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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화백의 미술 이야기] 김성민 작가의 ‘默展(묵전)’

제목으로는 한문으로 默(묵)이라고만 써놨으니 침묵을 연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침묵을 강요하는 것인지 동조를 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소 성격으로 봐서는 강요일 것이라 생각된다. 전시 공간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4×8짜리 합판 4장을 세로로 이어 붙이고 그 위에 캔버스 천을 이어 붙여 화면을 만든다. 4x8 사팔짜리 합판이고 한 자가 대략 30cm이니 120x240의 크기를 세로로 이으면 가로, 세로 480cmx240cm의 크기다. 전시장에 걸려 있으면 캔버스를 응시하는 것만으론 위압감을 느끼게 된다. 천장이 높아 100호의 캔버스 크기가 마치 소품처럼 여겨지는 것으로 유명한 우진문화공간이라 수용이 가능하지 다른 전시장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물론 默(묵)의 뜻이 그게 아님을 잘 안다. 이 시끄러운 세상을 향한 외침내지 각 개개인을 향해, 아니면 자기 자신을 향해 외치는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의 담대한 생각의 규모는 그의 키만큼이나 높고 넓은 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풍경보다는 인물화를 즐기던 그가,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엄청난 술꾼 시인의 초상, 숙취 상태의 모습을 그린 일이 있었는데 그림에서 술 냄새가 진동했던 것을 느낄 만큼 기교나 심리분석이 탁월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갯벌을 그리겠다며 갯벌의 진경을 보기 위해 서해안 일대를 헤매고 다닌다는 말도 들었다. 차도 없던 시절, 그는 변산, 곰소, 부안, 군산 등을 다니는데 몇 시쯤, 어느 곳이 기막히더라고 하길래 너희 선배 화가의 단골 소재가 갯벌이다. 그런데 네가 또 그리면 되겠느냐는 질문에 그 선배 화가에게 허가를 구하니 “그 갯벌이 내꺼간디”라며 흔쾌하게 허락받았다면서 밝게 웃었던 일이 엊그제 같았다. 오늘 보니 그 선배 화가와는 달리 갯벌과 갯벌 그 너머에 있는 물결이 함께, 또 그 너머에 아스라이 있는 수평선까지를 표현하고 있다. 그 위를 날고 있는 갈매기까지. 원광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왜 비싼 등록금을 들여가면서 대학원까지 다녔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대학 강의는 물론 자기 작업실에서조차 학생을 가르치지 않고 오로지 혼자 막걸리와 더불어 작업만 했다. 재정 형편이 그리 유쾌하지 못한 그는 거의 6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오직 막걸리 3병과 함께 출근해 하루를 붓과 함께 보낸다. 그의 전시 경험에는 테라코타 展(전)을 해서 조각가들을 긴장시켰던 일도 있고, 청계천에서 흑연을 잔뜩 구입해 흑연을 문질러가며, 문지르는 횟수만큼 다양한 광택이 변하는데 그런 단색화만으로 인물화를 했으리만큼 실험정신도 충만하다. 그가 조금 더 젊었을 때는 공모전이 아니어도 다른 선배 화가들의 심사로 진행되는, 예를 들면 청년 미술상 등의 여러 수상 기념전을 했을 만큼 경력도 화려해 다른 화가들로부터 질시와 찬사를 동시에 받았지만 올곧은 성격으로 흔들리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 미술선생은 화가가 아니다”랄지, 또는 “술도 못하면서 무슨 그림을 그린다고 하느냐?”는 지론으로 유명한 그는 전시회 첫 날인 오늘도 전시장을 비우고 근처 가게에서 기분 좋게 취해가고 있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3.02.06 17:37

[정월대보름 행사 현장 가보니] “얼씨구 지화자 좋다”

