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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천 집행위원장 전라북도 명예도민증 수상

박재천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 박재천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이 전라북도 명예도민이 됐다. 박 위원장은 지난 12일 전북도로부터 전라북도 명예도민 증서와 기념패를 전달받고, 지난 10여년 간 소리축제를 넘어 전라북도 문화예술 발전에 공헌해 온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전북도는 명예도민 증서를 통해 2014년 5월 소리축제 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된 후, 전통예술에 대한 전문성과 기획력으로 전주세계소리축제를 글로벌 축제로 성장시켰다" 전라북도 문화예술의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기에 이 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지난 2018~2019년 2년 연속 스페인 본사 TWMC(트렌스글로벌월드뮤직차트)가 선정한 베스트 페스티벌 어워드 세계 1위 등의 수상실적을 기록했다. 박 위원장은 소리축제를 기반으로 전라북도 문화예술 발전에 미력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어 영광스럽고 감사하다며 문화예술의 역사와 전통, 인프라가 풍성한 전라북도가 미래에도 그 명성을 잇고 발전해 나가는데 명예도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헌신해 나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재천 집행위원장은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현대음악과 재즈, 아방가르드 음악을 폭넓게 아우르는 동시에, 판소리(심청가)와 사물놀이, 전통 굿 등을 공부했다. 무주 WTF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총감독(2017)을 지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2008년 대한민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연주상(2008)과 제13회 한국대중음악상 특별상(2016)을 수상하는 등 한국음악계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한편 박 위원장과 함께 박지성 전북현대모터스FC 클럽어드바이저와 박정웅 한국관광공사 전북지사장이 명예도민증을 수상했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2.01.19 19:39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굿모닝, 윤석열

김윤중 작가가 굿모닝, 윤석열: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시아)를 펴냈다. 윤석열의 출생과 성장, 조국의 비리를 단죄한 윤석열 검찰총장, 유시민의 거짓 선동과 윤석열의 법치주의 수호, 추미애 장관의 권력 남용과 윤석열의 반격,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만용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 대통령 문재인과 검찰총장 윤석열의 대립, 정치 영웅이 필요한 시대, 성공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등 총 8부로 구성돼 있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민의 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그의 정치적 행보 등을 두루두루 살펴보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작가는 현재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몰락할 수도 있는 국난의 시기로 판단했다. 이에 김 작가는 펜을 들고 한 글자 한 글자 국민의 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김 작가는 책을 통해 현실을 살펴보면 문재인 정권의 주도적인 정치 세력들이 좌파 이념에 사로잡혀 역사를 퇴보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정치 불안을 부추기고 사회갈등을 일으키고, 경제발전을 후퇴시키는 등 우리나라를 몰락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전북 진안 출생으로, 전주 전라중, 서울 영동고, 이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조세형(전 민주당 총재 권한 대행)의 특별 보좌관으로 선임되어 총선을 진두지휘하는 등 정치를 경험했다. 현재는 인물평전 전문 작가로 시대를 이끌어간 위대한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와 사회고발소설 등 독특하고 흥미로운 리얼리즘 기법으로 집필하고 있다.

