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6-06-19 22:08 (금)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새벽메아리

지역사회 돌봄의 의미

구준회 농촌사회학 연구자 미래사회가 마하(Mach)의 속도로 오고 있다. 매일 새로운 기술 개발 소식이 뉴스를 가득 채운다. 그만큼 우리가 맞이할 미래사회는 현재의 모습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래사회를 결정하는 변수를 인구구조, 기후위기, 융합기술(첨단기술) 세 가지로 설명한다. 원광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흥주교수는 인구구조의 변화추이에 따른 생산가능인구의 급격한 변화에 대해 설명하며, 2024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인 0.78명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2020년 기준 3,762만 명인 생산가능인구는 2070년 1,533만 명으로 감소하게 될 것이며, 이는 사회 재생산의 불가함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현재 수준인 3,700만 명 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합계출산율이 2.1명은 되어야 하는데 현재의 구조로 보았을 때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미래사회를 결정하는 두 번째 변수는 기후위기이다. 지난 10년간의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 추이를 살펴보면, 12.8°C 이었던 2014년의 연평균 기온이 2023년에는 13.7°C 로 상승했다.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된 2024년의 연평균 기온은 더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기후의 변화는 단순한 변화를 넘어서서 ‘위기’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 주식인 쌀의 재배만 보더라도 유례없는 고온으로 생산성은 떨어지고, 벼멸구와 같은 병충해 피해도 심각하다. 이는 식량의 재배 조건이 앞으로는 스마트팜과 같은 첨단기술을 요함을 의미한다. 당연하게도 이는 식량의 생산비 증가로 이어지고 있으며 농업을 자본집약적 산업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또한 이는 식량안보 문제와 깊은 관계가 있으며 인간의 보편적 권리인 ‘먹거리기본권’ 문제와 직결된다. 기후재난과 더불어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감염병 또한 미래사회를 결정짓는 주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세 번째 변수인 융합기술(첨단기술)은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활용으로 노동과정의 변화, 즉 인간노동의 대체와 전환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스마트팜, 원격진료와 같은 산업구조의 변화를 불러올 것이며, 가상공간과 비대면 관계의 확대, 초개인화 사회 등 사회구조의 변화를 유발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이러한 변화에는 첨단기술의 일상화, 가상공간의 확대 등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하지만 분절과 갈등, 불신이 증폭되는 상태, 디지털 격차, 부의 집중화 등 부정적인 측면도 동시에 존재한다. 김흥주교수는 기술변화에 따른 미래사회를 ‘개인화된 사회’, ‘파편화된 사회’, ‘계층화된 사회’라고 정의하였다. 이는 2030세대의 자발적 선택에 따른 비혼, 가족의 해체, 공동체의 붕괴를 의미하고 이러한 현상은 사회의 분절과 폐쇄, 혐오를 양산한다. 이러한 미래사회의 부정적인 현상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러한 부정적 측면을 해소할 수 있는 미래사회 구성원의 능력에 대해 김교수는 조화, 이해, 감성, 연대와 같은 ‘교감력’과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사고, 사회적 책임감을 키우는 문제해결 능력, 지속적인 학습 및 적응능력과 같은 ‘통찰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결국 개인화, 파편화, 계층화된 사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돌봄’의 실천에 있다. 각종 인프라가 취약한 농촌지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돌봄은 인류만이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고 어쩌면 지역사회의 돌봄 능력은 급변하는 미래사회에서 인류가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일지 모른다. 구준회 농촌사회학 연구자

  • 오피니언
  • 기고
  • 2024.10.22 17:45

소리로 통하는 공동체, 시민오케스트라

최규혜 남원시공동체지원센터 사회적경제팀장 첫눈에 반하는 사건은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 같지는 않다. 스무 살 무렵 등산길에서 마주쳤던 흐드러진 산딸나무에 반했었고, 어느 출근길 이어폰에서 랜덤으로 재생되던 선율에 반한 적이 있다. 예상치 못한 눈물 한 방울을 툭 떨어지게 했던 소리의 발상지는 클라리넷이라는 악기였다.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전문 클래스도 전공자도 드문 소도시에서 클라리넷이란 흡사 우유니 소금사막처럼 나의 일상과 동떨어진 찬란한 존재 같았다. 놀랍게도 불과 1년 후에 당시 근무하던 조합 홍보 현장에서 우연히 클라리넷 연주를 접하고 동아리를 추진해 스승을 모셨으니, 나의 관악 입문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각자의 사연들이 모여 반짝이는 하모니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남원윈드오케스트라는 플루트, 클라리넷, 색소폰, 트럼펫, 트럼본, 유포니움, 호른 등 다양한 관악기 동호인 30여 명으로 결성된 아마추어 시민 연주단이다. 88회 춘향제 길놀이를 미리 준비하기 위한 시민참여 프로젝트로 2017년에 창단되었다. 당시‘매력적인 직업계고’육성사업에 선정된 남원용성고등학교와 다양한 시민 동아리를 운영 중이던 남원생협, 춘향제전위원회와 한국음악협회 남원지부가 4자 협약을 통해 음악을 통한 시민화합에 뜻을 모았다. 한 달여 만에 40명이 넘는 단원들이 모였는데, 남원지역 중장년 세대의 학창 시절 명물이었던 남원농고(현 용성고) 관악부 출신들이 대거 합류하였다. 농부, 자영업자, 교사, 공무원, 은퇴자 등 각계각층 시민들과 용성고등학교 방과후 관악반 학생들까지 10대부터 70대가 함께한 88회 춘향제 길놀이를 본 지역 어르신들은 예전 남원 농고의 시가행진을 다시 보는 것 같다며 반가워했고, 여행 감독 고재열 기자는 SNS를 통해 춘향제 소감을 이렇게 회고하기도 했다. ″……인상적인 것은 퍼레이드였다. 동원형이 아니라 자율형이 분명했다. 스스로 즐기기 위해 나왔다. 다른 축제가 결코 풀지 못한 숙제를 이미 푼 상태다…….″ 중창이나 합창, 합주를 한 번이라도 경험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의 소리를 내는 것보다 남의 소리를 잘 듣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 각자가 표현하는 부분들이 만나 조화로운 화음을 이룰 때 뭉클한 감동과 희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처럼 오케스트라는 몸으로 공동체의 원리를 체득하는 교육의 장이며, 비대면 시대에 더욱 특별한 대면의 장이기도 하다. 오케스트라가 지역에 안착하려면 사람과 공간, 시간의 누적이 모두 필요한데, 그중에서도 관건은 바로 공간이다. 큰 합주 공간 하나와 다수의 작은 파트 연습공간이 정기적으로 필요한 특성상, 지역의 유휴 공간과 잘 연결된다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다양한 예술 동호회가 공유하는 공간이 있다면 장르를 넘어 소통하는 생활 문화의 허브가 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에는 다양한 전문 오케스트라와 시민 오케스트라가 있고, 65개의 초중고 학교 오케스트라가 있다. 14개 시군에 모두 분포된 보석 같은 존재들이다. 수도권 쏠림 현상으로 전문 예술인 유출도 심각한 지경인데, 문화 예술 생태계를 지켜내는 작은 보루로서 지역 오케스트라는 정책적으로 육성할 가치가 충분한 영역이다. 오는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남원 광한루원 일대에서 진행되는 문화의 달 축제에 남원윈드오케스트라가 완월정 무대에 오른다. 시민 오케스트라 또 한 번의 비상이 기대된다. 최규혜 남원시공동체지원센터 사회적경제팀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4.10.15 16:41

