국 산둥에서 화창한 맑은 날에는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여 연(煙)자를 써서 부르는 설과 한편으로는 호수 속에 피어오르는 연꽃과 같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는 두 가지의 설이 있다. 이름만 들어도 설렌다. 군산항의 북서쪽에 위치한 이 섬은 면적 0.873㎢ 규모로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연도리에 속해있으며, 인구는 현재 189명인 조용하고 아담한 섬이다. 연도에서 가장 높은 곳은 188m의 대봉산이며, 섬 전체는 기복이 비교적 심하고 경사도 급한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군산 연도는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널리 알려진 파시, 즉 바다 위에서 어획물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시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볼 수 없고 멸치잡이가 주민들의 주요 생업 수단이다. 연도 연근해에서는 멸치, 삼치, 새우 등이 많이 잡히며, 전복, 해삼 등의 채취와 대규모의 김 양식이 이루어진다. 모래밭으로 된 해수욕장은 없으나 수심이 얕고 곳곳에 자갈밭이 있어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연도는 인심이 좋고 경치가 좋으며 특히 어종이 다양하고 풍부해 바다 낚시터로도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연도항 방파제는 낚시인들이 꼽는 전국의 명 방파제 100곳 중에서 군산 말도 방파제, 어청도 방파제, 관리도 방파제 등과 함께 낚시인들이 뽑은 명 방파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 아름다운 섬, 연도는 1956년부터 국가 보조항로 제도가 운용되었음에도, 군산-연도-어청도 항로의 기항지에 포함되어 있다 보니 군산시로부터 비교적 가까우면서도 여객선이 다니는 다른 섬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접근성으로 불편이 컸다. 이에 군산지방해수청에서는 연도 항로를 분리 운영할 필요성에 따라 타 청으로부터 예비선 ‘섬사랑3호’를 인수하여, 2021년 10월에 연도 항로를 운항할 선박을 사전에 확보하였고, 2022년도에는 연도항 유지 준설에 약 22억원을 투입하여 연도항 내 상시 운항이 가능하도록 수심도 확보하였다. 그리고 2021년부터 2년에 걸쳐 군산지방해양수산청을 포함한 해수부와 지자체 및 지역 정치권의 적극적인 공조와 섬 주민의 기획재정부 방문과 탄원서 제출 등으로 2023년부터 연도 항로 운항 선박의 운영예산 5억원을 확보하였고, 2023년 2월 1일부터 ‘어청카훼리호’가 어청도로 직항하고 ‘섬사랑3호’는 연도로 1일 2항차 운항하여 일일생활권이 구축됨으로써 즐거운 하루 여행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섬사랑3호’의 운항은 수산업 침체 등으로 연도가 낙후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민 편익은 물론 섬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군산지방해양수산청과 군산시가 국가 예산확보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이루어낸 성과로 정부와 지자체의 성공적인 협력사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연도 항로가 어청도 항로에서 분리되면서 연도와 어청도 주민의 이동 편리성뿐만 아니라 관광객 증가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올여름에는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성한 어청도와 연도에 많은 방문객이 들러 무더위도 잠시 잊고 바쁜 일상도 뒤로 한 채 힐링의 시간을 보내길 바래본다. 아울러 군산지방해양수산청은 주민과 이용객들의 좀 더 나은 교통편의를 위하여 선령 20년 이상이 된 ‘섬사랑3호’에 대체하여 더욱더 나은 여객선 건조를 위한 적극 행정을 추진 중이다. / 최창석 군산지방해양수산청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3.08.07 17:37

문화유산 개념의 확장

올해 5월 국가유산기본법이 제정되면서 ‘문화재’라는 용어 대신 ‘국가유산’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관련 정책 환경의 변화와 유네스코 등 국제 추세에 맞추어 ‘재화’의 의미를 담는 문화재보다는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유산’으로 명칭을 변경, 확장하고 세계유산과 유사한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의 세부 분류체계를 갖춘다는 취지이다. 이 법에서는 ‘문화유산’을 우리 역사와 전통의 산물로서 문화의 고유성, 겨레의 정체성 및 국민생활의 변화를 나타내는 유형의 문화적 유산이라 정의하고 있다. 일반 대중에게 낯설지 않은 문화유산이라는 개념은 서구에서 헤리티지(heritage)라는 단어의 의미로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라는 사적 차원에서 출발했다. 즉, 개인이나 가문을 상징하거나 가치 있는 물건이 대대로 내려온 상태를 의미했다. 이후 민족국가(국민국가)가 성립되며 문화유산의 민족적 또는 민족주의적 가치가 부각되고 국가의 보호를 받으면서 공공의 문화유산 개념이 성립되었다. 문화유산은 민족, 국가와 같은 공동체의 의미 있는 특정한 과거를 환기시키고 공동의 기억을 형성시킬 수 있는 유형의 증거로 이해되었다. 공동의 기억 저장 창고와 같은 문화유산은 공동체의 가치 확립에 도움을 주고 그 상징처럼 역할하였다. 민족국가가 성립되는 시기 서구에서 문화유산은 국가의 긍정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하여 국가의 자부심을 확립하고 국가 구성원들의 뿌리를 확인시켜 주는 ‘아름답고 찬란했던 황금기’를 창조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국가의 기억이 결집된 이러한 문화유산에는 궁전이나 박물관과 같은 유형의 유산뿐 아니라 국기나 국가(國歌)와 같은 무형의 유산도 포함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네스코의 활발한 활동에 의해 문화유산은 인류가 공동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문화유산의 범주가 개인, 국가, 인류로까지 확장되면서 ‘문화적 산물’로서의 개념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문화유산은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만들어져 그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적 산물로 인식되어 그 의미가 고정된 정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20세기 말 이후 문화유산은 현시대의 해석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동적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우리 시대에 문화유산이라는 개념은 정부, 전문가, 시민, 이해관계자 등이 특정 대상에 대해 갖는 집단 기억과 가치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이들 간의 사회적 합의에 따라 변화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즉, 문화유산은 현재 우리 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우리의 해석에 따라 변화해 갈 수 있는 것이다. 문화유산을 문화적 산물로 인식하기 보다는 문화적 과정으로 인식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문화유산에 대한 이러한 동적 인식을 ‘문화유산화(heritagization)’라고 개념화하고 있다. 문화유산화는 현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특정 과거를 선택하고 이를 대표화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어 그 특정 과거와 관련된 많은 사람의 서로 다른 의견이 취합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논쟁과 사회적 쟁점, 정치적 분쟁이 수반된다. 국가나 공동체의 기억 및 정체성 형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문화유산은 이러한 사회 정치화 과정 속에서 재해석되며 재평가되는 것이다. 이제 문화유산은 과거로부터 내려온 고정된 가치이기 보다 현재를 사는 시민의 참여로 만들어져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송석기 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

