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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역 100년

우리나라에 철도가 들어 온 것은 1899년이다. 이 해 4월 서울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에 전차가 처음 운행되었다. 이어 9월에는 인천~노량진 간에 경인선이 개통되었다. 그리고 1905년 경부선, 1906년 경의선이 개통되었다.

 

대전- 목포 간의 호남선은 1910년 착공되었다. 대전과 목포에 건설본부를 설치하고 남북에서 동시에 공사를 시작했다. 맨 먼저 대전~연산 간이 1911년 7월 영업을 시작했고 연산~강경 사이가 그해 11월, 강경~이리(익산)와 이리~군산의 지선이 1912년 3월 6일 동시에 영업을 시작했다. 꼭 100년 전 일이다.

 

이 때 재미있는 얘기가 전해진다. 당초 호남선은 설계상 노선이 이리를 통과하게 되어 있지 않았다. 연산~전주~김제~정읍~목포로 이어지는 코스였다. 즉 서쪽 근교인 조촌면 매암리(梅岩里·지금의 전주시 원동)로 해서 김제 부용(芙蓉)으로 빠져 나가게 되어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전주 유지층 일부에서 "어허, 고약한 지고, 철도가 들어 와 터를 울리고 맥을 끊다니…"하며 철도 진입 반대운동을 벌였다. 또 일부 유지들은 철도가 뚫리면 다른 지역 상인들이 몰려올 것도 염려했다.

 

이와는 반대로 군산에서는 일본인들을 중심으로 철도 유치운동을 폈다. 직접 군산을 통과할 수 없다면 가까운 지경리(地境里·지금의 대야)를 경유케 해 달라는 것이었다. 한쪽에선 철도가 지나가선 안된다고 하고, 한쪽에선 끌어오려는 묘한 모습이 벌어진 것이다.

 

이처럼 양 지역에서 줄다리기를 하자 총독부는 중간지점인'이리(익산)'통과로 노선을 수정했다. 이렇게 해서 생긴 게 오늘날의 익산역이다.

 

익산역이 들어선 곳은 당시 익산군 남일면(南一面)의 한촌에 불과했다. 10여 가구가 모여 살며 속리 또는 솜리라 불렸다. 만경강변인 목천포 등에 제방이 막아지기 전까지 갈대밭이 무성했고 게가 득실거렸다.

 

익산역은 1977년 엄청난 화약 폭발사고를 당했다. 또 익산역은 나훈아가 불러 유명해진 국민애창곡 '고향역'의 배경이기도 하다.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임종수씨(순창 출신)는 학창시절 삼기면에 있던 형집에서 익산 남성중·고를 다녔다. 기차통학을 하면서 철길에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보고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을 되살려 이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

 

호남 전라 장항 군산선의 분기역으로 발전한 익산역이 10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일까.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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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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