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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등의 시대를 살고 있는가

최근 미국에서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소수인종 우대정책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 일이 있었다.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tudents for Fair Admissions·이하 SFA)이 소수인종 우대 입학 제도로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를 차별했다며 노스캐롤라이나대와 하버드대를 상대로 각각 제기한 헌법소원을 각각 6대 3 및 6 대 2로 위헌이라고 결정한 것이다. 입학과 고용에서 소수인종을 우대한다는 뜻의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은 1961년 당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연방정부 계약업체는 인종·신념·피부색·출신 국가에 관계 없이 직원을 고용하고 그들을 공정하게 대우하기 위해 적극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시작됐다. 이러한 소수 인종 우대정책은 인종차별로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기 위한 것으로 평등조치가 아니라 적극적 우대조치 성격이 강하다. 대학 입시에서의 ‘어퍼머티브 액션’은 인종적 요소를 고려함으로써 다양한 배경을 지닌 학생들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됐고, ‘역차별’ 논란이 계속되어 오면서 최근에는 특정 인종에게 할당제를 부여하거나 무조건 가산점을 부여하는 등 인종이 당락의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인종이 입학 전형의 여러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왔으며, 이 제도를 도입한 대학의 숫자 역시 감소 해왔다. 그런데 이 소수인종 우대정책 위헌결정 뉴스를 보자마자 60년 동안의 우대정책으로 이제 기울어진 운동장의 수평이 맞춰진 것인가, 나아가 이제 미국은 인종으로 인한 어떠한 차별도 없는 평등한 사회가 이루어진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리고 왜 동문 및 거액 기부자 가족을 우대하는 입학 관행에 대하여는 위헌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가 하는 의문 역시 생겼다. 미국 사회에서 이러한 문제를 직접 겪어 보지 않은 내가 이를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공통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가 이념 논쟁을 촉발한다거나 나와 다름이 틀림을 의미한다거나 기회의 평등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분위기에서 많은 실망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가 성별, 인종, 재산으로 인하여 차별 받는 경우가 존재하지 않아 조건의 불평등을 상쇄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면 이러한 논의가 무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자신이 어쩔 수 없는 문제 때문에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는 사회일까? 조건의 평등을 수반하지 않고 기회의 평등을 극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평등의 최고 가치로 여기는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여러 조치가 있는 것이다. 이 조치의 실현이 곧 나의 손해를 의미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투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이, 지역, 성별, 성적 지향, 인종, 국적, 장애, 질환 등이 개인의 삶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살아 가는데 차별 요소로 작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 공동체를 위한 일이고 서로가 서로의 행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이 행복하기 위해 그저 서로에 대한 배려가 조금 더 필요할 뿐이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한 정책이 이념 논쟁으로 변색 되지 않도록 그리고 나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회의 모습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문제의식을 함께 가졌으면 한다. /우아롬 민변 전북지부장 △우아롬 지부장은 법률사무소 한서 변호사로 전북지방노동위 심판담당 공익위원, 전북교육행정심판위원회 위원, 전주지방법원 조정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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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11 15:31

전주도시재생의 현재와 앞으로 방향

도시는 변화를 추구하는 생명체다. 태어나고 자라고 발전하고 쇠퇴하는 순환과정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변화를 도전받고 요구한다. 성장과 발전이란 욕망을 추구하면서.... 그러한 도시의 성장과 발전과정에서 새로운 수요와 공급에 자리를 내주면서, 한 시대를 살아왔고 지켜왔던 오래된 동네들이 있다. 하지만, 오래되고 낡은 동네들의 손을 맞잡고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옛것을 현대에 맞게 재창조하며 잊혀져가는 전주의 오랜된 곳곳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들이다. 도시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쇠퇴하면서 생기는 지역의 문제가 매우 다양하고, 양상도 각양각색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도시재생사업은 그 지역의 문제를 진단하고, 시민들과 함께 소통하면서 해결 방안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사업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현장의 문제를 통합적이고 유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친다.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떠한 과정으로 지역사회 혹은 동네를 바라고 논의하고, 실행하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현장에서 추구하는 도시재생의 의미는 어쩌면 어렵지 않다고 본다. 한 지역이 쇠퇴의 시기에 들어섰을 때 수수방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과 행정과 함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렇다고, 행정가 혹은 전문가에게만 문제 해결을 요구하지 않고, 지역 주민 스스로 발전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실천하고 하도록 하는 것. 시민들과 함께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잃어버린 경제적·물리적 환경과 같은 삶의 불균형을 시민 활동으로 바로 잡아보자는 의미 아닐까 생각한다. 기존의 도시개발과 정비계획중심에 의한 수요와 공급창출위주의 관리계획만 있었다면 지금의 도심 재생은 다양한 시민 활동과 수요을 발굴하고 무엇을 어떻게 공급할 것이냐는 대해 역동적인 시민 활동과 시민들이 가진 공간자산을 어떻게 개발하고 정비할것이냐는 쟁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자산의 대한 시민중심의 개발 생태계를 새롭게 구축하는 것. 한 예로, 전주 구도심 역시 전라감영이나 풍패지관 복원 등 굵직한 물리적 재생을 진행하면서도, 시설자산을 기반으로 시민들이 공유하고 협력하는 활동 생태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자산기반(시설)기반의 활동을 통해 전주 구도심이 문화적 공간으로서 공공성과 시민들이 공간 및 시설자산을 기반으로 새로운 생산과 소비의 장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타 도시와 구별되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만이 도시재생의 목적은 아닌 것 같다. 전주의 성장과 태동의 과정을 거쳐, 현재 전주시민에게 어떠한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지 혹은 수행해야 하는지, 그리고 전주시의 발전과 미래에 있어 시민들에게 무엇을 요구받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전주의 개발과 발전의 과정에서 소외된 오래된 동네와 장소가 전주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청년들에게는 자신의 일을 찾을 수 있는 터전이 되고 새로운 기회의 공간이 됐으면 한다. 그리고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옛 추억을 찾아 쉴 수 있는 여유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도시재생사업이 전주의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양적 팽창 될수록 이러한 사업이 전주시민의 생활과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기반이되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되짚곤 한다. 그러한 질문을 잊지 않고, 전주가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시민들의 수요와 함께 사업이 전개 됐으면 한다. 아울러 사업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의 투자가 열악하거나 소외된 오래된 동네를 새롭게 구성하고, 재건할 수 있는 요소와 사람을 발굴하고 성장시키고, 지켜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전주의 도시발전과의 비전에 있어 도시재생이 제대로 역할을 할수 있는 방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소영식 전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장 △소영식 센터장은 전통문화(원도심)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센터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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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04 15:31

저출산 대 저출생?

5년 전 본격화한 개념 논쟁이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아직도 지속하고 있다. 2018년 무렵 여성계에서 출산 정책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를 향해 “여성을 출산 수단으로 여기지 말라”며 제동을 걸면서,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바꿔 부르자고 요구했다. ‘저출산’이 아이를 적게 낳는 주체인 여성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고, ‘저출생’은 태어난 아이 수가 줄어드는 사회 구조에 무게를 둔 것이라 주장하면서, 한국사회가 직면한 인구문제의 원인이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저출생’ 개념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출산’이 일본식 한자어라서, 우리식 한자어인 ‘출생’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한때 있었다. 이 주장에 찬동한 국회의원들은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과 그 관련 법에 쓰인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바꾸려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그것은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그 사이에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 이하로 떨어져, 비교 상대국을 찾기조차 힘든 수준으로, OECD 회원국 중 꼴찌로 전락했다. 이렇게 출산율이 급격히 하락한 원인이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정책 개념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일까?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정책 개념을 바꿨다면, 출산율 하락을 막을 수 있었을까? 한국의 인구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유배우 출산율’, 즉 기혼 부부의 출산율 수준이 과거에는 OECD 평균과 유사한 수준에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조차도 급격히 하락했음을 발견한다. 구체적 인구정책 입안과 집행은 도외시한 채, 위기가 눈앞에 닥친 상황에서도 공리공론에 몰두하고 있다. 저출산·저출생은 하나의 현상을 다른 각도에서 조명한 개념인데, 그것 중 하나를 취사선택한다는 것은 황당한 발상이다. ‘인구학’ 교과서에는 출산력(fertility), 출산율(fertility rate), 출생률(birth rate) 개념을 모두 소개하고 있다. 출산 현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 전문 용어는 그 외에도 여럿 있다. 당연히, UN과 OECD 등 국제기구에서도 다양한 출산율·출생률 지표를 소개하고, 세계 각국의 구체적 수치를 발표한다. 이 자료를 통해, 사람들은 특정국의 출산율·출생률 수준을 다른 나라와 비교해 가늠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저출산 대책 관련 법 전반에 걸쳐 출산을 출생으로 개념을 대체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출산과 출생은 별개의 개념이고, 한국 정부에서도 두 개념을 모두 사용한다. 최근 감사원은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출산’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 2,236명을 조사했고, 그 과정에서 유기·사망·실종된 사례를 여럿 발견하여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출산과 출생 개념은 대체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에 있음을 쉽게 발견한다. 한국이 초저출산율을 기록하는 원인(예, 만혼율·독신율, 주거·일자리, 임신·출산·육아·교육비 등)을 찾아 그에 합당한 대책을 수립하는 것은 ‘저출산’정책의 지향점이고, 출생인구가 적어서 생긴 사회문제(예컨대,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아동 관련 산업, 교육산업, 지역소멸 등)의 본질을 찾아서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은 ‘저출생’정책의 목표 지점이다. 당연히, 이 둘 중 어느 하나를 버릴 수 없다. ‘실질적인 일(實事)에 나아가 옳음을 구한다(求是)’라는 실사구시 정신에 바탕을 두고, 인구정책을 재정비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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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27 16:22