“얼씨구 좋다 지화자 좋아 휘영청 밝은 보름달 아래 우리들의 간절한 소원 빌어보세.” 4일 임실군 강진면 필봉마을. 이날 정월대보름과 절기상 입춘을 맞아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정월대보름 굿’ 행사가 열린 필봉마을 입구부터 방문객들을 반기는 흥겨운 전통 가락 속에 오가는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필봉마을 광장에서는 빨강, 노랑, 파랑, 흰색 등 알록달록한 의상을 입은 필봉농악회 회원들이 저마다의 끼를 방출하며 관람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한낮에도 영하권으로 뚝 떨어진 날씨였지만 판굿을 펼치는 필봉농악회 회원들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공연단과 함께 무대를 즐긴 관람객들은 귀마개, 장갑, 목도리 등으로 무장한 채 어깨를 들썩였다. 객석에서는 “얼씨구”, “지화자 좋다” 등 추임새를 보내며 흥을 더했다. 관람객 김한별 씨(31·전주)는 “날씨가 많이 춥지만 가족과 흥겹게 놀 수 있어 좋았다”며 “코로나19도 풀리니 올 한해 더욱 즐겁게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양진성 필봉보존회장은 “오랫동안 이어져온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고 다음 행사에서도 풍성한 공연과 체험을 마련해 방문객들을 만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사)전주기접놀이보존회는 전주 삼천 둔치에 위치한 세냇가 놀이마당에서 ‘정월대보름 굿, 망월이야!’ 행사를 열었다. 이날 1000여명의 시민이 몰린 가운데 길놀이, 오곡밥 나누기와 함께 달집태우기를 즐기며 축제장의 분위기가 고조됐다.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설치된 달집에는 정월대보름을 기념해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수많은 소원지가 달려있었다. 주로 건강과 취업, 결혼, 출산 등 덕담이 담긴 소원들 사이에는 고사리 손으로 어린이들이 써내려간 소원지도 눈에 띄었다. 날이 저물고 흥겨운 춤사위를 뒤로한 채 삼삼오오 달집태우기 현장으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자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른 달집 앞에는 흥겨운 소리판과 더불어 소원을 빌기 위한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몇몇 방문객들은 같이 자리하지 못한 지인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서로의 건강을 빌어주는 모습도 보였다. 전주기접놀이보존회 관계자는 “정월대보름에 뜨는 달을 보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믿었다”며 “시민들이 각자 빌고 또 빌었을 소원들이 올해 꼭 이뤄지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김영호 기자·전현아 수습기자

  • 문화일반
  • 김영호외(1)
  • 2023.02.05 17:01

심영배 전주기접놀이보존회장 “전통문화 계승 발전 앞장설 것”

“예로부터 정월대보름에는 한 해 농사가 잘 되길 기원하고 가족과 이웃의 건강을 기원하는 풍습이 전해졌죠.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도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지난 4일 전주시 삼천동에서 진행된 정월대보름 행사장에서 만난 심영배(68) 전주기접놀이보존회장은 가슴 벅찬 소회를 밝혔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19로 한동안 중단됐던 정월대보름 행사를 전주기접놀이보존회가 올해 3년 만에 열었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는 주말을 맞아 한낮 동안에 민속놀이 체험과 기접놀이 시연, 오곡밥 나누기 등이 진행됐고 날이 저물면서 행사의 백미인 달집태우기도 이어졌다. 심 회장은 “도심 지역에서 화기가 강력한 달집태우기 행사를 열기 때문에 달집이 넘어지는 것을 막으려고 대나무를 촘촘하게 쇠줄로 엮었다”며 “현장에는 소방차와 소방대원이 대기하는 등 특별한 조치로 이번에 달집태우기 행사를 시민들의 환호 속에 안전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이끄는 전주기접놀이보존회는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전통문화가 흔들리던 1998년 창립해 비닐하우스 전수관과 농막 전수관을 전전하며 전승 활동을 이어왔다. 지역 대표 민속놀이인 전주기접놀이는 지난 2016년 제57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2018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63호로 지정됐다. 2021년에는 전주시 효천지구 함대마을에 전주기접놀이보존회 전수교육관이 개관했다. 전수교육관은 한옥 4채와 공연장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효천지구 개발사업에 포함되면서 마을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도록 건립됐다. 보존회는 기접놀이 전승마을인 함대마을을 중심으로 시민들도 한데 어우러져 230명의 회원이 현재 활동 중이다. 심 회장은 “마스크를 신체의 일부로 여기며 살아야 했던 시민들의 소원이 달집태우기로 분출돼 그 어느 해보다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며 “달집태우기 행사를 통해 다양한 사연들로 모아진 시민들의 소원이 모두 이뤄지는 뜻 깊은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향후 정월대보름 전통 문화 행사를 계승 발전시키고 기접놀이를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시민들이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 회장은 전주 출신으로 전주 신흥고와 전주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헌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주시의회와 전북도의회에서 지방의원 경력을 쌓았으며 현재는 지역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 문화일반
  • 김영호
  • 2023.02.05 16:25

