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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새해특집 - 동물민속학자에게 듣는 호랑이 이야기] 호랑이, 산신령을 태우고 산천을 호령하다

2022년 임인년(壬寅年) 새해는 호랑이의 해이다. 호랑이해는 갑인(甲寅)․병인(丙寅), 무인(戊寅), 경인(庚寅), 임인(壬寅)의 순으로 육십갑자가 순환한다. 특히 임인년은 호랑이 중에서도 흑호(黑虎), 검은 호랑이에 해당된다. 중국의 용, 인도의 코끼리, 이집트의 사자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동물은 바로 호랑이다. 대한민국은 호랑이 나라로 호랑이는 전통문화 어디에서나 그 모습을 드러낸다. 대부분 산으로 이루어진 우리 한반도는 일찍부터 호랑이가 많이 서식한다 하여 호랑이 나라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우정과 문화 예술이 어우러진 인류의 대제전인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호돌이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수호랑이 당당하게 한국을 대표했다. 잘 발달되고 균형 잡힌 신체 구조, 느리게 움직이다가도 목표물을 향할 때의 빠른 몸놀림, 빼어난 지혜와 늠름한 기품의 호랑이는 산군자(山君子), 산령(山靈), 산신령(山神靈), 산중영웅(山中英雄)으로 불리는 백수의 왕이었다. 호랑이는 재앙을 몰고 오는 포악한 맹수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사악한 잡귀들을 물리칠 수 있는 영물로 인식되기도 한다. 또한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예의바른 동물로 대접받기도 하고, 골탕을 먹일 수 있는 어리석은 동물로 전락되기도 했다. 우리 조상은 이런 호랑이를 좋으면서 싫고, 무서우면서 우러러보았다.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 떡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로 시작되는 옛날 이야기 속에는 재미있는 호랑이 이야기가 있다. 힘세고 날래지만 한없이 어리석어 사람에게는 물론 토끼나 여우, 까치 등에게 골탕먹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들이 있다. 반면, 호랑이가 신통력을 지닌 영물로 사람이나 짐승으로 변신도 하면서 미래를 내다볼 줄 알고, 의(義)를 지키고 약자와 효자, 의인(義人)을 도우며 부정함을 멀리하는 신비스런 동물로 등장하는 교훈적인 이야기도 있다. 호랑이가 설화에 있어서는 영웅, 특히 건국시조의 수호자로 등장하고 있다. 견훤이 아직 포대기 속에 싸여 있을 때이다. 그 아버지는 들에서 밭을 갈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밥을 갖다 주려고 어린 아이를 나무 밑에 놓아 두었더니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였다. 호랑이는 후백제를 건국할 견훤의 인물됨을 미리 알아보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묘사되어 있다. 왕건과 이성계 등 건국시조들에게 호랑이의 보호는 보다 적극적으로 작용한다. 호랑이는 효의 수호신 겸 후원자로 이야기 속에 자주 등장한다. 한성에 사는 박씨는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었다. 그는 선친을 잃은 뒤부터는 하루도 빠짐없이 선친묘에 참배하였다. 선친 묘로 가는 어느 날 박씨가 재를 넘는데, 호랑이가 나타났다. 박씨가 자신은 선친 묘에 가야한다고 호통을 치자 호랑이가 등에 타라는 시늉을 하였다. 박씨를 태운 호랑이는 선친 묘까지 와서 안전하게 박씨를 내려 주었다. 집으로 올 때도 이와 같이 하여 삼년동안 계속 되었다. 세월이 흘러 박씨가 죽게 되었는데, 그의 묘 앞에 호랑이가 한 마리 죽어 있어 집안사람들이 그 옆에 묻어 주었다. 우는 아이를 달랠 때 할머니는 뭔가 무서운 존재를 들먹인다. 일본 순사가 온다거나 망태 할아범이 온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순사는 일제 강점기 때의 경찰을 일컫는 것이고, 망태 할아범은 망태를 들고서 어린아이를 잡으러 다닌다는 귀신을 일컫는 것이다. 호랑이도 그 무서운 존재 중 하나다. 산골 마을에서 문 밖에 호랑이가 왔다는 말은 일본 순사나 망태 할아범보다도 더 실제적인 공포를 자아낼 수 있다. 그런데 이 호랑이가 겁낼 존재가 있었다. 어느 날 배고픈 호랑이가 인가에 내려와서 사냥감을 찾다가 어린아이가 우는 집에 이르게 된다. 얘야, 울지 마라. 저기 바깥에 호랑이가 왔다! 어떻게 알았지? 내가 왔다는 것을. 순간 호랑이는 긴장하였지만, 바깥에 호랑이가 왔다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울어대는 어린아이에 더욱 긴장하였다. 저 어린애는 백수의 제왕이라는 나를 무서워하지 않는 건가? 그런데 이어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말에 어린아이의 울음은 신기하게도 그만 뚝 그친다. 얘야, 울지 마라. 저기에 곶감이 있구나. 곶감? 곶감이 뭐지? 저 어린애는 나보다 곶감을 더 무서워하는 것인가? 호랑이는 몰랐다. 사람이 울음을 그치는 이유가 무서움이 야기하는 공포감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또한 호랑이는 몰랐다. 인간들만이 간식거리로 먹는 곶감이란 음식물의 존재를. 호랑이는 우는 아이도 울음을 뚝 그치게 만든, 그 무시무시한 곶감이란 것을 피해 산속으로 도망을 칠 수밖에 없다. 살아있는 호랑이가 절대적 힘과 용맹으로 잡귀를 물리치듯 죽어서 호랑이 신체 일부로도 능히 온갖 나쁜 기운을 물리칠 수 있다. 호랑이 가죽, 뼈, 수염, 이빨, 발톱 등이 그것이다. 호랑이는 일상적으로 신체를 지켜주는 호신(護身)의 상징으로 믿어졌다. 정승은 호피를 가지고 있으면 잡귀가 침범하지 못하고 벼슬자리를 길이 보전할 수 있다고 귀하여 여겼다. 호랑이 가죽인 호피는 무척 귀하고 고가였다. 그래서 실물 호피를 사용하기보다는 호피를 그리거나 수놓아서 장식하였다. 호피그림은 범 아니면 표범의 가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병풍그림이다. 호렵도가 대개 여덟 장이 연결되어서 한 장면을 이루는 연폭(連幅)형식인데 비해 호피그림을 주로 낱장 형식이다. 신부의 신행 가마 지붕에 호담(虎毯)울 씌우는 풍속은 포담을 호피의 대용품으로 잡귀의 침범을 물리친다는 뜻이다. 호피그림은 장식 효과 뿐 아니라 벽사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전통문화 속에 우리나라 호랑이는 어느 하나에도 사악하고 표독스러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그래도 위엄 있고, 신령스러우며, 해학적이고 인간미 넘친다. 친근하고 따듯한 이런 표정들이 바로 우리 호랑이며, 여기에는 우리 민족의 모습과 마음, 즉 슬기․의젓함․익살을 담고 있다. /천진기 전 국립전주박물관장

  • 문화일반
  • 기고
  • 2022.01.02 17:17

장수군 장계면 삼봉리 봉화터에서 가야산성 확인

장수군은 장계면에 위치한 삼봉리 봉화터 발굴조사를 통해 가야산성을 확인했다고 30일 밝혔다. 장수군은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의 허가를 받아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소장 곽장근)와 함께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장수 삼봉리 산성이 그 당시 장수가야에 의해 축조운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30일 밝혔다. 이번 발굴조사는 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된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전북도와 장수군의 지원을 통해 이뤄졌으며, 지난 21일에는 장수 삼봉리 산성의 발굴조사 성과를 논의하기 위해 자문위원회의도 열렸다. 회의에서 관련 전문가들은 장수 삼봉리 산성의 입지와 형태성벽의 축조방법이 최근 영남지역에서 발견된 가야산성과 유사하고, 산성에서 적지 않은 가야토기가 출토돼 6세기 전반 이전에 장수지역 가야세력에 의해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가야 멸망 이후의 6세기 후반에는 신라가 산성을 장악했으며, 그 과정에서 집수시설이 운영된 것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군은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장수 삼봉리 산성과 장수에 존재했던 가야와의 관련성이 보다 명확하게 확인돼 향후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가야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이번 장수가야 발굴 조사를 통해 장수가야가 어떻게 성장하고 소멸했는지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장수가야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도록 문화재 발굴조사를 적극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이재진
  • 2021.12.30 19:16