  • 문학·출판
  • 박현우
  • 2022.01.19 19:39

김은숙 작가, 세 번째 시집 ‘초원을 읽는 저녁’ 출간

김은숙 작가,초원을 읽는 저녁 김은숙 작가가 세 번째 시집 초원을 읽는 저녁(인문사 아트컴)을 출간했다. 이 시집은 별 굽는 사람, 길 끝에 희망이 있다, 바닷섬의 노래, 향을 그리다, 초여름의 삽화 등 총 5부로 구성돼 있으며, 김 작가가 살면서 보고 느꼈던 것들을 솔직담백하게 풀어낸 작품 88편이 수록돼 있다. 김 작가는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상상 속의 이야기보다는 실제 작가의 친구가 했던 이야기, 세상에 알려져 크게 이슈가 된 이야기, 파도를 보며 떠올린 생각 등 우리의 삶과 밀접한 것을 소재로 삼았다. 초원을 읽는 버릇이 생겼다/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를 쓰고 온 후로/부쩍 눈물이 많아졌다는/친구의 소식을 들은 후/나도 덩달아 눈물이 흔해졌다/시도 때도 없이 소환된 옛날은/풀이 바람에 나부끼던 먼 언덕이다(초원을 읽는 저녁 일부) 특히 물리적인 방법의 목숨 연명 치료를 받지 않을 것을 미리 등록해 두는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를 작성하고 온 친구의 이야기를 담은 시 초원을 읽는 저녁, 지난 2014년 신안군 염전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던 염전지기의 이야기를 담은 시 별 굽는 사람 등이 독자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김 작가는 시인의 말을 통해 이 시들이 문학 동네의 화려한 번화가를 활개 치며 걸어가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냥 호젓한 바람의 길이나 풀잎 무성한 강 언덕을 구름처럼 지나가는 길손의 몫이면 족하겠다. 어여쁘게 반기는 들꽃이며 풀잎같이 이웃들을 만나면 기쁠 것이라고 전했다. 김은숙 작가는 전남 순천 출생으로, 진해에서 자랐으며 현재 전주에서 살고 있다. 그는 지난 199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시집 세상의 모든 길, 귀띔 등이 있으며, 수필집 그 여자의 이미지, 길 위의 편지, 그 사람 있었네 등 다수가 있다. 그는 새천년한국문인상, 전북문학상, 전북시인상, 하이쿠문학상, 영호남수필문학대상 등을 받았다.

  • 문학·출판
  • 박현우
  • 2022.01.19 19:39

창간 10주년 맞은 정읍학연구회 '정읍학' 제8호 간행

창간 10주년을 맞은 정읍학연구회 학술지 <정읍학> 제8호(정읍학연구회)가 최근 발행됐다. 이번 호에서는 '다시, 세계의 중심 정읍으로'라는 정읍 사상 특집을 주제로, 정읍사상사(김익두, 전북대), 고부 출신 백운 경한화상의 교선일체 사상(김방룡, 충남대), 일재 이항의 이기일물설의 새 해석(김백녕, 전북대), 정읍지역의 근현대 종교사상의 지형도(박대길, 전북대), 동학혁명사상의 현대적 계승 문제(이춘구, 전북대), 증산 강일순의 사상사적 중심성(김탁,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족서예의 한 중심으로서의 정읍서예사(배옥영, 원광대) 등의 특집 논문들과, 태산군 관아지 및 정극인 향학당 터 고증(오언근, 향토사학자) 등 일반 논문이 실려 있다. 한편 정읍학연구회는 지난 2013년 정읍 지역문화를 연구하는 전문 학술연구 단체다. 김익두(전북대, 국문학, 회장)김재영(전남대, 역사)류승훈(정읍 서예가)박승자(배영고, 지리)배상정(군산대, 관광학)송기도(전북대, 정치학)안진회(정읍, 한문학자)안후상(충남대, 종교학)유종국(국문학, 정읍과학대)유화수(국문학, 호원대)이금섭(우석대, 국악학)이상섭(배영고, 역사)이용찬(전북대, 국문학, 총무)전성군(농협)정두선(정읍시, 문화기획)황태규(우석대, 관광학) 교수를 창립 멤버로 출, 현재까지 총 90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연구회는 정읍의 역사 사상 정치 사회 경제 예술에 천착해왔으며, 지난해 말까지 총 8권의 전문 학회지를 발간했다.

  • 문학·출판
  • 김세희
  • 2022.01.19 19:39

[신간] '행복한 꽃지게'