미술관과 도서관

전주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특색 있고 재미있는 도서관들을 마주할 수 있다. 학산숲속시집 도서관, 다가여행자도서관, 연화정도서관 등 기존의 도서관과는 다른 편안한 분위기에서 책과 함께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공간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도서관은 여러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고 그 결과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또한 전주에서는 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 전주도서관여행 등 문화 행사가 열리고 있어 언젠가부터 전주는 책의 도시가 되었다. 그런데 미술관은 어떠한가. 책과 미술 작품은 대중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 영역 중 하나일 만큼 문화생활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분야이다. 그리고 미술관과 도서관은 공공에게 문화의 기회를 공적으로 제공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리 지역에는 전북도립미술관을 비롯하여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여러 사립 미술관이 있다. 하지만 수도권과 비교해 보았을 때 다양한 전시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여 문화적 불평등이 존재하는 지역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특색 있는 다양한 전시를 지속적으로 마련할 만큼 미술관 입장에서도 운영 자체가 쉽지만은 않다. 전주 한옥마을 근처에는 서학동 예술마을이 있다. 1980~1990년대 옛 골목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이곳에는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갤러리와 공방들이 많이 모여 있다. 서학동사진미술관, 구석집, 적요쉼쉬다, 서학아트스페이스 등 여러 전시 공간들이 있고 작가들도 자신의 작업실과 공방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며,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그러나 전주에 오면 한옥마을은 누구나 다 찾고 있지만 서학동 예술마을은 옛 모습 그대로 구석구석 볼거리가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한옥마을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전주시에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도서관과 함께 미술관을 운영하는 등 미술관 저변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한 예로 서학동 예술마을에 위치한 서학예술마을도서관에는 담쟁이갤러리라는 전시 공간이 운영되고 있다.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미술 작품 감상의 기회를 함께 제공한다면 풍부한 문화의 경험을 동시에 할 수 있고 사람들이 미술을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둘째, 소규모 미술관에 재정적 지원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도립미술관이나 시립미술관 등 규모가 큰 미술관만이 미술관으로서 역할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동네의 작은 미술관이 때로는 독특하고 특색 있는 전시로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음에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지속적인 계획을 세우기가 어렵다. 미술관 입장에서도 지원을 받게 된다면 좀 더 책임감을 느끼며 품격있는 전시를 마련하고자 고심할 것이다. 셋째, 아파트 재개발, 재건축시 커뮤니티센터에 전시 공간을 마련하는 조례를 제정했으면 한다. 일상적인 삶의 공간에서 미술 작품을 가깝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예술과 문화가 우리 삶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주가 도서관에 심혈을 기울여 책의 도시가 된 것처럼 미술관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하게 된다면 더 생기있고 품위 있는 멋진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변화와 성장이 더디고 인구도 줄어 경제적으로 위축된 작은 도시이지만 정서적으로 예술적으로 행복하고 풍요로운 도시, 전주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유가림 유휴열미술관 관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4.10.01 16:06

노력도 재능이다

인생에서 죽어라 노력했는데 실패를 경험했던 적이 있는가? 필자는 온 힘을 다해 노력했지만 어느 한계치 이상은 도저히 뛰어넘기 어려웠던 순간을 기억한다. 어쩔 수 없이 포기했지만, ‘내 노력 부족’이라고만 하기에는 분명 억울한 측면이 있었다. 성공의 비밀 ‘1만 시간의 법칙’을 기억하는가? “특정 분야에서 아웃라이어(보통사람의 범위를 뛰어넘은 사람)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행동경제학자들은 ‘1만 시간의 법칙’을 매직넘버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재미있는 책 하나를 접했다. 연세대 김영훈 교수의 <노력의 배신>이다. 이 책에서는“1만 시간의 법칙은 틀렸다”라고 주장한다. 잭 햄브릭 미국 미시간주립대 심리학과 교수가 1만 1135명이 참여한 88개의 연구를 분석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노력한 시간이 실력의 차이를 결정짓는 비율은 4%에 불과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늘 공부하라고 잔소리하지만, ‘공부를 잘하는 것’에 ‘노력’이라는 변수의 영향은 미미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어쩌면 최선의 노력으로 공부를 잘하게 되었다는 것도 우리의 착각”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믿는 것만큼 노력이 성공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재능과 비교한다면 노력의 역할은 초라하며, 심지어 “노력은 성실성을 기반으로 하는데, 그런 성격도 큰 범주에서는 재능의 영역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럼, 이 책의 교훈은 ‘노력하지 말자’일까? 대부분 사람들은 노력보다 더 중요한 조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우리 삶이 더 비참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역설적으로 노력 신드롬에 빠질수록 우리의 삶은 더 비참해진다고 말한다. 취직이 안 되고, 돈을 충분히 벌지 못해 부모님의 병원비, 자녀의 학비가 부족한 것이 단지 개인의 노력 부족 탓일까? 어떤 실패를 사회적·구조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노력 부재만으로 몰아가는 우리 사회가 노력의 힘을 과신하고 악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노력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무조건적 노력 맹신 태도를 경계하고, 우리의 노력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적합한 곳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실패는 노력 부족 탓일까?” 당신이 지금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면, 교만하지 않아야 한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과 운, 특별한 환경이 그 성공을 도왔을 것이다. 그 성공에는 분명 당신의 피나는 노력도 필수적으로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노력도 사실, 타고난 성격이 산만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며,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노력도 빛을 발한 것이다. 따라서 성공한 사람은 성공의 혜택을 주변 사람들과 나눌 줄 알아야 한다. 또한, 타인의 실패를 “노력 부족”이라고 함부로 탓해서도 안 될 것이다. 반면, 당신이 재능 없음을 현재 노력으로 극복하고 있다면, 당신은 역설적으로 ‘재능 있는 사람’이다. “노력”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재능 없는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도 아니다. “노력도 재능”인 것이다. 노력 이외에도 수많은 변수들이 성공과 실패를 가름한다. 뜨거운 가슴으로 노력의 열정을 불태우되, 항상 노력에 비례해서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도 명심하자. “현재의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당신, 좌절 금지!” /송상재 전북특별자치도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4.09.24 17:14

중요한 것은 서로 돌보려는 마음

농촌에서 산다는 것은 인구 과밀인 도시를 벗어나 여유를 누릴 수 있음을 뜻한다. 하지만 여유로운 것이 때로는 과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필자는 2013년 10월에 순창군으로 귀촌하였다. 당시 순창군 인구는 3만 명 정도였다. 하지만 11년이 지난 현재 10%가 넘는 인구수가 감소하였다. 그나마 저녁에라도 북적였던 읍내 거리에서 이제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이는 어느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3년 12월 31일 기준, 전북특별자치도의 총 인구수는 175만4757명이며, 이중 약 67%에 해당하는 117만2743명이 전주, 군산, 익산시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난다(전북특별자치도 누리집). 역으로 말하면 33%의 인구만이 3개의 시를 제외한 11개 시·군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도 내에는 417개의 국·공립 초등학교, 210개의 공립 및 사립 중학교, 133개의 국·공립 및 사립 고등학교, 10개의 공립 및 사립 특수학교가 있다. 전북특별자치도에 살고 있는 어린이, 청소년의 수는 19만 5000여 명이다. 하지만 이 역시 전주, 군산, 익산시의 어린이, 청소년 수가 도 전체의 74%를 상회한다(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누리집). 위의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한마디로 농촌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없다는 것은 효율성에 입각한 시장주의원리가 농촌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는 농촌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각종 사회서비스를 제공받기 힘듦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사람의 기본권 보장문제로 연결된다. 사람의 기본적인 권리 중 하나인 ‘먹거리기본권’은 누구나 안전하고 깨끗한 음식을 원하는 때에 쉽게 섭취할 수 있어야 함을 뜻한다. 특히 신선한 채소와 과일의 섭취는 사람이 건강을 유지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오늘날 면 단위에서 식료품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농협 ‘하나로마트’에는 기본적으로 저장성 높은 공산품이 주를 이룬다. 신선하고 영양가 높은 식품은 찾기 힘들다. 이런 현상을 농어촌 지역의 ‘식품사막화’현상이라고 한다. 도시에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신선한 채소·과일 등을 구입할 수 있는 식료품점이 즐비하다. 하지만 농촌에서는 그런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서 차를 타고 이동하여야 한다. 농촌에서 신선한 먹거리를 구입할 수 있는 식품점을 찾는 것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과 같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 방법은 ‘함께 식사’하는데 있다. 하지만 고령인구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은 농촌마을에서는 이미 조리활동이 가능한 연령의 주민이 없는 경우도 많아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과제이다. 이런 경우 지자체가 마을공동식사를 학교급식과 같은 ‘공공급식’으로 인식하고 완성된 도시락 형태의 식사를 공급하는 등 다양한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체계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조례, 예산, 실행기관이 세워져야 한다. 즉 시간과 돈이 든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인구과소화로 인한 기본적인 사회서비스를 보장받을 수 없다면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해결을 위해 나서야 한다. 소소해 보일 수 있지만 정기적인 함께 밥해먹기, 먹거리 나눔 등 협동과 호혜적 관계에 기반을 둔 사회적 ‘돌봄’ 활동이 필요하다. 돌봄은 또 다른 돌봄을 부른다고 믿는다. /구준회 농촌사회학연구자

