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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친해지기

미술관의 분위기는 새로운 전시를 위해 작품이 교체될 때 어떤 작품의 전시인가에 따라 사뭇 달라진다. 초록빛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작가의 작품을 전시할 때는 야외의 푸른 나무와 활짝 핀 꽃으로 실내·외 전체 공간이 동화되기도 하고 강렬한 원색이 기하학적으로 그려진 작품이 벽을 채울 때는 더운 여름날을 더욱 뜨겁게 달구어 놓기도 한다. 미술 작품은 일단 그 자체로 보는 재미가 있다. 정해진 내용도 범위도 없는 자유로움으로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주제와 서로 다른 이야기 덕분이다. 작품에 사용하는 재료, 표현 기법도 제각기 달라 비슷한 주제로 작업을 한다 해도 작업의 결과물은 다를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창작하는 작가들 덕분에 우리는 다양한 작품을 만나고 즐길 수 있다. 미술 작품에는 한 작가의 인생이 스며있다. 미술 작품을 통해 만나는 작가의 인생은 때로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작가의 시간이 담긴 작품집을 보면 그 작가의 과거로부터 현재의 작품까지 변화의 과정이 보인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작품 변화에는 작가의 고민과 번민의 흔적들이 함께 숨어 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인내의 시간을 거쳤을지 작가의 지나온 시간과 녹녹하지 않았던 삶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작품에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담아낸다. 그 작품을 마주하는 우리는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풍부한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지은이가 써 내려간 이야기를 읽으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 것처럼 미술 작품을 보면서도 단순한 행복감, 경쾌하게 풀어내는 과정에서 오는 유쾌함, 이유 모를 쓸쓸함, 생명력이 가득한 역동감, 가슴 깊이 차오르는 편안함 등을 경험하게 된다. 지나간 시간과 공간, 사람을 떠올릴 수도 있고, 무심코 지나온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만나기도 한다. 감정을 몰입해 작품에 집중하는 경험을 쌓다 보면 자신만의 작품을 보는 재미나 해석, 관점이 생겨 그 자체로 즐거움이 된다. 미술 작품은 일상에 쉽게 스며들어 우리의 삶을 유연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 친숙해진 아트상품도 그중 하나다. 근래 쏟아져 나오는 아트상품들은 종류도 다양하고 형식도 새롭다. 예술과 만난 생활용품의 변신도 놀랍다. 언젠가부터 미술품은 재테크의 수단이 되었다. 아트테크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미술 시장은 갈수록 확장되고 있다. 아직은 대중성을 얻어 미술 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되는 미술품들은 많지 않지만, 미술품이 투자의 수단이 되면서 그만큼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예술과 자본은 언뜻 보면 간극이 큰 것처럼 보이지만 미술 시장이 활발해질수록 작가들은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큰 힘을 얻게 된다. 미술 시장이 작가들의 창작에 역동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이다. 뜻밖의 장소에서 미술 작품을 만나게 되면 참으로 반갑다. 버스 정류장이나 마을의 벽에 그려진 그림은 누가, 언제 그렸는지도 모르지만 바쁜 일상 속 잠깐의 시선을 머물게 만든다. 그들, 무심코 스쳐 지나갔던 작품들은 우리의 삶에 틀림없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연말이 되면 그림이 실린 새해 달력을 제작하고 있다. 미술관을 찾아 직접 미술품을 감상하지 못하더라도 일상에서 그림을 가깝게 할 수 있는 경험을 늘리기 위해서다. 이런 작은 경험들이 쌓이게 되면 어렵게만 생각했던 미술도 어느 사이엔가 우리 곁에 와있지 않을까. /유가림 유휴열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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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30 16:09

타인은 지옥이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이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싸움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50이 훌쩍 넘어버린 나는, 아직도 덜 큰 것인지, 여전히 타인과의 싸움이 힘들다. 어떤 일을 하든 고비의 순간이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일이 힘들기도 하지만 사람도 만만치 않게 힘들다. 직장인들은 가슴 속에 항상 ‘사표’를 품고 산다. 물론 그걸 사장 얼굴에 확 뿌리고 나오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상상을 하며 벼랑 끝의 나를 위로한다. 유난히 힘들었던 어느 여름날, 우연히 사르트르의 책을 홍보하는 문구 “타인은 지옥이다!”에 이끌려 <닫힌 방>이라는 책을 사 보았다. 죽은 세 영혼이 지옥의 영벌을 받으러 어느 한 방에 갇히게 된다. 세 사람은 그곳에서 끊임없이 고통받게 되는데, 그 고통은 지옥의 불구덩이나 고문 같은 게 아닌 ‘타인의 시선’ 때문이다. 물리적 강제가 없음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지옥이 된다. ‘타인의 시선에 끊임없이 감시당하고 재해석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지옥 그 자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타인의 잣대로 판단하며, 자신의 주관을 잃고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는 것은 지옥이다. 등장인물 중 하나가‘지옥은 바로 타인’이라고 외치는 절규가 ‘삶은 그 자체가 고통’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법’,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나답게 살기’, ‘자신만의 길을 걷는 법’ 등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하면 수많은 글과 책, 블로거·유튜버들의 조언이 널렸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깡그리 무시한 채 살 수 있을까? 소설 후반부에, 닫힌 방은 딱 한 번 열린다. 세 명의 주인공은 서로를 지독히 혐오하면서도 방을 나가는 순간 무한한 외로움과 고독이 자신들을 덮칠 것을 알기에 그 끔찍한 타인들과 차라리 한 방에 함께 지내는 것을 선택한다.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에 내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고 재단되면서도 계속해서 타인과 교류해야만 진정으로 세상에 실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타인은 지옥이지만, 이 세상에 나 홀로 있는 공포보다는 차라리 타인과 함께하는 지옥이 덜 끔찍하지 않은가? 우리의 많은 고통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됨에도 얼마나 타인을 통해 끊임없이 내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가? 한때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열풍이 있었다. 행복은 지속적인 감정이 아니기 때문에 가장 행복해지는 방법은 ‘큰 행복’이 아니라 ‘작은 행복’을 ‘자주’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향기로운 차 한 잔이나 우연히 발견한 꽃 한 송이, 이웃의 따뜻한 목소리나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의 전화 한 통화에서 소확행을 느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작은 행복들의 상당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타인은 우리 삶에서 스트레스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지지와 위로를 제공하는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한 타인을 무시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에 내 삶을 의존한다면‘삶은 곧 지옥’이 될 것이다. 타인이 도를 넘어 내 삶을 좌지우지하려 들 때, 적정한 거리를 두고 내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침해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힘들 때일수록 서로 다독여주고 응원해 주는, ‘다른 사람에게 희망이 되어주는 타인’이 되어보면 어떨까? “타인은 지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희망이다.” /송상재 전북특별자치도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송상재 위원장은 한국노총 전북지역본부 부의장·한국노총 공무원연맹 전북본부 의장·대한지방행정공제회 예결위 위원장·전북특별자치도 상록회 생활협동조합 이사장·전북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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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23 15:33

농촌소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주말 마을이 오랜만에 분주했다. 초복을 맞아 청년회원들이 어르신들 모시고 복달임 행사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순창군 풍산면 두지마을에서는 해마다 초복이면 마을주민들이 특별한 행사를 한다. 이제는 마을 안에서 직접 식사를 준비하기에는 역부족이라 몇 해 전부터는 버스를 대절하여 밖으로 나가 식사를 하고 문화공연을 관람한다. 올해는 가까운 담양에서 풍성하게 식사를 하고 광주 전통문화관을 방문하였다. 할머니들은 고운 한복을 입고 예쁘게 사진을 찍었다. 토요일마다 진행되는 국악 공연도 관람하였다. 두지마을은 섬진강을 끼고 있는 넓고 비옥한 뜰이 있어 ‘뒤주골’(뒤주 : 쌀 따위의 곡식을 담아 두는 세간의 하나. 골 : 고을을 부르는 말)이라고 불리는 마을이었다. 너른 뜰이 가까이 있었기에 사람도 많고 꽤나 부유한 마을 중에 하나였다. 또한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해마다 당산제를 모시며 전통문화를 지켜왔던 마을이다. 그러나 급격한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젊은이도, 전통문화를 이어가며 전수해 줄 어르신도 사라져가는 마을이 되었다. 이를 지켜볼 수 없었던 마을의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야 인력으로 어쩔 수 없다지만,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것은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단, 남성 중심 제사 형식의 당산제 대신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정월대보름 행사로 마을공동체의 전통문화를 이어가기로 합의하였다. 그리하여 2013년도부터 정월대보름이면 지신밟기, 달집태우기, 깡통돌리기 등 재미난 일을 펼치고 있다. 이제는 꽤나 유명세를 타서 순창에서 뿐만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두지마을을 찾고 있다. 한편 농한기인 겨울에는 청년회가 준비한 ‘겨울문화사랑방’이 펼쳐진다. 민요교실, 아로마마사지, 의료봉사, 미용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각종 ‘인맥’을 동원하여 봉사해 줄 재능기부자를 찾는다.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겨울철에 경로당에서 심심하게 계신 어르신들에게는 기운을 드릴 수 있는 일이다. 농사철에는 새벽같이 논으로 나가시는 탓에 얼굴 뵙기도 쉽지 않아 농한기 때만이라도 젊은이들은 부모와 같은 어르신들의 식사를 챙기고 건강을 돌보고자 노력한다. 두지마을 청년회의 구성원들은 대부분이 귀농·촌인들이다. 이르게는 1980년대 후반 귀농, 귀촌이라는 개념조차 없을 때부터 식량을 생산하겠다며 이주한 젊은이부터, 최근에는 도시의 삶에 지쳐 시골을 선택한 가정까지 여덟 가구가 두지마을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모여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재미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토론한다. 4년 전에는 점점 사라져가는 마을의 모습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 ‘복작복작 재미지게 산당께’라는 마을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첫 책이 구술채록과 기고 위주의 기록이었다면 두 번째 책은 사진을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농촌이 ‘소멸’되어 간다고 말한다. 관객 또는 방관자의 언어이다. 농촌주민을 대상화한 말이고 매우 폭력적인 단어이다. 농촌주민 입장에서 달걀노른자 열 개 쯤은 삼킨 것 같이 가슴이 답답해지는 말이다. 농촌에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관망의 시각으로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 중심의 농촌정책이 만들어져야한다. 농촌을 바라보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구준회 농촌사회학연구자 △구준회 연구자는 순창 풍산면으로 귀농한 뒤 순창교육희망네트워크 사무국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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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16 16:50