  • 오피니언
  • 기고
  • 2023.08.07 17:37

사이렌이 울리면

죽음을 부른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감미로운 노랫소리를 꼭 듣고 싶었다. 그래서 목숨을 걸었다. 선원들은 밀랍으로 귀를 틀어 막게 하고, 자신은 귀를 막는 대신 돛대에 몸을 묶어 유혹에 반응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렇게 그는 악명 높은 ‘세이렌의 유혹’에서 벗어났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가 쓴 서사시 ‘오딧세이아’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 얘기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세이렌(Siren)’은 상반신은 여자, 하반신은 새의 모습을 한 바다 요정이다. 감미로운 노랫소리로 뱃사람들을 홀린 뒤 배를 암초로 유인해 침몰시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더 유명한 독일 민요 ‘로렐라이’에 나오는 전설 속의 라인강 로렐라이언덕 위 여인도 세이렌이다. 고대 신화와 전설 속의 요정 세이렌은 지금도 살아있다. 세계 최대의 커피회사 스타벅스는 인어 모습을 한 세이렌의 형상을 로고로 택했다. 전설의 힘이 대단하다. 이 또 다른 세이렌의 유혹에 지구촌 커피 애호가들이 홀딱 넘어갔으니 말이다. 오늘날 비상 상황을 알리는 경보장치를 칭하는 용어 사이렌의 어원이 바로 세이렌이다. 곧 닥쳐올 위험이나 지금의 긴급상황을 알려 경계하도록 하는 경보음에 치명적인 노랫소리로 죽음을 부르는 신화 속 요정의 이름을 가져다 붙인 것이다. 사이렌이 울리면 무조건 긴박한 상황이다. 소중한 생명이 달려있는 경우도 많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평상시 훈련이 필요했다. 민방위 훈련이다. 매월 정해진 날, 훈련 공습경보를 알리는 사이렌이 전국에 울리면 차량 이동이 통제되고, 보행자들은 가까운 대피소나 지하공간으로 일사불란하게 이동했다. 우리 사회 전쟁의 상흔과 공포가 남아 있던 20세기 후반 매우 익숙했던 모습이다. 이후 공습 대비 훈련(민방공훈련)은 2017년 8월, 지진·화재 등 재난 대비 훈련은 2019년 10월까지 실시된 후 중단됐다. 같은 시각, 전국에 울리던 요란한 사이렌 소리도 오랫동안 들을 수 없었다. 그런 사이렌이 6년 만에 다시 울린다. 오는 23일 전국민이 참여하는 공습 대비 민방위훈련이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된다. 가상의 비상 상황을 설정해놓고 울리는 사이렌에 시민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우리나라의 첫 민방위훈련은 1972년 1월이라고 한다. 어느덧 반세기가 지났다. 전국민이 참여하는 이 대규모 훈련의 풍경, 그리고 시민들의 자세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사뭇 궁금하다. 사람을 홀려 죽음의 길로 끌어들이는 요정의 치명적인 노랫소리에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긴급 상황을 알려 이를 경계하도록 하는 경보음으로⋯. 사이렌의 의미는 정반대로 바뀌었다. 귀를 막고, 몸을 움직일 수 없게 결박한 오디세우스와는 정반대로 대응하는 게 맞다. 귀를 쫑긋 세워 신호음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몸은 최대한 민첩하게 움직이는 게 사이렌에 대처하는 자세일 것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3.08.07 16:56

흉기난동 관련 범죄 확실히 뿌리뽑아라

전대미문의 불안감이 사회 각계를 휩쓸면서 가히 불안의 시대라고 할만하다. 분당 서현역에서 소위 '묻지마 칼부림' 참사가 발생한 직후부터 모방범죄가 판을 치고 있는가 하면 버젓하게 ‘범행 예고’글 을 올리는 일도 빈번하다. 그러다 적발되면 “장난삼아 그랬다”며 선처를 호소하는 철딱서니 없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공의 안녕과 사회질서를 유지하는데 방해가 되는 자들은 즉각 격리시키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종을 울려야 한다. 아무리 막가는 사회라고 하더라도 관용을 베풀게 있고 엄정하게 처리해야 할게 따로 있는데 이런 사례는 일벌백계의 경종을 울려야 한다. 끔찍한 흉기 난동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가뜩이나 시민들의 불안심리가 최고조에 이른 마당에 이런 범죄를 흉내 내려는 듯한 '살인 예고글'들이 온라인상에 우후죽순 올라오면서 혼란은 한계상황에 달하고 있다. 발빠른 경찰의 대처로 인해 '살인 예고글' 작성자들이 속속 체포되고 있는데 문제는 미성년자도 다수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철이 없다고 해도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게 있는데 예외없이 엄벌에 처해야 한다. 기가막힐 일이다. 확실한 검거와 예외없는 강력한 처벌이 병행돼야만 한다. 실제 한두건의 사건 보다도 사람들을 더 큰 불안과 혼란으로 몰아넣는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무분별하게 전파된 ‘범행 예고’ 게시글들이다. 수도권 뿐만이 아니다. 청정지역이고 상대적으로 치안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전북지역도 비켜가지 않았다. 한 번 잘못 퍼진 소문은 또 다른 소문으로 재생산돼 밤늦게까지 시민들의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경찰은 지난 4일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하고 전술장갑차와 경찰특공대 전술요원(SWAT) 100여 명, 경찰관 1만 2000여 명 등 경찰력을 전국 도심 곳곳에 배치했다. ‘범행 예고’ 글에 대해 협박 및 특수협박 혐의를 적용해 집중 수사에 나섰다. 사실 불특정 다수에게 공포심을 조장하고 사회 혼란을 부추기는 것은 테러와 다를 바가 없다. 예고글로 관심이 끄는 것을 보고 뒤따라 모방 범죄를 하는 것은 반사회적일 뿐만 아니라 관용을 베풀 이유가 하나도 없는 명백한 범죄다. 거듭 강조하지만 흉기난동 모방범죄나 범행을 예고하는 글을 게시하는 경우 확실하게 체포하고 응분의 처벌을 해야한다. 그래야만 평화로운 사회질서가 유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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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07 13:17

