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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코드화’되는 의료, 빅브라더의 공포를 경고한다.

인류 역사상 고령 인구 비율이 지금처럼 높았던 적은 없었다. 선진국 프랑스는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병리 현상을 일찍이 심하게 겪었다. 프랑스가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는 143년이 걸렸다. 그런데 한국은 불과 25년 만에 그 반열에 오를 기세다. 머지않아 일본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인구 구조의 변화는 연금과 같은 경제적 급부와 의료·돌봄이라는 현물 급부의 수요를 폭발시킨다. 이미 2000년대 초반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우리가 마주할 미래의 거울이다. 일본의 급부 행정은 우리보다 규모가 크고 안정화되어 있으나, 그 이면에는 시스템이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거대한 코드의 감옥이 자리 잡고 있다. 21세기 질병 분류 체계의 확장은 단순한 의학적 발전을 넘어선다. 1900년 국제질병분류 제1판(ICD-1)은 사망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179개 코드에 불과했으나, 2022년 ICD-11에 이르러서는 5만 5,000개가 넘는 방대한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이는 의료 행위의 정교화를 의미하는 동시에,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이 ‘의료적 감시’ 아래 놓이게 되었음을 뜻한다. 과거에는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었던 노화나 업무상의 번아웃 등이 질병 코드를 부여받으며 급부 행정의 대상이 되었다. 이른바 일상의 의료화다. 슬픔은 우울증으로, 아이들의 산만함은 ADHD로 코드화된다.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경고했던 ‘빅브라더’는 이제 감시카메라가 아니라, 촘촘하게 설계된 질병 코드의 망(網)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관찰하고 규정한다. 인간의 감정과 행동이 데이터로 치환되는 순간, 주체적 인간은 관리되어야 할 ‘코드 번호’로 전락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의료 현장에서 한 명의 의사가 사용하는 코드는 수십 개 수준에 머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주요 질병 코드 100종을 중심으로 관리하며, 현장은 고혈압·당뇨·요통 등 반복적인 범주 안에서 움직인다. 제도는 치밀해졌으나 현실 의료는 제한된 틀 안에 갇힌 구조적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진짜 위기는 이 정교한 코드 체계가 한국 의료의 고질적인 저수가 구조와 결합할 때 폭발한다. 분류가 세밀해질수록 의료기관의 행정적 의무와 감시의 눈초리는 엄격해졌으나, 보상은 여전히 비현실적이다. 진료는 파편화되는데 수익은 보전되지 않으니 의료기관의 부담은 임계점에 달한다. 이는 1990년대 ‘임의비급여’ 사태(전주 예수병원 사건)에서 이미 예견된 비극이다. 당시 대법원은 이를 비현실적 수가 체계가 낳은 ‘구조적 비극’으로 결론지었다. 제도라는 빅브라더가 현실을 외면한 채 코드만을 강요할 때, 의료 현장은 일탈과 붕괴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할 것이다. 최근 추진되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은 이러한 코드화된 감시 체계의 결정판이 될 우려가 크다. 일본의 제도를 차용했으나, ‘적정 보상’과 ‘국가 책임’이라는 핵심은 빠져 있다. 외형은 그럴듯하지만, 실상은 정부의 재정 부담을 지방과 민간 의료기관에 전가하는 구조다. 지방 거점병원들은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의료 인력은 수도권으로 유출되고, 남은 병원들은 과도한 규제와 낮은 보상 사이에서 고사하고 있다. 국가가 시스템이라는 이름의 빅브라더로 군림하며 효율성만 따진다면 지역 의료가 돌봄의 중심 역할을 다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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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4.28 18:27

[새벽메아리]희곡 베니스의 상인 영화로 보기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이 나온 16세기 말은 르네상스 후기이며 배경이 된 베네치아는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 크게 번성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박해받던 유대인은 그들만의 구역 ‘게토(Ghetto)’에서 살았다. 일몰 후에는 출입마저 통제되었고, 낮 동안 게토를 떠나는 사람은 유대인임을 표시하는 붉은 모자를 써야 했다. 현지인과 같은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기에 고리대금 업(業)을하게 되었는데, 이는 기독교 법을 어기는 행위였다. 베니스의 상인이자 기독교인 ‘안토니오’는 친구 ‘바사니오’로부터 벨몬트에 사는 ‘포샤’에게 구혼하기 위해 경비를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안토니오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삼천 다카트를 빌린다. 샤일록은 돈을 빌려주며 조건을 제시한다. ‘기한 내 갚지 못할 경우, 고운 살 정량 일 파운드를 몸 어디서든 잘라낸 뒤 가지겠다.’ 안토니오는 주저 없이 서명한다. 이야기는 기한 내 빚을 못 갚는 안토니오와 샤일록 간 긴박한 송사(訟事)에 초점이 맞춰진다. 바사니오는 결혼에 성공했고, 부인이 된 포샤는 이 재판의 위촉 판관으로 참여한다. 영화를 볼 때 이야기 전개에 집중해야 하지만, 이 영화의 경우는 인물의 감정선에 치중할 필요가 있다. 안토니오를 보자. 시작부에서 친구들에게 볼멘소리한다. “왜 이리 울적(책은 슬픔으로 표기)한지 모르겠네. 정말 이상해. 자네들도 그랬댔지?” 모두 의아한 눈길을 보낸다. 한 친구가 반문한다. “상품? 사랑?” 고개를 젓는 안토니오에게 친구는 “그러면 기쁘지 않아서 울적한 거라 해두세.”라며 상황을 정리한다. 다음은 유대인이자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다. 평소 기독교인들이 수염에 침을 뱉고 노골적으로 무시해도 참고 사는 사람이다. 애지중지 기른 외동딸이 기독교인 남자를 따라 가출하면서 거금과 보화를 빼돌렸다. 간간이 들리는 소식은 재물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 “불행이란 불행은 다 짊어졌는데, 대체 무슨 낙으로 살아간단 말인가. 가슴에서 피눈물이 흘러넘치네.”라며 치욕과 통한으로 몸부림친다. 안토니오는 영화 내내 조금도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데, 재판 과정에서 본색을 드러낸다. “부탁이네, 논쟁 상대가 유대인임을 염두에 두게.” 갑절로 돈을 갚겠다는데도 기어코 살 1파운드를 떼어내겠다며 고집을 부리는 샤일록 뒤에서 좌중에 대고 하는 말이다. 포샤의 판결로 재판은 끝난다. ‘살을 떼되 피 한 방울도 흘리면 안 된다. 더도 덜도 아닌 1파운드만 취하라. 타민족이 시민의 생명을 노렸으니 원고의 재산은 국고에 귀속된다.’ 안토니오의 울적함 그 실체를 찾을 수 없다. 샤일록은 철퇴를 맞는다. 희곡이 유대인을 악마화했다는 평이 쏟아졌다. 영화는 집단 백일몽이란 말을 이 영화를 통해 실감한다. 영화와 관객이 함께 공상하는 장. 여기서 한가지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브레히트’의 소격효과는 ‘낯설게 관찰하기’를 강조한다. 이 작품에서 어느 한 편에 함몰되어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쩌면 지금 진행 중인 전쟁도 위정자들이 꾸는 백일몽 아닐지 모르겠다. 관객은 낯설게 관찰해야 하리라. 판관 포샤는 샤일록에게 자비를 간청했다. ‘자비는 권위 중에서도 가장 큰 권위이며 신의 속성 중 하나’라며. 샤일록은 자비를 버렸고, 안토니오는 유대인을 버렸다. ‘기쁘지 않아서 울적한 거라 해두자.’라는 표현이 정곡을 찌른다. 이들 사는 모습이 기쁠 게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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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4.21 21:02