제33회 전북문학상 수상자 선정…시인 3명, 수필가 1명

전북문학상 심사위원회(위원장 박성숙)가 제33회 전북문학상에 배순금박영택한선자 시인과 김재희 수필가가 최종 선정됐다고 밝혔다. 전북문학상은 전라북도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북문인협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각 문학 장르에서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하며 전북문인협회 발전을 위해 공헌한 회원을 선정해 격려하기 위해 수여하는 상이다. 올해 제33회 전북문학상 심사위원은 박성숙 수필가, 소재호 평론가, 조미애 시인이 맡았다. 수상자로 선정된 배순금 시인은 익산 출신으로 지난 1991년 한국시로 등단했다. 전북여류문학회장, 전북시인협회지역위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전북문인협회 자문이사와 익산문인협회 부지부장을 맡고 있다. 이 밖에도 한국문인협회, 교단문학회, 표현문학회 등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각지대>, <보리수 잎 반지>, <바람의 체온> 등이 있다. 박영택 시인은 전북 김제 출생이다. 지난 1993년 한맥문학과 월간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저서로는 <잃어버린 별을 찾아서>, <산, 숲에 들면>, <사람을 사랑하다>, <떡갈나무 숲에는 밀화부리가 산다> 등이 있다. 금요시담, 풍물시동인회장을 역임했다. 한선자 시인은 장수 출신으로 1996년 문예사조 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내 작은 섬까지 그가 왔다>, <울어라 실컷 울어라>, <불발된 연애들>, <죽은 시를 기억하는 오후> 등이 있다. 전북여류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 전주 북부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김재희 수필가는 2002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했다. 2006년 본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도 했다. 한국문인협회, 전북수필, 수필가비평작가회의, 행촌수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필집으로 <그 장승이 갖고 싶다>, <꽃가지를 아우르며>, <하늘밥>, <쉬어가는 물레방아> 등이 있다. 심사를 총괄한 박성숙 위원장은 전라북도 문인이라면 꼭 받고 싶어 하는 문학상이기에 심사에 공정성과 엄격성에 비중을 두었다며 후보자의 등단연도와 작품성 그리고 전북 문단 활동성과 전북문인협회에 대한 공헌도 등을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심사한 심사위원의 심사 결과를 종합해 결정했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박현우
  • 2021.12.30 19:15

국립무형유산원, 국가무형문화재 관련 자료집 2권 발간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원장 이종희)이 29일과 30일 연달아 국가무형문화재 디지털 홍보 안내서인 한 장으로 읽는 무형문화재-함께하는 무형문화재와 故 이매방, 故 임이조 유족이 기증한 자료를 정리한 무형유산 기증자료집을 발간했다. 29일 발간한 한 장으로 읽는 무형문화재-함께하는 무형문화재는 종목별 개요와 간략한 소개, 내용과 특징 등을 한 장으로 정리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전 종목을 온라인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도록 만든 전자책이다. 이 전자책에는 함께하는 무형문화재를 부제로 의식(종묘제례 등 20종목), 전통 놀이무예(씨름 등 12종목), 전통 지식생활 관습(해녀 등 12종목) 관련 국가무형문화재 33종목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누구나 쉽게 열람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누리집(www.iha.go.kr)에 공개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다. 30일 발간한 전통춤 외길 인생, 인간문화재의 인생을 담은 무형유산 기증자료집은 승무살풀이춤 보유자 故 이매방, 승무 전승교육사 故 임이조의 유족이 기증한 자료를 정리해 엮었다. 국립무형유산원은 지난 2013년부터 인간문화재의 생애가 담긴 자료를 수집정리하여 그 결과를 기증자료집으로 발간하고 있다. 故 이매방(1927~2015)은 지난 1987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1990년에 살풀이춤 보유자로 인정됐다. 승무, 살풀이춤뿐만 아니라 검무, 입춤 등 다양한 전통춤을 널리 알린 한국 전통춤의 거목이다. 故 임이조(1950~2013)는 지난 1992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전승교육사로 인정되었으며, 이매방에게 승무를 사사했다. 전통춤을 기본으로 한 다양한 작품을 창작한 안무가이기도 하다. 이번 기증자료집에는 故 이매방의 1970년대 공연 사진 및 홍보물, 전승현장에서 실제 착용한 살풀이춤 복식, 직접 사용한 재봉틀과 의상 제작 도구 등 그의 춤인생과 전승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 1,073건을 실었다. 故 임이조의 1970년대 공연 사진, 승무 복식, 공연 소품 등 그의 다양한 활동상을 담은 자료 2,728건을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국립무형유산원 누리집(www.nihc.go.kr)에 공개할 예정이다. 국립무형유산원은 앞으로도 인간문화재의 생애가 담긴 기증자료를 지속해서 수집해 나갈 계획이다. 박현우 인턴기자

  • 문학·출판
  • 박현우
  • 2021.12.30 19:15

“호남오페라단의 '2021년 송년 새 희망 콘서트' 송년연주회 성료”

호남오페라단(이사장 노윤수,단장 조장남)은 김자경 오페라단과 서울오페라단에 이어 1986년 대한민국에서 3번째로 창단된 36년의 역사를 지닌 국내의 유서 깊은 민간 오페라단이다. 올해 제8대 노윤수 이사장의 취임과 더불어 앞으로의 무궁무진한 발전이 기대되는 호남오페라단의 2021년 송년 새 희망 콘서트가 지난 28일 오후 7시 한국소리 문화의 전당 연지홀에서 있었다. 코로나 상황에도 백신 인증과 방역수칙을 정확하게 지킨 관객들이 홀을 가득 메웠으며, 출연진으로는 소프라노 조현애, 고은영, 서예은, 메조소프라노 손정아, 테너 이동명, 이재식, 박진철, 김성진, 바리톤 김동식, 박세훈, 조지훈, 베이스 이세영 및 피아니스트 정혜연, 문세희, 김정은. 그리고 기악 솔리스트로는 군산대학에 재직 중인 피아니스트 김준 교수와, 수년간의 독일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전북출신의 바이올린 문준철이 참여하여 프로그램을 더욱 다양하게 하였다. 여느 오페라단의 송년음악회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바이올린과 피아노 작품이 포함되어 있어서, 성악곡으로만 계속되는 연주에서 느낄 수 있는 지루함을 획기적인 프로그램 구성으로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켰으며. 특히 첫 순서였던 바이올린 독주곡 카르멘의 주요 테마와 장면들을 기악으로 녹여낸 Waxman 편곡의 <카르멘 환상곡>은 오페라와 연관이 있는 선곡을 통해 관객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또한 모든 곡마다 무대 뒤로 출력되는 영상과 가사를 통해, 2시간이 넘는 긴 공연임에도 지루함 없이 공연을 듣고 볼 수 있는 시각적인 효과까지 제공하여 관객들의 만족도를 이끌어냈다. 김주원 작곡가 또한 모든 출연자들이 자신이 가장 잘 연주할 수 있는 곡들로 선곡하여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였고, 특히 성악가들이 오페라 아리아를 부를 때는 마치 그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몰입하면서 연주하여 그 감동이 관객들에게 오롯이 전달되었다. 서양오페라 아리아1곡, 한국가곡 1곡을 균일하게 선택하여, 관객이 다소 어려워 할 수 있는 오페라 중심으로만 치우치지 않도록 배려한 점도 인상 깊었다. 또한 호남 오페라단 주역가수들로 구성되어 활동중인 뮈토스 챔버 싱어즈는 다양한 중창곡들로 연주했는데, 오페라 애호가 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까지 이해하기 쉬운 뮤지컬, 팝송 등 다양한 선곡들로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2시간이 넘는 다소 긴 연주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첫 곡부터 마지막곡이 연주 될 때까지 관객들이 무대 위의 연주자와 공감을 이루었고,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즐기면서 연주를 관람할 수 있었다. 오늘 연주는 연주자 개개인의 기량이 뛰어났던 연주회이기도 했지만, 프로그램 구성이나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서, 섬세함이 묻어난 호남오페라단만의 기획력이 돋보이는 연주회 였으며.호남 오페라단의 송년 콘서트를 처음으로 관람했던 전북출신의 오페라 작곡가인 필자가 관객으로 관람한 송년 새 희망 콘서트는, 호남오페라단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2022년 임인년을 기대하게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김주원작곡가