생활인구, 숫자를 넘어 가치를 디자인하라

함께 일하는 팀원이 얼마 전에 함양군으로 이른 휴가를 다녀왔다. 짧은 여행부터 워케이션까지 각 지자체의 생활인구 지원 프로그램을 모아놓은 앱을 통해 지역을 선정하여 다녀온 것. 나 홀로 여행보다 안전하고 지원 혜택이 만족스러웠으며, 룸메이트와의 교류도 좋았다고 했다. 지방소멸의 대안으로 생활인구가 부상하고 있다. 생활인구란 주민등록 거주자에 통근·통학·관광 등의 목적으로 지역에 월 3시간 이상 체류하는 사람, 등록외국인, 재외동포까지 확대한 새로운 인구 개념이다. 남원시는 2023년 말에 전국 최초로 생활인구 기본조례를 제정할 정도로 생활인구를 통한 지역 활성화에 적극적이다. 필자는 올해로 3년째 생활인구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다양한 경력을 가진 서울 신중년 세대와 남원의 사회적경제기업·소상공인을 연결하여 지역 살아보기와 프로보노 활동을 결합한 투어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지역민의 필요와 생활인구의 전문성을 세심하게 매칭하여 공동의 성과를 만들어야 하기에 한 번에 30명 내외 소규모로 진행하지만, 내용은 꽤 역동적이다. 생활인구 투어 경험자들과 서울에서 합동 프리마켓을 진행하기도 했고, 담당 기업에 대한 프로보노 계획을 세운 후, 2차 방문을 통해 현장 체험을 하는 워킹홀리데이 방식을 실험하기도 했다. 이틀 동안 주최 측의 관여 없이, 기업 대표와 생활인구 참여자가 자발적으로 교류해야 하는 미션이었다. 일 체험을 마치고 공유회를 하니 사전 방문 때와는 사뭇 다른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비즈니스를 넘어 서로에 대한 정이 묻어나는 현장을 경험하고 나니 보람이 컸지만, 생활인구 사업 자체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생활인구 프로그램 추진을 할 때, 도시 참여자보다도 지역민들을 설득하고 결합시키는게 훨씬 어려웠다. 그래서 생활인구의 취지보다 SNS 홍보나 경영 컨설팅, 전문 사진 촬영 등 프로보노 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 위주로 참여기업을 섭외할 때도 있다. 지역민과 생활인구 참여자들이 교류를 진행해도 서로 간의 만족도가 항상 높고,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일회성 만남으로 끝나지는 않는 데에 반전이 있다. 투어 경험자들이 명절에 남원 제품을 소개하여 적극적으로 구매 연결을 하거나, 메가쇼 같은 대형 식품 박람회에 출점한 남원 기업을 만나러 응원 방문을 하곤 한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남원에 관심을 갖고 교류하며, 로컬기업에 프로보노 활동과 제품 구매 등을 통해 기여하는 생활인구 그룹을 ‘남원 팬슈머(fansumer)’라고 부른다. 팬(fan)과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팬심을 바탕으로 생산이나 마케터 역할까지 관여하는 팬슈머 현상을 생활인구에 대입해 본 것이다. 소멸 위기를 돌파하려는 지역들이 활력의 동력으로 대규모 생활인구 유치를 선언하고 다양한 정책을 개발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생활인구 산정 기준이 지극히 기계적이라는 데에 있다. 인구수와 구성비, 성별, 연령대, 체류 일수 등은 지역별 생활인구 기반과 가능성을 가늠하는 기초가 되어야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양적인 성과를 중심으로 지자체들이 경쟁하는 구도가 된다면 결국 더 많은 지원과 혜택을 기준으로 서울 수도권 주민들이 지역을 소비하는 구도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지역 특성에 맞춰 다양하게 생활인구를 호명하고, 지역민은 환대를 통해 상생의 가치를 함께 체득하고 만들어나갈 때 진정한 대안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최규혜 남원시공동체지원센터 사회적경제팀장 △최규혜 팀장은 남원아이쿱생협 상임이사·(사)전국귀농운동본부 편집간사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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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9 15:43

미술관의 문턱 넘기

어려서 아빠가 손에 쥐어 준 크레파스와 색연필은 내 놀이기구였고 장난감이었다. 일터로 나간 엄마의 빈자리에 자연스레 아빠의 화실에서 노는 시간이 많았던 내가 가장 가깝게 보고 만지고 익숙한 것이 그림이었다. 전북도립미술관 근처에는 유휴열미술관이 있다. 1987년 유휴열 작가(서양화가)가 작업실이 필요해 이곳에 터를 잡았고 2020년 4월, 화실 옆 기존 갤러리 건물을 개조하여 유휴열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재개관하였다. 그림과는 무관하게 빙빙 떠돌다 고향에 온 느낌으로 하나씩 하나씩 배워가는 4년 동안, 많은 작가와 전시회를 마주하며 작가와 관람자의 입장에서 새롭게 느낀 점이 많다. 작품을 보며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는데 무심코 들어왔다가 미술관임을 알고 어색해하거나 멈칫거리는 이들이 의외로 많았고 자주 들었던 말은 “그림을 볼 줄 몰라서요” 이다. 미술은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어렵고 생소하며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와 노래를 떠올리기는 쉬워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이 무엇인지 생각한다면? 이름이 알려진 작가의 작품을 마주하게 되면 발걸음이 오래 머물고 더 유심히 보게 된다. 유명하니 당연히 훌륭한 작품일 것이라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개개인의 경험과 배경에 따라 미술 작품에 대한 해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좋은 시 한 구절을 읽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처럼 색감이나 터치 혹은 전체적인 조화가 편안하다면 그게 바로 좋은 작품이 아닐까. 또한 작가가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일까 상상해보는 것은 좋지만 그것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해진 답도 없고 그 답은 내가 만들기에 달려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에 가는 재미를 스스로 찾았으면 한다. 다양한 시도를 하는 작가들 덕분에 우리가 볼 수 있는 장르도 다양하고 그 수도 넘쳐난다. 어떤 스타일의 작품이 나와 맞을지는 직접 내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껴봐야 알 수 있다. 때로는 작품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내가 이전에 경험했던 기억들을 상기시켜 색다른 즐거움을 줄 때도 있다. 살면서 경험했거나 경험하지 못했던 여러 감정들을 작품을 통해 만난다면, 그 시간들이 축적되어 어느 순간 내 삶이 풍부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은퇴 후 혹은 여가시간에 가장 하고 싶은 것이 그림이라고 대답하는 분이 많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둘러보면 이색적인 전시, 체험 프로그램이나 교양 강좌, 이해를 돕기 위한 전시 해설(도슨트)도 있고 직접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많다. 파리나 런던, 뉴욕 등 여행을 가면 평소 미술관과 친하지 않던 사람들도 꼭 들르는 곳이 미술관이다. 그곳은 오랜 시간을 통해 쌓아온 역사와 전통이 있고 흔히 말하는 유명한 작가의 작품들을 볼 수 있기도 하지만 예술이, 미술이 생활 속에 함께 녹아 살아가는 분위기가 부럽다. 언론에서는 미술 작품이 투자 수단이 될 정도로 각광을 받고 있고, 대규모 아트페어에 관람객이 몰려들어 판매액이 얼마라고 보도하지만 실상 미술 저변은 여전히 찬 바람이 분다. 특히 우리 지역은 미술 학과, 학생들도 줄어들어 젊은 작가들도 많지 않다. 척박한 환경에서 어렵게 순수미술을 고집하는 그들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림 그리는 것이, 그림 그리는 사람이 낭만적이었던 내 유년 시절의 기억은 아득하다. 되돌아보면 내 집 거실에 그림 한 점 걸려있는 집이 얼마나 될까. 미술관은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유가림 유휴열미술관 관장 △유가림 관장은 2020년 4월부터 유휴열미술관 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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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2 15:16