[새벽메아리] 준비되지 않은 교실은 아이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다문화 학생이 늘어나는 교실, 우리는 과연 준비되어 있는가. 전북의 학교 현장은 이미 빠르게 변하고 있다. 농촌과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결혼이주여성과 외국인 근로자의 유입이 이어지면서 이주배경학생은 더 이상 소수가 아니다. 한 반에 여러 국가 출신의 학생이 함께 공부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변화 속에서 교육 현장의 준비가 과연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한 번쯤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이주배경의 학생들은 학습 이전에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교과서를 읽지 못하고 교사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업 참여는 사실상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단순한 어휘 부족을 넘어 문장을 이해하고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학습 부진을 넘어 학교 적응의 실패로, 또래 관계 단절과 학습 포기로까지 연결될 위험이 크다. 실제 현장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공부가 어렵다”기보다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호소하며 점차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현실이 개인의 노력과 학교의 자율적 대응에 맡겨져 있다는 점이다. 일부 학교에서는 자체적으로 한국어교육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장의 노력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사례도 적지 않다. 도교육청의 찾아가는 한국어교육 사업 역시 다문화 학생의 학습 공백을 줄이고 학교 현장의 부담을 덜어주는 데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맞춤형 지원을 통해 초기 적응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대상과 시간, 인력 측면에서 여전히 한계가 존재하며, 단기적 지원만으로는 언어 습득과 교과 적응을 동시에 해결하기 어렵다. 이러한 성과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지원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는 보다 구체적인 정책 전환이 요구된다. 첫째, 학교와 지역을 연계한 상시 한국어교육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단기 방문형 교육을 넘어 학기 단위의 지속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학교 내 전담 공간과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한국어교육 전문 강사의 안정적인 배치와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 시간제·단기 계약 중심 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한 전문 인력의 유입과 유지도 기대하기 어렵다. 셋째, 중도입국 청소년을 위한 초기 적응 프로그램을 제도화해야 한다. 별도의 준비 없이 일반 학급에 바로 배치되는 현재의 방식은 학생에게 과도한 부담을 준다. 최소 6개월에서 1년 동안 집중 한국어교육과 기초 교과 학습을 병행하는 브릿지 과정을 운영하고, 단계별 평가를 통해 일반 학급 전환 시점을 결정해야 한다. 더불어 또래 멘토링과 정서 지원을 병행하여 학교 적응 과정에서의 고립을 예방할 필요가 있다. 넷째, 부모 대상 한국어교육과 학습지도 프로그램을 확대하여 가정 내 지원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부모 역시 언어의 한계로 자녀 교육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교육은 교실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문화 학생의 증가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과 같은 대응으로는 교육 격차를 줄이기 어렵고, 그 부담은 결국 지역사회 전체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제는 단기적 지원을 넘어 지속 가능한 교육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현장을 반영한 정책과 책임 있는 실행이 뒤따를 때, 비로소 교실은 모든 아이를 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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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4.14 18:30

[새벽메아리] 공공극장은 누구의 공간인가

공공극장은 누구를 위한 공간일까. 얼마 전 한 강의를 듣기 전까지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질문이다. 그 강의에서는 공공극장이 시민과 함께했을 때 나타나는 효과에 대해, 독일의 사례를 포함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공공극장에서 그동안 예술가는 작품을 올리고 시민은 그것을 관람하는 공간으로만 이해되어 온 것은 아닐까. 완성된 공연이 무대에 오르고, 관객은 그것을 감상한다. 여기에 대관 운영과 수익이 가능한 기획공연이 더해지고, 공간에 여유가 있을 때 체험 프로그램이나 전시가 진행된다. 이러한 방식은 공공극장의 운영에서 경험한 익숙한 구조다. 하지만 문득 질문이 생긴다. 이것이 과연 공공극장이라는 이름이 담고 있는 의미에 충분히 부합하는 방식이었을까. 우리는 공공극장에서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시민과 예술가가 함께 머무르고, 함께 만들어가며, 언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 공연을 ‘보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무대예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께하는 공간. 공공극장은 어쩌면 모든 아이들에게 문턱없이 열려있는 놀이터와 같이 모든 시민에게 자유롭게 열려있는 무대예술의 놀이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현재 많은 공공극장은 공연과 행사의 대관 관리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대관 공연이 완성도 높게 올라갈 수 있도록 지원하며, 안정적인 환경에서 관객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하지만 이러한 운영이 반복될수록 공공극장은 점점 더 시민들에게 소비의 공간으로만 고정되고 있지 않았을까. 시민은 관객으로 참여할 수는 있었지만, 그 공간이 자유로운 공공의 장소로 인식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시민예술의 관점에서 보면 공공극장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시민들은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 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지역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들은 하나의 문화적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들을 전문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대관이라는 문턱조차 넘지 못하거나 관심 밖이기에 대부분 공공극장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정작 공공이라는 이름을 가진 공간이 시민의 창작과 참여를 충분히 품고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해외의 여러 사례에서는 공공극장이 보다 확장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공연을 올리는 공간을 넘어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창작 과정에 개입하며, 다양한 형태의 예술이 공존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있다. 직업예술과 시민예술이 같은 공간 안에서 순환하는 구조이며, 이러한 구조 속에서 극장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지역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공공극장이 단순히 공연을 관람하는 곳이 아닌 다양한 방식의 문화 플랫폼이라면 어떨까 직업예술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시민예술은 그 옆에서 새로운 경험과 감각을 만들어낸다. 두 영역이 같은 공간 안에서 만날 때, 극장은 결과를 보여주는 장소를 넘어 관계와 과정이 축적되는 공간으로 변화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공간을 열어두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운영 방식의 변화, 프로그램 구조의 재설계,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을 관객이 아닌 하나의 주체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단순하게 공연 관람을 제공하는 공간이 아니라, 모든 시민과 함께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을 향유하는 공간이 될 때 비로소 그 이름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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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4.07 19:05

[새벽메아리] 헌신에 들이댄 불의의 칼날…전주 예수병원의 수난

전주 예수병원은 우리나라 최초 민간 선교병원으로 1898년 진료를 시작했다. 서울 소재 세브란스병원(연세대)보다 6년이나 빨랐다. 외국인 의료선교사들이 의료 황무지였던 호남에 뿌려놓은 사랑의 씨앗이었다. 예수병원이 전북에서 가지는 위상은 단순한 의료기관을 넘어선다. 전북 의료 현대사를 이끈 중심축이자 120년가량의 세월 동안 도민의 생명을 보살피면서 최후의 의료 보루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예수병원은 당시 문교부로부터 의과대학 설립을 강력히 권유받았다. 하지만 당시 병원장 닥터 씰(Dr. Seel)은 정중히 거절했다. ‘의학 교육보다 선교와 진료가 우선’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권력과 명예보다 소외된 환자 곁을 지키겠다는 선교병원 본연의 소명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오늘의 의료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일깨우는 일화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칭찬받아 마땅할 예수병원에는 오히려 벌이 내려졌다. 처벌의 주체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의 보건당국이었다. 당시 병원들은 의료소모품 비용을 환자에게 전가했다. 원가에 못 미치는 저수가 체계 속 관행이었다. 이는 개별 병원의 탐욕 때문만은 아니었다. 저수가 제도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관계 당국은 이런 관행에 칼을 들이댔다. 하지만 잣대가 불공정했다. 예수병원엔 심한 차별의 칼날이 날아들었다. ‘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며 의료 사업에 뛰어들었던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 등 거대 재벌병원에 비해서 말이다. 칼날은 동일한 잘못의 대형병원을 제재하는 데는 무력했다. 해당 재벌병원 병원장들이 퇴직한 후에야 비로소 ‘약식기소’로 적당히 마무리한 것이다. 보건당국은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대형병원에 사실상 면죄부를 쥐어줬다. 반면, 정직하면서 위민 헌신한 예수병원에는 예리한 칼을 휘둘렀다. 이른바 ‘본보기’였다. 당시 예수병원은 소비조합을 통해 수익 구조를 투명하게 운영했다. 그러기에 금지된 관행의 적발이 아주 용이했다. 예수병원에 7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과징금 폭탄을 투하했다. 병원 존립을 위협받을 정도의 거액이었다. 지역민의 건강권을 지켜온 최초의 선교병원에 대한 대접치곤 너무나 지나쳤다. 가히 권력의 횡포였다. 의대 설립이라는 도약의 기회조차 마다하며 인술(仁術)만을 위해 땀을 흘려왔던 선교병원의 순수한 정신은 무참히 짓밟혀야 했다. 의료 현대사의 굴곡진 민낯이다. 전북 도민의 이름으로 반드시 바로잡혀야 할 대목이다. 예수병원은 국가가 제 기능을 못 하던 시절부터 전북 의료를 지켜왔다. 이런 병원에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부도덕한 병원’이라는 낙인을 찍고 방치해선 안 될 일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당시의 잘못을 인정하고 낙인을 지워줘야 한다. 예수병원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 아울러 오늘의 지역 의료 문제점도 돌아봐야 한다. 지역의료원에 인센티브가 박한 신포괄수가제 등 정책 설계를 고쳐 지역 거점병원들이 겪는 ‘착한 적자’를 정당하게 보상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최초의 선교병원으로 착한 병원을 지향했던 예수병원이 겪은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오늘날 지역 의료가 처한 위기의 뿌리와도 같기 때문이다. 당국은 이제라도 진정성 있는 사과와 구제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평생을 지역 의료에 투신한 원로 의료인들과 예수병원의 한을 풀고 굴곡진 역사를 바로잡은 길이 될 것이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지 않는 국가에게 미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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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3.31 18:44