  • 오피니언
  • 기고
  • 2024.09.10 17:50

지리산 청소년 자유공간 청온(ON)과 사회적경제

막내아들이 중학교 시절, 학교에서 수목원으로 소풍 가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농촌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늘 자연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래도 수목원은 좀 특별한 공간이지 않냐고 물으니, 본인에게는 전라북도 자체가 거대한 수목원처럼 느껴진단다. 그때 아이 마음속에 우리 지역이 답답한 이미지라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꽤 무거웠었다. PC방도 독서실도 마트도 완행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 해결이 되는 시골이란, 사춘기 청소년에게 별 매력 없는 자연만 가득한 황무지 같은 곳이었을까. 귀농해서 두 아이를 낳아 성인이 되도록 키워보니, 공교육의 물적 자원은 농촌이 도시보다 훨씬 풍요롭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대부분의 교육비가 지원되고, 초등학교 때는 혁신학교로 지정되어 다양한 현장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지역아동센터와 마을학교를 통해서 돌봄도 가능했다. 하지만 농촌의 청소년들에게는 그들이 숨 쉴 공간이 없다. 중심지 활성화 사업을 통해 면 소재지에 도서관과 코인노래방이 생기고 카페도 생겼지만, 누구네 자녀라는 보이지 않는 명찰을 찬 아이들에게는 숨은 끼를 발산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도모해볼 수 있는 안전하고 섬세한 아지트가 필요하다. 지난 8월초 남원시 인월면 지리산 SOC에 청소년 자유공간‘청온(ON)’이 개관했다. 남원에서 지리산권으로 불리는 운봉읍과 인월면, 아영면, 산내면에 사는 9세부터 24세까지 청소년들의 전용공간으로 4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조성한 공간이다. 댄스와 밴드 연습실, 커뮤니티룸, 스터디카페 등의 다목적 공간으로 9월부터 이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청온(ON)은 운영 특성을 ‘청소년의 자치와 참여에 중점을 둔 특화 공간’이라고 선언했다. 이는 청소년을 일방적인 이용자가 아니라 공간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주체이자 파트너라고 표현한 것이다. 또한 4개 읍면의 거점으로서 지리산권이라는 공감대를 가진 청소년들이 서로를 알아가고 다양하게 교류하여 동네에서 확장된 경험을 갖게 할 수 있다. 농산촌지역에 청온(ON)을 싹 틔우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친 주민 활동이 있었다. 학부모 단체로 시작하여 2019년에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창립한 지리산마을교육공동체는 이동거리가 멀어 고질적으로 방과 후 교사 구인이 어렵던 지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만든 주민 조직이었다. 지리산권 읍면 8개 초·중등학교의 방과 후 교육을 위탁받아 귀촌인 중에 전문성을 가진 이들을 강사로 발탁하여 학교와 마을을 연결하고, 권역 안에서 학교와 학교를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한 권역 내 4개 중학교 자유학년제 교육을 통해 지역의 아이들이 읍면 단위를 넘어 서로 협력하고, 서울 수도권 학생들과 교류하는 특별한 경험을 만들기도 했다. 교육을 통한 지역의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지리산마을교육공동체는 학부모 및 교육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함께 배우고 소통하며 성장할 수 있는 큰 그늘 역할을 하였다. 공교육 위탁 및 자체 활동만으로는 재정 안정이 어려워 2023년에 사회적협동조합은 해산하였지만, 지리산 SOC에 청소년 공간이 안착할 지지대 역할을 하였고 함께했던 이들은 여전히 마을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듯 주민들이 만들어낸 사회적경제 조직은 그 소임을 다하더라도 지역에 의미있는 변화와 사람들을 남긴다. 사회적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단순하게 설립과 해산으로 재단하지 말고 지역에서 창출한 협력의 자산으로 가늠해야 할 것이다. /최규혜 남원시공동체지원센터 사회적경제팀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4.09.03 16:15

그림 사는 재미

2022년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전시를 보러 갔다. 입장을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리는데 굽이굽이 이어진 줄이 앞으로 조금씩 이동할 때마다 곧 작품을 볼 수 있겠구나 싶은 마음에 지루한 줄도 모르고 참으로 설레었다. 몇 시간 후 드디어 전시장에 입장했을 때 가슴이 벅차 올라왔다. 한 개인이 오랜 시간에 걸쳐 수집한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흔적들과 극히 일부의 작품이라 하지만 소장자의 노고와 안목에 위대함을 느꼈다. 집 안에 걸려 있는 그림 한 점은 내 삶에 여유와 쉼을 줄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막상 미술품을 구매하는 데 있어서는 선뜻 용기 내기가 쉽지는 않다. 자기만의 기준이 있으면 작품 선택에 어려움이 없겠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에는 내가 과연 이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예술품을 보는 시각은 너무나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에 또한 정해진 답이 없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그림을 구매해 본 사람이라면 다른 작품들도 갖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쉽다. 그림을 보는 안목이 싹트면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들이 생기게 되고 이러한 미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그림에 더 가깝게 다가간다. 그림을 구매하게 될 때 작품을 소장한다는 표현을 한다. 그리고 그림을 구매하는 사람을 컨슈머(consumer, 구매자)라고 하기보다는 컬렉터(collector, 소장자)라고 말한다. 조금은 다른 표현, 그 이유는 무엇일까. 미술 작품에는 작가의 시간, 노력, 생각이 담겨 있어 일반적인 물건을 사는 경우와는 다르다. 이러한 예술적 가치를 가격으로 책정하기도 어렵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에 부여된 작품 가격을 믿고 결정한다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그림을 취한다는 것은 작가의 지나온 시간과 작업을 함께 공유하고 느끼는 것이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작품에 내재된 예술적 가치를 느끼게 될 때 작품 소장으로 이어지게 되고 작품을 작가만큼이나 아끼는 진정한 컬렉터가 될 수 있다. 컬렉터 중에는 작가의 경제적 지원을 위해 작품을 구입해 오다가 작품을 보는 안목이 생겨 차츰 더 많은 작품을 소장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작가가 작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 넣는 역할을 하면서 작가와 함께 성장하는 기분을 느끼며, 좋아하는 작품들을 하나둘 수집하게 된다면 이 또한 그림 사는 재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최근에는 투자 목적으로 미술 작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실제로 투자 수익을 기대할 만한 작품은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작가의 작품으로 고가의 작품들이 많아 쉽게 접근하기는 어렵다. 또한 그림이 투자의 대상으로 인식될 뿐 미술 작품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므로 지속적인 구매로 이어지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막연히 투자를 위해 그림을 구매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자주 접하면서 작품을 보는 안목을 키웠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다양한 전시를 보면서 여러 작가들에 대해 알아갈 필요가 있다. 내 마음에 위안을 주는 작품이 보인다면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범위에서 구입해 보고 한 두 점씩 모으다 보면 나의 성향과 취향에 맞는 작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술 작품이 주는 힘은 체험하기 전에는 그 위대함을 잘 모른다. 하지만 그 느낌을 한 번 알게 된다면 그림 사는 재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어느 사이에 컬렉터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유가림 유휴열미술관 관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4.08.27 15:38

가면을 벗자

노조위원장인 나는 요즘 입직하는 직장 새내기들을 보면 과거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의 나는 슬프거나 언짢았던 내 감정과 배치되는 웃음을 많이 지었던 것 같다. 당시 조직 분위기는 근무 연수가 적고 어릴수록 “착함”을 강요하는 분위기였다. 현재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화나거나 슬퍼도 감정을 숨기고 웃으면서 말해야 하는 ‘감정노동’을 강요받는다. 소위 “착한 척”을 해야 문제없는 조직 생활을 할 수 있다. 요즘 내 눈에 들어오는 우리 조직의 2~3년 차 정도 되는 주무관이 있다. 궂은일도 척척 잘 해내고 성실하며, 주변 동료들을 잘 돕는 ‘괜찮은 동료’이다. 그 주무관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 나도 모르게 “주무관님은 참 착하세요.”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내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위원장님, 사실 저는 착한 사람은 아니예요. 저는 ‘가면’을 쓰고 있는 거예요.” “가면” 심리학 용어로 “페르소나”라고 한다. 페르소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실제 성격과 다른 개인의 모습이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격’의 의미로 단순히 이해한다면 ‘가면’은 부정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르겠으나, 심리학자 카를 융은 페르소나(가면)를 개인이 외부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회적 얼굴이라고 정의했다. “가면을 써 보세요.” 나는 사회초년생(저연차 새내기)들이 사회 적응과 미래의 성공을 위해 자기가 지향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모습의 가면(페르소나)을 만들어 써 보는 과정을 가졌으면 좋겠다. 페르소나는 이 시대 생존에 필수요소이며, 사회적 기대와 규범에 맞춰 행동하게 하는 중요한 도구로, 이를 적절히 활용하면 사회적 성공의 발판을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 그럴듯한 나로 보이기 위해 ‘그런 척(착한 척, 멋있는 척, 정의로운 척 등)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척’을 수십 년 하다 보니, 이제 내가 그런 척을 하는 건지, 진짜 내가 그렇게 된 건지 모르는 상태가 됐다. 이제는 내 자신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무 불편하고, 참을 수 없다. 이는 페르소나를 적절히 활용하면 나이가 들었을 때 진정한 자아와 사회적 역할 간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페르소나(가면)는 긍정적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칫 페르소나가 심하면 이중성격으로 굳어질 수 있다. ‘직장에서의 나’와 ‘집에서의 나’가 다른 경우가 그 흔한 예일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소설, <지킬앤하이드>에서 지킬 박사는 인간의 페르소나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모습이며, 하이드는 우리 내면의 실체이자 어두운 그림자이다. 페르소나는 정체성 고민과도 연결되어 있다.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이상적인 모습만 보여주다가는 진짜 나의 모습을 잃을 수 있다는 면에서는 페르소나(가면)는 분명 경계해야 한다. 가면이 내 자신을 ‘가짜’로 인식하게 만들고 자기분열, 열등감으로 이어지게 한다면,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페르소나를 과감히 벗어던지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회적 성공을 위해 어느 정도의 페르소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더라도, 내 본연의 모습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 직장에서 “착한 사람”페르소나는 감정소진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현재 내가 직장생활 속에서 감정적 번아웃 징후를 보이고 있다면 오늘 이렇게 해 보길 권한다. “가면을 벗으세요!” /송상재 전북특별자치도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4.08.20 17:30