‘벼랑끝 시외버스’ 살리기, 정부가 나서야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지방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시외버스 노선이 속속 폐지·축소되고, 시외버스터미널 폐업이 속출하면서 지방교통의 근간인 시외버스망이 붕괴 위기에 놓였다. 농어촌의 비율이 높은 전북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이용자가 줄면서 적자를 이유로 배차 간격이 늘어나고, 이는 시외버스 이용 불편을 가중시켜 결국 이용자가 더 줄어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지역 간 통행·교류에 중심 역할을 수행해온 시외버스가 벼랑 끝 위기에 몰렸다. 승객이 줄면서 경영 악화로 문을 닫는 시외버스터미널도 속출하고 있다. 시외버스는 교통약자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사회 인프라다. 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며 장기간 투쟁을 벌이고 있는 장애인단체처럼 지방 중소도시 주민들도 정부에 이동권 보장을 촉구해야 할 판이다. 지역소멸 위기의 시대, 수도권 내부 교통망과 서울-지방을 잇는 교통인프라는 갈수록 좋아지고 있지만 지역과 지역을 잇는 교통인프라는 붕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함께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서울 중심의 거미줄 교통망을 확충하는 수도권 공화국의 교통정책에서 벗어나 지역과 지역을 잇는 지방교통망 복원에 힘써야 한다. 최근에는 도시 기능의 연계를 기반으로 한 광역권 개발 사업이 속속 추진되면서 지역 중심 광역교통망 확충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역 간 이동을 위해 주민들이 보편적으로 이용해 온 시외버스에 대해 시내버스 이상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시대다. 이동권은 공공서비스의 영역이다. 당연히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 지방도시 주민들의 이동권 확보는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도 중요한 과제다. 중앙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우선 지방 교통망의 근간인 시외버스를 살려내야 한다. 지자체의 재정 지원에만 맡겨두는 현재의 구조로는 벼랑 끝에 몰린 시외버스 운영을 정상화하기 어렵다. 중장기적으로 중앙정부가 지원업무를 관장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당장 정부와 지자체가 시외버스의 안정적 운행을 위해 노선을 관리하고 재정을 지원하는 ‘준공영제’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시외버스터미널 유지·운영에 국비를 지원해 달라는 지자체의 눈물겨운 호소에도 귀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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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3.08.06 17:16

양파TRQ 증량은 우리나라 농업을 흔드는 일

최근 정부는 농산물 가격안정이라는 명목으로 저율관세할당(TRQ, Tariff Rate Quata) 증량 방침을 내놓았다. ‘저율관세할당’이란, 대한민국과 외국간 자유무역협정에서 정한 특정 품목 중, 일정 물량에는 낮은 관세를 부과하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은 기본 관세를 적용하는 이중관세제도를 말한다. 특히, 정부는 지난 5월 수입양파 2만 톤 증량을 추진하려다 농가의 거센 반발로 이를 철회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기획재정부가 직접 ‘시장접근물량 증량에 관한 규칙’ 일부개정령을 지난달 21일부터 시행시키면서 정부는 올 연말까지 양파 수입을 확대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수입 양파는 기존 2만여 톤에서 11만여 톤으로 9만여 톤 늘어가게 되며, 이에 따를 피해는 양파 생산 농가에 고스란히 돌아가게 된다. 특히, 각종 보고서와 현황을 살펴보면, 수입양파 물량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5만 톤씩 증량하며, 양파농가에게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국내 양파가격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거의 100% 수입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올해 양파의 생육 상황은 지난 해 보다 양호 것으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침체 된 지역 농업경기 및 농민 실정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물가 안정’이라는 명목으로 낮은 관세로 양파를 수입하는 것은 국내 농산물 가격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정부가 정책을 통해 수입양파 증량을 고려한 사항이 ‘시장접근물량 증량에 관한 규칙’ 제4조에 명시된 ‘증량이 양파 생산농가에 미치는 영향’, ‘국내 양파생산실적과 전망’에 대한 면밀한 분석 후 진행된 것인지 매우 의문이다. 이와 함께 국내 농산물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극본적인 정책추진 없이 그저 수입에 의존하는 ‘땜질식 대책’만으론 결국 국가와 지역의 농업기반 및 생산기반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정부의 안일한 정책과 모르쇠는 고물가와 이상기후로 인해 악화 된 농산물 생산기반으로 고통 받는 농가와 농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과 같으며, 국가의 기반 산업인 농업을 죽이는 행위인 것이다. 이번 정부의 방침은 단순히 양파의 수입을 늘리는 것이 아닌 대한민국의 농업 전체를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다음 타깃이 어떤 명목으로 어느 곳으로 향할지는 모르는 만큼 농업의 종사하며, 우리 농업을 지키는 농민들이 더욱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농축산물 가격이 조금이라도 오를 기미가 보이면 물가안정이라는 이유로 농축산물에 대한 저 관세 대량 수입을 추진하고 있다. 국제적인 분위기상 국내물가 안정이 국가적 과제임을 인식하나, 농축산물 수입을 물가안정 대책으로 제시하는 것은 우리의 농업을 죽이는 과정일 뿐인 것이다. 기업들은 원재료 가격이 올랐다며 제품 가격에 인하에 인색하다. 하지만, 우리 농민들은 자재비, 사료비, 인건비 등 농업 경영비가 인상되어 농산물 가격을 올리려 해도 국가에서 수입이라는 무기로 농민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농업은 국가의 식량안보와 직결되는 중요한 산업인 만큼 국가가 보호하고, 이를 지킬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는 산업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서남용 완주군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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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06 17:15