전주문화재단, 전주 작가 9인의 오디오북 출간

(재) 전주문화재단(이하 재단)이 지역 문학과 미디어를 융합한 오디오북 9종의 유통을 시작했다. 오디오북에는 김헌수 시인의 소 시집 ‘저녁 바다에서 우리는’, 박태건 시인의 소 시집 ‘나바위성당 팔각 창문 아래에서’, 정해림 작가의 소설 ‘이오타 언니에 관한 거짓말’, 이지영 작가의 소설 ‘보험 아닌 보험’, 문신 작가의 동화 ‘롱브릿지 숲의 아달로이’, 서성자 작가의 동화 ‘나한테 낸 숙제’, 전은희 작가의 동화 ‘보드 타는 강아지 번개’, 김소라 작가의 희곡 ‘이매설가를 찾아라’, 김영주 작가의 수필 ‘구멍 난 영주 씨의 알바 보고서’ 등 총 9종의 문학 장르가 포함돼 있다. 이 작품들은 네이버 오디오클립과 교보문고, 알라딘, YES24, 구글플레이, 오디언 등에서 구입이 가능하다. 김정경 문예 진흥팀장은 “전문 성우들의 폭넓은 참여와 소리꾼들의 협업 등 작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새로운 시도들이 전국 독자들의 귀와 마음을 사로잡을 것으로 기대가 된다. 올해에는 순회 낭독북 콘서트 등 연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며 “지역 문학작품과 미디어를 융합한 재단의 새로운 도전이 침체된 문학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재단은 오는 4월 ‘2023년도 작가 선정을 위한 오디오북 제작 지원사업 공모’를 진행하는 등 지역 문학의 디지털 독서 시장의 진입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오디오북 제작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3.02.05 16:24

실내마스크 해제 후 첫 주말 정원대보름 행사 '다양'

“검은 토끼 해를 맞아 정월대보름에는 만사형통과 무사태평을 기원합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지나 완전한 일상 회복에 한걸음 다가선 가운데 실내마스크 해제 이후 첫 주말을 맞아 전북지역 곳곳에서는 5일 정월대보름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전주 한옥마을에 위치한 전주전통술박물관은 정월대보름 풍습의 의미를 담아 4일부터 5일까지 귀밝이술 마시기와 오곡밥 나눠 먹기, 부럼 까먹기 등 민속놀이 한마당을 연다. 정월대보름에는 볏가릿대 세우기, 다리 밟기, 나무시집 보내기 등 기복 행사와 지신 밟기, 별신굿,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등 전통 민속놀이가 행해졌다. 아울러 약밥, 오곡밥, 묵은 나물, 복쌈, 부럼, 귀밝이술 등을 즐겨 먹었다. (사)전주기접놀이보존회는 4일 전주 삼천 둔치에 위치한 세냇가 놀이마당에서 ‘달집태우기’ 행사를 연다. 볏짚 새끼 꼬기 장인 유춘수(83) 씨 등이 함께 만든 달집이 3년 만에 설치되자 정월대보름을 앞두고 시민들의 소원지가 쇄도했다. 건강, 취업, 코로나19 극복 등 개인적인 소원지도 많았지만 올해 열리는 ‘전북아태마스터스대회’와 ‘새만금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 성공 개최를 염원하는 소원지도 눈길을 끌었다. 정월대보름을 맞아 지역 곳곳에서는 풍성한 공연들도 마련돼 있다. 전북도립국악원은 5일 오후 5시 남원시 인월면 남천둔치 야외 특별무대에서 정월대보름 공연 ‘지리산아 달을 올려라!’를 진행한다. 관현악단, 창극단, 무용단이 출연진으로 나서서 시민과 함께 국악공연 외에도 강강술래를 비롯해 달집태우기 등 관객들이 정월대보름 세시풍속과 다채로운 부대행사를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이 주최하는 제42회 필봉 정월대보름 굿이 4일 오후 2시부터 임실군 강진면에서 3년 만에 선보여질 예정이다. 필봉농악 보존회를 중심으로 꾸며지는 이번 필봉 정월대보름 굿에는 마당밟이 굿, 달집태우기 등 한해의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가 계획돼있다. 필봉 보존회 양진성 회장은 “3년 만에 대면으로 돌아온 행사인 만큼 알차게 준비해 많은 분이 찾아주시길 바란다”며 “이번 필봉 정월대보름 굿에 속한 프로그램의 의미를 모르는 방문객들도 쉽게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자리로 꾸며가고 싶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김영호외(1)
  • 2023.02.02 17:03

기다림의 미학, 손석 개인전 ‘라땅뜨(L’attente)’

