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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窓] 썩어 문드러진 세상

김관춘 사회부장

정말 놀랍다. 시중에 떠돌던 가담항설이 하나둘씩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저잣거리의 장삼이사가 한 일이 아니다. 남들이 부러워 하는 전문직종의 의사들이요, 지성의 상징인 교수들이요, 인허권을 쥐고 있는 고급공무원들이다. 직종도 다양하고 범위도 넓다. 선량한 사람들 뱃속에는 오장육보만 있으되 이들의 배안에는 큰 황소불알 만한 도둑보가 곁붙어 오장칠보가 있는 듯 탐욕도 게걸스럽다. 날이면 느느니 기술이요, 쌓이느니 황금이다. 어느 왕초한테 배웠는지 수법은 신기에 가깝고 비전(秘傳)은 계속된다. 간뗑이는 부어 남산만 하고 목질기기는 동탁 배꼽같은 천하흉폭 도둑의 소굴같다(김지하의 오적). 엊그제 정읍에서 개원한 병원장들이 부풀린 진료비로 보험금을 타냈다가 쇠고랑을 찼다.

 

교통사고 환자를 돈으로 본 이들은 입원일수 조작하고 투약횟수 늘려 챙긴 3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주머니에 넣었다. 연초는 전주에서 개업한 몇몇 의사들이 이와 똑같은 수법으로 부당이득을 챙겼다 법의 심판을 받았다. 자동차 보험료가 왜 이리 비싼가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던 게다. 의사들이 이렇게 챙인 돈은 결국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가끔씩 단속을 해도 악순환은 계속된다. 하다 걸리면 물어내면 되고 안걸리면 내 것이다.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다. 적당히 벌금형 때리고 부당이득 환수하면 끝이다. 의사면허를 취소했다는 법의 단호한 응징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재범의 소지를 제공하는 셈이다. 아마 이들도 새파랗게 젊고 순수했던 시절, 모든 의학과정을 마치고 드디어 의사가 되는 순간에는 교수님 앞에서 또박또박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을 것이다.

 

천민자본주의의 망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시대의 선비라는 교수들까지 가세한다. 대학 학장에 총장까지 검찰문턱을 들랑거린다. 정부가 대학에 지원한 연구비를 횡령한 것이다. 수법도 똑같다. 세금계산서를 조작하거나 연구원 인건비를 빼돌리는 방법으로 주머니를 채운다. 이쯤되면 이건 지성이고 의사가 아니다. 빼낸 돈의 액수도 그렇지만 연루된 교수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 수사를 하는 검사들도 몹시 당혹해 한다. 그래서 검찰은 과연 어느 선까지를 구속기준으로 삼아야 할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얼마전 도내 의과대학 박사매매 사건때는 1억5000만원 이상을 구속기준으로 삼았고 이번 대학 연구비는 5000만원을 기준으로 삼을 모양이다. 여러 요인을 감안했겠지만 일단은 워낙 대상자가 많아서 일 게다. 그러다 보면 자칫 검찰이 자의적 판단을 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대목이다. 1000만원만 받아도 가차없이 구속하는 시의원이나 일반 공무원의 사례를 천칭에 올려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일반 시민의 정서는 숫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국민소득 2만달러를 향해 치닫는 대한민국의 역량은 지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탐욕을 일삼는 이런 불량품들 한 트럭을 가막소에 보내도 숙식은 해결할 수 있다. 누구든 죄를 지었으면 단죄를 받아야 한다. 특히 사회적 의무와 책임이 더 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에게는 더욱 엄격해야 한다. 업자로부터 억대를 받은 사립대 학장, 청탁이나 인사를 대가로 돈을 받은 고급공무원들, 낮은 계급부터 높은 계급까지 직종을 불문하고 벌어지는 이 질펀한 탐욕의 사회…. 그렇게 챙긴 돈으로 삐까번쩍 고급차 몰고 골프채 하나씩 비껴들고 꼰아잡아 엉덩이 씰룩 거리다 굿∼샷하면 누가 알아 주던가, 행복감에 빠져 들던가. 썩어 문들어 질대로 문들어 진 이 세상, 그래서 악취가 진동하는 난삽하고 부패한 이 사회를 향해 나는 고개 높이 치켜들어 힘껏 침을 내밷고 싶다. 에라잇, 퉤! 퉤!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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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춘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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