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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 전북 기업사] (34)(주)전주페이퍼-⑦ 90년대 중반이후 변화와 발전

IMF 외환 위기로 '한솔' 휘청…외국기업 투자로 경영 안정

전주페이퍼의 변화와 발전을 함께 한 나병윤 전무. (desk@jjan.kr)

삼성의 그늘에서 벗어난 한솔제지는 1992년 9월 중장기 전략을 담은 '한솔플랜2000'을 발표하며 독자생존을 넘어 원대한 21세기 청사진을 발표한다. 한솔은 플랜에서 2000년 매출 3조원, 세계적 종합제지회사로 성장, 사업다각화 카드를 내놓았다.

이 계획은 발빠르게 진행돼 1995년 무렵 한솔은 ▲종합제지군(한솔제지, 한솔파텍, 한솔판지), ▲유통무역사업군(한솔무역, 한솔유통), ▲금융사업군(동해종합금융, 한솔상호신용금고, 한솔창업투자), ▲정보통신사업군(한국마벨, 한솔PSI), ▲자원개발사업군(한솔포렘, 한솔화학, 한솔건설, 한솔개발) 등으로 영역을 크게 확대했다. 한솔은 기업간 상호 연관성을 염두에 두고, 그룹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업들을 인수했다.

 

 

 

1999년 7월 초고속 무선 멀티미디어 시험에 성공한 한솔그룹에서 설립한 한솔PCS가 시연회를 하고 있다. 한솔은 휴대전화 경쟁사와 치열한 고객 확보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한솔제지 등을 담보로 엄청난 은행돈을 끌어다 썼는데, 이 대출금이 IMF외환위기 속에서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desk@jjan.kr)

 

▲ 한솔의 몸집 불리기 부메랑 되다

이처럼 한솔이 삼성으로부터 분리 독립한 후 발빠른 행보를 보이며 그룹 위상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한솔제지의 견고한 성장세 때문에 가능했다. 한솔제지의 매출액은 1989년부터 1993년까지 5년동안 연평균 15.1% 증가했다. 89년 3억4000만달러(세계 105위)였던 매출액은 90년 4억900만달러(100위)로 뛰었고, 93년에는 5억9600만달러 세계 68위 규모로 성장했다.

또 이같은 성장은 신문시장의 활황 덕분이었다. 1987년 6.29선언으로 언론 창간이 자유로워졌고, 경제성장과 민주화 물결 속에서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는 분위기를 타고 신문시장은 창간과 증면경쟁이 치열했다.

전주페이퍼 나병윤 전무는 "1990년대 중반 무렵 국내 신문용지 수요가 워낙 많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할 정도였다. 우리도 한 때 수입 신문용지를 신문사에 공급했는데, 수입 제품이 톤당 10만원 가량 비쌌지만 손해를 무릅썼다. 신문사는 우리의 영원한 고객이었고, 놓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나 전무는 이어 "국내에서는 중앙지 기준으로 32면이 일반적이다 싶었는데 어느 순간에 48면, 64면으로 면이 늘었다. 신문이 잡지 수준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성장세에 있던 신문용지 시장이 갑작스럽게 닥친 IMF외환위기라는 된서리를 맞고 휘청했다.

 

 

 

 

2005년 4월 팬아시아페이퍼 전주공장 비전 선포식에서 임직원들이 손에 손을 잡고 회사발전을 다짐하고 있다. (desk@jjan.kr)

 

1997년 국내 신문용지 소비량은 130만톤에 달했다. 그러나 1997년 말 우리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면서 경제 전반이 급랭했고, 1998년 국내 신문용지 소비량은 전년대비 38%나 급감한 80만톤 수준에 불과했다. 신문용지 생산업계가 융단폭격을 맞은 듯 충격에 휩싸였다.

IMF외환위기 충격으로 금융기관의 자금 회수, 기업의 자금난 가중, 대출금리 상승의 악순환 사태가 벌어졌고, IMF 또한 고금리 처방을 내놓으면서 대기업, 중소기업들이 여기 저기서 쓰러졌다. 은행 등 금융기관도 무너지면서 대마불사의 신화가 깨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솔제지 등 한솔그룹도 벗어나지는 못했다.

▲ IMF외환위기 직격탄 맞고 휘청

1992년 한솔플랜2000을 발표한 후 금융기관, 전자기업, 골프장 등 사업성이 있는 기업이다 싶으면 잇따라 인수, 덩치를 키워온 한솔그룹은 갑작스런 IMF외환위기 사태 앞에서 유동성 난조에 빠지고 말았다.