30년 이상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관을 구축해온 손석 작가가 ‘라땅뜨(L’attente)’란 주제로 6일까지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프랑스어로 ‘라땅뜨’인데 기다림, 기대감, 가능성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프랑스에서 현상학, 기호학과 철학을 탐구해온 작가는 자신의 회화에 입체적인 요소를 접목해 독특한 환영을 나타냈다. 작가가 만든 화면은 일종의 벽과 같은 블록 형태의 요철들이 층을 이룬 형식으로 각각 채색된 층마다 회화 표면에 볼록하고도 오목한 굴곡을 형성하고 있다. 이때문에 작품을 바라 보는 시선에 따라서는 회화 이미지의 착시 효과를 연출함으로써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화면 위에 각기 다른 조형 요소들은 서로를 간섭하는 동시에 유기적으로 연결된 듯하다. 작가는 1995년부터 현재까지 프랑스에서 거주하며 전업 작가로 활동 중으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파리 제8대학 조형미술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국내는 물론 프랑스, 벨기에, 홍콩, 룩셈부르크 등 해외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그는 다수의 기획초대전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 전시·공연
  • 김영호
  • 2023.02.02 16:21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동초 김연수의 소리를 잇다

판소리 동초제는 동초 김연수 명창이 소리와 사설을 정리하여 오정숙에게 전승한 바디로 김연수의 호를 따서 붙여진 유파의 소리이다. 김연수는 전라남도 고흥 거금도 출신으로 세습무 집안인 김병선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학문에 밝아 한학을 공부했으며 고흥보통학교에 진학하여 일반 학업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판소리에 뜻이 있어 몇 해 동안 축음기를 틀고 그 당시 송만갑, 이동백, 정정렬 등 국창의 소리를 들으며 스스로 공부했고 그에 만족하지 못해 순천의 유성준 명창을 찾아가 깊은 소리를 공부하며 그의 끼를 발휘하기도 한다. 일화이지만 김연수는 스승에게 ‘소리의 가사가 틀리다’란 경솔한 말실수를 하게 되었고 자신의 실수로 스승을 잃은 김연수는 서울로 상경하여 조선성악연구회를 찾아가 송만갑, 이동백, 정정렬 등 당대의 명창들에게 다시 깊은 소리의 공부를 하게 된다. 한문에 조예가 깊어 사설을 정리하여 성악연구회를 통해 춘향전, 심청전, 토끼전 등 창극 공연을 만들었으며 이러한 작업을 계기로 훗날 초대 국립창극단 단장을 역임한다. 동초제의 소리는 가사와 문학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설(辭說)이 정확하고 너름새(판소리의 동작)가 정교하며, 부침새(판소리의 장단)가 다양하다. 또한, 가사 전달이 확실하고 맺고 끊음이 분명하여 관객의 이해를 효율적으로 도우며 문학적 특징이 많다. 그러므로 전승할 때 발음과 사설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설과 너름새의 면밀하고 다채로움을 추구한다. 전라북도는 타 유파에 비해 특히 동초제의 명창이 많다. 그만큼 계승의 중요성을 인지한 유파의 장점을 알 수 있으며 지역에 계승자가 많이 상주하며 전승에 노력한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중요한 요인이라 하겠다. 그러한 동초제의 명맥을 전라북도 전주에 상주하고 널리 알린 장본인은 바로 이날치의 증손녀 이일주 명창이다. 동초제의 소리를 오정숙 명창에게 배웠다. 현재 88세 고령이시지만 소리의 애정은 남달라 제자 소리에 지금도 추임새를 절묘하게 넣어주시는 어머니와 같으신 스승이다. 소리 욕심도 많으셔서 제자가 조금이라도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전혀 생각지 못한 큰 꾸지람과 매를 드셨으니 이일주 명창에게 제자란 자신의 일부분이라 생각하신 듯하다. 그러한 가르침과 교훈이 있었기에 수많은 제자가 그녀의 곁에서 공부를 원했고 서울, 대구, 부산 등 다양한 지역의 소리꾼들이 이일주 동초제를 배우려 전주를 찾았다. 제자로는 전북무형문화재 보유자 성준숙, 송재영, 장문희 명창 그리고 대구시무형문화재 주운숙 명창 등 여러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있고 전라북도와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많은 소리꾼이 그 계보를 잇고 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3.02.02 15:59

