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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신뢰부국(信賴富國)

국내에서 많이 듣는 단어가 경제선진화, 경영선진화 등 선진화다. 선진화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이지만 문제는 선진화 가능성이다. 선진화에 필수불가결한 자원들 중 유형의 자원에만 마음을 빼앗겨 간과하고 있는 자원은 없는지? 동일한 유형자원을 가진 경제라도 이들 자원이 결합될 수 있는 범위와 방식에 따라 생산능력에서 큰 차이가 나며 선진과 후진의 차이가 드러난다. 결합을 쉽고 강하게 하는 자원 중 형태는 없지만 중요한 것이 계약의 기반이 되는 신뢰다. 신뢰가 없으면 결합자체가 어려워지고, 특히 약속이 장기간에 걸쳐 이행되어야 하거나 배신할 경우에 큰 손실이 따르는 결합은 비록 약속이행에 따른 이익이 커도 이에 따른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회피하게 된다. 

 신뢰가 부족할 경우에 치르는 손실은 일부 국내기업들이 자금 조달할 때 잘 나타난다. 회계처리가 불투명하여 실제의 부채액과 현금흐름을 파악하기 어려운 기업은 저금리의 장기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조달을 할 수 없고 대신에 단기의 고금리 차입을 통해 투자를 해야하기 때문에 그만큼 경쟁력이 떨어진다.

 인사관리에 있어서도 원칙보다 파벌이익을 선호하여 인사관리에 대한 조직원들의 신뢰가 줄면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고 우수한 직원들이 이탈한다. 인사관리에 대한 신뢰도가 낮기 때문에 기업합병에 따른 시너지효과도 작다. 인사정책의 합리성에 대한 신뢰가 타민족에 비해 높은 앵글로색슨계통의 기업문화권에서는 합병이 빠르고 순조롭게 진행되고 시너지효과도 나타나는 반면, 국내에서는 합병에 따른 인원조정의 규모가 크지 않아도 자신들에 관한 인사결정이 합병 후에도 공정하게 처리되리라는 믿음이 없어 합병자체에 강한 저항이 따른다. 서로를 믿기 어려워 합병 후에도 한 지붕아래 두 살림을 하는 기업이 나타날 수도 있다.

 국가의 정책입안자들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경우에는 국가경제 전체가 이로 인한 손실을 입게된다. 한번 결정된 정책이 그때 그때마다의 이익집단의 힘에 따라 수정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 정책결정의 확고성(finality)이 낮은 경우에는 경제에 드리운 불확실성이 짙게 되어 투자를 위한 장기전망이 불가능하게 되어 장기사업계획이 유보되고 자금시장의 투자자들이 관망세를 지속하게 되어 주가가 침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국내적으로 보면 현정부는 그 동안 여러 차례 경제개혁에 관한 정책을 발표하였지만 이에 따른 해외 반응은 기대 이하였고 주가에 미친 영향도 미미했다. 해외투자자들이 현 정부의 경제개혁을 향한 의지에 대하여 크게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정치분야에 있어서는 민주주의와 남북화합을 위한 현정부의 소신과 정책결정의 확고성에 대하여 신뢰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따라서 현 정부의 남북관계에 대한 정책결정의 발표는 즉각적으로 주변국들의 대북정책에 변화를 유발시키는 힘이 있다. 이렇게 동일한 정부가 발표하는 정책이라 하더라도 그 동안 해당분야에서 쌓은 신뢰의 정도에 따라 해외에서의 반응이 다르고 효과도 달라지는 것이다.

 신뢰란 이렇게 서로의 이익을 증대시키며 결합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는 중요한 자원이지만 자동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고 우수한 문화가 뒷받침될 때 신뢰부국(信賴富國)이 될 수 있다. 신뢰수준이 교육수준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관찰된 바로는 종교의 영향이 더 크다. 이제까지의 신뢰부국은 서구 중에서도 신교도의 비중이 높은 국가들이다. 종교개혁을 통해 이룩된 새로운 신교전통은 사회 전반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개인과 조직을 배출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국내의 경우 우리 인격에 가장 심대한 영향을 끼친 유교는 불행히도 명분과 체면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형식주의로 인하여 신뢰부국을 이룩하는데 실패했다. 국내 기독교 역시 교인 숫자는 늘었지만 사회 저변에 깔린 형식주의와 기복신앙으로 인하여 신뢰 면에서는 더 기여한 바가 없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현재 신뢰부국이 아니며 가까운 장래에 신뢰부국권으로 진입할 수 있는 문화적 받침대도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40년전 4.19내각과 5.16정권이 경제적 빈국임을 통감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한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했듯이 지금이라도 우리 지도층이 신뢰빈국임을 통감하고 이를 탈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정도의 국민이라면 이미 신뢰부국을 이룰 수 있는 씨앗을 내면에 가졌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개혁신앙에 따라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3백80년전 추운 대서양을 건넌 청교도들에게도 이러한 씨앗이 있었다.

 

 

/김동식(전북은행 리스크관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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