[새벽메아리] 소설 남한산성 영화로 읽기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남한산을 중심으로 축조한 역사적인 산성이다. 인조 2년(1624)에 현 위치에 건립했다. 평상시에는 광주 지방관의 집무실로 사용하였고, 전란 때는 임금과 조정의 피난처이자 항쟁의 지휘부가 되었다. ‘김훈’ 작가의 소설 『남한산성』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에 파천한 47일간의 생존기에 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한 작품이다. 고립무원의 성, 아비규환의 전장(戰場)에 무엇이 있었는지 수려한 필치로 그려낸다.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하는 길은 포개져 있었다.’라고 말하는 저자는 ‘이 책은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황동혁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무엇을 읽었는지 궁금하다. 팩션(Faction) 사극은 비틀어야 제맛이 나는데……. 소설은 오래된 병풍을 잇댄 느낌이 든다. 구성(40장)이 그렇고, 언어에서 연상되는 빛바램과 여백이 그렇다. 예지력 있는 첫 문장은 유려하고 심오하다.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몽진 떠나는 어가행렬과 폐허가 된 궁궐로 돌아와 눈물을 닦는 임금 모습이 디졸브 되는 글귀는 하늘이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글의 끝은 바람에 돛폭이 잔뜩 부푼 배가 송파강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영화 첫 장면은 나루터다. 꽁꽁 얼어붙어 배가 꼼짝할 수 없는 강, 사람들은 얼음 위를 걸어서 건넌다. 끝 장면도 나루터다. 해빙되어 나룻배가 마음껏 오갈 수 있는 나루터. 주변은 삼밭〔麻田〕이었다. 소설과 영화는 공히 수미상관(首尾相關) 구조를 띠고 있다. 그 안에 47일의 고초가 빼곡히 들어있다. 영화를 두드려보자. 전편을 관통하는 은유는 먼지다. “전하, 지금 성안에는 말〔言〕 먼지가 자욱하고 성 밖 또한 말(馬) 먼지가 자욱하니 삶의 길은 어디로 뻗어있는 것이며, 이 성이 대체 돌로 쌓은 성이옵니까, 말로 쌓은 성이옵니까.” 이조판서 최명길이 울음을 참으며 쏟아내는 말이다. 다음은 주화파와 척화파 간 첨예한 대립이다. 주화파 최명길이 간언한다. “전하!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옵니다. 치욕은 죽음보다 가벼운 것이옵니다.” 이에 맞서는 척화파 김상헌의 강변이다. “전하!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고 삶을 구걸하느니 사직을 위해 죽는 것이 신의 뜻입니다.” 틈을 헤치고 인조의 졸렬한 목소리가 울퉁불퉁 튀어나온다. “나는 살고자 한다.” 클라이맥스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다. 삼전도(三田渡)의 굴욕 그 현장을 목도(目睹)하는 것. 절 한번하고, 이마를 세 번 땅에 두드리기를 3회. 청나라 역관의 명령에 따라 임금의 이마가 땅을 찧는다. 온 나라가 임금 따라 울었다. 백성의 감정과 존재가 드러나지 않은 것은 아쉬움이다. 가마니 둘러쓴 성첩 위 병사, 대장장이, 점쟁이, 무당, 장돌뱅이, 기와장이, 옹기장이, 농부……. 이들 삶의 모든 무늬와 질감은 그저 노동하는 근육 속에 각인되었다. 가느다란 울부짖음은 먼지에 눌려 들리지 않는다. 먹을 것 없을 때, 홍이포 쏟아질 때 그들의 위장과 폐부는 제일 먼저, 가장 오래 오그라들었다. 병자호란 후 조선의 항복을 기록한 삼전도비가 세워졌다. 현재 이 비석은 삼전도가 있던 자리, 서울 잠실 석촌호숫가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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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3.24 18:31

[새벽메아리] 다문화 시대, 한국어 교육은 준비되었는가

다문화 사회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산업 현장에는 다양한 국적의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일하고 있고, 지역사회 곳곳에는 결혼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다. 학교 교실에서도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수도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북 역시 농업과 제조업 현장을 중심으로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이 꾸준히 늘어나며 지역사회의 모습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 비해 우리가 준비한 것은 충분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어 교육은 다문화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임에도 여전히 여러 과제를 안고 있다. 이주민들에게 한국어는 단순한 외국어가 아니다. 한국어는 일자리를 찾고 병원을 이용하며 행정기관을 방문하고 이웃과 관계를 맺기 위해 필요한 생활 언어이자 생존 언어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노동 현장에서 자신의 권리를 이해하기 어렵고 자녀의 학교 생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힘들다. 결국 언어의 장벽은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기 쉽다. 낯선 사회에서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단순한 학습을 넘어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전북에서 외국인 노동자 쉼터를 운영하며 여러 이주민들을 만나다 보면 한국어를 배우려는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자주 느끼게 된다. 긴 노동 시간을 마친 뒤에도 시간을 내어 한국어 수업에 참여하고 서툰 발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를 또박또박 읽어 내려간다. 그 모습 속에는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살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특히 이주청소년의 경우 언어 문제는 더욱 복합적인 어려움으로 나타난다. 또래 친구들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면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어렵고 학습 격차도 커질 수밖에 없다. 전북 지역 학교에서도 다문화 학생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체계적인 언어 지원은 아직 충분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다행히 전북도교육청에서는 다문화 학생들의 학교 적응을 돕기 위해 ‘찾아가는 한국어 교육’을 운영하며 언어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전문 강사가 학교로 직접 찾아가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은 학생들의 초기 학교 적응을 돕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 현장만으로 모든 교육 수요를 감당하기는 어렵다. 학교 밖에서도 이어지는 한국어 교육이 함께 이루어질 때 교육 효과는 더욱 커질 수 있다. 현재 전북에서도 가족센터와 외국인지원센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만 교육 기회와 프로그램의 질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농촌 지역이나 산업단지 인근에서는 교육 참여 자체가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한국어 교육을 담당하는 강사들의 처우가 안정적이지 못해 지속적인 교육 체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현실도 있다. 이제 한국어 교육을 단순한 지원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기반으로 바라봐야 한다. 지자체와 교육기관, 지역 단체가 협력해 학교 안과 밖을 연결하는 체계적인 교육 환경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다문화 사회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변화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그 변화에 걸맞은 한국어 교육의 준비이다. 한국어 교육의 수준은 결국 우리 사회의 포용성과 준비 정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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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3.17 19:45

[새벽메아리] 시민예술, 잘하는 것과 즐기는 것 사이

시민예술에서 더 중요한 것은 ‘잘하는 것’일까, 아니면 ‘즐기는 것’일까. 대부분의 시민예술 활동은 즐거움에서 시작된다. 노래를 좋아해 합창단에 들어가고, 연극이 궁금해 시민연극 모임에 참여한다. 특별한 목표나 성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출발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참여자들은 자연스럽게 조금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연습을 거듭하며 이전보다 나아지고 싶고,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시민예술의 모든 장르에서 비슷한 모습이 발견된다. 그림을 배우던 사람은 어느 순간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을 그리고 싶어 하고,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은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내고 싶어 한다. 음악을 배우는 사람들 역시 단순히 연주하는 즐거움을 넘어 공연이나 대회에서 성과를 얻고 싶어 하기도 한다. 취미로 시작한 활동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더 잘하고 싶다는 자연스러운 욕구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시민예술의 가치는 분명히 과정에 있다고 이야기 하지만 현실적인 평가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또한 평가 자체가 시민예술에 정말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 또한 이어진다. 시민예술의 가치와 참여자들의 자연스러운 욕구 변화가 현 제도 구조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혜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시민예술의 현실이다. 시민예술의 가치는 과정에 있지만 현실의 평가는 결과를 논한다. 많은 시민예술 활동은 결과 중심의 현실적인 평가 구조와 만나면서 또 다른 긴장을 경험한다. 시민연극제와 같은 행사에서도 심사와 시상이 이루어지면 연기력이나 작품의 완성도가 주요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방식은 공연의 수준을 높이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시민예술을 경쟁 중심의 구조로 이끌 수 있다는 한계도 안고 있다. 문화정책 역시 이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정책에서는 시민 참여 확대와 생활문화 활성화를 이야기하지만, 실제 지원 구조는 여전히 심사와 평가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사업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기준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 기준이 결과의 완성도에만 집중될 경우 시민예술이 지닌 과정의 가치는 충분히 드러나기 어렵다. 시민예술이 잘하려는 노력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활동의 중요한 동력이 되기도 한다. 다만 시민예술의 의미를 결과 중심의 경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되기에 문화정책이나 평가 방식 등 시민예술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시민예술은 잘하는 사람들의 무대가 아니라,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어쩌면 시민예술의 본질은 잘하는 것과 즐기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과정에 있는지도 모른다. 완벽한 공연을 만드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경험 속에서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그 과정이 이어질 때 시민예술은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도시의 문화적 토양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질문하게 된다. 시민예술에서 더 중요한 것은 잘하는 것일까, 즐기는 것일까. 어쩌면 그 답은 둘 중 하나가 아니며, 사람들이 함께 예술을 경험하는 그 과정 안에서 찾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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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3.10 19:53