그럼에도 청소년 자치활동을 하는 이유

토요일 아침이다. 중학생인 큰아이가 청소년자치공간 달그락달그락(이하 달그락)에 간다고 했다. 달그락은 지역 시민들과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민간 청소년 자치활동 공간이다. 아이가 오전에는 줌(zoom)으로 인도네시아 청소년들과의 국제교류 참여하기로 했고, 오후에는 기자단 활동으로 지역 취재한 이후 여름방학에 진행하는 상상캠프를 준비하는 기획 회의도 한다고 했다. 토요일에 큰아이는 거의 달그락에서 또래 청소년들과 자치활동 하면서 보낸다. 오래전이다. 주 5일제 되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최소한 토요일은 청소년이 입시에서 해방되어 여가와 함께 청소년 진로와 사회참여 활동 등 ‘청소년 자치활동’이 이루어질 것으로 알았다. 당시 보충수업 자율화, 야간자율학습이라고 했던 강제 학습의 자율화를 위해서 싸워 왔다. 학원 또한 12시 넘어서까지 수업하는 것이 학생들의 건강권 침해라고 주장하는 교육·청소년단체의 연대활동에도 참여했었다. 이제는 야자, 보충도 자율이고 주5일 된 지도 오래다. 그런데 꿈꾸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입시는 강화되었고 입시학원이 학교의 야자와 보충의 빈 공백을 모두 메워 버렸다. 뜻있는 소수가 청소년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치열하게 싸워 왔던 결과가 사교육 시장만 키우는 데 도움을 준 것은 아닌지 자괴감까지 들었다. 청소년이 건강한 생활을 하고 의미 있는 진로를 찾도록 돕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라고 믿고 활동해 왔는데 제도가 바뀌어도 그러한 실제적인 사회 변화는 쉽게 오지 않았다. 시간이 가면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럼 어떻게 하나? 내 결론은 그냥 할 일 꾸준히 행하는 거다. 제도나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서 행하는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의 삶에 옳은 일을 선택해서 활동할 뿐이다. 사교육이 강화되고 입시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에서 인지교육과 함께 그 근본의 삶을 이해하고, 경험하고 체험하면서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 내도록 사회적 가치 실현을 조금이라도 추동할 수 있는 활동을 한다. 나는 이러한 활동을 ‘청소년 자치활동’이라고 주장한다.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 정도라도 자치활동 하면서 청소년이 숨도 좀 쉬고 시민성도 기르면서 사회를 알아가며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에너지도 만들면 안 될까? 학원도 가지 말라는 게 아니다. 입시를 사교육에 모두 의존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평균 수명 80살 조금 넘는다고 하는데 그 시간 동안 가장 열정적이고 머리도 번뜩이며 몸 상태가 최고인 10대에 아무것도 못 하게 하고 10여년을 책상머리 앉혀 놓고 문제집만 풀게 하는 게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일 년에 학원비 몇백, 많게는 몇천만 원씩 쓰고도 결국 목적했던 서울에 대학 가는 학생들이 한 반에 1, 2명 내외나 될까 말까 한 현실에서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하기도 어렵다. 일주에 하루 이틀 자치활동 하면서도 일류대라고 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느냐 묻는 이들이 있는데, 당연히 입학할 수 있다. 함께 활동했던 청소년 중 서울에 좋은 대학이라는 곳에 많이도 입학했다. 물론 지방대 간 친구도 있고 소수는 대학을 저항하기도 했다. 대학이 목적이 아니지만 청소년이 원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가야 하는 대학이라면 당연히 진학하기를 바란다. 그러니 청소년의 미래와 함께 지금, 이 순간 청소년의 삶에 가장 이상적이고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곧 다가오는 따뜻한 여름방학에 한 번쯤은 멈추어서 생각해 보면 어떨지? /정건희 청소년자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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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20 18:27

미래교육에는 두 개의 길이 있다

미래교육에는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오래된 길이고, 또 하나는 새로운 길이다. 1. 오래된 미래교육 나는 옥동자다. 옥처럼 아름답고 귀한 아이라는 뜻이다. 1970년대, 전주의 J고교에서 교장 샘은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 조회에서 공개적으로 우리 1학년을 옥동자라고 불렀다. 그건 차별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2,3학년 선배들은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당시 J고와 B중은 동일계 학교로 B중학생은 J고를 무시험 진학했는데, 유독 그해에는 전원 시험을 치르게 했다. 그러니까 옥동자라는 칭호는 고난의 시험을 통과한 자에게 준 훈장 같은 것이었다. 옥동자들은 특별한 혜택을 누렸는데 첫째, 2.3학년들이 하는 보충수업, 야간 학습을 면제받았다. 게다가 교실마다 축구, 농구, 핸드볼 등 각종 구기용품을 배급받았다. 옥동자는 7교시가 끝나면 운동장에서 열심히 뛰놀았다. 친구들과 몸을 부딪히며 소리를 질렀고 운동이 끝난 뒤엔 함께 라면을 먹었다. 교실에선 늘 토론이 벌어졌다. 입시준비에 급한 선생님도 옥동자에게는 관대했다. 독일어 시간엔 사랑, 인생, 문학을, 사회 시간엔 정의란 무엇인가를 논했다. 과목에 관계없이 수업시간엔 늘 질문이 있었고 질문은 토의로 이어졌다. 도서관은 크고, 책이 많았다. 동서양의 고전과 신간이 책장을 가득 채웠다. 운동장에서 뛰놀던 친구를 도서관에서 만나면 한층 더 반가웠고 속깊은 얘기를 나누게 됐다. 입시 지옥의 긴 터널을 옥동자들은 쌩쌩하게 통과했다. 그래서, 대학입시는 어떻게 됐냐고? 하하, 짐작하신바 그대로다. J고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교장샘은 문책을 당해 쫒겨났다. 일년 뒤, 옥동자의 대학 진학은 예년의 성적을 회복했다. 진학은 일년 늦었지만 옥동자들은 어디서나 활달하고, 주도적이고, 공동체적 삶을 존중했다. 그러고 보면 쫒겨난 교장샘은 앞서간 미래교육자였고, 인문, 예술, 체육, 질문이 있는 교실은 오래된 미래교육이었다. 당시 J고 3학년이었던 서거석 교육감은 인문, 예술, 체육활동을 미래교육의 중심 축으로 삼는다. 학교 도서관을 리모델링하고, 아이들의 문예체, 창작활동을 한껏 지원하고 있다. 아이들 모두가 재학중에 뮤지컬, 영화, 연극 한 편은 제작할 수 있기를... 전북교육에 오래된 미래교육의 르네상스가 시작됐다. 2. 새로운 미래교육 사회시간. 스마트칠판에는 WSJ 영문 기사가 띄워져 있다. 탈레반의 학살을 피해 보트피플이 된 아프간 하자라족을 다룬 기사다. 그 옆에는 교사가 작성한 질문지가 있다. 탈레반은 왜 하자라족을 학살하는가? 난민은 국제법상 어떻게 처리되는가? 교사의 질문에 학생들의 답이 하나씩 스마트 칠판에 올라온다. 교사는 칠판에 올라온 답 중 하나를 클릭 확대해서 토의의 소재로 삼는다. 교사는 인종 차별이 전세계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설명하고 학생들은 다양한 인종차별의 사례를 조사한다. 학생들은 4명씩 한 모둠을 이뤄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는데 사례 취재, 이미지 디자인, 스토리 구성 등 역할을 나누어 협력한다. 학생들의 학습 과정은 모두 온라인 교육 플랫폼에 저장된다. 저장된 학습 데이터는 인공지능의 분석을 통해 개별 학생에게 제공된다. 미래교육은 디지털 대전환시대에 필요한 지식과 역량을 기르는 교육이다. 디지털 활용 역량은 필수적이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라는 새로운 직업이 떴다. 연봉 10억이다. 뭘 하냐고? 인공지능 채팅창에 '질문을 던지는' 일을 한다. 질문을 잘 만들면 드라마도 예술작품도 인공지능이 만들어낸다. 질문이 곧 창조다. 질문이 있는 교실, 에듀테크 수업혁신, 전북 미래교육이 가는 길이다. /한긍수 전라북도교육청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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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13 15:14