2006년 6월 금강산 관광이 성행하던 시절 90세가 넘은 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금강산 여행을 다녀온 마흔 두 살 아들이 화제가 된 일이 있었지요. 이 동화는 그 때 금강산 지게 효자란 별명으로 유명세를 탔던 이군익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창작한 동화입니다." 장수 출신 박상재 작가가 그의 신작 동화 <행복한 꽃지게>(신아출판사) 속의 주인공 칠복이 아재를 독자들에게 소개한 말이다. 이 동화는 인천에 거주하는 효자 칠복이 아재가 만든 대나무 지게에 얽힌 이야기다. 박 작가는 신문에 보도된 팩트에 작가의 상상력을 입혔다. 실제 주인공이 진 지게는 알루미늄 소재지만 동화 속의 지게는 대나무 소재로 묘사했고, 지게를 제작한 사람도 동화 속에서는 마흔살 넘은 노총각이지만 실제 주인공은 초등학생 두 자녀를 둔 가장이다. 줄거리도 실제 사실과 비슷한 흐름이다. 동화책에 따르면, 주인공 칠복이 아재는 아내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슬퍼하는 아버지를 정성을 다해 보살핀다. 아버지는 생신 때 아내의 고향이 금강산 근처라서 늘 그리워했던 것이 생각나 죽기 전에 금강산을 꼭 가보고 싶다는 말씀을 한다. 그러자 아흔 둘이 되신 아버지가 험한 산을 걸어서 올라가는 것이 걱정돼 등에 업고라도 다녀오고자 직접 대나무로 꽃지게를 만든다. 칠복이는 꽃지게에 아버지를 태우고 금강산을 구경하게 해드리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쳐준다. 박 작가는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이 무색하게 효 정신이 바래가는 세태에 효를 주제로 한 동화를 써보고 싶었다"며 "사실을 바탕으로 허구를 더해 동화로 빚어냈다"고 고 소개했다. 이어 "이 책이 민들레 씨앗처럼 방방곡곡에 퍼져 효를 실천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 작가는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을 통해 등단했다. 책은 <개미가 된 아이>, <아름다운 철도원과 고양이 역장>, <돼지는 잘못이 없어요>, <잃어버린 도깨비> 등 동화집 120여 권을 냈다. 한국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PEN 문학상 등을 받았다. 현재 <아동문학사조> 발행인, (사)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김세희
  • 2022.01.19 19:39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지호 소설가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주인이 게으른 헌책방일수록 책들은 더 두서없이 쌓여있기 마련인데 이런 헌책방에 으레 괜찮은 책들이 많았다. 이른 봄 두릅나무 순이라도 꺾는 것처럼 면장갑까지 준비해 헌책방을 뒤지다 보면 한 아름 가까이 책을 고르게 되는데. 헌책방의 책들은 긴 시간 정성을 다해 골라도 명저이면서 읽지 않은 책일 가능성이 작았다. 대개 빌려 읽든지 훔쳐 읽든지 읽기는 읽었으나 책장에 꽂혀 있지 않은 책. 그럴만한 책이 아닌데 양장본으로 만들어 책값이 비싸 구매하지 못했던 책. 읽지도 않을 거면서 빌려 간 뒤에 돌려주지 않는 책. 읽지 않을 걸 알면서도 책장에 꽂아 두어야 할 것만 같은 책. 꽂아 두면 왠지 있어 보이는 책. 그리고 절대 헌책방에 있으면 안 되는 책, 헌책방 구석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타고 먼지가 쌓이면서 박대당하면 안 되는 책이게 마련이다. 토요일과 일요일 막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한 주를 살고, 방학 두 달 일해서 한 학기 등록금을 마련해야 했던 조실부모한 대학생이, 한 아름의 헌책을 모두 구매할 수는 없었고. 돌아갈 버스비와 콩나물국밥값을 제하고 남은 돈만큼만 책을 사게 마련인데. 우선순위에서 밀린 책들은 책방 모퉁이나 눈길이 머물지 않는 뒷줄 정도에 숨겨 다음을 기약하곤 했다. 그 책들을 놓고 오는 마음이 허전하고 스산하여 문득 인생이란 걸 알아버린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그 초라한 살림살이에도 다음을 기약하지 않고 매번 구매했던, 헌책방에 절대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책이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었다. 한때 표지에 검열필이 찍힌 초판만 열 권 남짓 가졌을 때도 있었는데. 더러는 선물로 주고 더러는 빼앗기기도 해서 이제 두 권만 남은, 헌책방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어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하는 책. 이 책을 그 시절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를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은 알 것도 같다. 한동안 글은 문장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며 살 때가 있었다. 화려하고 신선한 비유, 조율된 리듬감의 일관성,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 단문과 단문을 연결해 이루어내는 날카로움, 보일 듯 보여주지 않는 행간, 길어도 주술 관계가 깨지지 않는 어순, 문맥에 부합하는 적확한 단어, 조사와 수식어의 적절한 생략과 편안한 음독,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해학과 풍자,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긴장감, 아련함을 남기는 여백 등 문장이 글 쓰는 사람의 최우선 조건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달은 보지 못하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달은 찾지도 않고 손가락의 손톱만 다듬던 때가 있었다. 그 무명(無明)을 벗어나게 해준 책이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었다. 무엇을 써야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고민을 시작하게 해준 책. 사회적문학적 주제, 글은 그 주제가 우선이며 주제 실천 의지와 노력이 먼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책.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글 쓰는 사람 노릇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황지호 소설가 『2014 우수출판콘텐츠제작지원사업 선정』,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 저서 『잠수함 속 토끼』 등.