[도전하니 청춘이다] 전주양지노인복지관 '하늘빛 수채화' 강사 신재철 작가

우리나라는 지난 2017년부터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오는 2025년 상반기 만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 최근 의료비 증가, 기대수명 연장 등으로 일하고 싶은 시니어가 늘어나며 도내 곳곳에서도 ‘일하고 싶은’ 시니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도 청년 세대처럼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 일에 열정이 많다는 것이다. 자신보다 배우자와 자식들이 더욱 먼저였던 지금의 시니어들이 은퇴 후 늦게나마 그동안 해 보고 싶었던 일을 찾아 주저 없이 도전하는 모습. 전주 양지노인복지관에서 수채화 강사로 제2막의 인생을 살고 있는 신재철 작가(77)를 만났다. 하늘빛 수채화 동아리에서 강사를 맡고 있는 신재철 작가는 정읍에서 태어났다. 초등학생 시절의 신 작가는 그저 60명 학생 중 미술을 사랑하는 한 명의 어린이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며 “어린 시절 잡지를 보고 배우들의 모습을 그리면 부모님께서는 항상 칭찬을 해주셨다. 그런 칭찬이 더 멋진 작품을 그릴 수 있게 해줬고, 그러한 노력으로 학창 시절 그린 그림은 항상 교실 뒤쪽 칠판 벽에 붙어 있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학교에서 1주일에 한 두 번 있는 미술 시간이 어느 시간보다 많이 기다려졌고 좋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미술에 대한 사랑도 있었지만,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커 군산 교육대학교에 입학했다”며 “교대에 진학하며 자연스레 그림 공부를 못했지만, 그럴 때마다 개인적으로 조각, 찰흙 공예 등 만들기와 꾸미기를 하며 미술에 대한 갈증을 풀어왔다”고 전했다. 신 작가는 “수채화를 본격적으로 좋아했던 것은 젊은 시절이었다"며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과 길 가장자리의 작은 꽃을 발견하면 그 아름다움에 발길을 멈췄던 적이있는데 그럴때마다 ‘그리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졌었다”며 젊은 시절 가졌던 그림에 대한 갈망을 설명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그림을 사랑하는 신 작가에게도 직장과 가정이 생기면서 그림에 대한 열정이 떨어져 가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시골 농촌 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니 그림 공부가 어려웠다”며 “그 시절 그림에 관해 공부하기 위해서는 따로 도시로 나와 학습의 장을 찾아야 했지만 젊은 시절 그럴만한 여유 없이 바삐 달려오다 보니 그림을 배운다거나 즐길 기회를 찾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교직 생활 도중에도 초등학생 고학년 미술 전담 교사를 맡아 아이들과 그림그리기 대회에 출전하기도 하며 끊임없이 미술에 대한 사랑을 이어왔다. 신 작가는 “아직도 직장에 다니면서 주말이라도 틈틈이 시간을 내 그림 공부를 했더라면 더 많은 발전이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며 아쉬움을 보였다. 시간이 흐르며 참새 같은 자녀들이 성장하고 신 작가가 짊어진 가장의 무게도 덜어지며, 37년간 교직 생활을 이어오다 지난 2007년 무주 삼방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직을 했다. 그렇게 여가 시간이 남다 보니 자연스레 미술에 관심을 다시 가지게 됐다. 신재철 작가는 “퇴직 후 가까운 주민센터 수채화 동아리 반에서 수채화를 배우며 수채화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게 됐다”며 “그때 만난 선생님이 지도해주신 그림이 너무 재밌고 좋아서 배운 것을 몇 번씩 그려보는 열정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신 작가는 많은 그림의 종류 중 수채화를 택한 이유로 맑고 투명함을 꼽았다. 그는 “그림에는 한국화, 서양화, 유화, 수채화 등 여러 분야가 있다”며 “그 중 수채화는 수정도 불가하고 물 조절에 실패하면 한순간 작품을 망칠 위험도 크지만, 수채화만이 가지는 맑고 투명함과 번지는 느낌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물로 다른 그림보다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양지노인복지관의 ‘하늘빛 수채화’ 동아리는 지난 2021년 2월부터 회원들의 요구로 시작됐다. 동아리 회원 수는 고정돼 있지 않고, 가장 나이가 많은 84세 회원부터 65세의 막둥이 회원까지 평균 연령 72세를 기록하는 수채화 동아리이다. 그는 하늘빛 수채화 동아리를 “봄, 여름, 가을, 겨울 하늘빛이 다르고 아침 해가 솟아오르는 일출과 해가 서쪽 하늘에 질 때의 아름다운 모습은 정말 환상적이다”며 “하늘빛을 닮은 그림을 그리자는 뜻으로 ‘하늘빛 수채화’라로 이름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늦깎이 취미로 이만한 게 없습니다.” 신재철 작가가 지도하는 ‘하늘빛 수채화’ 동아리의 한 회원이 한 말이다. 그의 교실에는 은퇴한 유치원 원장, 군인, 행정 공무원, 전업주부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이들 모두는 미술을 처음 시작하는 회원들로 남들보다 늦게 수채화의 기능을 습득하고 작품 제작 활동을 펼쳐가고 있지만 신재철 작가의 지도에 수준급 실력을 보여주며 예술적 심성을 발현하고, 문화예술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었다. 신재철 작가는 “동아리 개설 초반에는 지도 강사 신청자가 모집되지 않아 지인의 소개로 갑작스럽게 동아리 강사직을 맡게 됐다”며 “부족한 제가 지도하고 있지만 배우시는 어르신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신 작가의 수채화 사랑은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앞으로도 연 1회 이상 수채화 회원전을 실시해 애호가들의 생활에 활력을 도모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동아리는 그림에 대한 갈망을 가진 퇴직자들이 대부분이다”며 “이제 자녀들도 성장하고, 직장에서도 정년을 맞은 어르신들이 미술 활동으로 작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며 자신의 삶을 더욱 주체적으로 살아 활력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는 “꽃은 질 때 더 향기롭고 과일은 익을수록 더 맛있다”며 “떠오르는 해는 눈이 부시지만 지는 해는 더 아름답다는 말처럼 마음만은 청춘인 전주 양지노인복지관 어르신들의 수채화 동아리는 수채화 실력향상을 위해 앞으로도 어렵고 힘든 작업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배우며 하나하나 작품을 완성하며 보람을 느끼고 제2의 생활에 활력을 가지겠다”며 마무리했다. /전현아 수습기자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3.02.01 17:15