비 오는 날 피자를 시키면 안 되는 이유

“엄마, 오늘 저녁 피자 시켜 주세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이 저녁에 피자가 먹고 싶다고 피자를 주문했다. 그런 아들에게 나는 “비가 와서 안 돼.”라고 이야기했다. 아들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이 “왜 안돼요?”라고 묻는다. 그런 아들에게 “비 오는 날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면 미끄러져서 사고 위험이 있어. 음식을 배달하다가 사고가 날 수 있으니까, 비가 오면 배달음식을 시키지 않는 거야.”라고 대답해줬다. 아들은 그제야 이해했고, 우리는 함께 김치찌개에 밥을 먹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 플랫폼 전성시대가 되면서 비대면 거래가 확산되었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배달음식을 고르고, 결제하고, 배달원을 만나지 않아도 문 앞에 음식을 받아볼 수 있다. 예전에 가게로 직접 전화하고, 배달원에게 직접 돈을 지급하던 시절에 비하면 매우 편리해진 듯하다. 바야흐로 플랫폼 전성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편리해진 만큼, 우리는 윤택해진 삶을 살고 있을까? 지난 21일 배달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이 배달 플랫폼 주문 거부 단체행동이 있었다. 지난달 26일 배달 플랫폼 후발 주자인 ‘쿠팡이츠’가 무료배달을 시작하며, 선두 주자인 ‘배달의 민족’도 이달 1일부터 무료 배달을 시작한 것이다. 무료배달을 시행하면서 반강제적으로 도입한 정률형 요금제는 판매액의 6.8%(부가세 포함 7.48%)를 중개수수료로 가져간다. 배달비(2500~3300원)와 별도로 결제수수료 등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배달의 민족은 7월 1일부터 라이더를 이용하지 않는 포장 주문 건에 대해서도 6.8% 수수료 부과를 시작했다. 결국 자영업자들은 30~35% 정도 수익 중에서 20% 가량을 배달앱에서 가져가는 꼴이 되었다고 한다. 자영업자들은 경영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고용을 줄이거나 폐업을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5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424만2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1만4000명(-2.6%)이 감소했다. 무급가족 종사자는 1만9000명(-1.9%) 줄어들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사업자 폐업률이 9.5%로 전년 대비 0.8%포인트 높아졌고, 폐업자 수는 전년 대비 11만1000명 늘어 91만1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0.778로 세계 최하위 출생률을 기록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낳지 않은 이유 중 가장 크게 꼽히는 것이 경제적 불안정이다. 소비자의 편리함 만을 내세우며, 과다 경쟁을 부추기는 상황에서 플랫폼 기업의 막대한 이윤을 남겼지만,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가중되었다. 물론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이지만, 우리 또한, 우리의 소비 행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편리함 만을 추구하는 소비 행태가 과다한 경쟁을 부추기고, 누군가의 희생을 낳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조금만 불편함을 감내하면, 우리의 이웃의 삶과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비 오는 날은 배달 노동자가 위험할 수 있으니, 배달음식을 자제하는 것. 조금 불편하더라고 매장에 방문해서 직접 주문하고 구입하는 것. 생필품을 배달하지 않고, 동네 가게에서 직접 구입하는 것. 이러한 행동들이 우리 지역의 노동자와 자영업자를 지켜내는 행동일 것이다. 우리 이웃의 삶이 지켜질 수 있도록, 주변을 살피고 조금의 불편함은 감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효진 (사)세상을바꾸는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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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25 16:27

정여립, 세상 밖으로 복권 시키자

진안 천반산 주변에서 정여립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다. 역사적 사실과 전설이 뒤섞어 민초에게 전해진 것이다. 천반산 주변 많은 마을 주민은 정여립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분의 아버지, 할아버지로 전해진 이야기다. 천반산 정상에는 성터를 비롯하여 연단이었다는 장군 바위, 망을 본 망 바위, 훈련하던 뜀바위, 깃발을 꽂았다는 깃대봉이 있다. 이뿐인가, 수백 명분의 밥을 지었다는 돌솥, 무예를 익히게 한 시험 바위, 말바위, 마당바위 등 정여립의 이야기는 수없이 전해오고 있다. 천반산 깃대봉에 <大同>이라는 기를 꽂고 부하 장졸들이 뜀바위를 뛰어넘지 못하면 넘을 때까지 강행하고 시험 바위에서 무예를 어느 정도 익혔는가 시험을 보았다고 한다. 장졸을 모아 정여립은 장군 바위에 서서 정신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역사적 인물이 전설 속의 인물이 되어 전해온다. 역사 속의 억울하게 죽은 자가 민중 속에서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정여립의 정확한 출생지나 출생연대는 알 수 없다. 1540년 전후 전주 남문 부근에서 정희정 부부에게서 태어났다고 한다. 벼슬살이는 오래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정여립의 생각은 시대의 통념을 뛰어넘는 인물이었다. 유비보다 조조를 정통으로 삼은 사마광의 통감을 옳은 말이라 하고,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당대의 철칙을 그저 제나라 왕촉의 주장일뿐이라고 했으며, 맹자 또한 제나라와 양나라를 옮겨가며 왕도정치를 펴왔음을 지적한 바가 있다. 왕조시대에 어느 누가 이런 주장을 할 수 있겠는가? 정여립은 낙향한 뒤 금구 동곡마을에서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하여 장차 있을지도 모를 외침에 대비하고자 진안 천반산에서 군사훈련을 했다고 한다. 정여립은 선조 때 천여 명의 목숨을 잃게 된 기축옥사의 주인공이다. 반역이란 죄목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정여립이 살던 집터는 역모했기에 연못을 파서 지금은 파쏘라 부른다. 정여립의 반역은 전라도를 풍수상 배역, 모반의 땅이라 낙인찍었다. 그러나 전라도는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매우 풍요의 땅이었다. 풍요로운 땅이 타지방의 위협이 되어 전라도를 외경의 땅, 반역의 땅, 편견으로 보는 땅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의견이 있다. 반역은 민중의 공동체적인 생각으로 불의에 대한 저항이고 행동이다. 그래서 정여립의 반역은 달리 해석해야 한다. 반역은 정당한 저항, 비판, 진보의 왜곡된 표현이다. 왕조의 무능과 부패, 파렴치에 대하여 저항하는 것은 지극히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시대를 앞서는 인물의 삶은 평탄할 리가 없다. 그들은 권력을 탐하지도, 재산을 축적하지도 않았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백성이 편안하기 위한 일상적인 일도 지배층이 보기에는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반역이 되고 역사의 뒤안길에 쓸쓸히 사라지는 것이다. 정여립에 관한 연구와 평가가 다소 있었지만, 여전히 미진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여립의 출생과 활동이 관련된 시·군지역조차 관심이 미미함은 부인할 수 없다. 한 인물을 두고 다양한 모양으로 추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 제일은 인물의 생각, 사상을 정리하는 일이다. 오늘, 민주 공화정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정여립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지 모른다. 정여립이라는 인물을 새롭게 재평가하고 정신을 찾는 작업이 본격화 되었으면 한다. 정여립을 전설 속에 묻혀둘 인물이 아니다. 민중의 가슴 속에만 두어서는 안 된다. 세상 밖으로 복권 시키자. / 이상훈 (진안문화원 부원장, 전라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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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18 17:35

돌봄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의무입니다.