[새벽메아리] 의대에 미친 나라, 바로 잡으려면

1983년 5월. 우리와 미수교 상태였던 중국의 민항기(KS651)가 불시착했다. 당시 필자는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부상당한 승객들을 치료하며 승무원이던 왕영창, 왕배부 말고도 중국 대표단이던 ‘심도(沈圖)’ 민항총국장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심도는 매우 당당했다. 개발에 뒤진 나라에서 온 사람 같지 않았다. 그의 당당함은 1986년 미국 대학에서 만난 중국 국비 유학생들에게서도 볼 수 있었다. 끼니를 겨우 이을 정도의 소박한 도시락과 낡은 신발에도 꽉 찬 자긍심으로 밤낮없이 연구실을 지키던 그들은 덩샤오핑의 뜻을 받드는 ‘과학기술 구국’의 주역이었고 명문 대학의 과학기술 중시 풍토 조성에 기여했다. 세계 기술 패권을 다투는 지금의 중국을 있게 했다.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을 보자. 1980년대 우리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은 산업화의 영웅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했다. 그들은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치자 가장 먼저 구조조정의 칼날을 맞았다. 과학기술이 국가를 구한다는 믿음은 와르르 무너졌다. 이후, ‘안정’을 지향하는 의대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서 의대에 미친 나라가 돼 왔다. 한국 의료의 부정적 민낯은 통계에서 드러난다. 2025년 OECD 보건통계를 보자. 한국의 인구 1000명당 병상수는 12.6개로 OECD 평균(약 4.3개)의 3배가량이다. 압도적 세계 1위다. 단순히 병상만 많은 게 아니다. 국민 1인당 외래진료횟수는 연간 15.7회로 OECD 평균(5.9회)을 굉장히 앞지른다. 가히 ‘과잉 진료’와 ‘과잉 병상’의 나라다. 우려스러운 것은 소위 ‘빅5 병원’의 탐욕이다. 빅5는 이젠 병원이라기보단 거대 기업이다. 연간 매출액이 1조원을 훌쩍 뛰어넘고, 매출액 기준으로 500대 기업 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수준이다. 생명을 구하는 인술의 전당이어야 할 병원이 경영 효율과 수익 극대화를 좇는 거대 서비스 기업으로 변모한 것이다. 빅5는 매출 면에서 세계적 수준의 도쿄대학교 병원이 감히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월등하다. 필자가 1994년 근무했던 도쿄대병원은 치료는 세계적 수준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외양엔 별 차이가 없다.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이 있다. 이미 비대해진 빅5가 수도권에 총 6000병상이 넘는 분원을 추가 설립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나라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아마도 지역 의료를 고사시키는 결정타가 될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지방의 필수의료인력이 거대 블랙홀인 수도권 빅5로 빨려 들어가고, 지방 환자들이 빅5라는 브랜드를 찾아 수백 킬로미터의 거리를 이동하는 ‘의료 유목민’이 돼 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병상 하나를 더 늘린다거나 수익성 높은 검사 건수를 한 건 더 올리는 일이 아니다. 망가진 의료 전달체계를 바로잡고, 인재들을 다시 기초과학 현장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일이다. 또 기초과학 투신에 대한 자긍심이 높은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다. 또 있다. 수도권 거대 병원의 확장은 저지해야 하고, 지역의료의 가치는 회복시켜야 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전국 어디서나 안심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6·25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 해야 할 마땅한 의무이기도 하다. 혹 전쟁이 다시 일어난다면 전후방이 없이 전국 각지 공립병원들은 야전병원이 될 것이다. 의대에 미치지 않고 지역의료가 제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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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3.03 19:55

[새벽메아리] 소설 리플리가 창조한 리플리 증후군

‘리플리’는 미국 여류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1955년에 발표한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의 주인공 이름이다. 선망하는 삶을 살기 위해 본받고자 하는 사람 행세를 하며 거짓말과 사기, 살인까지 저지르는 인물이다. 책은 자신이 만든 허구의 세계를 진실로 믿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일삼는 반사회적 인격장애, ‘리플리 증후군’을 창조하였다. 창조보다 발견이란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지만.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재능 있는 리플리』를 필두로 1970년 『지하의 리플리』, 1974년 『리플리 게임』, 1980년 『리플리를 따라온 소년』, 1991년 『심연의 리플리』까지 5부작으로 장장 36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20세기 후반을 관통하며 속칭 관종으로 기능한 이 캐릭터의 등장 배경은 무엇인가? 완간 이후 리플리라는 존재는 어떻게 되었는가? ……. 이는 추적 대상이라기보다 인간 욕망의 한 축임을 인정하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는 두 편이다. ‘알랭들롱’의 출세작 <태양은 가득히. Purple Noon, 1960>와 ‘맷 데이먼’이 열연한 <리플리. The Talented Mr. Ripley, 1999>가 그것이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각각 원작과 거리가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선박회사를 운영하는 거부의 아들 ‘디키’는 이탈리아 나폴리 남쪽 ‘봉지벨로’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젊음을 소비하고 있다. 이 아들을 집에 데려오면 후사하겠다는 아버지, 심부름 가는 인물이 ‘리플리’다. ‘돈 벌 필요 없이 그저 쓰기만 하면 되는, 외양을 예술(디키는 그림, 여자친구 ‘마지’는 작가 지망생)로 포장하고 유난을 떠는 이들. 주눅 들고 지질한 삶을 살아온 리플리는 이들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지며 부러움과 환멸 사이에서 갈등한다. “디키를 복제해서 내가 가져야지.” 갖은 감언이설과 충성에 감복한 디키는 서서히 리플리에게 곁을 내준다. 백번을 따라 하면 복제가 된다고 했던가. 디키의 옷을 꺼내 차려입고 거울 앞에 서서 그를 흉내 내는 리플리. 일상의 말과 동작까지 연습한다. 이를 목격한 디키가 사정없이 나무란다. 겸연쩍어하는 리플리 뒤에서 검은 마수가 뻗치는데……. 급기야 디키를 죽이고 여권과 사인까지 위조한 후 그토록 원하던 디키로 둔갑한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는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만 존재할 때 제작했다. 사람을 둘이나 살해한 리플리를 단죄하는 구성에 반해, 이후에 나온 소설들과 1999년에 나온 영화 <리플리>는 살인자 리플리는 크게 괘념치 않는 눈치다. 그의 기행에 경도된 독자와 관객의 감정선을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할지도 모를 일. 여하튼 영화 리플리에서 경찰관과 탐정이 범인을 쫓을 때 대부분 관객은 잡히지 않기를 바라며 가슴 조인다. 리플리에 감정이입 되는 관객의 심리는 무엇일까? 세상의 모순에 대항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고통의 무게를 비교하면서 영화 <기생충>을 보았듯 말이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레이디 두아>는 명품보다 더 화려한 삶을 사는 30대 여성을 그린다. “화려한 우울.”, “그 사람의 가치를 알려면 가진 것보다 없는 것을 봐야 한다.”라는 전제가 가열하다. 소설과 영화는 말했다. “초라한 현실보다 멋진 거짓이 낫다.”라고. 어떻게 나타날지 알 수 없는 리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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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24 19:03