소리전당, 전북 문예회관 최초 ESG경영시스템 도입 원년 선포

학교법인 우석학원이 수탁운영하고 있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올해를 전북지역 문예회관 최초로 ESG경영시스템을 도입하는 원년으로 삼겠다고 선포했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하 전당)은 1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역문화예술 활성화와 도민들의 문화쉼터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올해 운영계획을 밝혔다. 전당은 올해 △ESG 경영시스템 도입 △공연‧전시의 디지털화 선도를 위한 영상디지털기관과의 협업 구체화 △호남‧제주지역 공연장 교류 및 협력 강화 △시설 및 서비스 개선을 통한 고객 만족 △예술성과 대중성 지닌 대형공연 유치 및 전라북도 주관 국제대회 전당 프로그램 참여를 역점에 뒀다. ESG 경영시스템 도입과 관련 전문기관 용역을 맡겨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ESG 경영시스템 체계를 구축한 뒤 올해 안에 ESG 경영 선포식을 가질 예정이다. 메타버스시대에 맞춰 공연‧전시의 디지털화를 선도하기 위해 전당은 (재)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과 K-소리(Sori)란 타이틀로 온라인공연을 시험제작하고 다양한 기획공연에 확대한다. 호남의 대표적인 복합문화예술시설인 전당의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호남‧제주지역 공연장들과 소통과 교류를 확대해 공동기획 등 중앙부처 지원을 이끌어낼 계획이다. ‘뉴(NEW) 아트숲’이란 통합 브랜드로 운영하는 기획사업은 올해 ‘예술을 디자인하다’란 슬로건 아래 ‘예술, 대중, 지역’이란 3가지 가치를 중점으로 공연(67건)과 전시(4건), 예술교육(7건)이란 틀 속에 섹션별로 총 78건(577회)을 진행한다. 공연은 장한나, 첼리스트 미샤마이스키가 무대에 서는 ‘거장전’, 디즈니 100주년 기념공연인 디즈니 인 콘서트를 선보이는 ‘기획자의 눈’, 지역예술단체와 협업 및 신진 발굴 프로젝트인 ‘소리연리지’,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등을 통해 재미를 선사하는 ‘스테이지원더’, 지역 시·군을 방문하는 ‘찾아가는 예술극장’ 등이 있다. 올해 전북도가 주관하는 2023 전북 아시아태평양 마스터스대회와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 기간 전당 대표 브랜드인 ‘소리킥 시리즈’를 전 세계 앞에서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는데 전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전시는 대관과 기획의 균형을 맞춰 관객 눈높이에 맞춘 테마전시와 시즌전시(여름과 겨울 방학체험전 등)를 유치해 나가기로 했다. 예술교육은 유아부터 중‧장년층까지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소리터? 놀이터!’, ‘기술 입은 문화예술교육’, ‘어른들의 문화놀이터 시작(See作)’ 등을 중앙부처 공모사업 참여를 통해 준비하고 있다. 서현석 전당 대표는 “도민의 문화 향유와 전북 문화예술 구심점으로서 역할을 더욱 충실히 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김영호
  • 2023.02.01 17:12