연구자의 조건과 사회학적 상상력

‘연구자’는 말 그대로 ‘연구’를 하는 사람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연구를 “어떤 일이나 사물에 대하여 깊이 있게 조사하고 진리를 따져보는 일”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렇다면 연구를 하는 연구자는 어떤 조건과 자세를 가져야 할까? 한국 사회학계의 거목인 고(故) 최재석 교수(고려대학교 문과대학)는 그의 회고록에서 연구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으로 묘심(猫心고양이‘묘’, 마음‘심’)을 말했다. 고양이를 지극히 아꼈던 것으로 알려진 최재석 선생이 말하는 ‘묘심’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호기심’이다. 고양이는 특히 호기심이 많은 동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호기심은 주로 탐색 본능에서 비롯된다고 고양이 전문가들은 말한다. 고양이는 자신이 사는 환경을 이해하고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호기심을 갖고 주변을 탐색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호기심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양이는 사람과 다른 동물들과의 상호작용에 호기심을 보이며, 이는 그들의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양이가 새로운 사람(동물) 또는 물건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본능의 일환이다. 어떤 일이나 사물에 대해서 깊이 있게 조사하고 진리를 따져야 할 연구자가 호기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는 듯하다. 최재석 선생이 말한 ‘묘심’의 두 번째 특징은 ‘자존’이다. 고양이는 배가 고프거나 자신의 마음이 내킬 때를 제외하고는 사람 옆에 오지 않는다며 강아지의 복종적인 성격과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또 고양이는 조용하고 차분한 데 비해 강아지는 떠들썩하고 분주하다고 하였다. 반려동물들에 대한 개인 선호의 차이야 있겠지만, 최재석 선생이 비유한 연구자가 가져야할 조건으로 고양이의 ‘자존’을 이야기 한 것은 이해가 된다. ‘묘심’의 세 번째 특징은 고양이는 ‘고독’을 즐긴다는 것이다. 고독은 곧 비사교성을 말하는데, 연구자는 연구과정의 고독을 인내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한편 ‘사회학’이라는 학문은 사회에 속해 있는 인류의 삶과 행동에 대한 학문이다. 우리(인류)가 일상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들이 실제로는 사회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저명한 사회학자 C. 라이트 밀스는 “개인적인 삶과 보다 넓은 사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인식”을 ‘사회학적 상상력’이라고 하였다. 이는 사회현상에 대한 문제제기의 필요성을 느꼈을 때 이에 대한 수많은 연관요소들을 다양하게 모색하는 학문적 창의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삶에 대한 능동성을 의미한다. 우리가 발 딛고 살고 있는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에 대해 긍정적이건 비판적이건 문제의식을 갖고 원인과 현상에 대해 연구하며 대안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전북 지역에서 상당히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나 급격한 인구감소로 사회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농·산·어촌에 대한 다양한 측면에서의 연구와 대안 제시는 매우 시급하다. 사회학적 상상력을 동원한 농촌사회학 연구가 필요하다. 현재에도 지방자치단체별로 ‘소멸위기극복’을 위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까지 도달하기에는 많은 난관이 있어 보인다. 최재석 선생이 말한 연구자의 조건과 라이트 밀스가 말한 사회학적 상상력이 대안 아닐까? /구준회 농촌사회학연구자

  • 오피니언
  • 기고
  • 2024.08.13 15:22

그해 여름 삼계탕은 서늘했네

이른 폭염부터 물폭탄 장마까지 유난히 거칠었던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작열하는 태양 같은 고추가 주렁주렁 익어가고 하얀 벼꽃이 촘촘하게 올라오는 농촌의 8월은 평화로운 겉보기와 달리 마음이 한없이 분주한 계절이다. 풀 관리, 물 관리, 병해충 관리까지 공을 들이는 만큼 가을 수확이 달라지기에 꼭두새벽 논밭을 누비는 남편은 비 맞은 것처럼 온몸에 땀을 적셔야 하루의 과업이 끝나곤 한다. 예로부터 복날은 이 고단한 계절에 쉼표 같은 역할이었을 것이다. 시부모님과 함께 농촌에 살다 보니, 절기를 잊고 사는 도시 생활과 달리 정월대보름과 복날, 동지에는 되도록 가족과 함께 절기음식을 챙겨 먹으려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올해는 이른 더위에 질려버려서 처음으로 레토르트 삼계탕에 눈길이 갔다. 마침 건강한 간편식품 잘 만들기로 소문난 남원 사회적기업에서 들깨 삼계탕을 출시했기에 핑계 삼아 압력솥 꺼내지 않고 복날을 넘겼다. 한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동네에 있는 지렁이 비료 공장에서 이맘때면 토종닭에 전복 한두 개 넣어 집집마다 돌리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봉지 삼계탕을 보내온 것. 매년 초복 잔치를 하는 성당에서도 주일 아침에 음식 냄새가 나지 않아 의아했는데, 비밀은 유명 식품기업 봉지 삼계탕이었다. 어쩌다가 봉지 삼계탕을 두루 섭렵한 복날을 보내고 나니, 절기가 무색할 정도로 노쇠한 농촌 현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동네 단위로 모여서 챙기던 대보름도 복날도 이제는 면 단위 중심지에서 큰 행사처럼 치를 뿐, 가가호호 흩어져 사는 어르신들은 무얼 같이 먹자고 도모하기에 이제는 동력이 없다. 이러한 농촌 현실을 공동체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주민이 주민을 돌보는 노(老)-노(老) 케어를 준비해 온 마을이 있다. 남원 솔바람영농조합은 덕과면 신양리 비촌·양선·작소마을과 만도리의 도촌·만동까지 5개의 작은 마을이 모인 권역 공동체이자 예비 마을기업이다. 농촌 어르신들이 생애 후반부를 도시 아파트에서 생활의 주도권 없이 지내다가 결국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시는 문제에 주목하여 2014년부터 주거·복지형 마을만들기를 추진해왔다. 농림축산식품부 창조적 마을 공모사업을 통해 주민들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2018년 독거노인 공동 주거 공간인 노노 돌봄센터를 건립하였다. 평생 살아온 터전에서 눈 감는 노년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4년여 동안 주민들이 스스로 전문성을 강화하고 마을 환경을 정비하며 준비해왔지만, 공동체 안에서 돌봄의 자급자족은 녹록지 않은 일이다. 현재 솔바람영농조합은 노인들이 참여하기 좋고 도시민에게는 치유 경험을 선사하는 꽃 관련 체험 사업으로 새로운 마을 활력을 만들어 가고 있다. 또한 솔바람센터는 남원시 북부권의 경증 치매환자 거점 쉼터로 활용되어 도심권 치매안심센터 내에서만 운영해 왔던 쉼터 사업을 전북 최초로 읍·면 지역에 확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농촌지역 공동체 기반 경제·사회 서비스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이제 시행된다. 일자리와 주거, 교통, 교육, 보건의료, 환경, 취약계층 돌봄 등 지역 서비스를 주민 공동체가 주체적으로 해결하고 지원받을 수 있는 새로운 장이 열렸다. 핵심은 연결이다. 이미 공백이 커진 지역 인프라 속에서 생애주기에 대응할 서비스를 촘촘히 엮어나가려면 지역 안에서 그리고 지역 바깥과의 면밀하고 창의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마중물은 온전히 사람에게 달려있다. 행정은 현장을 중심에 둔 실질적이고 유연한 거버넌스 구성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최규혜 (남원시공동체지원센터 사회적경제팀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4.08.06 17:18

