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2-21 04:09 (Su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오목대] ‘히잡’ 쓴 여성 지휘자

최근 화제가 된 공연이 있다. 이란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파니즈 파르유세피가 지휘한 테헤란심포니오케스트라의 무대다. 지난 11월 13일, 테헤란의 바다트홀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파르유세피는 머리에 검은색 히잡을 쓰고 손목과 발목을 완전히 가린 검은색 옷을 입고 지휘봉을 잡았다. 테헤란심포니는 이란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오케스트라지만, 여성 지휘자가 공연을 이끈 것은 처음이었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히잡 착용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여성의 공적 활동을 까다롭게 규제해 왔다. 음악과 공연 예술 분야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오케스트라 지휘는 남성의 영역이어서 대형 콘서트에서 여성이 지휘자로 무대에 서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더욱이 테헤란심포니는 여성 단원이 있긴 하지만, 국가 공식 행사에서는 남성 단원만 연주에 참여시킬 정도로 보수적인 오케스트라다. 파르유세피의 테헤란심포니 지휘에 세계적 관심이 쏠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란의 히잡 문화는 이슬람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귀족 여성들이 착용했던 히잡이 시작인데, 이때의 히잡은 종교적 규범보다는 신분과 품위를 상징하는 의미가 강했다. 이후 이슬람이 확산되면서 히잡 문화도 널리 자리 잡았지만, 20세기 초 팔라비 왕조 시대에는 근대화를 앞세워 오히려 히잡을 금지하기도 했다. 이러한 히잡이 여성의 공적 규범으로 의무화된 것은 이슬람혁명 이후다. 히잡은 이때부터 단순히 종교 규범이 아니라 이슬람 체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법적 장치로 기능했다.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히잡 의무화는 체제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수단이었고, 여성의 공적 활동을 규제하는 핵심 도구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여성들의 히잡 의무화에 대한 저항 운동이 시작되면서 히잡은 이란 사회의 주요 정치 이슈이자 저항의 상징이 됐다. 사실 여성의 공적 활동이 제한되어 있는 이란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여성 지휘자는 여전히 소수다. 갈수록 여성 지휘자들이 늘고 있지만,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이름을 올린 지휘자는 10% 남짓에 불과하다. 예술적 역량과 성취에도 불구하고 오케스트라 무대가 여성 지휘자들에게 여전히 높은 벽이라는 증거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의 공적 활동에 가장 보수적인 이란의 첫 여성 지휘자가 된 파르유세피의 등장은 의미가 크다. 파르유세피는 그날 연주를 여성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꾸렸다. 여성들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여주려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는 “내 경험이 다른 음악가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음악을 넘어 사회와 시대를 향한 선언, 그 울림이 깊다. 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5.11.25 18:13

[새벽메아리] 기본소득, 더 늦기 전에 : 사회적 대화를 시작할 시간

저성장과 인공지능(AI) 혁명이 겹쳐지며 한국 사회의 근본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성장률은 2%대에 머물고, 청년 실업과 불안정 노동은 일상이 되었다. AI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노동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단순 반복 업무뿐 아니라, 사무직·운송·서비스 등 중간 기술 직종까지 자동화의 파도가 밀려온다. 산업의 효율성은 높아지지만, 생산성의 열매는 소수 자본에 집중되고, 대다수 시민은 소득과 일자리의 불안정 속으로 밀려난다. 부의 집중과 중산층의 붕괴가 전 세계적으로 가속화되는 이유다. 이제 “열심히 일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새로운 사회적 안전망을 고민해야 한다. 바로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조건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일정한 현금이다. 이는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기술·경제 구조 변화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생존을 지켜내는 최소한의 토대다. 물론 기본소득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여전하다. 막대한 재정 부담, 근로 의욕 저하, 보편성과 형평성의 딜레마 등 여러 비판이 뒤따른다. 하지만 이런 논쟁이야말로 우리가 사회적 대화를 시작해야 할 이유다. 중요한 것은 ‘기본소득이 가능한가’의 찬반 구도가 아니다. ‘어떤 기본소득이 지속 가능하고 사회적 대안을 줄 수 있는가’를 함께 설계하는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프레임 속의 논쟁이 아니라, 현실적 해법을 찾기 위한 공론화다. 이미 한국 사회는 여러 실험을 통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일시적 기본소득의 형태로 지급되었고, 지역화폐를 활용한 경기 활성화 효과가 입증됐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도 같은 맥락이다. 전북 순창군은 전국 7개 시범지역 중 하나로 선정돼 2026년부터 모든 군민에게 매달 15만 원을 지급한다. 농촌의 고령화와 소득 불안정 문제를 완화하고, 지역 내 소비 순환을 촉진하려는 시도다. 이는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지역경제 모델을 실험하는 사회적 실험장이기도 하다. 이처럼 기본소득은 ‘돈을 나눠주는 정책’이 아니라, 변화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회 계약의 모색이다.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이다. 기본소득은 시민이 최소한의 경제적 독립을 갖고 자신의 삶을 설계할 수 있게 만드는 제도이며, 나아가 모두가 배제되지 않고 참여할 수 있는 공동체의 기반이다. 기본소득 논의는 더 이상 일부 정치인의 공약이나 이념적 논쟁에 머물러선 안 된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삶, 나아가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문제다. 재원 마련의 어려움, 제도 설계의 복잡함, 형평성 논란 모두가 공론의 장에서 다뤄져야 할 과제일 뿐, 논의를 멈출 이유는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저성장과 인구 감소, 기술혁신이라는 거대한 구조적 변곡점 위에 서 있다. 위기는 곧 기회다. 새로운 경제 질서와 사회적 연대를 모색할 수 있는 전환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세대와 지역, 계층, 정치적 입장이 참여하는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대화’가 절실하다. 기본소득은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공동체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 대화를 시작할 시간이다. 늦기 전에. 양병준 전북희망나눔재단 사무국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5.11.25 18:13