  • 문화일반
  • 기고
  • 2021.12.30 19:15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의 전통문화바라보기] 추억 속으로

지난 과거를 돌아볼 때 그 연관된 기억이 또렷이 생각나거나 느낌이 들면 그 기억은 분명 좋은 추억이거나 혹은 아주 나쁜 기억이라 생각하지만, 꼭 그렇다고 단정 지을 필요는 없다. 인기를 끌었던 '응답하라 1988'이란 드라마의 장소인 쌍문동은 개인적으로 추억이 묻어있는 장소이다. 초등학교 시절인 것 같다. 그 시절은 88년 하고도 10년을 뒤로 한 1978년. 좁은 골목길에 시멘트로 만든 쓰레기통, 그 옆에 자욱이 쌓인 연탄재. 오손도손 골목 친구들과 그 작은 골목길을 자전거로 누비던 추억 하나. 적막한 집안이 싫어 골목 구석구석 헛돌던 추억 둘. '600만불 사나이'처럼 되고 싶어 옥상에서 떨어져 다쳤던 추억 셋. 쌍문동 친구들과 수유리 친구들과 편을 먹고 싸웠던 추억 넷. 미아리 넘어 수유리 세일극장, 대지극장에 몰래 영화 보러 가다 선생님께 잡혔던 추억 다섯 등 추억을 먹고 사는 것이 그리 좋은 현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필자에게는 그러한 아련한 추억들이 감사하다. 드라마를 보면 작은 혼돈이 생기기도 한다. 1988년과 1978년이 매우 흡사하다는 느낌. 78년과 88년은 그리 먼 시간이 아니었나? 그 당시에는 가요보다 중고등학생들은 팝송을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김광한, 김기덕, 이종환 어릴 적 우상인 유명 DJ 목소리 속으로 빠져들던 그 시절 아련한 추억. 드라마에 나온 가요는 아마도 그 시절을 대변하는 드라마상의 촉매 역할인 듯하다. 그 시절 그곳에 살던 우리의 시대는 그랬다. 적어도 78년부터 88년까지 쌍문동에는 작고 아름다운 공간이 존재했었고 사람의 향기가 있었다. 온 세상이 석유파동으로 모두가 힘겨웠던 시절, 큰 물통을 들고 긴 줄을 새벽부터 서서 귀하디귀한 기름을 샀던 기억. 나라님의 서거로 대성통곡을 하는 할머니와 아줌마 사이에서 이유도 모른 채 함께 슬퍼했던 기억. 높디높던 삼양동 고개 꼭대기에 자주 올라갔던 기억. 북한에서 넘어온 전단지傳單紙를 주워 파출소에 뛰어가 학용품과 바꾸며 기뻐했던 기억. 할머니께서 주신 김에 식용유 바르고 소금 뿌리고 연탄불에 굽던 기억. 연탄불 꺼트렸다고 어머니에게 혼났던 기억. 그런 애물단지 연탄에서 나온 가스를 마시고 머리 아팠던 기억. 기억들. 아련하고 소중한 기억, 추억들. 그렇게 세월은 가고 그렇게 나이를 먹는다. 그리곤 추억하며 위안을 받고 행복해하며 후회를 감춘다. 그래도 그 시절엔 순수한 시절이었다고 스스로 마음을 위로하며 또 다른 시간을 맞이한다. 다사다난한 2021년 한 해가 지고 있다. 마음 한구석에는 후환後患과 아쉬움을 남긴 체 또 다른 2022년을 향해 가고 있다. 오랜 시간, 우리는 감사함을 잊고 사는 것 같다. 내 가족에게 고맙고, 내 친구가 고마우며, 내 이웃이 감사하고, 내 직장 동료들이 감사하다. 새로운 해가 다시 뜰 때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숨 쉴 수 있음에 감사하자. 감사하며 인사할 수 있는 상대가 있어 감사하고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한 신神이 계셔 감사하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문화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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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30 19:15

[2021 전북문화계 결산] 3. 논란과 과제

올해 전북문화계 학술‧문화계는 많은 논쟁점과 과제를 남겼다. 남원 유곡리‧두락리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신청서는 지난 3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프랑스)의 완성도 검사를 통과했지만, 등재의 타당성 여부를 두고 지역 사회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독자가야세력의 존재를 설명하는 유적과 문헌사료도 검증의 도마 위에 오른 상태다. 전북 임진왜란사의 중요 전적지인 웅치전적지에 대한 국가사적 승격 지정도 문화재청에 신청한 뒤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반갑지 않은 소식도 있었다. 전북도 출연기관인 전북문화관광재단은 갑질‧위증 논란이 일어 올해 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도마 위에 올랐다. 전북 가야는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 집권 후 가야사 복원사업이 정책과제에 포함되고, 발굴이 활성화되면서 힘을 얻었다. 전북도에 따르면, 올해까지 독자 가야세력의 존재를 설명하는 유적인 봉화제철고분 등 유적도 800여개가 조사발굴됐다. 이를 토대로 전북도, 남원시, 장수군은 남원 유곡리두락리 가야 고분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남원시 가야역사 바로세우기 시민연대 등 지역시민사회 단체는 등재를 원점부터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북도와 남원시 등 자치단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서류를 제출할 때, 무덤을 조성한 정치세력을 <일본서기>에 나온 기문으로 명시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문은 임나일본부설(왜가 369년 가야를 점령한 뒤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 562년까지 통치했다는 설)에 활용되는 <일본서기>에 나온 국명이라며 일단 등재를 철회하거나 용어를 삭제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한국고대사학계는 검증절차를 더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학계는 발굴된 봉화의 조성시기, 제철의 입지, 문헌사료 해석문제를 두고 이견을 제기하고 있다. 봉화와 제철유적의 조성연대가 불분명해 가야가 구축한 것인지 분명치 않고, 문헌사료인 양직공도(梁職貢圖)와 일본서기(日本書紀)가 전북 독자 가야 세력설을 뒷받침하기엔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물유적에 대한 검증이 지금보다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논리보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도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25호인 웅치전적지에 대한 국가사적 승격 지정을 문화재청에 신청했다. 현지 실사와 심의, 지정 고시 등의 절차를 거친 뒤, 6개월~1년 후에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웅치전투의 역사적 가치와 위상을 재확인받을지 결과가 주목된다. 웅치전투는 임진왜란 초기인 1592년 전주시와 진안군의 경계가 되는 웅치 일대에서 전주로 침공하려는 일본군과 전라도 관군의병 사이에 벌어진 전투이다. 곡창인 전라도를 지켜 낸 가장 중요한 전투로 평가받는다. 웅치전투를 보여주는 기록으로는 <난중잡록>, <선조실록>, <포저집>, <국조보감>, <징비록>, <백사선생별집> 등 다수가 전해진다. 웅치전투의 현장인 웅치전적지는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일대와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일대에 해당한다. 도 산하기관인 전북문화관광재단은 올해 운영과정의 난맥상을 드러냈다. 도의회 문화건설안전위원회(위원장 이정린)가 지난 달 실시한 행정사무감사에서, 전북문화관광재단은 임직원의 행동강령 위반과 겸직 위반, 내부 갈등 등의 문제로 뭇매를 맞았다. 특히 재단 본부장이 한 발언은 위증논란까지 제기됐다. 당시 한완수 도의원(임실)은 A본부장을 상대로 부산에 거짓 출장을 다녀왔다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A본부장은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도의회의 확인결과, A본부장은 다른 행사에서 강연을 했고, 강의료까지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결국 이 본부장은 사직했다. 앞서 3월에는 갑질 논란까지 제기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지역문화진흥원이 주관한 문화가 있는 날 청춘마이크 사업에 지역 음악예술인 단체인 (사) 아이엠이 선정되자, 문제를 제기하는 공문을 보냈기 때문이다. 재단 측은 "아이엠 측 2차 프리젠테이션 발표자가 내부 인력이 아닌 전문 MC여서 공모 규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또 "아이엠 대표가 타 업체에 참여한 실적을 아이엠 실적으로 반영했다"고 주장했다. 지역 예술계는 "재단이 정부 공모 사업에 탈락하자 경쟁 상대인 민간 단체를 힘으로 눌러 결과를 뒤집으려 했다"고 반발했다. <끝>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12.30 19:15

한승헌 변호사의 이야기를 담은 '한승헌 변호사의 삶', '산민의 이름으로'