비판 세력 몰아붙이는 국정 운영; 노조 다음 시민단체

현 정부의 시민단체 옥죄기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노조 때리기’가 진행되더니, 다음 목표가 시민단체인 것이다. 감사원, 보수언론, 보수여당이 긴밀한 보조를 맞추고 있고, 서슬 퍼런 수사기관이 곧이어 등장할 것이다. 포문은 이미 조준되어 있었다.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도움 세력으로 ‘민노총(민주노총), 전교조, 시민단체들’을 언급했었다. 현 정부 출범 이후에는 ‘비영리민간단체 보조금 투명성 강화’를 국정과제에 포함했다. 지난해 말 국무회의에서는 보조금 사업 회계부정을 정비하라고 지시했다. “혈세가 그들만의 이권 카르텔에 쓰인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시민단체를 전 정권과 야당의 ‘이권 카르텔’로 보는 인식이 편 가르고 갈라치는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음이다. 하던 대로 감사원이 먼저 나섰다. 감사원은 5월 16일 비영리민간단체 대표·회계담당자 등 73명을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다. 언론이 뒤를 이었고, ‘범죄단체 아닌 시민단체’, ‘문정부서 혈세 타내 펑펑 쓴 시민단체’, ‘횡령백화점 된 시민단체’ 등 자극적 표현을 앞세웠다. 이 와중에 언론은 자신들의 주특기들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첫째는 감사원의 조사결과를 사실로 전제하고 그대로 전달하는 ‘받아쓰기 저널리즘’, 둘째는 ‘비영리민간단체’를 ‘시민단체’로 일반화 하는 비틀기 기법, 셋째는 시민단체에 부정적 이미지를 덧칠하는 ‘프레임 씌우기’ 기법이다. 보수여당 역시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서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기구는 ‘일제강제동원 시민모임’에 대한 보수언론의 왜곡보도를 지렛대 삼았다. 차제에 시민단체 전반에 대해 점검하겠다고 보수여당이 나선 것이다. 시민단체 선진화라니...누가 누구를 선진화시키겠다는 것인지 어안이 벙벙하다며, 시대착오적 시민사회 재갈물리기를 중단하라는 질타가 이어졌다. 마침내 대통령실이 직접 나섰다. 지난 3년 동안 민간단체 보조금 314억이 부정사용 되었다며, 적발 단체에 대한 형사고발 및 수사의뢰를 발표했다. 내년부터 당장 보조금 5천억원 이상을 삭감하고, 향후 지속적으로 감축할 것이라 밝혔다. 대통령은 단죄와 환수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 민간단체 보조금 투명성, 선진화라는 규범적 수사(修辭)가 앞세워지고 있다. 하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비판세력을 흠집내고 위축시키기, 갈라치고 지지세력 결집시키기라는 그림이 보여진다. 이를 위해 보수정권, 보수여당, 보수언론이 한 팀이 되어 법치와 투명성 강조-부정적 이미지 씌우기-사법처리 수사라는 빌드업(build-up)을 진행하고 있다. ‘노조 때리기’, ‘비판언론 옥죄기’에 구사되었던 방식이 시민단체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비판세력을 정해놓고 옥죄고 몰아붙이는 것이 국정운영으로 치환되는 듯 하다. 며칠 후면 6·10민주항쟁 36주년이다. 6·10항쟁은 오랜 군사독재를 끝낸 전국민적 항거였다. 우리 국민은 때때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저력을 가지고 있다. 1960년 4·19혁명,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 1987년 6·10민주항쟁, 그리고 가깝게는 2016/2017년의 촛불혁명이 그랬다. 도도한 근현대사의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은 억압한다고 기죽지 않는다. 탄압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처음엔 숨죽이는 것 같아도, 한 숨 돌리고 일어선다. 그것이 현재의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만들었고, 그러한 정신이 우리 국민이 일구어 온 진정한 국격이다. /김은규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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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06 16:00

지역이민비자

한국의 내국인 총인구는 2019년 11월 정점에 달한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인구감소 원인은 여러 가지지만 그 핵심은 저출산에 있다. 저출산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합계출산율, 즉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살펴보면, 1983년에는 2.06으로 당시 인구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1984년에 대체출산율 이하인 1.74로 떨어졌고, 그 후 꾸준히 감소하여 2021년에는 0.81로 격감하였다. 저출산은 오래된 일이지만, 인구감소는 비교적 최근에 시작되었다. 그것은 평균수명의 증가, 즉 사망력 저하 때문이다. 또한, 다행히 인구감소 개시 이후에도 노동력 부족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지 않고 있다. 이는 고령자·여성 등 비경제활동인구의 취업 증가, 기술 혁신에 의한 생산성 향상, 적정 외국 인력 도입 등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것은 불과 앞으로 5∼10년이라고 말한다. 요컨대, 한국은 생산연령인구를 대량 보유하여 ‘인구 보너스’를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달성했지만, 이제는 인구가 줄 뿐 아니라 노인부양인구가 늘어나는 ‘인구 부담’에 직면해 있다. 앞으로는 인구압력이 생산성 향상과 투자에 부담을 주고 재정 문제를 초래하여, 경제성장 엔진을 꺼트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한국경제가 인구감소의 충격이 크게 확산하기 직전 ‘골든타임’을 누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관점을 달리하여 국내 부문간·지역간·취업유형간 노동시장 상황을 살펴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업종별·지역별 노동력 수급 불균형이 존재하여, 수도권과 지방의 노동시장 상황이 판이하기 때문이다. 특히, 비수도권 지역에서 인구감소의 충격은 이미 심각하다. 몇몇 지역에서 경제는 황폐해질 위기에 처해 있고, 지역 인구 소멸로 치닫는 곳도 한둘이 아니다. 전라북도는 전국에서 인구감소 충격이 심한 곳 중 하나다. 행정안전부는, 전라북도 14개 시군 가운데 전주시·익산시·군산시·완주군을 제외한 10개를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했다. 전라북도는 법무부·행정안전부와 함께 ‘지역특화형 비자 제도’ 시범 사업 등을 시행하며, 인구감소 충격 완화 방안을 찾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전라북도는 지역 발전을 지속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올해 1월 국회에서 통과되어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전북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이 담아야 할 구체적 사항을 정비하여,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려 시도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지역이민비자’ 제도다. 그것은 ‘전라북도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정착할 외국인에게 대한민국 정부가 발급하는 사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캐나다·호주 등 해외사례에서 시도한 사례가 있긴 하나, 예상되는 문제를 차단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여 최선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 ‘지역이민비자’ 발급 건수와 활동 범위 등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그 근거가 되는 노동시장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당연히, 현재 전라북도의 ‘빈 일자리’ 수와 분포를 분석하고, 그것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 것인지부터 출발해야 한다. 전라북도 주민, 국내 다른 지역 주민, 외국인 주민의 구성 비율도 고려 대상이다. 바늘귀에 실을 꿰기 어렵다고 해서,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 쓸 수는 없다. 정책을 섣불리 수립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전라북도의 체계적이면서 면밀한 ‘지역이민정책’ 수립을 기대한다. /설동훈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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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30 18:36

스승은 누구인가?