[기고] 배움은 나를 살리고, 남을 살립니다

우리는 종종 ‘배움은 자신을 성장시킨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정한 배움은 나를 넘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때 더 깊어지는 법이다. 심폐소생술(CPR)은 그 대표적인 예다. 한 번 배운 기술이 누군가의 인생을 되살릴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심정지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질병관리청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약 3만 명이 급성심장정지로 쓰러진다. 생존율은 여전히 10건 중 1건에도 미치지 못하며, 특히 병원 밖 가정이나 공공장소에서 발생한 경우에는 더욱 낮다. 전체 환자의 절반가량이 가정 내에서 쓰러지지만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하기까지는 평균 7분이 걸린다. 뇌세포는 단 4분만 산소 공급이 끊겨도 회복이 어렵다. 결국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문 인력의 구조 활동이 시작되기 전 주변 사람이 얼마나 빠르게 대처하느냐가 관건이다. 심폐소생술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의식이 없고 숨이 멎은 사람이라면 119에 신고하고, 가슴을 강하고 빠르게 눌러야 한다. 자동심장충격기(AED)가 있다면 안내 음성에 따라 차분히 사용하면 된다. 단 몇 분의 행동이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이 망설인다. 오래전 학교에서 형식적으로 배웠던 이론이나 희미하게 남은 기억만으로 시행한 심폐소생술이 환자를 더 위험하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실제로 심정지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면 생존 가능성이 2~3배 높아지지만, 정작 이를 시도한 일반인은 전체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결국, 심폐소생술만이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심폐소생술과 자동심장충격기(AED) 사용법 교육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모두가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자 생명안전의 출발점이다. 심폐소생술과 자동심장충격기(AED) 교육은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전국 각지에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교육에 참여한 이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처음엔 무서웠지만, 이제는 누군가 쓰러져도 도와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 번의 배움이 생명을 살리고, 그 경험이 또 다른 배움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이러한 배움이 생명을 살린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전북 부안에서는 적십자 봉사원이 심폐소생술 교육을 통해 쓰러진 어르신의 생명을 구했고, 경기와 울산지사에서도 응급처치 강사가 즉각적인 조치로 생명을 살려 표창을 받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배움이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즉 교육이 한 사람의 생명을 바꾸는 기적을 만든 셈이다. 심정지는 언제,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다. 버스정류장, 사무실, 혹은 가족의 식탁 앞에서도 말이다. 그래서 심폐소생술은 선택이 아니라 시민 모두의 의무이며, 그 시작은 한 번의 배움이다. 배움은 결국 행동으로 완성된다. 누군가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이어질 때, 우리 사회는 더 안전해진다. 대한적십자사는 그 마음의 가치를 믿으며 누구나 안전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 오늘 당신의 배움이 내일 누군가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것이고 그 생명이 또 다른 희망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가까운 날, 단 몇 시간만 투자해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아보자. 그 한 걸음이 생명을 살릴 수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5.11.25 18:13

[조상진의 열린생각] 전주와 경주 APEC

이달 초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성공리에 끝났다. 회의가 열린 경주는 한동안 한국과 세계의 임시수도 같았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비롯해 갓 취임한 일본 다카이치 총리 등 20여 개국 정상들이 모여 세계적 화두를 논의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정상회의가 끝난 후 “영혼까지 갈아 넣으며 총력을 다했다”고 말해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를 보여줬다. 경주에서 열린 이 회의가 성공한 이유는 뭘까. 세계사적 대전환기에 한국의 경제적 위상이 높아진 점도 있겠지만 K컬처 등 한국의 문화적 저력이 뒷받침된 덕이 아닐까 싶다. 회의 기간 내내 나는 경주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같은 천년고도(古都)로서, 경주의 눈부신 성과가 어디서 온 것인지, 만약 전주에서 이런 국제적 회의가 열린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했다. 우선 경주부터 보자. 경주는 BC 57년에서 935년 통일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천년(992년) 동안 신라의 수도였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전성기에는 17만8천여 호가 살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번창한 국제도시였다. 4인 가구로 치면 70만명이 넘는 도시로,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과 견줄만한 규모였다. 금으로 입힌 집(金入宅)이 35채가 있었고 절과 탑이 별처럼 가득했다. 하지만 고려 이후에는 한반도의 동남쪽 귀퉁이에 치우친 탓에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60∼70년대는 중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지로 겨우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다 1970년대 초, ‘경주관광종합개발 10개년 계획’이 추진되고 2019년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엄청난 재원이 투입되었다. 그 결과 경주는 독보적인 역사문화도시로 자리 잡았다. 그 저력이 이번 경주 APEC 회의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한미·한중 정상회의가 열린 국립경주박물관에는 우리나라 금관 6점을 한데 모은 특별전을 열어 ‘황금의 나라 신라’를 세계에 자랑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에게 선물한 천마총 금관모형과 나전칠기 쟁반, 그리고 지드래곤 공연 등은 외신을 타고 전 세계로 타전되었다. 이와 함께 솔거미술관, 우양미술관, 오아르미술관, 경주 플레이스C에서는 굵직굵직한 전시와 부대행사가 열려 눈길을 붙잡았다. 그러면 천년고도 전주는 어떨까. 전주는 후백제의 왕도요 조선왕조의 탯줄이다. 한 도시가 두 왕조에 걸친 경우는 전주가 유일하다. 후백제는 비록 존속기간이 짦았으나 중세의 문을 활짝 연 역동적인 국가였다. 영역도 호남과 영남, 충청을 아울렀으며 고구려 영토까지 회복하려 노력했다. 이후 조선왕조를 탄생시켰고 태조 이성계의 발자취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 전주다. 이번 경주 APEC에서 봤듯 이제는 역사와 문화의 시대다. 단순히 문화가 세계 외교무대의 장식품이 아니라 메시지요 돈이다. 가령 죽은 자들의 집인 고분(고총)을 보자. 신라 고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경주 노사동 오아르미술관은 왕릉뷰로 대박을 터뜨렸다. 개관 6개월만에 20만명이 찾았다. 또 강원도 원주의 ‘뮤지엄 산’에 조성된 돌의 정원(Stone Garden)은 신라 고분을 모티브로, 핫플이 되었다. 전북에도 경주 천년의 미소와 같은 막새가 동고산성에서 나오고 장수 삼봉리·동촌리에는 가야 고분이 즐비하다. 백범 김구선생은 1947년 <나의 소원>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마침 백범이 유네스코가 선정한 ‘2026년 세계 기념인물’로 결정되었다. 전북이 산업화에는 뒤졌으나 역사문화자원은 다양하고 풍부하다. 전주 또한 경주 못지않은 역사문화도시로 우뚝 솟았으면 한다.

  • 오피니언
  • 조상진
  • 2025.11.25 18:12

[현명한 소비자가 되는 길] 손해보험 소비자분쟁, 88.0%가 보험금 지급 관련 불만

손해보험 관련 소비자분쟁 대부분이 보험금 지급과 관련한 것으로 나타나 소비자의 주의가 요구된다. 한국소비자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22년~2025년 상반기) 접수된 손해보험 관련 피해구제 신청 중 보험금과 관련한 분쟁이 9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3년간 손해보험 피해구제 신청 현황을 분석한 결과, 중장년층의 피해가 두드러졌다. 신청 연령의 74.4%(1,829건)가 40~60대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50대의 비중이 29.1%(716건)로 가장 높았다. 보험 종류별 신청 건수는 실손보험이 42.0% (1,034건)로 가장 많았고, 이어서 건강보험 35.5%(874건), 상해보험 7.2%(177건), 자동차보험 5.9%(144건) 등의 순이었다. 신청 이유는 보험금과 관련한 분쟁이 88.0%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구체적인 신청 사유는 ‘보험금 미지급’이 64.2%(1,579건)로 가장 많았으며, 보험금액 산정 불만도 20.4%(501건)으로 높은 비중을 보였다. 피해구제 신청 건을 사업자별로 분석한 결과, 신청 건수는 메리츠화재해상보험(주)이 465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서 현대해상화재보험(주) 452건, DB손해보험(주) 359건 등의 순이었다. 보유계약 100만 건당 피해구제 신청 건수는 흥국화재해상보험(주)이 44.3건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롯데손해보험(주) 29.8건, 메리츠화재해상보험(주) 27.6건 등의 순이었다. 8개 사업자의 평균 합의율은 28.3%이었으며, 사업자별로는 삼성화재해상보험(주)이 31.1%로 가장 높았고, 현대해상화재보험(주)이 23.2%로 가장 낮았다. 전북소비자정보센터 김보금 소장은 소비자 보험 관련 피해 예방을 위해 △비급여 등 고가의 치료를 받기 전 가입한 보험사의 심사기준을 꼼꼼히 확인할 것 △보험금 지급과 관련한 병원 관계자의 설명을 확약으로 오해하지 말 것 △객관적인 근거자료(의무기록, 소견서 등)를 마련해 분쟁 발생에 대비할 것 △보험사에서 요구하는 의료자문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을 들은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할 것 등을 확인해 보도록 당부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5.11.24 18:33