  • 문학·출판
  • 기고
  • 2022.01.19 19:39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110)범 내려온 자리에 남은 호랑이 기운

호랑이 기운이 깃든 ‘인검(寅劍)’은 의례용 칼이다. 12간지 중 호랑이를 뜻하는 ‘인(寅)’은 양기가 강하며 의(義)를 상징하는데, 양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인년, 인월, 인일, 인시가 네 번 겹쳐지는 시간에 맞추어 제작한 사인검과 삼인에 맞추어 제작한 삼인검이 있다. 조선 시대 인년은 총 43회였다. 태조 7년(1398) 무인년에 처음 인검이 제작되었지만, 전란과 흉년이 심한 해에는 만들지 못하기도 했다. 제작의 준비부터 완성되기까지 여러 복잡한 절차와 금기를 지켜가며 시기를 맞추어 선정된 장인이 특정한 장소에서 엄선된 재료로 의미를 담아 제작하였다. ‘사악한 것을 베고 나라를 지키라는 뜻’을 담아 왕실이 만든 인검은 ‘나쁜 기운을 막고 안녕을 기원’하는 상징이었다. 호랑이는 예로부터 재앙을 물리치며 잡귀를 막아주는 ‘영물(靈物)’로 여겼지만, ‘호환(虎患)’이라 불리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가축은 물론이고 사람까지 물어 죽여 호랑이가 먹고 남긴 시신 일부를 모아 장례를 치르는 것을 ‘호식장’이라 하였으며, 그 자리에 만든 무덤을 ‘호식총’이라 하였다. 호환과 맞서기 위해 호랑이를 사냥한 모습이 고구려 벽화와 조선의 화가 이인문의 그림 등에 남아 있으며, 고려 시기에는 호랑이 전문 사냥꾼이 존재했다. 조선 초부터는 농사를 위한 개간이 늘어 살 곳을 빼앗긴 호랑이가 인가에 출몰하면서 호환이 잦아지자 조정은 호랑이를 잡는 ‘포호정책’을 펼쳤다. 태조 1년 성안에 들어온 호랑이를 쏴 죽인 것을 비롯하여 궁에 호랑이가 새끼를 낳았다는 기록이 있고 태종이 “범에게 상하는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죄를 주겠다”며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호환에 대응하라고 지시한 내용이 『조선왕조실록』에 전해진다. 포호정책에 따라 호랑이를 전문적으로 잡는 최정예 군사인 ‘착호갑사(捉虎甲士)’를 선발 운영하였고 세종 시기에 이르러 체계화되었다. 지방에도 호랑이를 잡는 ‘착호인’과 함정을 관리하는 ‘감고’등을 설치해 호랑이 가죽을 진상하게 하고 더러는 큰상을 내렸다. 왜란을 거치며 훈련된 조총 포수들이 호랑이 사냥에 투입되었고 산포수라 불린 숫자가 늘어 감에 따라 호랑이의 수는 점차 줄었다. 조선총독부는 피해 입히는 맹수를 퇴치한다는 구실로 해수구제를 정책으로 삼아 호랑이를 마구 사냥했으며, 부호 야마모토가 조직한 호랑이 사냥단 정호군까지 원정와서 ‘조선 호랑이 사냥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후 1922년 경주 대덕산에 살던 호랑이가 사살되면서 조선의 호랑이는 자취를 감추었다. 