[새벽메아리] 지역사회 안전망으로서의 외국인 노동자 쉼터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외국인 근로자 인권침해 사건은 우리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지 다시 묻게 한다. 폭언과 폭행, 열악한 숙소와 노동환경 속에서 장기간 방치되었다는 사실은 특정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관리의 공백이 만든 구조적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농축산업과 제조업 등 인력 부족이 심한 산업 현장을 지탱하는 중요한 구성원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위기 상황에 놓였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지역 기반 보호 체계는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주노동자는 언어 장벽과 정보 부족, 고립된 생활환경으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사건 발생 이후의 대응을 넘어 예방 중심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첫째, 정기적인 사업장 점검과 숙소 환경 실태조사를 통해 노동환경을 상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둘째, 이주노동자 전담 상담창구와 통역 지원 체계를 확대하여 피해 발생 시 즉각적인 보호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셋째, 지역 내 임시 숙소 제공 체계 구축 및 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휴식하고 지역사회와 연결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넷째, 고용주 대상 인권교육과 노동관계법 교육을 의무화하여 예방 중심의 관리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 변경이나 임금 체납, 근로환경 갈등, 인권 침해 상황 등을 겪을 경우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거주 공간의 부재다. 숙소를 제공하던 사업장을 떠나게 되면 단기간 머물 공간을 구하기 어렵고, 언어와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노동자들에게 주거 문제는 곧 생계의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안정적인 임시거주 공간의 확보는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노동자의 안전과 인권을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라 할 수 있다. <전북전주외국인노동자 쉼터> 운영 경험을 통해 보면,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지원보다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공간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창구였으며, 작은 상담과 휴식 지원만으로도 그들의 불안은 크게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지역 기반 보호망은 위기 상황을 예방하는 중요한 안전장치가 된다. 특히 설 명절과 같은 시기에는 쉼터의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고향에 가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함께 서로의 음식과 문화를 이야기하며 명절을 보내는 모습은 지역사회가 지향해야 할 공존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형성되는 관계와 경험은 노동자들에게 위로와 안정감을 주고, 지역사회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 이제 외국인 노동자 쉼터와 임시 거주 지원을 민간의 노력에만 맡겨 둘 단계는 지났다. 외국인 노동자 긴급 거주 지원을 지역 복지 정책의 한 영역으로 포함하고, 지자체가 안정적인 운영 예산과 협력 체계를 마련하는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 쉼터는 위기 대응을 위한 임시 공간을 넘어 노동자의 권리 보호와 지역사회 안정에 기여하는 공공적 인프라로 인식되어야 한다. 지자체와 고용 관련 기관, 민간단체가 연계된 지역 기반 외국인 노동자 보호 체계를 구축할 때 보다 지속가능한 지원이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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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10 19:49

[새벽메아리] 시민예술, 무대와 삶을 잇는 다리

시민예술의 현장은 생각보다 폭넓다. 아침마다 모여 합창을 하는 사람들, 주말마다 연극 연습을 하는 시민 배우들, 악기를 처음 잡아본 이들이 결성한 직장인 밴드까지. 이들에게 예술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일상의 일부다. 공연의 완성도만큼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와 변화이기에 누군가는 그 과정속에서 자신감을 얻고, 누군가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진다. 이러한 흐름은 해외에서도 이미 중요한 문화적 실험으로 자리 잡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의 예술집단 ‘리미니 프로토콜(Rimini Protokoll)’이다. 이들은 전문 배우 대신 일상의 전문가들(평범한 시민들)을 무대 위 주체로 세운다. 이 작업은 “전문가만이 예술을 한다”는 오래된 전제를 흔들며, 시민이 예술의 단순한 참여자가 아니라 공동 창작자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리미니 프로토콜의 사례는 시민예술이 단순한 취미 활동이 아니라, 동시대 예술의 중요한 형식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는 전문예술의 위상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이 사회와 만나는 새로운 통로를 확장하는 일에 가깝다. 시민의 경험이 예술적 형식과 만나면서 무대는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되고, 전문예술 역시 새로운 질문을 얻게 된다. 이러한 공존의 모델은 공공극장의 운영 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독일과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는 시립극장이나 주립극장이 전문극단의 공연뿐 아니라 시민 극단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한다. 같은 공간 안에서 다양한 형식의 모두를 위한 예술이 자연스럽게 순환하는 구조다. 시민들은 단순히 관객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극장의 또 다른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공공극장이 시민연극과 전문연극을 동시에 품을 때, 극장은 소비 공간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전문예술은 시민에게 영감을 주고, 시민예술은 전문예술에 새로운 감각을 제공한다. 두 영역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지탱하는 관계다. 그렇게 예술이 확장되며 도시 문화의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간다. 우리 지역의 현실을 돌아보면 아직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다양한 시민예술 활동이 단순한 예술교육 내지 평생교육 형태로만 존재할 뿐 지역예술의 한 분야로서 공생을 유도하는 방향성은 아직 이르다는 판단이다. 그렇기에 공공문화시설 역시 여전히 직업예술 중심의 운영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시민예술은 전문가가 모든 것을 이끌어가는 구조에서 벗어날 때 더욱 건강해진다. 예술가의 역할은 지시자가 아니라 촉진자에 가깝다. 시민들이 스스로 의견을 내고, 실패를 겪고, 다시 시도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때 시민예술은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시민이 주체가 되는 문화적 경험으로 확장된다. 그렇기에 시민예술이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해당 분야 직업예술인들의 관심과 협력도 필요하지만 이러한 지원이 없더라도 시민예술단체가 스스로 판단하고, 운영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방법에 대해 교육하고 보조해야 한다. 그렇게 예술이 삶으로 스며들 때, 도시는 더 이상 차가운 공간이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가 흐르는 무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무대를 채우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의 도시는 오늘보다 조금 더 따뜻한 내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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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03 18:29

[새벽메아리] ‘10개의 서울대’ 왜 필요한가

우리나라에서 일류대는 사실상 하나뿐이다. 서울대다. 이 구조가 지속된다면 국가의 미래는 밝기 어렵다. 어떤 인재의 성취 가능성과 국가 경쟁력이 특정 대학 하나에 과도하게 집중된 사회는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되지 못하는 순간, 사회 전반의 역동성도 급격히 떨어진다. 서울대가 10개 있다면 우리의 앞날은 분명 지금과 달라질 수 있다. 일본은 우리와 상황이 다르다. 수도권의 도쿄대 외에도 여러 명문 국립대학이 전국에 고르게 자리하고 있다. 이들 대학은 일본제국 때 제국대학령에 따라 설립됐다. 메이지 유신 이후 국가 엘리트 양성을 목표로 1886년 발포된 제학교령의 일환으로, 국가 수요에 맞는 학술과 기예를 가르칠 일류 교육기관으로 만들어졌다. 그 결과 도쿄대를 비롯해 교토대 등 본토 7개 대학과 함께 식민지였던 조선의 경성제국대학, 대만의 타이완대학까지 총 9개 제국대학이 탄생했다. 이들 대학은 지역과 산업을 떠받치는 일본 고등교육의 중추가 됐다. 다만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은 달랐다. 조선총독부 주도로 설립됐으며 한국인 입학 제한, 이공계 학과 부재 등 구조적 차별 속에 운영됐다. 광복 이후엔 서울대로 이름을 바꾸면서 국내 유일의 일류대라는 인식이 강해 지역 국립대 간 균형 발전의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우리 교육의 구조적 문제점을 양산하는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일본 본토의 7개 제국대학은 패전 이후 국립종합대학으로 재편됐고 이후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하는 산실이 됐다. 일본의 지방 국립대들이 지닌 연구 중심 전통과 학문적 위상은 단기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장기간 축적된 연구 환경과 안정적 지원의 결과다. 이는 대학 한 곳의 성과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의 결실이다. 일본은 1990년대 장기 침체 속에서도 과학기술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1995년 과학기술기본법 제정 이후 5년 단위 기본계획을 통해 기초과학을 꾸준히 육성했다. 중국 역시 정부 주도로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AI, 로봇 등 전략 산업 인재를 체계적으로 키우고 있다. 양국은 대학을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핵심 인프라로 인식한다. 반면 우리는 의대 쏠림 현상이 고착화되며 이공계 기피와 미래 산업 인력 부족이 심화되고 있다. 이는 개인의 합리적 선택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실패 때문이다. 과학기술 경쟁력 약화로 직결될 수밖에 없으며 장기적으로는 산업 기반 자체를 흔들 수 있다.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은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에 “뒤로 밀린 서울대”라며 평가하며 우려를 표했다. 이는 특정 대학의 서열 유지에 매몰된 시각일 뿐이다. 심각한 지역 불균형과 인재 편중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대학 하나의 위상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역량이다. 교육 정책은 과거의 명성을 지키는 수단이 아니라 미래를 여는 도구여야 한다. 서울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지역 거점 국립대는 여러 곳에 골고루 존재해야 한다. 인재가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가는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교육도, 산업도, 지역도 살아나기 어렵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하향 평준화가 아니라 상향 확산이다. 대학 간 경쟁을 촉진하고 연구 저변을 넓혀 국가 전체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전략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학 서열을 지키는 논리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과감한 선택과 실행이다. 조백환 원장은 한국정맥경장영양학회 회장, 국립암센터 암임상연구전문위원회 위원장, 전북대병원 의생명연구원 초대원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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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27 19:12