미술과 친해지기

미술관의 분위기는 새로운 전시를 위해 작품이 교체될 때 어떤 작품의 전시인가에 따라 사뭇 달라진다. 초록빛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작가의 작품을 전시할 때는 야외의 푸른 나무와 활짝 핀 꽃으로 실내·외 전체 공간이 동화되기도 하고 강렬한 원색이 기하학적으로 그려진 작품이 벽을 채울 때는 더운 여름날을 더욱 뜨겁게 달구어 놓기도 한다. 미술 작품은 일단 그 자체로 보는 재미가 있다. 정해진 내용도 범위도 없는 자유로움으로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주제와 서로 다른 이야기 덕분이다. 작품에 사용하는 재료, 표현 기법도 제각기 달라 비슷한 주제로 작업을 한다 해도 작업의 결과물은 다를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창작하는 작가들 덕분에 우리는 다양한 작품을 만나고 즐길 수 있다. 미술 작품에는 한 작가의 인생이 스며있다. 미술 작품을 통해 만나는 작가의 인생은 때로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작가의 시간이 담긴 작품집을 보면 그 작가의 과거로부터 현재의 작품까지 변화의 과정이 보인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작품 변화에는 작가의 고민과 번민의 흔적들이 함께 숨어 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인내의 시간을 거쳤을지 작가의 지나온 시간과 녹녹하지 않았던 삶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작품에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담아낸다. 그 작품을 마주하는 우리는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풍부한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지은이가 써 내려간 이야기를 읽으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 것처럼 미술 작품을 보면서도 단순한 행복감, 경쾌하게 풀어내는 과정에서 오는 유쾌함, 이유 모를 쓸쓸함, 생명력이 가득한 역동감, 가슴 깊이 차오르는 편안함 등을 경험하게 된다. 지나간 시간과 공간, 사람을 떠올릴 수도 있고, 무심코 지나온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만나기도 한다. 감정을 몰입해 작품에 집중하는 경험을 쌓다 보면 자신만의 작품을 보는 재미나 해석, 관점이 생겨 그 자체로 즐거움이 된다. 미술 작품은 일상에 쉽게 스며들어 우리의 삶을 유연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 친숙해진 아트상품도 그중 하나다. 근래 쏟아져 나오는 아트상품들은 종류도 다양하고 형식도 새롭다. 예술과 만난 생활용품의 변신도 놀랍다. 언젠가부터 미술품은 재테크의 수단이 되었다. 아트테크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미술 시장은 갈수록 확장되고 있다. 아직은 대중성을 얻어 미술 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되는 미술품들은 많지 않지만, 미술품이 투자의 수단이 되면서 그만큼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예술과 자본은 언뜻 보면 간극이 큰 것처럼 보이지만 미술 시장이 활발해질수록 작가들은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큰 힘을 얻게 된다. 미술 시장이 작가들의 창작에 역동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이다. 뜻밖의 장소에서 미술 작품을 만나게 되면 참으로 반갑다. 버스 정류장이나 마을의 벽에 그려진 그림은 누가, 언제 그렸는지도 모르지만 바쁜 일상 속 잠깐의 시선을 머물게 만든다. 그들, 무심코 스쳐 지나갔던 작품들은 우리의 삶에 틀림없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연말이 되면 그림이 실린 새해 달력을 제작하고 있다. 미술관을 찾아 직접 미술품을 감상하지 못하더라도 일상에서 그림을 가깝게 할 수 있는 경험을 늘리기 위해서다. 이런 작은 경험들이 쌓이게 되면 어렵게만 생각했던 미술도 어느 사이엔가 우리 곁에 와있지 않을까. /유가림 유휴열미술관 관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4.07.30 16:09

타인은 지옥이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이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싸움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50이 훌쩍 넘어버린 나는, 아직도 덜 큰 것인지, 여전히 타인과의 싸움이 힘들다. 어떤 일을 하든 고비의 순간이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일이 힘들기도 하지만 사람도 만만치 않게 힘들다. 직장인들은 가슴 속에 항상 ‘사표’를 품고 산다. 물론 그걸 사장 얼굴에 확 뿌리고 나오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상상을 하며 벼랑 끝의 나를 위로한다. 유난히 힘들었던 어느 여름날, 우연히 사르트르의 책을 홍보하는 문구 “타인은 지옥이다!”에 이끌려 <닫힌 방>이라는 책을 사 보았다. 죽은 세 영혼이 지옥의 영벌을 받으러 어느 한 방에 갇히게 된다. 세 사람은 그곳에서 끊임없이 고통받게 되는데, 그 고통은 지옥의 불구덩이나 고문 같은 게 아닌 ‘타인의 시선’ 때문이다. 물리적 강제가 없음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지옥이 된다. ‘타인의 시선에 끊임없이 감시당하고 재해석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지옥 그 자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타인의 잣대로 판단하며, 자신의 주관을 잃고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는 것은 지옥이다. 등장인물 중 하나가‘지옥은 바로 타인’이라고 외치는 절규가 ‘삶은 그 자체가 고통’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법’,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나답게 살기’, ‘자신만의 길을 걷는 법’ 등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하면 수많은 글과 책, 블로거·유튜버들의 조언이 널렸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깡그리 무시한 채 살 수 있을까? 소설 후반부에, 닫힌 방은 딱 한 번 열린다. 세 명의 주인공은 서로를 지독히 혐오하면서도 방을 나가는 순간 무한한 외로움과 고독이 자신들을 덮칠 것을 알기에 그 끔찍한 타인들과 차라리 한 방에 함께 지내는 것을 선택한다.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에 내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고 재단되면서도 계속해서 타인과 교류해야만 진정으로 세상에 실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타인은 지옥이지만, 이 세상에 나 홀로 있는 공포보다는 차라리 타인과 함께하는 지옥이 덜 끔찍하지 않은가? 우리의 많은 고통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됨에도 얼마나 타인을 통해 끊임없이 내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가? 한때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열풍이 있었다. 행복은 지속적인 감정이 아니기 때문에 가장 행복해지는 방법은 ‘큰 행복’이 아니라 ‘작은 행복’을 ‘자주’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향기로운 차 한 잔이나 우연히 발견한 꽃 한 송이, 이웃의 따뜻한 목소리나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의 전화 한 통화에서 소확행을 느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작은 행복들의 상당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타인은 우리 삶에서 스트레스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지지와 위로를 제공하는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한 타인을 무시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에 내 삶을 의존한다면‘삶은 곧 지옥’이 될 것이다. 타인이 도를 넘어 내 삶을 좌지우지하려 들 때, 적정한 거리를 두고 내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침해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힘들 때일수록 서로 다독여주고 응원해 주는, ‘다른 사람에게 희망이 되어주는 타인’이 되어보면 어떨까? “타인은 지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희망이다.” /송상재 전북특별자치도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송상재 위원장은 한국노총 전북지역본부 부의장·한국노총 공무원연맹 전북본부 의장·대한지방행정공제회 예결위 위원장·전북특별자치도 상록회 생활협동조합 이사장·전북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4.07.23 15:33

농촌소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주말 마을이 오랜만에 분주했다. 초복을 맞아 청년회원들이 어르신들 모시고 복달임 행사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순창군 풍산면 두지마을에서는 해마다 초복이면 마을주민들이 특별한 행사를 한다. 이제는 마을 안에서 직접 식사를 준비하기에는 역부족이라 몇 해 전부터는 버스를 대절하여 밖으로 나가 식사를 하고 문화공연을 관람한다. 올해는 가까운 담양에서 풍성하게 식사를 하고 광주 전통문화관을 방문하였다. 할머니들은 고운 한복을 입고 예쁘게 사진을 찍었다. 토요일마다 진행되는 국악 공연도 관람하였다. 두지마을은 섬진강을 끼고 있는 넓고 비옥한 뜰이 있어 ‘뒤주골’(뒤주 : 쌀 따위의 곡식을 담아 두는 세간의 하나. 골 : 고을을 부르는 말)이라고 불리는 마을이었다. 너른 뜰이 가까이 있었기에 사람도 많고 꽤나 부유한 마을 중에 하나였다. 또한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해마다 당산제를 모시며 전통문화를 지켜왔던 마을이다. 그러나 급격한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젊은이도, 전통문화를 이어가며 전수해 줄 어르신도 사라져가는 마을이 되었다. 이를 지켜볼 수 없었던 마을의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야 인력으로 어쩔 수 없다지만,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것은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단, 남성 중심 제사 형식의 당산제 대신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정월대보름 행사로 마을공동체의 전통문화를 이어가기로 합의하였다. 그리하여 2013년도부터 정월대보름이면 지신밟기, 달집태우기, 깡통돌리기 등 재미난 일을 펼치고 있다. 이제는 꽤나 유명세를 타서 순창에서 뿐만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두지마을을 찾고 있다. 한편 농한기인 겨울에는 청년회가 준비한 ‘겨울문화사랑방’이 펼쳐진다. 민요교실, 아로마마사지, 의료봉사, 미용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각종 ‘인맥’을 동원하여 봉사해 줄 재능기부자를 찾는다.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겨울철에 경로당에서 심심하게 계신 어르신들에게는 기운을 드릴 수 있는 일이다. 농사철에는 새벽같이 논으로 나가시는 탓에 얼굴 뵙기도 쉽지 않아 농한기 때만이라도 젊은이들은 부모와 같은 어르신들의 식사를 챙기고 건강을 돌보고자 노력한다. 두지마을 청년회의 구성원들은 대부분이 귀농·촌인들이다. 이르게는 1980년대 후반 귀농, 귀촌이라는 개념조차 없을 때부터 식량을 생산하겠다며 이주한 젊은이부터, 최근에는 도시의 삶에 지쳐 시골을 선택한 가정까지 여덟 가구가 두지마을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모여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재미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토론한다. 4년 전에는 점점 사라져가는 마을의 모습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 ‘복작복작 재미지게 산당께’라는 마을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첫 책이 구술채록과 기고 위주의 기록이었다면 두 번째 책은 사진을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농촌이 ‘소멸’되어 간다고 말한다. 관객 또는 방관자의 언어이다. 농촌주민을 대상화한 말이고 매우 폭력적인 단어이다. 농촌주민 입장에서 달걀노른자 열 개 쯤은 삼킨 것 같이 가슴이 답답해지는 말이다. 농촌에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관망의 시각으로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 중심의 농촌정책이 만들어져야한다. 농촌을 바라보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구준회 농촌사회학연구자 △구준회 연구자는 순창 풍산면으로 귀농한 뒤 순창교육희망네트워크 사무국장 등을 맡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4.07.16 16:50