[사설]전북 인구 위기, 찔끔찔끔 대책으로 되겠나

전북자치도가 전국에서 최악을 달리고 있는 인구 감소를 반전시키기 위한 대책으로 여러 카드를 내놓았다. 반할 주택, 결혼 비용 지원, 패밀리카 지급, 출신 급여 등이 그것이다. 그동안 출산장려금에 편중됐던 인구정책을 주거·결혼·출산·보육까지 생애주기 전 단계로 확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없지 않다. 하지만 예산 규모가 지나치게 적고 항목별로 찔끔찔끔 나눠 놓아 실효성이 의문이다. 더구나 핵심인 양질의 일자리 확충이 전제되지 않아 과연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알 수 없다. 전북의 인구는 한때 252만명이었으나 계속 줄어들어 현재 172만명까지 내려앉았다. 통계청이 발표한 ‘시·도별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52년에는 145만명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청년인구가 해마다 8000명 안팎으로 유출되는 등 계속 인구가 빠져나간 결과다. 이를 돌이키기 위해 14개 시군과 전북자치도가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백약이 무효다. 국가 전체적으로 인구가 줄고 수도권 집중화가 너무 공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에서 지적하듯 정부나 지자체가 지방소멸과 인구 감소에 대비해 관성적으로 화두만 던질 뿐 진정으로 절박한 해결 의지가 있는지는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전북자치도가 이번에 내놓은 대책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26년 본예산안에 반할주택 300호(35억 원), 스드메 결혼비용 100만 원(600쌍), 3자녀 이상 가구 패밀리카 500만 원(500가구), 청년 소상공인·농업인 출산급여(최대 90만 원) 등 인구정책 신설·확대 항목을 담았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로 인구 감소 위기를 막겠다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다. 그리고 가장 핵심은 양질의 일자리다. 지방행정연구원이 올해 3∼4월 전국 지자체 인구정책 담당 공무원 186명을 상대로 ‘지자체 인구 감소 인식 조사’를 한 결과, ‘지역의 인구 감소 또는 증가의 가장 큰 원인’으로 산업·일자리(69.4%)를 꼽았다.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가장 중요한 부문’도 산업·일자리(86.0%)였다. 반면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우선해 추진 중인 정책’이 산업·일자리란 응답은 36.0%에 그쳤다. 전북자치도가 열악한 예산 상태에서 인구정책을 내놓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예산 우선순위 조정과 대학, 기업과의 연계전략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5.11.24 18:31

[사설] 전통시장 교통안전 커다란 허점 많다

전통시장은 수많은 행인이 오가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각종 차량이 드나들면서 교통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수십년 전부터 전통시장에선 으레 그러려니 하는 풍경이지만 최근 들어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잇따르면서 전통시장 차량 진입에 대한 확실한 기준이나 그에 따른 단속이 필요한 실정이다. 차도와 인도 구분이 없는 큰길 위에 차량과 행인이 뒤엉켜 다니면서 언제든 대형 교통사고가 날 수 있는 뇌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통시장을 오가는 행인이나 운전자 중에는 고령자가 많아 가장 취약한 교통안전 사각지대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부 전통시장의 경우 유동인구가 많은 시간엔 차량 통행은 막고 있으나 대부분 아무런 제한을 하지 않고 있다. 최근 경기 부천 제일시장에서 1톤 트럭이 돌진해 무려 21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참사가 있었다. 고령 운전자나 건강 이상자의 차량 돌진 사고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는 쓰디쓴 교훈을 준 사고였다. 경찰은 시장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해 온 A씨가 가게 앞에 물건을 내린 뒤 이동하는 과정에서 브레이크 페달이 아닌 가속 페달을 잘못 밟아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유형의 사고는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2월 김제 요촌동의 한 전통시장에서는 60대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1톤 과일 트럭을 들이 받아 4명이 중경상을 당했다. 전통 시장은 그 특성상 보행로가 매우 협소해서 사람과 차량·오토바이 등이 뒤엉켜 이동하고 물건 판매대는 좁은 도로를 더 좁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과거엔 전통시장에서 큰 교통사고가 발생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안전문제가 등한시 됐으나 요즘엔 심각한 위험 요인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고령 운전자나 각종 질환을 앓고 있는 운전자가 치명적인 실수를 하는 일이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본보가 전주시내 전통시장 몇곳을 직접 취재한 결과,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위험 요인이 상존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부는 과속방지턱을 설치하거나 차량 진입을 막는 등 나름의 대책을 추진중이었으나 큰 틀에서볼때 교통안전 사각지대임엔 분명하다. 다소의 불편이 뒤따르더라도 전통 시장을 오가는 이들의 안전이 더 확실하게 보장되는 쪽으로 일제 정비가 필요할 때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5.11.24 18:30

[오목대] 새만금~전주, 그리고 포항 가는 길

15년이 걸렸다. 공사기간만 따지면 7년 6개월이다. ‘새만금~전주 고속도로’가 22일 마침내 열렸다. 지난 2010년 9월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해 사업 추진이 확정됐고, 이후 실시설계 등 후속절차를 거쳐 2018년 5월 첫 삽을 떴다. 당초 예정된 사업기간은 2024년 12월까지였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를 앞두고, 전북특별자치도가 국제행사 이전 조기 개통을 정부와 관계기관에 강력 요청했다. 정부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들의 흔한 립서비스였다. 조기 개통은커녕 예정보다 1년이나 늦춰졌다. 연약지반과 잇따라 발견된 고대 유물, 그리고 송전탑 이설 작업 등이 이유였다. 어쨌든 도로는 개통됐다. 끝이 아니다.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 새만금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내달린 이 도로의 최종 목적지는 경북 포항이다. 사실 새만금~전주 고속도로는 전북의 오랜 현안인 동서 3축 ‘새만금~포항 고속도로’의 한 구간이다. 새만금~전주 구간이 개통되면서 전체 311km 중 약 65%(201km)가 완성됐다는 게 국토교통부의 설명이다. 정부가 지난 2021년 확정, 발표한 ‘제2차 국가도로망 종합계획(2021~2030)’에 담긴 국가 간선도로망은 ‘동서 10축, 남북 10축, 6개 순환망’이다. 이 중 동서 3축, 즉 한반도를 동서로 연결하는 간선도로망 가운데 남쪽에서 3번째 횡단축으로 계획된 고속도로가 ‘새만금~포항’ 라인이다. ‘새만금~전주~무주~성주~대구~포항’을 잇는 동서 3축 구상은 1990년대 말부터 나왔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 공식화됐다. 그러면서 전북의 교통 청사진에도 포함됐다. 이후 공사는 구간별로 제각각 진행됐다. 동쪽 대구~포항 고속도로가 2004년 12월 가장 먼저 열렸고, 2007년 익산~장수 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이를 경유하는 방식으로 전주~무주 구간이 어정쩡하게 연결됐다.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대선 공약에 ‘전주~대구 고속도로를 추가 건설해 새만금에서 포항까지 연결하겠다’고 명시했다. 이어 지난해 7월 열린 전북 민생토론회에서도 이를 재차 약속하면서 지역사회의 기대를 키웠다. 그리고 지난달 말 산악지대인 무주~성주~대구 구간이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사업으로 선정돼 사업 실행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전주~무주 구간이다. 전북특별자치도는 전주~장수~무주(75km)로 이어지는 기존 우회노선 대신, 전주~무주(42km) 직선 노선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우선 국가도로망 계획에 반영시켜야 한다. 동서 3축 새만금~포항 고속도로는 국가 교통망의 한 축이자, 균형발전의 통로다. 속도전이 필요하다. 새만금~전주 고속도로의 길이는 고작 55.1km다. 개통의 의미가 작지 않지만, 부족하다. 효과를 더 확장해야 한다. 동서내륙을 완전하게 연결해 국토의 대동맥 역할을 맡겨야 한다. 만만치 않다. 내륙 산악지대를 넘어 동해안으로 가는 길은 더 멀고 험하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5.11.24 18:30

