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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호의 클래식과 친해지기] (38)공공음악회(Public Concerts)②

음악가와 청중이 교감하는 '예술의 장'…19세기 정기연주회 갖는 전문음악단체 등장

17세기에 시작된 공공음악회 활동이 활성화되자 유럽의 많은 도시들에서 공공음악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흥행에 성공하면 작곡가, 연주가, 연주회를 개최한 단체 모두가 수익을 얻게 되니 음악가들은 흥행에 성공하기 위해서 대중의 음악 취향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와 같은 현상은 대중이 선호하는 곡들을 중심으로 음악적 고전을 형성하게 되었다.

 

살아 생전에 이미 대중을 의식하면서 작곡하였던 비발디, 바흐,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은 당연히 고전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대중을 의식하여 고전작품을 점점 더 많이 연주하게 되는 예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프로그램 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1780년대에는 85%가 동시대 작곡가의 곡이었는데 비해 1820년경에는 75%로 줄어들었고 1870년경에는 오히려 75%가 주로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초기낭만주의 작곡가들의 곡으로 바뀐다. 공공음악회의 흥행 성공을 위해 귀에 익은 친숙한 과거의 곡들을 점점 더 많이 연주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19세기경부터는 정기적인 공공음악회 즉, 정기연주회를 갖는 전문 음악단체도 나타났다. 오페라하우스, 극장, 카페, 무도회장에도 오케스트라가 있게 되는데 19세기에 가장 사랑받던 오케스트라의 하나는 왈츠로 유명한 빈의 요한 스트라우스(Johann Strauss, 1804~1849) 오케스트라였다.

 

공공음악회에서 먹고 마시거나 곡 중간에 박수치는 등의 행위가 사라진 것은 19세기에 나타난 현상이다. 1813년 베토벤 교향곡 7번 초연때는 2악장이 끝나자 마자 열광적인 박수갈채가 쏟아져 2악장을 한 번 더 연주한 다음 3악장으로 넘어간 예도 있긴 있었다. 그러나 조화로운 클래식 음악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감동이 더하기 때문에 연주 중간에 박수를 치거나 얘기하는 것을 점점 금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연주를 듣는 청중의 태도가 좋지 않을 때 조용히 해달라고 요구한 음악가는 리스트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한 예로 러시아 페테르스부르크 궁전 니콜라우스 황제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때 일화다. 연주 중인데, 황제가 부관에게 뭔가를 작은 소리로 지시하자 리스트는 연주를 중단했다.

 

"왜 연주를 중단하는가?". 황제가 묻자, 리스트는 "폐하께서 말씀하실 때는 침묵하는 것이 법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단다. 정신을 집중하여 연주하고 있는 리스트는 조그만 소음에도 집중이 흐트러지니 비록 황제일지언정 조용하기를 요구했을 것이다.

 

오케스트라는 악기를 다루는 기술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던 반면에 합창은 노래를 즐기는 아마추어들인 경우가 많았다. 아마추어 합창단은 '합창협회'로 조직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 최초의 합창협회중 하나인 <베를린 노래아카데미> 는 처음에는 여성들의 노래교실로 출발했다. 1791년에 남자도 단원으로 받아들여 최초의 음악회를 열었고, 30명 정도이던 규모는 작곡가 첼터(Carl Friedrich Zelter, 1758~1832)가 지휘하게 되는 1800년경에는 150여명이 되었으며 첼터가 세상을 떠날 때 쯤에는 단원이 350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합창은 민주·평등의 의미도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인기가 있었다. 목소리가 좋다고 혼자 큰 소리를 내면 음악의 조화를 깨드리기 때문에 평등하게 서로 절제하면서 화음을 맞춰야 하는 음악인 합창은 민주·평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을 들을 때는 눈을 뜨세요."라고 했단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 것이 집중해서 들을 수 있는 더 좋은 음악감상 자세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정작 음악가들은 자신의 음악만들기를 청중과 함께 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활동한 지휘자 첼리비다케(Sergiu Celibibache, 1912~1996)는 자신이 지휘하는 공연실황의 녹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음악은 살아 숨쉬기 때문에 결코 저장하거나 보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술은 현장에서 직접 체험할 때만 제대로 느낄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연주할 때 청중이 있으면 정신집중이 방해된다며 음악회장에서의 공공음악회를 중단하고 스튜디오에서만 연주하며 전설적인 바흐 음악 음반들을 내놓은 캐나다 피아니스트 글렌굴드(Glenn Herbert Gould, 1932~1982) 같은 음악가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음악은 살아있는 언어이니 직접 보고 들으면 감동과 재미가 더 생생할 것은 뻔한 이치다. 공공음악회는 음악가와 청중이 직접 교감하는 예술의 장(場)이다. 따라서 공공음악회는 청중이 성황을 이뤄야 신이 난다. 여러 음악회장에서 열리고 있는 공공음악회 표를 사 음악회에 참석하여 음악을 들으며 박수를 크게 쳐주는 것은 참 의미있는 일이다.

 

/신상호(전북대 음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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