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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窓]막말 정치

조상진 정치부장

지난해 7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분당되기 이전의 일이다. 민주당 장전형 부대변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자택으로 택배를 보냈다. 그 택배에는 구강청정제와 초등학교 2학년 바른생활 책이 들어 있었다. YS가 노무현 대통령에게‘틀렸다’고 독설을 퍼부은 뒤끝이었다.

 

장 부대변인은 또‘DJ가 이적행위를 했다’고 발언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에게도 택배를 보낸다고 발표했다. 거기에는 냉수와 신경안정제를 넣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언론의 질타를 받자 미수(未遂)에 그치고 말았다.

 

이러한 행태는 요즘에 비하면 애교 수준에 지나지 않은듯 하다.

 

12일 열린 국회의 모습을 보면서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17대 국회는 뭔가 다르리라고 국민들이 기대했다. 대폭적인 물갈이로 구태(舊態)를 벗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한술 더 뜨는 형국이다. 사소한 말 몇마디로 국회는 2주간 공전을 거듭했다. 그리고 다시 문을 연지 이틀만에 국회 본회의장은 분노와 증오만이 판치는 ‘감정의 배설구’가 되어 버렸다.

 

물론 이해찬 총리가 한나라당을 ‘차떼기당’이라고 몰아부친 것부터가 격에 맞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 정도로 국회를 공전시킨 것도 웃기는 일이다. 모기를 보고 칼을 빼든 격이라고나 할까. 한나라당 역시 현 정부를 좌파, 주사파로 공격하고 대통령과 총리가 무식하다, 꼴통(최구식 의원)이다는 말을 거리낌없이 사용했다. 저격수 정형근 의원은 현 정부를 ‘좌파수구꼴통’이라며 “열우당(劣友黨)이 과반을 차지한 17대 국회는 해산해야 한다”고 막말을 던졌다. 정두언 의원은 현 정부를 인권유린의 대명사인 캄보디아 폴포트 정권에 비유했다.

 

이에 질세라 열린우리당 이목희 의원은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이전 위헌결정에 대해 ‘총칼만 안든 사법쿠데타’라면서 헌재재판관을 ‘법복입은 정치인’으로 퇴진할 것을 요구했다.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해외로 떠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뒤통수에 대고 저주를 퍼부었다. ‘노대통령의 부재’는 모처럼 나라가 조용해질 기회이므로 되도록 오래 머무시라고.

 

최근 몇년사이 여야의 말 싸움은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야당은 여당을 빨치산집단(이규택의원) 조선노동당 2중대 1소대(김용갑의원)로 부르고 노대통령을 개구리로 빗대었다.

 

여당도 야당을 양아치(노무현 의원)로 부르는가 하면 스스로 ‘깽판’‘계급장 떼고 붙자’고 서슴없이 말한다.

 

각당의 패러디는 더 가관이다. 지난 7월 친노(親盧)진영 사이트에는 박근혜대표를 ‘전설의 유신공주’로 묘사하면서 등에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의 창씨개명 이름)문신, 얼굴에 귀신같은 심홍색 눈동자를 그려 넣었다. 반면 한나라당 사이트에는 노대통령의 혀를 피묻은 칼에 합성하고 북한 김일성 주석의 동상에 노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올려 놓았다.

 

옛부터 말은 사람이라 했다. 그 사람의 인격과 사상이 담겨있다. 정치는 곧 말이다. 말로 시작하고 말로 끝난다. 그런데 요즘 정치인의 말에는 살기(殺氣)가 느껴진다. 그들의 입술에는 뱀의 혓바닥보다 더한 독기가 흐른다. 그리고 그 뒤에는 비수가 숨겨져 있다.

 

문제는 그 말이 전염된다는 사실이다. 거친 말이 반복되면 그 사회를 거칠게 만들고 국민들의 마음을 황폐화 시킨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워 삭막한 시대다. 해학과 위트가 넘치는 의정단상을 기대할 수는 없을까. 정치인들의 금도(襟度)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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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진 chos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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