[문화마주보기]중앙의 문화정책, 이젠 속도보단 방향이다

최근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위원장 은희경)와 대중문화교류위원회(공동대표 최휘영장관, 박진영)가 잇따라 출범했다. 문학, 연극, 뮤지컬, 음악, 국악, 무용, 미술 등 9개 분야에서 현장 이해도와 통찰력, 전문성, 경험을 갖춘 위원 90명으로 구성된 정책자문위원회는 창작 기반과 예술정책 자문을 집중 담당하고, 대중문화교류위원회는 글로벌 진출과 산업 교류 역할을 실행하고자 설립되었다. 창작과 산업, 그리고 해외확장이라는 한국 문화정책의 두 축이 마련된 셈이다. 문화예술 현장을 담아 문화산업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도는 문화계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온 염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두 위원회의 구성과 역할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가지 결정적인 헛점이 보인다. 바로 지역문화의 비전과 과제를 논의할 분과가 없다는 점이다. 위원 명단에 지역 인사가 일부 포함되었다고 해서 지역문화정책이 자동으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문화예술교육, 순수예술지원, 중소공연장 활성화, 예술단체의 존속성 같은 과제는 중앙보다 지방이 훨씬 절실할것이다. 지역의 생각과 전략을 다룰 제도적 기구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최근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와 국립중앙박물관이 국가균형성장과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해 처음으로 공식 협약을 체결한 것은 지역입장에서는 고무적이다. 전국 13개 국립박물관을 지역문화의 중심기관으로 육성하고, 지역 간 문화격차를 해소하며, 각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반영한 콘텐츠를 공동 개발하겠다는 것은 분명 중요한 진전이다. 지방시대위원회가‘문화가 함께할 때 국가균형 성장이 완성 된다’고 피력 한 것은 지역문화의 중요성이 국가 전략으로 필요불가결(必要不可缺)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런 외침만으로는 구조적인 변화에 한계점이 있다. 지역의 현실과 니즈를 수시로 분석하고 지원할 지역 단위의 정책기구가 없다면 정책은 여전히 중앙 중심의 흐름 속에서 머무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우리는 더 이상 주저할 필요가 없다. 프랑스는 중앙 문화부와 함께 지역 단위의 지방문화청(DRAC)을 운영하면서 순수예술 지원과 지역문화 생태계 조성 관리를 통해 직접 지원 한다. 영국 아츠카운슬(Arts Council)은 런던 본부 아래 지역별 사무소를 두어 지역 예술단체 지원, 투어링 공연 배분, 창작 레지던시 운영을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독일은 연방과 주(州)가 문화정책을 이원화하여 지역의 문화기관이 독립적으로 예술인을 지원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게 도와준다. 해외에서는 이미 ‘중앙–지역’이 병렬적으로 움직이는 구조가 기본이 된 지 오래다. 이제 우리도 지역문화위원회(Local Arts Council)를 출범해야 한다. 단순한 자문기구가 아니라 지역문화를 직접 설계하고 집행할 권한을 주기 위해 전폭적인 예산지원도 필요할 것이다. 위원회가 성공하기 위한 제언을 하자면, 첫째, 지역의 예술인, 공연장, 예술단체를 연결하는 창작 생태계의 조정자 역할이 필요하다. 중앙 공모사업 중심 구조로는 지역 간 격차를 좁히는 건 한계가 있기에 전문 컨설턴트를 지방에 파견하는 사업(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문예회관 공연예술 기획, 제작 컨설팅)을 대폭 확장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는, 지역의 문화 자산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 공연, 축제, 창작 콘텐츠를 발굴하는 중장기 전략을 배양시켜, 문화로 자생할 자양분을 만들어줘야 할 것이다. 셋째, 청년 예술인 지원을 생활 기반, 창작 공간, 멘토링, 네트워크 구축과 같은 지역 기반 체계로 전환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지역문화위원회는 중앙 위원회와 동반성장 할 수 있는 양방향 소통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의 주요 어젠다와 의견이 위원회를 통해 중앙에 전달되고, 중앙 정책이 지역에 맞게 조정을 통해 지원되는 구조가 마련될 때 비로소 우리 문화정책은 지속 가능한 생태계 형태를 갖추게 된다. 지금처럼 중앙이 정책을 설계하면 지역이‘실행’만 하는 방식으로는 지역문화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온전히 구현해내지 못한다. 정책자문위원회가 순수예술 창작정책을, 대중문화교류위원회가 문화산업, 교류 정책을 맡았다면, 이제 남은 미션은 ‘지역문화 정책’을 책임질 위원회다. K-컬처를 세계속으로 더욱더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중앙의 성과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역에서 피어나는 문화의 다양성과 창작 역량이 함께 성장할 때 비로소 한국 문화는 지속 가능한 구조를 갖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위원회가 아니라, 더 촘촘한 문화생태계다. 그 시작은 지역문화위원회 설치에서 출발해야 한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5.11.24 18:29