[새벽메아리] 원작 소설, 영화로 조명하기

부안 솔섬 근처에 사는 친구가 수시로 섬 사진을 찍어 보낸다. 늘 그 자리에서 묵묵하고 아름다운 섬. 섬을 바꾸는 것은 주로 햇빛, 구름, 만조· 간조, 바람, 해무 등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러 사진 중에서 내 몫을 고르는 친구의 기준이 궁금하다. 나는 사시장철 솔섬 이미지에 푹 빠져 산다. 지난해 마지막 날과 올 첫날에도 사진이 왔다. 먼 기적처럼 시간이 흘렀고, 우정을 이어주는 게 사진이라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사진은 쌓였고, 메타 메시지는 흘려보냈다. 친구여, 우리는 어느 언저리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던가. 사진에 취해있자니 올해 내가 만날 이미지들이 궁금해진다. 책 읽고 영화 보고, 내용을 내담자와 공유해야 하는 나에게 상(像)과 형상화(形象化)의 현현(顯現)은 필수 불가결인 요소다. 엊그제 2025년 개봉 영화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보고 학생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왕비가 거울에 묻는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 거울이 답한다. “왕비님이 아름다우신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스노우 공주가 수천 배 아름답죠.” 몇 차례 비슷한 질문과 답변이 반복된다. 이때 관객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백설 공주를 머릿속에 그린다. 대화하는 자리에 없는, 이미 각인된 공주이기에……. 학생들이 말하는 예쁜 공주의 상(像)은 다양한데, 대부분 각자 만든 것이다. 형태주의 심리학자 ‘루돌프 아른하임’은 말한다. ‘세상은 어떤 상(像)을 인간의 마음에 투영한다. 상은 자세히 관찰되고, 해석되고, 재구조화되어 저장된다(…….). 망막의 상과 심상의 상은 크게 다르다. 이는 기관(인체의)이 맡은 일을 한 뒤 일어난 조작(操作) 때문일 것이다.’ 인지심리학자 ‘크리스 프리스’의 말도 있다. ‘우리의 세계 지각이란 현실에 부합하는 환상이다(…….). 내가 지각하는 것은 바깥 세계로부터 내 눈과 손가락에 와닿는 엉성하면서 모호한 단서들이 아니다. 나는 훨씬 풍부한 것을 지각한다. 이 모든 엉성한 신호들은 풍부한 과거 경험들과 결합한 영상이다.’ 예술작품 감상자는 자신의 경험과 갈등이라는 관점에서 이 모호함(앞에 기술한)에 반응하며, 이미지를 창조한 예술가의 경험을 어느 정도 재현한다. 예술가에게 창작과정은 해석과정이기도 하며, 감상자에게 해석과정은 창작과정이기도 하다. 이를 ‘감상자의 몫(Beholder’s share)’이라고 한다. 중학교 때 처음 읽은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형상화가 안 되어 애를 먹고 있다.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남태평양 외딴섬 ‘타히티’에 정착하여 그림을 그린다. 특이한 것은 자기 집 벽 사방을 그림으로 꽉 채워 넣는데, 그림과 작업 과정이 소설의 묘사만으로 형상화가 안 된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소설(1919년 발표)을 영화(1942년 개봉)로 만났다. 영화가 보여주는 그림은 내 상상과 거리가 멀었다. 명작소설에 나타난 인간 본성의 경이로운 통찰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누릴 수 있을까? 늘 고민하는 화두다. 영화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차제에 영화화된 원작 소설 몇 편을 골라 조명하고자 한다. 소실점처럼 합치점을 찾자는 게 아니다. 형상화와 감상자의 몫 그 실체에 조금이나마 접근할 수 있다면 성공이다. 나를 위한 조작(操作)이 아니길 바라며. 이승수 고문은 가천대학교특수치료대학원 겸임교수, 영상영화심리상담사(전문수퍼바이저)를 지냈다. <영화 보고 갈래요?>외 4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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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20 18:20

[새벽메아리] ‘일손’이 아닌 사람: 외국인 노동자 인권의 공백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돼지농장 외국인 근로자 피해 사건은 우리 사회가 외국인 근로자를 어떤 존재로 대하고 있는지를 다시 묻게 한다. 축산 현장에서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가 폭언과 폭행, 열악한 근로환경 속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를 겪었다는 사실은 일부 현장에만 국한된 사실이 아닐 것이다. 이주민 지원 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만나온 센터장으로서, 이번 사건은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온 구조적 문제의 한 단면이라 느껴진다. 전북은 농촌과 축산업, 제조업 노동 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는 이미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 되었으며,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내국인 노동력이 빠르게 줄어드는 가운데, 외국인 근로자는 지역 산업을 떠받치는 핵심 인력이 되었다. 특히 돼지농장을 비롯한 축산업은 노동 강도가 높고 근무 여건이 열악해 외국인 근로자 의존도가 높은 분야다. 그럼에도 이들의 노동은 여전히 “일손을 때우는 비용”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고, 인권과 안전은 현장에서 뒷순위로 밀리기 일쑤다. 현장에서 만난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은 공통된 어려움을 호소한다. 근로계약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일을 시작하고,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부당한 지시나 폭언을 겪어도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언어 장벽과 정보 부족, 고립된 생활환경은 이들을 더욱 취약한 위치로 내몬다. 특히 농촌과 축산 현장은 외부의 감시와 지원이 닿기 어려워, 인권 침해가 장기간 방치될 위험이 크다. 이번 돼지농장 사건 역시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이 누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문제를 개인의 일탈이나 특정 사업주의 문제로만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외국인 근로자를 값싼 노동력으로만 인식하고, ‘말 못 하니 참을 것’이라는 왜곡된 시선 속에서 유사한 사건들이 반복되고 있다.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노동 현장은 안전사고 위험이 커지고, 숙련 인력은 떠나며, 결국 지역산업 전체가 타격을 입는다. 이 때문에 외국인 근로자 지원은 복지 차원이 아니라 안전망 구축이다. 한국어 교육과 노동권 교육은 권리 보호뿐 아니라 현장의 안전과 직결되고, 지역사회와의 연결망은 고립을 줄이고 위기 시 도움을 청할 수 있게 한다. 더 나아가 상담·통역·주거·의료 지원 등은 최소한의 인권 기반을 마련하는 장치다. 이러한 지원이 작동할 때 외국인 근로자는 단순한 노동력이 아니라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자리할 수 있다.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 보호는 특정 집단의 권익을 확대하는 문제가 아니라, 전북 농업·축산업·제조업의 노동 기반을 안정시키는 정책 과제다. 노동권과 주거, 안전, 교육, 통역·상담 등 기본적 지원 체계를 제도적으로 마련하는 일은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투자이며, 지역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필수 인프라다. 지자체와 중앙정부, 사업장, 지역사회가 역할을 분담하고 협력할 수 있는 정책적 장치를 마련할 때 외국인 근로자는 단순 노동력이 아닌 지역의 인적 자원으로 자리할 수 있다. 이러한 전환이 이루어질 때 전북은 안정적인 노동 수급과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고, 지역사회도 보다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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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13 18:37

