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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창] 보다 실질적인 출산ㆍ육아정책을

허명숙 편집부국장

 

얼마전 도내 대학생들이 모인 차세대 리더십 캠프에서 결혼 후 두명 이상 자녀를 가질 사람을 조사한 적이 있다. 50명 가운데 세명이 손을 들었다. 이들 세명의 답도 자녀 '두명 정도'가 고작이었다.

출산 문제는 이처럼 심각하다.

지난해 우리 나라의 15∼49세 가임여성 1인당 출산율은 1.17명으로 유럽의 이름난 저출산 국가들을 경신하는 기록을 세웠다. 출산율 감소 대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가 됐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최근 한나라당 백승홍 의원을 비롯한 의원 34명이 출산안정법안을 발의했다. 셋째 자녀가 만 18세가 될 때까지 양육 비용 일부나 전부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등 상당히 구체화한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출산 장려, 아동 수당 지급, 출산 비용 조세 감면 등 법안 세부 항목을 보면 일본이나 싱가포르에 못지 않게 실질적 혜택을 명시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성들 사이에서는 냉소적인 반응이 압도적이다. 한 여성 네티즌은 이 법안에 대한 후평으로 "하나 키우기도 버거운데 셋째 아기에 양육비라. 네번째 아기 출산하면 자동차 주고, 다섯번째 아기 출산하면 집 주고..... 열번째 아기 낳으면 대통령 시켜줄려나? 차라리 공공 육아시설 확충해서 서민이 큰 부담없이 아기를 키울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닐까.”라고 비아냥거렸다.

이는 이 법안의 내용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출산력이 낮아지고 있는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고 올바른 처방을 내리고 있다고 보기에 매우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인구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결혼한 부부가 낳는 자녀의 수는 지난 10여년 동안 큰 변화가 없다. 이는 현재의 낮은 출산력이 결혼을 한 부부가 자녀를 적게 낳는 데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출산력 수준이 계속 낮아지고 있는 핵심 원인의 하나는 예전 같으면 진즉 결혼도 하고 자녀를 낳았을 청년층이 결혼을 하지 않거나 못하고, 출산도 하지 않는 것이다. 가족사회학자들은 결혼한 여성들이 마음놓고 애를 낳기 이전에 아예 결혼을 안하거나 못하는 청년층이 늘어나 출산 자체가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점을 지적한다. 이같은 상황은 불안정한 고용과 경제 불황과도 직결된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취업시장에 진출하기 어렵고 직장이 크게 불안정해진 처지에 놓인 젊은이들이 결혼하고 싶어도 결혼하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선 육아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 나라에서 아이 한명 키우려면 월 83만원이 든다. 출산안정법이 제정된다고 해도 정부가 이렇게 엄청난 양육비를 다 대줄 수는 없을 것이다. 돈 몇 푼 지원받자고 영리한 싱글즈들이 희생 정신을 발휘해 우리사회 미래를 위해 아이를 낳아줄 것 같지는 않다. 자녀 양육에 쏟는 시간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제 70대 여성의 경우는 6명의 자녀를 위해 약 40년을 소비한 반면, 50대 여성은 4명의 자녀를 위해 36년을, 그리고 30∼40대는 2명의 자녀를 위해 28년을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가임기의 20대 중·후반의 여성들은 결혼과 직장 경력 그리고 출산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생애 주기상 과부하에 걸리게 마련이다. 임신·출산과 동시에 직장에서 퇴출당하는 여성인력의 현실, 결혼 및 가족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엄청난 결혼 비용과 주거 비용 등도 출산율 저하의 원인이 된다. 서구에서는 이들을 위해 공보육 개념을 도입하고, 가족친화적 정책을 마련해서 아버지의 양육권 확대 등을 시도함으로써 일정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일 우선 이데올로기가 가족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한, 저비용 고효율의 사교육비 부담이 계속되는 한, 여성의 출산 파업은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출산 전반에 우호적인 사회환경과 건강한 양육 및 교육을 담보하는 사회시스템 구축에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출산 장려 정책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출산 파업 경향을 정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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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숙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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