전북시인협회 제9대 이형구 회장 취임식 열려

전북시인협회 김현조 제8대 회장과 이형구 제9대 회장의 이·취임식이 지난 31일 한국전통문화전당 공연장에서 열렸다. 이날 이·취임식에는 정운천 국민의힘 국회의원, 우범기 전주시장, 이기동 전주시의회 의장, 소재호 전북예총 회장, 윤석정 전북일보 사장, 한명규 JTV전주방송 사장, 신정일 우리 땅 걷기 이사장 등을 포함해 지역 원로시인과 회원 100여명이 참석했다. 김관영 전북도지사와 국주영은 전북도의회 의장은 영상 메시지로 이·취임식을 축하했다. 명예시인인 윤 사장은 축사를 통해 “제8대 회장을 맡아 운영해온 김 회장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새로 취임한 제9대 이형구 회장을 축하한다”며 “전북시인협회가 보여준 대마도 반환 촉구 활동에 공감하며 앞으로 진행할 사업에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를 약속한다”고 말했다. 제8대 회장을 역임한 김 회장은 “지난 3년간 하루도 쉼 없이 오로지 전북시인협회 발전만 생각하며 동분서주 했다”며 “공무원들이 시를 쓰고 지도자들이 시를 읽어야 시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고 당부했다. 제9대 회장인 이 회장은 순창 출생으로 전북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2001년 계간 공무원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곁에 두고 싶은 사랑>, <갯바람은 독공 중>, <생명의 먹줄을 놓다> 등이 있으며 (사)한국생활법률문화연구원 이사장, 전라북도 지방법무사회 회장, 대한민국공무원문인협회 전북지부장을 맡고 있다. 이형구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문인은 총과 칼보다는 붓으로 이 나라를 지켜 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며 “시인들의 권익보호와 올해 열리는 새만금세계잼버리대회와 관련해 ‘새만금 세계 잼버리 시문학상’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전북시인협회는 임원진에 부회장 이두현·심옥남·정재영 시인, 사무처장 이점이 시인, 사무국장 강명수 시인, 재무국장 박소정 시인, 편집위원장 이두현 시인, 편집위원 조경옥·황보림·김은유·김소형·김미림 시인, 각 시·군 지역위원장에 강은례(김제), 강지애(완주) 고순복(부안), 김용주(장수), 김철모(정읍), 배순금(익산), 서영숙(무주), 송영란(임실), 문영(군산), 유수경(남원), 표순복(고창), 홍성주(순창), 감사는 전용직·장귀자 시인이 맡는다.

  • 문학·출판
  • 김영호
  • 2023.02.01 17:12

이강만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사장 ‘미생(美生) 이야기 2’ 출간

묻어두기엔 너무 아름다운 삶과 사람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신간 <미생(美生) 이야기2>(이른아침)를 통해 저자인 이강만(59)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대표이사 사장은 일상에서 마주한 삶과 사람을 노래했다. 이 책의 저자는 일상을 관찰하는 게 취미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찾는 일에 몰두한 저자가 미담을 목격하고 이를 적어간 것이다. 이전에 <미생 이야기1>이 희망을 전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미생 이야기2>는 그런 이야기들에 이야기만큼이나 아름다운 일러스트를 추가해 읽는 재미와 감동을 더했다. 이야기 글은 전북일보 칼럼을 엮어서 만들었는데 삽화는 저자와 인연이 된 중학생이 그린 것이다. 저자와 봉사활동에서 처음 만난 인연으로 공통점이 많아 공동작업이란 도전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글쓰기가 곧 세상과의 소통이라 실감한다는 저자는 원고 초안을 가족들에게 보여줘 첫 소통을 한다. 그 다음 지인들과 소통을 통해 글을 되새김질하면서 아름다운과 삶과 이야기를 녹여냈다. 책에 소개된 한 일화로 저자가 고교 졸업 30주년 행사를 마치고 귀경버스에 올랐을 때 일이다. 성공적으로 행사를 이끈 한 친구가 서울 동기들에게 나눠주려고 손수 재배한 미나리를 네 포대나 짐칸에 실어 놓았단다. ”친구가 싸 보낸 미나리 한 단에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그의 마음도 담겨 있습니다. 미나리에는 곧 물리겠지만 친구의 따스한 마음만은 물릴 일이 없겠지요.” 저자는 책을 통해 미나리는 물리겠지만 친구의 따스한 마음은 절대 물리지 않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장수 출신인 저자는 전주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고려대 대학원 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데 관심을 가지고 2016년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에 가입했다. 2021년에는 10여 년간 봉사활동을 해온 지인들과 사단법인 미생이야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 문학·출판
  • 김영호
  • 2023.02.01 17:00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지호 소설가 - 문인수 '쉬'