쉬는 월요일, 학부와 대학원 강의가 있다. 강의 마지막쯤에 질문받으면서 정리하는 시간이다. 한 분이 말하다가 눈물을 보이면서 운다. 조금 당황했다. 강의 마친 후 울음 보인 만학도 학생이 단톡방에 미안하다면서 오늘 배운 내용 중에 자기 삶과 그대로 연결된 내용이 있어서 감정을 주체 못 했다고 했다. 괜히 가슴이 먹먹했다. 스승의 날이었다. 성경에는 “일만 명의 스승이 있을지 몰라도, 아버지는 여럿이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일만 명의 스승이라? 요즘 우리 사회에 스승이 그렇게 많을까? 스승은 누구일까? 제자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존재, 제자를 옹호하는 사람, 제자를 힘들게 하는 어떤 틀과 같은 정책을 부딪쳐서 깨는 존재, 아니면 친구와 같은 동반자인가? 오래전 홍콩의 쿵후 영화는 비슷한 줄거리가 많았다. 적들에게 목숨을 간신히 건져 숨어 있거나, 부모님을 죽인 원수를 피해 도망 나온 청년이 어렵게 스승을 만나서 훈련하고 복수한다는 이야기. 그 복수의 과정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게 도움을 주었다는 스승의 이야기다. 그리고 스승은 떠나고 제자는 혼자서 삶을 살아 내면서 또 다른 스승이 되어 간다. 홍콩 영화 생각하다 보니 한 가지는 알겠다. 스승은 자기 후배인지 제자인지 그 어떤 존재가 자신과 같은 수준으로 또는 자신보다 더 나은 존재로 세우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가 힘들어하는 어떤 틀을 대신 또는 함께 부딪치면서 깨 주는 선배이기도 하다. 30대 중반에 청소년활동시설의 기관장이 됐고 잠시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몇 년 만에 다녔던 학교에 찾아가 지도교수님 찾아뵙고 시험 친 후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서울 군산 오고 가면서 많이도 힘들 때였다. 어느 날인가 교수님이 밥 먹었냐면서 교수 식당 데려가더니 밥 사 주면서 잘 먹고 다니라고 했다. 석사 할 때도 고생한다고 학교 뒷문에 아직도 기억하는 작은 식당에 된장찌개 사 주면서 힘내라고 하셨다. 현재 청소년의 관점과 가치, 개념을 설명할 수 있도록 도와준 교수님이다. 아마 내가 그분의 두 번째 박사학위자일 거다. 교수님은 은퇴 이후 대학원에서 작곡 공부하셨고 지금은 작곡가로 변신해서 활동하고 계신다. 고3 때였다. 아버님 돌아가신 후 내 안에 갈등도 심했고 마음이 바닥일 때 성적도 좋지 않았다. 담임이었던 박 선생님께서 따로 부르셨다. 학교 다니는 12년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상담 비슷한 것을 했다. 그때 말씀이 아직도 기억난다. “건희야 너는 성실하고 착하니 뭐든 잘할 거다.” 고3 말미에 아르바이트해서 첫 월급으로 선생님께 작은 선물을 드렸다. 선생님은 교장으로 은퇴하셨다. 어쩌다가 지역에서 뵈면 ‘건희야’라고 먼저 이름 불러 주는 박 선생님. 몇 달 전 출판한 <삶의 바다로 모험을 떠날 용기>라는 청소년 진로 책에도 박 선생님과 같은 교사가 있어야 한다고 실명을 기록해 놨다. 책 나오자마자 선생님께 바로 선물 드린다고 한 권 빼놓고 아직도 드리지 못하고 있는 못난 나. 식사도 대접하고 책도 선물하려고 마음만 가지고 있다가 오늘 스승의 날에 선생님 얼굴만 다시 떠오른다. 내 가슴에 스승으로 존재하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스승의 날을 지나다가 알았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스승이었다. 하루 동안 연락해 오는 이전의 청소년, 청년들이 있었다. 스승이 제자를 위해 어떠한 일을 해 주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된 것은, 스승이란 그 존재만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며 힘이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정건희 청소년자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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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23 15:56

교사는 정치적 백치여야 하는가?

1. 난 전주든 부안이든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있다. 가고 싶은 곳을 찾아 여행할 수 있다. 내가 살 집을 내 맘대로 계약하고 직업도 맘대로 선택할 수 있다. 이렇듯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가 기본권이다. 지지하는 정당에 가입하거나 선거에 출마할 수도 있는데, 이건 정치적 기본권이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지만 범법자, 공동체에 큰 해를 끼친 자는 제한을 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범법자가 아닌데도 교사는 정치적 기본권을 누리지 못한다. ‘정치적 중립 의무’ 때문이다. 2. 며칠 전 교원단체들이 주관한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 회복을 위한 포럼’에 다녀왔다. 교총, 전교조, 교사노조에 실천교사, 혁신교육네트워크 등 전북의 주요 교원단체가 손을 잡고 한목소리를 냈다. “교사에게 정치활동, 선거운동, 선거 출마를 할 정치적 권리를 달라” 한마디로 일반 시민이 누리는 권리를 교사에게도 허하라는 주장이다. 대학 교수는 온갖 정치활동을 제한 없이 하는데 교사는 안 된다? 그 차별이 어색하다. 교사가 정치기본권을 가지려면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 법안은 이미 발의된 상태인데 잠자고 있단다. 교원들의 정치활동을 곱지 않게 보는 여론 때문이다. 교원의 정치활동이 학생들에게 편향된 정치 성향을 주입하거나 강요할 우려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3. 정치는 시끄럽다. 생활 속에서 정치를 화제로 올리면 시끄러워진다. 오랜 친구, 동창 단톡방에서도 정치 이슈가 올라오면 탈퇴자가 속출한다. 그런데 대체 무엇이 ‘정치’인가? 원자력 발전을 확장할 것인가, 축소할 것인가? 새만금 개발인가, 갯벌 복원인가? 최저임금은 얼마여야 하는가? 우리 사회의 이슈들은 대부분 정치 이슈가 된다, 정치가 바로 삶이다. 교육은 배움을 삶 속에서 구현하도록 연결시켜야 한다. 그러니 교육은 정치를 다룰 수밖에 없다. 교육의 중요한 목적이 민주시민, 나아가 세계시민으로 키우는 것인데 교실에서 어찌 정치를 외면할 것인가? 4. 교사들이 교실에서 정치적 사안을 어떻게 다뤄야할지에 대해 일찍이 독일에서 깊은 논의가 있었다. 이념 갈등이 심각했던 1976년, 진보 보수 교육학자, 정치가, 연구자들이 보이텔스바흐에서 모여 논쟁적인 정치 주제를 다룰 때의 세 가지 원칙에 대해 합의했는데 이것이 민주시민 정치교육의 토대가 되었다. 첫째, 강압, 교화 금지의 원칙이다. 교사는 어떤 방식으로든 학생들에게 특정한 견해를 주입하거나 감화시켜 그들이 독립적인 의견을 갖는 것을 방해하면 안 된다. 둘째, 논쟁성 유지의 원칙이다. 정치적으로 논쟁적인 사안을 교실에 가져오되 다양한 논쟁점이 수업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셋째, 학생의 정치적 행위능력의 강화이다. 학생이 정치 사안을 분석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독일은 교사들에게 정치권을 주되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정치교육의 헌법으로 삼아 민주시민을 길러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인 정치교육이다. 보이텔스바흐 합의 수준을 발전시키는게 정치적 편향성 우려보다 현실적 대안이 아닐까 싶다. 사실 ‘정치적 중립’은 환상일 뿐이다. 어떤 정치적 견해도 완전히 중립적일 수는 없고 중립을 지키려 애쓴다 해도 작은 교화를 막을 수는 없다. 중립보다 중요한 것은 질문이다. 교사가 학생에게, 학생이 교사에게. 서로서로 질문하고 토론하면 일방적 주입을 막을 수 있다. 교사는 정치 백치가 아니라 정치교육자가 되어야 한다. /한긍수 전라북도교육청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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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16 16:11

윤정부 1년, 추락하는 한국 언론

# 장면 1: 4월 26일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동맹국이 피해를 받게 하면서 국내 정치적 지지를 얻으려 하는 것 아니냐”, “미국이 한국을 도청했다는 것에 대해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나 언질이 있었느냐”라는 질문이 있었다. 두 질문의 내용들을 보면 당연히 한국 기자들이 한 것(해야하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런데 전자는 미국 LA타임즈 기자가 미국 대통령에게, 후자는 미국 ABC 기자가 한국 대통령에게 질문한 내용이다. 한국 기자들은 핵심에 침묵했고, 미국 기자들에게 밥을 사야한다는 촌평이 국내에서 이어지기도 했다. # 장면 2: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 길, 전용기 내에서 대통령 내외가 취재진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 그 과정에서 일부 기자들이 대통령 부인과 셀카를 요청하여 활짝웃는 모습의 셀카 촬영이 진행됐다. 이 장면은 대통령실 전속 사진사에 의해 촬영되어 홈페이지에 공개됐다. “전용기 타고 패키지 여행 다녀왔냐”와 같은 네티즌 비난이 이어졌고, 그 사진은 몇 시간 만에 홈페이지에서 지워졌다. # 장면 3: 지난 2일 대통령과 출입기자들이 간담회를 진행했다. 기자들이 질문을 던졌는데, ‘미국 가서 재미있는 얘기를 전해달라’, ‘아메리칸 파이 어떻게 부르셨는지 들을 수 있나’, ‘대구에서 시구할 때 공 잘 던진다는 평가가 있었고 이번 만찬 노래도 다들 놀랐는데 스타덤을 실감하고 있나’, ‘하버드대 갔을 때 질문이 날카롭지는 않았나’ 등의 질문들이 이어졌다.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 대한 질문도 있었지만, 이에 대한 대답은 일주일 뒤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관계자 발언을 통해 전달됐다. 언론의 주요한 책무 중의 하나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대변하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감하고 날 설지라도 비판적 질문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 언론은 질문해야 할 핵심에선 비켜갔고, 방미 후 간담회에서는 듣기 좋고 말하기 좋은 질문들로 채워갔다. 질문하지 않는 언론, 권력의 심기를 살피는 언론은 본연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모든 언론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권력 감시 임무를 수행하려는 언론들도 있다. 하지만 감시견(watch dog)을 하고자 하는 언론엔 재갈이 물리어 진다. 국익 훼손, 가짜뉴스로 매도되면서 감사, 압수수색, 고소고발이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자기검열이 이루어지고, 강단 없는 언론들은 스스로 순응의 길로 들어선다. 불편한 질문은 자제하고 어여삐 여겨지는 기사들을 쏟아내는 애완견(lap dog)으로 전락한다. 한편에서는 애써 칭찬하고 훈수하면서 권력을 지켜주는 보호견(guard dog)들이 힘을 얻는다. 윤정부 1년,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오늘 5월 10일은 윤정부가 출범한지 오롯하게 1년이 되는 날이다. 과거 사례를 볼 때, 정권 1년의 시기는 국민적 평가가 그리 나쁘지 않는 편이 더 많았다. 정권 초기 상황에 대한 이해와 기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발표되는 조사들은 현 정부 1년의 초라한 성적표를 보여준다. 긍정 평가는 30% 대에 갇혀 있고 부정 평가는 60%에 육박한다. 국민의 60%가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응답했다는 조사도 보여진다. 추락하는 한국 언론의 위상도 이같은 평가들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망가지는 한국 언론을 어찌할 것인가. 원인은 파악되지만, 당분간 답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김은규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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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09 15:44