호랑이 왕국이라 불리던 조선에 그 많던 호랑이는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는데, 임실 덕치면 약담봉에는 포수바위 전설이 있다. 마을을 공포에 떨게 하는 호랑이를 쫓아 달라고 정성껏 제물을 바치며 산신제를 올리자 감동한 산신이 마을을 내려다보는 약담봉에 세워준 게 포수바위이다. 이후 마을에는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약담봉에서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가 상류에 자리한 임실 신평면 호암리에는 특별한 호석(虎石)이 있다. 호랑이를 닮은 범바위가 있어 호암리인데, 그 모습을 두려워해서인지 확실치 않지만 사람들이 범바위를 없애버렸다고 한다. 그 후 범바위를 없애는데 주도한 사람의 집에 불이 나고 우환이 잇따르자, 수호신인 범바위를 없앴기 때문이라고 여긴 마을 사람들이 호석을 만들어 세워 놓았다. 이후 마을에 평화가 다시 찾아왔다는데 만든 호석의 모습이 특이하다. 이빨을 드러내고 익살스럽게 히히 웃는 호랑이는 오금 저리게 하는 두려운 존재이기보다는 민화 속 친근한 호랑이 같기도 하고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며 흥정하는 동화 속 호랑이 같다. 공포를 해학으로 풀어 낸 친근한 상징이다. 남원에도 두리뭉실한 귀여운 모습의 호석이 있다. 광한루원을 비롯한 몽심재 고택과 고평마을 세 곳에 자리한 호석인데, 비슷한 형상이 마치 한 사람의 석공 솜씨처럼 보인다. 그 호석이 전해진 데에는 견두산(犬頭山)과 관련 있다. 견두산의 본디 이름은 호랑이 머리를 뜻하는 호두산(虎頭山)이었고, 그 고장은 호랑이가 들끓어 지명과 마을 이름마저도 호곡리(虎谷里)와 호음실이었다. 남원에 호환이 끊이지 않자, 풍수에 능한 전라감사 이서구(1754~1825)가 산 이름을 견두산으로 바꾸면서 호환이 사라졌다. 하지만, 견두산이란 이름을 얻자 성난 개가 남원 땅을 노려보는 모양새가 되어버렸고 들개와 늑대가 떼를 지어 나타나 피해를 줬다. 이에 이서구가 세 곳에 호석을 세우도록 하여 견두산을 바라보게 하자 들개무리의 피해와 호환도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호석이 있어 호석거리로 불렸던 남원의 옛 시장은 광한루원에 편입되어 사라졌지만 오작교 가는 길옆에 호석은 세월에 닳은 모습으로 서 있다. 그리고 명당으로 알려진 몽심재에는 호석과 더불어 호랑이 기운을 받을 수 있는 나무가 200여 년을 함께하고 있다. 나무줄기의 밑동이 호랑이 발을 닮아 ‘호족시’란 이름을 얻은 감나무가 특별하고 귀하다. 임인년 호랑이해를 맞으며 두려움을 넘어 벽사의 상징이 된 호랑이의 힘찬 기운을 받아 보자. 조선 왕실의 인검과 호랑이 물상에 기대어 삿한 것을 물리치고,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송림 깊은 골로 한 짐생이 내려온다.”란 노래로 한껏 흥을 내자.

  • 문화재·학술
  • 백세종
  • 2022.01.19 13:48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의  전통문화바라보기] 백범의 글