△김인회 교수의 <한승헌 변호사의 삶: 균형과 품격> 김인회 교수가 <한승헌 변호사의 삶: 균형과 품격>(이지출판)을 출간했다. 김 교수는 한승헌 변호사의 다채롭고 다양한 삶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한승헌 변호사의 삶을 책 한 권으로 정리했다. 책을 통해 한승헌 변호사 삶의 향기가 널리 퍼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엮었다. 김인회 교수는 원로와 증진과 신진의 균형이 맞을 때 우리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것에 현혹되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선생이 삶을 통해 구현한 균형이 지적 공동체의 원로와 중진과 신진의 균형으로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에서 태어나 동래고, 서울 법대를 졸업했다. 지난 1993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96년 변호사가 되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으로 재직했다. 현재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형사법과 법조 윤리를 강의하고 있다. △산민한승헌변호사미수기념문집 편집위원회의 <산민의 이름으로> 산민한승헌변호사미수기념문집 편집위원회는 <山民(산민)의 이름으로>(이지출판)를 펴냈다. 이 책은 산민 한승헌 변호사와 김송자 여사의 미수를 맞이 산민회 회원들이 출간한 것이다. 이 문집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한승헌 변호사와 함께 고난의 시대를 겪어 온 각계 인사들의 글을 실어, 그의 삶을 재조명하자는 뜻을 담았다. 2부에서는 각 분야에서 한승헌 변호사를 모시고 일했던 산민회원의 글을 실었다. 그를 통해 일하면서 옳고 바르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삶의 정신과 자세를 배우며 깨달음을 얻은 이들의 사연을 통해 오래도록 기리고자 했다. 문집에 참여한 사람은 1부 김남조, 이어령, 이해동, 신인령, 임헌영, 장석주, 유시춘, 김인회, 함광남, 김정완, 윤수경 씨, 2부 강인한, 윤형두, 함광남, 이종철, 장영달, 유석성, 이종민, 한혜빈, 강영매, 편호범, 김정하, 김희수, 남형두, 서용순, 김은정, 이승억, 박환철, 조일래, 이주완, 신영미, 정훈모, 김영수, 김윤미, 오수연, 김신혜 씨 등이다. 한승헌 변호사는 이 문집을 통해 산민회는 지난날 제가 몸담았던 공사 간의 일터에서 고락을 함께한 소중한 인연을 살려서 맺어진 정서 공동체다. 우리는 주어진 인생 여정에서 항상 바르게 살고 의를 행하는 도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 변호사는 전북 진안군 안천면에서 태어났다. 이후 전주고, 전북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고 법무부와 서울지검 등에서 검사로 일하다가 변호사로 전신했다. 역대 독재정권 아래에서 탄압받는 양심수와 시국 사범의 변호와 민주화인권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박현우 인턴기자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21.12.29 19:19

전선자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바람 나그네’

전선자 시인이 네 번째 시집 <바람 나그네>(신아출판사)를 출간했다. 이 시집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70여 편의 주옥같은 작품이 담겨 있다. 1부 바람 나그네는 시종일관 나의 자아정체성을 탐색하는 시의 언어로 채워져 있다. 2부 인연에는 모든 작품이 인연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불교적 상상력, 불교적 세계관을 기반에 두고 있는 전 시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3부 하얀 여름에는 전 시인의 자연 친화적 사유와 소박하고 품위 있는 자연의 거울에 반사된 시인의 내면 풍경이 잘 표현되어 있다. 4부 소예 아리랑에는 꽃 진 자리, 소예 아리랑이란 제목을 붙인 시편이 5개씩 줄지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김순영 수필가를 기리는 시 한 편도 포함되어 있다. 5부 딴짓에는 전 시인이 섬기는 삶의 여러 지형도가 담겨 있다. 전 시인이 바리스타와 도예를 배웠던 이야기, 불문의 수학과 국내외 여행의 소회 등을 담았다. 세상을 향해 열심히 갈구한 것은/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다는 욕구였다/숲을 그리워하고 숲길에 들어/산과 계곡물의 정기 받아//음이온과 피톤치드로 몸을 정화하고/나이 듦을 인정하며 살고 싶은 꿈//(중략) 딴짓/건강을 잃으면/모든 것을 다 잃는다는 진리를/깨닫게 되는 순간/늦게나마 숲에 들게 했다(딴짓 5 - 산림치유지도사 일부) 시집의 해설을 맡은 김종회 문학평론가는 5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전 시인이 산림치유지도사로 무주 향로봉 자연휴양림에서 방문자와 함께 숲과 숲길, 산과 계곡물이 공여하는 마음의 안식과 몸의 건강을 체현하려 애썼다는 대목이다라며 한 걸음 물러서는 여백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각박한 지경이 되고 만다. 시인은 누구보다 이를 잘 안다라고 평가했다. 전선자 시인은 지난 1987년 4월 전북문학 117집부터 수필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 10월 무주여성문학 산글 동인회를 창립했다. 봄호 시대문학 수필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한국문인협회 무주지부를 창립하고 초대 지부장을, 이어 전북 여류문학회 회장, 전북 불교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김환태문학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박현우 인턴기자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21.12.29 19:19

[신간] 김광원 시집 '불 속에 핀 우담바라'

김광원 시인이 시집 <불속에 핀 우담바라>(시문학사)를 펴냈다. 양장시조(중장을 빼고 초장과 종장만으로 이루어진 시조의 한 형식) '님의 침묵'이라는 부제를 단 이 시집은 그가 쓴 원광대 박사학위논문 '만해 한용운 시 연구'(1996)에서 소재를 착안했다. 그의 논문에서는 만해 시집 '님의 침묵'의 창작 배경을 매월당 김시습이 저술한 '십현담요해'로 본다. '십현담요해'는 당나라 상찰 선사가 지은 10수의 게송 '십현담'을 매월당이 풀이한 저서인데, 이를 만해가 다시 풀이해 '십현담주해'부터 '님의 침묵'까지 연결시킨 것이다. 시인은 '십현담주해'와 '님의 침묵'에 나온 시구를 주목한다. 전자에 나온 '화사첨족'과 후자에 나온 '군말'이 의미적으로 일치하고, 곳곳의 문구에서 상관성을 발견한다. 이에 따라 김광원 시인의 시집은 만해 시집 '님의 침묵'이 담고 있는 이런 비밀을 양장시조 두 줄로 대응시키면서 독자에게 다가간다. 양장시조의 첫 줄은 '십현담주해에서, 둘째 줄은 '님의 침묵'에서 드러낸다. 다소 어려운 부분은 시인이 해설을 덧붙여서 양장시조로 풀어낸다. 이런 방식으로 시집에 담긴 90편의 시조는 모두 5행으로 구성했다. 시인은 '님의 침묵'에 담긴 비밀을 풀면서 새로운 소식을 전한다. 님은 일제강점기 고통 속에도 함께했고, 자본주의의 정점에 있는 21세기 현 시대에도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김광원 시인의 자서 에 드러낸다. 그는 "만해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진정한 광복인 남북통일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지요. 나아가 국조 단군의 한사상이 세계의 평화사상으로 자리잡고, 마침내 우리 민족이 온 세계에 홍익인간의 이념을 구현해 낼 때까지 만해의 보살행은 멈출 수 없는 것이겠지요"라고 썼다. 전주 출생인 김광원 시인은 전주고를 졸업하고, 원광대 국어교육과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시문학>에서 우수작품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은 <슬픈 눈짓>, <옥수수는 알을 낳는다>, <패랭이꽃>(양장시조), <대장도 폐가>를 발간했다. 저서는 <만해의 시와 십현담주해>, <님의 침묵과 선의 세계>를 발간했다. 대학을 다니던 중 원광문화대상(시부문), 제1회 전주세계소리축제 기념 단가 공모에서 '민초가'가 최우수상에 당선됐으며, 군산문학상‧소태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의상만해연구원 연구위원과 원광대 및 백제예술대 강사를 역임했으며, 고교 국어교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 문학·출판
  • 김세희
  • 2021.12.29 19:19

