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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窓] 능길마을서 교훈을 찾자

김관춘 제2사회부 부장

을유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맞아 도처에서 희망의 노래가 울려퍼진다. 저마다 마음을 가다듬고 각오를 새롭게 다진다. 비록 그 각오가 작심삼일로 끝날지라도 새해에는 희망의 노래가 있어 좋다.

 

그러나 새해, 새날이 밝았어도 희망을 노래하지 못한 곳이 있다. 우리의 마음의 고향이자 생명을 지탱해 주는 농촌, 농업인들이다. 이들에게는 을유년 새해에도 희망이 싹이 보이질 않아 암울하다.

 

해가 바뀌면서 타결된 쌀협상은 올해부터 10년간 쌀시장 완전개방(관세화)은 늦추는 대신 의무수입물량(TRQ)을 2배 가까이 늘리고 수입쌀중 10~30%를 시중에 유통시키는 조건으로 마무리 됐다.

 

국회 비준과 국제입찰 및 공매절차를 감안하면 오는 6월쯤엔 중국이나 미국쌀, 인도의 ‘향미’등이 우리 식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수입쌀만 문제가 아니다. 지난 가을엔 김장용 배추농사를 지은 농업인들의 긴 한숨소리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배추값이 폭락하여 인건비조차 건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긴 비탈 밭엔 주인을 찾지 못한 수만 포기의 배추들이 추위에 달달 떨다 꽁꽁 얼어 붙고 말았다. 이름모를 유령들이 부스스 머리를 풀어헤치고 사열하듯, 배추들이 을씨년스레 서 있으니 농삿꾼들의 마음이 편할리 있겠는가. 폭락의 낌새는 일찌감치 예감되었다.

 

지난 여름 장마끝 무렵 김치가 ‘금치’로 둔갑하며 배추값이 치솟자 너나 할 것 없이 배추를 심어 물량이 부쩍 늘어난 탓이다. 또 ‘중국산 김치 역수입’이 1만여톤으로 2003년 대비 아홉배나 증가했다.

 

여기에 더해 인스턴트 식품에 길들여진 미래의 주역들은 김치냄새라면 코를 막고 재채기를 해댄다. 김치가 비타민C 덩어리라고 아무리 우겨도 콧방귀만 뀔 뿐이다. 이처럼 소비는 줄고 농사는 투기화 되고 있으니 어찌 우리의 농촌, 농업인들의 입에서 희망의 노래가 흘러 나오겠는가.

 

그러나 마냥 절망의 터널에 주저앉아 한숨만 내 쉴수는 없다. 절망의 저편으로 눈을 돌려 보자. 진안군 동향면 능길마을이 한 대안이다. 이 마을은 4년전까지만 해도 산간오지였다. 급속한 이농과 고령화 현상으로 한때 1백가구, 5백여명을 웃돌던 주민은 50가구, 1백여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마을 대표를 맡고 있는 박천창(46)가 일본연수를 다녀온뒤 생태농업을 위주로 한 농촌체험마을로 가꾸면서 변화는 시작됐다. 오리농법으로 재배한 무공해 쌀과 직접 재배한 인찐쑥 진액, 장류등을 팔아 작년에만 7억원의 소득을 올렸다. 과거보다 가구별로 30∼40% 수입이 증가했다.

 

마을의 생태농업은 또 관광마을로 변해 해마다 도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계절마다 농사체험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봄철에는 씨앗 뿌리고, 여름에는 감자 옥수수 캐고 따고, 가을에는 벼 베고 미꾸라지 메뚜기를 잡는다.

 

폐교를 인수해 눙산물 가공공장으로 활용하는 한편 단체 숙박객을 맞을 수 있도록 한켠엔 황토방까지 꾸몄다. 그래서 4년만에 부자마을이 된 것이다. 온누리에 희망의 노래가 울려 퍼지던 새해 벽두, 경남 진주에서 농사를 짓던 한 농삿꾼(당시 45세)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신문 귀퉁이에 실렸다.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는 농사꾼들은 왜 처자식까지 딸린 농삿꾼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지를 잘 안다. 생명을 길러내는 농삿꾼이 자살을 결심할 때는 빚이 감당할 수 없이 많아서가 아니라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소망컨대 이 땅의 농촌, 농업인들도 당당하게 희망가를 부를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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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춘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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