돌봄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건강 여부를 막론하고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고 증진하거나 건강의 회복을 돕는 행위이며, 관심을 가지고 보살핀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돌봄의 개념에는 건강, 생활유지, 회복, 돕는 행위, 보살핌 등이 주요 개념으로 등장하면서, 돌봄은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가는 속에서 돕고 보살피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돌봄에 대한 해석이 돕는 행위나 보살핌을 넘어서 전 사회구성원이 함께 고민해야하는 돌봄의무론, 돌봄선언까지 확장된 개념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니엘 잉스터가 주장한 돌봄의무론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생존, 발달, 기능할 수 있도록, 생물학적으로 긴요한 필요를 충족하고 기초 역량을 발달·유지하며, 불필요하거나 원하지 않는 고통과 고충을 피하거나 완화하도록 돕기 위해 우리가 이들에게 직접적으로 하는 모든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돌봄은 단순한 보살핌에서부터 사회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해 나가도록 지원하고 기초 역량을 가르치는 부분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해석하고 있다. 이는 돌봄이 인간과 도덕과 정의에 대한 납득된 모든 논지의 핵심(heart)에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타인을 돌봐야 하는 의무를 받아들여야 하며 그러한 의무를 기반으로 더욱 깊이 있는 성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돌봄사각지대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영국의 돌봄 단체 더케어 켈렉티브가 주장한 돌봄선언은 상호의존의 정치학을 기반으로 돌봄의 문제를 풀어나가야 함을 말하며, ‘돌봄선언’ 저자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해지도록 신자유주의 질서 체제에 강요되어 왔고, 그 결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마저도 돌보지 않아도 된다고 부추김을 당하면서, 가장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역량마저 위축되었음을 지적한다. 또한 저자들은 한나 아렌트의 잘 알려진 용어를 빌려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무관심이 구조적 수준의 ‘평범함’에 젖어들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런 과정에서 ‘돌봄’은 사회적 역량이자, 복지와 번영하는 사람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보살피는 사회적 활동이다. 무엇보다도 돌봄을 중심에 놓는다는 것은 우리의 상호의존성을 인지하고 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돌봄을 돕는 행위와 도와주는 행위에만 머무르고 있다. 돌봄은 돌봄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 정도로 인식하여 돌봄정책이 사람들 사이에서 깊은 성장을 하기에는 많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필자가 최근에 등장한 돌봄의무론과 돌봄선언의 개념을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의 돌봄은 단순히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타인에 대한 측은한 관심의 정도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우리 안에 돌봄은 여전히 개인적인 문제에서 출발하지만, 타인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 상호성을 가지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초이고 사회적 기술훈련이며, 의무를 기반으로 하는 활동으로까지 광범위하게 이해했으면 한다. 또한, 초고령화 시대를 목전에 둔 우리 사회가 돌봄이 사라진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적어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돌봄 없는 세상에서 배제된 채로 살아가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부족함을 잘 받아들이면서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길 바라고, 돌봄을 통한 사람들 간의 연결이 확대되어 함께 누리는 행복한 돌봄사회로 나아가길 희망한다. /서양열 전북특별자치도사회서비스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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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11 16:56

발칙한 상상 6 - 이민 사회를 준비하라

합계출산율이 0.7명 이하다. 어른 세 명이 아이 한 명을 낳아 기른다는 의미다. 어떤 학자는 백 년이 안 되어 지도상에서 한국인에 의한 한국은 없어질 거라 경고한다. 한국 여성들의 출산 파업이 장기화되고 젊은 남성들이 동조 파업에 나서니 당분간 좋아질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수백조 원을 수십 년간 쏟아부어도 소용없다. 젊은 세대들이 죽자고 아이를 낳아 키우지 않으니 경제 전반에 걸쳐 우하향 추세가 한층 빨라져 경제가 무너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앞으로 잠재성장률이 바닥을 뚫고 지하실로 접어들 일만 남았다. 시간이 없다.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세계 최강국 미국은 이민자들이 만든 나라다. 아직도 진입장벽이 높지만 이민에 의해 활력을 얻는 사회다. 늙어가는 유럽도 마찬가지다. 인종과 종교의 다양성, 사고의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사회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융합하는 가운데 통합의 길을 향한다. 노동시장과 종교, 인종 갈등이 산발적으로 일어나지만 이는 성장하기 위해 치르는 피할 수 없는 성장통이다. 이 거대한 여정은 시끄럽지만 한 국가의 발전 동력이 된다. 이제 한국은 피할 수 없이 멸망이냐 유지냐 둘 중 하나만 있고 제3의 길은 없다. 어쩔 수 없다면 개방적인 이민 정책를 수용하는 데 있어 경제와 문화 등에서 한국의 위상이 최고에 이른 지금이 최적기다. 시든 과일을 비싼 값에 사갈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성숙한 이민 사회를 선제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을 가기 위한 우리의 준비는 어떠한가? 한국이 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면서 각종 갈등과 마찰이 예상된다. 이민자가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적응・자립하는데 필수적인 언어 교육, 직업 훈련, 문화 교육 등의 기본소양을 함양할 수 있도록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 효과가 미미하다.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고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있는 한국 사회의 원주민들은 규범적으로 외국인을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구체적인 관계 맥락에서는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는다. 또한 현재 한국의 이민정책은 이주노동자에게는 배제지향의 정책프레임이 작동하고 여성 결혼이민자에게는 동화지향의 정책프레임이 작동하여 모순을 드러낸다. 이런 조건에서 성공적인 다문화 사회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타문화에 대한 존중이 우선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제안으로는 ‘차별금지법’ 제정, 그리고 이민 관련 전담 기구인 ‘이민청’ 설립을 통해 다문화 사회의 토대를 쌓는 것 등이 거론된다. 노동시장의 요구와 이민정책을 연계해야 하며, 이민자들의 법적 보호와 인권 존중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이민자와 현지 주민간 상호 이해를 촉진하는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이 필요하다. 이민자들이 돈 벌어 본국에 송금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발전에 기여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슬람 사원 건축을 반대한다고 노골적으로 길을 막고 돼지고기 파티나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걱정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긴 시간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한 이민정책의 변화를 꾀해왔다. 이제는 우리도 한국의 특정 상황과 요구를 고려하여 전향적인 이민정책을 마련해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시간은 별로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문상붕 도서출판 파자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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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04 15:51

우리 농업 지키기, 소비자의 연대가 필요하다.

“농사지어서는 먹고 살 수가 없으니까” 필자의 지인 중에 농사 기술이 매우 뛰어난 청년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경운기 운전을 했다는 이 청년은 농기계를 잘 다루고, 농작물에 대한 지식도 풍부하다. 부모님이 농지를 승계받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농사짓는 행위를 매우 좋아한다. 농사는 이런 친구가 지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농사라는 직업이 잘 어울리는 청년이다. 그런데 이 청년은 현재 다른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농사를 지어서는 먹고 살 수 없다는 게 그의 답변이다. 지난 24일 통계청이 배포한 ‘2023년 농가 및 어가 경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농가소득은 5000만8000원으로 전년보다 467만5000원(10.1%) 증가했다고 한다. 언뜻 보면, 농가소득이 증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농가소득이란 농가에서 1년간 벌어들인 모든 소득으로, 농사만으로 얻는 ‘농업소득’뿐 아니라 겸업·이자 수입 등을 통한 ‘농외소득’, 직불금·기초연금 등 보조금에 의한 ‘이전소득’, 경조금 등 비정기적으로 발생하는 ‘비경상소득’이 포함된다. 실제로 전년도 농가 소득 중 농업소득은 1114만3000원에 불과했다. 더 큰 문제는 농가 부채는 더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농가 평균 부채는 4158만1000원으로 전년 대비 655만9000원(18.7%)이나 상승했다. 결과적으로 농가 자산은 6억 804만3000원으로 전년 대비 842만4000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민은 삼중고를 겪는다고 한다. 첫 번째 고통은 생산의 어려움이다. 기후 위기로 농업 생산의 불확실성이 높아져서 베테랑 농사꾼도 안정적인 품목과 생산량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두 번째 고통은 생산비 증가이다. 전 세계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라 농업 생산에 필요한 농자재값도 지속적으로 올라 농산물 생산 비용이 크게 증가했다. 세 번째 고통은 농산물 가격 불안이다. 복잡한 유통 단계로 농산물 가격의 불확실성이 높아졌고, 농가의 수취 가격이 매우 낮아졌다. 이런 환경 탓에 아무리 뛰어난 농사꾼도 버텨내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 농업은 국민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가장 근간이 되는 산업으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하는 일이다. 그런데 농민의 숫자는 점점 줄어 전체 인구의 5%에도 미치지 못하고, 곡물 자급률은 20% 이하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제 농업은 농민 만의 문제가 아닌 국민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대로 농업을 지키는 실천 운동의 하나가 ‘로컬푸드’ 이다. 로컬푸드란 지역에서 생산된 먹거리가 장거리 수송과 다단계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 지역에서 소비됨을 의미한다. 로컬푸드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기존 농산물 유통 구조의 폐해 극복하고자 하는 실천의 시작이다. 생산자에게는 정당한 몫을, 소비자에게는 안전한 먹거리를 공정한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 로컬푸드의 핵심 가치이다. 로컬푸드를 자주 이용하는 지인은 본인이 10년째 로컬푸드 단골이라면서 자랑스럽게 자신의 소비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러한 실천을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농업을 지켜내는 연대가 튼튼해지길 바란다. 농민이 농사지으며 안정된 삶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우리의 먹거리 미래도 보장받을 수 있다. /이효진 (사)세상을바꾸는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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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28 17:16

