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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김양일

김양일(언론인)

몇해전 이른바 탄핵 정국이 뜨겁게 달아오를 때 이야기다.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를 보라. 지면과 화면의 톱뉴스가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퍼붓듯 주어야 했던 기업들, 조폭이나 야바위꿈을 뺨치는 비겁한 차떼기 등 수법을 동원한 정치인들, 거액을 횡령한 공무원들, 각종 청탁을 미끼로 뇌물을 받은 무슨무슨 협회 사람들. 아무리 부정부패가 심하고 썩어도 어떻게 이런 상황까지 왔을까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특히 그런 야비한 수법으로 돈을 챙긴 정치인들의 면모를 보면, 이나라 최고의 명문고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니, 기가 찰 일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지식과 학벌이 중요한 게 아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지혜와 진정한 삶의 철학이 요구됨을 새삼 깨달았다. 겉만 번지르한 엘리트보다도 참인간의 실용적인 사람이 필요하다.

 

두 자녀에게 신경 안정제를 먹인 후 자식을 한강에 던져 죽인 어느 젊은 철면피 아빠 이야기가 충격을 주었다. 지금 우리 사회 전체가 일종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고, 그 사람도 그 병의 중증 환자일 것이다. 기성 사회 집단이 이렇게 비정상적일 만큼 부패하고 폭력화한 것도 문제지만, 심각한 문제는 미래의 주인인 젊은 세대 역시 그 비슷한 길을 따라가는 데 있다. 그 점을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곳 중 하나가 대학가 풍경이다. 웬만한 대학가 앞의 거리는 이제 대학로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술집과 카페 등 퇴폐 업소로 가득 차있다.

 

대학이라는 곳이 본래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라 그 주변에 맥주집과 카페가 들어서는 거야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우리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심하다. 아마 술집과 서점의 비율이 100대 1은 훨씬 넘을 것 같다.

 

얼마 전 어느 신문 지면에 ‘쪽방동네 사람들’ 기사 중, 어느 노인의 말 한마디가 충격적이었다.

 

‘사는 게 아니라 버려져간다.’ 삶의 고통을 표현한 이 한마디가 나의 귓가를 맴돌고 있다. 최저 생계비보다 훨씬 적은 소득으로 생활하는 절대빈곤층은 도시 가구의 10퍼센터에 이른다. 무의탁 노인·소년소녀가장·버려진 노인과 아이들·정처없이 표정을 잃은 노숙자들·사회의 보살핌이 없으면 이들은 지금의 삶을 보장받지 못한다.

 

그러나 장기 불황은 이들에게 더 혹독한 겨울을 보낼 것이다.

 

구세군은 안간힘을 다 하지만 자선냄비 무게는 여전히 가볍다.

 

5·6도, 4·5정, 3·선에 2태백까지 등장한 판에 극빈층이 느끼는 체감 온도는 영하권을 맴돌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영등포 쪽방동네너머 여의도 정치권은 쪽방동네, 소외된 사람들의 한기와 배고픔은 모른 채 밥그릇 싸움에만 열중하고 있다. 기업을 협박해 쪽방동네 사람들을 구호하고도 남을 만큼의 불법 자금을 받아쓴 게 엊그제다.

 

탐욕은 화를 부른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을 텐데도 벌써 다 잊은 모양이다. 바야흐로 혼탁하고 막가파식 사회의 파노라마다.

 

시끄럽고 어지러운 지난날들이었다.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들, 본분을 넘어선 과용과 과욕의 나날들, 내 탓이 아닌 남의 탓으로만 돌린 화난 삿대질들이 줄기차게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슬프게 만들었다. 이 사회가 이렇게 혼탁하게 된 게 다들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한다.

 

악몽으로 점철된 하루가 가고 또 다른 새로운 날들이 시작된다.

 

몸과 마음을 추슬러 이제 세월을 또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과 함께 그래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여유와 함께 새로 시작하는 내일은 오늘보다는 나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소년시절 어두운 마음으로 읽었던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새삼 떠오른다.

 

/김양일(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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