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호올로 어델 가라는 슬픈 信號(신호)냐"로 시작되는 김광균(金光均:1914-1993)의 '와사등(瓦斯燈)'은 아무것도 믿고 의지할 수 없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 어디론가 떠나야만 하는 현대인의 고독과 불안 의식을 가스등을 통하여 형상화한 작품으로 무려 19종의 대학 국어 교재에 나오는 유명한 시이다.
그런데 이 시의 제목 '와사등'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 아쉽다.
만일, 우리가 일본 사람의 시를 우리말로 옮긴다면 시 속의 일본말은 그것이 한자말이건 차용어이건 간에 우리의 말에 맞는 말로 옮겨야 하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상식이다.
예를 들면, 우리와 일본에서 똑같이 외래어로 대접받는 '아파트'의 경우, 일본 시인이 그 말을 자기들의 식으로 '아빠아또'라고 표기했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우리식으로 '아파트'로 옮기게 된다는 것이다. 일본식 그대로 '아빠아또'로 옮기면 우리말로 대접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그 시나 말을 쓴 사람이 한국인이라 하더라도 그가 쓴 '아빠아또'는 어디까지나 일본말일 수 밖에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인 김광균이 '와사등'이라는 말을 썼다고 해서 그것을 우리말로 취급하는 것은 언어 도단이다. '와사(瓦斯)'는 일본사람들이 '가스(gas)'의 차용어에 붙였던 한자말이지 우리가 차용한 한자말은 아니다. 따라서 '瓦斯'의 음은 어디까지나 '가스'이지 한자를 보고 '가스'라고 읽을 수는 없는 일이므로 우리로서는 시인이 뜻하고자 했던 우리의 외래어로서의 '가스'를 써야 할 것이 아닌가.
시인 자신도 그 글자를 '가스'로 표기한다고 해서 시의 생명이 죽는 것이 아닌 바에야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아 해 본 소리다.
만약에 일제 때에 일본식 이름으로 썼던 한국인의 시나 소설을 오늘날에도 일본식 이름으로 발표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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