진안과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오랫동안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총 12권으로 완성된 국내 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는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 와 ‘다시 금강을 예찬하다’라는 북한 문화유산 답사기도 포함되어 있다. 최근에는 일본, 중국 편까지 출간되었고 인기는 여전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우리 문화유산을 대중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고 유홍준 선생은 아주 막강한 문화 권력을 쥐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책이 되었다. 국민은 답사 지침서가 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들고 우리나라 곳곳의 문화유산을 찾아 열광했다. 당시 답사 열풍은 가히 강력한 태풍급이었다. 그런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두 권째를 읽으면서 무척 속이 상했다. 정확하게는 자존심이 상했다. ‘옛길과 옛 마을에 서린 끝 모를 얘기들’ 편에 실린 글 때문이었다. 완주, 진안지역 사람들이 읽게 되면 누구라도 속이 상할 것이다. 유홍준 선생은 수많은 지역을 답사하면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설명하여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그런데 완주, 진안지역을 지나면서는 유독 좋지 못한 기억만 되뇌고 무진장을 지나갔다. 유홍준 선생은 함양·산청을 답사하는 길에 완주군 소양면 화심을 지나면서 ‘가든’이 즐비하다면서 비웃었고, 무진장을 지나면서는 더욱 넋두리가 심해진다. 모래재는 사뭇 길이 험하다 하면서 사고가 잦다느니, 두 번의 답사 실패를 무진장에 눈이 많이 내린 데에서 그 연유를 찾고 있다. 다른 계절에 올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무진장’이란 말을 사용하기 위해 별일을 다 끌어들인다. 지금은 4차선 국도와 고속도로가 뚫려 전혀 다른 길로 진안을 오가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경치가 좋은 모래재를 이용하면서 낭만과 추억에 잠기곤 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내용 중 가장 압권인 부분은 아주 어두웠던 시절의 캄캄한 시골 동네 이야기라며, 1972년 11월 유신헌법 찬반투표에서 무진장 지역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여 주었다고 소개하는, 그 대목은 이렇다. “내가 잊지 못할 무진장의 또 다른 추억은 1972년 11월 유신헌법 찬반 국민투표 때 일이다.…… 무진장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여 주었는데, 투표율은 자그마치 103%였다. 무진장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그 캄캄했던 시절의 캄캄한 시골 동네 얘기가 이제는 캄캄한 옛이야기로 전설이 되어서 들려온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18쪽. ‘무진장’이란 단어를 사용하기 위하여 순박하게 살아가는 무진장 사람을 조롱하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참으로 자존심 상하는 글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수백만 독자가 이 대목을 읽었을 터인데, 그 독자들이 전북 무진장 지역을 어떻게 생각할까 끔찍하다. 캄캄했던 시절이라 하지만, 무진장 지역은 순진함을 넘어서 미개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대목이다. 기회가 된다면 유홍준 선생과 출판사에 개정판을 낼 때 새롭게 기술할 것을 제안한다. 반드시 개정되기를 바란다.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으로 묶어진 선거구는 유신헌법 찬반 투표가 아닌 당시 국회의원 선거구다. 그리고 진안군 최신 자료를 종합화한 <진안군 향토 문화 백과사전>에 의하면, 1972년 11월 21일 선거에서 진안군은 투표인 수 4만4306명, 투표수 4만 1408명 투표율 93.5%라 기록하고 있다. /이상훈 (진안문화원 부원장, 전라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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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21 18:08

노(老)-노(老)학대의 시대,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보건복지부는 2020년부터 노인학대 예방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노인학대 예방은 대국민 인식개선에서 출발하여 가정 내 학대 예방과 시설 내 학대 예방을 의미하며, 이 정책은 노인학대 조기 발견을 위한 신고 앱과 신속 대응을 위한 신고 의무자 직군 확대 등 노인학대 발굴 체계를 다양화시켰다. 이와 동시에 AI 모니터링 기반 비대면 사후관리 사업을 확대했으며 ICT 모니터링 기기를 활용하여 상시적인 안전 확보를 주도하였다. 또한 노인복지법 개정에 따른 학대 행위자 대응 체계 강화를 위한 교육 및 상담으로 재학대 비율이 전국적으로 7%가 감소하는 등 의미 있는 성과를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노인학대 신고는 5년간(2018~2022년) 매년 평균 8.14%씩 증가하는 추세이며, 우리 전북특별자치도 또한 10.32%로 전국 평균에 비해 2.18%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이 중 가정에서 발생한 학대 사례가 10년간 평균 87%에 이른다. 그동안 노인학대 예방 대책에 대하여 현장이나 학계에서 여러 대안을 제시하고 보건복지부는 정책적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노인학대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에는 학대 행위자 또한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노인보호전문기관이 설치된 이래 17년간 학대 행위자 1순위가 아들이었으나 2021년부터 아들에서 배우자로 전환되고 있다.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평수 수명의 증가로 인해 부양 의존도가 높은 고령인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더해 자녀들의 부양에 대한 인식의 부재와 함께 노(老)부부만 살아가는 세월이 갈수록 길어진다는 것을 핵심적인 원인으로 보고 있다. 학대 행위자의 변화는 노인이 노인을 부양해야 함으로써 발생하는 심리·사회적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는 가운데 배우자에 의한 학대 즉, 노(老)-노(老) 학대가 현실화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우리도(道) 또한 2022년부터 학대 행위자 1순위가 아들에서 배우자로 바뀌면서 노인이 노인을 학대하는 상황을 전국 추세와 맞물려 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노(老)-노(老) 학대를 노인만의 문제나 폭력의 범주 내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회적 고립과도 맞닿아 있음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사회적 고립 예방을 위한 사회적 지지체계와 자원의 활용을 연계하는 것이 노인의 안전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노인학대 발생을 예방할 수 있는 기본적 접근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전·후기 노인에 대한 지역사회의 돌봄 강화와 다기관 협력과 연대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노인을 보호한다.” 정도로는 노인학대와 노(老)-노(老)학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 노(老)-노(老) 학대에 있어서 행위자를 가해자라고 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피해자일 수 있는 노인을 생애적 관점에서 보다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하는 등에 대한 적극적인 대안 마련이 모색되어야 한다. 더불어 노인이, 지역사회에서 보통의 일상을 지킬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우리 기성세대가 그분들의 학대 상황에 대한 “슬픔과 온전한 바라봄”이 있어야만 노인이 노인을 학대하는 문제가 다소나마 해결되지 않을까 고민해 본다. 의존적 인간에게 함께 돌봄은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선택임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 /서양열 전북특별자치도사회서비스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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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7 15:49

발칙한 상상 5 - 분노하라구

시인 김수영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오십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옹졸하게 욕을 하고 ”<하략> 하마스의 도발을 명분 삼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에 대한 학살이 도를 넘었다. 인종청소 수준의 무차별 학살로 이미 34.000여 명이 죽었다. 그중에는 수만 명의 어린이와 여성이 포함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이런 만행 뒷배에는 미국이 있다. 무차별 학살에 대해 입으로는 비난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원조는 여전히 수조 원에 이르고 있다. 지배층 상당수가 유대인이어서인지 미국은 팔레스타인의 유엔 활동과 유엔 안전보장이사국들의 각종 합리적인 휴전결의안을 거부권을 통해 철저히 막고 있다. 그런 미국이 세계 인권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한다. 어불성설의 극치다. 원칙대로라면 핵 개발과 팔레스타인 탄압과 같은 그간 행위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유엔의 제재를 수백 번 받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이제까지 이스라엘이 유엔의 제재를 받았다는 사실은 들어본 기억이 없다. 다행인 것은 미국 청년 대학생들이 이에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이스라엘은 시리아에 있는 이란 영사관을 폭격하는 바람에 상호 보복으로 중동 전체를 전쟁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이에 국제유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물가는 내려올 줄 모른다. 그 덕분에 우리 국민은 영문도 모른 채 고환율과 고물가로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의 외교적 입장은 여전히 애매모호하다. 메이저 언론도 마찬가지다. 조국 일가의 표창장 위조에 대해서는 수개월 동안 지치지도 않고 떠들더니 정작 국민의 삶을 그늘지게 한 이스라엘의 행태에 대해서는 양으로 보나 질로 보나 꿀 먹은 벙어리다. 왜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해서는 그토록 관대한지 모르겠다. 소위 진보단체나 입 바른 대학생들도 공정, 동물권, 여성 인권 등에 대해서는 그토록 목소리 높이면서 정작 이스라엘의 학살에 대해서는 역시 큰 반응이 없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학살에 동조하는가? 힘없는 팔레스타인은 죽어도 좋다는 말인가? 입장을 바꿔, 조선 사람이 일제에 의해 남의 일이라고 무관심 속에 무참히 학살당해도 좋단 말인가? 판다 한 마리 중국에 보내는 것 가지고 떠들썩한 방송국들이나 울고불고하는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어린이의 시체를 보고 울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없다. 봉쇄로 굶어 죽는다고 호소하는 가자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단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국내로 돌아보면, 일부 의사 집단의 태업이 3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사람의 생명을 볼모로 한 집단행동에 대해 사람들은 속으로 부글부글 끓지만 행동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화물자동차 파업에는 그토록 강하게 린치를 가하던 정부와 언론이 정작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의사의 집단행동에는 미적지근하다.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면모를 보여준다. 자는 일정해야 자로서 기능을 한다. 잣대의 눈금이 오락가락하면 그건 자가 아니다. 고무줄은 자가 절대 될 수 없다. 침묵은 죄다. 우리의 침묵은 그들에게 면죄부를 준다. 이제는 분노해야 한다. 분노하지 않으면 그들은 우리를 개돼지로 취급할 것이다. 분노는 힘이고 거대한 파도다. 파도가 쳐야 바다가 살고 만 생명이 산다. 우리는 대체 어떤 일이어야만 분개하는가? /문상붕 도서출판 파자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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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30 15:09