[신간] 인간문화재의 올곧은 삶을 담다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자서전'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원장 이종희)이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의 삶을 구술로 기록한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자서전>(국립무형유산원) 5권을 발간했다. 지난 2011년부터 진행한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채록 사업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2017년부터 발간해 온 이 구술자서전은 올해까지 총 45권이 나왔다. 올해 발간된 자서전은 강강술래 박용순 보유자,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영희 보유자, 예천통명농요 이상휴 보유자, 윤도장 김종대 보유자, 황해도평산소놀음굿 고(故) 이선비 보유자의 생애와 활동을 각각 담고 있다. 강강술래 박용순 보유자는 결혼 후 6명의 시동생과 8남매 자녀를 돌보면서도 강강술래 가락을 잊지 않고 계속 전승해왔으며, 70대가 되어서는 만학도로 자신을 채우는 삶을 살았다.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영희 보유자는 국악예술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당대 최고의 명인명창들과 함께 교류하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넓혔다. 현재도 제자양성과 국악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힘을 쏟고 있다. 예천통명농요 이상휴 보유자는 어려서부터 노래를 좋아하여 풍물과 노랫소리가 들리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따라가 어른들 어깨너머로 음악을 배우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데 능했다. 윤도장 김종대 보유자는 윤도 제작의 가업을 잇기 위해 꾸준하고 성실하게 작업을 이어왔다. 최근 큰 아들이 보유자로 인정돼 전통의 계승이란 무거운 짐을 내려놨다. 고인이 된 황해도평산소놀음굿 이선비 보유자는 해주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남한으로 피난했다. 그 후 신내림을 받아 황해도의 대표적인 굿거리들을 주관하는 무당으로 성장했다. 1930년대에 태어난 이들의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새마을 운동 등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간문화재의 삶뿐만 아니라, 생생한 역사와 삶의 현장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발간한 자서전은 국내 국공립도서관 등 관련 공공기관에 배포하고,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누리집(www.iha.go.kr)에 공개할 예정이다.

  • 문학·출판
  • 김세희
  • 2021.12.29 19:19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보윤 작가-김하종 「사랑이 밥 먹여준다」

밥 짓는 일은 절실한 기도였다 「사랑이 밥 먹여준다」는 김하종 신부가 한국에 온 지 30여 년 만에 쓴 삶의 고백서다. 이탈리아 태생으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한국으로 온 그는 1992년부터 지금까지 노숙인들을 위해 밥을 짓고 있다. 김하종 신부는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읽는 일에 어려움을 느꼈다. 숙제를 해결하려면 친구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난독증을 앓고 있었다는 것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난독증으로 인한 고통은 그의 영혼을 단련시켰고 주변의 나약함에 귀 기울이게 했으며 타인의 절망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했다. 사제가 되어 봉사의 길에 접어든 것도 아픔을 겪은 경험 때문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사랑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썼다. 난독증으로 다른 아이들보다 늦되었던 어린 시절에도 괜찮다라고 했던 어머니, 사제의 길을 간다고 결심을 밝혔을 때도 괜찮다라고 했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나는 괜찮다라고 했던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41쪽) 김하종 신부의 이탈리아 이름은 빈첸조다. 하종은 하느님의 종이라는 한국식 이름이다. 그는 성남시에서 안나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성씨는 성남 김씨가 되었다. 1998년에 불어닥친 IMF는 이웃의 생존을 위협하고 200만 명에 가까운 실업자를 양산했다. 김하종 신부는 그해 7월 7일 실직자와 행려자를 위한 무료급식소 안나의 집 문을 열고 수백 명분의 쌀과 반찬 재료를 구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리어카를 끌고 새벽 시장을 돌며 팔다 남은 야채를 얻었고 학교의 급식소를 찾아가 남은 반찬을 얻었으며 빵집과 결혼식장의 뷔페, 김장 김치를 나눠주는 절에도 찾아갔다.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짓는 동안 상처받은 일도 많았다. 하루는 음식을 만들고 있는데 밖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술에 취한 다섯 사람이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김하종 신부는 싸움을 말리다가 뺨을 맞았다. 상황이 종료되고 사무실에 들어간 그는 울기 시작했다. 매일 사랑을 주는 데도 폭력적인 행동으로 돌아온 것이 상처로 남았다. 그러나 다시 일어서야 했다. 오늘 흘린 눈물은 어두운 땅에 소중한 씨로 뿌려질 것이다. 새로운 사랑과 평화를 탄생시킬 것이다.(145쪽) 안나의 집에는 무료급식소 외에 공동생활 가정인 쉼터가 있다. 춥고 위험한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들의 대피소다. 쉼터에서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한편 상담, 의료 지원, 직업, 자활 교육 등을 하고 있다. 김하종 신부는 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전한 장소와 따뜻한 환영, 순수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꽃을 볼 때 평화로움을 느낀다. 나눔의 길에서 피어난 꽃은 더욱 아름답다. 밭에서 키운 감자와 배추를 나눠주는 분, 거리에서 만난 노숙인에게 주머니의 용돈을 다 털어준 사람, 어렵게 모은 100만 원을 놓고 가신 낡은 코트의 할머니, 해마다 약을 기부하는 약사들, 돌잔치 대신 나눔을 택한 부부, 안나의 집에서 도움을 받다가 이제는 후원자가 된 사람. 김하종 신부는 나눔의 꽃들을 끝없이 소개한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한다. 이 책을 읽어준 당신이 내게는 큰 응원이다.(255쪽) 책 한 권을 읽어주는 것이 나눔의 길에 들어서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황보윤 작가

  • 문학·출판
  • 기고
  • 2021.12.29 19:19

[신간] 아동문학전문지 '아동문학사조' 5호 발간

아동문학전문지인 <아동문학사조> 제5호(아동문학사조사)가 발간됐다. 발행인인 박상재 아동문학가는 책의 편집방향을 "작가들이 탐구하는 소재와 지향하는 가치관을 통해 시대정신을 탐색하고, 아동문학 이론과 작품 연구, 주목받는 작가들의 작가작품론, 서평 등을 중점적으로 게재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선 책은 '동시조의 숲'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특집Ⅰ에 수록되는 '현대 동시조의 현주소'(김종헌)에서는 동시조의 흐름을 조명했고, 평론 '꽃가지를 향한 그리움, 엄마 목소리' (박상재)를 통해서는 백수(白水) 정완영의 작가작품론을 살폈다. 다음 장인 '동시조의 향기'는 김영기, 박영식, 신현배, 윤삼현, 전병호, 조두현, 하순희의 특선 동시조를 수록하고 있다. 특집Ⅱ로 마련한 '사조 응접실'에서는 상주 글짓기 신화를 만든 최춘해 시인과 팔순기념 동화선집 6권을 출간한 윤수천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탄생 100주년 아동문학가'에서는 창령 출신 이준범 시인의 동시, '다시 읽고 싶은 동화‧동시'에는 작고문인 허동인의 동시 '산새알'외 3편과 정채봉의 동화 '어린 새'를 조명했다. 이밖에 도쿄준신대학 오타케 기요미 교수의 '생태환경문학의 시점에서 되돌아보는 일본 평화그림책'과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 권애영 특임연구원의 '신중국 수립부터 문화대혁명 전까지'의 중국아동문학사가 관심을 끈다. '만나고 싶은 작가 시인'에서는 동시인 박선미론(황수대), 손동연론(이정석), 동화작가 안미란론(함윤미), 서석영론(김옥선), 배유안론(전영경)이 실렸다. 특선 동화에는 김양경, 김희숙, 윤수천, 정성희 작가의 작품, 특선 동시에는 김완기, 류병숙, 이상현 시인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제4회 신인문학상 당선작도 소개한다. 동시부문 신극원, 동화부문, 박경란, 유순덕, 평론부문 안수연의 작품이 실려있다. 해외 명작동화란에 소개된 그림형제의 '홀레 아주머니'도 흥미롭다. 장수 출신인 박상재 아동문학가는 한국아동문학학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국제펜한국본부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내년 1월 15일 (사)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장으로 추대될 예정이다.