생활인구, 숫자를 넘어 가치를 디자인하라

함께 일하는 팀원이 얼마 전에 함양군으로 이른 휴가를 다녀왔다. 짧은 여행부터 워케이션까지 각 지자체의 생활인구 지원 프로그램을 모아놓은 앱을 통해 지역을 선정하여 다녀온 것. 나 홀로 여행보다 안전하고 지원 혜택이 만족스러웠으며, 룸메이트와의 교류도 좋았다고 했다. 지방소멸의 대안으로 생활인구가 부상하고 있다. 생활인구란 주민등록 거주자에 통근·통학·관광 등의 목적으로 지역에 월 3시간 이상 체류하는 사람, 등록외국인, 재외동포까지 확대한 새로운 인구 개념이다. 남원시는 2023년 말에 전국 최초로 생활인구 기본조례를 제정할 정도로 생활인구를 통한 지역 활성화에 적극적이다. 필자는 올해로 3년째 생활인구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다양한 경력을 가진 서울 신중년 세대와 남원의 사회적경제기업·소상공인을 연결하여 지역 살아보기와 프로보노 활동을 결합한 투어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지역민의 필요와 생활인구의 전문성을 세심하게 매칭하여 공동의 성과를 만들어야 하기에 한 번에 30명 내외 소규모로 진행하지만, 내용은 꽤 역동적이다. 생활인구 투어 경험자들과 서울에서 합동 프리마켓을 진행하기도 했고, 담당 기업에 대한 프로보노 계획을 세운 후, 2차 방문을 통해 현장 체험을 하는 워킹홀리데이 방식을 실험하기도 했다. 이틀 동안 주최 측의 관여 없이, 기업 대표와 생활인구 참여자가 자발적으로 교류해야 하는 미션이었다. 일 체험을 마치고 공유회를 하니 사전 방문 때와는 사뭇 다른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비즈니스를 넘어 서로에 대한 정이 묻어나는 현장을 경험하고 나니 보람이 컸지만, 생활인구 사업 자체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생활인구 프로그램 추진을 할 때, 도시 참여자보다도 지역민들을 설득하고 결합시키는게 훨씬 어려웠다. 그래서 생활인구의 취지보다 SNS 홍보나 경영 컨설팅, 전문 사진 촬영 등 프로보노 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 위주로 참여기업을 섭외할 때도 있다. 지역민과 생활인구 참여자들이 교류를 진행해도 서로 간의 만족도가 항상 높고,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일회성 만남으로 끝나지는 않는 데에 반전이 있다. 투어 경험자들이 명절에 남원 제품을 소개하여 적극적으로 구매 연결을 하거나, 메가쇼 같은 대형 식품 박람회에 출점한 남원 기업을 만나러 응원 방문을 하곤 한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남원에 관심을 갖고 교류하며, 로컬기업에 프로보노 활동과 제품 구매 등을 통해 기여하는 생활인구 그룹을 ‘남원 팬슈머(fansumer)’라고 부른다. 팬(fan)과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팬심을 바탕으로 생산이나 마케터 역할까지 관여하는 팬슈머 현상을 생활인구에 대입해 본 것이다. 소멸 위기를 돌파하려는 지역들이 활력의 동력으로 대규모 생활인구 유치를 선언하고 다양한 정책을 개발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생활인구 산정 기준이 지극히 기계적이라는 데에 있다. 인구수와 구성비, 성별, 연령대, 체류 일수 등은 지역별 생활인구 기반과 가능성을 가늠하는 기초가 되어야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양적인 성과를 중심으로 지자체들이 경쟁하는 구도가 된다면 결국 더 많은 지원과 혜택을 기준으로 서울 수도권 주민들이 지역을 소비하는 구도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지역 특성에 맞춰 다양하게 생활인구를 호명하고, 지역민은 환대를 통해 상생의 가치를 함께 체득하고 만들어나갈 때 진정한 대안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최규혜 남원시공동체지원센터 사회적경제팀장 △최규혜 팀장은 남원아이쿱생협 상임이사·(사)전국귀농운동본부 편집간사 등을 역임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4.07.09 15:43

미술관의 문턱 넘기

어려서 아빠가 손에 쥐어 준 크레파스와 색연필은 내 놀이기구였고 장난감이었다. 일터로 나간 엄마의 빈자리에 자연스레 아빠의 화실에서 노는 시간이 많았던 내가 가장 가깝게 보고 만지고 익숙한 것이 그림이었다. 전북도립미술관 근처에는 유휴열미술관이 있다. 1987년 유휴열 작가(서양화가)가 작업실이 필요해 이곳에 터를 잡았고 2020년 4월, 화실 옆 기존 갤러리 건물을 개조하여 유휴열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재개관하였다. 그림과는 무관하게 빙빙 떠돌다 고향에 온 느낌으로 하나씩 하나씩 배워가는 4년 동안, 많은 작가와 전시회를 마주하며 작가와 관람자의 입장에서 새롭게 느낀 점이 많다. 작품을 보며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는데 무심코 들어왔다가 미술관임을 알고 어색해하거나 멈칫거리는 이들이 의외로 많았고 자주 들었던 말은 “그림을 볼 줄 몰라서요” 이다. 미술은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어렵고 생소하며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와 노래를 떠올리기는 쉬워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이 무엇인지 생각한다면? 이름이 알려진 작가의 작품을 마주하게 되면 발걸음이 오래 머물고 더 유심히 보게 된다. 유명하니 당연히 훌륭한 작품일 것이라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개개인의 경험과 배경에 따라 미술 작품에 대한 해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좋은 시 한 구절을 읽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처럼 색감이나 터치 혹은 전체적인 조화가 편안하다면 그게 바로 좋은 작품이 아닐까. 또한 작가가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일까 상상해보는 것은 좋지만 그것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해진 답도 없고 그 답은 내가 만들기에 달려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에 가는 재미를 스스로 찾았으면 한다. 다양한 시도를 하는 작가들 덕분에 우리가 볼 수 있는 장르도 다양하고 그 수도 넘쳐난다. 어떤 스타일의 작품이 나와 맞을지는 직접 내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껴봐야 알 수 있다. 때로는 작품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내가 이전에 경험했던 기억들을 상기시켜 색다른 즐거움을 줄 때도 있다. 살면서 경험했거나 경험하지 못했던 여러 감정들을 작품을 통해 만난다면, 그 시간들이 축적되어 어느 순간 내 삶이 풍부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은퇴 후 혹은 여가시간에 가장 하고 싶은 것이 그림이라고 대답하는 분이 많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둘러보면 이색적인 전시, 체험 프로그램이나 교양 강좌, 이해를 돕기 위한 전시 해설(도슨트)도 있고 직접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많다. 파리나 런던, 뉴욕 등 여행을 가면 평소 미술관과 친하지 않던 사람들도 꼭 들르는 곳이 미술관이다. 그곳은 오랜 시간을 통해 쌓아온 역사와 전통이 있고 흔히 말하는 유명한 작가의 작품들을 볼 수 있기도 하지만 예술이, 미술이 생활 속에 함께 녹아 살아가는 분위기가 부럽다. 언론에서는 미술 작품이 투자 수단이 될 정도로 각광을 받고 있고, 대규모 아트페어에 관람객이 몰려들어 판매액이 얼마라고 보도하지만 실상 미술 저변은 여전히 찬 바람이 분다. 특히 우리 지역은 미술 학과, 학생들도 줄어들어 젊은 작가들도 많지 않다. 척박한 환경에서 어렵게 순수미술을 고집하는 그들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림 그리는 것이, 그림 그리는 사람이 낭만적이었던 내 유년 시절의 기억은 아득하다. 되돌아보면 내 집 거실에 그림 한 점 걸려있는 집이 얼마나 될까. 미술관은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유가림 유휴열미술관 관장 △유가림 관장은 2020년 4월부터 유휴열미술관 관장을 맡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4.07.02 15:16