2022년의 임인년 호랑이해가 밝았다. 나라 안팎으로 코로나19라는 몹쓸 전염병이 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지만, 우리 민족은 지난 승리의 역사 한 모습처럼 굳건하게 서로를 위로하며 위기를 잘 이겨내고 있다. 역사의 흐름과 교훈은 항상 반복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세상을 돌아보며 지난날의 과오와 교훈을 얻고 보다 나은 생활과 안정된 현실을 꿈꿔왔다.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견제, 억압과 탄압, 갖은 병마에도 언제나 우리 민족은 마음을 함께 모았으며 우리 세대는 물론 다음 세대인 아들, 딸들의 낙원을 위해 노력하고 함께 위기를 극복했다.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고 쓰러진 서로를 안고 고통스럽게 아파할 때도 있었다. 순간마다 우리에게 다가온 목소리 "이겨낼 수 있어", "우리는 하나", "우린 할 수 있어", "우리니까". 역사는 또 흐르고 시대는 다시 반복한다. 모진 삶의 현실과 몹쓸 전염병은 총, 칼이 되어 우리를 짓누르고 또 다른 삶의 변종 회오리는 불안과 초조를 낳고 있지만, 과거 우리 민족이 그랬듯이 우리는 서로를 위하고 뜻을 함께하며 저마다 의지를 다질 것이다. 힘든 현실과 어려운 정국政局, 병마가 휘도는 세상 속 우리가 원하는 삶으로써의 방향은 바로 "굳은 의지"란 시작점이며 "사랑과 포용"의 변곡점이다. 백범 김구의 글이다. "어릴 때는 나보다 중요한 사람이 없고, 나이 들면 나만큼 대단한 사람이 없으며, 늙고 나면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이 없다. 돈에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다. 직업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는다. 칭찬에 익숙하면 비난에 마음이 흔들리고, 대접에 익숙하면 푸대접에 마음이 상한다. 문제는 익숙해져서 길들여진 내 마음이다. 집은 좁아도 같이 살 수 있지만, 사람 속이 좁으면 같이 못 산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를 수 없다. 사실 나를 넘어서야 이곳을 떠나고, 나를 이겨내야 그곳에 이른다. 갈 만큼 갔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갈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참을 수 있는지 누구도 모른다.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모든 것이 다 가까이에서 시작된다. 상처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한다. 또 상처를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도 내가 결정한다. 그 사람 행동은 어쩔 수 없지만, 반응은 언제나 내 몫이다. 산고를 겪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고, 꽃샘추위를 겪어야 봄이 오며,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 거칠게 말할수록 거칠어지고, 음란하게 말할수록 음란해지며, 사납게 말할수록 사나워진다. 결국,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를 다스려야 뜻을 이룬다. 모든 것은 내 자신에 달려있다." 백범의 글처럼 오래전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었고 견고히 올곧게 다져진 우리 민족의 의지는 어지러운 세상을 이겼다. 모든 것은 스스로 마음에 달려있다. 힘을 내자. 그리고 하늘을 보며 가끔은 호탕하게 웃자. 주어진 현실은 어렵지만, 주먹을 쥐고 마음을 다스려보자. 이 세상이 우리를 반기며 안아줄 그 날을 위해 말이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2.01.19 11:36

[이승우 화백의 미술이야기]세잔느의 앵무새 1

1864년 살롱전에서 낙선한 것을 시작으로 1882년 입선을 할 때까지, 정확하게 18전 1기의 명예를 차지한 사람이 바로 세잔(Paul Cezanne)이다. 그나마 19년째에는 또다시 낙선을 하여 아예 출품을 포기하고 말았지만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200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하는 위대한 화가”라고 평가하며 자신을 굳게 믿은 사람이었다. 실제로 ‘보고 그린다‘는 입장을 떠나서 ’본다는 것은 아는 것과 동일하다‘는 다빈치의 말처럼 감각과 지성을 인식의 근원으로 하여 대상을 포착하려던 사람, 그래서 하루 종일 사과를 들여다보며 무엇인가를 생각했던 사람, 세잔의 현실은 답답함을 벗어나 안쓰러웠다. 시골 은행장이던 아버지의 덕택으로 빨간 조끼를 입고 으스대며 궁하지 않게 돈을 쓰는 까닭에 그 편협하고 괴팍한 편집광적 성격에도 더러 친구가 있기는 하였으나 그의 그림만은 절대 사절이었다. 그의 그림을 물감의 하치장 정도로 여기던 친구들은 어쩌다 얻은 그림마저도 집에 가져 갈 수가 없었다. 부인에게 문화적 미개인이라는 핀잔을 듣기 싫어서였다. 그래서 다른 친구에게 그림을 가져오게 하여 깜박 잊고 가는 척 연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인에게 발견된 그림은 바로 창고 속으로 직행, 쥐들의 침대가 되거나 불쏘시개로 쓰였다. 그럼에도 세잔은 60이 넘은 나이에도 하루도 쉼 없이 그림을 그렸다. 그는 엑스 시의 부르고뉴 거리에 있는 자택 이외에도 로보거리에 아틀리에 하나를 더 가지고 있었다. “미사를 드리는 것은 샤워와 마찬가지야. 그것으로 나는 말끔해지니까”라고 말하는 그의 하루 일과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산소브로 성당에서 새벽 미사를 마치고 나면 언제나 성당 입구에 있는 거지들에게 적선을 하고는 곧장 로보거리에 있는 아틀리에로 향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오전 중에 그림을 그리고 일단 집에 들어가 점심 식사를 마치고는 4륜 마차를 타고 스케치를 하러 간다. 마부는 세잔이 말하지 않아도 행선지를 알고 있었다. 김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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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세희
  • 2022.01.19 11:36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보윤 작가-김하종 「사랑이 밥 먹여준다」(마음 산책)