농촌에 사는 소외의 극복... 공동체 기반 경제·사회서비스 활성화가 해법

“채소 사려면 두시간... 농촌 식품 사막화가 우려된다.” 최근 한 뉴스에서 다루어진 농촌 마을의 현실이다. 이 마을의 유일한 가게에서 파는 먹거리는 라면과 과자, 조미료 정도가 전부이다. 손님이 적어 유통기간이 짧은 우유나 채소는 아예 판매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고령의 주민들이 채소를 사려면 10km 이상 떨어진 다른 지역 마트에 가야 하는데, 버스를 타고 2시간 가까이 가야 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식품 사막화 현상이 우리 농촌 곳곳에 발생하고 있다. 비단 먹거리 구매뿐만이 아니다. 각종 생활서비스도 부족해 지고 있다. 2022년 한국농촌연구원에서는 '인구감소 농촌 지역의 기초 생활서비스 확충 방안'보고서에서 인구감소에 따른 농촌 면(面) 지역 생활서비스 임계 인구를 조사했다. 임계 인구는 612개 인구감소 면 지역에서 2010년~2020년간 폐업한 기초생활 시설들을 추출하고 시설별로 폐업 시점 인구 중위값으로 산출한 값이다. 이 결과에 따르면, 병원은 3,205명 약국은 2,604명 식당은 1,882명 목욕탕은 1,743명이 임계인구이다. 인구 천명이 무너지는 면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인구 부족으로 최소한의 일상 생활서비스 조차 부족해지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사회서비스 문제도 마찬가지다. 2019년 보건복지부에서 발행한 노인돌봄시설 현황에 따르면 지역별 노인 하루 생활 반경(2km) 내 최소 1개의 돌봄 시설이 위치할 확률 평균을 조사했다. 재가노인복지시설이 존재할 확률은 일반시·자치구가 94.3%지만, 군 지역은 17.33%에 불과했다. 장기요양 기관도 일반시·자치구가 99.2%로 거의 100%에 근접하지만, 군 지역은 60.7%에 불과했다. 장애인의 서비스 이용 현황도 양상은 비슷하다. 2013년 전국 성인 발달장애인 복지서비스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도시 지역의 발달 장애인의 주간보호, 활동 지원 등의 서비스 이용률이 32.8%에 달했지만, 농어촌 지역은 18.7%로 절반에 불과했다. 이처럼 농촌 지역은 생활서비스와 사회서비스가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여 삶의 질이 떨어지고, 이는 또 탈농촌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시장 논리에 의해 소외된 농촌 지역의 삶의 질을 회복하는 방법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 전남 영광군에 지역 어르신을 두루 살피는 여민동락 공동체가 있다. 여민동락 공동체는 사람, 지역사회, 자연이 조화로운 자주와 공생의 농촌공동체를 지향하며, 2007년부터 영광군 묘량면에 터를 잡았다. 2011년 지역에 마지막 남은 가게가 폐업한 것을 계기로 마을기업 동락점빵을 만들었다. 농촌 주민들에게 생필품 공급하기 위해 42개 자연마을을 찾아가는 이동 점빵 차량을 운영하고 있다. 동락점빵은 생필품을 공급하는데 그치지 않고, 매주 어르신들의 안부와 건강을 살피는 일을 하고, 지역 내 복지 서비스가 필요한 곳에 연결되도록 한다. 주거 환경을 살펴 집수리 사업과 연계하기도, 식생활을 살펴 반찬나눔 사업으로 연계하기도 한다. 먹거리, 생활서비스, 복지, 주거 등을 넘나들며 종합적으로 주민을 살피고 있다. 농촌에는 전문적이고 세분화된 서비스 제공이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공동체 방식의 통합적 서비스 제공이 적절하며, 이것을 수행할 수 있는 조직은 지역사회에 기반한 공동체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농촌의 공동체 기반 경제·사회 서비스를 촉진하기 위한, '농촌 경제·사회 서비스 활성화 지원센터'가 전라북도에서 착공식을 가졌다. 센터는 농촌의 부족한 경제·사회 서비스 보완을 위해 지원 계획을 수립하고, 기부금 등 재원 확보, 서비스 제공 주체 육성 등을 수행하는 전국 단위 지원 기관이다. 농촌 현장의 욕구가 간절한 상황에서 센터가 설립되는 만큼, 현장을 든든히 지원하는 기관으로 발돋움 하기를 기대한다. /이효진 (사)세상을바꾸는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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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23 15:23

미처 몰랐던 제비에 관하여

요사이 우리나라 어디서든 제비를 관찰할 수 있다. 그만큼 많은 제비가 우리 주변에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제비는 제비집에서 일상생활을 하지 않는다. 제비에게 제비집은 알이 부화하고 새끼를 키우는 자궁과 같은 곳이다. 새에게 있어 둥지는 그래서 매우 소중한 장소가 된다. 제비집 아래 쌓인 똥은 부모 제비의 것이 아니라, 새끼 제비가 크면서 본능적으로 집 밖으로 똥을 싸게 되어 쌓인 것이다. 새끼 제비가 커서 집 밖으로 나서면 그때부터 제비집은 빈집이 된다. 7∼8월경이면 소재지나 마을에서 제비를 볼 수 없다. 제비는 남녘으로 떠난 것이 아니라 풀숲에서 잠을 잔다. 그곳을 잠자리 터(보금자리 터) 한다. 한 달가량 지속되는 잠은 남녘으로 떠나기 전 힘을 비축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 제비가 남녘으로 떠날 무렵 제주도에 잠시 머물다 가는데 10만 마리 정도가 모인다고 한다. 제비는 새끼를 키워 함께 남녘으로 떠난다.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겨울을 보내고 다시 찾아온다. 음력으로 삼월 삼짇날 무렵에 어김없이 찾아온다. 제비는 귀소(歸巢) 본능이 있어 자신의 둥지로 다시 찾아오는데, 사람이 살지 않은 집에는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제비가 둥지를 틀 때는 아무렇게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제비가 집을 짓기 전에 부부 제비 중 한 마리가 날아와서 집의 처마가 마음에 든다 싶으면 처마 밑에 표시를 한 후 같이 둥지를 짓기 시작한다고 한다. 이때 집주인의 성품도 관찰하는데 인상이 좋지 않으면 다른 집에 둥지를 짓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제비는 이렇게 만든 기존 집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해서 집을 보수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집을 증·개축하여 새끼를 키울 보금자리를 만든다. 심지어는 기존 집을 방치하고 집 가까이에 새롭게 짓기도 한다. 특히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에 제비집을 짓는다. 제비는 절대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에 집을 짓지 않는다. 제비는 인간과 아주 가까운 조류다. 우리나라에 제비와 관련된 속담이 무척 많은데, 하나같이 긍정적인 내용이다. 그리고 다른 조류와 달리 인가(人家)에 둥지를 틀고 살아간다.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호해 줄 것으로 믿는 것 같다. 마치 흥부전에서 새끼 제비가 둥지에서 떨어지자 흥부가 보호해 준 것처럼 말이다. 실제 주민에게서 떨어진 새끼 제비를 둥지에 넣어 주었다는 이야기는 쉽게 들을 수 있다. 사람이 사는 주변에 둥지를 틀면 고양이, 뱀, 구렁이 등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제비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아 보호해 주면 복을 받는다는 인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흥부전은 이러한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하여 구성한 작품이다. 요사이 농산어촌뿐만 아니라 도시 변두리까지도 제비가 찾아온다. 우리 곁을 떠나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과다한 농약사용, 도시화, 산업화로 인한 주변 환경 악화에 있다. 그런데 다시 제비가 찾아오는 이유는 제비가 살만한 곳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예전에는 지나칠 정도로 논에 농약을 많이 했으나 요즘 벼농사는 거의 농약을 하지 않은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땅이 비옥해지고 주변 환경이 청정해졌기에 제비가 찾아오는 것 같다. 이중환은 『택리지』 복거총론에서 살만한 주거 입지의 조건을 지리(地理), 생리(生利), 인심(人心), 산수(山水)의 네 가지로 제시하였다. 제비가 찾아오는 것은 복거총론에서 제시한 4가지 요소를 갖춘 곳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상훈 (진안문화원 부원장, 전라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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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16 18:07

우리 안에 있는 노인에 대한 혐오를 거둬야 한다.