비 오는 날 피자를 시키면 안 되는 이유

“엄마, 오늘 저녁 피자 시켜 주세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이 저녁에 피자가 먹고 싶다고 피자를 주문했다. 그런 아들에게 나는 “비가 와서 안 돼.”라고 이야기했다. 아들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이 “왜 안돼요?”라고 묻는다. 그런 아들에게 “비 오는 날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면 미끄러져서 사고 위험이 있어. 음식을 배달하다가 사고가 날 수 있으니까, 비가 오면 배달음식을 시키지 않는 거야.”라고 대답해줬다. 아들은 그제야 이해했고, 우리는 함께 김치찌개에 밥을 먹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 플랫폼 전성시대가 되면서 비대면 거래가 확산되었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배달음식을 고르고, 결제하고, 배달원을 만나지 않아도 문 앞에 음식을 받아볼 수 있다. 예전에 가게로 직접 전화하고, 배달원에게 직접 돈을 지급하던 시절에 비하면 매우 편리해진 듯하다. 바야흐로 플랫폼 전성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편리해진 만큼, 우리는 윤택해진 삶을 살고 있을까? 지난 21일 배달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이 배달 플랫폼 주문 거부 단체행동이 있었다. 지난달 26일 배달 플랫폼 후발 주자인 ‘쿠팡이츠’가 무료배달을 시작하며, 선두 주자인 ‘배달의 민족’도 이달 1일부터 무료 배달을 시작한 것이다. 무료배달을 시행하면서 반강제적으로 도입한 정률형 요금제는 판매액의 6.8%(부가세 포함 7.48%)를 중개수수료로 가져간다. 배달비(2500~3300원)와 별도로 결제수수료 등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배달의 민족은 7월 1일부터 라이더를 이용하지 않는 포장 주문 건에 대해서도 6.8% 수수료 부과를 시작했다. 결국 자영업자들은 30~35% 정도 수익 중에서 20% 가량을 배달앱에서 가져가는 꼴이 되었다고 한다. 자영업자들은 경영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고용을 줄이거나 폐업을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5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424만2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1만4000명(-2.6%)이 감소했다. 무급가족 종사자는 1만9000명(-1.9%) 줄어들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사업자 폐업률이 9.5%로 전년 대비 0.8%포인트 높아졌고, 폐업자 수는 전년 대비 11만1000명 늘어 91만1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0.778로 세계 최하위 출생률을 기록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낳지 않은 이유 중 가장 크게 꼽히는 것이 경제적 불안정이다. 소비자의 편리함 만을 내세우며, 과다 경쟁을 부추기는 상황에서 플랫폼 기업의 막대한 이윤을 남겼지만,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가중되었다. 물론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이지만, 우리 또한, 우리의 소비 행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편리함 만을 추구하는 소비 행태가 과다한 경쟁을 부추기고, 누군가의 희생을 낳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조금만 불편함을 감내하면, 우리의 이웃의 삶과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비 오는 날은 배달 노동자가 위험할 수 있으니, 배달음식을 자제하는 것. 조금 불편하더라고 매장에 방문해서 직접 주문하고 구입하는 것. 생필품을 배달하지 않고, 동네 가게에서 직접 구입하는 것. 이러한 행동들이 우리 지역의 노동자와 자영업자를 지켜내는 행동일 것이다. 우리 이웃의 삶이 지켜질 수 있도록, 주변을 살피고 조금의 불편함은 감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효진 (사)세상을바꾸는밥상

  • 오피니언
  • 기고
  • 2024.06.25 16:27

정여립, 세상 밖으로 복권 시키자

진안 천반산 주변에서 정여립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다. 역사적 사실과 전설이 뒤섞어 민초에게 전해진 것이다. 천반산 주변 많은 마을 주민은 정여립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분의 아버지, 할아버지로 전해진 이야기다. 천반산 정상에는 성터를 비롯하여 연단이었다는 장군 바위, 망을 본 망 바위, 훈련하던 뜀바위, 깃발을 꽂았다는 깃대봉이 있다. 이뿐인가, 수백 명분의 밥을 지었다는 돌솥, 무예를 익히게 한 시험 바위, 말바위, 마당바위 등 정여립의 이야기는 수없이 전해오고 있다. 천반산 깃대봉에 <大同>이라는 기를 꽂고 부하 장졸들이 뜀바위를 뛰어넘지 못하면 넘을 때까지 강행하고 시험 바위에서 무예를 어느 정도 익혔는가 시험을 보았다고 한다. 장졸을 모아 정여립은 장군 바위에 서서 정신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역사적 인물이 전설 속의 인물이 되어 전해온다. 역사 속의 억울하게 죽은 자가 민중 속에서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정여립의 정확한 출생지나 출생연대는 알 수 없다. 1540년 전후 전주 남문 부근에서 정희정 부부에게서 태어났다고 한다. 벼슬살이는 오래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정여립의 생각은 시대의 통념을 뛰어넘는 인물이었다. 유비보다 조조를 정통으로 삼은 사마광의 통감을 옳은 말이라 하고,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당대의 철칙을 그저 제나라 왕촉의 주장일뿐이라고 했으며, 맹자 또한 제나라와 양나라를 옮겨가며 왕도정치를 펴왔음을 지적한 바가 있다. 왕조시대에 어느 누가 이런 주장을 할 수 있겠는가? 정여립은 낙향한 뒤 금구 동곡마을에서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하여 장차 있을지도 모를 외침에 대비하고자 진안 천반산에서 군사훈련을 했다고 한다. 정여립은 선조 때 천여 명의 목숨을 잃게 된 기축옥사의 주인공이다. 반역이란 죄목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정여립이 살던 집터는 역모했기에 연못을 파서 지금은 파쏘라 부른다. 정여립의 반역은 전라도를 풍수상 배역, 모반의 땅이라 낙인찍었다. 그러나 전라도는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매우 풍요의 땅이었다. 풍요로운 땅이 타지방의 위협이 되어 전라도를 외경의 땅, 반역의 땅, 편견으로 보는 땅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의견이 있다. 반역은 민중의 공동체적인 생각으로 불의에 대한 저항이고 행동이다. 그래서 정여립의 반역은 달리 해석해야 한다. 반역은 정당한 저항, 비판, 진보의 왜곡된 표현이다. 왕조의 무능과 부패, 파렴치에 대하여 저항하는 것은 지극히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시대를 앞서는 인물의 삶은 평탄할 리가 없다. 그들은 권력을 탐하지도, 재산을 축적하지도 않았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백성이 편안하기 위한 일상적인 일도 지배층이 보기에는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반역이 되고 역사의 뒤안길에 쓸쓸히 사라지는 것이다. 정여립에 관한 연구와 평가가 다소 있었지만, 여전히 미진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여립의 출생과 활동이 관련된 시·군지역조차 관심이 미미함은 부인할 수 없다. 한 인물을 두고 다양한 모양으로 추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 제일은 인물의 생각, 사상을 정리하는 일이다. 오늘, 민주 공화정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정여립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지 모른다. 정여립이라는 인물을 새롭게 재평가하고 정신을 찾는 작업이 본격화 되었으면 한다. 정여립을 전설 속에 묻혀둘 인물이 아니다. 민중의 가슴 속에만 두어서는 안 된다. 세상 밖으로 복권 시키자. / 이상훈 (진안문화원 부원장, 전라고 교사)

  • 오피니언
  • 기고
  • 2024.06.18 17:35

돌봄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의무입니다.