  • 문학·출판
  • 김세희
  • 2021.12.29 19:19

"남원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원점 재검토하라"

남원시 가야역사 바로세우기 시민연대(이하 남원가야 시민연대)가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 세계유산등재과정 대해 공론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남원가야 시민연대는 29일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가야고분군 세계문화유산 신청과 관련한 공문 서류 한 장도 공개하지 않는 문재인 정부와 문화재청, 가야고분군 등재추진단과 7개 자치단체, 전북도‧경북도‧경남도 세 곳을 향해 엄중 경고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남원가야 시민연대는 "이미 올해 8월부터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남원가야고분군 국책사업의 문제점이 전국언론에 보도됐다"며 "11월 남원임실순창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이용호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박정 의원이 12월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등재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볼 때 국익을 해치는 사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송하진 지사가 위원장으로 있는 가야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재추진단은 시감사나 도감사, 국정감사도 피해가는 무소불위의 한시적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 또 남원가야고분군 완성도 통과 신청서 건에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 이후에도 자체 내 위원회에서 회의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소통의 부재도 꼬집었다. 남원가야 시민연대는 "전북도가 주최하고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가 주관한 학술대회는 행사장 출입을 제한했고, 시민의 자료집 요구도 여분이 없다고 거절했다"며 "추운 겨울 전주박물관 밖에서 6시간을 기다린 시민들이 학술행사를 마치고 나오는 발제자 곽장근 교수에게 공개 질문하려는 상황도 제지당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발표자이며 연구책임자인 당사자에게 질문하려는 시민의 권리를 가로막고, 당사자도 아닌 제3자들이 개입하고 물리력을 행사하는 행위는 심각한 실정법 위반"이라고 꼬집었다. 남원가야시민연대는 "5000만원을 연 학술행사는 전북도민을 기망하는 학술대회로 추락했다"며 "전북도민의 혈세가 사용된 내역을 자세히 공개한 뒤, 모든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론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본서기>에 나온 기문국 명칭을 삭제하지 않는 이유를 남원시민에게 해명한 뒤, 원점부터 재검토해서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해야 한다"며 "세계문화유산 신청은 매년 제출, 철회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12.29 19:19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당선 소감 - 수필] “중년의 나를 붙들어 매준 문학 그리고 글쓰기”

신춘문예 수필 당선자- 오미향 작가 몇 해 전, 눈밭이 흩날리던 겨울날이었습니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은 더 희망을 주지 못했고 인생은 이상대로 흐르지 않는 것 같아, 뭐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도서관 문을 두드렸습니다. 검정 가죽바지에 긴 머리를 틀어 올린 교수님이 하는 문학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낯설고 매력적인 외모보다 문학에 대한 진솔한 가르침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문학이, 글쓰기가 이렇게 중년의 저를 붙들어 매줬습니다. 일주일에 한 편씩 끄적거렸던 일기를 수필로 완성해 보고, 사물에 대한 느낌과 감상을 시로 적어봤습니다. 첨삭을 기다리던 시간이 더디게만 느껴지고 글쓰기에 푹 빠져들어 가며 저는 온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아름답고 향기가 있는 사람이 되라며 예쁜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께 이제야 이름값을 하는 것 같습니다. 용산도서관의 이수정 교수님, 첫걸음부터 지켜봐 주시고 매번 아낌없는 격려와 용기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뽑아주신 전북일보 심사위원님 감사합니다. 바다가 보고 싶다고 하면 늘 운전대를 잡아 쥐고 따뜻한 커피를 말없이 내밀어준 남편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내 삶의 전부인 유리야, 영훈아. 엄마 일냈어. /오미향 작가 △오미향 작가는 제주 출생이다.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영어학원 강사를 했다. 서울 중구 여성문예백일장, 용산도서관 창작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근로자문학상, 남명문학상, 동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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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29 15:21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당선작 - 수필] 돌챙이

섶섬이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마을로 들어서자, 암벽 위에 작은 돌집이 보였다. 벼랑 위 깔깔한 소금기를 벗 삼아 삶의 모퉁이를 돌아선 그곳에는 삭정이 같은 무릎을 보듬고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바람 한 점만 불어도 거친 말 한마디만 내 던져도, 금세 기울 것 같은 수평을 아버지는 꼭 붙들고 있었다. 숭숭 구멍 뚫린 관절에 햇볕을 끌어모으고 먼바다를 내다보며 머리를 흔들었다. 잊었다는 것인지 다 지나간 일이라 모른다는 것인지 그 고갯짓의 의미를 알 수가 없다. 단물 쓴물 다 빠진 아버지의 빈 가슴에 찾아 든 것은 무엇일까? 보는 이의 마음도 마른 웅덩이처럼 젖어들었다. 말랑하게 가라앉은 가슴이 울컥했다. 아버지가 평생 쌓아 놓은 돌들은 말이 없다.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킬 뿐이다. 거칠고 힘든 석공 일은 당신만 하고자 했다. 대물림은 생각도 하지 말라며 더는 돌을 잡기가 힘들었지만, 아버지는 오늘도 돌집 마당을 서성였다. 조용히 봄볕 드는 양지 녘에 앉아 돌을 바라본다. 어느새 아버지의 얼굴에선 미소가 감돌고 커다란 원석을 어루만지는 손에 힘이 느껴졌다. 꼭 다문 입술이 비장했다. 허공 중에 떠 있던 쇠망치가 주인의 손을 거쳐 낙하했다. 끙 소리와 함께 사과 잘리듯 커다란 돌덩이는 반쪽으로 벌어졌다. 바가지 머리의 소녀가 그 틈 사이를 비집으며, 기억 속 유폐된 추억 주머니를 매달고 걸어 나오며, 아버지 뭐 만들어요?, 우리집은 언제 만들거예요? 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돌하고 얘기를 나눴고 돌을 부수고 깨며 겹겹이 쌓아 올릴 뿐이었다. 애써 만든 조형물이 다음 날은 자취도 형체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아련했다. 자연스러운 모양을 갖출 때까지 아버지는 수없이 반복했다. 지독하게 가난해서 이 일을 택했다는 아버지의 얘기에 비하면 너무나 즐겁게 일을 하는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돌을 조각하면서도 이 세상에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돌은 우리들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돌가루가 튄다고 나를 멀찍이 밀어내며 장난스레, 우리 향이한테 무얼 만들어줄까? 물으면, 음, 이따만한 멋진 궁전을 만들어주세요, 라며 두 손을 넓게 벌려 보였다. 땀이 비 오듯 내리는 모습을 보다 보면 어디선가, 밥 먹으멍 헙써.(식사 드시면서 하세요), 점심을 먹으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 아버지는 궁전을 지었었나? 울퉁불퉁한 표면에 우락부락한 생김새의 커다란 사람, 돌하르방이 떡하니 서 있었던 것 같다.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어서일까. 우스꽝스러운 그의 코는 반질거리며 납작해져 갔다. 그럼에도 한결같은 미소를 잊지 않는 돌하르방은 자식을 위해 온몸의 윤기가 빠져나가도 헬쭉거리며 웃어 보이는, 자식의 행복만을 기원하는 포근한 아버지였다. 어느새 정수리를 뚫고 나온 새치를 한 가닥 뽑으며, 아버지, 혹시 물팡 만드세요? 물허벅을 부릴 데가 있어요?, 라고 물었다. 받침대로 쓰일 튼튼한 돌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는 이제는 사라져 버린 것이지만 옛것에 대한 향수로 부탁을 받았다고 했다. 민속박물관에, 마당 너른 집에서 볼 수 있는 물팡은 물허벅을 진 이의 욕망과 간절한 이상향의 징표였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가쁜 숨을 헐떡이며 부지런히 올라와선 물허벅을 집 마당에 부려놓으며 쳐다보는 하늘이 그렇게 파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물 한 방울이라도 안 흘리려 고생했던 그 마음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줬다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열심히 살아보고 싶다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다고 했다. 물을 길어 올리고 관리하는 게 여자의 일이라면 제주 남자는 돌과 함께 살아왔다. 자연스럽게 남자들의 삶이 녹아있는 돌 하나 하나하나가 모여 홑담이 되었다. 아랫돌 괴어 윗돌 받치고 중간 돌 빼서 윗돌 올리며 어깨동무하듯 겹담이 되면서 견고해졌다. 빽빽이 잘 쌓아 올리는 게 최선은 아니었다. 사이사이로 바람구멍을 터줘야 돌들도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나의 삶도 높이 쌓아 올리는 데만 급급하지 않았을까? 주변을 돌아보며 같이 웃고 울 수 있는 바람길을 만들 생각은 했었는지? 내쉬는 날숨에 상처받은 이가 있었다면 더불어 배려하는 들숨으로 바람구멍을 터야겠다. 아버지는 험한 바다와 돌담의 형식으로 바람을 붙잡고 살아냈다. 시꺼먼 화산불이 핥고 지나가도 섬을 지켜냈다. 송송 뚫린 시간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인 돌담은 숱한 바람들이 돌 틈 사이로 빠져나가며 삶을 이어주고 견고하게 지켜준 자리였다. 시골집 근처 밭마다 테두리를 두른 돌담이 즐비했다. 여기는 순이네 집 철수삼촌의 보금자리 영희네 우영팟 작은삼촌의 일터, 라는 밭담이 아버지의 손에서 빚어졌다. 그 테두리 안에서 사람들은 바람을 피하고 햇살을 받으며 자양분을 듬뿍 먹고 자라날 수 있었다. 나만의 방식대로 물허벅을 지고 왔다. 구덕에 두 아이의 해맑은 미소를 앉히고 두 줄의 긴 끈으로 돌돌 감아 가정이라는 울타리로 부지런히 물을 길어 날랐다. 물허벅을 어깨 너머로 꺼꾸러지게 해서 순도 높은 물을 항아리에 부어 넣었다. 잠시 물팡에 물허벅을 얹혀 숨을 돌리기도 하면서. 잠시 길이 열리고 닫히는 사이, 가쁜 숨을 몰아쉬는 반 호흡 사이 생의 교차로는 여러 갈래로 뒤엉키기도 했다. 길이라고 믿었던 것들은 어디쯤에서 사라졌을까. 평생을 걸어도 아직 닿지 못한 길의 끝에 돌하르방이 있다. 두 손에는 끌과 망치를 들고 내게 손짓을 한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앞에 커다란 암석이 있더라도 헤치고 걸어오라고. 오월의 기분 좋은 햇살과 살랑거리는 미풍에 알맞게 데워진 돌의 살갗을 만져보라 한다. 돌에 기대어 생각에 잠기며 돌의 향기를 맡아본다. 쓰다듬는 손에선 따뜻한 돌의 기운이 느껴졌다. 아버지의 체취가 묻어나왔다. /오미향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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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29 15:21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심사평 - 수필] “석수인 아버지의 삶을 소중한 가치로 들여다 본 작품”