[경제칼럼]첨단산업 시대, 대학의 균형 있는 책무는 무엇인가

대학은 지금 ‘글로컬(Glocal) 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지역과 세계를 동시에 겨냥한 혁신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피지컬 AI 등 첨단산업은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고, 대학 역시 이에 발맞추어 연구와 인재 양성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첨단산업에 몰두하는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질문이 있다. 과연 기초학문은 어디에 서 있는가. 첨단산업은 분명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이끄는 엔진이다. 반도체 기술은 모든 디지털 기기의 심장이며, 인공지능은 산업 전반을 혁신하고 있다. 하지만 첨단산업은 기초학문 위에서만 가능하다. 물리학의 원리가 없었다면 반도체는 존재할 수 없고, 수학적 사고가 없었다면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대학이 점점 기초학문을 ‘비경제적’이라 치부하며 소홀히 한다는 점이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사회적 관심으로부터 멀어진다는 이유로 축소되고, 순수과학은 연구비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밀려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첨단산업의 토대는 언제나 기초학문이고 기초가 무너지면 결국 첨단도 오래 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인문학은 인간의 삶과 가치, 사회의 방향을 묻는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어떤 윤리적 기준을 세울지는 결국 인문학의 몫이다. 사회과학은 제도와 정책, 경제와 문화의 구조를 분석하며 기술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조율한다. 예컨대 피지컬 AI가 노동 시장을 바꿀 때, 그 변화가 불평등을 심화시키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사회과학적 연구다. 인문학적 성찰이 없다면 기술은 인간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을 지배하는 힘으로 변질될 수 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자연과학은 첨단산업의 뿌리다. 반도체의 전자 이동, 바이오 산업의 유전자 연구, 신소재 개발의 화학적 원리 등은 대부분 기초과학에서 출발한다. 단기적 성과에 매달려 기초연구를 소홀히 한다면, 미래의 혁신은 불가능하다. 노벨상 수상 연구 대부분은 수십 년 전의 기초연구에서 비롯되었다. ‘쓸모 없다’고 여겨졌던 연구가 시간이 지나면서 인류의 삶을 바꾸는 기술로 이어진 것이다. 대학이 기초학문을 지키는 것은 학문적 자존심을 넘어 미래 혁신의 씨앗을 심는 일이다. 글로컬 사업은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는 전략이다. 지역 산업과 연계해 첨단 분야를 키우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대학이 단순히 ‘산업 맞춤형 인재 양성소’로 변질된다면, 본래의 사명은 잃게 된다. 특히, 국립대학은 단기적 산업 수요를 충족하는 기관이 아니라, 장기적 지식 생태계를 지키는 보루다. 따라서 국립대학은 첨단산업과 기초학문을 균형 있게 발전시켜야 한다. 산업과 연결된 응용 연구를 강화하되, 동시에 기초학문을 꾸준히 지원하고 육성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 국립대학이 해야 할 가장 현명한 선택은 기초학문을 지키고 가꾸는 것이다. 첨단산업은 이 기초 위에서만 꽃을 피운다. 만약 대학이 기초학문을 외면한다면, 단기적 성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 미래는 잃게 된다. 반대로 기초학문을 지켜낸다면, 첨단산업은 더 깊고 넓은 뿌리를 내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첨단산업의 시대일수록, 대학은 기초학문의 가치를 더욱 소중히 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인류와 사회를 위한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5.11.24 18:29

[데스크창] 군산항, 감사원 문을 두드리다

최근 군산항이 마침내 감사원을 찾아 나섰다. 군산항 발전협의회(고병수)회원을 비롯한 항만인들과 시민 등 711명이 ‘군산항을 이대로 더 이상 방치하면 폐항될 지 모른다', ‘군산항은 우리 스스로 지켜나가야 한다’ 는 절박함과 비장한 각오를 담아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공익감사 청구 자격을 확보하기 위해 18세 이상 국민 300명이상의 서명이 필요하지만 하역회사, 예 도선업체 , 선박대리점, 항운노조 등에 소속된 항만인들과 시민들은 너도 나도 할 것없이 서명부에 기꺼이 자신들의 이름을 올려 그 수가 필요 인원의 2배를 훌쩍 넘었다. 그만큼 오늘날 군산항이 토사 매몰로 가뿐 숨을 몰아쉬면서 더 이상 이 상태가 지속될 경우 무역항의 기능이 사라져 항만인들은 물론 지역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안겨줄 것으로 인식되는 등 위기 의식이 두텁게 자리잡고 있음을 방증했다. 특히 항만인들은 그동안 수년간 지속적으로 언론과 전북자치도 및 지역 정치권 등을 통해 다방면으로 토사매몰에 따른 문제점을 읍소하고 해결책 마련을 호소했지만 메아리가 없자 마침내 감사원의 문을 노크했다. 이들은 감사 청구 제기 이유로 막대한 예산을 들여 건설한 군산항에 대한 정부의 부당 관리 행정으로 예산 낭비는 물론 항만 파행 운영을 야기, 공익이 훼손돼 왔음을 들었다. 지난 1990년 금강하구둑이 건설돼 바닷물길이 차단되면서 토사매몰현상은 현안으로 대두돼 왔다. 바다와 금강에서 밀려드는 토사는 연간 300여만㎥에 달했지만 준설 의무를 지닌 정부는 적은 예산으로 100만㎥정도만 땜질식 준설을 해 왔고 나머지 토사는 쌓이면서 군산항의 경쟁력을 야금야금 먹어갔고 그런 세월이 30년이 넘었다. 예산 부족으로 항로 준설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1~7부두는 계획 수심을 만족하는 곳이 전혀 없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왔다. 계획 운항을 생명으로 하는 국제여객선과 컨테이너선은 정시성을 거의 상실했으며 1년에 2차례 준설해야 할 정도로 수심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선박대리점과 도선업계는 물론 부두운영회사들은 낮은 수심때문에 접안 선박이 하역 과정에서 뻘에 얹힐 까 노심초사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대형 선박들은 기항 기피와 취소를 하고 곳곳에서 준설을 요구하는 아우성만 지속됐으며 도내 수출입업체 중 90%이상이 다른 항만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물류비용 부담 가중으로 고충을 겪어야 했다. 한마디로 국가관리무역항인 군산항에 대해 정부가 관리 책임을 제대로 이행치 않은 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제 기능을 못하면서 부두 건설에 따른 예산 낭비와 함께 수천억원을 들여 건설한 항만 인입철도마저 항만 연계 물량이 없는 등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예산 낭비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준설토는 매립 자원으로서 가치가 높은데도 정부는' 준설'과 함께 ‘국토 확장’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정책 마련에 소홀히 해 왔다. 감사원은 현지 감사를 통해 무엇이 국가 예산 낭비를 방지하고 국가 발전을 위한 길인지 해결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오늘도 “ 부두에 선박이 없다”, “ 이런 상태로 가다간 폐항될 지 걱정이 된다”는 항만인들의 절망섞인 한숨소리만 귓전을 때린다. 안봉호기자

  • 오피니언
  • 안봉호
  • 2025.11.24 18:29

[전북칼럼]문학의 고장에서 뭐?