 

 

 

 

2008년 7월 한국노스케스코그 노조원들이 모건스텐리PE와 신한PE의 공장 인수와 관련,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위). 전주페이퍼는 지난해 8월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선정, 인증서를 받았다. (desk@jjan.kr)

 

당시 한솔PCS(018)를 설립하고 핸드폰 사업권을 따낸 한솔은 011, 016, 017, 019 등 경쟁사와 치열한 고객 확보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한솔제지 등을 담보로 엄청난 은행돈을 끌어다 썼는데, 이 대출금이 IMF외환위기 속에서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처럼 갑작스런 위기 앞에서 현금이 부족해진 한솔제지는 직원 월급 만큼은 철저하게 챙겼다. 나병윤 전무는 "제지공장은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데, 당시 우리회사 월 전기료가 20억원 에 달했다"며 "전기료를 1∼2일 내지 못하더라도 직원 월급은 하루도 늦추지 않고 제때 지급했다. 그 전통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극심한 유동성 위기에 처하자 한솔그룹은 현금 확보를 위해 계열사들을 시장에 내놓았다. 노른자위 전주공장은 많은 국내외 자본들이 군침을 흘렸고, 1998년 12월31일 한솔제지, 노스케스코그(노르웨이), 아비티비 콘솔리데이티드(캐나다) 3사가 합작 설립한 팬 아시아 페이퍼(Pan Asia Paper Company)에 넘어갔다. 이 때 전주공장은 팝코전주주식회사(PAPCO, Pan Asia Paper Company)로 한솔제지에서 독립했다.

▲ 전주공장, 외국인투자기업으로 변모

한솔그룹이 한솔제지와 노스케스코그, 아비티비 콘솔리데이티드가 각각 지분 1/3씩을 공유하는 조건의 다자간 합작투자 방식을 통해 당시 유치한 외자는 9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당시 외자유치로는 가장 큰 규모였고, 대통령 표창까지 받을 만큼 성공적이었다.

싱가폴에 위치한 팬아시아페이퍼는 전주와 청원, 중국 상하이, 태국 등 4곳에 공장을 두고 연간 150만톤 이상의 생산능력을 갖췄다. 이는 아시아 태평양지역 신문용지 시장의 30%를 상회하는 것이다.

팝코전주(주)는 팝코(PAPCO, Pan Asia Paper Company)의 한국내 자회사로 팝코 전체 생산량의 70%에 달하는 연간 100만톤을 담당하는 주력기업 위치였다.

팝코전주(주)는 1999년 12월30일 팬아시아페이퍼코리아로 사명을 변경했고, 2001년에는 한솔제지가 자사 지분 1/3을 매각하면서 노스케스코그(50%)와 이비티비 콘솔리데이티드(50%) 2대주주 체제가 됐다.

2005년 11월, 이비티비 콘솔리데이티드가 본사 경영이 악화되자 팬아시아 지분을 노스케스코그에 매각했고, 팬아시아페이퍼코리아는 노스케스코그 단독주주 체제가 됐다. 이를 계기로 2006년 1월에는 상호가 한국노스케스코그로 변경됐다.

하지만 노스케스코그도 2008년 9월 손을 뗐다. 2008년 유동성 제고 차원의 글로벌 구조조정을 추진한 노스케스코그 그룹이 모건스텐리PE와 신한PE에 매각하고 한국을 떠났다.

▲ 투명경영과 소통으로 노사 신뢰

모건스텐리PE는 아시아 사모펀드 중 상위 5위 규모로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투자하는 사모펀드에 속한다. 또 신한PE는 국내 사모펀드 시장의 선두 신한금융그룹의 풍부한 고객 기반과 경험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들 양 주주사는 지분 인수 후 경영개선 작업과 기업가치 제고 등에 활발히 참여하는 한편, 한지의 명성이 높은 전주의 전통과 40여년 회사의 역사와 기업문화를 계승한다는 차원에서 사명을 '전주페이퍼'로 변경했다.

삼성그룹 시절, 삼성 분리독립과 한솔그룹시절, IMF외환위기 시절을 거쳐 외국인투자기업으로 변모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전주페이퍼 구성원들은 많은 혼란을 겪어야 했다. 경영진이 자주 바뀌는 과정에서 특히 기업문화도 변화했다.

외국인투자기업답게 눈높이가 자연스럽게 국내 최고에서 '세계 최고'에 맞춰졌다. 경영 시스템은 물론 임직원들의 마음가짐까지 글로벌화 돼야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자경영체제를 거치면서 투명경영이 자리잡았고, 능력평가제와 인센티브제 등 합리적 인사시스템도 자리잡았다.

외국인이 경영에 참여한 초창기인 팬아시아페이퍼 시절부터 대표이사를 포함한 임원들이 직접 매분기마다 직원들 앞에서 경영현황을 설명하고, 노사협의회에도 참석해 애로사항을 경청하고 있다. 사내 호프데이를 통해 직원과 경영진이 소통했다. 이런 과정에서 감원 등 고용불안이 불식됐고, 전주페이퍼는 안정 궤도를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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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 jhkim@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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