“밥 짓는 일은 절실한 기도였다” 「사랑이 밥 먹여준다」는 김하종 신부가 한국에 온 지 30여 년 만에 쓴 삶의 고백서다. 이탈리아 태생으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한국으로 온 그는 1992년부터 지금까지 노숙인들을 위해 밥을 짓고 있다. 김하종 신부는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읽는 일에 어려움을 느꼈다. 숙제를 해결하려면 친구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난독증을 앓고 있었다는 것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난독증으로 인한 고통은 그의 영혼을 단련시켰고 주변의 나약함에 귀 기울이게 했으며 타인의 절망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했다. 사제가 되어 봉사의 길에 접어든 것도 아픔을 겪은 경험 때문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사랑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썼다. “난독증으로 다른 아이들보다 늦되었던 어린 시절에도 ‘괜찮다’라고 했던 어머니, 사제의 길을 간다고 결심을 밝혔을 때도 ‘괜찮다’라고 했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나는 괜찮다’라고 했던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41쪽) 김하종 신부의 이탈리아 이름은 ‘빈첸조’다. 하종은 ‘하느님의 종’이라는 한국식 이름이다. 그는 성남시에서 ‘안나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성씨는 ‘성남 김씨’가 되었다. 1998년에 불어닥친 IMF는 이웃의 생존을 위협하고 200만 명에 가까운 실업자를 양산했다. 김하종 신부는 그해 7월 7일 실직자와 행려자를 위한 무료급식소 ‘안나의 집’ 문을 열고 수백 명분의 쌀과 반찬 재료를 구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리어카를 끌고 새벽 시장을 돌며 팔다 남은 야채를 얻었고 학교의 급식소를 찾아가 남은 반찬을 얻었으며 빵집과 결혼식장의 뷔페, 김장 김치를 나눠주는 절에도 찾아갔다.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짓는 동안 상처받은 일도 많았다. 하루는 음식을 만들고 있는데 밖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술에 취한 다섯 사람이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김하종 신부는 싸움을 말리다가 뺨을 맞았다. 상황이 종료되고 사무실에 들어간 그는 울기 시작했다. 매일 사랑을 주는 데도 폭력적인 행동으로 돌아온 것이 상처로 남았다. 그러나 다시 일어서야 했다. “오늘 흘린 눈물은 어두운 땅에 소중한 씨로 뿌려질 것이다. 새로운 사랑과 평화를 탄생시킬 것이다.”(145쪽) ‘안나의 집’에는 무료급식소 외에 공동생활 가정인 ‘쉼터’가 있다. 춥고 위험한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들의 대피소다. ‘쉼터’에서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한편 상담, 의료 지원, 직업, 자활 교육 등을 하고 있다. 김하종 신부는 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전한 장소와 따뜻한 환영, 순수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꽃을 볼 때 평화로움을 느낀다. 나눔의 길에서 피어난 꽃은 더욱 아름답다. 밭에서 키운 감자와 배추를 나눠주는 분, 거리에서 만난 노숙인에게 주머니의 용돈을 다 털어준 사람, 어렵게 모은 100만 원을 놓고 가신 낡은 코트의 할머니, 해마다 약을 기부하는 약사들, 돌잔치 대신 나눔을 택한 부부, 안나의 집에서 도움을 받다가 이제는 후원자가 된 사람……. 김하종 신부는 나눔의 꽃들을 끝없이 소개한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한다. ‘이 책을 읽어준 당신이 내게는 큰 응원이다.’(255쪽) 책 한 권을 읽어주는 것이 나눔의 길에 들어서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2.01.19 11:35

