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착취를 통한 성과주의가 만든 피로사회
 ‘일이 많아져서도 아니고, 스트레스가 늘어난 것도 아닌데 요즘 왜 이리 계속 피곤하지?’ 만성 피로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병원에 가고, 약을 먹고, 운동도 해 보지만 원인을 모르니 잘 낫지 않는다. 만성질환으로 굳어진다. 피로, 피곤함, 두근거림, 우울증,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등은 모두 현대인의 만성질환이다. 철학자 한병철은 저서 <피로사회>에서 현대인들은 이러한 질환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 유발자라고 진단하며, 이는 스스로를 착취하며 성과를 달성하는 피로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으로 본다. 보통 착취는 누군가-타자가 나를 향할 때 성립해왔지만, 지금은 우리 스스로가 자신에게 착취를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극도의 ‘성과주의’ 때문이다. 예전에는 ‘성과’를 강요하는 주체가 바깥에 있었다면, 현대에는 그것이 욕망이든, 되고 싶은 자아든지 내 안에 있다. 스스로 성과 목표를 설정하고 도달하지 못하는 자신을 꾸짖고 더 높은 목표를 세우고 돌진하는 식의 굴레에 갇혀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착취를 통한 성과 달성 방식은 생산성 향상에 최적이다. 노동자를 감시하는 장치도 필요 없고, 능률 향상을 위한 경쟁 유발 전략도 필요 없다. 개개인을 스스로의 경쟁자로 만들어 놓기만 하면, 과거의 자신보다 성과를 올리기 쉽고, 낙오한다고 해도 그것은 개인의 결함-무능력, 게으름-때문이니 스스로를 탓할 것이다. 시스템은 개인의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만 지급하면 된다. 누가 왜, 얼마나, 더 많이 받았다더라 등의 정보는 철저히 숨긴 채로. 이래야 자기 착취 구조를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해야 되는지 알려주지 않으므로, 항상 그 이상의 목표를 스스로 세워야 한다. 결국 이렇게 만들어진 성과 주체들은 감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열심히 일한다. “우리 ㅇㅇ맨은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당연히 인공지능을 활용해 효율적으로 일합니다.” 식으로 툭 던지면, 현대인들은 스스로의 시간을 투자해서 그런 사람이 기꺼이 되려고 한다. 운동도 열심히 해서 감기에 걸리지도 않아야 하며, 몸매 관리도 열심히 해야 한다. 그걸 우리는 자기관리 라고 부른다. 내가 세운 내 기준은 저 멀리 높고, 이를 쟁취하는 과정이 삶이고 기쁨이라는 생각. 이 틈을 만성 피로와 공황, 우울증이 파고든다. 자기를 착취하는 줄도 모른 채, 스스로 세운 성과 목표를 달성하고 보상받는 동안 정신과 몸은 망가지고 만다. 목적을 상실하고 성과만 존재하는 자기주도 학습, 스스로 달성 목표를 세우는 기술, 성과에 따른 공정한 보상에 대한 찬미 등에만 매몰된 성과주의사회는 초경쟁사회의 세련된 버전일 뿐이다. 그렇다면 만성 피로가 나를 덮치기 전에, 불안감과 초조함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바로 ‘멍 때리기’를 실천하는 것이다. ‘휴식’이나 ‘느리게 살기’가 아니다. 이런 방식은 성과 달성을 위한 재충전 시간이거나 바쁘게 살기의 반작용이므로 결코 자기 착취 구조를 깨지 못한다. ‘멍 때리기’는 많은 전문가들이 실제로 제시하는 꽤 효과적인 치료법이다. 여기에 걷기를 추가한다면, ‘사색하는 산책’ 솔루션이 만들어진다. ‘멍 때리며 걷기’의 핵심은 아무 생각 없이(최대한), 목적지를 정하지 말고, 무작정 걷는 것이다. 강변이든, 골목길이든, 공원이든, 운동장이든 어디든 상관없다. 평소에 익숙하지 않은 곳, 익숙하지 않은 시간이면 더 좋다. 계획하지 않고, 측정하지 않고, 방해받지 않고(휴대폰을 끄라는 뜻), 음악도 듣지 않고, 주변의 소음과 변화를 온 몸으로 느끼면 된다. 산들바람과 새소리, 물소리, 새벽의 먼지 냄새, 계절의 변화가 우리를 시간을 초월한 존재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는 사이 달콤하게 보이던 성과 목표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우리 존재를 천천히 조금씩 채워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박형웅 전주대 실감미디어혁신공유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