신춘문예 수필 심사위원- 지연희(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장) 각기 주제가 다른 작품들로 수필 문학의 참신한 문학성을 바탕으로 문장을 전개해내는 기법이 다채로웠다. 인생 철학이라 말하는 수필 문학을 사유의 깊이로 짚어 내어 준 훌륭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 작품은 다양한 소재를 결합하여 의미를 형상화해 감동을 전달하고 있다. 생사의 경계를 극명하게 가르는 죽음에 대한 천착과 석공인 아버지의 가난한 평생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조명하고 있다. 본심 2차 심사에서 <돌챙이>, <노을공책>, <물음>의 수필을 선하여 놓고 이들 작품이 요구하는 메시지가 적절하게 제시되었는지 시선을 모았다. 수필 문학이 문학 작품으로 승화되는 데는 일상적 사실 체험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어떤 사실을 평면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실이 내포하는 필자의 사고를 천착하는 데 있다. 최종심에는 석수인 아버지의 삶을 소중한 가치로 들여다본 <돌챙이>를 선하였다. 아버지는 평생 돌하고 이야기를 나눴고, 돌을 부수고 깨며 겹겹이 돌을 쌓아 올린 분이다. 애써 만든 조형물이 다음 날이면 형체도 없이 무너졌지만, 자연스런 형태를 갖출 때까지 아버지는 수없이 작업을 반복한 완벽주의자다. 지독하게 가난해서 이 일을 택한 아버지는 자식의 행복만을 기원하는 포근한 분이며, 자식의 삶의 길에 위로와 길잡이가 되어 내일을 여는 귀감으로 존재한다. /심사위원 지연희(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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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29 15:21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당선작 - 동화] 지하철역 아이

