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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문화와 전통 가요

▲ 진창선 문학평론가
문화란 삶의 추구에서 이루어 지다 보니 그 발전도 전통과 민중적 기반이 바탕이 된다. 그러기에 예술도 대중을 떠나서는 상상할 수 없다. 흔히 세계를 통일한 것은 음악이요 또한 음악은 세계의 언어라 이르기도 한다. 음악의 나라 이태리는 밝은 태양의 덕으로 낙천적인 기질이라 소프라노 테너가 알맞아 마리오·란자, 스테파노를, 대낮에도 부엉이가 운다는 독일은 바리톤이나 알토가 걸맞아 하마리율리 같은 저음 가수가, 눈보라치는 러시아는 베이스의 샤리아핀이 유명했다. 프랑스는 샹송으로 장꼭또와의 운명적인 사랑을 받았던 가수 삐아쁘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고엽(枯葉)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면 한국은 어떤가. 판소리에 이어 아리랑은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서양 음악에서도 작곡의 윤이상, 소프라노의 조수미 그리고 첼로니스트요 지휘자인 장한나 등은 세계에 명성을 떨친 예술인이다. 물론 서양의 음악을 따르기만 한 것은 이어령 박사의 지적한 바 모방이라 이른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한국의 대중음악은 어떤 양상으로 문화 생활에 공헌하고 있는가. 노래와 춤은 인생에 위안을 주는 예술이다. 특히 일제 치하에서도 우리의 대중가요는 슬프고 고달플 때마다 삶의 위안을 주었던 것이다. 고통이 지혜를 낳는다는 말도 있지만 식민지하의 우리 백성들에게는 문화 말살 정책으로 일상 자체가 공포의 기나긴 터널이었다. 이런 식민지문화는 광복 후에도 그 잔영은 오래도록 이어져 반성의 채찍으로 정체성을 위한 작업이 지속되고 있다. 마침 일본에서 음악 공부를 했다는 가수요 작곡도 한 이가 일본의 ‘엔까’의 한국의 ‘트롯트’는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고 했다. 일찍이 작곡가요 음악평론가인 서우석 교수가 ‘7.5조’는 한국 고유의 전통가락임을 고증한 다음 ‘엔까의 틀도 다분히 한국조(調)’라고 발표했었다.

 

어쨌든 우리의 대중 가요는 변함없이 광복 후 70년에 가까운 긴 세월에도 노래의 즐거움은 유익함을 앞서고 있다. 카네기홀에 서면 무슨 노래를 부르겠냐는 물음에 인순이는 서슴없이 ‘고향 설’이라고 답한 그 미소엔 어딘지 향수가 어렸다. 모름지기 우리 대중가요사에도 세월 따라 큰 변화와 함께 이왕의 트롯트에 팝송·번안 등은 물론 문화의 ‘퓨전’은 막을 수가 없었다. 특히 90년대 서태지의 음악은 대중음악의 담론을 주도한 일대 새로운 혁명이었다. 또한 이내 사랑받는 가수라면 이미자, 조용필, 패티김, 장사익 등 대단하다. 이 가운데 이미자는 한국인의 정서 형성의 기후 풍토 조건을 타고난 미성으로 증명, 한국가요계의 여왕이었다.

 

오늘날 한류(韓流)의 깃발은 안방 극장의 드라마를 필두로 K팝은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켜 그 파도는 도도하다. 더욱이 강남 스타일 싸이는 이미 뉴욕에서 정상도 탈환 지구촌 방방곡곡 우뢰와 같은 박수 속에 삶의 리듬이요 말 그대로 세계인을 즐겁게 하는 가요계의 샛별로 월계관 없는 외교관이다.

 

한국의 대중 가요는 산업 경제와 쌍두마차로 나라의 발전과 더불어 위상(位相)을 높이는 데도 공헌을 다하는 대중 예술로 빛을 다한다. 예로부터 풍류를 즐기는 배달겨레라 ‘동이(東夷)’라 했으니 ‘夷(이)’는 ‘활(弓)’을 크게(大) 잘 다스린다 함이요 ‘하프’도 ‘활’로 비롯되었으니 ‘활(弓)’은 곧 음악의 상징이요 무릇 음악은 예술을 일컬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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