철근 빠진 아파트, 특별 안전점검 서둘러라

무량판 구조 아파트에서 철근이 빠진 사례가 적발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전북지역에도 이같은 공법이 도입된 아파트가 있어 특별 안전점검이 요구된다. 더욱이 지난 29일 장수군에서 3.5 규모의 지진이 발생하는 등 전북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이 확인되면서 지진에 취약한 구조인 무량판 건축물에 대한 관리 강화 목소리가 높다. 전북도에 따르면 도내 아파트 가운데 2017년 이후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아파트는 총 9곳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6곳은 준공해 입주를 끝냈고, 나머지 3곳은 공사가 진행 중이다. LH 아파트는 1곳이고, 나머지는 모두 민간 아파트며 지역별로는 전주시 5곳, 익산시와 군산시가 각각 2곳이다. 무량(無梁)판 구조는 대들보(beam) 없이 기둥만으로 천장을 지탱하는 구조다. 보나 벽 없이 수직 자재인 기둥이 직접 슬래브(콘크리트 천장)를 지지하기 때문에 공간 확보가 용이하고, 건설 비용과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반면 대들보가 없다 보니 수평 하중에 취약해 주변에 전단보강근을 충분히 넣는 등 치밀한 시공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를 잘 모르거나 고의로 누락시켜 사고의 원인이 되고 있다. 기둥과 맞닿는 부위에 하중이 집중되면 슬래브에 구멍이 뚫리면서 붕괴되는 펀칭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같은 무량판 공법으로 붕괴사고가 일어난 곳은 이번에 문제된 인천의 검단신도시 자이 안단테와 지난해 1월 무너져 6명이 숨진 광주 화정 아이파크가 그렇다. 또 1995년 붕괴돼 1500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 삼풍백화점 사고도 무량판 공법이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 공법이 적용된 민간아파트는 293개소 25만 가구에 이른다. 이 공법은 공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전단보강근을 넣지 않는다든지, 무리하게 구조를 변경하면서 사고가 발생한다. 이번 인천 LH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에서 비롯된 소위 순살아파트 부실공사 문제는 우리나라 건설업계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줬다. 발주-시공-설계- 감리 과정에서 이권 카르텔과 담합, 불법 하도급, 전관예우 등이 종횡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서민들에게 아파트는 유일한 재산인 경우가 많다. 수억원을 주고 들어간 아파트가 부실이라면 등골이 오싹할 일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전수조사를 통해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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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06 17:15

전북 꼴찌탈출법

전북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액(GRDP)이 3091만원으로 전국 최하위다. 전북보다 아래였던 강원과 충북이 앞서 있고 제주특별자치도가 비슷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역대 정권들로부터 전북이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돼 국가 예산을 제대로 받지 못해 SOC 구축이 미진, 그 결과로 산단 조성과 기업 유치를 못한 탓이 컸다. 민주화 이후 남의 탓 못지않게 내 탓도 있다는 것이다. 1991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민주당 일당 독식 구조라는 독특한 정치체계가 만들어져 경쟁의 정치가 펼쳐지지 않은 탓이 지역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민주당으로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구조라서 주민들보다는 공천권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악습이 거듭, 지역 발전이 뒤쳐졌다. 국회의원을 비롯 선출직들이 비전을 제시하면서 지역 발전을 도모하려고 힘쓰기보다는 자신의 입신양명하기에 급급한 것도 낙후 원인이었다. 3차례나 진보 쪽에서 정권을 잡았음에도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한 탓이 제일 크다. 여기에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이 존재감을 부각시키려고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시비 일변도로 나간 것도 잘못이었다. 아직도 농경산업이 주를 이룬 전북이 산업 생태계를 바꿔놓지 못하면 전국 꼴찌라는 오명을 벗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간 지역내총생산 순위에서 전북한테 밀렸던 강원과 충북이 지금 전북을 앞선 것은 수도권 팽창에 따른 대단위 공단 조성을 통해 기업 유치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충북 진천만 해도 전북 전체 법인 수보다 많을 정도로 기업이 활발하게 돌아간다. 오송은 식약청 등 관련 기관과 산학연 체계를 잘 갖춰 국내 바이오산업의 핵심 기지로 발전했다. 이들 지역이 기업 유치를 통해 일자리 창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공무원들과 지역 주민들이 기업 하기 좋은 여건을 함께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특히 선거 때마다 여야가 경쟁하도록 골고루 뽑아줘 경쟁의 장을 만들어준 것이 효과를 거뒀다. 이 때문에 충북과 강원은 여야 국회의원들이 국가 예산 확보를 위해 서로가 경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강원도는 국힘 윤핵관 등 실세들이 포진해 내년 국가 예산 확보 목표를 전북보다 많은 10조 원으로 잡고 전력투구한다. 전북은 다행히도 그 누구도 생각치 못했던 이차전지 특화단지를 새만금으로 유치해야만 전북의 산업 생태계를 바꿀 수 있다는 김관영 지사의 저돌적인 생각이 마침내 결실을 맺어 희망을 갖게 한다. 전북이 이차전지를 유치하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이유는 정권 실세들이 포진한 울산 포항 오송에서 이미 생산을 하고 있어 전북이 유치전에 뛰어든다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모처럼만에 전북출신인 한덕수 총리가 윤석열 대통령과 주례회동 때 새만금 장점을 피력, 원군 역할을 해준데다 국힘 정운천의원과 민주당 신영대의원이 해당 산업위에서 뒷받침을 잘 해줘 김 지사가 이차전지 새만금 유치라는 백년먹거리를 챙길 수 있었다. 젊은 김 지사가 꿈과 비전을 제시하면서 하나씩 성과를 거두고 있어 도민들이 김 지사한테 더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래야 전북이 전국 꼴찌를 면하면서 함께 잘 살 수 있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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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3.08.06 17:15