채만식은 군산에서 태어난 소설가다. 단편에 비해 장편소설이 부족하던 일제 치하에 그는 『탁류』와 『태평천하』라는 장편을 남겼다. 신석정은 부안에서 태어나 평생을 전라북도에서 살았다. 그는 일제 식민지배하에서도 변절하지 않고 조선의 시단을 지켜온 절개의 시인이다. 고창에서 태어난 서정주는 친일 이력이 있지만 북녘의 언어를 어루만지던 소월과 더불어 남녘 언어를 조탁한 시인으로 꼽힌다. 그리고 고은이 있다. 군산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 현대 시단이 거둔 가장 큰 수확이다. 동서와 고금을 넘나들며 충격적인 깨우침을 전하는 시인. 정읍에서 태어난 박정만 시인 또한 전북의 문인으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군부독재정권의 고문으로 화려한 꽃을 피우진 못했으나 그가 서정시에 획을 그은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시인이 가람 이병기다. 익산에서 태어난 그를 당대의 최고 시조 시인으로 인정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어학자이기도 한 그는 말년에 지역에서 후학을 기르기도 하였다. 한편, 198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면 교과서에 실린 「고무신」이라는 시조를 읽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시조를 쓴 장순하는 정읍에서 태어나 평생 지역에 살면서 후학들을 길러낸 사람이다. 김제 출신 정양은 오랜 기간 제자를 양성하며 시작 활동에 전념했고, 익산 출신의 이광웅 또한 후진을 양성하며 완성도 높은 시편을 남겼다. 임실에서 태어난 김용택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지금도 한국 시단을 이끌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유현종은 완주에서 출생해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들불』을 썼으며 신문 연재소설을 통해 낙양의 지가를 올린 소설가다. 최일남은 전주에서 태어나 작가로 일가를 이루고 언론인으로도 족적을 남긴 사람이다. 천이두는 남원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날카로운 평론은 대한민국 평단을 뒤흔들 정도였다. 그는 지역의 정서에 밀착해 있었으며 판소리 연구에 남다른 공헌을 했다. 윤흥길은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소설가로 소설 『아홉 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는 이재명 현 대통령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소설가 양귀자 또한 전북 전주가 고향이다. 폭넓은 독자층을 지닌 그는 전주 홍지서림이 재정난으로 위기에 처하자 그를 인수해 명맥을 유지하게 한 장본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 있다. 최명희는 남원 사람인데 대하소설 『혼불』은 소설로서뿐 아니라 박물지로도 가치를 지닌다. 이게 끝이 아니다. 근래에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는 은희경은 고창이 배출한 소설가로 여전히 활동 중이며, 이병천 역시 전북이 배출한 작가다. 전북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인을 배출했으며 이들이 한국 문단을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점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이들 문인을 따라 후학들은 오늘도 밤을 밝혀 글을 쓰고 있으며 그들로 인해 전북은 한층 높은 품격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인을 기려 덕진공원에 세운 시비를 주민들과 상의도 없이 전주시청은 외진 곳에 치워버리더니 항의가 빗발치자 또 다른 어딘가에 가져다 놓겠다고 한다. 지역 주민 모두가 자랑스러워하는 문향이 행정 종사들에게는 악취로 느껴진단 말인가. 문학은 눈앞의 이익을 담보하지 않지만 내면의 품격과 향기를 보장한다. 문학이 곧 수준의 시금석이다. 그런 면에서 지역 주민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행정 책임자들의 무지가 한심하다. 지자체 선거가 다가온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5.11.23 18:08

[오목대] 연초 여론조사로 우열 가려질 것

지방선거가 6개월 정도 남았지만 교육감 선거를 제외하고는 정당에서 공천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서로가 민주당 공천을 받으려고 사력을 다한다. 사실 전북에서는 민주당 공천을 받는 후보가 당선이 보장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공천경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공천 기준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지 않았지만 당원 한테 더 많은 권한을 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후보자가 난립한 1차 경선때는 당원 비중을 70%로 높히고 과반 득표자가 없을 때는 2차로 가서 5대5 비율로 확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언론에서 샅바싸움을 부추킨다. 언론사마다 영향력을 높히려고 여론조사를 실시해서 공표할 태세다보니까 각 후보들이 잔뜩 지지율을 높히려고 조직을 총가동하는 등 긴장한다. 지금부터 연말까지 형성된 여론이 승패를 가를 것이다. 그래서 각 언론사마다 연말에 여론조사를 실시해서 연초에 공표할 것이다. 그 결과로 우열이 가려지기 때문에 서로가 우세자편승효과(밴드웨건 이펙트)를 놓치지 않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한다. 사실 여론조사라는 게 과학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서 진행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헛점이 많다.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있듯이 경비를 절약하려고 기계음을 녹음해서 들려 주는 ARS 방식이 많이 쓰이는데 그 결과해석을 놓고도 1등위주의 경마식 보도를 하므로 허수가 많다는 것이다. 지사 경선전이 김관영 현 지사와 안호영 국회 환노위원장 대결로 갈 것으로 보였지만 느닷없이 이원택 도당위원장이 뛰어들어 3각구도가 만들어졌다. 3선한 관계로 더 이상 출마를 못하는 정헌율 익산시장이 추석을 앞두고 도내 전역에 자신을 알리는 플래카드를 게첨했지만 지사 자리 보다는 이춘석의원이 무소속으로 당적을 옮기면서 공석이 된 그 자리를 노린다는후문이다. 예전에 전주시장에서 지사가 된 김완주나 송하진 지사는 재선 때 별다르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예상을 깨고 이원택 의원이 정청래 당 대표가 미는 후보인양 포장해서 선거전에 뛰어들어 급작스레 선거전이 바뀌었다. 도내 10명의 의원들이 정청래와 박찬대의원간 당 대표 선거 때 1차로 격돌한 결과가 지사경선전으로 이어졌다. 도당위원장이었던 이원택과 재선의 윤준병 의원등이 정대표를 밀었고 안호영의원은 친명인 박찬대 의원을 밀었던 것. 그게 이번 지사경선전의 트리거로 작용,과거 송하진 전 지사 세력인 운동권 세력이 조직을 재건하면서 이 의원을 돕고 나선 것. 반면 3선인 안호영은 완주 전주 통합에 반대해 찬성이 85%가 넘는 전주쪽에서 디스가 많아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 김관영지사는 재선의원과 김앤장 출신 3관왕 변호사라는 점 때문에 이재명 당 대표가 인재영입 1호로 영입해서 경선 한달만에 월계관을 쓰게 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김관영 지사의 인물론이냐 아니면 정청래 당 대표의 응원을 받는 이원택의 당심이냐로 판가름 날 것이다. 하지만 도내 10명의 의원들이 모두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바라기 때문에 자신들이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할지는 명약관화하지 않았을까.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5.11.23 17:14