생활인구

인구통계는 나라 살림의 기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인구를 정기적으로 조사한다. 인구학 교과서에서는 인구를 특정 시점, 특정 장소에 사는 사람의 수로 정의한다. 그런데 ‘사는’의 의미를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인구는 제각각 집계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사람, 다시 말해 ‘거주지 등록’이 되어 있는 내국인 수를 헤아리는 것이다. 외국인 주민은 포함하지 않고, 주민등록을 유지한 채 외국에 체류 중인 내국인은 포함한다. 주민등록인구는 선거인, 취학아동 수 등을 파악하는 데 사용되지만, 해당 지역에 실제 거주하며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 수와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인구 총조사 등 주요 인구통계는 상주(常住)인구를 기준으로 한다. 상주인구는 한 지역에 주소를 두고 계속 머물러 사는 내·외국인 인구로, 일시적 현재자(現在者)는 제외하고 일시적 부재자를 포함한다. 현재·부재를 정하는 기준은 90일이다. 통계청은 ‘국제 인구이동’을 ‘출입국 후 체류기간 90일을 초과한 내·외국인’(장기이동자) 수로 파악한다. 상주인구는 국내 노동시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므로, 인력수급 정책의 기초자료로 활용한다. 상주인구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현주(現住)인구가 있다. 현주인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측정할 수 있다. 여기서는 주간(晝間)인구와 생활인구를 소개한다. 주간인구는 해당 지역의 상주인구(야간인구)에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통근·통학인구(유입인구)를 더하고 다른 지역으로 유출된 통근·통학인구(유출인구)를 뺀 것이다. 상주인구에 주민의 경제활동상태를 반영한 것이다. 생활인구는 해당 지역에 ‘있는’ 사람 수 전체를 집계한 것이다. 즉, 그것은 주민등록자, 외국인등록자, 외국국적동포 거소신고자 등 특정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뿐 아니라, 통근·통학·관광·휴양·업무 또는 정기적 교류 등의 목적으로 특정 지역을 방문하여 체류하는 사람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생활인구는 휴대폰 위치 데이터를 분석하여 해당 지역에 있는 사람 수를 파악한 것으로, 그 수는 시시각각 바뀐다. 다양한 방식으로 측정한 인구는 각각의 용도에 맞게 사용된다. 오늘날과 같이 인구감소, 지역쇠퇴, 지역소멸에 직면한 상황에서 주민등록인구나 상주인구만을 고수하는 것은 한계에 봉착하였다.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된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은 생활인구 개념을 채택하였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인구감소지역 지역특화형 비자 시범사업(법무부·행정안전부), 디지털 관광주민증 제도 (한국관광공사) 등 지역 인구를 유지 또는 늘리기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좋은 일자리’ 창출을 통해 상주인구를 늘리는 게 최선의 방책이겠지만, 생활인구부터 먼저 늘리는 방식도 주저할 필요가 없다. 독일에서 시행하는 복수 주소 제도를 응용하여, ‘복수 주민등록증’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이는 현재 시행 중인 ‘고향사랑기부제’보다 몇 걸음 더 나아간 혁신이다. 생활인구 증가는 지역경제 활성화의 관건이다. 전주시는 체류형 국제 관광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전주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 주관한 ‘2023년 야간관광 특화도시 조성사업’ 공모에 선정되었고, 국비를 지원받아 야간관광 콘텐츠, 야간 경관 명소, 야간관광 여건 개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체류형 관광지’ 모델이 성공하여 전라북도 전체와 전국으로 확산하기를 기대한다. /설동훈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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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02 16:53

나는 꿀벌과 파리 중 누구일까

“살면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어. 파리 뒤를 쫓으면 변소 주변이나 어슬렁거릴 거고 꿀벌 뒤를 쫓으면 꽃밭을 함께 거닐게 된다잖아” 미생이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오 차장이 청년 ‘장그레’에게 꿀벌 이야기를 해 주자 장르레는 “저는 지금 꿀벌을 만난 거네요.”라면서 화답하는 장면. 미생이라는 만화가 드라마로 나와서 많이 알려진 대사다. 청년의 삶이 고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우리 사회 청년이 쫓아가는 어떤 존재가 ‘꿀벌’인지 ‘똥파리’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다. ‘헬조선’이라는 자조 섞인 담론이 유행인 세상이 됐다. 벌써 몇 년 된 유행어. 헬한국도 아니고 조선이라니? 지옥도 철저히 세습된 계급 사회라는 이야기다. 청년들이 죽어라 쫓아가는 대상이 꿀벌인 줄 알았는데 한참을 지나서 도착해 보니 쓰레기와 섞어 버린 생선 대가리에 파리떼만 득실거리는 곳일 수 있다. 청년들에게 스펙을 넘어 사람다운 삶을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을 읽고 자기 삶을 성찰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충고하는 이들도 많다.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며 뱉은 말을 삶으로 살아 내는 사람 등 보고 배울 게 있는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실천해 보는 삶의 과정 모두가 벌과 똥파리를 구분해 주는 일이라는 이들도 있다. 가끔은 꿀벌인 줄 알고 가보니 자기 것을 모두 빼앗아 버리는 말벌인 경우까지 있으니. 페북에 꿀벌 이야기 올렸더니 지인이 ‘포레스트 검프’의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라는 대사를 안내해 줬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서 모두 달콤한 초콜릿 같은 인생을 집을 것으로 상상하지만, 내가 가진 인생이라는 상자 안에 쓰디쓴 럼주가 든 초콜릿이 얼마나 들었는지 모른다. 상자에 손을 넣어 무엇을 집을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절대로 두려워서 하면 안 된다는 게 요지다. 청년이 가져야 할 것은 요즘 유행어로 두려워 말고 절대 꺾이지 않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더욱 청년의 앞에 있는 존재가 중요해 보인다. 힘겹고 상처 입었을 때 옆에서 비빌 언덕이 되어 주는 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방향을 잃어 어려워할 때 손 내밀어 함께 하는 이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사 영화처럼 꿀벌과 파리가 명확할까? 우리가 사는 곳은 꿀벌과 파리가 뒤섞인 혼종도 있고, 말벌이 득실거릴 때도 있으며 간혹 장그레와 함께 해 준 오 차장이 있을 수도 있다. 드라마처럼 열심히 일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살았더니 해피엔딩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청년에게 전하는 대부분 주장이 꿀벌은 자신이 따라야 할 존재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청년의 삶에 가장 중요한 존재는 내 앞에 꿀벌이 아니다. 결국 어떤 초콜릿을 선택할 것인지, 누구를 따를 것인지는 내가 선택한다. 청년 자신의 선택 때문에 모든 것이 바뀐다는 이야기다. 내가 꿀벌인지, 말벌인지, 똥파리인지가 핵심이고 요체라는 말이다. 꿀벌이라면 파리를 따르지 않는다. 꿀벌이 친구가 될 것이고, 꿀벌이 안내해 주는 곳으로 이동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간혹 초콜릿 상자를 빼앗기 위해서 말벌이 쫓아 오기도 하지만 이때는 꿀벌 친구들과 함께 단합해서 물리칠 수 있는 ‘연대의 힘’도 있어야 한다. 전제는 내가 꿀벌이라는 데 있다. 청년도 나도 꿀벌을 쫓아야겠지만 먼저 내가 꿀벌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나는 꿀벌일까? 파리일까? /정건희(청소년자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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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25 17:19