돌봄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건강 여부를 막론하고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고 증진하거나 건강의 회복을 돕는 행위이며, 관심을 가지고 보살핀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돌봄의 개념에는 건강, 생활유지, 회복, 돕는 행위, 보살핌 등이 주요 개념으로 등장하면서, 돌봄은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가는 속에서 돕고 보살피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돌봄에 대한 해석이 돕는 행위나 보살핌을 넘어서 전 사회구성원이 함께 고민해야하는 돌봄의무론, 돌봄선언까지 확장된 개념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니엘 잉스터가 주장한 돌봄의무론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생존, 발달, 기능할 수 있도록, 생물학적으로 긴요한 필요를 충족하고 기초 역량을 발달·유지하며, 불필요하거나 원하지 않는 고통과 고충을 피하거나 완화하도록 돕기 위해 우리가 이들에게 직접적으로 하는 모든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돌봄은 단순한 보살핌에서부터 사회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해 나가도록 지원하고 기초 역량을 가르치는 부분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해석하고 있다. 이는 돌봄이 인간과 도덕과 정의에 대한 납득된 모든 논지의 핵심(heart)에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타인을 돌봐야 하는 의무를 받아들여야 하며 그러한 의무를 기반으로 더욱 깊이 있는 성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돌봄사각지대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영국의 돌봄 단체 더케어 켈렉티브가 주장한 돌봄선언은 상호의존의 정치학을 기반으로 돌봄의 문제를 풀어나가야 함을 말하며, ‘돌봄선언’ 저자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해지도록 신자유주의 질서 체제에 강요되어 왔고, 그 결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마저도 돌보지 않아도 된다고 부추김을 당하면서, 가장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역량마저 위축되었음을 지적한다. 또한 저자들은 한나 아렌트의 잘 알려진 용어를 빌려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무관심이 구조적 수준의 ‘평범함’에 젖어들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런 과정에서 ‘돌봄’은 사회적 역량이자, 복지와 번영하는 사람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보살피는 사회적 활동이다. 무엇보다도 돌봄을 중심에 놓는다는 것은 우리의 상호의존성을 인지하고 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돌봄을 돕는 행위와 도와주는 행위에만 머무르고 있다. 돌봄은 돌봄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 정도로 인식하여 돌봄정책이 사람들 사이에서 깊은 성장을 하기에는 많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필자가 최근에 등장한 돌봄의무론과 돌봄선언의 개념을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의 돌봄은 단순히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타인에 대한 측은한 관심의 정도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우리 안에 돌봄은 여전히 개인적인 문제에서 출발하지만, 타인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 상호성을 가지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초이고 사회적 기술훈련이며, 의무를 기반으로 하는 활동으로까지 광범위하게 이해했으면 한다. 또한, 초고령화 시대를 목전에 둔 우리 사회가 돌봄이 사라진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적어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돌봄 없는 세상에서 배제된 채로 살아가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부족함을 잘 받아들이면서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길 바라고, 돌봄을 통한 사람들 간의 연결이 확대되어 함께 누리는 행복한 돌봄사회로 나아가길 희망한다. /서양열 전북특별자치도사회서비스원 원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4.06.11 16:56

발칙한 상상 6 - 이민 사회를 준비하라

합계출산율이 0.7명 이하다. 어른 세 명이 아이 한 명을 낳아 기른다는 의미다. 어떤 학자는 백 년이 안 되어 지도상에서 한국인에 의한 한국은 없어질 거라 경고한다. 한국 여성들의 출산 파업이 장기화되고 젊은 남성들이 동조 파업에 나서니 당분간 좋아질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수백조 원을 수십 년간 쏟아부어도 소용없다. 젊은 세대들이 죽자고 아이를 낳아 키우지 않으니 경제 전반에 걸쳐 우하향 추세가 한층 빨라져 경제가 무너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앞으로 잠재성장률이 바닥을 뚫고 지하실로 접어들 일만 남았다. 시간이 없다.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세계 최강국 미국은 이민자들이 만든 나라다. 아직도 진입장벽이 높지만 이민에 의해 활력을 얻는 사회다. 늙어가는 유럽도 마찬가지다. 인종과 종교의 다양성, 사고의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사회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융합하는 가운데 통합의 길을 향한다. 노동시장과 종교, 인종 갈등이 산발적으로 일어나지만 이는 성장하기 위해 치르는 피할 수 없는 성장통이다. 이 거대한 여정은 시끄럽지만 한 국가의 발전 동력이 된다. 이제 한국은 피할 수 없이 멸망이냐 유지냐 둘 중 하나만 있고 제3의 길은 없다. 어쩔 수 없다면 개방적인 이민 정책를 수용하는 데 있어 경제와 문화 등에서 한국의 위상이 최고에 이른 지금이 최적기다. 시든 과일을 비싼 값에 사갈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성숙한 이민 사회를 선제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을 가기 위한 우리의 준비는 어떠한가? 한국이 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면서 각종 갈등과 마찰이 예상된다. 이민자가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적응・자립하는데 필수적인 언어 교육, 직업 훈련, 문화 교육 등의 기본소양을 함양할 수 있도록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 효과가 미미하다.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고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있는 한국 사회의 원주민들은 규범적으로 외국인을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구체적인 관계 맥락에서는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는다. 또한 현재 한국의 이민정책은 이주노동자에게는 배제지향의 정책프레임이 작동하고 여성 결혼이민자에게는 동화지향의 정책프레임이 작동하여 모순을 드러낸다. 이런 조건에서 성공적인 다문화 사회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타문화에 대한 존중이 우선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제안으로는 ‘차별금지법’ 제정, 그리고 이민 관련 전담 기구인 ‘이민청’ 설립을 통해 다문화 사회의 토대를 쌓는 것 등이 거론된다. 노동시장의 요구와 이민정책을 연계해야 하며, 이민자들의 법적 보호와 인권 존중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이민자와 현지 주민간 상호 이해를 촉진하는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이 필요하다. 이민자들이 돈 벌어 본국에 송금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발전에 기여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슬람 사원 건축을 반대한다고 노골적으로 길을 막고 돼지고기 파티나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걱정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긴 시간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한 이민정책의 변화를 꾀해왔다. 이제는 우리도 한국의 특정 상황과 요구를 고려하여 전향적인 이민정책을 마련해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시간은 별로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문상붕 도서출판 파자마 대표

  • 오피니언
  • 기고
  • 2024.06.04 15:51

우리 농업 지키기, 소비자의 연대가 필요하다.

“농사지어서는 먹고 살 수가 없으니까” 필자의 지인 중에 농사 기술이 매우 뛰어난 청년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경운기 운전을 했다는 이 청년은 농기계를 잘 다루고, 농작물에 대한 지식도 풍부하다. 부모님이 농지를 승계받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농사짓는 행위를 매우 좋아한다. 농사는 이런 친구가 지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농사라는 직업이 잘 어울리는 청년이다. 그런데 이 청년은 현재 다른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농사를 지어서는 먹고 살 수 없다는 게 그의 답변이다. 지난 24일 통계청이 배포한 ‘2023년 농가 및 어가 경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농가소득은 5000만8000원으로 전년보다 467만5000원(10.1%) 증가했다고 한다. 언뜻 보면, 농가소득이 증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농가소득이란 농가에서 1년간 벌어들인 모든 소득으로, 농사만으로 얻는 ‘농업소득’뿐 아니라 겸업·이자 수입 등을 통한 ‘농외소득’, 직불금·기초연금 등 보조금에 의한 ‘이전소득’, 경조금 등 비정기적으로 발생하는 ‘비경상소득’이 포함된다. 실제로 전년도 농가 소득 중 농업소득은 1114만3000원에 불과했다. 더 큰 문제는 농가 부채는 더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농가 평균 부채는 4158만1000원으로 전년 대비 655만9000원(18.7%)이나 상승했다. 결과적으로 농가 자산은 6억 804만3000원으로 전년 대비 842만4000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민은 삼중고를 겪는다고 한다. 첫 번째 고통은 생산의 어려움이다. 기후 위기로 농업 생산의 불확실성이 높아져서 베테랑 농사꾼도 안정적인 품목과 생산량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두 번째 고통은 생산비 증가이다. 전 세계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라 농업 생산에 필요한 농자재값도 지속적으로 올라 농산물 생산 비용이 크게 증가했다. 세 번째 고통은 농산물 가격 불안이다. 복잡한 유통 단계로 농산물 가격의 불확실성이 높아졌고, 농가의 수취 가격이 매우 낮아졌다. 이런 환경 탓에 아무리 뛰어난 농사꾼도 버텨내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 농업은 국민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가장 근간이 되는 산업으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하는 일이다. 그런데 농민의 숫자는 점점 줄어 전체 인구의 5%에도 미치지 못하고, 곡물 자급률은 20% 이하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제 농업은 농민 만의 문제가 아닌 국민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대로 농업을 지키는 실천 운동의 하나가 ‘로컬푸드’ 이다. 로컬푸드란 지역에서 생산된 먹거리가 장거리 수송과 다단계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 지역에서 소비됨을 의미한다. 로컬푸드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기존 농산물 유통 구조의 폐해 극복하고자 하는 실천의 시작이다. 생산자에게는 정당한 몫을, 소비자에게는 안전한 먹거리를 공정한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 로컬푸드의 핵심 가치이다. 로컬푸드를 자주 이용하는 지인은 본인이 10년째 로컬푸드 단골이라면서 자랑스럽게 자신의 소비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러한 실천을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농업을 지켜내는 연대가 튼튼해지길 바란다. 농민이 농사지으며 안정된 삶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우리의 먹거리 미래도 보장받을 수 있다. /이효진 (사)세상을바꾸는밥상

  • 오피니언
  • 기고
  • 2024.05.28 17:16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