노인 인구 천만 명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노인 인구 천만 명 시대에 우리는 노인과 노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노인이 되는 것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이며, 잘 늙어간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잘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 안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고 있을까? 최근에 발생한 노인과 관련한 한 가지 사건과 두 가지 영화 속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노인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첫 번째 사건은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문제이다. 그동안 노인에게 제공하던 지하철 무임승차를 폐지하자고 모 당의 대표가 제안했다. 노인이 지하철을 많이 타기 때문에 지하철이 장기 적자에 시달린다는 이유이다. 과연 그럴까? 평소 오랜 세월을 어르신들과 보내온 나로서는 어르신들에게 이동권의 문제는 그리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두 번째는 ‘플랜75’라는 일본 영화의 이야기다. 플랜75는 인구의 절반이 노인이 된 가까운 일본의 미래를 담고 있다. 인구 절반이 노인인 일본에서 청년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일본 정부는 75세 이상 국민의 죽음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 ‘플랜75’를 발표한다. ‘국가가 국민에게 죽음을 권한다.’라는 영화적 상상력은 단순히 영화적 상상력만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 안으로 준비 없이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세 번째는 황야라는 영화 이야기다. 지진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죽고 죽어가는 정글과 같은 삶을 살아간다. 생존이 최고의 선이 돼버린 “파괴 된 사람 숲” 안에서 제일 먼저 제거 대상이 되는 사람은 병들고 쓸모없는 노인이다. 세 가지 상황 모두 노인은 낭비이고, 쓸모 없어져서 정부가 적절한 방식으로 지원해 주면 되고, 적당한 시간이 되면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 표현되고 있다. 심지어 플랜75라는 영화에서는 청년들의 삶을 방해하는 우리 공동체 안에서 훼방꾼으로 묘사하고 있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우리 안에서 노인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혐오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확산하고 있다. 노실버존, 노인네, 틀딱충, 할매미, 연금충 등과 같은 노인에 대한 극단적인 단어들이 늘어가고 있다. 왜, 노인 혐오는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을까? 국가인권위원회 노인인권 종합보고서는 경제적 부양 부담과 세대 간의 갈등을 노인혐오 촉발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노인인권종합보고서는 청장년층의 80% 이상이 노인과 청장년 간 대화가 통하지 않고, 노인과 청장년 간 갈등이 심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결국, 노인에 대한 혐오을 부추기는 핵심적인 원인이 세대간의 갈등, 부양 부담으로 인한 경제적 문제를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결국, 노인 혐오는 우리가 살아온 세상에서 우리가 만들어 온 결과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인혐오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 내에서의 성숙한 정책대안 마련을 시작해야 한다. 모두가 늙어가는 사회에서 노인이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한 사회를 이끌어온 선배 시민으로서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대안과 실천, 노인과 노화에 대한 이해 교육, 베이비부머 시대의 등장과 더불어 세대공감 형 노인문화 등의 확산이 노인 혐오를 줄이는 시작이 될 수 있다. 노인 혐오가 늘어가는 사회는 모두가 불행한 사회임을 우리 모두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서양열 전북특별자치도사회서비스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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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02 17:32

발칙한 상상 4 - 전주교육대학교를 제2한예종으로

지방소멸 가속화로 전라북도는 최악의 위기에 접어들고 있다. 젊은이들은 떠나고, 남아 있는 중장년은 타시도에 비해 자산이 적어 성장동력이 없다. 지금이라도 당장 공공부문에서 흘러 나오는 예산이 없다면 전북의 경제는 파산할 것이다. 무진장의 경우는 공공영역에 의존하는 비율이 70%를 넘고, 전주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크게 다르지 않다. 한때 조선팔도에서 5대 도시에 들었던 전주가 이처럼 쪼그라든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정치계와 관의 구태의연한 행태에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정과 관 모두가 조직 유지에만 신경 쓴 나머지 혁신적인 정책 개발이나 수행 의지가 없다. 전주하면 떠오르는 것이 겨우 한옥마을 하나이다. 최근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사용하라 했더니 지자체 모두가 비슷한 용도의 건물만 지어대니 오히려 나중엔 유지관리에 돈 먹는 하마가 될 가능성이 크다. 상상력이 없는 정과 관의 머리 속에는 따라하기, 베끼기에만 몰두해 반짝 효과만 낼 뿐 시설은 그대로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가르칠 학생이 없다. 신생아가 읍면에서는 1년에 한두 명 태어난다. 학령인구수는 갈수록 줄어 10년 전만 해도 년 50만 명 정도였던 신생아 수가 몇 년간 20만 명 초반대를 기록하니 20만 명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10년 전만 해도 교대 입학하면 거의 다 교사로 임용되었기에 높은 인기로 고등학교 상위 5% 이내 학생만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교대도 저출산 때문에 문 닫을 일만 남아 있다. 가르칠 학생이 없는데 교사 수요가 지금 같겠는가? 이 기회에 전주 교대는 전북대 사범대와 통폐합을 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그 교대 부지는 새로운 학교로 거듭나야 한다. 그 길은 제2한국종합예술학교 설립이다. 최근 한국은 문화적 역량이 세계에 빛나 K-Cultuer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미용, 음악, 드라마, 음식 가릴 것 없이 약진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할 인재들이 필요한데 이때 대규모 종합예술학교 설립으로 통섭적이고 융합적인 교육과정 운영과 영역간 활발한 상호 교류를 통해 창의적인 젊은 예술인들을 대거 기르는 것이다. 유입된 창의적이고 멋진 젊은 예술가들이 캠퍼스와 전주 시내 거리를 누비고 다닐 때 전주는 더 젊어지고 활기차게 될 것이다. 마침 전주는 완판본과 판소리 문화의 정수를 지닌 전통의 도시다. 예술 감수성이 높은 도시이자 외부인에 대한 텃세가 없는 도시다. 맛과 멋의 전주는 교대 부근에 서학예술마을 공동체와 한옥마을, 한벽당, 국립무형유산원, 평화의 전당 등 많은 공연시설과 크고 작은 전시공간, 그리고 풍부한 인적 인프라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 좋은 자원들이 따로 놀고 있어 시너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예술학교 학생과 교직원, 그리고 지역 예술인들이 함께 한다면 전주는 한국의 애든버러가 될 것이고, 한국의 뉴욕이 될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전주인가? 학교가 없어지는 것은 추억과 역사가 사라지는 슬픈 일이다. 동문과 재학생 모두 상실감이 클 것이다. 그러나 차츰차츰 소멸되느니 더 크고 새로운 학교로 거듭나는 것이 대승적이다. 전주와 젊은이들의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다만 걱정되는 교직원들의 고용인데 이는 교양과정 운영과 전북대 통합 등으로 안정되는 길 또한 크게 열려 있다. 차분히 생각해볼 일이다. /문상붕 도서출판 파자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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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3.26 19:07

