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대법원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접수되는 사건이 너무 많다 보니 대법관이나 재판연구관들이 사건기록에 파묻히게 되고, 정말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는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부족한데,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건까지 일일이 다 살펴봐야 하니, 그런 사건에까지 일일이 구체적인 이유를 쓰기에는 도저히 여력이 없고,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사건의 경우에는 구체적인 이유를 적지 않아도 되는 ‘심리불속행제도’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에 접수되는 사건의 수를 보면, 2002년에 1만 8600건 정도였던 것이 2012년에 3만 5700건 정도였으니 10년 사이에 무려 2배로 증가하였고, 그 중에서 심리불속행으로 종결되는 사건이 55%로 절반을 넘는다. 이러니 일반 국민들은 판결 이유도 없는 판결문에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고, 대법관과 재판연구관의 수를 2배 이상 대폭 늘리자는 요구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과연 대법관의 수를 2배 이상 늘린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지금 같은 추세라면 앞으로 상고사건이 현재의 2배로 다시 늘어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으니, 대법관의 수를 늘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 이유로, 사법정책자문위원회는 상고제도 개선방안을 찾기 위해 약 1년간의 논의를 거쳐 2014년 6월에 건의안을 채택하였는데, 대법원은 법령 해석의 통일 및 정책법원이라는 기능에 충실하도록 법령해석이 특별히 문제되는 사건이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상고사건만 다루고, 일반적인 상고사건의 경우에는 별도로 상고법원을 설치하여 국민의 권리 구제를 위한 상급심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국민들은 자신의 상고가 왜 기각되는지 그 이유라도 알기를 원하는데, 상고법원이 생기게 되면 적어도 구체적인 판결 이유도 없는 ‘심리불속행’ 판결은 없어질 것이 분명하고, 결론의 적정성과 절차의 효율성이 제고되어 국민의 권리구제 기능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상고법원에서 일반 상고사건을 담당하고 대법원에서는 법령 해석 통일을 위해 필요하거나,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상고사건을 담당하게 된다면 대법원은 적정한 사건 수를 유지함으로써 전원합의체의 사색과 숙려, 충분한 논의를 통해 중요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게 될 것으로 보인다. 통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2012년에 28건, 2013년에 22건만이 선고되었을 뿐이라고 한다.
법원행정처는 24일에 상고법원 도입방안을 골자로 하는 상고제도 개선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공청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하여 현행 상고제도를 획기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개선안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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