"후삼국 시대 선도한 후백제 재평가 시급"

후백제의 역사적 위상을 재정립하고 문화권 정비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토론회가 개최됐다. 더불어민주당 김성주(전주병)‧안호영(완주진안무주장수)‧김종민(논산)의원과 국민의힘 임이자(상주 문경) 의원이 주최하고, 후백제학회(회장 송화섭)가 주관하는 '역사문화권 지정을 위한 후백제 국회 토론회'가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지역 학자들은 후백제의 위상을 조명했다. 이어 후백제 역사문화권이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하 역사문화권 정비법)에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문화재청은 이를 두고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토론을 주최한 의원들을 비롯, 송하진 전북도지사, 후백제문화권 지방정부협의회 소속 김승수 전주시장, 박성일 완주군수, 전춘성 진안군수, 고윤환 문경시장, 강영석 상주시장 등이 참석했다. △후백제 위상=이날 주제발표에 나섰던 학자들은 한국 고대사에서 후백제가 차지하는 위상을 조명했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지역주의를 뛰어넘고 기회와 참여의 폭을 넓힌 사회로 넘어가는 사회가 후삼국시대라며 이 시대를 선도한 국가가 후백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진훤(견훤)은 농민 출신이었으며 지도층은 신라에서 정치 참여에 한계가 있었던 6두품과 지역 토호 세력들이었다면서 백성들의 생활향상에도 힘썼는데 둔전이나 관개를 통해 농업경제 증진에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라 말보다 진전된 국가로 평가했다. 정상기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실장은 고고‧미술사적 자료를 통해 후백제문화권의 범주를 살폈다. 정 실장은 산성과 청자 가마터, 청자, 사찰유적 등을 통해 살펴볼 때 후백제의 범주는 광주, 전남‧전북, 경남 서부, 경북 북부, 충남 홍성 등이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진정환 국립익산박물관 학예실장은 역사문화권정비법에서 정의하는 역사문화권은 문헌기록과 유적‧유물을 통해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발전시켜 온 권역이라며 후백제는 법에서 정의한 역사문화권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새롭게 발굴된 후백제 유물‧유적=이날 발표에서는 완주군이 후백제 문화유적 15곳을 확인하고 발굴 조사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박성일 완주군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후백제 문화유산 현황 파악을 위한 전수조사 결과 봉림사지와 용계산성을 포함한 15개소의 유적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봉림사지는 후백제 시대 절터, 용계산성은 운주면 용계천을 따라 남쪽으로 4㎞가량 뻗은 석성이다. 특히 3차례 발굴 조사를 통해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봉림사지의 실체를 최초로 실증했다며 올해는 용계산성에 대한 발굴조사를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후백제 문화권 역사문화권정비법에 포함 여건 충분=문화재청 이재필 고도보존정책과장과 군산대 곽장근 교수, 문경시청 엄원식 문화예술과장, (사)채미옥 미래세상 이사가 참여한 토론에서는 후백제 역사권이 역사문화권 정비법에 추가 포함될 여건이 충분한 것으로 논의됐다. 이재필 과장은 역사문화권 정비법 개정안과 관련한 지역의 요구를 문화재청은 최대한 수용하는 정책방향"이라며 "이런 방향성에 의해 후백제 역사문화권이 개정안 에 포함되는 방향을 적극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에 예맥과 중원 등이 들어오면서 너무 많은 문화권이 난립할 우려가 있다"며 "태봉과 진안, 변한문화권에 대한 요구도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이로 인해 "문화재청은 올해 전국적으로 역사문화권 기초 현황조사를 실시한다"며 "전반적인 조사를 통해 원삼국부터 후백제까지 아우르는 역사적 개념을 정립한 뒤, 법안 포함여뷰를 적극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 문화재·학술
  • 김세희
  • 2022.01.18 18:3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