[기고] 전력망 확충, 재생에너지와 첨단 AI 반도체를 연결하는 필수 인프라

전력망은 도로망, 통신망과 같은 주요 사회 기반 시설이다. 현대의 모든 산업은 전기의 안정적 공급 위에 성장하고 있으며, 가정에서도 전기가 없다면 안전한 삶을 누리기 어렵다. 한편,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은 전력 소비의 ‘블랙홀’로 불린다. 그런데 급증하는 재생에너지 수요에 맞춰 태양광, 풍력발전소를 지으려 해도 전력망이 없어서 다수의 프로젝트가 지연되고 있다. 수십 GW 규모의 새로운 전력부하와 연계할 전력망이 시급히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RE100 기업들은 제때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 지 여부에 따라 대규모 투자 결정을 망설이게 되고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판이 막힐 수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지속과 기후변화 대응 문제를 동시에 타결할 수 있는 ‘에너지 고속도로’의 핵심은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이다. 전북 새만금, 전남 서남권, 경북, 강원 지역처럼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에서 수도권 국가첨단산업단지까지 전력을 원활히 전송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전력망이 촘촘히 연결되어 전력수급 안정성이 강화되면 수도권 첨단산업 기업의 지방 이전도 수월해지고, 대규모 풍력, 태양광 발전 지역은 재생에너지 특구로 성장할 수 있다. 국가 경쟁력 강화와 지역 균형발전을 동시에 달성하는 길이 바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이다. 만약 정부 계획대로 전력망이 제때 구축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전북지역은 2025년 6월 기준 5.1GW의 재생에너지가 전력망 접속을 대기 중이다. 만약 이 전력이 모두 전력망에 연계된다면 연간 수천억 원의 재생에너지 발전 수익 효과가 발생하여 지역주민의 에너지 소득이 기대된다. 또한 전력망은 대규모 정전을 예방하는 안전장치가 된다. 태풍, 폭설, 산불과 같은 돌발 상황에도 사통팔달 전력망이 구축돼 있다면 우회 공급을 통해 정전 지역 규모를 최소화할 수 있다. 올해 국회와 정부는 전력망 건설 관련 주민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과 그 시행령을 마련했다. 과거보다 훨씬 강화된 주민과 지자체에 대한 보상과 지원제도를 담았다. 사업시행자는 국가기간 전력망 경과지 보상 조기 협의시 토지주에게 인센티브를 추가 지급한다. 지자체에는 기존 지역별 지원금의 절반을 추가 지원한다. 송변전 설비 근접지역 또는 밀집지역에는 주민직접지원사업 시행시 지역별 지원금을 가산하여 지급한다. 가공선로 경과 지자체에는 선로 길이 1킬로미터당 20억원 한도의 재정적 지원을 한다. 지역주민의 소득증대를 위해 사업시행자는 10메가와트 미만의 재생에너지 발전 협동조합 설립시 행정적 지원과 전력계통 연계 비용 및 인허가에 관한 지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력망 적기 건설은 주민, 지자체, 정부, 한전이 상호신뢰를 기반으로 협력할 때에만 가능하다. 서로의 이해를 조율하며 함께 나아갈 때 비로소 적기에 전력망을 완공할 수 있고, 동시에 지역발전도 이끌어 낼 수 있다. 세계는 이미 전력설비 투자를 대규모 확대하는 ‘전력망 슈퍼사이클’에 들어서고 있다. 우리가 지금 속도를 내지 못한다면 첨단산업 경쟁에서 뒤처지고, 재생에너지는 전력망에 접속되지도 못한 채 버려질 것이다. 이제 전력망 적기 확충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미래 전략산업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시급한 국가적 필수 과제이다. 송승호 광운대 교수·전기공학과

  • 오피니언
  • 기고
  • 2025.11.23 16:16

열린 광장 ‘사통팔달 무주’는 상생의 기준점

지금의 무주는 남북의 통영-대전 간 고속도로가 지나가면서 방문객도 늘었고, 생활 인구 또한 안정적인 추세이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도시의 사람들은 “무주에서 왔다”라고 하면 깊은 산골 동네에서 도시로 나온 것처럼 여겨 “무주 구천동, 멀리서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무주가 산골 오지의 대명사처럼 치부되던 시기에는 고속도로가 아니라 일반국도가 국민 이동의 핵심 축이었고, 무주는 동서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대구에서 김천을 거쳐 무주로 이어지는 길 위에 사람과 물자가 쉼 없이 오갔고, 특히 여름철이면 국립공원 덕유산 자락의 구천동 계곡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 매년 성수기에는 임시 버스가 증편되었다. 지역경제의 순환이나 사람들의 밀집도로 봤을 때, 어쩌면 무주군민들의 기억 속에 “그땐 그랬었지”를 떠올리는 아스라한 풍요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정부는 과거에 산업과 인구 분포가 남북 중심이어서, 동서 간 연결 도로의 필요성이 덜 부각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남북 방향으로 고속도로 건설에 집중했다. 그런 까닭에 동서 고속도로망은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었다. 세월이 흘러, 지방의 균형발전과 지역 간 교통 불균형 해소에 대한 중요성이 두드러지면서 동서 축 고속도로 확충에 힘을 쏟아 지금은 균형을 갖춰가는 중이다. 무주-대구 고속도로 건설은 1998년 말 전북도와 경북도가 영호남 동서 화합과 지역균형개발 차원에서 공동 건의해 1999년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사업으로 선정되었지만, 사업 착공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 후 이제나저제나 될까 하는 주민들의 노심초사 기대 속에 25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런데 지난달 31일 드디어 기획재정부는 무주-대구 고속도로 건설을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사업으로 확정했다. 이 노선이 갖는 의미는 명확하다. 단절을 메우는 길이 아니라, 국토의 동서를 자연스럽게 관통해 영남과 호남의 일상적 왕래를 늘리고 문화·관광·산업의 교류를 촘촘히 잇는 길이라는 점이다. 지도를 펼치면 무주는 국토의 가운데에서 사방으로 길이 갈라지는 연결 거점이고, 이 중심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 것이 바로 무주–대구 고속도로이다. 대구·경북에서 덕유산과 구천동으로 향하던 여름의 기억이 향수에 머물 이유가 없다. 접근성이 좋아지면 방문은 보다 자연스러워지고, 영호남을 가르는 심리적 거리도 아주 가까워질 것이다. 길은 사람의 동선을 바꾸고, 동선은 관계의 밀도를 바꾼다. 그래서 이 도로는 특정 지역의 편의를 넘어 균형발전과 상생의 상징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기점과 종점의 표지석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이를 오가는 수많은 삶의 사연이 다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고속도로는 속도의 시설이지만, 결과는 신뢰와 교류의 시간으로 환원될 것이다. 무주가 기대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시대 변화에 맞는 사통팔달의 교통망이 곧 무주의 재도약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동쪽과 서쪽이 번거로움 없이 만나는 일상의 회복이라는 확실한 장면이다. 우리는 그 장면을 오래 기다려 왔고, 이제 그 장면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다. 길이 열리면 무주는 만남의 중간 지대가 된다. 영호남을 잇는 한 줄의 선 위에서, 국토의 중심이 다시 살아 움직일 것이라는 기대는 아주 정당하다. 기대를 키우는 일은 과장이 아니라 방향을 확인하는 일이며, 무주–대구 고속도로는 그 방향을 또렷하게 가리키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5.11.23 14:37