지역 문화·관광, 지방소멸위기 대책이다

최근 지역의 인구통계를 ‘정주인구’가 아닌 ‘생활인구’로 종종 발표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어 서울 등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의 시·군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여기에 양질의 청년일자리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지방소멸 속도를 빠르게 만들고 있는 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지방 지자체들은 현실극복방안 일환으로 정주인구보다 생활인구에 새로운 정책을 맞춰 대응하는데 지혜를 모으고 있다. ‘정주인구’는 고전적인 인구모델로 주소지를 둔 인구(주민등록인구)를 말한다. 반면, ‘생활인구’는 조사 시점 또는 기간에 해당 지역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구 모델을 일컫는다. 예를 들자면, 전주시의 ‘생활인구’는 김제에 거주하지만 전주로 출·퇴근하는 자영업자 또는 직장인, 진안에 거주하지만 전주 소재 대학으로 등하교하는 대학생, 전주로 관광 온 서울사람과 외국인 등 다양한 목적으로 조사시점에 전주에 머무르고 있는 모든 인구를 포함한 것이다. 다른 말로는 ‘현지인구(또는 체류인구)’라고도 부른다. 이 생활인구는 지난 2018년 3월 서울시가 KT와 합동으로 인구 추계를 한 새로운 인구 모델로 등장했다. 이후 전국 지자체들이 많이 활용하고 있다. 생활인구 중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현지인구는 단연 관광객이다. 또한 관광객의 주요 방문지는 역사문화현장과 계절 특수 레포츠지, 휴양관광지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활인구는 전북도와 14개 시·군, 그리고 전북인들이 여겨 볼 지방소멸 위기 극복 포인트다. 지난 5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한국지역개발학회와 함께 ‘지방시대, 대한민국이 가야 할 미래’란 주제로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김세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은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의 위기 속에서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만들기 위한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한 후 “문화는 매력 있는 지역을 만들고, 광광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원동력이다. 따라서 문화와 관광은 균형 있고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의 핵심은 ‘지방소멸 위기 속 지방시대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선 문화와 관광정책에 대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는 ‘매력 있는 지역’을 만든다. 국내외 관광객들은 그 매력을 느끼고 체험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매력 있는 지역을 찾는다. 따라서 전북지역 14개 시·군은 지역 고유성에 기반 한 문화콘텐츠 발굴 및 강화에 행정력과 시민소통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지역문화 관련 주체 간 협업할 수 있는 거버넌스 확충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아울러, 국내외 관광객 유입 확대를 위해 체류형·재방문 관광수요 창출과 확대를 위해 다양한 관광정책 수단을 발굴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전문가(기관)의 두뇌 확보에 과감성도 요구된다. 지자체의 행정목표를 정주인구에서 생활인구로의 전환할 경우 지역의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여기에 일과 휴식을 병행하는 워케이션에도 적극적인 접근과 실천이 필요하다. 워케이션에 가장 적극적인 곳이 제주도다. 생활인구는 지역에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워케이션은 단순한 재택근무나 원격근무를 넘어 일과 관광 모두를 병행할 수 있는 새로운 근무방식이다. 특히 소비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전문직 분야에서 워케이션 이용률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될 일이다. /천선미 전라북도 문화체육관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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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06 15:12

전주·완주 통합에 대한 생각 – 중부권 대망론에 부쳐

전주·완주 통합론은 대개 10년 정도 주기로 강하게 등장했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2013년에 벌어졌다. 전북도와 전주시, 완주군의 단체장들이 대승적으로 합의하고 공공주도의 강력한 캠페인이 진행되었으나 통합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 전주·완주 통합이 거의 10여년만에 다시 살아오고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중요한 것은 통합시의 비전과 목표다. 지난 30여년간 전주·완주 통합의 핵심논리는 늘 광역시가 없는 전북의 한이었다. 인구 백만의 대도시가 없어서 국가정책에서 손해를 보고 결정적으로 광주·전남에 밀린다는 서러움이 통합의 정서적 근간이었다. 그렇다면 전주·완주가 통합되면 전북에는 인구 백만의 광역시가 생기는 것일까. 그렇게만 되면 전북은 날개를 펴고 반세기의 소외론을 극복하며 진정한 ‘전북 홀로서기’를 하는 것일까. 우리의 질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통합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목표와 지향성이 분명해야 통합에 대한 시민들의 주체적인 동의가 생겨나고 할 일들이 만들어진다. 지금 전라북도에 주어진 가장 큰 시험은 국가의 발전전략에서 전북의 역할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언제까지 ‘긁지 않은 복권’ 새만금만 믿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연히 한국사회에서 전북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는 우리 스스로 정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두 가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호남에 대한 실체적 인식이다. 광주·전남은 일찍이 남부권 통합발전을 미래성장전략으로 선택했다. 달빛동맹으로 상징을 만들고 남해안권 개발사업으로 부산·경남과 함께 실속을 차리고 있다. 전북은 그들의 안중에도 없을뿐더러 여기에 낄 수도 없다. 두 번째로 봐야 할 것은 세종시가 성장하면서 한국의 국토전략에서 중부권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꽉 막혀있던 동서의 교통망이 개선되면서 실제로 중부권의 연계는 매우 활발해질 것이다. 추측컨대 중부권 중심의 성장전략은 전북의 의지와 관계없이 대세로 흘러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다면 이제 전북은 미래의 성장축을 전통적인 ‘호남’으로 묶어둘 것인가 아니면 성장하는 중부권의 일원으로 나서 진짜 ‘전북 홀로서기’를 해볼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위로는 세종시를 중심으로 충남의 성장력과 결합하고 횡으로는 영남지역과 물류를 연계하며 시장을 넓히는 메트로한 공간전략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전북의 기회는 여기에 있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전주·완주통합은 사실 별 의미있는 카드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메트로한 공간전략에 어울리는 것은 전주·완주·익산을 묶어내는 대통합이다. 사실 지금의 전주·익산은 전주·완주보다 서로간에 필요한 것들을 정확하게 갖고 있다. 익산은 철도와 땅을, 전주는 인구와 이름값을, 완주는 삶의 질이 높은 안정된 배후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세 도시가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며 그 에너지를 모아 중부권 발전에서 역할을 찾아 전북의 미래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할 때 사람들은 가슴이 뛸 것이다. 주민투표로 결정하고 5년 후 시행 정도의 완충기를 만들어두면 정치인들도 큰 손해를 입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단계적 통합이라커니 씨알도 안먹히는 연담도시론 따위는 그만 말하면 좋겠다. 정치는 미래를 내다보며 현실에서 도저히 실현되기 어렵다는 꿈같은 일들을 해내는데 그 본연의 의미가 있다. 지금이야말로 전북에 큰 정치가 필요한 때다. 이 이야기가 너무 요사스러운가. 그렇다면 당신들이 지금 이대로의 정공법으로 전북을 한번 바꿔보시라. /원도연 (원광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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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06 15:12

