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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칼럼] 제 잔이 넘치나이다 - 강숙원

강숙원(원불교 변산 원광선원 원장)

여름 내 무성하게 잎만 자라던 옥잠화가 얼마 전 꽃대를 쑥쑥 올리더니 드디어 뽀얀 우윳빛 꽃잎을 봉긋 열고 수런수런 피어납니다. 초록이 넘치던 앞뜰이 갑자기 눈부신 순백의 꽃잎들로 화안해졌습니다.

 

천일기도를 시작한 지 100일째 회향이 다가옵니다.

 

수행자에게 기도란 이미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상이며, 그저 삶의 시작이요 끝 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천일기도"라는 이름으로 오체투지하며 간구 하는 것은 참회와 성찰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신선한 바람이 목말랐습니다.

 

무디어진 영혼의 세포들을 흔들어 깨우고 싶었습니다. 내 안에서 일상에 매몰되고 관념화 되어가는 교의들, 그리고 어느새 천박한 세속주의와 결탁하고 있는 빛바랜 서원들을 보았습니다. 종교마저도 적자생존의 법칙과 성장지향의 가치관 속에서 조이고 떠밀며 인간을 치열한 경쟁의 도구로 삼고 있는 이 시대가 많이 아팠습니다.

 

그 망가짐과 절망의 끝에서 숲으로 왔습니다.

 

숲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숲은 나를 오랜 친구처럼 받아주었고, 그 교감은 필시 운명적인 느낌이었습니다. 아마 어느 전생쯤 나는 이 숲에 나무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하여 내 고통스런 상처를 거침없이 숲속에 맡겼습니다.

 

숲은 잃어버린 마음의 시간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 나의 "모모"였습니다. 그는 우리가 더 이상 속도의 노예가 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고 풍요롭게 존재할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기도는 그 치유와 희망의 경계에서 나를 발견하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좀 더 내밀하게 내 영혼과 맞닥뜨리며 고통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고, 참회의 고백과 소중한 인연들의 행복을 기원하며 더 낮아지는 겸허를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우주의 근원이신 그 분 곁에 가까이 이르고자 했습니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우리 삶의 가장 고귀한 목표는 다른 사람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에너지는 부메랑이 되어 그대의 꿈도 함께 이루어지게 된다고. 그이의 말대로 정말 다른 사람의 행복을 발원하는 기도는 곧 내가 행복해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위력은 어김없이 부메랑이 되어 내 존재의 의미를 증거하며 지금 이 잔을 넘치게 합니다.

 

올 여름 폭염은 이곳도 광포했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붉게 익은 고추를 따내며 그 뜨거운 날들의 은혜를 실감해봅니다. 이 저녁 나는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보다가 마루 끝에 앉아 산 능선의 부드러운 실루엣을 따라 그저 무심히 고요해지곤 합니다.

 

밤낮없이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유난히 크고 허스키해졌습니다. 이제 그도 떠날 때가 된 것일까요. 애절한 음색은 이별이 느껴집니다. 이 땅의 기후가 심상찮은 가운데 점점 아열대로 접어들고 있다는데도 여기 산골의 바람과 햇살과 생명들은 이내 가을향기로 깊어가고 있습니다. 제 잔도 차고 넘칩니다.

 

/강숙원(원불교 변산 원광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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