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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창] "정치인들 정신 차리시오”

이경재 편집국장

 

명절이 끝날 즈음이면 시골에 남아 부모를 부양하고 있는 K씨는 슬그머니 서운한 감정이 하나 솟는 게 있다. 서울에 사는 아들은 교통이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핑계로 고향을 일년에 한두번 찾을까 말까 한데도 부모는 그런 자식을 더 챙기고 나서니 심사가 뒤틀릴 수 밖에 없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우직하게 부모 뜻 받들며 부양하는 처지에 대해서는 당연시하고, 명절때 고깃근이나 들고 나타나는 아들에게는 "농약 안 친 것”이라며 이것 저것 손에 들려주는 모습이 여간 걸리는 게 아니다.

 

사람냄새 없고 농촌엔 황량함만

 

부모 마음 다 그런 것이라고 너그러움을 피워보지만, 시골에 남아 허리가 휘도록 일하면서 부모 부양하는 자식의 소중함을 흘려버리는데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부아가 치민다.

 

한때 농민후계자였던 K씨는 시골도 이젠 사람냄새가 자꾸 옅어져 가는 걸 느낀다. 명절이 지나고 나면 시골에 남아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은 더 큰 허전함을 맛보아야 한다. 마치 썰물처럼 서울로, 어디로 다 올라가고 난 뒤 끝의 마을 분위기는 황량함이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적막하고 착 가라앉기 때문이다. 이번 명절에도 고샅에는 자동차만 즐비했지 고향을 찾은 이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 놈의 텔레비전 때문이다. 동네에는 서까래가 무너져 내려앉은 빈집, 방마다 대못질을 해둔 채 문패만 달랑거리는 집들이 몇년째 그대로 서 있다. 주인이 모두 서울로 떠난 집들인데 그나마 문패가 붙어있는 건 사람이 살든 살지 않든 집주인 표시를 해 주자는 마을사람들의 배려에서다.

 

자기 논 몇필지에다 남의 논을 몇필지 임대해 농사를 짓고 있는 K씨는 땡볕이 쏟아져야 할 고대목에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바람에 농사를 망쳤다. 농사가 잘 되면 쌀 30가마, 평년 같으면 25가마는 넉넉히 수확할 터인데 올해는 20가마 건지기도 어렵게 생겼다. 논 주인한테 필지당 임대료로 12가마를 주고 나면 뼈빠지게 고생한 댓가는 커녕 시름만 더 깊게 패일 판이다. 농협 빚은 또 어떻게 챙겨야 한단 말인가.

 

K씨는 이경해 전 한농연회장의 자결이 오늘의 농촌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농업문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서 농민의 아픔과 농촌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비교우위론 따위의 해외파 박사들의 얘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않다.

 

갈수록 살기가 힘들다는 걸 실감하는 K씨는 오늘날 우리 농촌이 왜 이렇게 폐허가 되다시피 했는지를 되씹으면 정치인들에게 화가 치민다. 선거때마다 농촌문제에 대한 애정과 해박한 지식을 쏟아붓더니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잊어버리고 싸움질만 해대니 누굴 믿겠는가 싶어진다. 정치인들에겐 이제 기댈 것이 없다는 생각을 굳힌지 오래다. 이경해씨를 애도하고 우리 농촌의 현실을 개탄하는 정치권의 조사가 줄을 잇지만 며칠 지나면 금새 잊어버릴 게 뻔하다. 며칠전 "정치인들이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내년 총선때에는 혼좀 나야 할 것”이라는 술자리 친구들의 이구동성이 떠오른다. 잔류니, 신당이니 하면서 자기네들 잇속만 챙겼지 국민을 위해 정치인들이 뭘 했느냐고 한바탕 난도질을 한 터이다.

 

'내년 총선때 혼좀 나야 할 것'

 

K씨는 농촌사람들을 서울로 싹 쓸어가는 나라, 농촌에 황량함만 남기는 농업정책, 사람냄새가 풍기지 않는 인간성 상실의 사회, 그렇지만 혼자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시스템의 작동 등등의 현상들이 싫다. 이런 일을 바로잡는 건 정치인들의 몫이지 않는가. 정치인들이 제발 정신 차리고 국민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신명나는 정치를 펴 주었으면 하는 소망을 갖는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도리질 치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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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재 kjlee@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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