격물에 대한 심심한 연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대학'에 나오는 글귀이다. 여기서 강조점은 일의 우선 순위이다. 즉 천하를 다스리려면 먼저 자기 몸을 반듯이 닦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시는가. 수신제가 앞에 더 우선해야 할 4가지 덕목이 있다.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이다. 수신에 앞서 마음을 바르게 하고(정심),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성의), 그에 앞서 제대로 알고(치지), 알기 위해 사물을 탐구하라(격물)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흔히 경전은 마음가짐을 가르치는데, '대학'은 도덕과 윤리에 앞서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 한다며 과학적 탐구를 강조한다. 지식이 없으면 어디로 가야할지 모호하고 불안해 미신에 빠지고 미흡한 판단으로 잘못된 뜻을 세울 수 있다. 마녀사냥 같은 역사상 인류가 저지른 많은 재앙은 과학적 지식이 약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새로운 문명이 밀려올 때 무지로 인해 물결에 저항하다 휩쓸려버린 사례는 넘친다. 산업혁명의 본산인 영국에서조차 한동안 공장의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이 있었다. 앎이 바르지 않으면 뜻도 마음도 바로 세울 수 없다. '격물치지'를 우선해야 하는 이유다. 난 '격물치지'를 '대학'이 아니라 고 1때 국어 교과서에서 처음 만났는데 읽자마자 밑줄을 쫙, 그었다. [격물치지: 사물의 원리를 연구해서 앎에 이른다.] 그런데 맘 한켠에 의문이 남았다. 격물을 하면 진정한 앎에 이르는가? 격물은 무엇인가! 격물(格物)의 격(格)은 '나무의 가지를 친다'는 뜻이니, 격물은 사물의 요소에서 잔가지를 쳐내고 본질적인 속성을 잘 정리해서 규격화하는 것, 정도의 뜻이겠다. E=mc² 같이 사물의 원리를 다 파악하고 나면 이처럼 간단하게 규격화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규정하려면 그를 속속들이 알아야만 가능하다. 알지 못하면 규정할 수 없고, 규정하지 못하면 그건 아는 것이 아니다. 난 오랜 세월 그런 의식으로 무엇에 대해 규정하고 정의를 내리고 규격화하려 애쓰며 살아왔다. 현대는 무규정의 시대다. 사회에 나와 동창생을 만나고서 '이 친구가 그랬나?' 놀랄 때가 많다. 내가 규정한 그는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경험에 의존한 이미지일 뿐이었다. 다시 보니 그는 내가 생각한 그가 아니었다. 훨씬 풍부했다. 애초에 그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고 게다가 꾸준히 변화했을 것이다. 우린 몇몇 경험으로 사람을 규정하지만 사실 누군가를 어찌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 무언가를 규정하는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도서관의 나, 탁구장의 나, 뒷골목의 나는 나의 백,천,만 중 하나에 불과하다. 실은 자신마저도 자신을 모른다. '나'의 생각, 의식은 '내'가 아니라 가정, 학교, 사회가 지배한다. 진짜 '나'는 드러나지 않게 깊숙히 감춰 무의식의 창고에 저장된다는게 뇌과학자의 주장이다. 진짜 '나'의 9할은 무의식에 있으니 내가 어찌 나를 알 것이며, 내가 나를 모르는데 누가 나를 알겠는가? 학생은 어떠해야 한다는 규정, 무엇이 성공이라는 규정, 상식, 정의, 진보라는 규정, 이 모든 규정을 경계해야 한다. 규정은 수많은 요소를 쳐냄으로써 다양한 가능성을 잘라버린다. 무규정은 모든 요소를 그대로 살려 모든 가능성을 북돋운다. 무의식 속에 감춰진 학생 개인의 잠재력을 찾아 일깨워야 한다. 규정함이 없이 열어두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생각, 아이디어가 나온다. 그래야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그것이 진보요, 창의다. /한긍수 전라북도교육청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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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18 15:57

수신료 분리 징수라는 “꼼수”

모든 문제에는 맥락이 있다. 작금 대통령실 주도 하에, 그리고 여당과 보수언론들의 거들기로 진행되고 있는 수신료 분리 징수의 문제도 그렇다. 대통령실은 지난 3월 9일 국민제안 홈페이지에 ‘TV수신료 징수방식(TV수신료와 전기요금 통합징수) 개선’에 대한 국민참여 토론을 게시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4월 9일 대다수 국민이 분리 징수에 찬성했다는 결과를 발표하며, 수신료 분리 징수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국민제안 홈페이지의 등록 시스템이 동일인의 중복 응답이 가능토록 되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보수여당과 보수 유튜버들을 중심으로 조직적인 참여 독려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지적되었다. 이에 언론노조는 “공론장을 열고자 함이 아니라 한편의 여론 조작극”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TV수신료는 공영방송의 핵심 재원이다. 외국의 경우 우리보다 5-10배 높은 수준의 수신료를 조세 또는 특별부담금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징수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1981년 2,500원으로 수신료가 책정되어 40년이 넘도록 변하지 않고 있다. 또한 1994년부터 효율성을 위해 한국전력에 위탁하여 징수하고 있다. 전기세에 함께 부과되어 청구되고 있는 것이다. 수신료 징수 및 징수 방식은 해묵은 논쟁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문제제기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결로 정리된 바 있다. 1999년 헌법재판소는 위헌소원 판결에서 수신료는 ‘공영방송사업이라는 특정한 공익사업의 경비 조달을 충당하기 위해 부과되는 특별부담금’으로 규정하며 수신료 징수의 정당성을 확인했다. 또한 2016년 대법원은 현행 수신료 징수방식이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사정이 이러한대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서 수신료 징수 문제를 또다시 끄집어내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렇지 않아도 현 통치 권력은 언론을 순치하고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의도를 대놓고 실행해 왔다. MBC에 대한 공격, 방송통신위원회에 대한 압수수색과 검찰수사, 준공영방송인 YTN의 매각 추진(사영화), TBS(서울시 산하 공영방송) 지원 조례 폐지를 통한 재원 옥죄기 등이 잇달아 이어졌다. 결국 재원 문제를 건드려 공영방송인 KBS를 다스려 보겠다는 꼼수가 수신료 문제에서 엿보인다. 보수여당과 보수언론은 공영방송 수신료 폐지나 인하가 세계적 추세라며 추임새를 넣고 있다. 그 예로 프랑스의 수신료 폐지, 영국의 2028년 수신료 폐지 추진 계획을 내세운다. 하지만 이 역시 맥락을 간과하는 견강부회(牽强附會)이다. 프랑스는 주민세에 수신료를 통합 징수하다 폐지하는 대신 그에 해당하는 공적재원을 조달하기로 했다. 영국의 2028년 수신료 폐지 언급은 확정된 정책이라기 보다는 보수당 입장을 따르는 정부 인사의 의견일 뿐이다. 그리고 2027년까지 수신료 존속이 보장되어 있기에, 2028년 수신료 폐지를 위해서는 2024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 정권의 승리와 수신료 대안 모델이 제시되어야만 가능하다. 특히 일부 북유럽 국가에서는 수신료를 공공서비스세로 전환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수신료 폐지로 나타나지만, 보다 장기적이고 중립적인 차원에서 공영방송 재원 확립을 위한 조세화 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과 맥락은 애써 외면하면서 수신료 문제를 통해 공영방송을 겁박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꼼수는 꼼수일 뿐이다. /김은규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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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11 17:34

지역특화형 비자 제도의 성공 조건

한국의 주민등록인구는 2019년 11월 말 정점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발발 이전에 인구감소가 시작되었고, 그 후 더욱 심화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에 근거를 두고, 2021년 10월 전국 89곳을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했다. 전라북도에서는 전주·익산·군산·완주 4곳을 제외한 10개 시∙군이 인구감소지역에 들었다. ‘지방 인구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지방자치단체 기금관리기본법’에 근거하여 2022년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조성하여 향후 10년 동안 매년 1조 원씩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했고, 외국인 우수인재 또는 외국국적동포 가족을 지역사회에 정착시키려는 ‘지역특화형 비자 제도’ 시범사업에 착수했다. 국회는 2022년 6월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을 제정했고, 올해 1월 1일부터 그 법을 시행하고 있다.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은 인구감소지역의 산업구조, 일자리 현황, 지역대학과의 연계성 등을 고려하여, 해당 지역에 적합한 외국인의 정착을 장려하고, 생활인구 확대, 경제활동 촉진, 인구 유출 억제 등을 목적으로 한다. 구체적으로, ‘지역 우수인재 체류 제도’(유형1)와 ‘재외동포와 가족 체류 제도’(유형2)의 두 가지(two track)가 있다. 유형1은 지역의 대학 유학생이나 지역에서 일하는 외국인이 5년 이상 체류한다는 조건에서 선발되면 거주(F-2) 체류자격을 부여하고, 배우자와 미혼자녀 등 가족 초청도 허용한다. 유형2는 중국 조선족, 구소련 고려인 동포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으로, 방문취업(H-2) 체류자격 소지 동포 가족이 인구감소지역으로 이주해 2년 이상 거주해 정착하면, 체류 기간 3년 이내의 재외동포(F-4) 체류자격을 부여하고, 체류기간 연장을 허용한다. 이 두 유형 모두, 당사자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방문동거(F-1) 체류자격을 가진 배우자 역시 해당 지역사회에서 취업할 수 있다. 지역특화형 비자 제도는 지방자치단체별 고유한 인력 수요를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생활인구 확대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이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음 네 가지 사항에 유념해야 한다. 첫째, ‘지역특화형 비자’가 외국인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제도라는 점을 빌미로, 단순한 서류 작성 대행을 넘어서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 브로커가 창궐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 예방대책을 수립하여 철저히 집행하는 한편, 지역사회에 적합한 우수인재를 선발하는 장치를 갖춰야 한다. 둘째, 지역 우수인재 또는 재외동포와 가족에게 적합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인 주민도 끌어당길 만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산업단지와 지방자치단체의 협력사업 등 다양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셋째, 외국인 고용허가제와 ‘지역특화형 비자 제도’의 연계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비전문취업(E-9) → 특정활동(E-7) → 거주(F-2) → 영주(F-5)로 이어지는 기존 경로를 대폭 손질해야 한다. 넷째, 지역특화형 비자 제도의 목표와 기본 원칙을 정립하고, 성과 평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것은 부정적 효과를 줄이고,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이다. 이 조건을 충족해야만, 외국인이 인구감소지역에 정착함으로써 생산과 소비 활성화가 이루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 지역사회 활력 증진과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이룰 것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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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04 15:19

