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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자랑스런 어머니 '미망인' - 윤일구

윤일구(국립임실호국원 현충과장)

우리원은 작년 국립묘지로 승격된 이후 국가유공자와 참전유공자를 비롯한 수많은 분들이 찾아와서 참배를 마친 후 당신들이 누울 자리를 둘러보고 “임실호국원이 참으로 명당이구나” 라고 감탄하면서 돌아간다. 특히 인근 군부대의 씩씩한 젊은 군인들이 참배를 할 때면 우리원은 그들의 열기로 활기가 넘쳐 참 마음이 든든하고 흐뭇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6?25 전쟁미망인들이 이곳을 찾을 때 가슴이 저려오는 것은 우리가 한 민족, 한 핏줄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송판순 미망인회 전북도지부장이 인솔하는 고창군 미망인회 회원 40 여명이 우리 호국원을 찾아 현충탑을 참배하였다. 80이 넘은 미망인들은 구부정한 허리로 하얀 국화를 헌화대에 올리고 향을 사른 후 주악에 맞추어 묵념을 실시하였다.

 

짙은 향연 속으로 진혼곡이 나직이 울려 퍼질 때 몇몇 미망인의 흐느낌을 들을 수 있었는데 청상의 나이에 남편을 국가에 바치고 60년 한(恨)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긴 인고의 세월을 회상하는 듯한 그 흐느낌은 우리의 마음을 울렸다. 여기서 미망인의 뜻과 역사적인 유래를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미망인(未亡人)은 죽지 못한 사람이란 뜻으로 별로 좋은 뜻은 아니나 말자체가 지닌 의미보다 사회에서 받아들이는 뜻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이 실례가 되는 말이 홀로된 부인을 가리키는 품위 있는 말로 쓰여 지고 있는 것이다. 「춘추좌씨전」에 초나라 재상 자원(子元)이 죽은 문왕의 부인인 문부인을 유혹하기 위하여 부인의 궁전 옆에 만(萬)이란 춤을 추게 하고 음악을 울렸다. 이 눈치를 챈 문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선군께서는 이 음악을 군사훈련에 사용하셨는데 재상은 이것을 적군을 치기 위해 쓰지 않고 이 미망인 옆에서 사용하고 있으니 이상하지 않은가” 라고 한데서 유래 되었는데 이 뜻은 홀로된 여자가 자신을 낮추어서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하고 살아있는 몸이란 뜻으로 쓰여 지게 되었다. 우리 민족의 최대 수난기인 6?25 전쟁 때 당해야 했던 미망인들의 삶은 정말로 눈물겹다.

 

가냘픈 20세 전후 여자의 몸으로 전사한 남편의 역할을 대신한 가장의 역할, 당시 대가족제도에 기인한 시조부, 시부모 봉양과 어린 시동생, 시누이의 양육뿐만 아니라 어린 유복자를 길러야 했다. 남자도 하기 어려운 3중, 4중의 고통에다가 남편을 잡아먹고 집안을 망쳤다는 시어머니의 잦은 구박으로 억울함을 하소연할 길 없어 행주치마에 눈물을 적셔가며 소리 없는 울음으로 긴 밤을 지새웠던 일이 수 없이 많았다. 그 분들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20대 청상의 긴긴밤을 홀로 지새워야 하는 뼈저린 외로움 이었고 암담한 미래에 대한 끝없는 두려움 이었다. 그분들은 이를 악물고 60 여 년간 그런 고통의 밤을 홀로 지새웠던 것이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우리 미망인들은 이 모든 고통과 갈등을 극복하고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 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번영을 이끌어낸 유복자들을 훌륭하게 성장시킨 인간승리의 표상이기도 하다. 꽃다운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풍파를 겪고 남모르는 전사한 남편을 가슴에 묻은 채 묵묵히 살아온 6?25 미망인들은 모두 80세가 넘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얼마 후에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게 된다. 정부에서 6월 한 달 동안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하여 각종 추념행사를 개최하는 이유는 과거 조국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 신명을 다 바쳐 조국을 구한 국가유공자의 공훈을 기리는 한편 그 공훈을 국민들에게 알려줌으로써 나라사랑 정신의 귀감으로 삼도록 하는데 있는 것이다. 우리는 6월 한 달 동안 만 이라도 어머님을 찾아뵙듯 우리 이웃의 미망인들을 감사와 존경의 마음으로 찾아뵙고 따뜻하게 위로를 드리는 것이 국민 된 도리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윤일구(국립임실호국원 현충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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