[사설] 개점휴업 전주관광재단, 제 역할 찾아라

전주시의 새로운 출연기관인 전주관광재단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전주시는 기존 전주문화재단과 한국전통문화전당의 기능을 통합하고, 관광산업을 더 체계적으로 육성한다는 취지로 지난해부터 전주관광재단 설립을 추진했다. 이후 지난해 12월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지난 8월에는 초대 대표이사가 취임하면서 지역사회의 기대 속에 새로운 기관의 첫걸음이 시작됐다. 지난해 말 ‘대한민국 문화도시’로 최종 지정된 전주가 글로벌 관광도시로 발돋움하는데 큰 역할을 해낼 것으로 기대했다. 공모를 통해 경력있는 관광 전문가로 인정받아 선임된 초대 대표이사도 ‘지역 특성을 반영한 관광콘텐츠를 체계적으로 발굴·육성해 관광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며 의지를 피력했다. 그런데 재단은 출범 100일이 넘도록 개점휴업 상태다. 아직껏 인력 구성조차 마무리되지 않았고, 중장기 전략 등 조직 운영의 로드맵도 나오지 않았다. 아직 설립 초기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무척 실망스럽다. 좀 더 지켜볼 필요성도 있지만, 지역사회의 기대 속에 상당 기간 논의를 거쳐 출범한 기관이라는 점에서 분명 문제가 있다. 조례에 명시된 전주관광재단의 역할은 △관광자원 개발·상품화 등 관광콘텐츠 확충 △국내외 관광 홍보 및 마케팅 △마이스(MICE) 유치 지원 △관광시장 조사·연구·컨설팅 △관광 전문인력 양성 △관광기업 육성 지원 등이다. 한옥마을 중심인 관광객 분포를 도시 전역으로 확대해 글로벌 관광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통합기구로서의 역할을 요구받는다. 그런데도 재단은 이제껏 어떤 역할을 어떻게 해낼지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까지는 사업보다는 전주 관광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데이터 수집과 행정업무에 집중하겠다’는 게 재단 측의 설명이지만 빈약하다. 재단 설립은 지난해부터 추진됐다. 공모과정에서 조직 운영의 의지와 청사진을 평가받아 선임된 대표이사가 지역사회에서 요구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미리 구상하고, 계획해 취임과 함께 이를 다듬어 보여줬어야 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와 비전·전략, 사업 방향성 정도는 확실하게 정립해서 제시해야 할 것이다.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취임한 조직 수장의 역할과 의지가 중요하다. 지역사회의 요구와 기대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5.11.23 14:36

[사설] 새만금∼전주 개통, 나머지 구간 속도 내야

새만금∼전주 고속도로가 그제 개통됐다. 이 고속도로는 서해안선, 호남선, 순천완주선, 익산장수선 등 전북권의 4개 주요 고속도로와 직접 연결되는 전북권의 핵심 교통망이다. 이 고속도로가 개통됨으로써 새만금 개발사업에 따른 물동량 증가에 대비하고, 동서 간 교통망 구축을 통해 지역경제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고군산 군도, 모악산 도립공원, 전주 한옥마을 등 주요 관광지와의 접근성이 강화돼 전북 관광 활성화에도 큰 역할을 할 전망이다. 새만금–전주 고속도로는 총사업비 2조7424억 원이 투입된 왕복 4차로 노선이다. 김제시 진봉면에서 전주시를 거쳐 완주군 상관면을 잇는 총연장 55.1㎞다. 국토교통부가 밝힌 것처럼 진봉면에서 완주 상관면까지 이동시간은 약 43분 단축(76분→33분)되고 주행거리는 약 8㎞ 단축(62.8㎞→55.1㎞)돼 차량 운행 비용 절감, 교통사고 감소 등 전북도민들에게도 연간 2018억 원의 경제적 편익이 예상된다. 이처럼 전북권 교통망 개선 효과가 크지만 또하나 과제가 남아 있다. 새만금~전주 고속도로는 동서 3축인 새만금~포항고속도로 전체 구간 311㎞ 중 일부다. 65%인 201㎞가 개통됐을 뿐 나머지 35%는 미개통 상태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새만금∼전주 고속도로 개통 기간이 2018년 5월 착공 이후 7년 6개월이 걸린 것을 감안하면 나머지 구간이 언제 완성될지 장담할 수 없다. 무주–성주–대구 구간이 지난 10월에야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사업으로 선정되는 등 절차이행이 매우 느리기 때문이다. 새만금~포항고속도로는 교통혼잡 해소 및 물류비 절감, 관광효과 외에도 호남과 영남을 잇는 교통망 구축이라는 상징성이 크다. 때문에 미개통 구간도 신속히 추진될 수 있도록 절차와 공기를 앞당기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호남 영남 지역구 국회의원과 단체장들이 국가간선도로망 동서 3축의 완성을 위해 새만금∼포항 노선 중 미개통 구간인 전주∼무주∼성주∼대구 구간의 공기 단축을 정부에 촉구하고 실행될 수 있도록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길 바란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5.11.23 14:36

[오목대] 종광대와 여단(厲壇)

전주에서 구전으로만 내려오던 지명이 최근 소환되고 있다. 후백제 왕성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나온 종광대(鐘廣臺)와 여단(厲壇)이 그것이다. 이중 종광대는 아파트 재개발 무산과 겹치면서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1100년 전, 견훤왕은 후백제를 세웠고 도읍을 전주로 정했다. 후백제는 37년간 후삼국 중 가장 강성해 한반도를 호령했으나 갑자기 망하는 바람에 그 흔적이 대부분 지워졌다. 더구나 라이벌이던 고려 태조 왕건은 겉으로 온유한 척했으나 안남도호부(936∼941)를 설치해 5년 동안 후백제 유물 유적을 철저히 파괴했다. 도성과 궁성은 물론 경주에서 가져온 삼국의 서적까지 불살라 버렸다. 그러니 후대에 후백제의 흔적을 찾기가 쉬울 리 없다. 그러나 아무리 짓밟아도 역사의 흔적은 남는 법. 1960년대 이후 뜻있는 분들과 전주시의 노력으로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전주 동고사지가 그렇고 최근에는 왕성 일부가 그렇다. 대표적인 게 전주시 중노송동 일원에 남아있는 ‘전주 종광대 토성’이다. 이 토성은 후백제 왕도의 북쪽을 방어하기 위해 축성된 것으로 지난 6월 20일 전북자치도 문화유산(기념물)으로 지정되었다. 지난해 3월부터 발굴에 들어가 잔존규모 장축(동-서) 204m, 최대 단축(남-북) 14m, 최대 성벽 높이 2.5m의 후백제 토성이 확인되었다. 후백제 토목공사 흔적이 확인된 최초의 사례다. 국가유산청 심의 결과 ‘현지 보존’ 결정이 내려졌고 지금은 국가 사적으로 지정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종광대 토성은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전주부 고적조에 ‘견훤이 쌓은 고토성’으로 기록돼 있다. 또 ‘여지도서(輿地圖書)’와 ‘대동지지(大東地志)’, ‘완산지(完山誌)’ ‘전주부사(全州府史 1942)’ 등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곳은 인근 기자촌 재개발에 이어 2008년 전주 종광대2구역 주택재개발사업(3만1243㎡)이 추진돼 보상을 둘러싸고 어려움이 없지 않다. 이 일대가 종광대와 구(舊) 여단터로 불려온 것은 꽤 오래전부터다. 언제부터 그렇게 불렸고 무슨 시설이 있었을까. 그에 대한 명쾌한 기록은 없다. 다만 전주문화원(2001) 이 발행한 자료에는 “종광대는 물앙말(물왕멀) 북쪽에 있었다는 종루(鐘樓)이다. 후백제 때에 종루라는 얘기도 전해지며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여단(厲壇)이 있었다고 한다.”로 나와 있다. 조선시대 시작된 여단은 질병이나 전쟁 등으로 죽은 주인 없는 외로운 혼령을 국가에서 제사 지내주던 제단이다. 이곳은 이 일대에서 가장 높아 전주 시가지와 익산 미륵산, 동고산성, 남고산성 등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조망점이다. 하루빨리 사적으로 지정되고 역사유적공원을 만들어 전주시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명소가 되었으면 한다.(조상진 논설고문)

  • 오피니언
  • 조상진
  • 2025.11.20 19:02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