'더 글로리'의 권선징악과 진영 간 학폭 대응의 변화

최근 학교폭력 대응 방안으로 학폭 내용을 생기부에 기록하는 조치를 강화하고 대학입시까지 불이익을 주겠다는 교육부와 대학 관계자들의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학폭 내용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조치’는 2012년 도입되었다. 생기부에 기재하고 보존하는 최대 기간은 초·중학교의 경우 5년, 고등학교 10년이었다. 하지만 2013년 고등학교도 5년으로 단축되고 심의를 거쳐 삭제할 수 있게 됐고 2014년에는 최대 보존 기간이 2년으로 단축됐다. 당시 생활기록부에 학폭 내용을 기재하는 것에 가장 극렬히 반대했던 진영은 진보 교육감으로 알려진 인사들과 관련 교육단체였다. 최근 윤석열 정부에서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이 고교시절 학교폭력에 대한 대응에 문제가 있음이 밝혀지면서 하루 만에 사퇴 의사를 밝혀 논란이 되었다. 정 변호사 아들의 학폭으로 인해 피해자는 정신과 병원 진료를 받았고 '자살 위험 진단'을 받았으며 상태가 심각해진 피해자는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이르렀다. 반성은커녕 정 변호사는 아들의 대학입시를 위해서 소송을 이어 갔다. 피해자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고, 가해자는 서울대에 진학해서 대학 생활을 누리는 중이다.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더 글로리’가 세계적으로 흥행하게 되고, 정 변호사의 아들 학교폭력 사건과 맞물리면서 학폭 가해자들에 대한 심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교육부의 대응 방안과 함께 이미 정시 전형에 학폭 이력을 반영하고 있는 서울대에 이어 연세대와 고려대, 중앙대와 한양대 등 학폭 이력을 정시에 반영하기로 했다. 이러한 발표가 이어지자 보수언론의 한편에서 형사 범죄도 불이익을 주지 않는 대입전형에 학폭으로 불이익을 준다면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수년 전 진보, 보수언론과 관계자들의 부딪침이 정반대로 나타나거나 이전의 비판적 논쟁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형국이다. 학폭 가해 학생이 줄어 든다면 가해 사실을 생기부에 기록해야 한다. 대학입시 또한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현 제도에서 정 변호사와 같이 권력을 가진 이들이 엄청난 돈을 들여 소송을 이어간다면 생기부에 기재가 되고 대학입시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다. 어쩌면 학교에서 일진으로 통하는 청소년들만 낙인찍는 도구로 사용되고(이들이 권력과 돈이 있고 서울대 갈 성적은 될까?), 오히려 상위권 대학에 입학하면 안 될 정도의 학폭 가해자들이 교묘히 법적 처벌을 피해 가는 일을 만들어 내지는 않을지도 걱정이다. 정책이 잘 보완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매번 어떤 사건이 있을 때마다 만들어지는 제도의 허점에 진보, 보수로 나뉘는 정치권의 계산이 우리 사회의 불행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닌지. 진영별 유불리에 따라서 주장하는 정책이 다른 자들의 논리에 속지 않았으면 좋겠다. 죄지은 자 죗값을 받게 하고, 죄에 대한 아픔을 알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입시 문제로 인한 경쟁과 억압적 교육 환경을 타파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매번 정파적 이익에 따라서 복무하는 이들의 논리에 따라 청소년의 힘겨움만 커진다. 이들에 의해 구조적인 아픈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이들은 그 누구도 아닌 학생으로 통칭하는 청소년들이라는 말이다. /정건희 청소년자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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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28 18:54

학교여, 카르페 디엠을 허하라!

'카르페 디엠'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영화 속에서 키팅 선생(로빈 윌리암스)은 대학 진학에 짓눌린 학생들에게 줄곧 '카르페 디엠'을 외친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시키지 말고 청춘의 욕구와 감정을 맘껏 발산해라.”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라틴어다. 직역하면 '지금 (병 마개를) 따라', 내일을 위한다며 아끼지 말고 오늘 '현재를 즐기라'는 뜻이다. 카르페 디엠은 로마시대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처음 등장한다. "짧은 인생, '현재를 즐기게'. 미래에 대한 믿음은 최소한으로 줄이고.."('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 '카르페 디엠'을 영어는 ‘Seize the day(오늘을 붙잡아라)’로 번역했다. '오늘, 이 시간을 소홀히 흘려보내지 말고 꽉 붙잡아라'가 되겠다. 우리는 이를 '현재에 충실하라'로 해석한다. '즐겨라'를 '충실하라'로 번역하는것은 산업화시대의 ‘근면’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명백한 오역이다. '즐기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도 한몫했을 것이다. 즐기는 건 나쁜 것일까? 호라티우스는 에피쿠로스학파, 쾌락주의자다. 쾌락주의는 쾌락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다. 쾌락이 곧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쾌락주의자인가? 에피쿠로스는 한순간의 감각적 쾌락은 오히려 불쾌감을 일으키기 때문에 쾌락에 방해가 된다고 했다. 그는 감각적 쾌락보다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명상에 집중했다. 즐거움은 좋은 친구와의 대화, 등산, 게임 등 취미활동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사람마다 쾌락의 포인트가 다를 것이다. 나의 경우 강렬한 쾌락은 새로운 것을 발견할 때, 깨달음을 얻을 때 일어난다. 독서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근본적인 질문을 품고, 그러다 문득 깨우침이 생길 때 비할 수 없는 쾌감을 느낀다. 감각적 쾌락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좋은 그림을 보는 눈, 판소리를 듣는 귀, 맛을 느끼는 미각은 절로 생기지 않는다. 훈련(공부)을 해서 감각을 개발해야 한다. 정작 문제는 자신이 무엇을 즐거워하는지, 언제 행복한지를 느끼지 못하는 데 있다. 내 아이들 어릴 적부터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길을 가라고 충고했는데, 아이가 대학 갈 때 말하길 “아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게 참 어려워요”한다. 직장에 들어간 지금도 잘 모르겠단다. 미래교육은 아이들에게 ‘맞춤형 교육’을 하는 것이다. 진정 ‘맞춤형 교육’을 하려면 아이들 하나하나가 자신이 무엇을 즐거워하는지를 찾도록 도와줘야 한다. 좋아하고 즐길 때 창의성이 튀어나오고 스스로 독특해질 수 있다. 아카데미상을 거머쥔 봉준호 감독은 감독이 되기 전에도 엄청난 영화광이었다. 그는 오직 좋아하는 일을 했고, 영화가 좋아 영화 말고는 다른 일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을 먼저 하라는 말을 많이 들을 것이다. 이런 말도 기억해야 한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해라. 니체의 말이다. 전북교육은 ‘배움이 즐거운 교실’을 교육의 지표로 삼고 있다. 배움이 ‘즐거워야’ 꿈을 키우며 성장할 수 있다. 학교여, 카르페 디엠을 허하라! /한긍수 전라북도교육청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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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21 18:34

“빼앗긴 개념들의 시대”