[새벽메아리] 시민예술, 도시의 내일을 키우는 힘

예술은 오랫동안 특별한 사람들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무대 위의 전문가와 객석의 관객은 분명히 구분되었고, 창작은 선택된 소수의 몫처럼 인식되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지역 곳곳에서 이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실버합창단, 시민연극, 직장인 밴드와 같은 시민예술은 더 이상 주변부의 활동이 아니라, 도시 문화를 곳곳에서 지탱하는 힘이자, 시민들의 삶 속에서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요즘 흔히 이야기하는 문화와 예술의 민주주의가 더욱 크게 확장되고 있다. 시민예술의 가장 큰 가치는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에 있다. 완성도 높은 공연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연습하고, 의견을 나누고, 실패를 겪으며 관계를 쌓아가는 그 시간과 경험에 있다. 이 과정에서 예술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삶의 일부가 된다. 누군가의 취미였던 개인 활동은 공통의 관심사로 모인 공동체의 경험으로 확장되고, 이를 통해 개인의 즐거움은 지역의 기억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전북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대중 예술 중심이던 축제와 문화행사에 시민 예술팀이 자연스럽게 참여하고, 무대예술을 담아내던 공연장은 다양한 생활문화 공간, 시장, 골목, 주차장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예술의 수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토양을 넓히는 일에 가깝다. 토양이 넓어질수록 그 위에서 자라는 예술 역시 다양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예술은 도시의 지속가능성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대규모 예산과 일회성 이벤트에 의존하는 문화는 쉽게 소진되지만, 시민의 일상 속에서 이어지는 예술 활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참여한 사람들의 삶이 계속되는 한, 그들의 삶과 함께하는 시민예술 역시 꾸준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문화가 ‘사업’을 넘어서 시민들의 삶 속의 ‘생활’로 자리 잡을 때 더욱 확장될 것이다. 물론 시민예술이 모든 문제의 해답은 아니다. 전문성 부족, 지속성의 어려움, 참여자 간의 갈등 등은 늘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는 시민예술이 실패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를 찾아가기 위해 배우고 조정할 수 있다는 여지와 다시 시도할 수 있다는 기회를 열어두는 것이다. 앞으로의 문화정책은 시민예술을 보호의 대상이나 보조적 영역으로 바라보기보다, 도시 문화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 행정은 방향을 정해주는 주체가 아니라, 시민의 실험이 가능하도록 공간과 시간을 열어주는 역할에 가까워져야 한다. 예술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은 도시를 바꾼다. 시민예술이 확산된다는 것은 더 많은 시민이 자신의 삶을 표현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도시는 느리지만 조금씩, 그리고 분명히 단단해진다. 시민예술의 미래가 밝은 이유는, 그 중심에 언제나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하형래 프로듀서는 전북대를 졸업하고 경희사이버대학원 문화예술경영 석사를 받았다. 뮤지컬 ‘맘’, ‘왕과의 산책’, ‘곡두식당’ 등 다수 작품을 기획, 연출 및 출연했으며 전북문화관광재단 심의위원, 전주문화재단 심의위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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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06 18:45

[새벽메아리] 고향사랑기부제 활성화의 답은 ‘민간 주도’에 있다

12월, 고향사랑기부제의 달이다. 올해로 시행 3년째를 맞은 고향사랑기부제로 모인 돈이 처음으로 1000억 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첫해인 2023년 모금액은 651억 원, 지난해엔 879억 원이었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주소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하는 제도다. 기부를 하면 연말정산 때 10만 원까지는 전액 세액공제로 돌려받고, 여기에 기부액의 30% 가격에 해당하는 답례품도 받는다. 10만 원을 기부하면 13만 원을 돌려받는 셈이다. 이렇게 모인 돈은 지자체가 지역 주민의 복리 증진과 지방소멸 대응 사업 등에 쓴다. 알다시피 이 제도는 일본의 고향납세제에서 따왔다. 우리보다 15년 앞선 2008년에 제도를 시행한 일본은 당시 세수 감소와 지역 소멸 위기에 맞서 지자체 스스로 길을 찾도록 제도를 도입했다. 일본이 한해에 모으는 기부금 액수는 무려 12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와 인구나 예산 규모가 다르다고 해도 우리보다 한참 앞서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일본 고향납세제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핵심은 민간 주도의 ‘지정 기부 사업’ 활성화에 있다.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모금의 주체는 지방자치단체지만 지역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양한 시민사회조직들이 특정 사업을 제안하고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본 최초의 민간플랫폼인 ‘후루사토초이스’가 2013년에 처음 도입한 크라우드펀딩 서비스 ‘GCF(Government Crowd Funding)’가 불을 댕겼다. 고향납세제를 단순히 지역 예산을 추가로 확보하는 통로가 아닌 시민 참여를 통해 아래로부터 혁신적 정책(해법)을 만들어내는 직접민주주의의 새로운 기회로 본 것이다. 가령, 일본 규슈에서 가장 작은 사가현은 2014년 난치병으로 알려진 ‘제1형 당뇨’ 치료제 개발을 위한 재원을 이 GCF로 모으기 시작했다. 모금을 주도한 건 ‘일본IDDM네트워크’라는 민간 단체였고, 지자체는 이곳을 지정 기부 단체로 지정해 모금과 사업 집행에 필요한 권한을 부여했다. 민간의 전문 조직과 행정 그리고 기부자를 잇는 ‘거버넌스’가 만들어지자 두 달 만에 우리 돈 1억 원이 넘게 모였다. 사가현은 이렇게 모인 기부금의 90%가 곧바로 일본IDDM네트워크에 전해지도록 조례도 만들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 사업에 모인 돈은 100억 원에 달하고, 사가현은 국립사가의대를 비롯한 20~30개 연구기관과 함께 1형 당뇨 연구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일본 시민의 지갑을 연 건 답례품이 아니라 효능감이었다. 작은 참여로 사회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탤 수 있다는 효능감 말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지정 기부와 민간의 역할이 조금씩 커지고 있기는 하다. 광주 동구는 비영리단체인 피스윈즈와 함께 유기견 살처분을 막고 입양을 돕는 사업을 진행해 8천 명으로부터 무려 8억 원을 모았다. 아직 고향사랑기부제 참여율은 그리 높지 않다. 경제활동인구 30명 중 1명 꼴이다. 그만큼 앞으로의 성장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지금껏 우선순위에서 밀려있던 지역의 문제들을 시민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문제는 어떻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시민에게 효능감을 느끼도록 할 것인가다. 이건 행정보다 민간이 더 잘하는 일이다. 내년엔 우리에게도 더 많은 민간 주도 사례들이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 윤찬영 북카페 기찻길옆골목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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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2.30 18:44

[새벽메아리] AI와 사회복지, 사람을 위한 동행

인공지능(AI)과 로봇을 비롯한 피지컬AI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이미 스마트폰의 음성 비서, 챗봇 상담, 가정 내 스마트 기기를 통한 그 혜택이 이미 우리의 일상 속에 들어와 있고 그것을 누리고 있다. 그렇다면 AI는 사회복지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인간의 존엄과 관계를 다루는 영역에서 AI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첫째, AI는 복지 서비스 접근성을 크게 넓힐 수 있다. 농어촌이나 고령화 지역처럼 사회복지 인력이 부족한 곳에서 AI 상담 챗봇은 정신건강 돌봄의 기본적인 기능과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감정 분석을 통해 우울이나 불안을 조기에 발견하고, 필요할 때 전문가와 연결하는 역할도 가능하다. 피지컬AI, 즉 돌봄 로봇은 독거노인의 약 복용을 챙기고 긴급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등의 기본 안전망이 될 수 있다. 둘째, AI는 맞춤형 복지 설계자가 될 수 있다. 개인의 생활 패턴, 건강 기록, 경제 상황을 분석해 꼭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추천할 수 있다. 아동 학대, 노인 고독사, 자살 위험군 등 위기 상황을 조기에 감지하고 사회복지사에게 알려 준다면, 지금보다 훨씬 빠른 개입이 가능해질 것이다. 셋째, AI는 사회복지사의 업무를 지원한다. 복지 현장에서 많은 시간을 빼앗는 행정 업무, 예를들면, 신청서 작성, 사례 관리, 보고서 작성 등을 자동화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사회복지사는 본질적인 ‘사람을 만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또한 AI는 복잡한 사례에서 최적의 자원 배분을 제안하며 의사결정을 돕는다면, 효율성과 공정성을 동시에 높이는 과정이 될 것이다. 넷째, 피지컬AI는 돌봄과 일상 지원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이동 보조 로봇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발이 되고, 가사 지원 로봇은 독거 장애인의 손이 될 수 있다. AI 스피커는 외로운 이들의 말벗이 되고, 가족과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 이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고립을 완화하는 정서적 돌봄의 자원이다. 그러나 놓쳐서는 안 될 과제도 있다. AI가 사회복지사를 대체할 수 있느냐는 논란이 있다. 복지의 본질은 인간의 관계와 존엄에 있다. 기술은 사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자여야 한다. 또 다른 문제는 디지털 격차다. 고령층과 저소득층이 AI 활용에서 소외된다면, 복지는 또 한 번 불평등을 만들어낼 것이다. 따라서 모든 이가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사회복지와 AI의 만남은 하이브리드 모델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복지사가 직접 만나지 못하는 시간과 공간을 AI가 메우고, 24시간 긴급 모니터링은 AI가 담당한다. 그리고 깊은 공감과 관계는 사람이 맡는 것이다. 데이터와 네트워크 관리는 AI가, 인간적 돌봄과 공감은 사회복지사가 담당하는 협력 구조가 바람직하다. AI와 피지컬AI는 사회복지 현장의 여러 곳곳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어질 수 있는 매우 긍정적인 도구다. 그러나 도구는 목적이 될 수 없다. 사회복지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어야 한다. 기술이 사람을 대신하는 순간, 복지는 본질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AI로 인해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의 대전환은 이제 시대적인 과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사회복지 영역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AI와 사회복지의 만남은 선택이 아니라 이제는 필연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가치와 철학으로 이 기술을 활용하느냐이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소외된 이웃의 곁을 지켜주는 따뜻한 동행으로서 AI가 쓰이길 기대한다. 양병준 전북희망나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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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2.23 18:42