지방의원 해외 연수의 변신

지방의원 부정 이미지에 해외 연수를 둘러싼 추태 논란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의원 입장에서도 그만큼 신경 쓰이고 부담감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주민들 표정은 매우 못마땅하다. 의정 활동도 시원치 않은 상황에서 관광성으로 비춰지는 해외 연수에 대해선 일단 부정적이다. 마치 MT가는 양 의례적인 데다 무늬만 연수지 관광 의도가 노골화 되다시피 해 언론 표적이 된 지 오래다. 주위의 이런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의원들이 해외 연수에 강한 의욕을 보이는 걸 보면 오해받기 십상이다. 이같은 논란 속에 얼마 전 전주시의회가 12대 들어 추진하는 해외 연수 시민 보고회를 갖고 소통의 장을 마련해 눈길을 끌었다. 물론 해외 연수는 사전에 공무출장 계획서 제출과 심사 과정을 거쳐 전체 윤곽을 잡는다. 절차와 규정 등이 촘촘하게 규정돼 있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문제 제기를 하는 건 연수 목적과 달리 관광이 주를 이룬다는 것. 누가 봐도 본말이 전도된 상황에서 기관 방문 1-2군데는 구색 맞추기로 끼워 넣기 일쑤다. 심지어 결과 보고서도 인터넷을 베끼고, 여행사가 써준 그대로 제출한다. 그렇다고 연수 기관 시찰 위주로 무미건조한 스케줄이 짜여진다고 해도 효과는 의문시된다. 연수 취지와 관광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견문도 더 넓힐 수 있는 대안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핵심 과제는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만큼 연수 결과를 어떻게 연결시켜 시민 이익으로 반영하느냐 여부다. 무엇보다 연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대안 제시에 주목한다. 3-4명 소그룹 단위는 기관 섭외와 통역, 항공권 등 비용 상승이 만만치 않아 가급적 파하는 게 상책이다. 인터넷 정보 홍수시대 여러 나라를 ‘찔끔 연수’ 하는 것보다 한 국가에서 3-4개 주제를 집중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예를 들면, 의원 전체가 동행하되 상임위별로 현지 연수는 별도 진행하는 식이다. 사전 예약과 일정 조율이 쉽고 경비를 절약해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다. 덧붙여 시장 군수와 지방의원 포함해 국회의원, 관계기관까지 함께 팀을 꾸리는 방안도 관심을 끌었다. 다소 껄끄러운 동행이지만 지역발전의 큰 틀에서 보면 공감대 형성과 추진 동력 확보라는 일석이조 효과가 있다. 아직은 해외 연수에 대한 시민 여론이 곱지않은 상황에서 시민 보고회조차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 설령 그렇더라도 시민들과 함께 공개 장소에서 연수 결과를 놓고 해법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진일보한 평가를 받는다. 주민들의 부정적 시선을 의식하고 나름 새로운 돌파구 모색의 일환으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실제 이런 과정을 통해 다양한 의견이 모아짐으로써 시민 이익과 부합되는 연수 결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잘못된 점을 번연히 알고도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다른 지방의원도 이처럼 시대 흐름에 부응하는 긍정적 변화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영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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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곤
  • 2023.08.03 19:07

천리향

아파트 정원에 천리향 한 그루를 심었다. 세 번이나 생명이 날아간 나무를 버리면서 다시는 사 오지 않겠다던 약속을 깨고 또 사 온 것이다. 늦은 봄 대추나무 묘목을 사러 갔다가 없다기에 엉뚱하게도 생각지도 않은 나무 몇 그루를 사 왔다. 그랬더니 주인은 뿌리가 없는 대추나무 두 그루를 덤으로 주면서 잘하면 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일단 받아놓고 '천리향은 없느냐?' 물었더니 있긴한데 키는 좀 크지만, 잎이 한쪽만 나와 반값에 주겠다고 해서 가져온 것이다. 천리향은 중국이 원산지로 원래 이름은 '수향나무'인데 향기가 천 리까지 간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어느 스님이 잠결에 발견한 향기로운 나무라는 뜻으로 '수향'이라고 불렀다가 풍기는 향이 상서로워 '서향(瑞香)'으로 바꿔 불렀다는데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 나무다. 아무튼, 이번에는 이 나무가 잘 자라서 내년 3월이면 집안을 온통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 채워줄 거라 기대하며 사랑과 정성을 쏟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2~3주 정도 지나자 잎이 마르고 점점 생기가 없어 보였다. 잘못했다가는 또 죽일 것 같아서 꽃가게에 들러 어떻게 해야 나무를 살릴 수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천리향 뿌리는 습기에 약해서 너무 습하면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곰곰 생각해 보니 부모의 과잉보호가 아이를 망치듯, 지나친 관심으로 물을 많이 줘서 역효과가 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화분을 뒤집어 보았더니 아닌 게 아니라 흙이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어서 얼른 마른 흙으로 바꿔주었다. 하지만 좋아지기는커녕 잎이 날마다 누렇게 변해가더니 이윽고 까매져 말라붙었다. 이제 더는 살 가망이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미련이 남아 뽑아버리지 못하고 화분을 아파트 화단 철쭉꽃 사이에 끼워 놓았다. 그리고 밖에 나갈 때 수시로 들여다보며 이제는 버려야지, 버려야지 하던 어느 날, 아니 이게 웬일인가. 새까만 나뭇가지의 마디마다 볼록볼록 파릇한 생명을 물고 있는 게 아닌가? 어제까지만 해도 죽은 줄 알았더니 이렇게 기사회생을 하다니? 화단에 내다 놓은 지 한 달쯤 되었을까? 홀로 더위와 장마를 견디며 사투를 벌이더니 가지 끝에서부터 싹을 틔우며 푸른 잎이 하나둘 돋아나서 바람에 나풀거린다. 신통하고 기묘한 그 모습이 예뻐서 그냥 보고만 있어도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하마터면 한 생명을 버릴 뻔했는데, 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슴 벅찬 일인가? 순간 나는 생명이란 쉬 단정 지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향나무에 정말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살릴 수 없다고 포기했던 천리향이 자연의 품에서 삶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니, 자연의 힘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 속에서 삶을 배우며 오랫동안 잘 참고 견뎌준 천리향의 강인한 생명력과 자연의 경이로움에 새삼 고개가 숙어진다. 어느 시인은 '그 어떤 소리보다 아름다운 언어의 향기...천리 밖에 있어도 가깝게 느껴져 마음속 깊이 간직했던 말 없는 말을 천리향의 향기로 대신 한다'고 예찬했다.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아주 작은 꽃들이 모여 있지만 어느 꽃보다도 향기로움이 맘을 사로는 천리향, 베란다에서 월동하며, 하루에 2~3시간 정도의 햇빛만 들어와도 자라고 꽃피는 데는 문제가 없는 천리향, 오늘도 그대가 있어 행복하다. △한일신 수필가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전북문협, 영호남수필문학회, 전북수필 회원이며 수필집 '내 삶의 여정에서', '징검다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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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03 17:45