겨우내 기른 머리카락을 자르기 위해 이발소에 갔습니다. 한때는 지상의 목 좋은 곳에 있었지만 흐름 따라 지하 구석으로 밀려난 ‘고도 이용원’.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 적막해 ‘고도’가 ‘고독’으로 읽힙니다. 여러 미용실을 전전하며 전기바리캉에 적응된 몸과 마음이 늙은 이발사의 느릿한 가위질에 안절부절못합니다. 느린 것이 들뜬 것을 잘라내는구나. 주름진 손으로 솎아내는 것이 머리카락만은 아니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한 노인이 들어오십니다. 이발사가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를 합니다. 노인께서 옆자리에 앉아 거울 속의 저를 가만 바라보시더니 “처음 보는 손님이시네.” 인사를 건네십니다. 고개를 끄덕일 수 없어 대답에 웃음을 더해 거울 너머로 보냅니다. 웃음이 표지가 되었던지 노인께서 말씀을 편하게 이어가십니다. 담배를 끊은 이후 밤마다 다리가 저리고 쥐가 나서 고생을 했는데 알고 보니 속옷 때문이었답니다. 담배를 끊어 살이 쪘음에도 예전 속옷을 그대로 입어 골반이 꽉 조여 그리되었던 것이랍니다. 가위로 속옷의 고무줄을 ‘탁’ 자르니 피가 살수대첩의 강물처럼 하류로 흘러가더랍니다. ‘와~ 이분 썰 장난 아니다’ 생각하고 있을 때 이발사께서 노인의 말을 받습니다. 예전에 한 사내가 ‘눈에 핏발이 서고 얼굴이 붉어지는 병’에 걸려 오랫동안 고생을 했답니다. 병원이란 병원은 다 찾아다니고 약이란 약은 다 먹어봤으나 낫지가 않았답니다. 이 병은 더 이상 고칠 수가 없겠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어느 산중에 영험한 명의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답니다. 초옥의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명의가 다가와 사내의 목에 가위를 들이밀더랍니다. 이내 사내 목을 옥죄고 있던 넥타이를 싹둑 자르고 단추 하나를 풀어주더랍니다. 순간, 사내의 고질병이 서리처럼 사라졌답니다. 명의가 자른 것이 비단, 넥타이만은 아니라는 것이 노인의 추정이었습니다. 허리에 파고든 철삿줄을 니퍼로 잘라주자 몸태질 뒤의 울음 같은 애절한 한숨을, 길게 내뱉었던, 뒤뜰의 참죽나무를 생각하고 있을 때 노인께서 또 한마디를 하십니다. 102세 노모께 팬티기저귀를 채워드리는데 틈만 나면 면 속옷으로 갈아입으신다는 것입니다. 면 속옷을 편하게 여기시는 것을 알지만 위생도 그렇고 손빨래가 불편하기도 하여 기저귀를 채워드렸던 것인데……. 그런데 오늘 아침, 노모께서, 인제부터 그만 곡기를 끊겠다고, 나직이 고하시더랍니다. 순간, 노 이발사의 가위질이 멈추었습니다. 제 미간에 뜨거운 것이 울컥 고이고 말았습니다. 노모께서 끊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비단, 곡기만은 아니라는 것이 멈춘 가위질과 미간에 고인 것들의 추정이었습니다. 다시 고도 이용원에 고독(苦毒)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 고독 속에서 문인수 시인의 시 ‘쉬’를 생각했습니다. 전문을 보겠습니다.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 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었다고 합니다. /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따에 붙들어 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이발사가 노구의 몸으로 지하에서 지켜내고 있는 그것. 명의가 넥타이를 자르고 단추를 풀어 사내에게 되찾아준 그것. 노인이 담배를 끊고 건강을 되찾아 ‘따’에 단단히 붙들어 매려 했던 그것. 노모가 곡기를 끊어 마저 풀거나, 혹은 이어가고 싶었던 그것.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을 닮은 그것들. 길게 자란 머리카락을 자르며, 노인들께서 부려놓는 인생의 문장들을 추스르며, 고인이 된 문인수 시인의 복간 시집을 읽으며. 황지호 소설가는 202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으로 등단했다.

  • 문학·출판
  • 김영호
  • 2023.02.01 16:14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