‘오마카세’ 열풍과 ‘빈자의 식탁’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오마카세’ 열풍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오마카세는 일본어로 ‘맡긴다’는 뜻으로, 손님이 메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방장이 그날의 재료를 보고 적절한 요리를 알아서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값비싼 코스 요리로 알려지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상에서 ‘인증’이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메뉴도 한식과 중식까지 다양해지고, 1인 30만원의 코스도 예약이 꽉 찰 만큼 여전히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반편, 한쪽에서는 ‘빈자의 식탁’이 이슈가 되고 있다. 국내 한 신문사에서 2021년 연재했던 ‘빈자의 식탁 : ’선진국‘ 한국의 저소득층은 무엇을 먹고 사나’는 잔잔한 울림을 만들어 냈다. 매일 라면만 올라오거나, 일주일 중 사흘을 소면에 설탕만 뿌린 ‘설탕 국수’를 먹은 사람도 있었다. 이 기획에서는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어도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음식을 먹는 사람들에 주목했다. 경제 성장에 따라 줄었지만, 경제적인 양극화 심화로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충분히 먹지 못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 포럼의 발표에 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5.4%는 먹고 싶어도 경제력 등 여러 이유로 해당 식품을 구매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2023 FAO 한국협회에서 배포한 세계식량통계연감에 따르면 2021년 전 세계건강한 식단 비용 추정치는 구매력 평가(PPP) 환율 기준 하루에 1인당 3.66 달러로 2020년 대비 4.3% 상승했다. 2020~2021년에 북미·유럽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건강한 식단 비용이 5% 이상 상승했는데, 이는 식량 인플레이션이 심화에 따른 것이다. 2021년 전 세계 인구의 42% 인 31억명 이상의 사람들이 건강한 식단을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력으로 인한 식품 구매력 감소는 영양섭취 부족으로 이어졌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하는 한국의 인권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70세 이상 노인의 영양섭취 부족자 비율이 19.9%에 달했다. 전년도인 2019년 18.9% 보다 1% 증가했으며, 2015년 10.2%에 비하면 무려 17.5에 비하면 9.7%나 증가한 것이다. 소득수준별로 살펴보면 소득수준 ‘하’의 영양섭취부족자 비율은 18.9% 이다. 이는 지난해와 돌일하나 5년 전인 2015년 14.7%에 비하면 4.2% 증가한 수치 이다. 경제가 성장하고 있지만, 취약 계층의 먹거리 질과 영양상태는 더 나빠진 것이다. 우리는 취약 계층의 건강 및 인권 증진을 위해 ‘먹거리 돌봄’에 주목해야 한다. 먹거리 돌봄은 시혜·자선적 차원의 선별적 식품 제공이 아닌 보편적인 인권 차원의 먹거리 보장으로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지역 농업과 지역 사회 연계를 모색해야 한다. 지역 단위로 먹거리 돌봄 시스템을 위한 협력적 거버넌스가 확대되어야 한다. 특히 공공의 관점에서 먹거리를 바라보고, 지역과 농업 그리고 사람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범적으로 추진했던 대학생 1천원의 아침밥 사업, 농식품 바우처 사업, 임산부 친환경 농산물 지원 사업 등이 그 맥락에서 지속되고 확대되기를 바란다. 누구나 안정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먹는 지역, 전북특별자치도를 꿈꾼다. /이효진 (사)세상을바꾸는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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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3.19 15:35

기후 위기 속 마을숲

올해 2월에 매화며 산수유 그리고 개나리, 꽃잔디꽃을 볼 수 있는 것은 이제 특별하지 않다. 기후변화는 기후 위기를 말한다. 기후 위기는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다. 일기 예보에 의하면 3, 4월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이 40~50% 이상일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당연히 올여름 도시의 폭염 기간은 무척 길 것이란 것은 쉽게 예견할 수 있다. 요즘 기후 위기 속에서 도시공간에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마을숲이 언급되고 있다. 마을숲은 아직도 생소하다. 도심을 떠나면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관심을 가져야 만날 수 있다. 요사이 생태 분야에서 많은 관심 분야 중 하나가 마을숲이다. 마을숲은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경관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마을공동체 삶의 표출로 마을 사람 공동으로 조성, 소유, 보호된 숲을 말한다. 그리고 마을숲은 역사적, 문화적, 생태적으로 다양한 요소가 결합한 문화유산이다. 또한 마을숲은 마을의 역사, 문화, 토속 신앙 등을 바탕으로 마을 사람들의 실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마을숲에 대한 연구는 조경학을 필두로 풍수학, 야생화, 조류학, 곤충학, 생태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는 종합 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을숲을 조성하게 이유는 마을에 터를 잡고 살아오면서 마을이 불안하거나 화재와 수해가 발생할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책으로 마을숲이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요사이에는 마을숲의 생태적 기능에 주목하고 있다. 둥구나무에서 가장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나뭇잎의 상태를 보고 풍흉을 예언한다는 것이다. 흔히 나무의 잎이 푸르고 넓게 피면 그해 풍년이 들고 반대로 잎의 모양이 좋지 않으면 흉년이 들고 나무를 보고 풍흉을 점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에 대한 해석은 그해 땅의 수분 관계로 이해되고 있다. 마을숲에 담긴 가장 생태적인 기능으로 방풍과 온도 및 습도조절 효과다. 골바람이 많은 산간 지역에서는 마을숲으로 수구막이를 많이 한 이유가 방풍에 있다. 그래서 마을숲은 마을 전체를 감싸는 형식으로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 안들의 경작물을 보호했다. 진안군 하초 마을숲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마을숲으로 산림문화자원으로 지정 보존하고 있다. 하초 마을숲 연구에 따르면 바람 감소(바람 갈무리) 효과와 습도와 온도조절 기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마을숲 조성 배경에는 홍수와 같은 재해를 방지하는 기능이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마을숲은 물의 원천적 공급처로서 인식된다. 그래서 저수지를 판 다음 둑을 쌓고 안정시키기 위해 나무를 심었다. 마을숲은 생물 다양성 증진과 그에 따른 생태계 서비스 효과도 있다. 마을숲은 생물 다양성이 보전된 보고이다. 마을숲은 마을 역사와 함께하며 현대사의 굴곡진 역사를 지켜보았다. 마을숲은 마을이 형성될 무렵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새마을운동 무렵에 마을숲이 수난을 당했다. 그런데도 나머지 나무가 자라 오늘날 마을숲을 이루어 놓았다. 마을숲은 마을 사람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전통적으로 마을숲은 마을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는 장소이기도 하다. 특히 마을숲은 오늘날 생태적으로 미래의 자산으로 주목받고 있다. 오늘날 인간의 생존에 크게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탄소), 대기오염(미세먼지) 등에 대안으로 준비된 생태자원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농산어촌에 조성된 마을숲의 다양한 기능이 이제 그 범위를 도시공간까지 넓혀 생태적 삶을 누리게 할 대안으로 마을숲이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고 믿는다. /이상훈 진안문화원 부원장·전라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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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3.12 15:16

마을과 동네 중심의 지역사회돌봄 체계 마련되어야

2019년 보건복지부는 지역사회통합돌봄 정책 추진을 발표했다. 지역사회통합돌봄정책은 자신이 살던 곳에서 더 오랫동안 돌봄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지역 친화 돌봄정책을 의미한다. 2019년 발표한 정책은 상당히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왔다. 전주에서 추진한 통합돌봄 정책은 지역사회내에서 어르신들이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한 것과 보건의료 안전망, 촘촘한 주거지원망, 전국 최초 통합돌봄서포터스단 운영 등의 매우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다. 5년이 흐른 지금 살던 곳에서 오래 살도록 하겠다는 정책은 각 지자체별로 대거 확산 되고 있으며, 보건복지부는 의료모델 중심의 통합돌봄 사업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다. 다만, 더 나은 방식으로 지역사회 통합돌봄체계가 확대될 방안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어려움과 한계에 머무르고 있다. 지금 보다 더 나은 지역사회 돌봄체계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핵심은 지역사회 안에서의 서로가 함께 살아가는 지지체계를 확대하는 것이며, 그 대표적인 체계는 지역사회이며, 지역사회를 구성하는 중심축은 마을과 동네이다. 우리는 마을과 동네 안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사람들에게 의지하고, 사람 사이의 무너짐도 배웠다. 그러나 지금, 우리 안에 마을과 동네가 사라지면서 우리가 느끼는 골목 안에서의 공동체의 감정도 사라져버렸고, 마을과 동네 안에서의 사람살이와 사람 살이 간에 돌봄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안에 마을과 동네가 새로운 방식으로 복원되길 제안한다. 마을과 동네의 복원은 지역사회복지와 지역사회 지지망 구축의 새로운 출발이 될 것이다. 마을과 동네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삶의 기본 단위로 옮겨 마을과 동네 골목 중심으로 재편하는 “골목 돌봄”을 구성해 나가야 한다. 수천억을 투자했음에도 마을이나 동네는 쉽게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듯이 마을과 동네를 살린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이야기 일수도 있다. 그래도 마을에서 함께 살기, 동네에서 같이 살기, 마을과 동네에서의 사람들간의 상호 연결 등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특별히, 돌봄이 중심인 사회에서는 마을에서 함께 돌보고, 함께 살아가는 것은 우리 삶의 전부일수도 있다. 꼭, 기억해야 한다. 지역사회 안에서의 핵심은 연결의 촉진이다. 아파트안에 누가 살아가는지를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아는 것 자체, 알려고 하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불편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철저히 개인적인 생활에 익숙하게 훈련되어 온 우리의 삶은 더욱더 개인화를 부추기고 있다. 이런 개인주의의 질주를 멈추기 위해서는 우리들 스스로가 잠시 멈춰서 마을과 골목을 다시 마주해야 한다. 우리 서로를 위해서 함께 할 시간을 우리들 스스로 내어 놓아야 한다. 마을과 동네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그 만큼 교육받고 훈련 받아야 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삶의 과정속에서 가능하다고 우리가 함께 인지해야 한다. 그래야, 마을과 동네의 골목이 제대로 살아날 수 있다. 마을 골목에서 위로 받고 응원받던 시절에 “골목 돌봄”이 오래된 추억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현시대에 맞게 재 생산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에게 지금보다 더 나은 행복 미래가 찾아올 것이다. /서양열 전북특별자치도사회서비스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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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3.05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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