카르텔과 피로

얼마 전, 전국적으로 유례없는 홍수를 겪었다. 궁평 지하차도 참사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발생했다. 어릴 적 겪었던 한 철 ‘장마’가 아니라 ‘도시 재난’으로서 홍수를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이른바 ‘물의 재난’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 기분을 더 심란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정부의 대응이었던 것 같다. 홍수 직후 해외 순방에서 돌아온 대통령은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에 대한 보조금을 전부 폐지하고 그 지원으로 수해복구와 피해 보전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최근 들어 ‘이권 카르텔’에 대한 언급을 마주하면 피로감이 밀려온다. 노조·시민사회에 이어 입시까지 ‘카르텔과의 전쟁’에 휘말렸다. 가뜩이나 경제도 어려운데 ‘국민의 혈세’가 기득권 혹은 특정 세력에게 ‘남용’된다는 정부의 언급은 언론을 통해 자극적으로 소비됐다. 정부,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모두 마찬가지다. 그런 것을 보면 한편으로 ‘카르텔’이라는 의미를 대체 제대로 알고 쓰는 것일까 의문도 든다. ‘카르텔’의 사전적 의미는 이윤 극대화를 위해 경쟁을 제한하는 담합을 맺고 독점하는 형태를 말한다. 분야에 따라 특수한 카르텔이 있을 수 있지만, 지금 논란이 되는 정치 현안에서 카르텔을 운운하는 것이 적확한 표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자극적인 표현으로 서로를 공격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인정하지 않고, 비난하고 공격하기 위한 자극적인 말. 물론 이러한 문제는 비단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몇 가지 정치 사안이나 바뀌고 있는 운영방침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는 국가든 지자체든 정권이 바뀌면 모든 곳에서 규모는 다르지만 비슷하게 겪는 문제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데 있어서 원색적인 비난과 단호한 결단력만이 답일까? 과거 한때는 무조건 리더의 의지와 뜻을 관철하는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이 덕목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떠했나? 대부분 성장, 개발, 발전이라는 목표에 가려져 많은 갈등을 등한시했고 그때 해결되지 못한 것들은 상처로 곪아 첨예한 갈등, 불신과 같은 더 크고 새로운 문제를 야기했다. 결국 우리가 문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진짜 필요한 것은 느리더라도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의사결정에서 배제되었다고 느끼는 주체들은 억울함과 불안함을 느낀다. 설문조사나 단발성으로 진행되는 형식적인 공청회는 이런 불안과 불만을 잠재우지 못한다. 지금까지 주민이나 주체를 단순히 어떤 정책의 수혜자, 결정에 필요한 숫자로 파악하는 형식적인 거버넌스는 해결 방법이 되지 못했다. 제시된 과학적 증거, 전문가의 견해, 계량화된 수치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탓하는 게 옳은 방법이었을까? 상호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아무리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해도 무력할 수밖에 없다. 첨예한 갈등일수록, 충분한 토론과 합의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이유다. 우리의 과제는 명확하다. 의사결정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아닌,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시민, 이해관계자들이 충분한 토론과 숙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기다려 주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일수록 한 사람의 단호한 결단력, 자극적인 수단보다는 충분한 토론과 숙의, 느리더라도 효과적인 해결책을 선택해야 한다. /오민정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 공생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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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03 16:19