위 제목의 표현은 ‘대통령과 언론’을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어느 철학자가 한 말이다. 평소 동일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의 표현을 취하여 쓴다는 것을 먼저 밝힌다. 빼앗긴 개념들에 앞서, 한국 현대사 과정에서 잃어버린 개념들에 대해 먼저 언급해 보자.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동무’와 ‘인민’이다. ‘동무’는 벗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어린 시절 같이 놀던 또래, 나이가 비슷하며 마음이 서로 통하여 가깝게 사귀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동무들아 오너라’라고 시작하는 ‘봄 맞이 가자’라는 동요, 그리고 이은상 작곡의 가곡 ‘동무생각’은 아직도 우리가 즐겨듣는 노래이다. 그런데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 남쪽에서 동무라는 용어는 금기어가 되었다. ‘동무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도 ‘친구 따라 강남 간다’로 바뀌었다. ‘인민’도 마찬가지이다. 인민은 보통 사람들을 의미한다. 정치적, 국적상의 구분 없이 상호 간에 위계가 없는 자연인들의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때문에 학문적으로 세심해야 할 경우 ‘국민’이나 ‘시민’과 구별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1948년 제헌헌법 초안에서는 ‘인민’이라는 용어가 제안되기도 했지만, 이념적 문제로 밀려나고 ‘국민’으로 대체된 바 있다. 위 두 용어는 남북 분단으로 인한 이념 대립 속에서 정치적 금기어가 되었다. 함부로 사용했다가는 서슬 퍼런 국가 기관에 불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새로운 이념 대립의 시대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금기어가 되어 해당 단어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보수의 용어로 전용되면서 본래 의미가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빼앗긴 개념들의 시대이다. 현 통치 권력과 그 도우미들이 주로 언급하는 자유, 공정, 정의, 법치라는 용어가 그렇다. 자유를 강조하지만 자본의 자유에만 중심이 실린다. 공정을 부르짖지만 차별은 애써 외면한다. 법치는 그들만의 편익과 통제를 위해 적용된다. 같은 편들은 옹호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억압하는 통치 과정에서 자유, 정의, 법치와 같은 개념들이 동원되고 있음이다. 이 속에서 정의가 무엇인지는 논의하기조차 힘들다. 행사장의 퍼포먼스에서도 개념의 전용이 일어난다.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민중의 노래’는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약자들을 대변하는 내용이다. 그러한 노래가 보수 정당의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입장의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니 가히 빼앗긴 개념의 시대이다. 온라인에 조롱과 풍자가 올라오고, 모욕을 느꼈다는 반응이 많은 것은 어이 상실된 개념 때문이다. 과거 보수정부 시절 ‘임을 위한 행진곡’ 같은 노래를 애써 외면하거나 반대했던 것은 그나마 개념은 있었던 셈이다. 지금의 보수 정권은 무지하거나 아주 뻔뻔하거나, 둘 중의 하나인 듯하다. 빼앗긴 개념들의 시대에는 갈라치기 전략이 내재되어 있다. 규범적 수사들을 통해 얼핏 원칙을 내세우는 것 같지만, 실상은 피아(彼我)를 구분하면서 적대감을 키우고 자기 세력을 결집시키는 정치 과정으로 이어진다. 취임식에서 비판했던 반지성주의의 전형을 현 대통령 자신이 직접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위 철학자의 지적이다. 그 때부터 빼앗긴 개념들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리라. /김은규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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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14 16:26

경로의존성과 혁신

아이작 뉴턴이 발견한 ‘사물의 운동 법칙’ 중 하나인 ‘관성의 법칙’은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데도 적용할 수 있다. 사람들은 특정 사회제도 또는 관행에 익숙해지면 시대가 변해 그것이 비합리적으로 되더라도, 그 제도·관행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보통 고착효과·매너리즘·타성 등으로 비판하지만, 때로는 전통·관습으로 미화하기도 한다. 사회과학에서는 이를 경로의존성이라 한다. 경로의존성은 기술문명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 특정 기술이 축적 발전을 지속할 때는 합리성 문제가 없지만, 해당 기술 패러다임이 바뀌어 신기술과 비교할 때 기존 기술은 비합리적인 것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구성원 모두가 휴대폰을 갖고 있음에도 집에 유선전화를 두고 있는 가족, 이메일 또는 SNS 등 정확하고 신속한 방식으로 문서를 보낼 수 있음에도 팩스를 주로 이용하는 회사 등, 그 사례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나라 간 비교를 해보면 ‘문화의 수수께끼’를 종종 발견한다. 왜 영국·일본·호주·뉴질랜드·인도·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에서는 좌측통행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우측통행하는가? 왜 미국·미얀마·라이베리아만 미터법 도량형 체계를 따르지 않는가? 세계 각국의 정격전압이 통일되어 있지 않고 110볼트, 220볼트 등으로 제각각인 까닭은 무엇인가? 일본 정부와 기업은 왜 날인(捺印) 관행을 고수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경로의존성에 있다. 비합리성이 그다지 크지 않을 수도 있고, 기존 체계를 바꾸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국의 발전 과정을 보면, 경로의존성을 과감히 탈피한 사례가 여럿 있다. 언론과 출판사는 문서에 글자를 써 가는 방식을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바꿨고, 정부는 정격전압을 110볼트에서 220볼트로 변경했으며, 보행 방향을 좌측통행에서 우측통행으로 바꿨다.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었으나, 안에서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성과를 달성했다. 이처럼, 기존에는 없었던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사회적 행위를 혁신이라 한다. 특히, 인공지능의 발달로 사회구조가 크게 바뀐 상황에서 ‘합리성을 상실한’ 제도·관행은 과감히 바꾸어야 한다. 플랫폼 사회에서 정부·지방자치단체의 시장·시민사회 규율 방식은 개발 연대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라져야 한다. 계절이 바뀌면 옷을 갈아입듯, 사회적 여건이 변화하면 기존 제도·관행은 재편해야 한다. 더구나, 이제 한국은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선진국이고, 인구는 감소하고 있으며, 노인인구 비율이 계속 높아지고, 지역 불균형 발전의 심화로 ‘지방소멸’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과거의 성공 모델에 집착해 기존 제도·관행을 고수하는 것을 멈추고 혁신의 방향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김관영 전라북도지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10년간 로드맵을 그려 전라북도 인구의 10%인 18만 명 규모로 외국 인재를 수용하려는 구상을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정보기술 산업 분야에서 우수 외국 인재를 받아서 산업 경쟁력을 키운다는 방침”이라는 혁신 방향에 공감한다. 그 혁신이 성공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져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우수 외국 인재에게 일자리를 공급함과 동시에 한국 인재에게 적합한 ‘좋은 일자리’를 대량 창출할 수 있어야 하고, 외국 인재가 수도권으로 이탈하지 않고 전라북도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설동훈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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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07 18:45

나는 꼰대일까?

‘쇼츠’나 ‘릴스’ 보는 것을 좋아하는 막내에게 한마디 했다. “네가 하루 10시간 스마트폰 해도 좋은데 조금 의미 있는 것을 하면 어떠니?”, 그러자 “아빠, 뭘 할 때 모두 의미가 있어야 해?”라며 되묻는다. “아니 모두 의미 있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긴 시간 뭘 하는데 의미 없이 하는 것은 삶에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서 그러지. 차라리 영화나 다큐를 보면 어떠니? 웹소설도 좋다.” 이제 중학생 되는 아이가 “알았떠.”라고 대답. 반응이 떨떠름해 보였다. 내가 국민학생 때 두꺼운 종이를 접어 만든 딱지부터, 문구점이나 동네 구멍가게에서 구입한 만화 캐릭터 그려져 있는 딱지를 친구들과 게임 해서 열심히 모으는 게 일이었다. 어느 때인가 딱지를 많이 땄다. 그 순간 이게 무슨 소용인가 하는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오락실 알게 되어서 열심히도 다녔다. 게임기에 50원 넣으면 시간 가는지 모르고 하게 됐다. 친구들이 뒤에 서서 구경할 정도가 됐다. 그럴 만도 했다. 학교 가기 전 아침에 오락실 들렀고 방과 후에도 찾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허무했고,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지치기와 오락실 게임과 같은 일은 방법과 내용만 달라졌을 뿐 나이 먹어서도 계속 반복됐다. 무언가 재미나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허무해지고 의미 없는 일의 반복이 삶으로 이어졌다. 꼰대는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였으나 근래에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 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찾아 보니 10대와 20대 꼰대도 넘치는 세상이다. 나 또한 꼰대 짓을 하고 다닌 것은 아닌지? 강의실, 회의실이 주 무대였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교사나 청소년지도사, 상담사 등 청소년과 관계된 사람들 대상으로 강의를 수단으로 내 경험이나 지식이 모두인 것처럼 주장한 일들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삶의 현장은 지구 안에 나만이 아는 먼지 같은 아주 작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막내에게 전하는 내 이야기가 먹힐지 알 수 있다. 내 말이 옳다고 주장하기도 어렵다. 릴스 보다가 상상력이 향상되고 창의력이 넘칠 수도 있다. 어느 순간 허무함을 알게 되고 자신도 깨닫는 성찰의 시간을 가질지 누가 알까? 청소년들이 스마트폰 보는 것에 문제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또 한 면에 이를 통해 배우는 것도 많다. 중요한 것은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인데, 조절 능력은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행하는 모든 일들을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나? 그렇지 않을 거다. 돌아보니 수십 년 전에 열심을 냈던 딱지와 오락실 등이 마냥 허무했던 것은 아니었다. 꼰대 짓이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강연이나 회의장에서 진정성 다해 어떤 본질에 대해 가슴으로 만난 일을 전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 순간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받아들이는 것은 타자가 선택해야 할 문제다. 말의 중심에 진실이 있다면 이미 꼰대는 아닌 게 된다. 다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꼰대라고 하면 꼰대다. 타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우선시 되고 이후 그가 복이 될 수 있도록 제안이나 가치를 설명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배움이 크다는 것. 살다 보니 그 정도는 알겠다. 써 놓고 보니 막내에게 배움이 컸다. 나는 꼰대일까? /정건희 청소년자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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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21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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