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진 정치부장
요즘 우리 사회에 자살 광풍(狂風)이 불고 있다. 온 나라가 자살공화국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4월초 충남에서 초등학교 교장이 자살을 하더니, 6월에는 서울대 시간강사가, 그리고 8월에는 현대 아산그룹 정몽헌 회장이 대북 송금 등과 관련 목숨을 끊었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민초들이 한강에서,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지고 있다. 급기야는 차량에 불을 질러 가족이 동반자살(죽음)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인터넷 자살사이트에서 만나 자살하는 사례도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하루평균 38명씩이 자살, 지난해 36명(연간 1만3천55명)을 웃돌고 있다. 교통사고 사망자수보다 2배 가까이 많고 암 사망자수를 추월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중 2001년 자살자수가 9위였으니, 자살선진국인 셈이다.
자살이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끈 것은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1774년 발표되고 부터라고 한다. 권총자살을 한 남자 주인공을 본떠 유럽에서만 수백 명의 청년들이 권총자살을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를 '베르테르 신드롬'이라 불렀다. 이때부터 자살이 죄악이나 병이 아닌 인간 스스로 선택 가능한 행동양식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요즘 자살은 그 같은 낭만적 자살과는 거리가 멀다. 자살의 배경이나 형태를 보면 사회구조적 요인과 연관이 깊다. 1921년 개벽에 '술 권하는 사회'를 쓴 소설가 현진건의 어법(語法)을 빌면 '자살 권하는 사회'가 아닌가 한다. 사회적 타살 성격이 짙다는 얘기다.
그것은 자살의 도덕적 정당성 여부를 떠나 우리 사회가 점차 희망을 잃어간다는 증표다. 달리 말하면 '절망지수'가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높아졌다는 말이다.
특히 요즘 급증하고 있는 신빈곤층의 가족 동반자살은 심각하기 이를데 없다. 공동체적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의 죽음은 사회에 대한 상실감과 분노가 방향을 바꿔, 자신과 가족에 대한 폭력으로 표현된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동반자살의 사례는 부지기수다. 지난 7월 인천 한 아파트 14층에서 세 자녀와 함께 투신자살한 주부(34)의 죽음은 충격적이었다. 남편의 실직으로 시작된 생활고가 주원인이었다. '엄마, 살려줘, 죽기 싫어'하는 아이들 둘을 밀어 떨어뜨리고 자신도 세살난 아이를 껴안고 뛰어 내렸다.
도내에서도 지난 7월 완주 삼례교 제방에서 채무에 시달리던 이모씨(33)등 일가족 4명이 불탄 승용차 안에서 발견되었다. 또 3일전 전주시 고랑동 둑길에서 실직과 채무에 시달려온 우모씨(36) 일가족 5명이 차에 불을 지르고 세상을 떠났다.
이들 동반자살은 하나같이 실직과 빚에 시달려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 시대 신빈곤층이 얼마나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현주소다. 그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나약함을 탓하기에 앞서, 빈부격차 등 우리사회가 소외계층을 껴안는 노력이 얼마나 허술하였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서울 백화점에선 한병에 1천2백만원하는 로얄살루트(50년산) 20병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강남 아파트 한채 가격이 1주일 사이에 1억원씩 치솟는 나라. 반면에 3천8백원이 없어 학교에서 단체로 가는 수영장을 가지 못하고 아이가 아파, 1만원을 빌리기 위해 이집 저집을 기웃거리는 나라. 신용불량자가 3백40만명을 넘고 생보자에서 빠진 차상위 빈곤층이 3백20여만명에 이르는 나라.
이처럼 양극단으로 나누어진 나라에서 빈곤층이 갈 길은 어디인가. 판단능력이 없는 자식들을 부모의 소유로 생각하며 동반자살한다고 나무랄 수 있는가. 자기 목숨보다 더 소중한 자식들이 차별과 가난의 대물림이 뻔한 이 황량한 사회에 홀로 남는데 눈이 감기겠는가.
이제 더 이상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빈곤한 계층을 그들만의 잘못으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사회 안전망 등 복지에서 눈을 떼어선 안된다. 오늘도 어디선가 죽음의 행진소리가 들린다. '자살 권하는 사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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