뚜루루루 뚜루루루 .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선 밖으로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나오자마자 열차는 정리 된 책장의 책처럼 제자리에 착착 멈추었어. 그러고는 입을 벌려 몇 안 되는 승객을 토해놓기가 바쁘게 또 몇 안 되는 승객을 빨아들이고 꽁무니를 빼 버렸어. 그렇지 않아도 사람의 발길이 뜸 한 곳인데 열차가 지나간 역사는 정말 조용하고 쓸쓸했어. 나는 역 이곳저곳, 구석구석을 빈틈없이 비추며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일을 하고 있는 보안카메라야. 이 역사 안에 내가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은 거의 없어. 내가 이 역에 처음 설치되었을 때 사람들의 기대가 얼마나 크던지 어깨가 아주 무거웠지.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이유도 없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잡는데 내 힘이 꼭 필요 했었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은 새로운 도시로 떠나갔어. 이 역에도 점점 승객 수가 줄어들었지. 오고 가는 사람이 적은 이 역에서 난 정말 할 일이 없어. 얼마나 심심하고 지루하던지 하품을 하다가 깜빡 졸아 버린 적도 있지 뭐야. 게다가 요즘은 나이 탓인지 자주 졸음이 쏟아지는 것 같아. 대낮도 아니고 저녁도 아닌 오후 4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여자아이가 역 안을 두리번거리더니 주황색 의자에 앉았어. 누구랑 약속이라도 한 걸까? 손목에 차고 있는 키즈폰을 연신 들여다보며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어.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안내방송이 나오자 열차는 긴 꼬리를 달고 의기양양하게 역에 도착했지만 내리는 사람도 타는 사람도 없었어. 그런데 그 아이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어. 왜 이번 열차에 타지 않았을까? 누굴 기다리는 걸까? 열차가 부리나케 역을 빠져나가고 있지만 아이는 서두르지도 당황하지도 않았어. 여전히 키즈폰으로 시간만 보고 또 보았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여자아이는 역에 왔어. 가방을 메고 오는 걸 보니 학교가 끝나면 바로 여기로 오는 것 같았어. 여자아이가 가방을 열었을 때 눈을 크게 뜨고 봤는데 가방 안쪽에 하나 초등학교 3학년 1반 정기쁨 이라고 쓰여 있었어. 아이의 이름이 기쁨이라는 걸 그날 처음 알게 되었지. 귀여운 얼굴이랑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나는 생각했어. 그런데 하나초등학교를 역사 안에 있는 지도로 찾아보니 꽤 먼 거리에 있는 거야. 나는 조금씩 기쁨이에게 관심이 갔어. 왜 저 아이는 열차를 타러 오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만나는 것도 아닌데 이 먼 곳까지 매일 오는 것일까? 나의 궁금증은 솜사탕처럼 부풀어 갔어. 그날도 누군가를 아니면 무언가를 열심히 기다리는 기쁨이가 보였어. 심심한지 가방에서 공책을 꺼내 그림도 그리고 과자도 먹고. 그러다 열차 들어올 시간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내 쪽을 쳐다봐. 기쁨이도 내가 보는 걸 알아차린 걸까? 맨 처음에는 기쁨이가 나를 쳐다본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가만 보니 내가 아니라 안내방송 소리가 나는 내 옆의 스피커씨를 쳐다보는 거더라고. 이보시오. 스피커씨, 저기 저 아이가 매일 와서 안내 방송이 나올 때마다 스피커씨를 쳐다보는데 혹시 까닭을 아시오? ...... 궁금해서 물어는 봤지만 스피커씨가 대답을 해줄리 없었어. 이 역사가 생기고 스피커씨와 내가 설치되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말에 대답을 해 준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지금은 구식 기계가 된 카메라와 스피커일 뿐이지만 우리도 한때는 최신식이라 불릴 때가 있었는데 말이야. 반짝이는 렌즈에 지금처럼 깜빡깜빡 잊어버리지도 않고 앞이 흐릿해 보이지도 않았지. 스피커씨도 광채 나는 진한 검정에 지금처럼 잡음 섞인 목소리가 아닌 깨끗하고 낭랑한 목소리였어. 하지만 지금은 우리 둘 다 흰 눈 같은 먼지를 켜켜이 뒤집어쓰고 초라해졌지. 한때는 우리도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지나간 세월이 하룻밤 꿈만 같아.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답 한번 제대로 해 주지 않는 스피커씨한테 서운해지려 해. 기쁨이가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졌을 즈음 전화벨이 울렸어. 목소리가 크고 흥분한 걸 보니 전화 건 사람이 잔뜩 화가 났나 봐. 정기쁨, 너 어디야? 매일 학원 간다더니 어딜 쏘다녔던 거야? 친구 집에서 ... ... . 그때 기쁨이의 거짓말을 꾸짖기라도 하듯 다음 열차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역 안에 울려 퍼졌어. 너, 또 거기 간 거야? 엄마가 거기 가지 말랬지? 전화기 저편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떨리는 듯 했어. 동시에 기쁨이의 얼굴도 붉어지고 금세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지. ....... 정기쁨, 왜 대답이 없어? 엄마가 금방 갈 테니까 꼼짝 말고 기다려! 엄마와 통화를 마친 기쁨이의 어깨가 들썩였어. 이럴 때 눈물이라도 닦아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니 어깨라도 토닥여 줄 수 있다면. 난 정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구닥다리 카메라일 뿐 이었어. 얼마쯤 지났을까 누군가 급한 걸음으로 후다닥 계단으로 내려왔어. 그러더니 기쁨이를 와락 끌어안았어. 둘은 한 동안 말없이 울기만 했어. 그런데, 어? 저 얼굴 낯이 익어. 어디서 봤더라? 나는 흐릿해진 기억을 되짚어봤어. 내가 기쁨이 엄마를 처음 본 날도 기쁨이 엄마는 울고 있었어. 얼마나 울었던지 기운이 없어서 울다 쓰러 지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어. 기쁨이 엄마가 울게 된 이유는 전날 밤 사고 때문이었지. 우리 역에 역무원들은 낮과 밤으로 나누어 번갈아 일해. 유난히도 달이 밝았던 그날은 부역장님이 일하는 밤이었어. 마지막 열차만을 남겨둔 참이었지. 부역장님은 열차를 맞이하기 위해 플랫폼에 서있었어. 보통 그 시간엔 아무도 없기 마련인데 그날은 어떤 남자 승객 하나가 서 있었어. 그런데 자꾸 몸을 비틀비틀 했어. 그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철로로 떨어져 버렸어. 그때 부역장님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철로로 뛰어 내려갔어. 분명 방금 전에 열차가 들어온다는 안내방송을 들었을 텐데 말이야. 서둘러 술 취한 승객을 철로 밖으로 밀어냈어. 곧바로 열차가 들어오고 부역장님은 내 시야에서 사라졌어. 난 그때 너무나 놀라고 무서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 다음날 사고 현장인 역에 찾아온 기쁨이 엄마는 울고 또 울었어. 그날 이후에 기쁨이 엄마는 여기에 다시는 오지 않았어. 역에서 일 년에 한번 부역장님을 위해 하얀 국화꽃을 준비하고 추모를 하지만 기쁨이 엄마는 한 번도 오지 않았어. 부역장님은 우리 역 목소리 미남이었어. 나도 역무원들끼리 하는 얘기를 들어서 아는 건데, 부역장님의 원래 꿈이 성우였는데 집안 사정으로 철도공무원이 되었다고 해. 그래서 우리 역 안내방송을 부역장님 목소리로 녹음해서 쓰고 있었어. 다른 역들은 모두 디지털 안내방송으로 바뀌었지만 우리 역만 아직도 사람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야. 기쁨이가 바로 정강훈 부역장님의 딸이었구나. 이제야 퍼즐조각들이 맞춰지는 것 같았어. 아빠 목소리를 들으러 엄마 몰래 매일 같이 여길 온 거였구나. 나는 기쁨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어. 하지만 나는 그저 역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찍는 카메라일 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계속 생각했어. 한 가지 생각을 깊이 하다 보니 머리가 지끈 지끈. 이런, 눈만 잠깐 감았다 뜬 줄 알았는데 오랫동안 잤나 봐. 카메라가 꺼졌다고 난리가 났어. 요즘 자꾸 화면이 자꾸 꺼지던데 오늘은 아예 먹통이네요. 너무 오래돼서 그렇지 뭐야. 또 오작동하면 카메라를 교체해야겠는 걸........ 젊은 역무원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있자니 은근 부아가 치밀어. 내가 오래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갖다 버릴 정도는 아닌데 말이지. 요즘 사람들은 고쳐 쓰는 일을 번거롭게 생각하는 것 같아. 내 고향 같은 이곳에서 아직은 떠나고 싶지 않은데 말이야. 그때 번뜩 기쁨이를 도울 좋은 방법이 떠올랐어. 내일도 또 오겠거니 기쁨이를 기다렸어. 그런데 엄마와 함께 집에 돌아간 후로 기쁨이는 오지 않았어. 정말 나이는 못 속인다더니 조금씩 눈앞이 흐려지고 자꾸만 졸린 데도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기다렸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마음이 자꾸만 급해졌어.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걱정만 하던 어느 날. 드디어 기쁨이가 왔어. 나는 너무 반갑고 좋아서 어쩔 줄 몰랐어. 기쁨이는 어디가 아팠던 건지 조금은 야윈 얼굴이었어. 작아진 어깨에 달팽이집 같은 큰 가방을 메고 터덜터덜 걸어오더니 주황색 의자에 앉았어. 기쁨이는 오늘도 열차 들어오는 시간을 확인하는 것 같았어. 그러더니 안내방송이 나오자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 거렸어. 아빠!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하고 눈을 질끈 감았어. 그리고 온 정신을 집중해서 눈을 다시 떴어. 역사 안의 모든 카메라에 기쁨이가 나오게 하는 것이 바로 나의 계획이야. 사무실에서는 또 소란이 일었지. 아니, 이게 뭐야! 또 고장인 건가? 아주 멋대로 잖아! 지난번에 한 번 더 고장 나면 카메라를 바꿔달아 버리자던 젊은 역무원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어. 왜! 무슨 일인가?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사람이 내 몸을 살펴보기 시작했어. 모니터 속 기쁨이는 여전히 울고 있었지. 역장님 오셨습니까? 얼마 전부터 보안 카메라가 말썽이더니 오늘은 아예 이렇게 한곳만 비춘 채 먹통입니다. 아무래도 새 걸로 교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네. 그런데 저 아이는 왜 저기서 혼자 울고 있지? 제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역장님의 지시로 역무원들이 기쁨이한테 서둘러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어. 나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다시 카메라들을 정상으로 되돌렸어. 잠시 후 젊은 역무원 뒤로 두리번거리며 기쁨이가 따라들어 왔어. 역장님은 기쁨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어. 기쁨이는 작은 목소리였지만 울지 않고 또박또박 말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어. 대화를 마친 역장님이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어. 기쁨아, 아빠 목소리 여기에 담았으니까 언제든지 들으렴. 여기서 정말 울 아빠 목소리가 나와요? 역장님이 기쁨이 손에 작은 이동식 메모리 장치를 쥐어주자, 기쁨이는 봄꽃 마냥 살포시 웃었어. 나도 덩달아 너무 기뻤어. 카메라에 눈물샘이 있었다면 눈물이 날 정도였다니까. 나는 마지막으로 용기 내어 스피커씨한테 말을 걸었어. 저기, 나 오늘 좀 멋지지 않았소? ....... 마지막으로 잘 가라는 인사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니오? 치익 치지, 지직. /박영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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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29 15:21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당선 소감 - 동화] 박영미 작가 “울림 있는 글로 아이들의 감성 어루만져줄 것”

신춘문예 동화 당선자- 박영미 작가 한때는 소설가가 꿈이었기에 동화는 아주 쉬운 떡 먹기라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세상 풍파에 찌든 어른이었고, 제가 쓴 동화에 아이들의 이야기는 아주 희미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동심이라는 것과 끝나지 않는 술래잡기를 했습니다. 이번 당선 소식을 접하고 동심의 그림자 정도는 찾았다는 생각에 작게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어봅니다. 어쩌면 동심을 찾는 술래잡기는 이제부터 진짜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조바심 내지 않고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한발 한발 가볼 것입니다. 제가 포기하지 않는 한 이 놀이는 끝나지 않을 테니까. 길고도 어두운 현실의 벽에 부딪혀 동화가 도저히 써지지 않을 때 당선 소식을 접했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더 써보라는 기적 같은 응원이라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앞으로도 재미보다는 울림이 있는 글로 아이들의 감성을 어루만져주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몇 번을 다시 봐도 부끄럽고 서투른 글을 뽑아 주신 전북일보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김정옥 선생님, 김정민 선생님, 동화세상 글벗들과 저의 제1독자인 남편 전대원, 아들 준우와 이 영광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박영미 작가 △박영미 작가는 전남 여수 출생이다. 2009년 일본 류코쿠 대학교에서 동양사학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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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2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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