[새벽메아리] 시간을 건너온 목소리, 지역문화에서 원로예술인의 자리

처음부터 큰 기대를 품고 만난 자리는 아니었다. ‘원로예술인 인터뷰’라 하면 대개 정해진 질문과 정리된 연보, 미화된 회고가 오갈 것이라 짐작했다. 네 분의 원로예술인을 만났고, 각자의 분야는 서로 달랐다. 그러나 대화가 이어질수록 그 예상은 빠르게 무너졌다. 나는 어느새 질문자가 아니라 듣는 사람이 되었고, 기록자가 아니라 지난 시간을 탐색하는 여행자가 되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개인의 성공담이 아니었다. 변산마실길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부안에 예총이 어떤 경로로 만들어졌는지, 최초의 미술단체 청목회가 왜 당구장이나 다방에서 전시할 수밖에 없었는지. 70-80년대 밴드문화와 클럽문화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그리고 그것이 독학으로 악기를 배우고 공연자로 성장한 1세대 예술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생태계였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은 낡아빠져 리모델링이 필요하다고 말해지는 문화예술회관이나 문화의 전당, 석정문학관은 삼십여년 전 이들이 지역 내의 무수한 반대 의견을 뚫고 만든 최신식 문화거점이었다. 즉, 지금 존재하는 지역문화의 구조들이 어떤 우연과 필요, 환경 속에서 형성된 것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미흡해 보이는 결정들조차, 그 당시 조건 속에서는 최선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예산도, 제도도, 인식도 부족했던 시절에 무엇인가를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성취였다. 그래서 더 이상 “왜 그때 더 잘하지 못했나요?” 라는 질문은 떠오르지 않았다. 앞선 세대에게 책임을 묻는 대신, 그들이 떠안았던 불확실성과 고립을 상상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지역문화의 토대는, 완성된 설계도가 아니라 시행착오의 축적이라는 사실을 이들의 말이 증언하고 있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기억과 자료의 상관성이었다. 어떤 분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 분일수록 자신의 창작물도 잘 정리하여 갖고 계셨다. 그러나 어떤 분은 활동하는 동안 잦은 이주로 자료가 소실되거나 장르의 특성상 기록을 남기지 못하였다. 공연예술 분야가 특히 그러했다. 미술이나 문학은 작품집이나 도록이 그나마 남아 있었지만 국악이나 대중음악은 영상자료는 고사하고 사진 몇 장, 악보 몇 장이 다였다. 그러니 구술을 하는 과정에서도 정확한 연도나 정황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대부분 ‘기억’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흐릿해진 기억이지만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원로예술인들은 빛이 났고 청년이 되었다. 지역문화에서 원로예술인의 위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가능하게 한 시간의 몸이다. 그들의 기억은 완벽하지 않기에 더 중요하다. 공식 문서나 자료로 남길 수 없었던 이유, 당시의 선택이 갖는 한계, 그리고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는 문장을 증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원로예술인을 예우해야 한다는 말은 자주 공허하게 들린다. 그러나 그들을 만나는 일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지역문화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는 공동체는 어디로 갈지도 알 수 없다. 원로예술인은 답을 주기보다는 질문의 깊이를 남긴다. 그리고 그 질문 위에서, 지금의 우리는 비로소 다음 선택을 고민할 수 있게 된다. 전민정(독립기획자, 전 부안군문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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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2.16 18:13

[새벽메아리] 베트남 유학생 故 뚜안을 추모하며

2년 전 전주지역 외국인 유학생 시간제 취업 실태조사를 했다. 언어소통 등 조사의 어려움으로 유학생의 도움을 받아 실태조사를 했다. 그때 만난 A는 대학교 4학년으로 미얀마 학생 대표이기도 했지만, 한국말도 잘해 조사에 큰 도움이 되었다. 실태조사를 하면서 몇몇 유학생들이 임금을 받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는 걸 알게 되었고 A와 함께 사업주를 만나 밀린 임금 지급을 요청하기도 했다. 24년 A는 졸업했고 D-10 구직 비자로 취업을 준비했다. D-10 비자는 유학생이 졸업 후 E-7(전문 숙련) 비자로 취업하기 전, 인턴십 등을 할 수 있는 비자다. 그러나 E-7으로 전환하려면 전공과 맞는 일자리가 있어야 하는데 찾지 못했고, A는 E-7 비자를 발급받지 못하면 출국해야 하기에 인턴십으로 몇 개월 일하다가 비자기간 만료로 결국 대학원을 선택했다. 졸업 후 유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E-7 비자 전환을 원하지만 전환율은 10%도 안된다. 지난 10월 28일 대구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베트남 이주노동자(故 뚜안)가 단속을 피하던 중 3층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뚜안은 2019년 한국에 입국하여 어학원에서 한국어를 배운 뒤 2025년 2월 계명대학교를 졸업했다. 뚜안은 졸업 후 D-10 비자를 받았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래도 생계를 위해 일해야 했기에 2025년 10월 자동차 부품 회사에 일용직으로 2주간 일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출입국 사무소가 단속을 나왔다. 뚜안은 잡히면 벌금을 내야 했고, 더 무서운 건 비자 변경으로 인한 불이익이었다. 미신고 취업으로 벌금 경력이 있으면 비자 전환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뚜안은 단속을 피해 3시간 넘게 옥상 실외기 옆에 숨었고 단속반이 가기를 기다리다 추락한 것이다. 유학생이면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시간제 취업으로 일하는 유학생은 대부분 신청 절차의 까다로움, 업주의 비협조로 미신고 취업 상태에서 일하며, 졸업 후 정식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미신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다. 뚜안의 죽음 소식에 상담을 해온 유학생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전북 유학생은 23년 기준으로 9,799명으로, 올해 1만 명을 훨씬 넘었다. 유학생 대부분이 학업과 생계를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현실은 이들을 불법으로 내몰고 있다. 유학생 대부분이 시간제 취업을 하지만 공적인 취업 연계 기관이 없다 보니 노동법과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고 체불임금 등의 경험 비율이 높다. 부당한 일을 겪고도 의사소통 문제나 미신고 취업으로 불이익이 발생할까 대응 조차 못한다. 단속에 걸리면 유학생뿐 아니라 채용한 업주도 벌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해외 사례를 찾아보니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은 졸업한 유학생의 경우 자유롭게 취업할 수 있는 개방형 취업 허가제를 운용 중이다. 우리 사회도 유학생 개인에게 맡겨진 시간제 취업을 공공의 일자리 매칭 제도를 만들고 유학 후 일정 기간은 개방형 취업 허가제 도입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또한 유학생들이 졸업하고 정식으로 취업할 수 있는 E-7 비자 전환율이 10%도 안되는 현실을 개선되야 할 것이다. 뚜안과 같은 안타까운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단속 추방 중심의 이주노동자 정책도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유기만 전주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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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2.09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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