한여름의 책읽기

여름엔 바닷가나 숲속 휴양지에서 알베르 카뮈의 '결혼·여름',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 같은 책을 읽기에 좋다. 이 목록은 내가 젊은 날에 읽고 여름마다 되풀이해서 읽는 책이다. 범벅하게 말하자면 독서란 일탈, 해방, 몽상, 그리고 무위를 통해 누리는 한 조각의 행복이다.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는 '세 글자로 불리는 사람'에서 '책들은 고요해진 언어의 대양에서 일어나는 파도 같은 것이다. 책들은 포말처럼 솟구친다'(파스칼 키냐르, 74쪽)라고 쓴다. 도처에 흩어져 있는 독자들은 언어의 대양에서 일어나는 파도에 온몸을 맡기고 몽상의 바다를 떠도는 걸 좋아한다. 한여름 울어대는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나무 그늘 아래서 책 읽는 일이다. 내 경우는 그렇다. 나는 동물 사체에 맹금류들이 두 날개를 펼친 채 달려들어 맹렬하게 살을 찢고 삼키듯이 책을 읽어왔다. 조류가 제 발톱과 부리로 먹잇감을 물고 뜯으며 삼키는 일과 독서는 마치 쌍둥이처럼 닮았다. 우리는 맹금류가 동물 사체를 뜯고 삼켜서 영양분을 취하듯이 책에서 정신의 자양분과 타인의 욕망과 살아감의 기쁨을 얻는다. 잘 알다시피 책은 각종 문자로 이루어진다. 문자는 점토판, 피피루스, 양피지, 죽간, 종이 위에 제 형태를 드러낸다. 책은 각종 문자의 집합이고, 문자는 의미를 기호화한 것이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문자를 도약대 삼아 의미계로 솟구친다. 문맹인은 의미 없음에 방치된 채로 음지의 세계에 떠돈다. 반면 의미의 빛으로 넘치는 책을 손에 쥐고 읽는 자는 어둠에서 나와 빛의 세계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며 나아가는 셈이다. 독자란 잠들지 않고 깨어서 홀로 책을 읽는 사람들이다. 독서가들이란 대개 빛을 훔치는 밤의 도둑이거나 항상 깨어 있다는 뜻에서 밤의 야경꾼들이다. 밤은 낮을 훔치고, 새는 곡식의 낱알을 훔친다. 달은 발광체가 아니지만 태양의 빛을 훔쳐 은빛 반사광으로 지상을 물들인다. 책 읽기는 그 본질에서 무언가를 훔치는 행위다. 책을 읽는 자들은 지식을 훔치고, 타인의 욕망을 훔치며, 일찍이 제가 누리지 못한 꿈과 동경을 훔친다. 훔친다는 것은 타인의 벽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 들어가 제 존재를 숨긴 채 무언가를 '먹고, 삼키는'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애써 책을 읽을 이유가 없다. 독서 욕망은 제 밖의 세계를 내 안으로 들인다는 점에서 도둑질이고 탐식이다. 책 읽기는 한가로운 소일거리, 고독한 취향, 무한한 기쁨을 누리는 일을 넘어서서 탈취이자 폭식이며, 무용한 기쁨의 도취다. '인간은 기원과 본능의 영향권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문화, 포착, 함께-포착, 타인의 포식, 학습의 와중에서 태어난다. 그러므로 선재(先在)하는 세계를 훔쳐야만 한다'(파스칼 키냐르, 앞의 책, 61쪽). 온전한 사람이 되려면 아버지의 정신과 어머니가 주는 살 뿐만 아니라 다른 무엇도 필요한 법이다. 독서는 우리가 온전한 사람으로 빚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을 얻는 한 수단이다. 독서란 우리 보다 앞서 존재하는 세계에서 필요한 그 무언가를 훔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독서를 고요한 몰입의 행위라고 착각한다. 아니다. 책이 굶주린 자의 앞에 놓인 먹잇감인 한에서 독서란 책을 난폭하게 움켜잡고 책의 정수를 흡혈하는 행위다. 독서에 몰입한 자의 손과 입은 금세 피로 물 든다. 그들은 책을 찢고 삼킨 뒤에야 폭식의 충만감 속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다. 활짝 펼친 책을 본 적이 있는가? 잘 살펴보면 그것은 두 날개를 펼친 새와 같다. 누군가 읽고 있는 책은 양 날개를 펼친 채 공중을 나는 새다. 새들은 공중을 난다. 독서란 정신의 저공비행, 몰입의 현기증 속에서 나는 일, 상상의 비행(飛行)이다. 책에서 눈을 떼지 말고 그 문면을 따라가라! 마치 새가 어디론가 데려가듯이 책도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그런 뜻에서 독서는 항해이고, 여행이며, 모험이다. 책은 먼저 우리를 독서의 고독 속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러나 한 번은 살고 싶은 미지의 세계, 현실 저 너머 가상의 은신처로 데려간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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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03 16:19

현역병 입영대상자입니다. 입영일자를 연기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하나요?

현역병 입영대상자로서 입영일자를 연기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병역이행일 연기신청서'를 구비서류와 함께 입영일자 5일 전까지 병적지 관할 지방병무청에 인터넷 또는 우편이나 FAX로 제출하여야 합니다. 병역이행일 연기신청서를 제출하면 지방병무청장이 서류를 심사하여 그 결과를 핸드폰(알림톡) 등으로 개별통보하고 있습니다. 단 입영일자/입영부대를 본인이 선택한 사람은 입영일자 연기(질병, 직계 존·비속 간호, 천재·지변, 각군지원 사유자는 제외)처리 제한이 있습니다. 신청방법으로는 인터넷을 이용하는 경우에 병무청 누리집(www.mma.go.kr)에서 ‘병무민원 – 현역·상근입영 ― 입영일자 연기원 신청’ 경로를 통해 본인인증 후 연기신청할 수 있으며, 모바일(병무청앱 → ‘민원서비스 ― 현역·상근입영 ― 입영일자 연기원 신청’)로도 신청 가능합니다. 또한 지방병무청 누리집에서 주소 및 현역입영과 FAX번호를 확인하여 우편이나 FAX로도 연기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현역병 입영대상자가 입영일자 연기를 신청할 수 있는 사유 및 기간, 구비서류는 “현역병 입영업무 규정” 제22조부터 제26조 및 “생계유지곤란자 병역감면 처리규정” 제8조 제4항을 준용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경우 병무청 누리집을 통해 더욱 간편하고 자세하게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병역이행안내 ― 복무제도 ― 현역병·상근예비역 ― 입영일자연기’에서 확인 가능) 기본적으로 사유별 구비서류를 첨부하여 제출하면 통산 2년의 범위안에서 연기 가능하며, 연기 횟수는 5회를 초과할 수 없습니다. (단, 질병 또는 심신장애, 천재·지변 기타 재난, 취업자(24세 이하 취업)는 제외됩니다. 이외에도 의무자의 연령 및 병역사항 등에 따라 연기가 제한되거나 기타 특이사항이 있을 수 있으니, 구체적인 상담은 병무민원상담소(1588-9090)또는 지방병무청 현역입영과로 문의하여 주시면 자세한 안내를 받을수 있습니다. /전북지방병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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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0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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